교예世説新語 巧蓺第二十一
1손이 칡건 모서리로 낮게 머리 숙여 알을 쳐서 묘하기가 임금보다 나았다
彈棊始自魏宮內,用妝奩戲。文帝於此戲特妙,用手巾角拂之,無不中。有客自云能,帝使為之。客箸葛巾角,低頭拂棊,妙踰於帝。
탄기는 위나라 궁 안에서 비롯되었으니 화장 그릇을 써서 놀았다.
문제가 이 놀이에 유난히 묘하여 손수건 모서리로 이를 스치면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한 손이 스스로 할 수 있다 말하매 임금이 그에게 하게 하였다.
손이 칡건을 쓰고 낮게 머리를 숙여 알을 스치니 묘하기가 임금보다 나았다.
협주 2
傅玄《彈棋賦敘》曰:「漢成帝好蹴踘,劉向以謂勞人體,竭人力,非至尊所宜御。乃因其體作彈棋。今觀其道,蹴踘道也。」按玄此言,則彈棋之戲,其來久矣。且《梁冀傳》云:「冀善彈棋,格五。」而此云起魏世,謬矣。
부현의 「탄기부서」에 이르기를 「한나라 성제가 공차기를 좋아하니 유향이 이르기를 사람의 몸을 수고롭게 하고 사람의 힘을 다하게 하니 지극히 높은 이가 마땅히 부릴 바가 아니라 하였다. 이에 그 몸에 기대어 탄기를 지었다. 이제 그 길을 보면 공차기의 길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부현의 이 말로 보면 곧 탄기의 놀이는 그 온 지 오래다. 또 『양기전』에 이르기를 「양기가 탄기와 격오를 잘하였다」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위나라 때 일어났다 하니 그르다.
《典論》常自敘曰:「戲弄之事,少所喜,唯彈棋略盡其妙。少時嘗為之賦。昔京師少工有二焉:合鄉侯東方世安、張公子,常恨不得與之對也。」《博物志》曰:「帝善彈棋,能用手巾角。時有一書生,又能低頭以所冠葛巾角撇棋也。」
『전론』에 늘 스스로 편 데 이르기를 「놀고 즐기는 일에 좋아하는 바가 적으나 오직 탄기만은 그 묘함을 거의 다하였다. 젊었을 때 일찍이 이를 위해 부를 지었다. 옛날 서울에 젊은 재주꾼에 둘이 있었으니 합향후 동방세안과 장공자인데, 늘 그들과 마주하지 못함을 한하였다」 하였다. 『박물지』에 이르기를 「임금이 탄기를 잘하여 손수건 모서리를 쓸 수 있었다. 그때 한 서생이 있어 또한 낮게 머리 숙여 쓴 칡건 모서리로 알을 튕길 수 있었다」 하였다.
2논하는 이가 가볍고 무거움의 힘이 치우친 까닭이라 하다
陵雲臺樓觀精巧,先稱平眾木輕重,然後造構,乃無錙銖相負揭。臺雖高峻,常隨風搖動,而終無傾倒之理。魏明帝登臺,懼其勢危,別以大材扶持之,樓即穨壞。論者謂輕重力偏故也。
능운대의 다락과 누각이 정하고 공교로웠으니, 먼저 뭇 나무의 가볍고 무거움을 고르게 재고 그런 뒤에 지어 얽어 이에 티끌만큼도 서로 지고 드는 것이 없었다.
대가 비록 높고 험하여 늘 바람 따라 흔들렸으나 마침내 기울어 넘어질 리가 없었다.
위나라 명제가 대에 올라 그 세가 위태로움을 두려워하여 따로 큰 재목으로 이를 붙들게 하니 다락이 곧 무너졌다.
논하는 이가 가볍고 무거움의 힘이 치우친 까닭이라 하였다.
협주 1
《洛陽宮殿簿》曰:「陵雲臺上壁方十三丈,高九尺。樓方四丈,高五丈。棟去地十三丈五尺七寸五分也。」
『낙양궁전부』에 이르기를 「능운대 위의 벽이 모가 열세 길이요 높이가 아홉 자다. 다락은 모가 넉 길이요 높이가 닷 길이다. 마룻대가 땅에서 열세 길 다섯 자 일곱 치 다섯 푼이다」 하였다.
3다시 글씨를 배우지 마라
韋仲將能書。魏明帝起殿,欲安榜,使仲將登梯題之。既下,頭鬢皓然,因敕兒孫:「勿復學書。」
위중장이 글씨를 잘 썼다.
