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조世説新語 排調第二十五
1네 흉한 이만이 아니라 또한 단주도 있었습니다
諸葛瑾為豫州,遣別駕到臺,語云:「小兒知談,卿可與語。」連往詣恪,恪不與相見。後於張輔吳坐中相遇,別駕喚恪:「咄咄郎君。」恪因嘲之曰:「豫州亂矣,何咄咄之有?」答曰:「君明臣賢,未聞其亂。」恪曰:「昔唐堯在上,四凶在下。」答曰:「非唯四凶,亦有丹朱。」於是一坐大笑。
제갈근이 예주가 되어 별가를 대에 보내며 말하였다. "어린아이가 이야기를 아니 경이 더불어 말할 만하오."
잇달아 제갈각을 찾아갔으나 제갈각이 서로 보아 주지 않았다.
뒤에 장보오의 자리 가운데서 서로 만나매 별가가 제갈각을 불렀다. "쯧쯧, 낭군."
제갈각이 이로 인해 그를 조롱하여 말하였다. "예주가 어지럽구려. 무슨 쯧쯧할 것이 있소."
대답하였다. "임금이 밝고 신하가 어지니 아직 그 어지러움을 듣지 못하였소."
제갈각이 말하였다. "옛날 요임금이 위에 계실 때 네 흉한 이가 아래 있었소."
대답하였다. "네 흉한 이만이 아니라 또한 단주도 있었습니다."
이에 온 자리가 크게 웃었다.
협주 3
瑾已見。
제갈근은 이미 보인다.
江表傳曰:「恪字元遜,瑾長子也。少有才名,發藻岐嶷,辯論應機,莫與為對。孫權見而奇之,謂瑾曰:『藍田生玉,真不虛也!』仕吳至太傅。為孫峻所害。」
『강표전』에 이르기를 「제갈각은 자가 원손이요 제갈근의 맏아들이다. 젊어서 재주의 이름이 있어 글을 냄이 우뚝하고, 따져 논함이 기틀에 응하여 더불어 맞설 이가 없었다. 손권이 보고 그를 기이하게 여겨 제갈근에게 이르기를 『남전에서 옥이 나온다 함이 참으로 헛되지 않구려』 하였다. 오나라에 벼슬하여 태부에 이르렀다. 손준에게 해를 입었다」 하였다.
環濟吳紀曰:「張昭字子布,忠正有才義,仕吳,為輔吳將軍。」
환제의 『오기』에 이르기를 「장소는 자가 자포요 참되고 발라 재주와 옳음이 있었으며, 오나라에 벼슬하여 보오장군이 되었다」 하였다.
2굳세고 아름다우며 참되니 어찌 반드시 무리를 같이하겠습니까
晉文帝與二陳共車,過喚鍾會同載,即駛車委去。比出,已遠。既至,因嘲之曰:「與人期行,何以遲遲?望卿遙遙不至。」會答曰:「矯然懿實,何必同群?」帝復問會:「臯繇何如人?」答曰:「上不及堯、舜,下不逮周、孔,亦一時之懿士。」
진나라 문제가 두 진씨와 함께 수레를 타고 가다가 종회를 지나며 불러 함께 타자 하고는, 곧 수레를 몰아 버리고 갔다.
종회가 나올 즈음에는 이미 멀었다.
이윽고 이르매 이로 인해 그를 조롱하여 말하였다. "남과 갈 것을 기약하고 어찌 그리 더디고 더딘가. 경을 바라보매 아득하고 아득하여 이르지 않더구나."
종회가 대답하였다. "굳세고 아름다우며 참되니 어찌 반드시 무리를 같이하겠습니까."
임금이 다시 종회에게 물었다. "고요는 어떤 사람인가."
대답하였다. "위로는 요임금과 순임금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주공과 공자에 미치지 못하나, 또한 한때의 아름다운 선비입니다."
협주 1
二陳,騫與泰也。會父名繇,故以「遙遙」戲之。騫父矯,宣帝諱懿,泰父群,祖父寔,故以此酬之。
두 진씨는 진건과 진태다. 종회의 아비 이름이 요(繇)이므로 「요요(遙遙)」로 그를 놀린 것이다. 진건의 아비는 진교(矯)요 선제의 휘가 의(懿)며 진태의 아비는 진군(群)이요 할아버지는 진식이니, 그러므로 이로써 갚은 것이다.
3군자는 두루 하고 견주지 않으며 무리 짓되 패거리 짓지 않는다
鍾毓為黃門郎,有機警,在景王坐燕飲。時陳群子玄伯、武周子元夏同在坐,共嘲毓。景王曰:「臯繇何如人?」對曰:「古之懿士。」顧謂玄伯、元夏曰:「君子周而不比,群而不黨。」
종육이 황문랑이 되어 기틀에 밝고 재빠름이 있었는데, 경왕의 자리에서 잔치하고 마셨다.
그때 진군의 아들 현백과 무주의 아들 원하가 함께 자리에 있어 함께 종육을 조롱하였다.
경왕이 말하였다. "고요는 어떤 사람인가."
대답하였다. "옛날의 아름다운 선비입니다."
돌아보고 현백과 원하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두루 하고 견주지 않으며 무리 짓되 패거리 짓지 않는다."
협주 2
魏志曰:「武周字伯南,沛國竹邑人。仕至光祿大夫。」
『위지』에 이르기를 「무주는 자가 백남이요 패국 죽읍 사람이다. 벼슬이 광록대부에 이르렀다」 하였다.
孔安國注論語曰:「忠信為周,阿黨為比。黨,助也。君子雖眾,不相私助。」
공안국이 『논어』에 주하여 이르기를 「참되고 미쁨이 주(周)가 되고 아첨하여 패거리 됨이 비(比)가 된다. 당(黨)은 도움이다. 군자는 비록 무리가 많아도 서로 사사로이 돕지 않는다」 하였다.
4경들의 뜻도 또한 다시 무너뜨릴 만한 것이오
嵇、阮、山、劉在竹林酣飲,王戎後往。步兵曰:「俗物已復來敗人意!」王笑曰:「卿輩意,亦復可敗邪?」
혜강과 완적과 산도와 유령이 죽림에서 흠뻑 마시는데 왕융이 뒤에 갔다.
보병이 말하였다. "속된 물건이 이미 다시 와서 남의 뜻을 무너뜨리는구나."
왕융이 웃으며 말하였다. "경들의 뜻도 또한 다시 무너뜨릴 만한 것이오."
협주 1
魏氏春秋曰:「時謂王戎未能超俗也。」
『위씨춘추』에 이르기를 「그때 왕융이 아직 속됨을 넘지 못하였다 일렀다」 하였다.
5너에게 한 잔 술을 올려 너로 하여금 만 봄을 살게 하리
晉武帝問孫皓:「聞南人好作爾汝歌,頗能為不?」皓正飲酒,因舉觴勸帝而言曰:「昔與汝為鄰,今與汝為臣。上汝一桮酒,令汝壽萬春。」帝悔之。
진나라 무제가 손호에게 물었다. "남쪽 사람이 「너나 노래」 짓기를 좋아한다 들었는데 자못 지을 수 있는가."
손호가 마침 술을 마시다가 이로 인해 잔을 들어 임금에게 권하며 말하였다. "옛날에는 너와 이웃이 되었더니 이제는 너와 신하가 되었네. 너에게 한 잔 술을 올려 너로 하여금 만 봄을 살게 하리."
임금이 이를 뉘우쳤다.
협주 1
吳錄曰:「皓字元宗,一名彭祖,大皇帝孫也。景帝崩,皓嗣位,為晉所滅,封歸命侯。」
『오록』에 이르기를 「손호는 자가 원종이요 한 이름은 팽조니 대황제의 손자다. 경제가 죽으매 손호가 자리를 이었는데 진나라에 없어진 바 되어 귀명후에 봉해졌다」 하였다.
6흐름을 벤 까닭은 그 귀를 씻고자 함이요
孫子荊年少時欲隱,語王武子「當枕石漱流」,誤曰「漱石枕流」。王曰:「流可枕,石可漱乎?」孫曰:「所以枕流,欲洗其耳;所以漱石,欲礪其齒。」
손자형이 나이 어릴 때 숨고자 하여, 왕무자에게 「마땅히 돌을 베고 흐름에 양치질하겠다」 하려다가 잘못 「돌에 양치질하고 흐름을 베겠다」 하였다.
왕무자가 말하였다. "흐름은 벨 수 있고 돌은 양치질할 수 있는가."
손자형이 말하였다. "흐름을 베는 까닭은 그 귀를 씻고자 함이요, 돌에 양치질하는 까닭은 그 이를 갈고자 함이오."
협주 1
逸士傳曰:「許由為堯所讓,其友巢父責之。由乃過清泠水洗耳拭目,曰:『向聞貪言,負吾之友。』」
『일사전』에 이르기를 「허유가 요임금의 사양하는 바가 되매 그 벗 소보가 그를 꾸짖었다. 허유가 이에 맑고 찬 물을 지나며 귀를 씻고 눈을 닦으며 이르기를 『아까 탐하는 말을 들어 내 벗에게 저버렸다』 하였다」 하였다.
7머리가 진자우를 꾸짖다
頭責秦子羽云:「子曾不如太原溫顒、潁川荀㝢、范陽張華、士卿劉許、義陽鄒湛、河南鄭詡。此數子者,或謇喫無宮商,或尪陋希言語,或淹伊多姿態,或讙譁少智諝,或口如含膠飴,或頭如巾齏杵。而猶以文采可觀,意思詳序,攀龍附鳳,並登天府。」
머리가 진자우를 꾸짖어 말하였다. "그대는 일찍이 태원의 온옹과 영천의 순우와 범양의 장화와 사경 유허와 의양의 추담과 하남의 정후만 못하다. 이 몇 사람은 더러 말을 더듬어 궁과 상이 없고, 더러 여위고 누추하여 말이 드물고, 더러 늘어져 자태가 많고, 더러 시끄러워 슬기로운 꾀가 적고, 더러 입이 아교 엿을 머금은 듯하고, 더러 머리가 두건에 싼 나물 공이 같다. 그런데도 오히려 글의 무늬가 볼 만하고 뜻과 생각이 자세하고 차례 있어, 용을 붙들고 봉에 붙어 아울러 하늘의 곳간에 올랐다."
협주 6
子羽未詳。
자우는 자세하지 않다.
溫顒已見。荀氏譜曰:「宇字景伯,祖式,太尉。父保,御史中丞。」世語曰:「宇少與裴楷、王戎、杜默俱有名,仕晉,至尚書。」
온옹은 이미 보인다. 『순씨보』에 이르기를 「순우는 자가 경백이요 할아버지 순식은 태위요 아버지 순보는 어사중승이다」 하였다. 『세어』에 이르기를 「순우가 젊어서 배해와 왕융과 두묵과 함께 이름이 있었고 진나라에 벼슬하여 상서에 이르렀다」 하였다.
晉百官名曰:「劉許字文生,涿鹿鄀人。父放,魏驃騎將軍。許,惠帝時為宗正卿。」按許與張華同范陽人,故曰士卿,互其辭也。宗正卿,或曰士卿。
『진백관명』에 이르기를 「유허는 자가 문생이요 탁록 약 사람이다. 아버지 유방은 위나라 표기장군이다. 유허는 혜제 때 종정경이 되었다」 하였다. 살피건대 유허는 장화와 같은 범양 사람이므로 사경이라 하였으니 그 말을 서로 엇바꾼 것이다. 종정경을 더러 사경이라 한다.
晉諸公贊曰:「湛字潤甫,新野人。以文義達,仕至侍中。詡字思淵,滎陽開封人,為衛尉卿。祖泰,揚州刺史。父褒,司空。」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추담은 자가 윤보요 신야 사람이다. 글의 뜻으로 이르러 벼슬이 시중에 이르렀다. 정후는 자가 사연이요 형양 개봉 사람이니 위위경이 되었다. 할아버지 정태는 양주자사요 아버지 정포는 사공이다」 하였다.
文士傳曰:「華為人少威儀,多姿態。」推意此語,則此六句,還以目上六人,而口如含膠飴,則指鄒湛。湛辯麗英博,而有此稱。未詳。
『문사전』에 이르기를 「장화는 사람됨이 위엄 있는 몸가짐이 적고 자태가 많았다」 하였다. 이 말의 뜻을 미루면 곧 이 여섯 글귀는 도로 위의 여섯 사람을 두고 말한 것이요, 입이 아교 엿을 머금은 듯하다 함은 곧 추담을 가리킨다. 추담이 따짐이 곱고 꽃답고 넓은데 이런 일컬음이 있으니 자세하지 않다.
