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오世説新語 簡傲第二十四
1오직 완적만이 자리에서 다리를 뻗고 휘파람 불며 노래하되 흠뻑 놓아 태연하였다
晉文王功德盛大,坐席嚴敬,擬於王者。唯阮籍在坐,箕踞嘯歌,酣放自若。
진나라 문왕의 공과 덕이 성하고 커서 앉은 자리가 엄하고 공손하여 왕 노릇 하는 이에 견주었다.
오직 완적만이 자리에서 다리를 뻗고 휘파람 불며 노래하되 흠뻑 놓아 태연하였다.
협주 1
漢晉春秋曰:「文王進爵為王,司徒何曾與朝臣皆盡禮,唯王祥長揖不拜。」
『한진춘추』에 이르기를 「문왕이 벼슬을 나아가 왕이 되매 사도 하증과 조정의 신하가 다 예를 다하였는데, 오직 왕상만이 길게 읍하고 절하지 않았다」 하였다.
2오직 공영에게만은 술을 주지 않아도 된다
王戎弱冠詣阮籍,時劉公榮在坐。阮謂王曰:「偶有二斗美酒,當與君共飲。彼公榮者,無預焉。」二人交觴酬酢,公榮遂不得一桮。而言語談戲,三人無異。或有問之者,阮答曰:「勝公榮者,不得不與飲酒;不如公榮者,不可不與飲酒;唯公榮,可不與飲酒。」
왕융이 갓 스물에 완적을 찾아가니 그때 유공영이 자리에 있었다.
완적이 왕융에게 말하였다. "마침 두 말 좋은 술이 있으니 마땅히 그대와 함께 마시겠소. 저 공영이라는 이는 여기 끼지 않소."
두 사람이 잔을 주고받으니 공영은 마침내 한 잔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말하고 이야기하고 놀기는 세 사람이 다름이 없었다.
어떤 이가 이를 물으니 완적이 대답하였다. "공영보다 나은 이는 더불어 술 마시지 않을 수 없고, 공영만 못한 이도 더불어 술 마시지 않을 수 없고, 오직 공영에게만은 술을 주지 않아도 되오."
협주 1
晉陽秋曰:「戎年十五,隨父渾在郎舍,阮籍見而說焉。每適渾俄頃,輒在戎室久之。乃謂渾:『濬沖清尚,非卿倫也。』戎嘗詣籍共飲,而劉昶在坐不與焉。昶無恨色。既而戎問籍曰:『彼為誰也?』曰:『劉公榮也。』濬沖曰:『勝公榮,故與酒;不如公榮,不可不與酒;唯公榮者,可不與酒。』」竹林七賢論曰:「初,籍與戎父渾俱為尚書郎,每造渾,坐未安,輒曰:『與卿語,不如與阿戎語。』就戎,必日夕而返。籍長戎二十歲,相得如時輩。劉公榮通士,性尤好酒。籍與戎酬酢終日,而公榮不蒙一桮,三人各自得也。戎為物論所先,皆此類。」
『진양추』에 이르기를 「왕융이 나이 열다섯에 아버지 왕혼을 따라 낭사에 있었는데 완적이 보고 기뻐하였다. 왕혼에게 갈 때마다 잠깐 만에 문득 왕융의 방에 있기를 오래 하였다. 이에 왕혼에게 이르기를 『준충은 맑고 높으니 경의 무리가 아니오』 하였다. 왕융이 일찍이 완적을 찾아가 함께 마시는데 유창이 자리에 있으나 함께하지 않았다. 유창이 한하는 낯빛이 없었다. 이윽고 왕융이 완적에게 묻기를 『저이는 누구입니까』 하니, 『유공영이다』 하였다. 준충이 『공영보다 나으면 짐짓 술을 주고, 공영만 못하면 술을 주지 않을 수 없고, 오직 공영이라는 이만은 술을 주지 않아도 된다』 하였다」 하였다. 『죽림칠현론』에 이르기를 「처음에 완적이 왕융의 아버지 왕혼과 함께 상서랑이 되었는데, 왕혼에게 갈 때마다 앉음이 편안하기 전에 문득 이르기를 『경과 말하는 것은 아융과 말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왕융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날이 저물어야 돌아왔다. 완적이 왕융보다 스무 살 위였으나 서로 얻음이 같은 또래 같았다. 유공영은 통한 선비요 성품이 유난히 술을 좋아하였다. 완적이 왕융과 온종일 잔을 주고받는데 공영은 한 잔도 입지 못하였으나 세 사람이 저마다 스스로 얻었다. 왕융이 물건의 논의에 앞세워진 것이 다 이런 무리다」 하였다.