위나라 명제가 전각을 일으키고 편액을 걸고자 하여 중장에게 사다리에 올라 이를 쓰게 하였다.
이윽고 내려오매 머리와 살쩍이 하얗게 세었으므로, 이로 인해 아들과 손자에게 경계하였다. "다시 글씨를 배우지 마라."
협주 1
《文章敘錄》曰:「韋誕字仲將,京兆杜陵人,太僕端子。有文學,善屬辭。以光祿大夫卒。」衛恆四體書勢曰:「誕善楷書,魏宮觀多誕所題。明帝立陵霄觀,誤先釘榜,乃籠盛誕,轆轤長絙引上,使就題之。去地二十五丈,誕甚危懼。乃戒子孫,絕此楷法,箸之家令。」
『문장서록』에 이르기를 「위탄은 자가 중장이요 경조 두릉 사람이니 태복 위단의 아들이다. 글과 배움이 있고 말 짓기를 잘하였다. 광록대부로 죽었다」 하였다. 위항의 「사체서세」에 이르기를 「위탄이 해서를 잘하여 위나라 궁궐과 누각에 위탄이 쓴 것이 많다. 명제가 능소관을 세우며 잘못 먼저 편액을 박았으므로, 이에 대바구니에 위탄을 담고 도르래로 긴 줄을 당겨 올려 나아가 쓰게 하였다. 땅에서 스물다섯 길이라 위탄이 몹시 위태로워하고 두려워하였다. 이에 아들과 손자를 경계하여 이 해서법을 끊게 하고 집안 법령에 적었다」 하였다.
4두 종씨가 문에 들자 곧 크게 느껴 애통해하니 집이 마침내 비어 버려지다
鍾會是荀濟北從舅,二人情好不協。荀有寶劍,可直百萬,常在母鍾夫人許。會善書,學荀手跡,作書與母取劍,仍竊去不還。荀勖知是鍾而無由得也,思所以報之。後鍾兄弟以千萬起一宅,始成,甚精麗,未得移住。荀極善畫,乃潛往畫鍾門堂,作太傅形象,衣冠狀貌如平生。二鍾入門,便大感慟,宅遂空廢。
종회는 순제북의 종외숙인데 두 사람의 정과 좋음이 어울리지 않았다.
순씨에게 보배로운 칼이 있어 값이 백만에 맞먹었는데 늘 어미 종부인의 처소에 있었다.
종회가 글씨를 잘하여 순씨의 글씨체를 본떠 글을 지어 어미에게 보내 칼을 가져가고, 그대로 훔쳐 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순욱이 종회인 줄 알았으나 얻을 길이 없어 그에게 갚을 바를 생각하였다.
뒤에 종씨 형제가 천만으로 집 하나를 일으켜 비로소 이루어지니 몹시 정하고 고왔는데 아직 옮겨 살지 못하였다.
순욱이 그림을 지극히 잘하므로 이에 몰래 가서 종씨의 문간 마루에 그림을 그리되 태부의 모습을 지으니, 옷과 관과 모습이 살았을 때 같았다.
두 종씨가 문에 들자 곧 크게 느껴 애통해하니 집이 마침내 비어 버려졌다.
협주 3
《孔氏志怪》曰:「勖以寶劍付妻。」
『공씨지괴』에 이르기를 「순욱이 보배로운 칼을 아내에게 주었다」 하였다.
《世語》曰:「會善學人書,伐蜀之役,於劍閣要鄧艾章表,皆約其言。令詞旨倨傲,多自矜伐。艾由此被收也。」
『세어』에 이르기를 「종회가 남의 글씨 배우기를 잘하여, 촉 치는 싸움에서 검각에서 등애의 글과 표를 가로채 다 그 말을 줄였다. 말뜻을 거만하게 하여 스스로 자랑함이 많게 하니 등애가 이로 말미암아 잡혔다」 하였다.
《孔氏志怪》曰:「于時咸謂勖之報會,過於所失數十倍。彼此書畫,巧妙之極。」
『공씨지괴』에 이르기를 「이때 다들 순욱이 종회에게 갚은 것이 잃은 바보다 몇십 배 지나쳤다 일렀다. 이쪽과 저쪽의 글씨와 그림이 공교롭고 묘함의 지극함이었다」 하였다.