張敏《集》載頭責子羽文曰:「余友有秦生者,雖有姊夫之尊,少而狎焉。同時好暱,有太原溫長仁顒、潁川荀景伯宇、范陽張茂先華、士卿劉文生許、南陽鄒潤甫湛、河南鄭思淵詡。數年之中,繼踵登朝,而此賢身處陋巷,屢沽而無善價,亢志自若,終不衰墮,為之慨然。又怪諸賢既已在位,曾無伐木嚶鳴之聲,甚違王貢彈冠之義,故因秦生容貌之盛,為頭責之文以戲之,并以嘲六子焉。雖似諧謔,實有興也。其文曰:『維泰始元年,頭責子羽曰:「吾託子為頭,萬有餘日矣。大塊稟我以精,造我以形。我為子植髮膚、置鼻耳、安眉須、插牙齒、眸子摛光,雙顴隆起。每至出入之間,遨遊市里,行者辟易,坐者竦跽。或稱君侯,或言將軍,捧手傾側,佇立崎嶇。如此者,故我形之足偉也。子冠冕不戴,金銀不佩,釵以當笄,帢以代幗,旨味弗嘗,食粟茹菜,隈摧園閒,糞壤汗黑,歲莫年過,曾不自悔。子厭我於形容,我賤子乎意態。若此者乎,必子行己之累也。子遇我如讎,我視子如仇,居常不樂,兩者俱憂,何其鄙哉!子欲為人寶也,則當如皋陶、后稷、巫咸、伊陟,保乂王家,永見封殖。子欲為名高也,則當如許由、子威、卞隨、務光,洗耳逃祿,千歲流芳。子欲為遊說也,則當如陳軫、蒯通、陸生、鄧公,轉禍為福,令辭從容。子欲為進趣也,則當如賈生之求試,終軍之請使。砥礪鋒穎,以榦王事。子欲為恬淡也,則當如老聃之守一,莊周之自逸。廓然離欲,志陵雲日。子欲為隱遁也,則當如榮期之帶索,漁父之瀺灂,棲遲神丘,垂餌巨壑。此一介之所以顯身成名者也。今子上不希道德,中不效儒墨,塊然窮賤,守此愚惑。察子之情,觀子之志,退不為於處士,進無望於三事,而徒翫日勞形,習為常人之所喜,不亦過乎!」於是子羽愀然深念而對曰:「凡所教敕,謹聞命矣。以受性拘係,不聞禮義,設以天幸,為子所寄。今欲使吾為忠也,即當如伍胥屈平。欲使吾為信也,則當殺身以成名。欲使吾為介節邪,則當赴水火以全貞。此四者,人之所忌,故吾不敢造意。」頭曰:「子所謂天刑地網,剛德之尤,不登山抱木,則褰裳赴流。吾欲告爾以養性,誨爾以優游,而以蟣蝨同情,不聽我謀,悲哉!俱寓人體,而獨為子頭!且擬人其倫,喻子儕偶。子不如太原溫顒、潁川荀宇、范陽張華、士卿劉許、南陽鄒湛、河南鄭詡。此數子者,或謇喫無宮商,或尪陋希言語,或淹伊多姿態,或讙譁少智諝,或口如含膠飴,或頭如巾兗杵,而猶文采可觀,意思詳序,攀龍附鳳,並登天府。夫舐痔得車,沈淵得珠,豈若夫子徒令脣舌腐爛,手足沾濡哉?居有事之世,而恥為權圖,譬猶鑿池抱甕,難以求富。嗟乎子羽!何異檻中之熊,深阱之虎,石間饑蟹,竇中之鼠。事力雖勤,見功甚苦。宜其拳局翦蹙,至老無所希也。支離其形,猶能不困,非命也夫!豈與夫子同處也。」』」
장민의 『집』에 실린 「두책자우문」에 이르기를 「내 벗에 진생이라는 이가 있어, 비록 자형의 높음이 있으나 어려서부터 그와 허물없이 지냈다. 같은 때에 좋아하고 가까이한 이로 태원의 온장인 온옹과 영천의 순경백 순우와 범양의 장무선 장화와 사경 유문생 유허와 남양의 추윤보 추담과 하남의 정사연 정후가 있었다. 몇 해 가운데 발꿈치를 이어 조정에 올랐는데, 이 어진 이는 몸이 좁은 마을에 처하여 자주 팔려 하여도 좋은 값이 없었다. 그러나 뜻을 높이 하여 태연하고 마침내 쇠하여 무너지지 않으니 그를 위해 감개하였다. 또 여러 어진 이가 이미 자리에 있으면서 일찍이 나무 베고 새 우는 소리가 없어 왕길과 공우가 관을 털던 옳음에 몹시 어긋남을 괴이하게 여겼으므로, 진생의 모습이 성함으로 인해 머리가 꾸짖는 글을 지어 그를 놀리고 아울러 이로써 여섯 사람을 조롱하였다. 비록 우스개 같으나 실은 일으킴이 있다. 그 글에 이르기를 『태시 원년에 머리가 자우를 꾸짖어 이르되, 내가 그대에게 붙어 머리 된 지 만 날 남짓이다. 큰 덩어리가 나에게 정기를 주고 나를 꼴 지어 만들었다. 내가 그대를 위해 머리털과 살갗을 심고 코와 귀를 두고 눈썹과 수염을 앉히고 이를 꽂았으니, 눈동자가 빛을 펴고 두 광대뼈가 높이 솟았다. 드나들 즈음에 이를 때마다 저자와 마을에 노닐면 가는 이가 비켜서고 앉은 이가 두려워 꿇었다. 더러 군후라 일컫고 더러 장군이라 말하며 손을 받들고 몸을 기울이고 서서 험한 데 머물렀다. 이와 같은 것은 짐짓 내 꼴이 훌륭하기에 넉넉함이다. 그런데 그대는 관과 면류관을 쓰지 않고 금과 은을 차지 않으며, 비녀로 비녀를 삼고 두건으로 머리싸개를 대신하며, 맛난 것을 맛보지 않고 조와 나물을 먹으며, 동산 사이에 무너져 기대고 거름 흙에 더러워 검은데, 해가 저물고 나이가 지나도 일찍이 스스로 뉘우치지 않는다. 그대는 나를 모습에서 싫어하고 나는 그대를 뜻과 몸짓에서 천히 여긴다. 이와 같은 것은 반드시 그대가 제 몸을 행함의 허물이다. 그대가 나를 원수처럼 만나고 내가 그대를 원수처럼 보아 늘 즐겁지 않고 둘이 다 근심하니 어찌 그리 더러운가. 그대가 사람의 보배 되고자 하면 곧 마땅히 고요와 후직과 무함과 이척처럼 왕가를 지키고 다스려 길이 봉해지고 심어짐을 볼 것이다. 그대가 이름을 높이고자 하면 곧 마땅히 허유와 자위와 변수와 무광처럼 귀를 씻고 녹을 달아나 천 해에 꽃다움을 흘릴 것이다. 그대가 달래어 말하고자 하면 곧 마땅히 진진과 괴통과 육생과 등공처럼 화를 돌려 복을 삼고 말을 조용하게 할 것이다. 그대가 나아가 달리고자 하면 곧 마땅히 가생이 시험을 구하고 종군이 사신 되기를 청함처럼, 칼끝을 갈아 왕의 일을 다스릴 것이다. 그대가 편안하고 담담하고자 하면 곧 마땅히 노담이 하나를 지키고 장주가 스스로 편안함처럼, 트여 하고자 함을 떠나 뜻이 구름과 해를 넘을 것이다. 그대가 숨어 달아나고자 하면 곧 마땅히 영계기가 새끼를 띠고 어부가 물에 잠김처럼, 신령한 언덕에 깃들어 노닐고 큰 골짜기에 미끼를 드리울 것이다. 이것이 한 낱의 사람이 몸을 드러내고 이름을 이루는 까닭이다. 이제 그대는 위로 도와 덕을 바라지 않고 가운데로 선비와 묵자를 본받지 않으며, 덩그러니 궁하고 천하여 이 어리석음과 헷갈림을 지킨다. 그대의 정을 살피고 그대의 뜻을 보건대, 물러나서는 처사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세 가지 일에 바람이 없으면서, 한갓 날을 놀리고 꼴을 수고롭게 하여 여느 사람이 기뻐하는 바를 익히니 또한 지나치지 않은가』 하였다. 이에 자우가 근심스레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되 『무릇 가르쳐 경계하신 바를 삼가 명으로 들었다. 받은 성품이 얽매여 예와 옳음을 듣지 못하였는데, 하늘의 다행으로 그대가 부치는 바가 되었다. 이제 나로 하여금 참되게 하려 하면 곧 마땅히 오자서와 굴평 같아야 하고, 나로 하여금 미쁘게 하려 하면 곧 마땅히 몸을 죽여 이름을 이루어야 하고, 나로 하여금 굳센 절개를 하게 하려 하면 곧 마땅히 물과 불에 뛰어들어 곧음을 온전히 하여야 한다. 이 네 가지는 사람이 꺼리는 바이므로 내가 감히 뜻을 내지 못한다』 하였다. 머리가 이르되 『그대가 이른바 하늘의 벌과 땅의 그물이라는 것은 굳센 덕의 더욱함이니, 산에 올라 나무를 안지 않으면 곧 옷자락을 걷고 흐름에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성품 기름을 알리고 그대에게 넉넉히 노닒을 가르치려 하는데, 그대는 서캐와 이와 정을 같이하여 내 꾀를 듣지 않으니 슬프구나. 함께 사람의 몸에 붙었는데 홀로 그대의 머리가 되었구나. 또 사람을 그 무리에 견주어 그대를 짝에 견주어 보자. 그대는 태원의 온옹과 영천의 순우와 범양의 장화와 사경 유허와 남양의 추담과 하남의 정후만 못하다. 이 몇 사람은 더러 말을 더듬어 궁과 상이 없고, 더러 여위고 누추하여 말이 드물고, 더러 늘어져 자태가 많고, 더러 시끄러워 슬기로운 꾀가 적고, 더러 입이 아교 엿을 머금은 듯하고, 더러 머리가 두건에 싼 나물 공이 같다. 그런데도 오히려 글의 무늬가 볼 만하고 뜻과 생각이 자세하고 차례 있어, 용을 붙들고 봉에 붙어 아울러 하늘의 곳간에 올랐다. 무릇 치질을 핥아 수레를 얻고 못에 잠겨 구슬을 얻으니, 어찌 부자처럼 한갓 입술과 혀를 썩고 문드러지게 하고 손과 발을 적시게 하겠는가. 일이 있는 세상에 살면서 권세를 꾀함을 부끄러워하니, 견주건대 못을 파며 항아리를 안는 것과 같아 부유함을 구하기 어렵다. 아, 자우여. 우리 안의 곰과 깊은 함정의 범과 돌 사이 주린 게와 구멍 속 쥐와 무엇이 다른가. 일과 힘이 비록 부지런하나 공을 봄이 몹시 괴롭다. 마땅히 그 웅크리고 오그라져 늙도록 바랄 바가 없으리라. 그 꼴을 흩뜨리고도 오히려 괴롭지 않을 수 있었으니 명이 아니겠는가. 어찌 부자와 함께 처하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8만일 새댁이 참군에게 짝지어졌다면 아들 낳음이 짐짓 이만할 뿐이 아니겠지요
王渾與婦鍾氏共坐,見武子從庭過,渾欣然謂婦曰:「生兒如此,足慰人意。」婦笑曰:「若使新婦得配參軍,生兒故可不啻如此!」
왕혼이 아내 종씨와 함께 앉았는데 무자가 뜰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왕혼이 흔연히 아내에게 말하였다. "아들 낳음이 이러하니 사람의 뜻을 위로하기에 넉넉하오."
아내가 웃으며 말하였다. "만일 새댁이 참군에게 짝지어졌다면 아들 낳음이 짐짓 이만할 뿐이 아니겠지요."
협주 1
王氏家譜曰:「倫字太沖,司空穆侯中子,司徒渾弟也。醇粹簡遠,貴老、莊之學,用心淡如也。為老子例略、周紀。年二十餘,舉孝廉,不行。歷大將軍參軍。年二十五卒,大將軍為之流涕。」
『왕씨가보』에 이르기를 「왕륜은 자가 태충이요 사공 목후의 가운데 아들이며 사도 왕혼의 아우다. 순수하고 간결하고 멀어 노자와 장자의 배움을 귀히 여기고 마음 씀이 담담하였다. 「노자예략」과 「주기」를 지었다. 나이 스물 남짓에 효렴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대장군참군을 지냈다. 나이 스물다섯에 죽으매 대장군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하였다.