3무엇을 듣고 왔으며 무엇을 보고 가는가
鍾士季精有才理,先不識嵇康。鍾要于時賢雋之士,俱往尋康。康方大樹下鍛,向子期為佐鼓排。康揚槌不輟,傍若無人,移時不交一言。鍾起去,康曰:「何所聞而來?何所見而去?」鍾曰:「聞所聞而來,見所見而去。」
종사계는 정하게 재주와 사리가 있었으나 앞서 혜강을 알지 못하였다.
종회가 이때의 어질고 뛰어난 선비를 청하여 함께 혜강을 찾아갔다.
혜강은 바야흐로 큰 나무 아래서 쇠를 두드리고 상자기가 도와 풀무를 밀고 있었다.
혜강이 망치를 들기를 그치지 않아 곁에 사람이 없는 듯하여, 때가 옮기도록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종회가 일어나 가매 혜강이 말하였다. "무엇을 듣고 왔으며 무엇을 보고 가는가."
종회가 말하였다. "들은 바를 듣고 왔고 본 바를 보고 가오."
협주 1
文士傳曰:「康性絕巧,能鍛鐵。家有盛柳樹,乃激水以圜之,夏天甚清涼,恆居其下傲戲,乃身自鍛。家雖貧,有人說鍛者,康不受直。唯親舊以雞酒往與共飲噉,清言而已。」魏氏春秋曰:「鍾會為大將軍兄弟所暱,聞康名而造焉。會名公子,以才能貴幸,乘肥衣輕,賓從如雲。康方箕踞而鍛,會至不為之禮,會深銜之。後因呂安事,而遂譖康焉。」
『문사전』에 이르기를 「혜강은 성품이 지극히 공교로워 쇠를 두드릴 수 있었다. 집에 무성한 버드나무가 있어 이에 물을 끌어 그를 둘렀는데 여름날에 몹시 맑고 서늘하니, 늘 그 아래 있으며 거만히 놀고 이에 몸소 쇠를 두드렸다. 집이 비록 가난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두드림을 말하면 혜강이 삯을 받지 않았다. 오직 가깝고 옛 이가 닭과 술을 가지고 가서 함께 마시고 먹으며 맑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하였다. 『위씨춘추』에 이르기를 「종회가 대장군 형제에게 가까이 여겨졌는데, 혜강의 이름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종회는 이름난 공자로 재주와 능함으로 귀하고 사랑받아,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옷을 입고 손과 따르는 이가 구름 같았다. 혜강이 바야흐로 다리를 뻗고 쇠를 두드리다가 종회가 이르러도 그를 위해 예를 하지 않으니, 종회가 이를 깊이 마음에 품었다. 뒤에 여안의 일로 인해 마침내 혜강을 헐뜯었다」 하였다.
4문 위에 봉 자를 써 놓고 가다
嵇康與呂安善,每一相思,千里命駕。安後來,值康不在,喜出戶延之,不入。題門上作「鳳」字而去。喜不覺,猶以為欣,故作「鳳」字,凡鳥也。
혜강이 여안과 사이가 좋아 한 번 서로 그리울 때마다 천 리에 수레를 명하였다.
여안이 뒤에 왔는데 마침 혜강이 있지 않았다.
혜희가 문을 나와 그를 맞았으나 들어가지 않았다.
문 위에 「봉(鳳)」 자를 써 놓고 갔다.
혜희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기뻐하였으나, 짐짓 「봉」 자를 쓴 것은 「범상한 새(凡鳥)」라는 뜻이었다.
