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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저世説新語 輕詆第二十六

세설신어 世說新語 · 유의경(劉義慶) 엮음 · 유효표(劉孝標) 주 · 남조 송(5세기) · 양 유효표 주 · 단락 33 · 한자 1,728자 · 낭독 6.9분

「세설신어」 「경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 몇 살 난 아이가 아버지 무릎에서 한 대답이다. 이튿날 다시 묻자 「해가 가깝습니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했다.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이백여 해,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과 몸짓만을 서른여섯 갈래로 나누어 모았다. 덕행·언어·정사·문학에서 시작해 사치·성냄·시새움·원수까지 내려가니, 기릴 것과 나무랄 것을 같은 무게로 놓은 셈이다. 대숲의 일곱 사람이 나오고, 왕희지가 사위로 뽑히고, 눈 오는 밤 배를 저어 벗의 집 앞까지 갔다가 흥이 다했다며 돌아온다. 한 조각이 대개 서너 줄, 길어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유효표가 백여 종의 책을 끌어와 단 주는 그 책들이 거의 다 없어진 지금 도리어 본문보다 길게 남았다.

1어찌 온종일 함부로 말하는 이름난 선비가 있겠습니까

王太尉問眉子:「汝叔名士,何以不相推重?」眉子曰:「何有名士終日妄語?」

왕태위가 미자에게 물었다. "네 작은아버지는 이름난 선비인데 어찌하여 서로 밀어 무겁게 여기지 않느냐."

미자가 말하였다. "어찌 온종일 함부로 말하는 이름난 선비가 있겠습니까."

협주 1

眉子已見。叔,王澄也。

미자는 이미 보인다. 작은아버지는 왕징이다.

2어찌 이에 무염을 새기고 그려 서시를 함부로 건드리시오

庾元規語周伯仁:「諸人皆以君方樂。」周曰:「何樂?謂樂毅邪?」庾曰:「不爾。樂令耳!」周曰:「何乃刻畫無鹽,以唐突西子也。」

유원규가 주백인에게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다 그대를 악씨에 견주오."

주씨가 말하였다. "어느 악씨요. 악의를 이르시오."

유씨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 악령일 뿐이오."

주씨가 말하였다. "어찌 이에 무염을 새기고 그려 서시를 함부로 건드리시오."

협주 2

史記曰:「樂毅,中山人。賢而為燕昭王將軍,率諸侯伐齊,終於趙。」

『사기』에 이르기를 「악의는 중산 사람이다. 어질어 연나라 소왕의 장군이 되어 제후를 이끌고 제나라를 쳤고 조나라에서 마쳤다」 하였다.

列女傳曰:「鍾離春者,齊無鹽之女也。其醜無雙,黃頭深目,長壯大節,鼻昂結喉,肥項少髮,折腰出胸,皮膚若漆。行年三十,無所容入,衒嫁不售,乃自詣齊宣王,乞備後宮,因說王以四殆。王拜為正后。」吳越春秋曰:「越王句踐得山中採薪女子,名曰西施,獻之吳王。」

『열녀전』에 이르기를 「종리춘이라는 이는 제나라 무염의 여자다. 그 추함이 짝이 없어 누런 머리에 눈이 깊고 키가 크고 마디가 굵으며, 코가 들리고 목젖이 맺히고 목이 살찌고 머리털이 적으며, 허리가 꺾이고 가슴이 나오고 살갗이 옻 같았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받아들여 드는 데가 없어 스스로 팔려 시집가려 하여도 팔리지 않으매, 이에 스스로 제나라 선왕에게 나아가 후궁을 채우기를 빌고, 이로 인해 왕에게 네 가지 위태로움을 달랬다. 왕이 절하고 정후로 삼았다」 하였다. 『오월춘추』에 이르기를 「월나라 왕 구천이 산 가운데서 나무하는 여자를 얻으니 이름이 서시라, 이를 오나라 왕에게 바쳤다」 하였다.

3가슴 가운데 가시덤불이 서 말쯤 있다

深公云:「人謂庾元規名士,胷中柴棘三斗許。」

심공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유원규를 이름난 선비라 하나 가슴 가운데 가시덤불이 서 말쯤 있다."

4원규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

庾公權重,足傾王公。庾在石頭,王在冶城坐。大風揚塵,王以扇拂塵曰:「元規塵汙人!」

유공의 권세가 무거워 왕공을 기울이기에 넉넉하였다.

유공은 석두에 있고 왕공은 야성에 앉아 있었다.

큰 바람이 티끌을 날리매 왕공이 부채로 티끌을 스치며 말하였다. "원규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

협주 1

按王公雅量通濟,庾亮之在武昌,傳其應下,公以識度裁之,囂言自息。豈或回貳有扇塵之事乎?王隱《晉書戴洋傳》曰:「丹陽太守王導,問洋得病七年。洋曰:『君侯命在申,為土地之主,而於申上冶,火光昭天,此為金火相爍,水火相炒,以故相害。』導呼冶令奕遜,使啟鎮東徙,今東冶是也。」丹陽記曰:「丹陽冶城,去宮三里,吳時鼓鑄之所,吳平猶不廢。」又云:「孫權築冶城,為鼓鑄之所。」既立石頭大塢,不容近立此小城,當是徙縣冶空城而置冶爾。冶城疑是金陵本冶。漢高六年,令天下縣邑,秣陵不應獨無。

살피건대 왕공은 우아한 도량으로 통하고 건졌으니, 유량이 무창에 있을 때 그가 마땅히 내려온다 전하매 공이 앎과 도량으로 이를 마름하여 시끄러운 말이 절로 그쳤다. 어찌 혹 두 마음을 돌려 티끌 부치는 일이 있었겠는가. 왕은의 『진서·대양전』에 이르기를 「단양태수 왕도가 대양에게 병 얻은 지 일곱 해임을 물었다. 대양이 이르기를 『군후의 명이 신(申)에 있어 땅의 주인이 되는데 신 위에서 대장간을 하니, 불빛이 하늘에 밝아 이는 쇠와 불이 서로 녹이고 물과 불이 서로 볶는 것이라 이 때문에 서로 해칩니다』 하였다. 왕도가 야령 혁손을 불러 진동에 아뢰어 옮기게 하니 이제 동야가 이것이다」 하였다. 『단양기』에 이르기를 「단양 야성은 궁에서 삼 리 떨어져 있으니 오나라 때 두드려 부어 만들던 데요 오나라가 평정되어서도 오히려 폐하지 않았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손권이 야성을 쌓아 두드려 붓는 데를 삼았다」 하였다. 이미 석두의 큰 둑을 세웠으니 가까이 이 작은 성을 세울 수 없고, 마땅히 옮긴 고을의 대장간 빈 성에 대장간을 두었을 뿐이리라. 야성은 아마 금릉의 본디 대장간인 듯하다. 한나라 고제 육 년에 천하의 현과 읍에 명하였으니 말릉만 홀로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5너희 집 사공과 원규가 다시 무엇이 어렵겠느냐