9구름 사이의 육사룡과 해 아래의 순명학
荀鳴鶴、陸士龍二人未相識,俱會張茂先坐。張令共語。以其並有大才,可勿作常語。陸舉手曰:「雲間陸士龍。」荀答曰:「日下荀鳴鶴。」陸曰:「既開青雲覩白雉,何不張爾弓,布爾矢?」荀答曰:「本謂雲龍騤騤,定是山鹿野麋。獸弱弩彊,是以發遲。」張乃撫掌大笑。
순명학과 육사룡 두 사람이 아직 서로 알지 못하였는데 함께 장무선의 자리에 모였다.
장씨가 함께 말하게 하며, 그 아울러 큰 재주가 있으니 여느 말을 짓지 말라 하였다.
육씨가 손을 들고 말하였다. "구름 사이의 육사룡이오."
순씨가 대답하였다. "해 아래의 순명학이오."
육씨가 말하였다. "이미 푸른 구름을 열어 흰 꿩을 보았는데 어찌 그대의 활을 당기고 그대의 화살을 펴지 않소."
순씨가 대답하였다. "본디 구름 속 용이 씩씩하다 하였더니 참으로 산 사슴과 들 고라니로구려. 짐승이 약하고 쇠뇌가 굳세므로 이 때문에 쏘기를 더디 하오."
장씨가 이에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협주 1
晉百官名曰:「荀隱字鳴鶴,潁川人。」荀氏家傳曰:「隱祖昕,樂安太守。父岳,中書郎。隱與陸雲在張華坐語,互相反覆,陸連受屈,隱辭皆美麗,張公稱善云。世有此書,尋之未得。歷太子舍人,延尉平,蚤卒。」
『진백관명』에 이르기를 「순은은 자가 명학이요 영천 사람이다」 하였다. 『순씨가전』에 이르기를 「순은의 할아버지 순흔은 낙안태수요 아버지 순악은 중서랑이다. 순은이 육운과 장화의 자리에서 말하며 서로 되풀이하매 육운이 잇달아 굽힘을 받았고, 순은의 말이 다 아름답고 고와 장공이 좋다 일컬었다 한다. 세상에 이 글이 있다는데 찾아도 얻지 못하였다. 태자사인과 정위평을 지냈고 일찍 죽었다」 하였다.
10저는 비록 오나라 사람이나 거의 촌뜨기 귀신이 될 뻔하였습니다
陸太尉詣王丞相,王公食以酪。陸還遂病。明日與王牋云:「昨食酪小過,通夜委頓。民雖吳人,幾為傖鬼。」
육태위가 왕승상을 찾아가니 왕공이 젖으로 먹였다.
육씨가 돌아와 마침내 병들었다.
이튿날 왕씨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어제 젖을 먹은 것이 조금 지나쳐 밤새 무너져 지쳤습니다. 저는 비록 오나라 사람이나 거의 촌뜨기 귀신이 될 뻔하였습니다."
협주 1
陸玩已見。
육완은 이미 보인다.
11이 일을 어찌 경에게 공이 있게 할 수 있겠는가
元帝皇子生,普賜群臣。殷洪喬謝曰:「皇子誕育,普天同慶。臣無勳焉,而猥頒厚賚。」中宗笑曰:「此事豈可使卿有勳邪?」
원제의 황자가 나매 두루 뭇 신하에게 내렸다.
은홍교가 사례하여 말하였다. "황자께서 나서 자라시니 온 하늘이 함께 경사롭습니다. 신은 공이 없는데도 외람되이 두터운 내림을 받았습니다."
중종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 일을 어찌 경에게 공이 있게 할 수 있겠는가."
협주 1
殷羡已見。
은선은 이미 보인다.
12나귀와 말이라 하지 말이라 하지 않으니 나귀가 어찌 말보다 나으랴
諸葛令、王丞相共爭姓族先後,王曰:「何不言葛、王,而云王、葛?」令曰:「譬言驢馬,不言馬驢,驢寧勝馬邪?」
제갈영과 왕승상이 함께 성과 겨레의 앞뒤를 다투었다.
왕씨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갈왕(葛王)이라 하지 않고 왕갈(王葛)이라 하는가."
제갈영이 말하였다. "나귀와 말(驢馬)이라 하지 말과 나귀(馬驢)라 하지 않는 것에 견줄 것이니, 나귀가 어찌 말보다 나으랴."
협주 1
諸葛恢。
제갈회다.
13다만 오나라 말 하시는 것만 들었을 뿐이오
劉真長始見王丞相,時盛暑之月,丞相以腹熨彈棊局,曰:「何乃渹?」劉既出,人問:「見王公云何?」劉曰:「未見他異,唯聞作吳語耳!」
유진장이 처음 왕승상을 뵈었는데, 그때가 한더위의 달이라 승상이 배로 탄기판을 다리며 말하였다. "어찌 이리 서늘한가."
유씨가 이윽고 나오매 사람들이 물었다. "왕공을 뵈니 무어라 하시던가."
유씨가 말하였다. "다른 남다름은 보지 못하고 오직 오나라 말 하시는 것만 들었을 뿐이오."
협주 2
吳人以冷為渹。
오나라 사람이 참을 갱(渹)이라 한다.
語林曰:「真長云:『丞相何奇?止能作吳語及細唾也。』」
『어림』에 이르기를 「진장이 이르기를 『승상이 무엇이 기이한가. 다만 오나라 말과 잔 침 뱉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였다」 하였다.
14이 사발이 맑고 맑아 참으로 맑게 사무치므로 보배가 될 뿐입니다
王公與朝士共飲酒,舉瑠璃盌謂伯仁曰:「此盌腹殊空,謂之寶器,何邪?」答曰:「此盌英英,誠為清徹,所以為寶耳!」
왕공이 조정의 선비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유리 사발을 들고 백인에게 말하였다. "이 사발은 배가 자못 비었는데 이를 보배 그릇이라 하니 어찌 된 일인가."
대답하였다. "이 사발이 맑고 맑아 참으로 맑게 사무치므로 보배가 될 뿐입니다."
협주 1
以戲周之無能。
주씨의 능함 없음을 놀린 것이다.
15가지가 푸른 하늘을 스쳐도 높다 여기지 않소
謝幼輿謂周侯曰:「卿類社樹,遠望之,峨峨拂青天;就而視之,其根則群狐所託,下聚溷而已!」答曰:「枝條拂青天,不以為高;群狐亂其下,不以為濁;聚溷之穢,卿之所保,何足自稱?」
사유여가 주후에게 말하였다. "경은 사당 나무 같아 멀리서 바라보면 높고 높아 푸른 하늘을 스치는데, 나아가 보면 그 뿌리는 곧 여우 떼가 붙어 사는 데요 아래는 뒷간이 모였을 뿐이오."
대답하였다. "가지가 푸른 하늘을 스쳐도 높다 여기지 않고, 여우 떼가 그 아래 어지러워도 흐리다 여기지 않소. 뒷간이 모인 더러움은 경이 지키는 바니 어찌 스스로 일컫기에 넉넉하오."
협주 1
謂顗好媟瀆故。
주의가 함부로 하고 더럽히기를 좋아하였음을 이른 까닭이다.
16주고받음에 오이덩굴 같은 사이가 있는 듯한데
王長豫幼便和令,丞相愛恣甚篤。每共圍棊,丞相欲舉行,長豫按指不聽。丞相笑曰:「詎得爾?相與似有瓜葛。」
왕장예가 어려서부터 곧 화하고 좋으매 승상이 아끼고 멋대로 하게 함이 몹시 도타웠다.
함께 바둑을 둘 때마다 승상이 수를 무르려 하면 장예가 손가락을 눌러 들어 주지 않았다.
승상이 웃으며 말하였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 주고받음에 오이덩굴 같은 사이가 있는 듯한데."
협주 1
蔡邕曰:「瓜葛,疏親也。」
채옹이 이르기를 「과갈(瓜葛)은 먼 겨레다」 하였다.
17뿔 굽은 암소가 서리고 도는 좋음이 있느니만 못하오
明帝問周伯仁:「真長何如人?」答曰:「故是千斤犗特。」王公笑其言。伯仁曰:「不如捲角牸,有盤辟之好。」
명제가 주백인에게 물었다. "진장은 어떤 사람인가."
대답하였다. "짐짓 천 근 나가는 불깐 황소입니다."
왕공이 그 말을 웃었다.
백인이 말하였다. "뿔 굽은 암소가 서리고 도는 좋음이 있느니만 못하오."
협주 1
以戲王也。
이로써 왕씨를 놀린 것이다.
18이 가운데는 비어 물건이 없으나 경들 몇백 사람은 담을 수 있소
王丞相枕周伯仁厀,指其腹曰:「卿此中何所有?」答曰:「此中空洞無物,然容卿輩數百人。」
왕승상이 주백인의 무릎을 베고 그 배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경의 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대답하였다. "이 가운데는 비어 물건이 없으나 경들 몇백 사람은 담을 수 있소."
19경은 귀신의 동호라 이를 만하오
干寶向劉真長敘其《搜神記》,劉曰:「卿可謂鬼之董狐。」
간보가 유진장에게 그 『수신기』를 펴 말하니, 유씨가 말하였다. "경은 귀신의 동호라 이를 만하오."
협주 3
中興書曰:「寶字令升,新蔡人。祖正,吳奮武將軍。父瑩,丹陽丞。寶少以博學才器著稱,歷散騎常侍。」
『중흥서』에 이르기를 「간보는 자가 영승이요 신채 사람이다. 할아버지 간정은 오나라 분무장군이요 아버지 간영은 단양승이다. 간보가 젊어서 널리 배우고 재주와 그릇으로 일컬음이 드러났고 산기상시를 지냈다」 하였다.
孔氏志怪曰:「寶父有嬖人,寶母至妒,葬寶父時,因推著藏中。經十年而母喪,開墓,其婢伏棺上,就視猶煖,漸有氣息。輿還家,終日而蘇。說寶父常致飲食,與之接寢,恩情如生。家中吉凶,輒語之,校之悉驗。平復數年後方卒。寶因作搜神記,中云『有所感起』是也。」
『공씨지괴』에 이르기를 「간보의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이가 있었는데 간보의 어미가 지극히 시새워, 간보의 아버지를 장사 지낼 때 이로 인해 밀어 무덤 속에 넣었다. 열 해가 지나 어미가 죽으매 무덤을 여니 그 계집종이 널 위에 엎드려 있었는데, 나아가 보니 오히려 따뜻하고 차츰 숨기가 있었다. 메고 집에 돌아오니 온종일 만에 되살아났다. 간보의 아버지가 늘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보내고 더불어 잠자리를 하니 은혜와 정이 살았을 때 같았다 말하였다. 집안의 길함과 흉함을 문득 그에게 말하였는데 견주어 보니 다 맞았다. 되살아난 지 몇 해 뒤에야 죽었다. 간보가 이로 인해 「수신기」를 지었으니, 가운데 『느껴 일어난 바가 있다』 함이 이것이다」 하였다.
春秋傳曰:「趙穿攻晉靈公於桃園,趙宣子未出境而復。太史書:『趙盾弒其君。』宣子曰:『不然。』對曰:『子為正卿,亡不越境,反不討賊,非子而誰?』孔子曰:『董狐,古之良史也,書法不隱。趙盾,古之賢大夫也,為法受惡。』」
『춘추전』에 이르기를 「조천이 도원에서 진나라 영공을 치니 조선자가 아직 지경을 나가지 않고 돌아왔다. 태사가 적기를 『조돈이 그 임금을 죽였다』 하니, 선자가 『그렇지 않다』 하였다. 대답하기를 『그대가 정경이 되어 달아나되 지경을 넘지 않고 돌아와서 도적을 치지 않았으니 그대가 아니면 누구인가』 하였다. 공자께서 『동호는 옛날의 좋은 사관이니 적는 법에 숨김이 없었다. 조돈은 옛날의 어진 대부니 법을 위해 나쁨을 받았다』 하셨다」 하였다.
