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휼世説新語 假譎第二十七
1도적이 여기 있다
魏武少時,嘗與袁紹好為游俠,觀人新婚,因潛入主人園中,夜叫呼云:「有偷兒賊!」青廬中人皆出觀,魏武乃入,抽刃劫新婦與紹還出,失道,墜枳棘中,紹不能得動,復大叫云:「偷兒在此!」紹遑迫自擲出,遂以俱免。
위나라 무제가 젊었을 때 일찍이 원소와 함께 협객으로 노닐기를 좋아하였다.
남이 새로 혼인하는 것을 보고 이로 인해 몰래 주인의 동산 안에 들어가, 밤에 외쳐 말하였다. "도적이 있다."
푸른 장막 안 사람이 다 나와 보매 위나라 무제가 이에 들어가 칼을 뽑아 새댁을 겁박하여, 원소와 함께 돌아 나오다가 길을 잃고 탱자 가시덤불 가운데 떨어졌다.
원소가 움직이지 못하매 다시 크게 외쳤다. "도적이 여기 있다."
원소가 다급하여 스스로 몸을 던져 나와 마침내 함께 면할 수 있었다.
협주 1
曹瞞傳曰:「操小字阿瞞,少好譎詐,遊放無度。」孫盛雜語云:「武王少好俠,放蕩不修行業。嘗私入常侍張讓宅中,讓乃手戟於庭,踰垣而出,有絕人力,故莫之能害也。」
『조만전』에 이르기를 「조조는 아이 적 이름이 아만이니 젊어서 속임과 거짓을 좋아하고 놀아 놓임이 도가 없었다」 하였다. 손성의 『잡어』에 이르기를 「무왕이 젊어서 협객을 좋아하고 놓아 방탕하며 일과 업을 닦지 않았다. 일찍이 몰래 상시 장양의 집 안에 들어갔는데, 장양이 이에 뜰에서 창을 들자 담을 넘어 나왔다. 남을 넘는 힘이 있었으므로 그를 해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하였다.
2앞에 큰 매화 숲이 있어 열매가 넉넉하니 목마름을 풀 만하다
魏武行役,失汲道,軍皆渴,乃令曰:「前有大梅林,饒子,甘酸,可以解渴。」士卒聞之,口皆出水,乘此得及前源。
위나라 무제가 부역을 다니다가 물 긷는 길을 잃어 군사가 다 목말랐다.
이에 명하였다. "앞에 큰 매화 숲이 있어 열매가 넉넉하고 달고 시니 목마름을 풀 만하다."
사졸이 이를 듣고 입에서 다 물이 나오매, 이를 타고 앞 샘에 미칠 수 있었다.
3이 사람은 죽도록 알지 못하고 거스름을 꾀하던 이가 기운이 꺾였다
魏武常言:「人欲危己,己輒心動。」因語所親小人曰:「汝懷刃密來我側,我必說『心動』。執汝使行刑;汝但勿言其使,無他,當厚相報。」執者信焉,不以為懼,遂斬之。此人至死不知也。左右以為實,謀逆者挫氣矣。
위나라 무제가 늘 말하였다. "남이 나를 위태롭게 하려 하면 내가 문득 마음이 움직인다."
이로 인해 가까이하는 작은 사람에게 말하였다. "네가 칼을 품고 몰래 내 곁에 오면 내가 반드시 『마음이 움직인다』 말하겠다. 너를 잡아 형벌을 행하게 할 터이니, 너는 다만 그 시킨 이를 말하지 마라. 딴 일이 없을 터이니 마땅히 두터이 갚아 주겠다."
잡힌 이가 이를 믿어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그를 베었다.
이 사람은 죽도록 알지 못하였고, 곁의 사람이 실로 그러하다 여겨 거스름을 꾀하던 이가 기운이 꺾였다.
협주 1
曹瞞傳曰:「操在軍,廩穀不足,私語主者曰:『何如?』主者云:『可以小斛足之。』操曰:『善。』後軍中言操欺眾,操題其主者,背以徇曰:『行小斛,盜軍穀。』遂斬之。仍云:『特當借汝死,以厭眾心。』其變詐皆此類也。」
『조만전』에 이르기를 「조조가 군에 있으며 곳간의 곡식이 모자라매 몰래 맡은 이에게 이르기를 『어찌하랴』 하니, 맡은 이가 『작은 말로 채울 수 있습니다』 하였다. 조조가 『좋다』 하였다. 뒤에 군중에서 조조가 무리를 속인다 말하매, 조조가 그 맡은 이를 적어 등에 붙이고 조리돌리며 이르기를 『작은 말을 써서 군량을 훔쳤다』 하고 마침내 그를 베었다. 그러고도 이르기를 『유난히 마땅히 네 죽음을 빌려 뭇 마음을 물리게 한다』 하였다. 그 바뀌고 속임이 다 이런 무리다」 하였다.
