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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면世説新語 黜免第二十八

세설신어 世說新語 · 유의경(劉義慶) 엮음 · 유효표(劉孝標) 주 · 남조 송(5세기) · 양 유효표 주 · 단락 9 · 한자 524자 · 낭독 2.1분

「세설신어」 「출면」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 몇 살 난 아이가 아버지 무릎에서 한 대답이다. 이튿날 다시 묻자 「해가 가깝습니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했다.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이백여 해,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과 몸짓만을 서른여섯 갈래로 나누어 모았다. 덕행·언어·정사·문학에서 시작해 사치·성냄·시새움·원수까지 내려가니, 기릴 것과 나무랄 것을 같은 무게로 놓은 셈이다. 대숲의 일곱 사람이 나오고, 왕희지가 사위로 뽑히고, 눈 오는 밤 배를 저어 벗의 집 앞까지 갔다가 흥이 다했다며 돌아온다. 한 조각이 대개 서너 줄, 길어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유효표가 백여 종의 책을 끌어와 단 주는 그 책들이 거의 다 없어진 지금 도리어 본문보다 길게 남았다.

1거스름이면 곧 마땅히 죽일 것이지 미쳤다면 어디로 옮기는가

諸葛厷在西朝,少有清譽,為王夷甫所重,時論亦以擬王。後為繼母族黨所讒,誣之為狂逆。將遠徙,友人王夷甫之徒,詣檻車與別。厷問:「朝廷何以徙我?」王曰:「言卿狂逆。」厷曰:「逆則應殺,狂何所徙?」

제갈굉이 서쪽 조정에 있을 때 젊어서 맑은 기림이 있어 왕이보에게 무겁게 여겨졌고, 그때 논하는 이도 또한 왕씨에 견주었다.

뒤에 계모의 겨레붙이에게 헐뜯긴 바 되어 미치고 거스른다 무고당하였다.

장차 멀리 옮겨지매 벗 왕이보의 무리가 죄수 수레에 나아가 그와 헤어졌다.

제갈굉이 물었다. "조정이 어찌하여 나를 옮기는가."

왕씨가 말하였다. "경이 미치고 거스른다 말하오."

제갈굉이 말하였다. "거스름이면 곧 마땅히 죽일 것이지 미쳤다면 어디로 옮기는가."

협주 1

厷已見。

제갈굉은 이미 보인다.

2창자가 다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桓公入蜀,至三峽中,部伍中有得猨子者。其母緣岸哀號,行百餘里不去,遂跳上船,至便即絕。破視其腹中,腸皆寸寸斷。公聞之,怒,命黜其人。

환공이 촉에 들어가 삼협 가운데 이르렀는데, 부대 가운데 원숭이 새끼를 얻은 이가 있었다.

그 어미가 언덕을 따라 슬피 부르짖으며 백 남짓 리를 가도록 떠나지 않다가, 마침내 배에 뛰어올라 이르자 곧 숨이 끊어졌다.

쪼개어 그 배 안을 보니 창자가 다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공이 이를 듣고 성내어 그 사람을 내치라 명하였다.

협주 1

《荊州記》曰:「峽長七百里,兩岸連山,略無絕處,重巖疊障,隱天蔽日。常有高猿長嘯,屬引清遠。漁者歌曰:『巴東三峽巫峽長,猿鳴三聲淚沾裳。』」

『형주기』에 이르기를 「골짜기가 길이 칠백 리에 두 언덕이 산을 이어 조금도 끊긴 데가 없고, 겹친 바위와 포개진 가림이 하늘을 숨기고 해를 가린다. 늘 높은 원숭이가 길게 부르짖어 맑고 먼 데까지 이어 끈다. 고기잡이가 노래하기를 『파동 삼협의 무협이 기니, 원숭이 세 소리에 눈물이 옷을 적신다』 하였다」 하였다.

3쯧쯧 괴이한 일이라는 네 글자를 지을 뿐이었다

殷中軍被廢,在信安,終日恆書空作字。揚州吏民尋義逐之,竊視,唯作「咄咄怪事」四字而已。

은중군이 폐함을 입어 신안에 있으며 온종일 늘 허공에 글자를 썼다.

양주의 아전과 백성이 뜻을 찾아 그를 좇아 몰래 보니, 오직 「쯧쯧 괴이한 일」 네 글자를 지을 뿐이었다.