협주 3
晉陽秋曰:「安字中悌,東平人,冀州刺史招之第二子。志量開曠,有拔俗風氣。」干寶晉紀曰:「初,安之交康也,其相思則率爾命駕。」
『진양추』에 이르기를 「여안은 자가 중제요 동평 사람이니 기주자사 여초의 둘째 아들이다. 뜻과 도량이 열리고 트여 속됨을 벗어난 풍모와 기운이 있었다」 하였다. 간보의 『진기』에 이르기를 「처음에 여안이 혜강과 사귀매 서로 그리우면 뜻대로 수레를 명하였다」 하였다.
晉百官名曰:「嵇喜字公穆,歷揚州刺史,康兄也。阮籍遭喪,往弔之。籍能為青白眼,見凡俗之士,以白眼對之。及喜往,籍不哭,見其白眼,喜不懌而退。康聞之,乃齎酒挾琴而造之,遂相與善。」干寶晉紀曰:「安嘗從康,或遇其行,康兄喜拭席而待之,弗顧,獨坐車中。康母就設酒食,求康兒共與戲。良久則去,其輕貴如此。」
『진백관명』에 이르기를 「혜희는 자가 공목이요 양주자사를 지냈으니 혜강의 형이다. 완적이 상을 당하매 가서 이를 조문하였다. 완적이 푸른 눈과 흰 눈을 할 수 있어 여느 속된 선비를 보면 흰 눈으로 그를 마주하였다. 혜희가 가매 완적이 곡하지 않고 그 흰 눈을 보이니, 혜희가 기뻐하지 않고 물러났다. 혜강이 이를 듣고 이에 술을 가지고 거문고를 끼고 그를 찾아가 마침내 서로 사이가 좋았다」 하였다. 간보의 『진기』에 이르기를 「여안이 일찍이 혜강을 따르다가 더러 그가 나감을 만나면, 혜강의 형 혜희가 자리를 닦고 그를 기다려도 돌아보지 않고 홀로 수레 안에 앉았다. 혜강의 어미가 나아가 술과 밥을 차리고 혜강의 아이를 구해 함께 놀았다. 한참 있다가 곧 가니 그 가벼이 귀하게 여김이 이와 같았다」 하였다.
許慎說文曰:「鳳,神鳥也。從鳥,凡聲。」
허신의 『설문』에 이르기를 「봉(鳳)은 신령한 새다. 조(鳥)를 따르고 범(凡)이 소리다」 하였다.
5동오에 자루 긴 조롱박이 있다는데 경은 씨를 얻어 왔는가
陸士衡初入洛,咨張公所宜詣;劉道真是其一。陸既往,劉尚在哀制中。性嗜酒,禮畢,初無他言,唯問:「東吳有長柄壺盧,卿得種來不?」陸兄弟殊失望,乃悔往。
육사형이 처음 낙양에 들어가 장공에게 마땅히 찾아갈 이를 여쭈니 유도진이 그 하나였다.
육사형이 이미 갔는데 유도진이 아직 상중에 있었다.
성품이 술을 즐겨, 예를 마치고 처음에 다른 말이 없이 오직 물었다. "동오에 자루 긴 조롱박이 있다는데 경은 씨를 얻어 왔는가."
육씨 형제가 자못 낙담하여 이에 간 것을 뉘우쳤다.
6까치 새끼를 얻어 돌아와 내려서 놀리되 곁에 사람이 없는 듯하였다
王平子出為荊州,王太尉及時賢送者傾路。時庭中有大樹,上有鵲巢。平子脫衣巾,徑上樹取鵲子。涼衣拘閡樹枝,便復脫去。得鵲子還,下弄,神色自若,傍若無人。
왕평자가 나가 형주가 되매 왕태위와 그때 어진 이로 보내는 이가 길에 넘쳤다.
그때 뜰 가운데 큰 나무가 있고 위에 까치집이 있었다.
평자가 옷과 두건을 벗고 곧장 나무에 올라 까치 새끼를 잡는데, 서늘한 옷이 나뭇가지에 걸리매 곧 다시 벗어 버렸다.