20경은 이에 다시 나들이옷이 있소
許文思往顧和許,顧先在帳中眠。許至,便徑就床角枕共語。既而喚顧共行,顧乃命左右取枕上新衣,易己體上所著。許笑曰:「卿乃復有行來衣乎?」
허문사가 고화의 처소에 갔는데 고화가 먼저 휘장 안에서 자고 있었다.
허씨가 이르러 곧장 평상에 나아가 모난 베개를 베고 함께 말하였다.
이윽고 고화를 불러 함께 가자 하니, 고화가 이에 곁의 사람에게 베개 위의 새 옷을 가져오게 하여 제 몸에 입은 것과 바꾸었다.
허씨가 웃으며 말하였다. "경은 이에 다시 나들이옷이 있소."
협주 1
許琛已見。
허침은 이미 보인다.
21산이 높지 않으면 신령하지 않고 못이 깊지 않으면 맑지 않소
康僧淵目深而鼻高,王丞相每調之。僧淵曰:「鼻者面之山,目者面之淵。山不高則不靈,淵不深則不清。」
강승연이 눈이 깊고 코가 높으매 왕승상이 늘 그를 놀렸다.
승연이 말하였다. "코는 낯의 산이요 눈은 낯의 못입니다. 산이 높지 않으면 신령하지 않고 못이 깊지 않으면 맑지 않습니다."
협주 1
管輅別傳曰:「鼻者天中之山。」相書曰:「鼻之所在為天中,鼻有山象,故曰山。」
『관로별전』에 이르기를 「코는 하늘 가운데의 산이다」 하였다. 『상서』에 이르기를 「코가 있는 데가 하늘 가운데가 되니, 코에 산의 모습이 있으므로 산이라 한다」 하였다.
22나는 몇천 집 고을을 꾀하여도 오히려 얻지 못하는데 경은 이에 부처 되기를 꾀하는가
何次道往瓦官寺禮拜甚勤。阮思曠語之曰:「卿志大宇宙,勇邁終古。」何曰:「卿今日何故忽見推?」阮曰:「我圖數千戶郡,尚不能得;卿迺圖作佛,不亦大乎!」
하차도가 와관사에 가서 절하기를 몹시 부지런히 하였다.
완사광이 그에게 말하였다. "경은 뜻이 우주보다 크고 날램이 오랜 옛날을 넘소."
하씨가 말하였다. "경이 오늘 어찌하여 홀연히 밀어 주시오."
완씨가 말하였다. "나는 몇천 집 고을을 꾀하여도 오히려 얻지 못하는데 경은 이에 부처 되기를 꾀하니 또한 크지 않소."
협주 4
充崇釋氏,甚加敬也。
하충이 석씨를 높여 몹시 공경을 더한 것이다.
尹子曰:「天地四方曰宇,往古來今曰宙。」
『윤자』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과 네 방위를 우(宇)라 하고 지나간 옛날과 오는 이제를 주(宙)라 한다」 하였다.
終古,往古也。楚辭曰:「吾不能忍此終古也。」
종고(終古)는 지나간 옛날이다. 「초사」에 이르기를 「내가 이 오랜 옛날을 참을 수 없다」 하였다.
思曠,裕也。
사광은 완유다.
23얻은 바가 비록 무너진 물건이나 오히려 다스려 쓰고자 하오
庾征西大舉征胡,既成行,止鎮襄陽。殷豫章與書,送一折角如意以調之。庾答書曰:「得所致,雖是敗物,猶欲理而用之。」
유정서가 크게 오랑캐 치기를 일으켜 이미 길을 나섰다가 양양을 지키는 데 그쳤다.
은예장이 글을 보내며 모서리 꺾인 여의 하나를 보내 그를 놀렸다.
유씨가 글에 답하였다. "보내 주신 바를 얻으매 비록 무너진 물건이나 오히려 다스려 쓰고자 하오."
협주 2
晉陽秋曰:「翼率眾入沔,將謀伐狄。既至襄陽,狄尚彊,未可決戰。會康帝崩,兄冰薨,留長子方之守襄陽,自馳還夏。」
『진양추』에 이르기를 「유익이 무리를 이끌고 면수에 들어 장차 오랑캐 칠 것을 꾀하였다. 이미 양양에 이르매 오랑캐가 오히려 굳세어 결단하여 싸울 수 없었다. 마침 강제가 죽고 형 유빙이 죽으매, 맏아들 유방지를 남겨 양양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달려 하구로 돌아왔다」 하였다.
豫章,殷羡。
예장은 은선이다.
24내가 만일 이를 하지 않으면 경들이 또한 어찌 앉아 이야기할 수 있겠소
桓大司馬乘雪欲獵,先過王、劉諸人許。真長見其裝束單急,問:「老賊欲持此何作?」桓曰:「我若不為此,卿輩亦那得坐談?」
환대사마가 눈을 타고 사냥하려 하여 먼저 왕씨와 유씨 여러 사람의 처소를 지났다.
진장이 그 차림새가 홑겹이고 급함을 보고 물었다. "늙은 도적이 이것을 지니고 무엇을 하려 하오."
환씨가 말하였다. "내가 만일 이를 하지 않으면 경들이 또한 어찌 앉아 이야기할 수 있겠소."
협주 1
語林曰:「宣武征還,劉尹數十里迎之,桓都不語,直云:『垂長衣,談清言,竟是誰功?』劉答曰:『晉德靈長,功豈在爾?』」二人說小異,故詳載之。
『어림』에 이르기를 「선무가 치고 돌아오매 유윤이 몇십 리를 나가 그를 맞았는데, 환씨가 도무지 말하지 않다가 곧바로 이르기를 『긴 옷을 드리우고 맑은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침내 누구의 공인가』 하였다. 유씨가 답하기를 『진나라의 덕이 신령하고 길거늘 공이 어찌 그대에게 있겠소』 하였다」 하였다. 두 사람의 말이 조금 다르므로 자세히 실었다.
25옛사람이 「펴되 짓지 않는다」 하였으니 어찌 반드시 누에방 안에 있어야 하오
褚季野問孫盛:「卿國史何當成?」孫云:「久應竟,在公無暇,故至今日。」褚曰:「古人『述而不作』,何必在蠶室中?」
저계야가 손성에게 물었다. "경의 나라 역사는 언제 이루어지오."
손씨가 말하였다. "오래전에 마땅히 마쳤어야 하나 공적인 일에 겨를이 없어 짐짓 오늘에 이르렀소."
저씨가 말하였다. "옛사람이 『펴되 짓지 않는다』 하였으니 어찌 반드시 누에방 안에 있어야 하오."
협주 1
漢書曰:「李陵降匈奴,武帝甚怒。太史令司馬遷盛明陵之忠,帝以遷為陵遊說,下遷腐刑。乃述唐、虞以來,至于獲麟,為史記。遷與任安書曰:『李陵既生降,僕又茸之以蠶室。』」蘇林注曰:「腐刑者,作密室蓄火,時如蠶室。舊時平陰有蠶室獄。」
『한서』에 이르기를 「이릉이 흉노에게 항복하매 무제가 몹시 성내었다. 태사령 사마천이 이릉의 참됨을 힘써 밝히니, 임금이 사마천이 이릉을 위해 달래어 말한다 하여 사마천을 썩히는 형벌에 내렸다. 이에 요임금과 순임금 이래로 기린을 잡음에 이르기까지를 펴 「사기」를 지었다. 사마천이 임안에게 준 글에 이르기를 『이릉이 이미 살아서 항복하매 저 또한 누에방으로 그를 밀었습니다』 하였다」 하였다. 소림의 주에 이르기를 「썩히는 형벌은 은밀한 방을 지어 불을 쌓아 때가 누에방 같게 하는 것이다. 옛날에 평음에 누에방 옥이 있었다」 하였다.
26이제 또한 백성이 장차 경을 어찌하겠소
謝公在東山,朝命屢降而不動。後出為桓宣武司馬,將發新亭,朝士咸出瞻送。高靈時為中丞,亦往相祖。先時,多少飲酒,因倚如醉,戲曰:「卿屢違朝旨,高臥東山,諸人每相與言:『安石不肯出,將如蒼生何?』今亦蒼生將如卿何?」謝笑而不答。
사공이 동산에 있으며 조정의 명이 자주 내렸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 나와 환선무의 사마가 되어 장차 신정을 떠나려 하매 조정의 선비가 다 나와 우러러 보냈다.
고령이 그때 중승이었는데 또한 가서 서로 노제를 지냈다.
앞서 얼마쯤 술을 마시고 이로 인해 기대어 취한 척하며 놀려 말하였다. "경이 자주 조정의 뜻을 어기고 동산에 높이 누우매, 여러 사람이 서로 함께 말할 때마다 『안석이 나오려 하지 않으니 백성을 장차 어찌하랴』 하였소. 이제 또한 백성이 장차 경을 어찌하겠소."
사공이 웃고 대답하지 않았다.
협주 1
高靈已見。婦人集載桓玄問王凝之妻謝氏曰:「太傅東山二十餘年,遂復不終,其理云何?」謝答曰:「亡叔太傅先正,以無用為心,顯隱為優劣,始末正當動靜之異耳。」
고령은 이미 보인다. 『부인집』에 실리기를, 환현이 왕응지의 아내 사씨에게 묻기를 「태부께서 동산에 스무 남짓 해 계시다가 마침내 다시 마치지 못하셨으니 그 결이 무엇이오」 하니, 사씨가 답하기를 「돌아가신 아저씨 태부께서 앞서 바르게, 쓸모없음을 마음으로 삼고 드러남과 숨음을 낫고 못함으로 삼으셨으니, 처음과 끝은 바로 마땅히 움직임과 고요함의 다름일 뿐입니다」 하였다.
27다만 면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오
初,謝安在東山居,布衣,時兄弟已有富貴者,翕集家門,傾動人物。劉夫人戲謂安曰:「大丈夫不當如此乎?」謝乃捉鼻曰:「但恐不免耳!」
처음에 사안이 동산에 살며 베옷을 입었을 때, 그때 형제 가운데 이미 부유하고 귀한 이가 있어 집안 문에 모여 들끓어 인물을 기울여 움직였다.
유부인이 놀리며 사안에게 말하였다. "대장부는 마땅히 이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안이 이에 코를 잡고 말하였다. "다만 면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오."
28소보와 허유가 산을 사서 숨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支道林因人就深公買印山,深公答曰:「未聞巢、由買山而隱。」
지도림이 남을 통해 심공에게 인산을 사려 하니, 심공이 대답하였다. "소보와 허유가 산을 사서 숨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협주 1
逸士傳曰:「巢父者,堯時隱人。山居,不營世利,年老以樹為巢,而寢其上,故號巢父。」高逸沙門傳曰:「遁得深公之言,慚恧而已。」
『일사전』에 이르기를 「소보라는 이는 요임금 때 숨은 사람이다. 산에 살며 세상의 이로움을 꾀하지 않았고, 나이 늙으매 나무로 둥지를 삼아 그 위에서 자므로 소보라 불렀다」 하였다. 『고일사문전』에 이르기를 「지둔이 심공의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였을 뿐이다」 하였다.
29이보에게는 그대들 같은 손이 없었소
王、劉每不重蔡公。二人嘗詣蔡,語良久,乃問蔡曰:「公自言何如夷甫?」答曰:「身不如夷甫。」王、劉相目而笑曰:「公何處不如?」答曰:「夷甫無君輩客!」
왕씨와 유씨가 늘 채공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일찍이 채씨를 찾아가 말한 지 한참 만에, 이에 채씨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스스로 이보와 견주어 어떠하다 말하시오."
대답하였다. "내 몸이 이보만 못하오."
왕씨와 유씨가 서로 눈짓하고 웃으며 말하였다. "공께서 어디가 못하시오."
대답하였다. "이보에게는 그대들 같은 손이 없었소."
30바로 그대들로 하여금 이 안으로 드나들게 하려는 것이오
張吳興年八歲,虧齒,先達知其不常,故戲之曰:「君口中何為開狗竇?」張應聲答曰:「正使君輩從此中出入!」
장오흥이 나이 여덟에 이가 빠졌다.
먼저 통달한 이가 그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짐짓 그를 놀려 말하였다. "그대 입 안에 어찌하여 개구멍을 열었는가."
장씨가 소리에 응하여 대답하였다. "바로 그대들로 하여금 이 안으로 드나들게 하려는 것이오."
협주 1
玄之已見。
장현지는 이미 보인다.
31나는 책을 볕에 쬔다
郝隆七月七日出日中仰臥。人問其故?答曰:「我曬書。」
학륭이 칠월 이레에 햇볕 가운데 나가 우러러 누웠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나는 책을 볕에 쬔다."