협주 1

《晉陽秋》曰:「初,浩以中軍將軍鎮壽陽,羌姚襄上書歸降。後有罪,浩陰圖誅之。會關中有變,符健死。浩偽率軍而行,云『修復山陵』。襄前驅,恐,遂反。軍至山桑,聞襄將至,棄輜重馳保譙。襄至,據山桑,焚其舟實。至壽陽,略流民而還。浩士卒多叛,征西溫乃上表黜浩,撫軍大將軍奏免浩,除名為民。浩馳還謝罪。既而遷于東陽信安縣。」

『진양추』에 이르기를 「처음에 은호가 중군장군으로 수양을 지키는데 강족 요양이 글을 올려 항복해 왔다. 뒤에 죄가 있으매 은호가 몰래 그를 베기를 꾀하였다. 마침 관중에 바뀜이 있어 부건이 죽었다. 은호가 거짓으로 군사를 이끌고 가며 『산릉을 닦아 되찾는다』 하였다. 요양이 앞장섰는데 두려워하여 마침내 배반하였다. 군사가 산상에 이르러 요양이 장차 온다는 말을 듣고, 그 짐수레를 버리고 달려 초 땅을 지켰다. 요양이 이르러 산상을 차지하고 그 배와 물자를 태웠다. 수양에 이르러 흐르는 백성을 노략하여 돌아왔다. 은호의 사졸이 많이 배반하매 정서 환온이 이에 표를 올려 은호를 내치기를 아뢰고, 무군대장군이 은호를 면하기를 아뢰어 이름을 지우고 백성으로 삼았다. 은호가 달려 돌아와 죄를 빌었다. 이윽고 동양 신안현으로 옮겨졌다」 하였다.

4한 소반에서도 오히려 서로 돕지 않는데 하물며 다시 위태롭고 어려울 때랴

桓公坐有參軍椅烝薤不時解,共食者又不助,而椅終不放,舉坐皆笑。桓公曰:「同盤尚不相助,況復危難乎?」敕令免官。

환공의 자리에 한 참군이 있어 찐 염교를 집었는데 제때 풀어지지 않았다.

함께 먹던 이가 또 돕지 않았고 그 참군도 마침내 놓지 않으매 온 자리가 다 웃었다.

환공이 말하였다. "한 소반에서도 오히려 서로 돕지 않는데 하물며 다시 위태롭고 어려울 때랴."

명하여 벼슬을 면하게 하였다.

5사람을 백 자 다락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메고 가 버렸다

殷中軍廢後,恨簡文曰:「上人著百尺樓上,儋梯將去。」

은중군이 폐한 뒤에 간문제를 한하여 말하였다. "사람을 백 자 다락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메고 가 버렸다."

협주 1

《續晉陽秋》曰:「浩雖廢黜,夷神委命,雅詠不輟,雖家人不見其有流放之戚。外生韓伯始隨至徙所,周年還都,浩素愛之,送至水側,乃詠曹顏遠詩曰:『富貴它人合,貧賤親戚離。』因泣下。」其悲見于外者,唯此一事而已。則「書空」、「去梯」之言,未必皆實也。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은호가 비록 폐하여 내쳐졌으나 정신을 평온히 하고 명에 맡겨 우아하게 읊기를 그치지 않아, 비록 집 사람이라도 그가 흘려 놓인 슬픔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 생질 한백이 처음에 옮겨진 데까지 따라갔다가 한 해 만에 서울로 돌아가매, 은호가 본디 그를 아꼈으므로 물가까지 보내고, 이에 조안원의 시를 읊어 이르기를 『부유하고 귀함에는 남이 모이고 가난하고 천함에는 겨레붙이가 떠난다』 하고 이로 인해 눈물을 흘렸다」 하였다. 그 슬픔이 밖에 드러난 것은 오직 이 한 가지 일뿐이다. 그러면 곧 「허공에 글씨 쓰기」와 「사다리 메고 가기」의 말은 반드시 다 실답지는 않다.

6깨진 시루에 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鄧竟陵免官後赴山陵,過見大司馬桓公。公問之曰:「卿何以更瘦?」鄧曰:「有愧於叔達,不能不恨於破甑!」

등경릉이 벼슬을 면한 뒤에 산릉에 나아가다가, 지나는 길에 대사마 환공을 뵈었다.