4이로부터 잘 때마다 곁의 사람이 감히 가까이하는 이가 없었다
魏武常云:「我眠中不可妄近,近便斫人,亦不自覺,左右宜深慎此!」後陽眠,所幸一人竊以被覆之,因便斫殺。自爾每眠,左右莫敢近者。
위나라 무제가 늘 말하였다. "내가 잘 때 함부로 가까이하지 마라. 가까이하면 곧 사람을 베되 또한 스스로 깨닫지 못하니, 곁의 사람은 마땅히 이를 깊이 삼가라."
뒤에 자는 척하니 사랑하던 한 사람이 몰래 이불로 덮어 주매, 이로 인해 곧 베어 죽였다.
이로부터 잘 때마다 곁의 사람이 감히 가까이하는 이가 없었다.
5칼이 이르매 과연 높았다
袁紹年少時,曾遣人夜以劍擲魏武,少下,不著。魏武揆之,其後來必高,因帖臥床上。劍至果高。
원소가 나이 어릴 때 일찍이 사람을 보내 밤에 칼로 위나라 무제에게 던졌는데, 조금 아래로 가서 맞지 않았다.
위나라 무제가 이를 헤아려 그 뒤에 오는 것은 반드시 높으리라 하여, 이로 인해 평상 위에 붙어 누웠다.
칼이 이르매 과연 높았다.
협주 1
按袁、曹後由鼎跱,跡始攜貳。自斯以前,不聞讎隙,有何意故而剚之以劍也?
살피건대 원씨와 조씨가 뒤에 솥발처럼 맞선 뒤로 자취가 비로소 갈라져 두 마음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는 원수와 틈이 있었다 듣지 못하였으니, 무슨 뜻과 까닭이 있어 칼로 찔렀겠는가.
6할멈은 그를 숨겨 주오
王大將軍既為逆,頓軍姑孰。晉明帝以英武之才,猶相猜憚,乃著戎服,騎巴賨馬,齎一金馬鞭,陰察軍形勢。未至十餘里,有一客姥,居店賣食。帝過愒之,謂姥曰:「王敦舉兵圖逆,猜害忠良,朝廷駭懼,社稷是憂。故劬勞晨夕,用相覘察,恐形迹危露,或致狼狽。追迫之日,姥其匿之。」便與客姥馬鞭而去。行敦營匝而出,軍士覺,曰:「此非常人也!」敦臥心動,曰:「此必黃鬚鮮卑奴來!」命騎追之,已覺多許里,追士因問向姥:「不見一黃鬚人騎馬度此邪?」姥曰:「去已久矣,不可復及。」於是騎人息意而反。
왕대장군이 이미 거스름을 짓고 고숙에 군사를 머물렀다.
진나라 명제가 영특하고 굳센 재주로도 오히려 서로 의심하고 꺼려, 이에 군복을 입고 파종의 말을 타고 금 말채찍 하나를 가지고 몰래 군사의 형세를 살폈다.
열 남짓 리에 이르기 전에 한 나그네 할멈이 있어 가게를 두고 밥을 팔았다.
임금이 지나며 여기서 쉬고 할멈에게 말하였다. "왕돈이 군사를 들어 거스름을 꾀하고 참되고 어진 이를 의심하여 해치매, 조정이 놀라 두려워하고 사직이 이에 근심스럽소. 그러므로 새벽과 저녁으로 애써 이를 엿보아 살피는데, 자취가 위태로이 드러나 혹 허둥거림에 이를까 두렵소. 뒤쫓아 다그치는 날에 할멈은 그를 숨겨 주오."
곧 나그네 할멈에게 말채찍을 주고 갔다.
왕돈의 진영을 한 바퀴 돌고 나오매 군사가 깨닫고 말하였다. "이는 예사 사람이 아니다."
왕돈이 누웠다가 마음이 움직여 말하였다. "이는 반드시 누런 수염 선비족 종놈이 온 것이다."