王右軍少時甚澀訥,在大將軍許,王、庾二公後來,右軍便起欲去。大將軍留之曰:「爾家司空、元規,復可所難?」

왕우군이 젊었을 때 몹시 떫고 말을 더듬었다.

대장군의 처소에 있는데 왕공과 유공 두 공이 뒤에 오매, 우군이 곧 일어나 가려 하였다.

대장군이 그를 머물게 하며 말하였다. "너희 집 사공과 원규가 다시 무엇이 어렵겠느냐."

협주 1

王丞相已見。

왕승상은 이미 보인다.

6어디서 채충의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겠는가

王丞相輕蔡公,曰:「我與安期、千里共遊洛水邊,何處聞有蔡充兒?」

왕승상이 채공을 가벼이 여겨 말하였다. "내가 안기와 천리와 함께 낙수 가에서 노닐 때 어디서 채충의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겠는가."

협주 1

晉諸公贊曰:「充字子尼,陳留雍丘人。」充別傳曰:「充祖睦,蔡邕孫也。充少好學,有雅尚,體貌尊嚴,莫有媟慢於其前者。高平劉整有雋才,而車服奢麗,謂人曰:『紗縠,人常服耳。嘗遇蔡子尼在坐,終日不自安。』見憚如此。是時,陳留為大郡,多人士,琅邪王澄嘗經郡境,問:『此郡多士,有誰乎?』吏曰:『有江應元、蔡子尼。』時陳留多居大位者,澄問:『何以但稱此二人?』吏曰:『向謂君侯問人,不謂位也。』澄笑而止。充歷成都王東曹掾,故稱東曹。」妒記曰:「丞相曹夫人性甚忌,禁制丞相,不得有侍御,乃至左右小人,亦被檢簡,時有妍妙,皆加誚責。王公不能久堪,乃密營別館,眾妾羅列,兒女成行。後元會日,夫人於青疏臺中,望見兩三兒騎羊,皆端正可念。夫人遙見,甚憐愛之。語婢:『汝出問,是誰家兒?』給使不達旨,乃答云:『是第四王等諸郎。』曹氏聞,驚愕大恚。命車駕,將黃門及婢二十人,人持食刀,自出尋討。王公亦遽命駕,飛轡出門,猶患牛遲。乃以左手攀車蘭,右手捉麈尾,以柄助御者打牛,狼狽奔馳,劣得先至。蔡司徒聞而笑之,乃故詣王公,謂曰:『朝廷欲加公九錫,公知不?』王謂信然,自敘謙志。蔡曰:『不聞餘物,唯聞有短轅犢車,長柄麈尾。』王大愧。後貶蔡曰:『吾昔與安期、千里,共在洛水。』」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채충은 자가 자니요 진류 옹구 사람이다」 하였다. 『충별전』에 이르기를 「채충의 할아버지 채목은 채옹의 손자다. 채충이 젊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우아한 숭상이 있었으며, 몸과 모습이 높고 엄하여 그 앞에서 함부로 하고 거만한 이가 없었다. 고평의 유정이 뛰어난 재주가 있고 수레와 옷이 사치스럽고 고왔는데, 남에게 이르기를 『깁과 비단은 사람의 여느 옷일 뿐이다. 일찍이 채자니를 만나 자리에 있으매 온종일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꺼려짐이 이와 같았다. 이때 진류가 큰 고을이 되어 인사가 많았는데, 낭야의 왕징이 일찍이 고을 지경을 지나며 묻기를 『이 고을에 선비가 많다는데 누가 있는가』 하니, 아전이 『강응원과 채자니가 있습니다』 하였다. 그때 진류에 큰 자리에 있는 이가 많으매 왕징이 『어찌하여 다만 이 두 사람만 일컫는가』 물으니, 아전이 『아까 군후께서 사람을 물으신 줄 알았지 자리를 이르신 줄은 몰랐습니다』 하였다. 왕징이 웃고 그쳤다. 채충이 성도왕의 동조연을 지냈으므로 동조라 일컫는다」 하였다. 『투기』에 이르기를 「승상의 아내 조부인이 성품이 몹시 시새워, 승상을 금하고 눌러 모시는 이를 두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곁의 작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또한 살펴 가림을 입어, 때로 곱고 묘한 이가 있으면 다 꾸짖음을 더하였다. 왕공이 오래 견디지 못하여 이에 몰래 딴 집을 지어 뭇 첩을 벌여 두니 아들과 딸이 줄을 이루었다. 뒤에 정월 모임 날에 부인이 푸른 창 대에서 두세 아이가 양을 타는 것을 바라보니 다 단정하여 사랑스러웠다. 부인이 멀리서 보고 몹시 이를 가엾이 아껴 계집종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가 뉘 집 아이냐 물어라.』 심부름꾼이 뜻을 알지 못하고 이에 답하기를 『넷째 왕씨 들 여러 낭군입니다』 하였다. 조씨가 듣고 놀라고 몹시 성내었다. 수레를 명하여 황문과 계집종 스무 사람을 데리고 사람마다 부엌칼을 들려 스스로 나가 찾아 치려 하였다. 왕공도 또한 급히 수레를 명하여 고삐를 날려 문을 나섰는데 오히려 소가 더딤을 걱정하였다. 이에 왼손으로 수레 난간을 붙들고 오른손으로 주미를 잡아 자루로 모는 이를 도와 소를 때리며 허둥지둥 달려 겨우 먼저 이를 수 있었다. 채사도가 듣고 이를 웃어, 이에 짐짓 왕공을 찾아가 일러 이르기를 『조정이 공에게 아홉 가지 내림을 더하려 하는데 공은 아시오』 하였다. 왕씨가 참으로 그렇다 여겨 스스로 겸손한 뜻을 폈다. 채씨가 이르기를 『다른 물건은 듣지 못하였고 오직 끌채 짧은 송아지 수레와 자루 긴 주미가 있다고만 들었소』 하니 왕씨가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뒤에 채씨를 낮추어 이르기를 『내가 옛날 안기와 천리와 함께 낙수에 있었다』 하였다」 하였다.