공이 그에게 물었다. "경은 어찌하여 더 여위었소."

등씨가 말하였다. "숙달에게 부끄러움이 있어 깨진 시루에 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협주 2

《大司馬寮屬名》曰:「鄧遐字應玄,陳郡人,平南將軍岳之子。勇力絕人,氣蓋當世,時人方之樊噲。為桓溫參軍,數從溫征伐,歷竟陵太守。枋頭之役,溫既懷恥忿,且憚遐,因免遐官,病卒。」

『대사마요속명』에 이르기를 「등하는 자가 응현이요 진군 사람이니 평남장군 등악의 아들이다. 날래고 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기운이 요즘 세상을 덮으매 그때 사람들이 그를 번쾌에 견주었다. 환온의 참군이 되어 자주 환온을 따라 치고 싸웠고 경릉태수를 지냈다. 방두의 싸움에 환온이 이미 부끄러움과 성냄을 품고 또 등하를 꺼려, 이로 인해 등하의 벼슬을 면하니 병들어 죽었다」 하였다.

《郭林宗別傳》曰:「鉅鹿孟敏,字叔達,敦朴質直。客居太原,雜處凡俗,未有所名。嘗至市買甑,荷儋墮地壞之,徑去不顧。適遇林宗,見而異之,因問曰:『壞甑可惜,何以不顧?』客曰:『甑既已破,視之何益?』林宗賞其介決,因以知其德性,謂必為美士,勸令讀書。遊學十年,遂知名,三府並辟,不就。東夏以為美賢。」

『곽임종별전』에 이르기를 「거록의 맹민은 자가 숙달이니 도탑고 수수하고 바탕스럽고 곧았다. 태원에 나그네로 살며 여느 속됨에 섞여 살아 아직 이름난 바가 없었다. 일찍이 저자에 이르러 시루를 사서 메고 가다가 땅에 떨어뜨려 깨뜨렸는데, 곧장 가며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 임종을 만나매 임종이 보고 그를 남달리 여겨 이로 인해 묻기를 『깨진 시루가 아까운데 어찌하여 돌아보지 않는가』 하였다. 나그네가 『시루가 이미 깨졌는데 이를 본들 무슨 보탬이겠는가』 하였다. 임종이 그 굳세고 결단함을 기려 이로 인해 그 덕과 성품을 알아, 반드시 아름다운 선비가 되리라 하고 책 읽기를 권하였다. 열 해를 노닐어 배워 마침내 이름이 알려지매, 세 부에서 아울러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동쪽 화하가 아름다운 어진 이로 여겼다」 하였다.

7만일 큰 운수가 갔다면 어진 이의 길을 비키기를 청하오

桓宣武既廢太宰父子,仍上表曰:「應割近情,以存遠計。若除太宰父子,可無後憂。」簡文手答表曰:「所不忍言,況過於言?」宣武又重表,辭轉苦切。簡文更答曰:「若晉室靈長,明公便宜奉行此詔。如大運去矣,請避賢路!」桓公讀詔,手戰流汗,於此乃止。太宰父子,遠徙新安。

환선무가 이미 태재 부자를 폐하고, 그대로 표를 올려 말하였다. "마땅히 가까운 정을 베어 먼 꾀를 두어야 합니다. 만일 태재 부자를 없애면 뒷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간문제가 손수 표에 답하였다. "차마 말하지 못할 바인데 하물며 말보다 더한 것이랴."

선무가 또 거듭 표를 올리니 말이 더욱 괴롭고 절박하였다.

간문제가 다시 답하였다. "만일 진나라 왕실이 신령하고 길다면 명공은 곧 마땅히 이 조칙을 받들어 행하시오. 만일 큰 운수가 갔다면 어진 이의 길을 비키기를 청하오."

환공이 조칙을 읽고 손이 떨리고 땀을 흘려 이에 그쳤다.

태재 부자는 멀리 신안으로 옮겨졌다.