협주 1
征西寮屬名曰:「隆字佐治,汲郡人。仕吳至征西參軍。」
『정서요속명』에 이르기를 「학륭은 자가 좌치요 급군 사람이다. 오나라에 벼슬하여 정서참군에 이르렀다」 하였다.
32들어 있으면 원지가 되고 나오면 소초가 됩니다
謝公始有東山之志,後嚴命屢臻,勢不獲已,始就桓公司馬。于時人有餉桓公藥草,中有「遠志」。公取以問謝:「此藥又名『小草』,何一物而有二稱?」謝未即答。時郝隆在坐,應聲答曰:「此甚易解:處則為遠志,出則為小草。」謝甚有愧色。桓公目謝而笑曰:「郝參軍此過乃不惡,亦極有會。」
사공이 처음에 동산의 뜻이 있었는데, 뒤에 엄한 명이 자주 이르매 형세가 마지못하여 비로소 환공의 사마에 나아갔다.
이때 사람이 환공에게 약초를 보낸 이가 있어 가운데 「원지」가 있었다.
공이 가져다 사공에게 물었다. "이 약은 또 「소초」라 이름 하니 어찌 한 물건에 두 일컬음이 있소."
사공이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때 학륭이 자리에 있다가 소리에 응하여 대답하였다. "이는 몹시 풀기 쉽습니다. 들어 있으면 원지가 되고 나오면 소초가 됩니다."
사공이 몹시 부끄러운 낯빛이 있었다.
환공이 사공을 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학참군의 이 지나침이 이에 나쁘지 않고 또한 지극히 맞음이 있소."
협주 1
本草曰:「遠志一名棘宛,其葉名小草。」
『본초』에 이르기를 「원지는 한 이름이 극완이니 그 잎을 소초라 한다」 하였다.
33여러 유씨의 날개 돋음만 못하다
庾園客詣孫監,值行,見齊莊在外,尚幼,而有神意。庾試之曰:「孫安國何在?」即答曰:「庾稚恭家。」庾大笑曰:「諸孫大盛,有兒如此!」又答曰:「未若諸庾之翼翼。」還,語人曰:「我故勝,得重喚奴父名。」
유원객이 손감을 찾아갔는데 마침 나가고 없어, 제장이 밖에 있는 것을 보니 아직 어리나 신령한 뜻이 있었다.
유씨가 그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손안국이 어디 있느냐."
곧 대답하였다. "유치공의 집에 있습니다."
유씨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여러 손씨가 크게 성하여 이런 아이가 있구나."
또 대답하였다. "여러 유씨의 날개 돋음만 못합니다."
돌아와 남에게 말하였다. "내가 짐짓 나았다. 종놈 아비 이름을 거듭 부를 수 있었으니."
협주 1
孫放別傳曰:「放兄弟並秀異,與庾翼子園客同為學生。園客少有佳稱,因談笑嘲放曰:『諸孫於今為盛。』盛,監君諱也。放即答曰:『未若諸庾之翼翼。』放應機制勝,時人仰焉。司馬景王、陳、鍾諸賢相酬,無以踰也。」
『손방별전』에 이르기를 「손방 형제가 아울러 빼어나고 남달랐는데, 유익의 아들 원객과 함께 학생이 되었다. 원객이 젊어서 아름다운 일컬음이 있었는데, 이야기하고 웃는 김에 손방을 조롱하여 이르기를 『여러 손씨가 이제 성하구나』 하였다. 성(盛)은 감군의 휘다. 손방이 곧 답하기를 『여러 유씨의 익익(翼翼)함만 못하다』 하였다. 손방이 기틀에 응하여 이김을 지으니 그때 사람들이 그를 우러렀다. 사마경왕과 진씨와 종씨 여러 어진 이가 서로 갚은 것도 이를 넘을 것이 없다」 하였다.
34이는 산을 뽑는 힘으로도 도울 바가 아니오
范玄平在簡文坐,談欲屈,引王長史曰:「卿助我。」王曰:「此非拔山力所能助!」
범현평이 간문제의 자리에서 이야기하다가 굽히려 하매 왕장사를 끌어 말하였다. "경이 나를 도우시오."
왕씨가 말하였다. "이는 산을 뽑는 힘으로도 도울 바가 아니오."
협주 2
范汪別傳曰:「汪字玄平,潁陽人。左將軍略之孫。少有不常之志,通敏多識,博涉經籍,致譽於時。歷吏部尚書、徐兗二州刺史。」
『범왕별전』에 이르기를 「범왕은 자가 현평이요 영양 사람이니 좌장군 범략지의 손자다. 젊어서 예사롭지 않은 뜻이 있고 통하고 재빠르며 아는 것이 많고 경전을 널리 건너 그때에 기림을 이루었다. 이부상서와 서주와 연주 두 주의 자사를 지냈다」 하였다.
史記曰:「項羽為漢兵所圍,夜起歌曰:『力拔山兮氣蓋世,時不利兮騅不逝。』」
『사기』에 이르기를 「항우가 한나라 군사에게 둘리매 밤에 일어나 노래하기를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는데, 때가 이롭지 않아 오추마가 가지 않는구나』 하였다」 하였다.
35천 리에 공을 찾아와 비로소 오랑캐 부의 참군이 되었으니 어찌 오랑캐 말을 짓지 않으랴
郝隆為桓公南蠻參軍,三月三日會,作詩。不能者,罰酒三升。隆初以不能受罰,既飲,攬筆便作一句云:「娵隅躍清池。」桓問:「娵隅是何物?」答曰:「蠻名魚為娵隅。」桓公曰:「作詩何以作蠻語?」隆曰:「千里投公,始得蠻府參軍,那得不作蠻語也?」
학륭이 환공의 남만참군이 되었는데 삼월 사흗날 모여 시를 짓게 하고, 짓지 못하는 이는 벌주 서 되를 마시게 하였다.
학륭이 처음에 짓지 못한다 하여 벌을 받고, 이윽고 마시고서 붓을 잡아 곧 한 구를 지었다. "추우가 맑은 못에 뛴다."
환공이 물었다. "추우는 무슨 물건인가."
대답하였다. "오랑캐가 고기를 추우라 이릅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시를 짓는데 어찌 오랑캐 말을 짓는가."
학륭이 말하였다. "천 리에 공을 찾아와 비로소 오랑캐 부의 참군이 되었으니 어찌 오랑캐 말을 짓지 않겠습니까."
36원양은 옛날에 남은 미치광이다
袁羊嘗詣劉恢,恢在內眠未起。袁因作詩調之曰:「角枕粲文茵,錦衾爛長筵。」劉尚晉明帝女,主見詩,不平曰:「袁羊,古之遺狂!」
원양이 일찍이 유회를 찾아갔는데 유회가 안에서 자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원양이 이로 인해 시를 지어 그를 놀렸다. "모난 베개가 무늬 자리에 빛나고 비단 이불이 긴 대자리에 눈부시다."
유회는 진나라 명제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공주가 시를 보고 언짢아하며 말하였다. "원양은 옛날에 남은 미치광이다."
협주 2
唐詩曰:「晉獻公好攻戰,國人多喪,其詩曰:『角枕粲兮,錦衾爛兮;予美亡此,誰與獨旦?』」袁故嘲之。
「당시」에 이르기를 「진나라 헌공이 싸움 걸기를 좋아하여 나라 사람이 죽음이 많으매 그 시에 이르기를 『모난 베개가 빛나고 비단 이불이 눈부시다. 내 아름다운 이가 여기 없으니 누구와 함께 홀로 새우랴』 하였다」 하였다. 원씨가 짐짓 이를 조롱한 것이다.
晉陽秋曰:「恢尚廬陵長公主,名南弟。」
『진양추』에 이르기를 「유회가 여릉장공주에게 장가들었으니 이름은 남제다」 하였다.
37어찌 반드시 쟁그랑거려야 하겠소
殷洪遠答孫興公詩云:「聊復放一曲。」劉真長笑其語拙,問曰:「君欲云那放?」殷曰:「㯓臘亦放,何必其鎗鈴邪?」
은홍원이 손흥공에게 답한 시에 이르기를 「우선 다시 한 가락을 놓는다」 하였다.
유진장이 그 말이 서투름을 웃으며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놓는다 말하려 하였소."
은씨가 말하였다. "툭툭 떨어짐도 또한 놓음이니 어찌 반드시 쟁그랑거려야 하겠소."
협주 1
殷融已見。
은융은 이미 보인다.
38임금이 앞에서 절하고 신하가 뒤에 선 일은 없습니다
桓公既廢海西,立簡文,侍中謝公見桓公拜。桓驚笑曰:「安石,卿何事至爾?」謝曰:「未有君拜於前,臣立於後!」
환공이 이미 해서공을 폐하고 간문제를 세우매, 시중 사공이 환공을 보고 절하였다.
환씨가 놀라 웃으며 말하였다. "안석은 무슨 일로 이에 이르렀소."
사공이 말하였다. "임금이 앞에서 절하고 신하가 뒤에 선 일은 없습니다."
협주 1
晉陽秋曰:「海西公諱奕,字延齡,成帝子也。興寧中即位。少同閹人之疾,使宮人與左右淫通生子。大司馬溫自廣陵還姑孰,過京都,以皇太后令,廢帝為海西公。」
『진양추』에 이르기를 「해서공은 휘가 혁이요 자가 연령이니 성제의 아들이다. 흥녕 연간에 자리에 올랐다. 젊어서 내시와 같은 병이 있어 궁녀로 하여금 곁의 사람과 음란히 통하여 아들을 낳게 하였다. 대사마 환온이 광릉에서 고숙으로 돌아오다가 서울을 지나며, 황태후의 명으로 임금을 폐하여 해서공으로 삼았다」 하였다.
39환공의 덕이 쇠하였는지 다시 뒷사람이 두려운 것인지 알지 못하겠소
郗重熙與謝公書,道:「王敬仁聞一年少懷問鼎。不知桓公德衰,為復後生可畏?」
치중희가 사공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왕경인이 한 젊은이가 솥을 물을 뜻을 품었다 들었소. 환공의 덕이 쇠하였는지 다시 뒷사람이 두려운 것인지 알지 못하겠소."
협주 2
郗曇、王脩已見。史記曰:「楚莊王觀兵於周郊,周定王使王孫滿迎勞楚王,王問鼎大小輕重?對曰:『在德不在鼎。』莊王曰:『子無阻九鼎,楚國折鉤之喙,足以為九鼎也。』」
치담과 왕수는 이미 보인다. 『사기』에 이르기를 「초나라 장왕이 주나라 성 밖에서 군사를 사열하매, 주나라 정왕이 왕손만을 보내 초나라 왕을 맞아 위로하게 하였다. 왕이 솥의 크고 작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덕에 있지 솥에 있지 않습니다』 하였다. 장왕이 『그대는 아홉 솥으로 막지 마라. 초나라의 부러진 갈고리 부리로도 아홉 솥을 만들기에 넉넉하다』 하였다」 하였다.
春秋傳曰:「齊桓公伐楚,責苞茅之不貢。」論語曰:「後生可畏,焉知來者之不如今?」孔安國曰:「後生,少年。」
『춘추전』에 이르기를 「제나라 환공이 초나라를 치며 띠 묶음을 바치지 않음을 꾸짖었다」 하였다. 『논어』에 이르기를 「뒤에 난 이가 두려우니 어찌 오는 이가 이제만 못할 줄 알겠는가」 하였다. 공안국이 이르기를 「뒤에 난 이는 젊은이다」 하였다.
40아옹께서는 어찌 아들로 아비를 놀리십니까
張蒼梧是張憑之祖,嘗語憑父曰:「我不如汝。」憑父未解所以。蒼梧曰:「汝有佳兒。」憑時年數歲,歛手曰:「阿翁,詎宜以子戲父?」
장창오는 장빙의 할아버지인데, 일찍이 장빙의 아비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만 못하다."
장빙의 아비가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창오가 말하였다. "너에게 아름다운 아들이 있다."
장빙이 그때 나이 몇 살이었는데 손을 거두고 말하였다. "아옹께서는 어찌 아들로 아비를 놀리십니까."