7이에 온 자리가 놀라 흩어져 허둥거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褚太傅初渡江,嘗入東,至金昌亭。吳中豪右,燕集亭中。褚公雖素有重名,于時造次不相識別。敕左右多與茗汁,少箸粽,汁盡輒益,使終不得食。褚公飲訖,徐舉手共語云:「褚季野!」於是四座驚散,無不狼狽。

저태부가 처음 강을 건너 일찍이 동쪽에 들어가다가 금창정에 이르렀다.

오 땅 가운데 힘센 세력가들이 정자 안에서 잔치하며 모여 있었다.

저공이 비록 본디 무거운 이름이 있었으나 이때 갑작스러워 서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곁의 사람에게 명하여 차즙을 많이 주고 떡을 적게 놓으며, 즙이 다하면 문득 더하여 마침내 먹지 못하게 하였다.

저공이 마시기를 마치고 천천히 손을 들어 함께 말하였다. "저계야요."

이에 온 자리가 놀라 흩어져 허둥거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협주 1

謝歆《金昌亭詩敘》曰:「余尋師,來入經吳,行達昌門,忽睹斯亭,傍川帶河,其榜題曰『金昌』。訪之耆老,曰:『昔朱買臣仕漢,還為會稽內史,逢其迎吏,遊旅北舍,與買臣爭席。買臣出其印綬,群吏慚服自裁。因事建亭,號曰「金傷」,失其字義耳。』」

사흠의 「금창정시서」에 이르기를 「내가 스승을 찾아 오나라를 지나 들어와 창문(閶門)에 다다랐는데, 홀연히 이 정자를 보니 내를 곁하고 물을 띠었으며 그 걸린 이름이 「금창(金昌)」이라 하였다. 늙은이에게 물으니 이르기를 『옛날 주매신이 한나라에 벼슬하여 회계내사가 되어 돌아올 때, 그 맞이하는 아전을 만났는데 나그네로 북쪽 집에 노닐다가 주매신과 자리를 다투었다. 주매신이 그 인끈을 내놓으니 뭇 아전이 부끄러워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로 인해 정자를 세우고 「금상(金傷)」이라 불렀는데 그 글자의 뜻을 잃었을 뿐이다』 하였다」 하였다.

8호돈과 호독이 그 가는 바로 돌아가는구나

王右軍在南,丞相與書,每嘆子姪不令。云:「虎㹠、虎犢,還其所如。」

왕우군이 남쪽에 있을 때 승상이 글을 보내며 아들과 조카가 좋지 않음을 늘 탄식하여 말하였다. "호돈과 호독이 그 가는 바로 돌아가는구나."

협주 1

虎㹠,王彭之小字也。王氏譜曰:「彭之字安壽,琅邪人。祖正,尚書郎。父彬,衛將軍。彭之仕至黃門郎。虎犢,彪之小字也。彪之字叔虎,彭之第三弟。年二十而頭鬚皓白,時人謂之王白鬚。少有局榦之稱。累遷至左光祿大夫。」

호돈은 왕팽지의 아이 적 이름이다.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팽지는 자가 안수요 낭야 사람이다. 할아버지 왕정은 상서랑이요 아버지 왕빈은 위장군이다. 왕팽지는 벼슬이 황문랑에 이르렀다. 호독은 왕표지의 아이 적 이름이다. 왕표지는 자가 숙호요 왕팽지의 셋째 아우다. 나이 스물에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매 그때 사람들이 왕백수라 일렀다. 젊어서 국량과 재간의 일컬음이 있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좌광록대부에 이르렀다」 하였다.

9그때 다 그 재주는 있으나 성품이 더러움을 웃었다

褚太傅南下,孫長樂於船中視之。言次,及劉真長死,孫流涕,因諷詠曰:「人之云亡,邦國殄瘁。」褚大怒曰:「真長平生,何嘗相比數,而卿今日作此面向人!」孫回泣向褚曰:「卿當念我!」時咸笑其才而性鄙。

저태부가 남쪽으로 내려가매 손장락이 배 안에서 그를 보았다.

말하는 차례에 유진장의 죽음에 미치자 손씨가 눈물을 흘리고, 이로 인해 읊어 말하였다. "사람이 죽었으니 나라가 다하고 병들었다."

저씨가 크게 성내어 말하였다. "진장이 평생에 어찌 일찍이 그대를 견주어 셈하였던가. 그런데 그대가 오늘 이런 낯을 지어 남을 향하는가."

손씨가 울음을 거두고 저씨를 향해 말하였다. "경은 마땅히 나를 생각해 주시오."

그때 다 그 재주는 있으나 성품이 더러움을 웃었다.

협주 2

長樂,孫綽。

장락은 손작이다.

大雅詩毛公注曰:「殄,盡。瘁,病也。」

「대아」 시니 모공의 주에 이르기를 「진(殄)은 다함이요 췌(瘁)는 병듦이다」 하였다.

10늘 사군을 섬돌 내림이 심하다 하였는데 하물며 다시 그를 위해 달리기까지 하십니까

謝鎮西書與殷揚州,為真長求會稽。殷答曰:「真長標同伐異,俠之大者。常謂使君降階為甚,乃復為之驅馳邪?」

사진서가 은양주에게 글을 보내 진장을 위해 회계를 구하였다.

은씨가 대답하였다. "진장은 같은 이를 드러내고 다른 이를 치니 협객의 큰 이오. 늘 사군을 섬돌 내림이 심하다 하였는데 하물며 다시 그를 위해 달리기까지 하십니까."