까치 새끼를 얻어 돌아와 내려서 놀리는데, 정신과 낯빛이 태연하여 곁에 사람이 없는 듯하였다.
협주 2
晉陽秋曰:「惠帝時,太尉王夷甫言於選者,以弟澄為荊州刺史,從弟敦為青州刺史。澄、敦俱詣太尉辭。太尉謂曰:『今王室將卑,故使弟等居齊、楚之地,外可以建霸業,內足以匡帝室,所望於二弟也!』」
『진양추』에 이르기를 「혜제 때 태위 왕이보가 뽑는 이에게 말하여 아우 왕징으로 형주자사를 삼고 종제 왕돈으로 청주자사를 삼았다. 왕징과 왕돈이 함께 태위를 찾아가 하직하였다. 태위가 일러 이르기를 『이제 왕실이 장차 낮아지려 하므로 아우들로 하여금 제나라와 초나라의 땅에 있게 하니, 밖으로 으뜸의 업을 세울 수 있고 안으로 임금의 집안을 바로잡기에 넉넉하다. 두 아우에게 바라는 바다』 하였다」 하였다.
鄧粲晉紀曰:「澄放蕩不拘,時謂之達。」
등찬의 『진기』에 이르기를 「왕징이 놓아 방탕하고 얽매이지 않으매 그때 이를 통달하다 일렀다」 하였다.
7저이는 예와 법의 사람이다
高坐道人於丞相坐,恆偃臥其側。見卞令,肅然改容云:「彼是禮法人。」
고좌도인이 승상의 자리에서 늘 그 곁에 자빠져 누웠다.
변영을 보고 엄숙히 낯빛을 고쳐 말하였다. "저이는 예와 법의 사람이다."
협주 1
高坐傳曰:「王公曾詣和上,和上解帶偃伏,悟言神解。見尚書令卞望之,便斂衿飾容。時歎皆得其所。」
『고좌전』에 이르기를 「왕공이 일찍이 화상을 찾아가니 화상이 띠를 풀고 자빠져 엎드렸으나 말을 깨쳐 정신으로 알았다. 상서령 변망지를 보고 곧 옷깃을 여미고 모습을 꾸몄다. 그때 다 그 자리를 얻었다 탄식하였다」 하였다.
8그대에게 미친 사마가 없으면 내가 무엇으로 서로 볼 수 있겠소
桓宣武作徐州,時謝奕為晉陵。先粗經虛懷,而乃無異常。及桓還荊州,將西之間,意氣甚篤,奕弗之疑。唯謝虎子婦王悟其旨。每曰:「桓荊州用意殊異,必與晉陵俱西矣!」俄而引奕為司馬。奕既上,猶推布衣交。在溫坐,岸幘嘯詠,無異常日。宣武每曰:「我方外司馬。」遂因酒,轉無朝夕禮。桓舍入內,奕輒復隨去。後至奕醉,溫往主許避之。主曰:「君無狂司馬,我何由得相見?」
환선무가 서주가 되었을 때 사혁이 진릉이었다.
앞서 거칠게 빈 마음을 겪었을 뿐 이에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환온이 형주로 돌아가 장차 서쪽으로 갈 즈음에 뜻과 기운이 몹시 도타웠으나 사혁은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직 사호자의 아내 왕씨만이 그 뜻을 깨달아 늘 말하였다. "환형주의 뜻 씀이 자못 남다르니 반드시 진릉과 함께 서쪽으로 가리라."
이윽고 사혁을 이끌어 사마로 삼았다.
사혁이 이미 올라가서도 오히려 베옷 적의 사귐으로 밀었다.
환온의 자리에서 두건을 언덕처럼 젖히고 휘파람 불고 읊어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선무가 늘 말하였다. "나의 밖의 사마다."
마침내 술로 인해 더욱 아침저녁의 예가 없어졌다.
환씨가 버려두고 안에 들면 사혁이 문득 다시 따라갔다.
뒤에 사혁이 취함에 이르매 환온이 공주의 처소로 가서 그를 피하였다.