5여러 양씨가 뒤에 흔히 글씨를 알았으나 활쏘기와 바둑과 남은 재주는 미치지 못하다
羊長和博學工書,能騎射,善圍棊。諸羊後多知書,而射、弈餘蓺莫逮。
양장화가 널리 배우고 글씨를 잘 쓰며 말 타고 활 쏘기에 능하고 바둑을 잘 두었다.
여러 양씨가 뒤에 흔히 글씨를 알았으나 활쏘기와 바둑과 남은 재주는 미치지 못하였다.
협주 1
《文字志》曰:「忱性能草書,亦善行隸,有稱於一時。」
『문자지』에 이르기를 「양침은 성품이 초서에 능하고 또한 행서와 예서를 잘하여 한때에 일컬음이 있었다」 하였다.
6범선이 보기를 마치고 감탄하며 몹시 보탬이 있다 여겨 비로소 그림을 무겁게 여기다
戴安道就范宣學,視范所為:范讀書亦讀書,范抄書亦抄書。唯獨好畫,范以為無用,不宜勞思於此。戴乃畫南都賦圖;范看畢咨嗟,甚以為有益,始重畫。
대안도가 범선에게 나아가 배우며 범선이 하는 바를 보았다. 범선이 책을 읽으면 또한 책을 읽고 범선이 책을 베끼면 또한 책을 베꼈다.
오직 홀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 범선이 쓸데없다 하며 여기에 생각을 수고롭게 함이 마땅하지 않다 하였다.
대안도가 이에 「남도부」 그림을 그리니, 범선이 보기를 마치고 감탄하며 몹시 보탬이 있다 여겨 비로소 그림을 무겁게 여겼다.
협주 1
《中興書》曰:「逵不遠千里,往豫章詣范宣,宣見逵,異之,以兄女妻焉。」
『중흥서』에 이르기를 「대규가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예장에 가서 범선을 찾으니, 범선이 대규를 보고 그를 남달리 여겨 형의 딸을 아내로 주었다」 하였다.
7고장강의 그림은 백성이 생긴 뒤로 없던 바다
謝太傅云:「顧長康畫,有蒼生來所無。」
사태부가 말하였다. "고장강의 그림은 백성이 생긴 뒤로 없던 바다."
협주 1
《續晉陽秋》曰:「愷之尤好丹青,妙絕於時。曾以一廚畫寄桓玄,皆其絕者,深所珍惜,悉糊題其前。桓乃發廚後取之,好加理。後愷之見封題如初,而畫並不存,直云:『妙畫通靈,變化而去,如人之登仙矣。』」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고개지가 유난히 단청을 좋아하여 묘하기가 그때에 으뜸이었다. 일찍이 한 궤의 그림을 환현에게 부쳤는데 다 그 뛰어난 것이라 깊이 아끼는 바여서 다 그 앞을 풀로 붙여 적어 두었다. 환현이 이에 궤 뒤를 열어 이를 가져다 좋아하며 잘 손질해 두었다. 뒤에 고개지가 봉하고 적은 것이 처음 같은데 그림이 아울러 있지 않음을 보고, 곧바로 이르기를 『묘한 그림은 신령에 통하여 바뀌고 되어 가니 사람이 신선에 오르는 것과 같다』 하였다」 하였다.
8오직 무광만이 마땅히 경의 이 말을 면하리라
戴安道中年畫行像甚精妙。庾道季看之,語戴云:「神明太俗,由卿世情未盡。」戴云:「唯務光當免卿此語耳。」
대안도가 중년에 다니는 상을 그린 것이 몹시 정하고 묘하였다.
유도계가 이를 보고 대씨에게 말하였다. "기색이 너무 속되니 경의 세상 정이 아직 다하지 않았음에 말미암은 것이오."
대씨가 말하였다. "오직 무광만이 마땅히 경의 이 말을 면하리라."
협주 1
《列仙傳》曰:「務光,夏時人也。耳長七寸,好鼓琴,服菖蒲韭根。湯將伐桀,謀於光,光曰:『非吾事也。』湯曰:『伊尹何如?』務光曰:『彊力忍詬,不知其它。』湯克天下,讓於光,光曰:『吾聞無道之世,不踐其土。況讓我乎?』負石自沈於盧水。」
『열선전』에 이르기를 「무광은 하나라 때 사람이다. 귀가 길이 일곱 치요 거문고 타기를 좋아하며 창포와 부추 뿌리를 먹었다. 탕임금이 장차 걸을 치려 하며 무광에게 꾀하니, 무광이 『내 일이 아니다』 하였다. 탕임금이 『이윤은 어떠한가』 하니 무광이 『힘이 세고 꾸지람을 참으나 그 밖은 알지 못한다』 하였다. 탕임금이 천하를 이기고 무광에게 사양하니, 무광이 『내가 듣기로 도 없는 세상에는 그 땅을 밟지 않는다 하였다. 하물며 나에게 사양함이랴』 하고, 돌을 지고 스스로 노수에 잠겼다」 하였다.