11위나라 무제가 형주에 들어 삶아 사졸을 먹였다

桓公入洛,過淮、泗,踐北境,與諸僚屬登平乘樓,眺矚中原,慨然曰:「遂使神州陸沈,百年丘墟,王夷甫諸人,不得不任其責!」袁虎率爾對曰:「運自有廢興,豈必諸人之過?」桓公懍然作色,顧謂四坐曰:「諸君頗聞劉景升不?有大牛重千斤,噉芻豆十倍於常牛,負重致遠,曾不若一羸牸。魏武入荊州,烹以饗士卒,于時莫不稱快。」意以況袁。四坐既駭,袁亦失色。

환공이 낙양에 들어가 회수와 사수를 지나 북쪽 지경을 밟았다.

여러 아전과 붙이와 평승루에 올라 중원을 바라보고 감개하여 말하였다. "마침내 중원 땅이 통째로 잠기고 백 해를 언덕 무더기가 되게 하였으니, 왕이보 여러 사람이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원호가 뜻대로 대답하였다. "운수에 절로 무너짐과 일어남이 있는데 어찌 반드시 여러 사람의 허물이겠습니까."

환공이 서늘하게 낯빛을 짓고 돌아보며 네 자리에 말하였다. "그대들은 자못 유경승을 들었소. 큰 소가 있어 천 근이 나가고 꼴과 콩 먹기를 여느 소보다 열 배로 하는데, 무거운 것을 지고 먼 데 이름이 일찍이 여윈 암소 하나만 못하였소. 위나라 무제가 형주에 들어 삶아 사졸을 먹이니 이때 시원하다 일컫지 않는 이가 없었소."

뜻이 원씨에 견준 것이었다. 네 자리가 이미 놀라고 원씨도 또한 낯빛을 잃었다.

협주 2

八王故事曰:「夷甫雖居台司,不以事物自嬰,當世化之,羞言名教。自臺郎以下,皆雅崇拱默,以遺事為高。四海尚寧,而識者知其將亂。」晉陽秋曰:「夷甫將為石勒所殺,謂人曰:『吾等若不祖尚浮虛,不至於此!』」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이보가 비록 대의 소임에 있었으나 일과 물건으로 스스로 얽매지 않으니, 요즘 세상이 이에 바뀌어 이름의 가르침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였다. 대랑 아래로 다 우아하게 팔짱 끼고 잠잠함을 높여 일을 버림을 높다 하였다. 사해가 아직 편안하였으나 아는 이는 그 장차 어지러워질 줄 알았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이보가 장차 석륵에게 죽임을 당하려 할 때 남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만일 뜬 헛됨을 높이 숭상하지 않았더라면 여기 이르지 않았으리라』 하였다」 하였다.

劉鎮南銘曰:「表字景升,山陽高平人。黃中通理,博識多聞。仕至鎮南將軍、荊州刺史。」

「유진남명」에 이르기를 「유표는 자가 경승이요 산양 고평 사람이다. 누런 가운데가 사리에 통하고 널리 알고 들은 것이 많았다. 벼슬이 진남장군과 형주자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12복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니 또한 무슨 욕됨이 이와 같으랴

袁虎、伏滔同在桓公府。桓公每遊燕,輒命袁、伏,袁甚恥之,恆嘆曰:「公之厚意,未足以榮國士!與伏滔比肩,亦何辱如之?」

원호와 복도가 함께 환공의 부에 있었다.

환공이 노닐고 잔치할 때마다 문득 원씨와 복씨를 명하니, 원씨가 몹시 이를 부끄러워하여 늘 탄식하였다. "공의 두터운 뜻이 나라의 선비를 빛내기에 넉넉하지 않다. 복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니 또한 무슨 욕됨이 이와 같으랴."

13나도 실로 또한 그에게 줄 만한 것이 없다

高柔在東,甚為謝仁祖所重。既出,不為王、劉所知。仁祖曰:「近見高柔,大自敷奏,然未有所得。」真長云:「故不可在偏地居,輕在角䚥中,為人作議論。」高柔聞之,云:「我就伊無所求。」人有向真長學此言者,真長曰:「我寔亦無可與伊者。」然遊燕猶與諸人書:「可要安固?」安固者,高柔也。

고유가 동쪽에 있으며 몹시 사인조가 무겁게 여기는 바가 되었다.

이윽고 나오매 왕씨와 유씨에게 알려지지 못하였다.

인조가 말하였다. "요사이 고유를 보니 크게 스스로 펴 아뢰나 얻은 바가 있지 않소."

진장이 말하였다. "짐짓 치우친 땅에 살아 가벼이 모퉁이 가운데 있으면서 남을 위해 의논 짓는 것이 옳지 않소."

고유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내가 그에게 나아가 구하는 바가 없소."

어떤 사람이 진장에게 이 말을 전하는 이가 있으니 진장이 말하였다. "나도 실로 또한 그에게 줄 만한 것이 없소."

그러나 노닐고 잔치할 때 오히려 여러 사람에게 글을 보냈다. "안고를 청할 만하오."

안고란 고유다.

협주 2

奴角反。

「노각(奴角)」의 반절이다.

孫統為柔集敘曰:「柔字世遠,樂安人。才理清鮮,安行仁義。婚泰山胡毋氏女,年二十,既有倍年之覺,而姿色清惠,近是上流婦人。柔家道隆崇,既罷司空參軍、安固令,營宅於伏川。馳動之情既薄,又愛翫賢妻,便有終焉之志。尚書令何充取為冠軍參軍,僶俛應命,眷戀綢繆,不能相舍。相贈詩書,清婉辛切。」

손통이 고유의 문집에 서를 지어 이르기를 「고유는 자가 세원이요 낙안 사람이다. 재주와 결이 맑고 산뜻하며 어짊과 옳음을 편안히 행하였다. 태산 호무씨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나이 스물에 이미 나이가 배로 되는 느낌이 있었으나, 자태와 모습이 맑고 슬기로워 거의 윗줄의 부인이었다. 고유의 집안 살림이 넉넉하고 높았는데, 이윽고 사공참군과 안고령을 그만두고 복천에 집을 지었다. 달려 움직이는 정이 이미 엷은 데다 또 어진 아내를 아끼고 즐겨 곧 거기서 마칠 뜻이 있었다. 상서령 하충이 취하여 관군참군으로 삼으매 억지로 명에 응하였는데, 돌아보고 그리워 얽히고 얽혀 서로 버리지 못하였다. 서로 시와 글을 주었는데 맑고 곱고 맵고 간절하였다」 하였다.