공주가 말하였다. "그대에게 미친 사마가 없으면 내가 무엇으로 서로 볼 수 있겠소."
협주 2
中興書曰:「奕自吏部郎,出為晉陵太守。」
『중흥서』에 이르기를 「사혁이 이부랑에서 나가 진릉태수가 되었다」 하였다.
虎子,謝據小字,奕弟也。其妻王氏,已見。
호자는 사거의 아이 적 이름이니 사혁의 아우다. 그 아내 왕씨는 이미 보인다.
9새로 나온 문벌은 도타우나 예가 없다
謝萬在兄前,欲起索便器。于時阮思曠在坐曰:「新出門戶,篤而無禮。」
사만이 형 앞에서 일어나 요강을 찾으려 하였다.
이때 완사광이 자리에 있다가 말하였다. "새로 나온 문벌은 도타우나 예가 없다."
10사람들이 군후를 어리석다 하더니 군후가 참으로 절로 어리석소
謝中郎是王藍田女壻,嘗箸白綸巾,肩輿徑至揚州聽事見王,直言曰:「人言君侯癡,君侯信自癡。」藍田曰:「非無此論,但晚令耳。」
사중랑은 왕남전의 사위다.
일찍이 흰 실 두건을 쓰고 가마로 곧장 양주 청사에 이르러 왕씨를 보고, 곧바로 말하였다. "사람들이 군후를 어리석다 하더니 군후가 참으로 절로 어리석소."
남전이 말하였다. "이런 논이 없지는 않으나 다만 늦게 이룰 뿐이오."
협주 2
謝氏譜曰:「萬取太原王述女,名荃。」
『사씨보』에 이르기를 「사만이 태원 왕술의 딸을 맞으니 이름이 왕전이다」 하였다.
述別傳曰:「述少真獨退靜,人未嘗知,故有晚令之言。」
『술별전』에 이르기를 「왕술이 젊어서 참되고 홀로 물러나 고요하여 남이 일찍이 알지 못하였으므로, 늦게 이룬다는 말이 있었다」 하였다.
11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습니까
王子猷作桓車騎騎兵參軍,桓問曰:「卿何署?」答曰:「不知何署,時見牽馬來,似是馬曹。」桓又問:「官有幾馬?」答曰:「不問馬,何由知其數?」又問:「馬比死多少?」答曰:「未知生,焉知死?」
왕자유가 환거기의 기병참군이 되었다.
환씨가 물었다. "경은 무슨 관청이오."
대답하였다. "무슨 관청인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 말을 끌고 오는 것을 보니 말 맡은 관청인 듯합니다."
환씨가 또 물었다. "관청에 말이 몇이오."
대답하였다. "말을 묻지 않았으니 무엇으로 그 수를 알겠습니까."
또 물었다. "말이 요사이 죽은 것이 얼마요."
대답하였다.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습니까."
협주 3
中興書曰:「桓沖引徽之為參軍,蓬首散帶,不綜知其府事。」
『중흥서』에 이르기를 「환충이 왕휘지를 이끌어 참군으로 삼았는데, 머리를 쑥대처럼 하고 띠를 풀어 놓아 그 부의 일을 모아 알지 않았다」 하였다.
論語曰:「廄焚,孔子退朝曰:『傷人乎?』不問馬。」注:「貴人賤畜,故不問也。」
『논어』에 이르기를 「마구간이 불탔는데 공자께서 조회에서 물러나 『사람이 다쳤느냐』 하시고 말을 묻지 않으셨다」 하였다. 주에 「사람을 귀히 여기고 짐승을 천히 여기므로 묻지 않으셨다」 하였다.
論語曰:「子路問死。孔子曰:『未知生,焉知死?』」馬融注曰:「死事難明,語之無益,故不答。」
『논어』에 이르기를 「자로가 죽음을 물으니 공자께서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하셨다」 하였다. 마융의 주에 이르기를 「죽음의 일은 밝히기 어렵고 말하여도 보탬이 없으므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하였다.