기병에게 명하여 뒤쫓게 하였으나 이미 여러 리를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뒤쫓던 군사가 이로 인해 아까의 할멈에게 물었다. "누런 수염의 한 사람이 말 타고 여기를 지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할멈이 말하였다. "간 지 이미 오래니 다시 미칠 수 없소."
이에 기병이 뜻을 쉬고 돌아갔다.
협주 1
異苑曰:「帝躬往姑孰,敦時晝寢,卓然驚悟曰:『營中有黃頭鮮卑奴來,何不縛取?』帝所生母荀氏,燕國人,故貌類焉。」
『이원』에 이르기를 「임금이 몸소 고숙에 갔는데 왕돈이 그때 낮에 자다가 우뚝 놀라 깨어 이르기를 『진영 가운데 누런 머리 선비족 종놈이 왔는데 어찌 잡아 묶지 않는가』 하였다. 임금을 낳은 어미 순씨가 연나라 사람이므로 모습이 그를 닮았다」 하였다.
7이에 토하여 머리와 낯과 이불과 요를 더럽히고 익히 자는 척하다
王右軍年裁十歲時,大將軍甚愛之,恆置帳中眠。大將軍嘗先出,右軍猶未起;須臾,錢鳳入,屏人論事,都忘右軍在帳中,便言逆節之謀。右軍覺,既聞所論,知無活理,乃剔吐汙頭面被褥,詐熟眠。敦論事造半,方意右軍未起,相與大驚曰:「不得不除之!」及開帳,乃見吐唾從橫,信其實熟眠,於是得全。于時稱其有智。
왕우군이 나이 겨우 열 살일 때 대장군이 몹시 그를 아껴 늘 휘장 안에 두고 재웠다.
대장군이 일찍이 먼저 나갔는데 우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 뒤에 전봉이 들어와 사람을 물리고 일을 논하며, 도무지 우군이 휘장 안에 있음을 잊고 곧 반역할 꾀를 말하였다.
우군이 깨어 이미 논하는 바를 듣고 살 길이 없음을 알아, 이에 후벼 토하여 머리와 낯과 이불과 요를 더럽히고 익히 자는 척하였다.
왕돈이 일을 논하다가 절반쯤 이르러 바야흐로 우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서로 함께 크게 놀라 말하였다. "없애지 않을 수 없다."
휘장을 열매 이에 토한 침이 이리저리 널린 것을 보고 그가 참으로 익히 잠을 믿었으니, 이에 온전할 수 있었다.
이때 그 슬기 있음을 일컬었다.
협주 2
晉陽秋曰:「鳳字世儀,吳嘉興尉子也。姦慝好利。為敦鎧曹參軍,知敦有不臣心,因進說。後敦敗,見誅。」
『진양추』에 이르기를 「전봉은 자가 세의요 오나라 가흥위의 아들이다. 간사하고 이로움을 좋아하였다. 왕돈의 개조참군이 되어 왕돈에게 신하답지 않은 마음이 있음을 알고 이로 인해 나아가 달랬다. 뒤에 왕돈이 무너지매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按諸書皆云王允之事,而此言羲之,疑謬。
살피건대 여러 책이 다 왕윤지의 일이라 이르는데 여기서는 왕희지라 말하니 그른 듯하다.
8유원규가 무슨 까닭으로 도사형에게 절하는가
陶公自上流來,赴蘇峻之難,令誅庾公。謂必戮庾,可以謝峻。庾欲奔竄,則不可;欲會,恐見執,進退無計。溫公勸庾詣陶,曰:「卿但遙拜,必無它。我為卿保之。」庾從溫言詣陶。至,便拜。陶自起止之,曰:「庾元規何緣拜陶士衡?」畢,又降就下坐。陶又自要起同坐。坐定,庾乃引咎責躬,深相遜謝。陶不覺釋然。
도공이 위 흐름에서 와서 소준의 어려움에 나아가매 유공을 베라 명하였다.
반드시 유량을 죽여야 소준에게 사죄할 수 있다 여긴 것이다.
유량이 달아나 숨고자 하나 곧 될 수 없고, 만나고자 하나 잡힐까 두려워 나아가고 물러남에 꾀가 없었다.
온공이 유량에게 도씨를 찾아가라 권하며 말하였다. "경은 다만 멀리서 절하시오. 반드시 딴 일이 없을 것이오. 내가 경을 위해 이를 보장하겠소."