14이는 성냄인가 다만 말소리가 추하고 보는 것이 서툰 것만이 아니다

劉尹、江虨、王叔虎、孫興公同坐,江、王有相輕色。虨以手歙叔虎云:「酷吏!」詞色甚彊。劉尹顧謂:「此是瞋邪?非特是醜言聲,拙視瞻。」

유윤과 강빈과 왕숙호와 손흥공이 함께 앉았는데, 강씨와 왕씨가 서로 가벼이 여기는 낯빛이 있었다.

강빈이 손으로 숙호를 밀치며 말하였다. "모진 아전이로다."

말과 낯빛이 몹시 굳세었다.

유윤이 돌아보고 말하였다. "이는 성냄인가. 다만 말소리가 추하고 보는 것이 서툰 것만이 아니다."

협주 1

言江此言,非是醜拙,似有忿於王也。

강씨의 이 말이 추하고 서투른 것이 아니라 왕씨에게 성냄이 있는 듯하다는 말이다.

15요사이 손씨 집 아이가 글 짓는 것을 보니 무슨 물건이니 참 돼지니 하더라

孫綽作列仙商丘子贊曰:「所牧何物?殆非真豬。儻遇風雲,為我龍攄。」時人多以為能。王藍田語人云:「近見孫家兒作文,道何物、真豬也。」

손작이 「열선상구자찬」을 지어 말하였다. "치는 바가 무슨 물건인가. 아마 참 돼지가 아니리라. 만일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나를 위해 용처럼 펴리라."

그때 사람들이 흔히 잘하였다 하였다.

왕남전이 남에게 말하였다. "요사이 손씨 집 아이가 글 짓는 것을 보니 무슨 물건이니 참 돼지니 하더라."

협주 1

列仙傳曰:「商丘子晉者,商邑人。好吹竽牧豕,年七十,不娶妻而不老。問其須要,言『但食老朮、昌蒲根、飲水,如此便不饑不老耳』。貴戚富室,聞而服之,不能終歲輒止,謂將有匿術。孫綽為贊曰:『商丘卓犖,執策吹竽。渴飲寒泉,飢食菖蒲。所牧何物?殆非真豬。儻逢風雲,為我龍攄。』」

『열선전』에 이르기를 「상구자진이라는 이는 상읍 사람이다. 피리 불며 돼지 치기를 좋아하였는데 나이 일흔에 아내를 맞지 않고도 늙지 않았다. 그 필요한 바를 물으니 『다만 묵은 삽주와 창포 뿌리를 먹고 물을 마시면 이와 같이 곧 주리지 않고 늙지 않을 뿐이다』 하였다. 귀한 겨레와 넉넉한 집이 듣고 이를 먹었으나 해를 마치지 못하고 문득 그치며, 장차 숨긴 술법이 있으리라 하였다. 손작이 기림을 지어 이르기를 『상구자가 우뚝하여 채찍을 잡고 피리를 분다. 목마르면 찬 샘을 마시고 주리면 창포를 먹는다. 치는 바가 무슨 물건인가. 아마 참 돼지가 아니리라. 만일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나를 위해 용처럼 펴리라』 하였다」 하였다.

16그대는 어찌 「수초부」를 찾지 않고 억지로 남의 집 나랏일을 아는가

桓公欲遷都,以張拓定之業。孫長樂上表,諫此議甚有理。桓見表心服,而忿其為異,令人致意孫云:「君何不尋遂初賦,而彊知人家國事?」

환공이 서울을 옮겨 넓혀 정한 업을 펴고자 하였다.

손장락이 표를 올려 이 의논을 간하였는데 몹시 결이 있었다.

환씨가 표를 보고 마음으로 엎드렸으나 그가 다르게 함을 성내어, 사람을 시켜 손씨에게 뜻을 이르게 하였다. "그대는 어찌 「수초부」를 찾지 않고 억지로 남의 집 나랏일을 아는가."

협주 1

孫綽表諫曰:「中宗龍飛,實賴萬里長江,畫而守之耳。不然,胡馬久已踐建康之地,江東為豺狼之場矣。」綽賦遂初,陳止足之道。

손작이 표로 간하여 이르기를 「중종께서 용처럼 나신 것은 실로 만 리 긴 강에 힘입어 금 긋고 지켰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랑캐 말이 이미 건강의 땅을 밟은 지 오래요 강동이 승냥이와 이리의 마당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손작이 「수초」를 지어 그치고 넉넉히 여기는 도를 폈다.

17돌아가신 오라비의 문에는 이런 손이 있지 않았습니다

孫長樂兄弟就謝公宿,言至款雜。劉夫人在壁後聽之,具聞其語。謝公明日還,問:「昨客何似?」劉對曰:「亡兄門,未有如此賓客!」謝深有愧色。

손장락 형제가 사공에게 나아가 묵는데 말이 지극히 도탑고 섞였다.

유부인이 벽 뒤에서 이를 듣고 그 말을 다 들었다.

사공이 이튿날 돌아와 물었다. "어제 손은 어떠하였소."

유씨가 대답하였다. "돌아가신 오라비의 문에는 이런 손이 있지 않았습니다."

사공이 깊이 부끄러운 낯빛이 있었다.

협주 1

夫人,劉惔之妹。

부인은 유담의 누이다.

18현도가 짐짓 이에 이르지는 않을 만한데

簡文與許玄度共語,許云:「舉君、親以為難。」簡文便不復答。許去後而言曰:「玄度故可不至於此!」

간문제가 허현도와 함께 말하는데 허씨가 말하였다. "임금과 어버이를 드는 것이 어렵습니다."

간문제가 곧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허씨가 간 뒤에 말하였다. "현도가 짐짓 이에 이르지는 않을 만한데."

협주 1

按邴原別傳:「魏五官中郎將,嘗與群賢共論曰:『今有一丸藥,得濟一人疾,而君、父俱病,與君邪?與父邪?』諸人紛葩,或父、或君。原勃然曰:『父子,一本也。亦不復難。』」君、親相校,自古如此。未解簡文誚許意。

살피건대 『병원별전』에 「위나라 오관중랑장이 일찍이 뭇 어진 이와 함께 논하여 이르기를 『이제 한 알 약이 있어 한 사람의 병을 건질 수 있는데 임금과 아비가 함께 병들었으면 임금에게 주겠는가 아비에게 주겠는가』 하였다.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더러는 아비, 더러는 임금이라 하였다. 병원이 발끈하여 이르기를 『아비와 아들은 한 뿌리다. 또한 다시 어렵지 않다』 하였다」 하였다. 임금과 어버이를 서로 견줌은 예부터 이와 같으니, 간문제가 허씨를 꾸짖은 뜻을 알지 못하겠다.