협주 1

《司馬晞傳》曰:「晞字道升,元帝第四子。初封武陵王,拜太宰。少不好學,尚武凶恣。時太宗輔政,晞以宗長不得執權,常懷憤慨,欲因桓溫入朝殺之。太宗即位,新蔡王晃首辭,引與晞及子綜謀逆。有司奏晞等斬刑,詔原之,徙新安。晞未敗,四五年中,喜為挽歌,自搖大鈴,使左右習和之。又燕會,使人作新安人歌舞離別之辭,其聲甚悲,後果徙新安。」

『사마희전』에 이르기를 「사마희는 자가 도승이요 원제의 넷째 아들이다. 처음에 무릉왕에 봉해지고 태재에 임명되었다. 젊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예를 숭상하며 흉하고 멋대로 하였다. 그때 태종이 정사를 도왔는데, 사마희가 겨레의 어른으로 권세를 잡지 못하매 늘 성냄을 품어 환온이 조회에 들어옴을 틈타 그를 죽이려 하였다. 태종이 자리에 오르매 신채왕 사마황이 처음 말을 내어 사마희와 그 아들 사마종을 끌어들여 거스름을 꾀하였다 하였다. 맡은 이가 사마희 들을 베는 형벌에 처하기를 아뢰니 조칙으로 그를 용서하여 신안으로 옮겼다. 사마희가 아직 무너지기 전 네다섯 해 가운데 만가 부르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큰 방울을 흔들며 곁의 사람에게 이에 어울리기를 익히게 하였다. 또 잔치하고 모일 때 사람을 시켜 신안 사람이 노래하고 춤추며 헤어지는 말을 짓게 하니 그 소리가 몹시 슬펐는데, 뒤에 과연 신안으로 옮겨졌다」 하였다.

8홰나무가 너울거리나 다시 살 뜻이 없구나

桓玄敗後,殷仲文還為大司馬咨議,意似二三,非復往日。大司馬府聽前,有一老槐,甚扶疎。殷因月朔,與眾在聽,視槐良久,嘆曰:「槐樹婆娑,無復生意!」

환현이 무너진 뒤에 은중문이 돌아와 대사마자의가 되었는데, 뜻이 두세 갈래인 듯하여 다시 지난날 같지 않았다.

대사마 부의 마루 앞에 한 늙은 홰나무가 있어 몹시 무성하였다.

은씨가 초하루로 인해 뭇사람과 마루에 있다가, 홰나무를 보기를 한참 하고 탄식하였다. "홰나무가 너울거리나 다시 살 뜻이 없구나."

협주 1

《晉安帝紀》曰:「桓玄敗,殷仲文歸京師,高祖以其衛從二后,且以大信宣令,引為鎮軍長史。自以名輩先達,位遇至重,而後來謝混之徒,皆疇昔之所附也。今比肩同列,常怏然自失,後果徙信安。」

『진안제기』에 이르기를 「환현이 무너지매 은중문이 서울로 돌아왔는데, 고조가 그가 두 황후를 지켜 따랐고 또 큰 미쁨으로 명을 폈다 하여 이끌어 진군장사로 삼았다. 스스로 이름과 무리가 먼저 통달하였고 자리와 대접이 지극히 무겁다 여겼는데, 뒤에 온 사혼의 무리가 다 옛날에 붙좇던 이들이었다.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하여 줄을 같이하매 늘 언짢아 스스로 잃어, 뒤에 과연 신안으로 옮겨졌다」 하였다.

9이 산과 내의 형세를 보매 마땅히 다시 한 손백부가 나겠구나

殷仲文既素有名望,自謂必當阿衡朝政。忽作東陽太守,意甚不平。及之郡,至富陽,慨然嘆曰:「看此山川形勢,當復出一孫伯符!」

은중문이 이미 본디 이름과 명망이 있어 스스로 반드시 마땅히 조정의 정사를 저울질하리라 하였다.

홀연히 동양태수가 되매 뜻이 몹시 고르지 않았다.

고을에 감에 미쳐 부양에 이르러 감개하여 탄식하였다. "이 산과 내의 형세를 보매 마땅히 다시 한 손백부가 나겠구나."

협주 2

《晉安帝紀》曰:「仲文後為東陽,愈憤怨,乃與桓胤謀反,遂伏誅。仲文嘗照鏡不見頭,俄而難及。」

『진안제기』에 이르기를 「은중문이 뒤에 동양이 되어 더욱 분하고 원망하여, 이에 환윤과 배반을 꾀하다가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다. 은중문이 일찍이 거울을 비추었으나 머리가 보이지 않더니 이윽고 어려움이 미쳤다」 하였다.

孫策,富春人。故及此而歎。

손책은 부춘 사람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미쳐 탄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