유량이 온씨의 말을 좇아 도씨를 찾아갔다. 이르러 곧 절하였다.
도씨가 스스로 일어나 이를 그치게 하며 말하였다. "유원규가 무슨 까닭으로 도사형에게 절하는가."
마치고 또 내려와 아랫자리에 나아가니, 도씨가 또 스스로 청하여 일어나 함께 앉았다.
앉음이 정해지매 유량이 이에 허물을 끌어 제 몸을 꾸짖고 깊이 서로 겸손히 사죄하였다.
도씨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풀렸다.
협주 1
晉陽秋曰:「是時成帝在襁褓,太后臨朝,中書令庾亮以元舅輔政,欲以風軌格政,繩御四海。而峻擁兵近甸,為逋逃藪。亮圖召峻,王導、卞壺並不欲。亮曰:『蘇峻豺狼,終為禍亂,晁錯所謂削亦反,不削亦反。』遂下優詔,以大司農徵之。峻怒曰:『庾亮欲誘殺我也。』遂克京邑。平南溫嶠聞亂,號泣登舟,遣參軍王愆期推征西陶侃為盟主,俱赴京師。時亮敗績奔嶠,人皆尤而少之。嶠愈相崇重,分兵以配給之。」
『진양추』에 이르기를 「이때 성제가 강보에 있어 태후가 조회에 임하고 중서령 유량이 큰 외숙으로 정사를 도왔는데, 기풍과 법도로 정사를 바로잡아 사해를 줄로 몰고자 하였다. 그런데 소준이 군사를 안고 서울 가까이 있어 달아나 도망한 이의 늪이 되었다. 유량이 소준을 부르기를 꾀하매 왕도와 변곤이 아울러 하고자 하지 않았다. 유량이 『소준은 승냥이와 이리라 마침내 화와 어지러움이 될 것이니, 조조가 이른바 깎아도 배반하고 깎지 않아도 배반한다는 것이다』 하였다. 마침내 넉넉한 조칙을 내려 대사농으로 그를 불렀다. 소준이 성내어 『유량이 나를 꾀어 죽이려 한다』 하고 마침내 서울을 이겼다. 평남 온교가 어지러움을 듣고 부르짖어 울며 배에 올라, 참군 왕건기를 보내 정서 도간을 밀어 맹주로 삼고 함께 서울로 나아갔다. 그때 유량이 패하여 온교에게 달아나매 사람들이 다 허물하고 그를 낮추었다. 온교가 더욱 서로 높이고 무겁게 여겨 군사를 나누어 그에게 대어 주었다」 하였다.
9내가 본디 늙은 종인가 의심하였더니 과연 점친 대로구나
溫公喪婦,從姑劉氏,家值亂離散,唯有一女,甚有姿慧,姑以屬公覓婚。公密有自婚意,答云:「佳壻難得,但如嶠比云何?」姑云:「喪敗之餘,乞粗存活,便足慰吾餘年,何敢希汝比?」卻後少日,公報姑云:「已覓得婚處,門地粗可,壻身名宦,盡不減嶠。」因下玉鏡臺一枚。姑大喜。既婚,交禮,女以手披紗扇,撫掌大笑曰:「我固疑是老奴,果如所卜!」玉鏡臺,是公為劉越石長史,北征劉聰所得。
온공이 아내를 잃었다.
종고모 유씨는 집이 어지러움을 만나 흩어지고 오직 딸 하나만 있었는데 몹시 자태와 슬기가 있었다.
고모가 이를 온공에게 부탁하여 혼처를 찾게 하였다.
온공이 몰래 스스로 혼인할 뜻이 있어 대답하였다. "아름다운 사위는 얻기 어려우니 다만 저 온교 같은 이에 견주면 어떠하겠습니까."
고모가 말하였다. "헐고 무너진 나머지에 거칠게나마 살아가기를 빌 뿐이니, 곧 내 남은 나이를 위로하기에 넉넉하다. 어찌 감히 너에 견줌을 바라겠느냐."
그 뒤 며칠 만에 온공이 고모에게 알렸다. "이미 혼처를 찾았는데 문벌과 땅이 거칠게나마 괜찮고, 사위의 몸은 이름과 벼슬이 다 온교에 못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옥거울 받침 하나를 내렸다. 고모가 크게 기뻐하였다.
이윽고 혼인하여 예를 나눌 때, 딸이 손으로 깁부채를 헤치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내가 본디 늙은 종인가 의심하였더니 과연 점친 대로구나."