19이는 우임금과 탕임금의 경계다

謝萬壽春敗後,還,書與王右軍云:「慙負宿顧。」右軍推書曰:「此禹、湯之戒。」

사만이 수춘에서 패한 뒤에 돌아와, 왕우군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묵은 돌아보심에 부끄러이 저버렸습니다."

우군이 글을 밀며 말하였다. "이는 우임금과 탕임금의 경계다."

협주 1

春秋傳曰:「禹、湯罪己,其興也勃焉。」言禹、湯以聖德自罪,所以能興。今萬失律致敗,雖復自咎,其可濟焉。故王嘉萬也。

『춘추전』에 이르기를 「우임금과 탕임금은 저를 죄주었으므로 그 일어남이 벌떡하였다」 하였다. 우임금과 탕임금이 성스러운 덕으로 스스로 죄주었으므로 일어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제 사만이 군율을 잃어 패함에 이르렀으니 비록 다시 스스로 허물하나 그것이 건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왕씨가 사만을 기린 것이다.

20삼조의 목숨 같은 악기를 손씨 집 아이가 두드려 꺾었구나

蔡伯喈睹睞笛椽,孫興公聽妓,振且擺折。王右軍聞,大嗔曰:「三祖壽樂器,虺瓦弔,孫家兒打折。」

채백개가 눈여겨본 피리 서까래를 손흥공이 기생의 놀이를 듣다가 흔들어 두드려 꺾었다.

왕우군이 듣고 크게 성내어 말하였다. "삼조의 목숨 같은 악기, 살무사 기와 조각 같은 것을 손씨 집 아이가 두드려 꺾었구나."

협주 3

伏滔長笛賦敘曰:「余同寮桓子野有故長笛,傳之耆老云:『蔡邕伯喈之所製也。』初,邕避難江南,宿於柯亭之館,以竹為椽,邕仰眄之,曰:『良竹也。』取以為笛,音聲獨絕。歷代傳之至於今。」

복도의 「장적부서」에 이르기를 「내 동료 환자야에게 옛 장적이 있는데 늙은이에게 전하기를 『채옹 백개가 지은 바다』 하였다. 처음에 채옹이 강남으로 난을 피하여 가정의 관에 묵었는데, 대로 서까래를 하였으매 채옹이 우러러 이를 곁눈질하고 『좋은 대다』 하였다. 가져다 피리를 만드니 소리가 홀로 뛰어났다. 여러 대를 전하여 이제에 이르렀다」 하였다.

一作臺。

수(壽)는 한 본에 대(臺)로 되어 있다.

一作尫凡。

훼와(虺瓦)는 한 본에 왕범(尫凡)으로 되어 있다.

21이 무슨 물건인 티끌 때 자루냐 묻는다

王中郎與林公絕不相得。王謂林公詭辯,林公道王云:「箸膩顏帢,布單衣,挾左傳,逐鄭康成車後,問是何物塵垢囊!」

왕중랑과 임공이 도무지 서로 맞지 않았다.

왕씨가 임공을 속임수 따짐이라 하고, 임공이 왕씨를 두고 말하였다. "기름때 낀 두건을 쓰고 베 홑옷을 입고 『좌전』을 끼고 정강성의 수레 뒤를 좇으며, 이 무슨 물건인 티끌 때 자루냐 묻는다."

협주 1

中郎,坦之。帢,帽也。裴子曰:「林公云:『文度箸膩顏,挾左傳,逐鄭康成,自為高足弟子。篤而論之,不離塵垢囊也。』」

중랑은 왕탄지다. 겁(帢)은 모자다. 『배자』에 이르기를 「임공이 이르기를 『문도가 기름때 낀 것을 쓰고 「좌전」을 끼고 정강성을 좇아 스스로 높은 발의 제자가 된다. 도타이 이를 논하면 티끌 때 자루를 떠나지 않는다』 하였다」 하였다.

22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어찌 이런 사람과 두루 지내셨겠는가

孫長樂作王長史誄云:「余與夫子,交非勢利,心猶澄水,同此玄味。」王孝伯見曰:「才士不遜,亡祖何至與此人周旋!」

손장락이 「왕장사뇌」를 지어 말하였다. "내가 부자와 사귐이 세력과 이로움이 아니요, 마음이 맑은 물 같아 이 아득한 맛을 같이하였다."

왕효백이 보고 말하였다. "재주 있는 선비가 겸손하지 않구나.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어찌 이런 사람과 두루 지내셨겠는가."

협주 1

禮記曰:「君子之交淡若水,小人之交甘若醴。」

『예기』에 이르기를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 같다」 하였다.

23중랑이 옷깃과 품이 비지 않았는데 다시 어찌 홀로 가질 수 있겠습니까

謝太傅謂子姪曰:「中郎始是獨有千載!」車騎曰:「中郎衿抱未虛,復那得獨有?」

사태부가 아들과 조카에게 말하였다. "중랑이야말로 비로소 홀로 천 해를 가졌다."

거기가 말하였다. "중랑이 옷깃과 품이 비지 않았는데 다시 어찌 홀로 가질 수 있겠습니까."

협주 1

中郎,謝萬。

중랑은 사만이다.

24그대는 이에 다시 배씨의 배움을 짓는구려

庾道季詫謝公曰:「裴郎云:『謝安謂裴郎乃可不惡,何得為復飲酒?』裴郎又云:『謝安目支道林,如九方臯之相馬,略其玄黃,取其儁逸。』」謝公云:「都無此二語,裴自為此辭耳!」庾意甚不以為好,因陳東亭經酒壚下賦。讀畢,都不下賞裁,直云:「君乃復作裴氏學!」於此語林遂廢。今時有者,皆是先寫,無復謝語。

유도계가 사공에게 놀라 말하였다. "배랑이 이르기를 『사안이 배랑은 이에 나쁘지 않다 하나 어찌 다시 술을 마시는가』 하였습니다. 배랑이 또 이르기를 『사안이 지도림을 두고 구방고가 말을 보는 것 같아 그 검고 누름을 대강 하고 그 뛰어나고 빼어남을 취한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사공이 말하였다. "도무지 이 두 말이 없었으니 배씨가 스스로 이 말을 지었을 뿐이오."