12아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謝公嘗與謝萬共出西,過吳郡。阿萬欲相與共萃王恬許,太傅云:「恐伊不必酬汝,意不足爾!」萬猶苦要,太傅堅不回,萬乃獨往。坐少時,王便入門內,謝殊有欣色,以為厚待已。良久,乃沐頭散髮而出,亦不坐,仍據胡床,在中庭曬頭,神氣傲邁,了無相酬對意。謝於是乃還。未至船,逆呼太傅。安曰:「阿螭不作爾!」
사공이 일찍이 사만과 함께 서쪽에 나가 오군을 지났다.
아만이 서로 함께 왕념의 처소에 모이려 하니, 태부가 말하였다. "저이가 반드시 너에게 갚아 주지는 않을 터이니 뜻이 그럴 만하지 않다."
사만이 오히려 괴로이 청하였으나 태부가 굳게 돌리지 않으매 사만이 이에 홀로 갔다.
앉은 지 잠깐 만에 왕씨가 곧 문 안으로 들어가니, 사만이 자못 기뻐하는 낯빛이 있어 저를 두터이 대접한다 여겼다.
한참 뒤에 이에 머리를 감고 머리를 풀고 나오는데, 또한 앉지 않고 그대로 호상에 걸터앉아 가운데 뜰에서 머리를 말리며 정신과 기운이 거만하고 빼어나 조금도 서로 갚아 마주할 뜻이 없었다.
사만이 이에 곧 돌아왔다. 배에 이르기 전에 미리 태부를 불렀다.
사안이 말하였다. "아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협주 2
恬已見。時為吳郡太守。
왕념은 이미 보인다. 그때 오군태수였다.
王恬,小字螭虎。
왕념은 아이 적 이름이 이호다.
13서산에 아침이 오니 자못 시원한 기운이 있다
王子猷作桓車騎參軍。桓謂王曰:「卿在府久,比當相料理。」初不答,直高視,以手版拄頰云:「西山朝來,致有爽氣。」
왕자유가 환거기의 참군이 되었다.
환씨가 왕씨에게 말하였다. "경이 부에 있은 지 오래니 이제 마땅히 서로 헤아려 다스려야겠소."
처음에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높이 보며, 손에 든 판으로 뺨을 괴고 말하였다. "서산에 아침이 오니 자못 시원한 기운이 있소."
14그대들은 다 굳센 병졸이오
謝萬北征,常以嘯詠自高,未嘗撫慰眾士。謝公甚器愛萬,而審其必敗,乃俱行。從容謂萬曰:「汝為元帥,宜數喚諸將宴會,以說眾心。」萬從之。因召集諸將,都無所說,直以如意指四坐云:「諸君皆是勁卒。」諸將甚忿恨之。謝公欲深箸恩信,自隊主將帥以下,無不身造,厚相遜謝。及萬事敗,軍中因欲除之。復云:「當為隱士。」故幸而得免。
사만이 북쪽으로 칠 때 늘 휘파람 불고 읊어 스스로 높은 체하고 일찍이 뭇 군사를 어루만져 위로한 적이 없었다.
사공이 몹시 사만을 그릇으로 여겨 아꼈으나 그가 반드시 패할 줄 살펴 이에 함께 갔다.
조용히 사만에게 말하였다. "네가 원수가 되었으니 마땅히 여러 장수를 자주 불러 잔치하여 뭇 마음을 기쁘게 하여라."
사만이 이를 좇았다.
이로 인해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았으나 도무지 말하는 바가 없고, 곧바로 여의로 네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대들은 다 굳센 병졸이오."
여러 장수가 몹시 그를 성내고 한하였다.
사공이 깊이 은혜와 믿음을 드러내고자 하여, 대장에서 장수 아래까지 몸소 찾아가지 않은 이가 없이 두터이 서로 겸손히 사례하였다.
사만의 일이 패함에 미쳐 군중에서 이로 인해 그를 없애려 하다가, 다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마땅히 숨어 살 선비다."
그러므로 다행히 면할 수 있었다.
협주 1
萬敗事已見上。
사만의 패한 일은 이미 위에 보인다.