협주 1
張蒼梧碑曰:「君諱鎮,字義遠,吳國吳人。忠恕寬明,簡正貞粹。泰安中,除蒼梧太守。討王含有功,封興道縣侯。」
「장창오비」에 이르기를 「임금은 휘가 장진이요 자는 의원이니 오나라 오 땅 사람이다. 참되고 너그럽고 넓고 밝으며 간결하고 바르고 곧고 순수하였다. 태안 연간에 창오태수에 임명되었다. 왕함을 쳐서 공이 있어 흥도현후에 봉해졌다」 하였다.
41엷게 험윤을 쳐서 태원에 이르렀소
習鑿齒、孫興公未相識,同在桓公坐。桓語孫「可與習參軍共語。」孫云:「『蠢爾蠻荊』,敢與大邦為讐?」習云:「『薄伐獫狁』,至于太原。」
습착치와 손흥공이 아직 서로 알지 못하였는데 함께 환공의 자리에 있었다.
환씨가 손씨에게 「습참군과 함께 말할 만하오」 하였다.
손씨가 말하였다. "『꿈틀거리는 저 오랑캐 형 땅이 감히 큰 나라와 원수 되랴."
습씨가 말하였다. "『엷게 험윤을 쳐서 태원에 이르렀소."
협주 1
小雅詩也。毛詩注曰:「蠢,動也。荊蠻,荊之蠻也。獫狁,北夷也。」習鑿齒,襄陽人。孫興公,太原人。故因詩以相戲也。
「소아」의 시다. 『모시』 주에 이르기를 「준(蠢)은 움직임이다. 형만은 형 땅의 오랑캐다. 험윤은 북쪽 오랑캐다」 하였다. 습착치는 양양 사람이요 손흥공은 태원 사람이므로, 시로 인해 서로 놀린 것이다.
42늘 닮은 것이 아니라 때로 닮았을 뿐이오
桓豹奴是王丹陽外生,形似其舅,桓甚諱之。宣武云:「不恆相似,時似耳!恆似是形,時似是神。」桓逾不說。
환표노는 왕단양의 생질인데 모습이 그 외숙을 닮아 환씨가 몹시 이를 꺼렸다.
선무가 말하였다. "늘 서로 닮은 것이 아니라 때로 닮았을 뿐이오. 늘 닮은 것은 모습이요 때로 닮은 것은 정신이오."
환씨가 더욱 기뻐하지 않았다.
협주 1
豹奴,桓嗣小字。中興書曰:「嗣字恭祖,車騎將軍沖子也。少有清譽。仕至江州刺史。」王氏譜曰:「混字奉正,中軍將軍恬子。仕至丹陽尹。」
표노는 환사의 아이 적 이름이다. 『중흥서』에 이르기를 「환사는 자가 공조요 거기장군 환충의 아들이다. 젊어서 맑은 기림이 있었다. 벼슬이 강주자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혼은 자가 봉정이요 중군장군 왕념의 아들이다. 벼슬이 단양윤에 이르렀다」 하였다.
43입술과 이가 서로 필요하여 치우쳐 없앨 수 없거니와 수염과 머리털이 정신과 무슨 상관이오
王子猷詣謝萬,林公先在坐,瞻矚甚高。王曰:「若林公鬚髮並全,神情當復勝此不?」謝曰:「脣齒相須,不可以偏亡。鬚髮何關於神明?」林公意甚惡。曰:「七尺之軀,今日委君二賢。」
왕자유가 사만을 찾아갔는데 임공이 먼저 자리에 있어 우러러 봄이 몹시 높았다.
왕씨가 말하였다. "만일 임공의 수염과 머리털이 아울러 온전하다면 정신과 정이 마땅히 다시 이보다 나을까요."
사씨가 말하였다. "입술과 이는 서로 필요하여 치우쳐 없앨 수 없거니와, 수염과 머리털이 정신과 무슨 상관이오."
임공이 뜻이 몹시 나빠 말하였다. "일곱 자 몸을 오늘 그대들 두 어진 이에게 맡기오."
협주 1
春秋傳曰:「脣亡齒寒。」
『춘추전』에 이르기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하였다.
44이는 진수가 지은 제갈량 평이니 남이 그대 집안을 무후에 견주는데 다시 무슨 말할 바가 있느냐
郗司空拜北府,王黃門詣郗門拜,云:「應變將略,非其所長。」驟詠之不已。郗倉謂嘉賓曰:「公今日拜,子猷言語殊不遜,深不可容!」嘉賓曰:「此是陳壽作諸葛評。人以汝家比武侯,復何所言?」
치사공이 북부에 임명되매 왕황문이 치씨의 문에 나아가 절하고 말하였다. "바뀜에 응하는 장수의 헤아림은 그가 잘하는 바가 아니라."
자주 이를 읊기를 그치지 않았다.
치창이 가빈에게 말하였다. "공께서 오늘 임명되셨는데 자유의 말이 자못 겸손하지 않으니 깊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가빈이 말하였다. "이는 진수가 지은 제갈량 평이다. 남이 그대 집안을 무후에 견주는데 다시 무슨 말할 바가 있느냐."
협주 3
南徐州記曰:「舊徐州都督以東為稱。晉氏南遷,徐州刺史王舒加北中郎將。北府之號,自此起也。」
『남서주기』에 이르기를 「옛날 서주도독은 동쪽으로 일컬음을 삼았다. 진나라가 남쪽으로 옮기매 서주자사 왕서에게 북중랑장을 더하였다. 북부의 이름이 여기서 일어났다」 하였다.
倉,郗融小字也。郗氏譜曰:「融字景山,愔第二子,辟琅邪王文學,不拜而蚤終。」
창은 치융의 아이 적 이름이다. 『치씨보』에 이르기를 「치융은 자가 경산이요 치음의 둘째 아들이다. 낭야왕문학에 불렸으나 나아가지 않고 일찍 죽었다」 하였다.
《蜀志》陳壽評曰:「亮連年動眾,而無成功,蓋應變將略,非其所長也。」王隱《晉書》曰:「壽字承祚,巴西安漢人。好學,善著述。仕至中庶子。初,壽父為馬謖參軍,諸葛亮誅謖,髡其父頭。亮子瞻又輕壽。故壽撰蜀志,以愛憎為評也。」
『촉지』 진수의 평에 이르기를 「제갈량이 여러 해 무리를 움직였으나 이룬 공이 없었으니, 대개 바뀜에 응하는 장수의 헤아림은 그가 잘하는 바가 아니었다」 하였다.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진수는 자가 승조요 파서 안한 사람이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지어 펴기를 잘하였다. 벼슬이 중서자에 이르렀다. 처음에 진수의 아비가 마속의 참군이 되었는데, 제갈량이 마속을 베고 그 아비의 머리를 깎았다.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도 또 진수를 가벼이 여겼다. 그러므로 진수가 「촉지」를 지으며 아낌과 미움으로 평을 삼았다」 하였다.
45드높기는 천 리 가는 망아지 같고 둥둥 뜨기는 물 가운데 오리 같습니다
王子猷詣謝公,謝曰:「云何七言詩?」子猷承問,答曰:「昂昂若千里之駒,汎汎若水中之鳧。」
왕자유가 사공을 찾아가니 사공이 말하였다. "일곱 자 시를 어떻게 하겠소."
자유가 물음을 받고 대답하였다. "드높기는 천 리 가는 망아지 같고 둥둥 뜨기는 물 가운데 오리 같습니다."
협주 2
東方朔傳曰:「漢武帝在柏梁臺上,使群臣作七言詩。」七言詩自此始也。
『동방삭전』에 이르기를 「한나라 무제가 백량대 위에 있으며 뭇 신하에게 일곱 자 시를 짓게 하였다」 하였다. 일곱 자 시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出離騷。
「이소」에서 나왔다.
46까부르고 날리매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다
王文度、范榮期俱為簡文所要。范年大而位小,王年小而位大。將前,更相推在前。既移久,王遂在范後。王因謂曰:「簸之揚之,穅秕在前。」范曰:「洮之汰之,沙礫在後。」
왕문도와 범영기가 함께 간문제에게 청함을 받았다.
범씨는 나이가 많으나 자리가 작고 왕씨는 나이가 적으나 자리가 컸다.
장차 나아가려 할 때 서로 앞에 있으라 밀었다.
이윽고 옮김이 오래매 왕씨가 마침내 범씨 뒤에 서게 되었다.
왕씨가 이로 인해 말하였다. "까부르고 날리매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다."
범씨가 말하였다. "일고 씻으매 모래와 자갈이 뒤에 있다."
협주 1
王坦之、范啟已見。世說是孫綽、習鑿齒言。
왕탄지와 범계는 이미 보인다. 『세설』에는 손작과 습착치의 말이라 한다.
47짐짓 이에 견주어 일컫다
劉遵祖少為殷中軍所知,稱之於庾公。庾公甚忻然,便取為佐。既見,坐之獨榻上與語。劉爾日殊不稱,庾小失望,遂名之為「羊公鶴」。昔羊叔子有鶴善舞,嘗向客稱之。客試使驅來,氃氋而不肯舞。故稱比之。
유준조가 젊어서 은중군에게 알려져 유공에게 그를 일컬었다.
유공이 몹시 흔연하여 곧 취해 보좌로 삼았다.
이윽고 보고 홑평상 위에 앉히고 더불어 말하였다.
유씨가 그날에 자못 걸맞지 않으매 유공이 조금 낙담하여, 마침내 그를 이름 하여 「양공의 학」이라 하였다.
옛날 양숙자에게 학이 있어 춤을 잘 추었는데, 일찍이 손을 향해 이를 일컬었다. 손이 시험 삼아 몰아 오게 하니 털을 부수수 하고 춤추려 하지 않았다.
짐짓 이에 견주어 일컬은 것이다.
협주 1
徐廣晉紀曰:「劉爰之字遵祖,沛郡人。少有才學,能言理。歷中書郎、宣城太守。」
서광의 『진기』에 이르기를 「유원지는 자가 준조요 패군 사람이다. 젊어서 재주와 배움이 있고 결을 말할 수 있었다. 중서랑과 선성태수를 지냈다」 하였다.
48이야기하는 이는 죽이고 글 쓰는 이는 형벌하고 헤아려 말하는 이는 죄에 이르게 하겠소
魏長齊雅有體量,而才學非所經。初宦當出,虞存嘲之曰:「與卿約法三章:談者死,文筆者刑,商略抵罪。」魏怡然而笑,無忤於色。
위장제가 우아하게 몸과 도량이 있었으나 재주와 배움은 겪은 바가 아니었다.
처음 벼슬하여 마땅히 나가게 되매 우존이 그를 조롱하여 말하였다. "경과 법 세 가지를 약속하겠소. 이야기하는 이는 죽이고 글 쓰는 이는 형벌하고 헤아려 말하는 이는 죄에 이르게 하겠소."
위씨가 기쁘게 웃고 낯빛에 거스름이 없었다.
협주 1
魏氏譜曰:「顗字長齊,會稽人。祖胤,處士。父說,大鴻臚卿。顗仕至山陰令。」漢書曰:「沛公入咸陽,召諸父老曰:『天下苦秦苛法久矣,今與父老約法三章耳:殺人者死,傷人及盜抵罪。』」應劭注曰:「抵,至也。但至於罪。」
『위씨보』에 이르기를 「위의는 자가 장제요 회계 사람이다. 할아버지 위윤은 처사요 아버지 위열은 대홍려경이다. 위의는 벼슬이 산음령에 이르렀다」 하였다. 『한서』에 이르기를 「패공이 함양에 들어 여러 부로를 불러 이르기를 『천하가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괴로워한 지 오래니, 이제 부로와 법 세 가지를 약속할 뿐이다. 사람을 죽인 이는 죽이고, 사람을 다치게 한 이와 도적질한 이는 죄에 이르게 한다』 하였다」 하였다. 응소의 주에 이르기를 「저(抵)는 이름이다. 다만 죄에 이르는 것이다」 하였다.
49늘 맡는 바람이 마땅히 넓히는 바가 있어야 할 뿐이오
郗嘉賓書與袁虎,道戴安道、謝居士云:「恆任之風,當有所弘耳。」以袁無恆,故以此激之。
치가빈이 원호에게 글을 보내 대안도와 사거사를 말하였다. "늘 맡는 바람이 마땅히 넓히는 바가 있어야 할 뿐이오."
원씨가 늘 그러함이 없으므로 이로써 그를 부추긴 것이다.
협주 1
袁、戴、謝並已見。
원씨와 대씨와 사씨는 아울러 이미 보인다.