유씨가 뜻에 몹시 좋게 여기지 않아, 이로 인해 동정이 술집 아래를 지난 부를 폈다.

읽기를 마치자 도무지 기려 마름하지 않고 곧바로 말하였다. "그대는 이에 다시 배씨의 배움을 짓는구려."

이에 『어림』이 마침내 폐하여졌다. 이제 있는 것은 다 앞서 베낀 것이요 다시 사공의 말은 없다.

협주 3

庾龢、裴啟已見。

유화와 배계는 이미 보인다.

支遁傳曰:「遁每標舉會宗,而不留心象喻,解釋章句,或有所漏,文字之徒,多以為疑。謝安石聞而善之曰:『此九方皋之相馬也,略其玄黃,而取其俊逸。』」列子曰:「伯樂謂秦穆公曰:『臣所與共儋纆薪菜者,有九方皋,此其於馬,非臣之下也。』公使行求馬,反,曰:『得矣!牡而黃。』使人取之,牝而驪。公曰:『毛物牡牝之不知,何馬之能知也?』伯樂曰:『若皋之觀馬者,天機也。得其精,亡其麤。在其內,亡其外。見其所見,不見其所不見。視其所視,遺其所不視。若彼之所相,有貴於馬也。』既而,馬果千里足。」

『지둔전』에 이르기를 「지둔이 늘 마루를 모아 들었으나 모습과 견줌에 마음을 두지 않고 글귀를 풀어 밝힘에 더러 빠뜨린 바가 있으매, 글자의 무리가 흔히 이를 의심하였다. 사안석이 듣고 좋게 여겨 이르기를 『이는 구방고가 말을 보는 것이다. 그 검고 누름을 대강 하고 그 뛰어나고 빼어남을 취한다』 하였다」 하였다. 『열자』에 이르기를 「백락이 진나라 목공에게 이르기를 『신과 함께 짐을 지고 섶과 나물을 하던 이에 구방고가 있으니, 이는 그 말에 대해 신의 아래가 아닙니다』 하였다. 목공이 가서 말을 구하게 하니 돌아와 이르기를 『얻었습니다. 수말이요 누렇습니다』 하였다. 사람을 시켜 이를 가져오니 암말이요 검었다. 목공이 『털과 물건과 수컷과 암컷도 알지 못하니 무슨 말을 알 수 있겠는가』 하니, 백락이 『구방고가 말을 보는 것 같은 것은 하늘의 기틀입니다. 그 정한 것을 얻고 그 거친 것을 잃으며, 그 안에 있고 그 밖을 잃으며, 그 볼 바를 보고 그 보지 않을 바를 보지 않으며, 그 볼 바를 보고 그 보지 않을 바를 버립니다. 저가 보는 바 같은 것은 말보다 귀함이 있습니다』 하였다. 이윽고 말이 과연 천 리 가는 발이었다」 하였다.

續晉陽秋曰:「晉隆和中,河東裴啟撰漢、魏以來迄于今時,言語應對之可稱者,謂之語林。時人多好其事,文遂流行。後說太傅事不實,而有人於謝坐敘其黃公酒壚,司徒王珣為之賦,謝公加以與王不平,乃云:『君遂復作裴郎學。』自是眾咸鄙其事矣。安鄉人有罷中宿縣詣安者,安問其歸資。答曰:『嶺南凋弊,唯有五萬蒲葵扇,又以非時為滯貨。』安乃取其中者捉之,於是京師士庶競慕而服焉。價增數倍,旬月無賣。夫所好生羽毛,所惡成瘡痏。謝相一言,挫成美於千載,及其所與,崇虛價於百金。上之愛憎與奪,可不慎哉!」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진나라 융화 연간에 하동의 배계가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로 이제에 이르기까지 말과 대답 가운데 일컬을 만한 것을 모아 이를 『어림』이라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흔히 그 일을 좋아하여 글이 마침내 다녔다. 뒤에 태부의 일을 말한 것이 실답지 않았고, 또 어떤 사람이 사공의 자리에서 그 황공의 술집 이야기를 펴고 사도 왕순이 이를 위해 부를 지었다. 사공이 왕순과 사이가 고르지 않음을 더하여 이에 이르기를 『그대는 마침내 다시 배랑의 배움을 짓는구려』 하였다. 이로부터 뭇사람이 다 그 일을 더럽다 하였다. 사안의 마을 사람으로 중숙현을 그만두고 사안을 찾아온 이가 있어, 사안이 그 돌아온 밑천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영남이 시들고 헐어 오직 오만 부들부채가 있으나, 또 때가 아니어서 막힌 물건이 되었습니다』 하였다. 사안이 이에 그 가운데 것을 가져다 잡으니, 이에 서울의 선비와 백성이 다투어 그리워하여 이를 썼다. 값이 몇 배로 오르고 열흘 한 달에 팔 것이 없었다. 무릇 좋아하는 바는 깃과 털이 나고 미워하는 바는 부스럼이 된다. 사재상의 한마디가 천 해에 이룬 아름다움을 꺾었고, 그 주는 바에 미쳐서는 헛된 값을 백 금으로 높였다. 위에 있는 이의 아낌과 미움과 줌과 빼앗음을 삼가지 않을 수 있으랴」 하였다.

25사문은 높은 선비가 될 수 없다는 논

王北中郎不為林公所知,乃箸論沙門不得為高士論。大略云:「高士必在於縱心調暢,沙門雖云俗外,反更束於教,非情性自得之謂也。」

왕북중랑이 임공에게 알려지지 못하매, 이에 「사문은 높은 선비가 될 수 없다는 논」을 지었다.

대략 이르기를 「높은 선비는 반드시 마음을 멋대로 하여 고르고 시원한 데 있다. 사문은 비록 속됨 밖이라 하나 도리어 더욱 가르침에 묶이니, 정과 성품이 스스로 얻음을 이름이 아니다」 하였다.