옥거울 받침은 온공이 유월석의 장사가 되어 북쪽으로 유총을 칠 때 얻은 것이다.
협주 2
按溫氏譜:「嶠初取高平李暅女,中取琅琊王詡女,後取廬江何邃女。都不聞取劉氏,便為虛謬。」谷口云:「劉氏,政謂其姑爾,非指其女姓劉也。孝標之注,亦未為得。」
살피건대 『온씨보』에 「온교가 처음에 고평 이훤의 딸을 맞고 가운데 낭야 왕후의 딸을 맞고 뒤에 여강 하수의 딸을 맞았다」 하니, 도무지 유씨를 맞았다 듣지 못하였으므로 곧 헛되고 그르다. 곡구가 이르기를 「유씨는 바로 그 고모를 이를 뿐이요 그 딸의 성이 유씨라 가리킨 것이 아니다. 효표의 주도 또한 얻었다 하지 못한다」 하였다.
王隱晉書曰:「建興二年,嶠為劉琨假守左司馬,都督上前鋒諸軍事,討劉聰。」晉陽秋曰:「聰一名載,字玄明,屠各人。父淵,因亂起兵死。聰嗣業。」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건흥 이 년에 온교가 유곤을 위해 좌사마를 임시로 지키며 앞 봉우리 여러 군사의 일을 도독하여 유총을 쳤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유총은 한 이름이 재요 자는 현명이니 도각 사람이다. 아버지 유연이 어지러움으로 인해 군사를 일으켰다가 죽고 유총이 업을 이었다」 하였다.
10강랑을 깨우라 불러라
諸葛令女,庾氏婦,既寡,誓云:「不復重出!」此女性甚正彊,無有登車理。恢既許江思玄婚,乃移家近之。初,誑女云:「宜徙。」於是家人一時去,獨留女在後。比其覺,已不復得出。江郎莫來,女哭詈彌甚,積日漸歇。江虨暝入宿,恆在對床上。後觀其意轉帖,虨乃詐厭,良久不悟,聲氣轉急。女乃呼婢云:「喚江郎覺!」江於是躍來就之曰:「我自是天下男子,厭,何預卿事而見喚邪?既爾相關,不得不與人語。」女默然而慙,情義遂篤。
제갈영의 딸은 유씨의 아내인데 이미 홀로 되어 맹세하였다. "다시 거듭 나가지 않겠다."
이 딸은 성품이 몹시 바르고 굳세어 시집갈 길이 없었다.
제갈회가 이미 강사현과 혼인을 허락하매, 이에 집을 옮겨 그에게 가까이하였다.
처음에 딸을 속여 말하였다. "마땅히 옮겨야 한다."
이에 집 사람이 한때에 가고 홀로 딸만 뒤에 남겼다.
그가 깨달을 즈음에는 이미 다시 나갈 수 없었다.
강랑이 저녁에 오매 딸이 곡하고 꾸짖기를 더욱 심히 하였는데 날이 쌓이자 차츰 그쳤다.
강빈이 어두울 때 들어와 묵되 늘 마주한 평상 위에 있었다.
뒤에 그 뜻이 굴러 눅어짐을 보고 강빈이 이에 가위눌린 척하여, 한참 깨지 않고 소리와 숨결이 굴러 급하였다.
딸이 이에 계집종을 불러 말하였다. "강랑을 깨우라 불러라."
강씨가 이에 뛰어와 그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는 절로 천하의 사내인데 가위눌림이 경의 일에 무슨 상관이라 불렀소. 이미 그렇게 상관하였으니 남과 말하지 않을 수 없소."
딸이 잠잠히 부끄러워하여 정과 옳음이 마침내 도타워졌다.
협주 2
即庾亮子會妻。父虨,已見上。
곧 유량의 아들 유회의 아내다. 아버지 강빈은 이미 위에 보인다.
葛令之清英,江君之茂識,必不背聖人之正典,習蠻夷之穢行。康王之言,所輕多矣。
제갈영의 맑고 빼어남과 강군의 무성한 앎으로, 반드시 성인의 바른 법을 저버리고 오랑캐의 더러운 행실을 익히지 않았을 것이다. 강왕의 말은 가벼운 것이 많다.