50온몸에 남은 젖음이 없음이 온몸이 참되지 않은 것과 견주어 어떠하오
范啟與郗嘉賓書曰:「子敬舉體無饒縱,掇皮無餘潤。」郗答曰:「舉體無餘潤,何如舉體非真者?」范性矜假多煩,故嘲之。
범계가 치가빈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자경은 온몸에 넉넉하고 놓임이 없고 살갗을 벗겨도 남은 젖음이 없소."
치씨가 대답하였다. "온몸에 남은 젖음이 없음이 온몸이 참되지 않은 것과 견주어 어떠하오."
범씨가 성품이 자랑하고 거짓되어 번거로움이 많았으므로 그를 조롱한 것이다.
51두 치씨는 도에 아첨하고 두 하씨는 부처에 아첨한다
二郗奉道,二何奉佛,皆以財賄。謝中郎云:「二郗諂於道,二何佞於佛。」
두 치씨는 도를 받들고 두 하씨는 부처를 받들되 다 재물로 하였다.
사중랑이 말하였다. "두 치씨는 도에 아첨하고 두 하씨는 부처에 아첨한다."
협주 1
中興書曰:「郗愔及弟曇奉天師道。」晉陽秋曰:「何充性好佛道,崇修佛寺,供給沙門以百數。久在揚州,徵役吏民,功賞萬計,是以為遐邇所譏。充弟準,亦精勤,唯讀佛經,營治寺廟而已矣。」
『중흥서』에 이르기를 「치음과 아우 치담이 천사도를 받들었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하충이 성품이 부처의 도를 좋아하여 절을 높여 닦고 사문에게 이바지하기를 백으로 헤아렸다. 오래 양주에 있으며 아전과 백성을 부역에 부르고 공에 상 주기를 만으로 헤아렸으니, 이 때문에 멀고 가까운 데서 나무라는 바가 되었다. 하충의 아우 하준도 또한 정하고 부지런하여 오직 불경을 읽고 절을 지어 다스릴 뿐이었다」 하였다.
52법사가 오늘 해진 솜옷을 입고 가시덤불 안에 있는 듯하여 닿는 데마다 걸리는구나
王文度在西州,與林法師講,韓、孫諸人並在坐。林公理每欲小屈,孫興公曰:「法師今日如著弊絮在荊棘中,觸地挂閡。」
왕문도가 서주에 있으며 임법사와 강론하는데 한씨와 손씨 여러 사람이 아울러 자리에 있었다.
임공의 논리가 조금 굽으려 할 때마다 손흥공이 말하였다. "법사가 오늘 해진 솜옷을 입고 가시덤불 안에 있는 듯하여 닿는 데마다 걸리는구나."
53어찌 칼을 놀림에 다 비게 하지 않으시오
范榮期見郗超俗情不淡,戲之曰:「夷、齊、巢、許,一詣垂名。何必勞神苦形,支策據梧邪?」郗未答。韓康伯曰:「何不使遊刃皆虛?」
범영기가 치초의 속된 정이 담담하지 않음을 보고 그를 놀려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와 소보와 허유는 한 번 이르러 이름을 드리웠소. 어찌 반드시 정신을 수고롭게 하고 꼴을 괴롭게 하여 지팡이를 짚고 오동나무에 기대겠소."
치씨가 아직 대답하지 못하였다.
한강백이 말하였다. "어찌 칼을 놀림에 다 비게 하지 않으시오."
협주 1
莊子曰:「昭文之鼓琴,師曠之支策,惠子之據梧,三子之智幾矣,皆其盛也,故載之。末年,庖丁為文惠君解牛,三年之後,未嘗見全牛也。用刀十九年矣,所解數千牛,而刀刃若新發於硎。文惠君問之,庖丁曰:『彼節者有閒,而刀刃無厚;以無厚入有閒,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
『장자』에 이르기를 「소문의 거문고 탐과 사광의 지팡이 짚음과 혜자의 오동나무에 기댐은 세 사람의 슬기가 거의 지극하여 다 그 성함이므로 이를 실었다. 말년에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는데, 세 해 뒤에는 온전한 소를 본 적이 없었다. 칼을 쓴 지 열아홉 해에 잡은 것이 몇천 마리인데 칼날이 새로 숫돌에서 나온 것 같았다. 문혜군이 이를 물으니 포정이 이르기를 『저 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으로 틈 있는 데 들어가니 넓고 넓어 그 칼 놀림에 반드시 남은 땅이 있습니다』 하였다」 하였다.
54천하에 절로 이 날카로운 아이가 있구나
簡文在殿上行,右軍與孫興公在後。右軍指簡文語孫曰:「此噉名客!」簡文顧曰:「天下自有利齒兒。」後王光祿作會稽,謝車騎出曲阿祖之。王孝伯罷秘書丞在坐,謝言及此事,因視孝伯曰:「王丞齒似不鈍。」王曰:「不鈍,頗亦驗。」
간문제가 전각 위를 다니는데 우군과 손흥공이 뒤에 있었다.
우군이 간문제를 가리키며 손씨에게 말하였다. "이는 이름을 먹는 손이오."
간문제가 돌아보고 말하였다. "천하에 절로 이 날카로운 아이가 있구나."
뒤에 왕광록이 회계가 되매 사거기가 곡아에 나가 노제를 지냈다.
왕효백이 비서승을 그만두고 자리에 있었는데, 사씨가 말이 이 일에 미치자 이로 인해 효백을 보고 말하였다. "왕승의 이가 무디지 않은 듯하오."
왕씨가 말하였다. "무디지 않음은 자못 또한 겪어 보았소."
협주 1
王蘊、謝玄已見。
왕온과 사현은 이미 보인다.
55너는 앞에는 거만하고 뒤에는 공손하다 이를 만하다
謝遏夏月嘗仰臥,謝公清晨卒來,不暇著衣,跣出屋外,方躡履問訊。公曰:「汝可謂前倨而後恭。」
사알이 여름달에 일찍이 우러러 누웠는데 사공이 맑은 새벽에 갑자기 왔다.
옷 입을 겨를이 없어 맨발로 집 밖에 나갔다가 바야흐로 신을 신고 문안하였다.
사공이 말하였다. "너는 앞에는 거만하고 뒤에는 공손하다 이를 만하다."
협주 1
戰國策曰:「蘇秦說惠王而不見用,黑貂之裘弊,黃金百斤盡,大困而歸。父母不與言,妻不為下機,嫂不為炊。後為從長,行過洛陽,車騎輜重甚眾,秦之昆弟妻嫂側目不敢視。秦笑謂其嫂曰:『何先倨而後恭?』嫂謝曰:『見季子位高而金多。』秦歎曰:『一人之身,富貴則親戚畏懼,貧賤則輕易之,而況於他人哉!』」
『전국책』에 이르기를 「소진이 혜왕을 달랬으나 쓰이지 못하여, 검은 담비 갖옷이 해지고 황금 백 근이 다하매 크게 곤하여 돌아왔다. 어버이가 더불어 말하지 않고 아내가 베틀에서 내려오지 않고 형수가 밥을 짓지 않았다. 뒤에 합종의 어른이 되어 낙양을 지나가는데 수레와 기병과 짐이 몹시 많으니, 소진의 형제와 아내와 형수가 곁눈질하며 감히 보지 못하였다. 소진이 웃으며 그 형수에게 이르기를 『어찌 앞에는 거만하고 뒤에는 공손하시오』 하니, 형수가 사죄하며 『계자의 자리가 높고 돈이 많음을 보아서입니다』 하였다. 소진이 탄식하기를 『한 사람의 몸이 부유하고 귀하면 겨레붙이가 두려워하고, 가난하고 천하면 이를 가벼이 여기니 하물며 남에게랴』 하였다」 하였다.
56땅 이름이 무덤 깨기니 참으로 무덤을 깨고 나왔습니다
顧長康作殷荊州佐,請假還東。爾時例不給布颿,顧苦求之,乃得發。至破冢,遭風大敗。作牋與殷云:「地名破冢,真破冢而出。行人安穩,布颿無恙。」
고장강이 은형주의 보좌가 되었는데 말미를 청하여 동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때 예로 베돛을 주지 않았는데 고씨가 괴로이 이를 구하여 이에 떠날 수 있었다.
파총에 이르러 바람을 만나 크게 무너졌다.
은씨에게 글을 지어 말하였다. "땅 이름이 무덤 깨기니 참으로 무덤을 깨고 나왔습니다. 가는 사람은 편안하고 베돛은 탈이 없습니다."
협주 1
周祗隆安記曰:「破冢,洲名,在華容縣。」
주기의 『융안기』에 이르기를 「파총은 물가 이름이니 화용현에 있다」 하였다.
57삼가고 도타우며 앎이 있어 쓸 만한 이는 이에 십만에 이르고
符朗初過江,王咨議大好事,問中國人物及風土所生,終無極已。朗大患之。次復問奴婢貴賤,朗云:「謹厚有識,中者,乃至十萬;無意為奴婢,問者,止數千耳。」
부랑이 처음 강을 건너오매 왕자의가 몹시 일 벌이기를 좋아하여, 중국의 인물과 풍토에서 나는 바를 묻기를 마침내 다함이 없었다.
부랑이 크게 이를 괴로워하였다.
다음에 다시 종과 계집종의 값이 귀하고 천함을 물으니 부랑이 말하였다. "삼가고 도타우며 앎이 있어 쓸 만한 이는 이에 십만에 이르고, 종과 계집종 될 뜻이 없이 묻기만 하는 이는 몇천에 그칠 뿐이오."
협주 2
裴景仁秦書曰:「朗字元達,符堅從兄。性宏放,神氣爽悟。堅常曰:『吾家千里駒也。』堅為慕容沖所圍,朗降謝玄,用為員外散騎侍郎。吏部郎王忱與兄國寶命駕詣之。沙門法汰問朗曰:『見王吏部兄弟未?』朗曰:『非一狗面人心,又一人面狗心者是邪?』忱醜而才,國寶美而狠故也。朗常與朝士宴,時賢並用唾壺,朗欲夸之,使小兒跪而張口,唾而含出。又善識味,會稽王道子為設精饌,訖,問:『關中之食,孰若於此?』朗曰:『皆好。唯鹽味小生。』即問宰夫,如其言。或人殺雞以食之,朗曰:『此雞棲,恒半露。』問之,亦驗。又食鵝炙,知白黑之處,咸試而記之,無豪釐之差。著符子數十篇,蓋老、莊之流也。朗矜高忤物,不容於世,後眾讒而殺之。」
배경인의 『진서』에 이르기를 「부랑은 자가 원달이요 부견의 종형이다. 성품이 넓고 놓였으며 정신과 기운이 시원하고 깨쳤다. 부견이 늘 이르기를 『우리 집안의 천 리 가는 망아지다』 하였다. 부견이 모용충에게 둘리매 부랑이 사현에게 항복하여, 원외산기시랑으로 썼다. 이부랑 왕침이 형 왕국보와 함께 수레를 명하여 그를 찾아갔다. 사문 법태가 부랑에게 묻기를 『왕이부 형제를 보셨소』 하니, 부랑이 『하나는 개 낯에 사람 마음이요 또 하나는 사람 낯에 개 마음인 이가 아니오』 하였다. 왕침은 추하나 재주가 있고 왕국보는 아름다우나 사나웠던 까닭이다. 부랑이 늘 조정의 선비와 잔치할 때 그때 어진 이가 아울러 침 뱉는 병을 썼는데, 부랑이 이를 뽐내고자 하여 어린아이에게 무릎 꿇고 입을 벌리게 하여 침을 뱉고 머금어 나가게 하였다. 또 맛을 잘 알아 회계왕 사마도자가 정한 반찬을 차려 주고 마치매 묻기를 『관중의 밥이 이와 견주어 어떠하오』 하니, 부랑이 『다 좋으나 오직 소금 맛이 조금 설었소』 하였다. 곧 요리사에게 물으니 그 말과 같았다. 어떤 사람이 닭을 잡아 먹였는데 부랑이 『이 닭은 깃들 때 늘 반쯤 드러나 있었다』 하였다. 이를 물으니 또한 맞았다. 또 거위 구이를 먹고 희고 검은 데를 알아 다 시험하여 적으니 털끝만 한 어긋남도 없었다. 「부자」 몇십 편을 지었으니 대개 노자와 장자의 흐름이다. 부랑이 자랑하고 높아 물건에 거스르매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여, 뒤에 뭇사람이 헐뜯어 그를 죽였다」 하였다.
王氏譜曰:「肅之字幼恭,右將軍羲之第四子。歷中書郎、驃騎咨議。」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숙지는 자가 유공이요 우장군 왕희지의 넷째 아들이다. 중서랑과 표기자의를 지냈다」 하였다.