26어찌 늙은 계집종 소리를 내는 데 이르겠소

人問顧長康:「何以不作洛生詠?」答曰:「何至作老婢聲!」

사람들이 고장강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낙양 글 읽는 소리로 읊지 않으시오."

대답하였다. "어찌 늙은 계집종 소리를 내는 데 이르겠소."

협주 1

洛下書生詠,音重濁,故云老婢聲。

낙양 아래 글 읽는 이의 읊음이 소리가 무겁고 흐리므로 늙은 계집종 소리라 한 것이다.

27뺨이 닮았다고 씩씩함을 짓기에 넉넉하겠습니까

殷顗、庾恆並是謝鎮西外孫。殷少而率悟,庾每不推。嘗俱詣謝公,謝公熟視殷曰:「阿巢故似鎮西。」於是庾下聲語曰:「定何似?」謝公續復云:「巢頰似鎮西。」庾復云:「頰似,足作健不?」

은의와 유항이 아울러 사진서의 외손이다.

은씨는 젊어서 시원하고 깨쳤는데 유씨가 늘 밀어 주지 않았다.

일찍이 함께 사공을 찾아가니, 사공이 은씨를 익히 보고 말하였다. "아소는 짐짓 진서를 닮았다."

이에 유씨가 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참으로 무엇이 닮았습니까."

사공이 이어 다시 말하였다. "아소의 뺨이 진서를 닮았다."

유씨가 다시 말하였다. "뺨이 닮았다고 씩씩함을 짓기에 넉넉하겠습니까."

협주 3

謝氏譜曰:「尚長女僧要適庾龢,次女僧韶適殷歆。」

『사씨보』에 이르기를 「사상의 맏딸 승요는 유화에게 갔고 둘째 딸 승소는 은흠에게 갔다」 하였다.

巢,殷顗小字也。

소는 은의의 아이 적 이름이다.

庾氏譜曰:「恒字敬則。祖亮,父龢。恒仕至尚書僕射。」

『유씨보』에 이르기를 「유항은 자가 경칙이다. 할아버지는 유량이요 아버지는 유화다. 유항은 벼슬이 상서복야에 이르렀다」 하였다.

28팔을 늘어뜨리매 풍채와 뼈대가 없다

舊目韓康伯:將肘無風骨。

예부터 한강백을 두고 말하였다. 팔을 늘어뜨리매 풍채와 뼈대가 없다고.

협주 1

說林曰:「范啟云:『韓康伯似肉鴨。』」

『설림』에 이르기를 「범계가 이르기를 『한강백은 살진 오리 같다』 하였다」 하였다.

29또한 다시 마침내 남과 다르지 않구나

符宏叛來歸國。謝太傅每加接引,宏自以有才,多好上人,坐上無折之者。適王子猷來,太傅使共語。子猷直孰視良久,回語太傅云:「亦復竟不異人!」宏大慚而退。

부굉이 배반하고 와서 나라에 돌아왔다.

사태부가 늘 맞아 이끌기를 더하니, 부굉이 스스로 재주가 있다 하여 흔히 남 위에 서기를 좋아하매 자리 위에 그를 꺾는 이가 없었다.

마침 왕자유가 오니 태부가 함께 말하게 하였다.

자유가 곧바로 익히 보기를 한참 하다가 태부를 돌아보고 말하였다. "또한 다시 마침내 남과 다르지 않구나."

부굉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협주 1

續晉陽秋曰:「宏,符堅太子也。堅為姚萇所殺,宏將母妻來投,詔賜田宅。桓玄以宏為將,玄敗,寇湘中,伏誅。」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부굉은 부견의 태자다. 부견이 요장에게 죽임을 당하매 부굉이 어미와 아내를 데리고 와서 의탁하니 조칙으로 밭과 집을 내렸다. 환현이 부굉으로 장수를 삼았는데, 환현이 무너지매 상중을 노략질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30흰 목 까마귀 한 떼를 보니 다만 깍깍거리는 소리만 들리더라

支道林入東,見王子猷兄弟。還,人問:「見諸王何如?」答曰:「見一群白頸烏,但聞喚啞啞聲。」

지도림이 동쪽에 들어가 왕자유 형제를 보았다.

돌아오매 사람들이 물었다. "여러 왕씨를 보니 어떠하시오."

대답하였다. "흰 목 까마귀 한 떼를 보니 다만 깍깍거리는 소리만 들리더라."

31아눌을 자리 머리에 있게 할 수 없소

王中郎舉許玄度為吏部郎。郗重熙曰:「相王好事,不可使阿訥在坐頭。」

왕중랑이 허현도를 들어 이부랑을 삼으려 하였다.

치중희가 말하였다. "상왕께서 일 벌이기를 좋아하시니 아눌을 자리 머리에 있게 할 수 없소."

협주 1

訥,詢小字。

눌은 허순의 아이 적 이름이다.

32사망채는 두리번두리번 매를 잃은 매잡이 같다

王興道謂:謝望蔡霍霍如失鷹師。

왕흥도가 말하였다. 사망채는 두리번두리번 매를 잃은 매잡이 같다고.

협주 1

永嘉記曰:「王和之字興道,琅琊人。祖翼,平南將軍。父胡之,司州刺史。和之歷永嘉太守、正員常侍。」望蔡,謝琰小字也。

『영가기』에 이르기를 「왕화지는 자가 흥도요 낭야 사람이다. 할아버지 왕익은 평남장군이요 아버지 왕호지는 사주자사다. 왕화지는 영가태수와 정원상시를 지냈다」 하였다. 망채는 사염의 아이 적 이름이다.

33그대는 애가의 배를 얻어도 마땅히 다시 쪄 먹지 않겠는가

桓南郡每見人不快,輒嗔云:「君得哀家梨,當復不烝食不?」

환남군이 사람을 볼 때마다 시원하지 않으면 문득 성내어 말하였다. "그대는 애가의 배를 얻어도 마땅히 다시 쪄 먹지 않겠는가."

협주 1

舊語:秣陵有哀仲家梨甚美,大如升,入口消釋。言愚人不別味,得好梨烝食之也。

옛말에 말릉에 애중의 집 배가 몹시 아름다워 크기가 되만 하고 입에 들면 사르르 녹았다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맛을 가리지 못하고 좋은 배를 얻어 쪄 먹는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