11뜻 없음이 어찌 세울 만한가
愍度道人始欲過江,與一傖道人為侶,謀曰:「用舊義往江東,恐不辦得食。」便共立「心無義」。既而此道人不成渡,愍度果講義積年。後有傖人來,先道人寄語云:「為我致意愍度,無義那可立?治此計,權救饑爾!無為遂負如來也。」
민도도인이 처음 강을 건너려 할 때 한 촌뜨기 도인과 짝이 되어 꾀하였다. "옛 뜻을 가지고 강동에 가면 밥을 마련해 얻지 못할까 두렵다."
곧 함께 「마음 없다는 뜻」을 세웠다.
이윽고 이 도인은 건너지 못하였고 민도는 과연 여러 해 뜻을 강론하였다.
뒤에 촌뜨기 사람이 오매 앞의 도인이 말을 부쳤다. "나를 위해 민도에게 뜻을 이르시오. 뜻 없음이 어찌 세울 만한가. 이 꾀를 다스린 것은 잠깐 주림을 건지려 함일 뿐이오. 마침내 여래를 저버리지 마시오."
협주 2
名德沙門題目曰:「支愍度才鑒清出。」孫綽愍度贊曰:「支度彬彬,好是拔新。俱稟昭見,而能越人。世重秀異,咸競爾珍。孤桐嶧陽,浮磬泗濱。」
「명덕사문제목」에 이르기를 「지민도는 재주와 살핌이 맑게 빼어났다」 하였다. 손작의 「민도찬」에 이르기를 「지민도가 빛나고 빛나 이 새로움을 뽑기를 좋아한다. 함께 밝게 봄을 받았으나 남을 넘을 수 있다. 세상이 빼어나고 남다름을 무겁게 여겨 다 그 보배로움을 다툰다. 역양의 외로운 오동이요 사수 물가의 뜬 경쇠로다」 하였다.
舊義者曰:「種智有是,而能圓照。然則萬累斯盡,謂之空無;常住不變,謂之妙有。」而無義者曰:「種智之體,豁如太虛,虛而能知,無而能應。居宗至極,其唯無乎?」
옛 뜻이라는 이는 이르기를 「씨앗 슬기에 있음이 있어 두루 비출 수 있다. 그러면 곧 만 가지 얽매임이 이에 다하니 이를 비어 없음이라 이르고, 늘 머물러 바뀌지 않으니 이를 묘하게 있음이라 이른다」 하였다. 그런데 뜻 없다는 이는 이르기를 「씨앗 슬기의 몸은 트여 큰 허공 같으니, 비었으되 알 수 있고 없으되 응할 수 있다. 마루에 살아 지극함에 이르는 것이 그 오직 없음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12바야흐로 손흥공의 속임을 알다
王文度弟阿智,惡乃不翅,當年長而無人與婚。孫興公有一女,亦僻錯,又無嫁娶理。因詣文度,求見阿智。既見,便陽言:「此定可,殊不如人所傳,那得至今未有婚處?我有一女,乃不惡,但吾寒士,不宜與卿計,欲令阿智娶之。」文度欣然而啟藍田云:「興公向來,忽言欲與阿智婚。」藍田驚喜。既成婚,女之頑嚚,欲過阿智。方知興公之詐。
왕문도의 아우 아지는 나쁨이 이에 그칠 뿐이 아니어서, 그해에 나이가 들었으나 더불어 혼인할 이가 없었다.
손흥공에게 딸 하나가 있어 또한 치우치고 어긋나 또 시집갈 결이 없었다.
이로 인해 문도를 찾아가 아지 보기를 구하였다.
이윽고 보고 곧 거짓말하였다. "이만하면 참으로 괜찮고 자못 남이 전하는 바와 같지 않은데, 어찌하여 이제까지 혼처가 없었소. 나에게 딸 하나가 있어 이에 나쁘지 않으나, 다만 나는 가난한 선비라 경과 셈함이 마땅하지 않소. 아지에게 이를 맞게 하고자 하오."
문도가 흔연히 남전에게 아뢰었다. "흥공이 아까 와서 홀연히 아지와 혼인하고자 한다 말하였습니다."
남전이 놀라고 기뻐하였다.
이윽고 혼인하매 딸의 모질고 어리석음이 아지를 넘으려 하니, 바야흐로 흥공의 속임을 알았다.
협주 1
阿智,王虔之小字。虔之字文將,辟州別駕,不就。娶太原孫綽女,字阿恒。
아지는 왕건지의 아이 적 이름이다. 왕건지는 자가 문장이요 주별가에 불렸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태원 손작의 딸을 맞으니 자가 아항이다.