58왕께서 이에 다시 그 집을 서융처럼 하였구나
東府客館是版屋。謝景重詣太傅,時賓客滿中,初不交言,直仰視云:「王乃復西戎其屋。」
동부의 객관은 널빤지 집이었다.
사경중이 태부를 찾아가니 그때 손이 안에 가득하였는데, 처음에 말을 나누지 않고 곧바로 우러러 보며 말하였다. "왕께서 이에 다시 그 집을 서융처럼 하였구나."
협주 1
秦詩敘曰:「襄公備其兵甲,以討西戎,婦人閔其君子,故作詩曰:『在其版屋,亂我心曲。』」毛公注曰:「西戎之版屋也。」
「진시서」에 이르기를 「양공이 그 병기와 갑옷을 갖추어 서융을 치니, 부인이 그 남편을 가엾이 여겨 짐짓 시를 지어 이르기를 『그 널빤지 집에 있으니 내 마음 굽이를 어지럽힌다』 하였다」 하였다. 모공의 주에 이르기를 「서융의 널빤지 집이다」 하였다.
59차츰 아름다운 지경에 이른다
顧長康噉甘蔗,恆自尾至本。人問所以,云:「漸至佳境。」
고장강이 사탕수수를 먹는데 늘 꼬리에서 밑동으로 갔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였다. "차츰 아름다운 지경에 이른다."
60경은 임금의 저민 고기에 가까이하지 마시오
孝武屬王珣求女壻,曰:「王敦、桓溫,磊砢之流,既不可復得,且小如意,亦好豫人家事,酷非所須。正如真長、子敬比,最佳。」珣舉謝混。後袁山松欲擬謝婚,王曰:「卿莫近禁臠。」
효무제가 왕순에게 부탁하여 사위를 구하며 말하였다. "왕돈과 환온 같은 우뚝한 무리는 이미 다시 얻을 수 없고, 또 조금 뜻대로 하는 이는 또한 남의 집안일에 끼기를 좋아하니 자못 필요한 바가 아니오. 바로 진장과 자경 같은 이가 가장 아름답소."
왕순이 사혼을 천거하였다.
뒤에 원산송이 사씨와 혼인하려 하니 왕씨가 말하였다. "경은 임금의 저민 고기에 가까이하지 마시오."
협주 1
續晉陽秋曰:「山松,陳郡人。祖喬,益州刺史。父方平,義興太守。山松歷秘書監、吳國內史。孫恩作亂,見害。初,帝為晉陵公主訪婿於王珣,珣舉謝混云:『人才不及真長,不減子敬。』帝曰:『如此,便已足矣。』」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원산송은 진군 사람이다. 할아버지 원교는 익주자사요 아버지 원방평은 의흥태수다. 원산송은 비서감과 오국내사를 지냈다. 손은이 난을 일으키매 해를 입었다. 처음에 임금이 진릉공주를 위해 왕순에게 사위를 찾으니, 왕순이 사혼을 천거하며 이르기를 『사람의 재주가 진장에 미치지 못하나 자경에 못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와 같으면 곧 이미 넉넉하다』 하였다」 하였다.
61소경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못에 임한다
桓南郡與殷荊州語次,因共作了語。顧愷之曰:「火燒平原無遺燎。」桓曰:「白布纏棺豎旒旐。」殷曰:「投魚深淵放飛鳥。」次復作危語。桓曰:「矛頭淅米劍頭炊。」殷曰:「百歲老翁攀枯枝。」顧曰:「井上轆轤臥嬰兒。」殷有一參軍在坐,云:「盲人騎瞎馬,夜半臨深池。」殷曰:「咄咄逼人!」仲堪眇目故也。
환남군이 은형주와 말하는 차례에 이로 인해 함께 「끝난 말」을 지었다.
고개지가 말하였다. "불이 벌판을 태워 남은 불씨가 없다."
환씨가 말하였다. "흰 베로 널을 감고 명정을 세운다."
은씨가 말하였다. "고기를 깊은 못에 던지고 나는 새를 놓아준다."
다음에 다시 「위태로운 말」을 지었다.
환씨가 말하였다. "창끝에서 쌀 일고 칼끝에서 밥 짓는다."
은씨가 말하였다. "백 살 늙은이가 마른 가지를 붙든다."
고씨가 말하였다. "우물 위 두레박틀에 어린아이가 눕는다."
은씨의 한 참군이 자리에 있다가 말하였다. "소경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못에 임한다."
은씨가 말하였다. "쯧쯧, 사람을 다그치는구나."
은중감이 한 눈이 애꾸였던 까닭이다.
협주 1
中興書曰:「仲堪父嘗疾患經時,仲堪衣不解帶數年。自分劑湯藥,誤以藥手拭淚,遂眇一目。」
『중흥서』에 이르기를 「은중감의 아버지가 일찍이 병을 앓아 때를 지나매, 중감이 옷의 띠를 풀지 않은 것이 몇 해였다. 스스로 탕약을 나누어 짓다가 잘못 약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 마침내 한 눈이 애꾸가 되었다」 하였다.
62백금의 귀함으로도 오히려 매를 면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그대랴
桓玄出射,有一劉參軍與周參軍朋賭,垂成,唯少一破。劉謂周曰:「卿此起不破,我當撻卿。」周曰:「何至受卿撻!」劉曰:「伯禽之貴,尚不免撻,而況於卿?」周殊無忤色。桓語庾伯鸞曰:劉參軍宜停讀書,周參軍且勤學問。」
환현이 나가 활을 쏘는데 한 유참군이 주참군과 편을 갈라 걸었다.
거의 이루어져 오직 한 번 맞히기가 모자랐다.
유씨가 주씨에게 말하였다. "경이 이번에 일어나 맞히지 못하면 내가 마땅히 경을 매질하겠소."
주씨가 말하였다. "어찌 경의 매질을 받는 데 이르겠소."
유씨가 말하였다. "백금의 귀함으로도 오히려 매를 면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그대랴."
주씨가 자못 거스르는 낯빛이 없었다.
환씨가 유백란에게 말하였다. "유참군은 마땅히 책 읽기를 그치고 주참군은 또 배움을 묻는 데 부지런해야겠소."
협주 2
尚書大傳曰:「伯禽與康叔見周公,三見而三笞。康叔有駭色,謂伯禽曰:『有商子者,賢人也,與子見之。』乃見商子而問焉。商子曰:『南山之陽有木焉,名喬。』二三子往觀之,見喬實高高然而上。反,以告商子。商子曰:『喬者,父道也。南山之陰有木焉,名曰梓。』二三子復往觀焉,見梓實晉晉然而俯。反以告商子。商子曰:『梓者,子道也。』二三子明日見周公,入門而趨,登堂而跪。周公拂其首,勞而食之,曰:『爾安見君子乎?』」禮記曰:「成王有罪,周公則撻伯禽。」亦其義也。
『상서대전』에 이르기를 「백금과 강숙이 주공을 뵈매 세 번 뵙고 세 번 매를 맞았다. 강숙이 놀라는 낯빛이 있어 백금에게 이르기를 『상자라는 이가 있어 어진 사람이니 그대와 함께 그를 뵙자』 하였다. 이에 상자를 보고 물으니 상자가 이르기를 『남산 볕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이 교(喬)다』 하였다. 두세 사람이 가서 보니 교나무가 참으로 높고 높아 위로 솟았다. 돌아와 상자에게 알리니 상자가 『교는 아비의 도다. 남산 그늘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이 재(梓)다』 하였다. 두세 사람이 다시 가서 보니 재나무가 참으로 나긋나긋하여 굽었다. 돌아와 상자에게 알리니 상자가 『재는 아들의 도다』 하였다. 두세 사람이 이튿날 주공을 뵙는데 문에 들어서 종종걸음 하고 마루에 올라 무릎 꿇었다. 주공이 그 머리를 쓰다듬고 위로하여 먹이며 이르기를 『너희가 어디서 군자를 보았느냐』 하였다」 하였다. 『예기』에 이르기를 「성왕이 죄가 있으매 주공이 곧 백금을 매질하였다」 하였다. 또한 그 뜻이다.
晉東宮百官名曰:「庾鴻字伯鸞,潁川人。」庾氏譜曰:「鴻祖義,吳國內史。父楷,左衛將軍。鴻仕至輔國內史。」
『진동궁백관명』에 이르기를 「유홍은 자가 백란이요 영천 사람이다」 하였다. 『유씨보』에 이르기를 「유홍의 할아버지 유의는 오국내사요 아버지 유해는 좌위장군이다. 유홍은 벼슬이 보국내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63왕사도가 큰집 아이의 웃음을 지을 수 있구나
桓南郡與道曜講老子,王侍中為主簿在坐。桓曰:「王主簿,可顧名思義。」王未答,且大笑。桓曰:「王思道能作大家兒笑。」
환남군이 도요와 『노자』를 강론하는데 왕시중이 주부로 자리에 있었다.
환씨가 말하였다. "왕주부는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할 만하오."
왕씨가 아직 대답하지 않고 또 크게 웃었다.
환씨가 말하였다. "왕사도가 큰집 아이의 웃음을 지을 수 있구나."
협주 1
道曜,未詳。思道,王禎之小字也。老子明道,禎之字思道,故曰「顧名思義」。
도요는 자세하지 않다. 사도는 왕정지의 아이 적 이름이다. 노자가 도를 밝혔고 왕정지의 자가 사도이므로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라」 한 것이다.
64조참군은 새는 지붕에서 온 듯하구나
祖廣行恒縮頭。詣桓南郡,始下車,桓曰:「天甚晴朗,祖參軍如從屋漏中來。」
조광이 다닐 때 늘 머리를 움츠렸다.
환남군을 찾아가 처음 수레에서 내리매 환씨가 말하였다. "하늘이 몹시 맑고 환한데 조참군은 새는 지붕에서 온 듯하구나."
협주 1
祖氏譜曰:「廣字淵度,范陽人。父台之,仕光祿大夫。廣仕至護軍長史。」
『조씨보』에 이르기를 「조광은 자가 연도요 범양 사람이다. 아버지 조태지는 광록대부에 벼슬하였다. 조광은 벼슬이 호군장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65울타리와 담 사이 물건도 또한 얻을 수 없구나
桓玄素輕桓崖,崖在京下有好桃,玄連就求之,遂不得佳者。玄與殷仲文書,以為嗤笑曰:「德之休明,肅慎貢其楛矢;如其不爾,籬壁間物,亦不可得也。」
환현이 본디 환애를 가벼이 여겼다.
환애가 서울에 좋은 복숭아가 있었는데 환현이 잇달아 나아가 이를 구하였으나 마침내 아름다운 것을 얻지 못하였다.
환현이 은중문에게 글을 보내 비웃음으로 삼아 말하였다. "덕이 아름답고 밝으면 숙신이 그 호나무 화살을 바치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울타리와 담 사이 물건도 또한 얻을 수 없구나."
협주 2
崖,桓脩小字。續晉陽秋曰:「脩少為玄所侮,於言端常嗤鄙之。」
애는 환수의 아이 적 이름이다.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환수가 젊어서 환현에게 업신여김을 받아, 말끝에 늘 그를 비웃고 더럽다 하였다」 하였다.
國語曰:「仲尼在陳,有隼集陳侯之庭而死,楛矢貫之,石砮尺有咫。問於仲尼。對曰:『隼之來遠矣。此肅慎之矢也。昔武王克商,通道于九夷、百蠻,使各以方賄貢,於是肅慎氏貢楛矢。古者分異姓之職,使不忘服也,故分陳以肅慎之貢;若求之故府,其可得。』使求得之,金櫝如初。」
『국어』에 이르기를 「중니가 진나라에 있을 때 매가 진나라 임금의 뜰에 모여 죽었는데 호나무 화살이 이를 꿰뚫었고 돌 화살촉이 한 자 여덟 치였다. 중니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매가 온 데가 멀다. 이는 숙신의 화살이다. 옛날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아홉 오랑캐와 온갖 만족에게 길을 통하여 저마다 그 지방의 재물로 바치게 하니, 이에 숙신씨가 호나무 화살을 바쳤다. 옛날에는 다른 성씨의 소임을 나누어 복종을 잊지 않게 하였으므로, 진나라에 숙신의 바침을 나누어 주었다. 만일 옛 곳간에서 구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하였다. 구하게 하여 이를 얻으니 쇠 궤가 처음과 같았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