9바로 이것이 그 앎의 갖춤이다
顧長康畫裴叔則,頰上益三毛。人問其故?顧曰:「裴楷儁朗有識具,正此是其識具。」看畫者尋之,定覺益三毛如有神明,殊勝未安時。
고장강이 배숙칙을 그리며 뺨 위에 털 셋을 더하였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고씨가 말하였다. "배해는 뛰어나고 환하며 앎의 갖춤이 있으니, 바로 이것이 그 앎의 갖춤이다."
그림 보는 이가 이를 찾으니, 참으로 털 셋을 더하매 정신이 살아 있는 듯하여 아직 붙이지 않았을 때보다 자못 나음을 깨달았다.
협주 1
愷之歷畫古賢,皆為之贊也。
고개지가 옛 어진 이를 죽 그리고 다 그를 위해 기림글을 지었다.
10바둑을 앉아 숨음이라 하고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라 하다
王中郎以圍棊是坐隱,支公以圍棊為手談。
왕중랑은 바둑을 앉아 숨음이라 하고 지공은 바둑을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라 하였다.
협주 1
《博物志》曰:「堯作圍棋,以教丹朱。」語林曰:「王以圍棋為手談,故其在哀制中,祥後客來,方幅會戲。」
『박물지』에 이르기를 「요임금이 바둑을 지어 단주를 가르쳤다」 하였다. 『어림』에 이르기를 「왕씨가 바둑을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라 하였으므로, 그가 상중에 있을 때 소상 뒤에 손이 오면 바야흐로 반듯이 모여 놀았다」 하였다.
11다만 눈동자를 밝게 찍고 나는 듯한 흰 붓질로 그 위를 스치면 가벼운 구름이 해를 가린 듯하게 될 것입니다
顧長康好寫起人形。欲圖殷荊州,殷曰:「我形惡,不煩耳。」顧曰:「明府正為眼爾。但明點童子,飛白拂其上,使如輕雲之蔽日。」
고장강이 사람의 모습 그리기를 좋아하였다.
은형주를 그리려 하니 은씨가 말하였다. "내 모습이 나쁘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오."
고씨가 말하였다. "명부께서는 바로 눈 때문일 뿐입니다. 다만 눈동자를 밝게 찍고 나는 듯한 흰 붓질로 그 위를 스치면, 가벼운 구름이 해를 가린 듯하게 될 것입니다."
협주 3
《續晉陽秋》曰:「愷之圖寫特妙。」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고개지가 그려 베낌이 유난히 묘하였다」 하였다.
仲堪耳少目故也。
은중감이 한 눈이 적었던 까닭이다.
日,一作月。
일(日)은 한 본에 월(月)로 되어 있다.
12이 사람은 마땅히 언덕과 골짜기 가운데 두어야 한다
顧長康畫謝幼輿在巖石裏。人問其所以?顧曰:「謝云:『一丘一壑,自謂過之。』此子宜置丘壑中。」
고장강이 사유여를 바위와 돌 속에 그렸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고씨가 말하였다. "사씨가 『한 언덕과 한 골짜기는 스스로 그를 넘는다 여긴다』 하였으니, 이 사람은 마땅히 언덕과 골짜기 가운데 두어야 한다."
13정신을 전하고 비침을 그리는 것이 바로 이 가운데 있다
顧長康畫人,或數年不點目精。人問其故?顧曰:「四體妍蚩,本無關於妙處;傳神寫照,正在阿堵中。」
고장강이 사람을 그릴 때 더러 몇 해가 되도록 눈동자를 찍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고씨가 말하였다. "몸이 곱고 미운 것은 본디 묘한 데에 상관이 없다. 정신을 전하고 비침을 그리는 것이 바로 이 가운데 있다."
14손으로 다섯 줄을 놀리기는 쉬우나 눈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를 보내기는 어렵다
顧長康道畫:「手揮五絃易,目送歸鴻難。」
고장강이 그림을 말하였다. "손으로 다섯 줄을 놀리기는 쉬우나 눈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를 보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