13아까의 헛되이 기다림이 한때에 다 없어졌다
范玄平為人,好用智數,而有時以多數失會。嘗失官居東陽,桓大司馬在南州,故往投之。桓時方欲招起屈滯,以傾朝廷;且玄平在京,素亦有譽,桓謂遠來投己,喜躍非常。比入至庭,傾身引望,語笑歡甚。顧謂袁虎曰:「范公且可作太常卿。」范裁坐,桓便謝其遠來意。范雖實投桓,而恐以趨時損名,乃曰:「雖懷朝宗,會有亡兒瘞在此,故來省視。」桓悵然失望,向之虛佇,一時都盡。
범현평은 사람됨이 슬기와 셈 쓰기를 좋아하였으나, 때로 셈이 많아 만남을 잃었다.
일찍이 벼슬을 잃고 동양에 사는데 환대사마가 남주에 있으매 짐짓 가서 그에게 의탁하였다.
환씨가 그때 바야흐로 굽히고 막힌 이를 불러 일으켜 조정을 기울이려 하였고, 또 현평이 서울에 있을 때 본디 또한 기림이 있었다.
환씨가 멀리서 저에게 의탁하러 왔다 하여 기뻐 뛰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뜰에 들어올 즈음에 몸을 기울여 끌어 바라보며 말하고 웃기를 몹시 기뻐하였다.
원호를 돌아보고 말하였다. "범공은 또 태상경을 지을 만하오."
범씨가 겨우 앉으매 환씨가 곧 그 멀리 온 뜻을 사례하였다.
범씨가 비록 실로 환씨에게 의탁한 것이나, 때를 좇았다 하여 이름을 덜까 두려워 이에 말하였다. "비록 조정을 뵐 마음을 품었으나, 마침 죽은 아이를 여기 묻어 두었으므로 짐짓 와서 살펴본 것입니다."
환씨가 서운히 낙담하여, 아까의 헛되이 기다림이 한때에 다 없어졌다.
협주 1
中興書曰:「初,桓溫請范汪為征西長史,復表為江州,並不就。還都,因求為東陽太守,溫甚恨之。汪後為徐州,溫北伐,令汪出梁國,失期,溫挾憾奏汪為庶人。汪居吳,後至姑孰見溫,溫語其下曰:『玄平乃來見,當以護軍起之。』汪數日辭歸,溫曰:『卿適來,何以便去?』汪曰:『數歲小兒喪,往年經亂,權瘞此境,故來迎之,事竟去耳。』溫愈怒之,竟不屑意。」
『중흥서』에 이르기를 「처음에 환온이 범왕에게 정서장사 되기를 청하고 다시 표로 강주를 삼았으나 아울러 나아가지 않았다. 서울에 돌아와 이로 인해 동양태수 되기를 구하니 환온이 몹시 그를 한하였다. 범왕이 뒤에 서주가 되었는데, 환온이 북쪽으로 칠 때 범왕에게 양국으로 나가게 하였으나 기약을 잃으매, 환온이 한을 끼고 범왕을 여느 사람으로 삼기를 아뢰었다. 범왕이 오 땅에 살다가 뒤에 고숙에 이르러 환온을 보니, 환온이 그 아랫사람에게 이르기를 『현평이 이에 와서 보니 마땅히 호군으로 그를 일으키겠다』 하였다. 범왕이 며칠 만에 하직하고 돌아가려 하니, 환온이 『경이 마침 왔는데 어찌 곧 가는가』 하였다. 범왕이 『몇 살 된 어린아이가 죽었는데 지난해 어지러움을 겪어 잠깐 이 지경에 묻었으므로, 짐짓 와서 이를 맞으니 일이 끝나 갈 뿐입니다』 하였다. 환온이 더욱 그를 성내어 마침내 뜻을 두지 않았다」 하였다.
14속여 걸고 얻어 곧 태워 버리다
謝遏年少時,好著紫羅香囊,垂覆手。太傅患之,而不欲傷其意,乃譎與賭,得即燒之。
사알이 나이 어릴 때 자줏빛 비단 향주머니를 차고 덮는 손수건을 드리우기를 좋아하였다.
태부가 이를 걱정하였으나 그 뜻을 다치게 하고자 하지 않아, 이에 속여 걸고 얻어 곧 태워 버렸다.
협주 1
遏,謝玄小字。
알은 사현의 아이 적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