15가빈이 죽지 않았으면 쥐새끼 같은 무리가 감히 이러하랴
王子敬兄弟見郗公,躡履問訊,甚脩外生禮。及嘉賓死,皆箸高屐,儀容輕慢。命坐,皆云:「有事,不暇坐。」既去,郗公慨然曰:「使嘉賓不死,鼠輩敢爾!」
왕자경 형제가 치공을 뵐 때 신을 살금살금 밟고 문안하여 몹시 생질의 예를 닦았다.
가빈이 죽음에 미쳐 다 높은 나막신을 신고 몸가짐과 모습이 가볍고 거만하였다.
앉기를 명하니 다 말하였다. "일이 있어 앉을 겨를이 없습니다."
이윽고 가매 치공이 감개하여 말하였다. "가빈이 죽지 않았으면 쥐새끼 같은 무리가 감히 이러하랴."
협주 1
愔子超,有盛名,且獲寵於桓溫,故為超敬愔。
치음의 아들 치초가 성한 이름이 있고 또 환온에게 사랑을 얻었으므로, 치초를 위하여 치음을 공경한 것이다.
16주인이 몹시 견디지 못하여 곧 곁의 사람에게 문을 닫고 나가지 못하게 하다
王子猷嘗行過吳中,見一士大夫家,極有好竹。主已知子猷當往,乃灑埽施設,在聽事坐相待。王肩輿徑造竹下,諷嘯良久。主已失望,猶冀還當通,遂直欲出門。主人大不堪,便令左右閉門不聽出。王更以此賞主人,乃留坐,盡歡而去。
왕자유가 일찍이 오 땅 가운데를 지나다가 한 사대부의 집을 보니 지극히 좋은 대가 있었다.
주인이 이미 자유가 마땅히 오리라 알고 이에 물 뿌리고 쓸고 자리를 베풀어 청사에 앉아 서로 기다렸다.
왕씨가 가마로 곧장 대 아래에 이르러 읊고 휘파람 불기를 한참 하였다.
주인이 이미 바람을 잃었으나 오히려 돌아오며 마땅히 통하리라 바랐는데, 마침내 곧바로 문을 나가려 하였다.
주인이 몹시 견디지 못하여 곧 곁의 사람에게 문을 닫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왕씨가 더욱 이로써 주인을 기려, 이에 머물러 앉아 즐거움을 다하고 갔다.
17주인에게 거만함은 예가 아니요 귀함으로 남에게 뽐냄은 도가 아니다
王子敬自會稽經吳,聞顧辟疆有名園。先不識主人,徑往其家,值顧方集賓友酣燕。而王遊歷既畢,指麾好惡,傍若無人。顧勃然不堪曰:「傲主人,非禮也;以貴驕人,非道也。失此二者,不足齒人,傖耳!」便驅其左右出門。王獨在輿上回轉,顧望左右移時不至,然後令送箸門外,怡然不屑。
왕자경이 회계에서 오 땅을 지나다가 고벽강에게 이름난 동산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앞서 주인을 알지 못하는데 곧장 그 집에 갔더니, 마침 고씨가 바야흐로 손과 벗을 모아 흠뻑 잔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왕씨가 노닐어 두루 보기를 마치고 좋고 나쁨을 가리키며 곁에 사람이 없는 듯하였다.
고씨가 발끈하여 견디지 못하고 말하였다. "주인에게 거만함은 예가 아니요, 귀함으로 남에게 뽐냄은 도가 아니다. 이 두 가지를 잃었으니 사람으로 셈하기에 넉넉하지 않은 촌뜨기일 뿐이다."
곧 그 곁의 사람을 몰아 문 밖으로 내보냈다.
왕씨가 홀로 가마 위에서 돌고 돌며 곁의 사람을 돌아보고 바랐으나 때가 옮기도록 오지 않았고, 그런 뒤에야 문 밖으로 보내게 하니 기쁘게 여겨 하찮게 여겼다.
협주 1
顧氏譜曰:「辟疆,吳郡人。歷郡功曹、平北參軍。」
『고씨보』에 이르기를 「고벽강은 오군 사람이다. 군공조와 평북참군을 지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