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世説新語 儉嗇第二十九
1그대의 오얏과 견주어 어떠하오
和嶠性至儉,家有好李,王武子求之,與不過數十。王武子因其上直,率將少年能食之者,持斧詣園,飽共噉畢,伐之,送一車枝與和公。問曰:「何如君李?」和既得,唯笑而已。
화교가 성품이 지극히 아꼈다.
집에 좋은 오얏이 있어 왕무자가 이를 구하니 준 것이 몇십 개에 지나지 않았다.
왕무자가 그가 숙직 드는 틈을 타, 젊은이 가운데 잘 먹는 이를 이끌고 도끼를 들고 동산에 가서 배부르게 함께 먹기를 마치고 나무를 베었다.
한 수레의 가지를 화공에게 보내며 물었다. "그대의 오얏과 견주어 어떠하오."
화씨가 이미 받고 오직 웃을 뿐이었다.
협주 1
《晉諸公贊》曰:「嶠性不通,治家富擬王公,而至儉,將有犯義之名。」《語林》曰:「嶠諸弟往園中食李,而皆計核責錢。故嶠婦弟王濟伐之也。」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화교가 성품이 통하지 않았다. 집 다스림이 넉넉함은 왕공에 견주었으나 지극히 검소하여 장차 옳음을 범한다는 이름이 있었다」 하였다. 『어림』에 이르기를 「화교의 여러 아우가 동산 가운데 가서 오얏을 먹으매 다 씨를 셈하여 돈을 물렸다. 그러므로 화교의 처남 왕제가 그를 벤 것이다」 하였다.
2뒤에 다시 이를 돌려 달라 하다
王戎儉吝,其從子婚,與一單衣,後更責之。
왕융이 아끼고 인색하여, 그 종질이 혼인하매 홑옷 하나를 주었다가 뒤에 다시 이를 돌려 달라 하였다.
협주 1
王隱《晉書》曰:「戎性至儉,不能自奉養,財不出外,天下人謂為膏肓之疾。」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왕융이 성품이 지극히 검소하여 스스로 받들어 기르지 못하고 재물을 밖에 내지 않으매, 천하 사람이 고황의 병이라 일렀다」 하였다.
3늘 부인과 촛불 아래 산가지를 흩어 셈하였다
司徒王戎,既貴且富,區宅僮牧,膏田水碓之屬,洛下無比。契疏鞅掌,每與夫人燭下散籌算計。
사도 왕융이 이미 귀하고 또 넉넉하여, 살 곳과 집과 종과 치는 짐승과 기름진 밭과 물방아 따위가 낙양 아래 짝할 이가 없었다.
계약 문서가 넘쳐 바쁘매, 늘 부인과 촛불 아래 산가지를 흩어 셈하였다.
협주 1
《晉諸公贊》曰:「戎性簡要,不治儀望,自遇甚薄,而產業過豐,論者以為台輔之望不重。」王隱《晉書》曰:「戎好治生,園田周遍天下,翁嫗二人,常以象牙籌晝夜筭計家資。」《晉陽秋》曰:「戎多殖財賄,常若不足。或謂戎故以此自晦也。」戴逵論之曰:「王戎晦默於危亂之際,獲免憂禍,既明且哲,於是在矣。或曰:『大臣用心,豈其然乎?』逵曰:『運有險易,時有昏明,如子之言,則蘧瑗、季札之徒,皆負責矣。自古而觀,豈一王戎也哉?』」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왕융이 성품이 간결하고 요긴하여 몸가짐과 바람을 다스리지 않고 스스로 대접함이 몹시 엷었으나 살림이 지나치게 넉넉하매, 논하는 이가 대의 도움이 될 바람이 무겁지 않다 하였다」 하였다.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왕융이 살림 다스리기를 좋아하여 동산과 밭이 천하에 두루 하였고, 늙은이 두 사람이 늘 상아 산가지로 밤낮 집안 밑천을 셈하였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왕융이 재물을 많이 불렸으나 늘 넉넉하지 않은 듯하였다. 어떤 이는 왕융이 짐짓 이로써 스스로 어둡게 하였다 한다」 하였다. 대규가 이를 논하여 이르기를 「왕융이 위태롭고 어지러운 즈음에 어둡고 잠잠하여 근심과 화를 면함을 얻었으니, 밝고 또 밝음이 이에 있다. 어떤 이는 『대신의 마음 씀이 어찌 그러하겠는가』 한다. 대규가 이르되 『운수에 험함과 쉬움이 있고 때에 어두움과 밝음이 있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곧 거원과 계찰의 무리가 다 꾸짖음을 지리라. 예부터 보면 어찌 한 왕융뿐이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4남이 그 씨를 얻을까 두려워 늘 그 씨를 뚫었다
王戎有好李,賣之,恐人得其種,恆鑽其核。
왕융에게 좋은 오얏이 있어 이를 팔았는데, 남이 그 씨를 얻을까 두려워 늘 그 씨를 뚫었다.
5딸이 급히 돈을 갚으매 이에 풀렸다
王戎女適裴頠,貸錢數萬。女歸,戎色不說。女遽還錢,乃釋然。
왕융의 딸이 배위에게 시집가며 돈 몇만을 꾸었다.
딸이 돌아오매 왕융의 낯빛이 기쁘지 않았다.
딸이 급히 돈을 갚으매 이에 풀렸다.
6집안 외숙이 모질고 엷어 이에 다시 풀과 나무를 몰아 부린다
衛江州在尋陽,有知舊人投之,都不料理,唯餉「王不留行」一斤。此人得餉,便命駕。李弘範聞之曰:「家舅刻薄,乃復驅使草木。」
위강주가 심양에 있을 때 아는 옛 사람이 그에게 의탁하였으나, 도무지 헤아려 다스리지 않고 오직 「왕불류행」 한 근을 보냈다.
이 사람이 보냄을 받고 곧 수레를 명하였다.
이홍범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집안 외숙이 모질고 엷어 이에 다시 풀과 나무를 몰아 부린다."
협주 3
《永嘉流人名》曰:「衛展字道舒,河東安邑人。祖列,彭城護軍。父韶,廣平令。展,光熙初除鷹揚將軍、江州刺史。」
『영가유인명』에 이르기를 「위전은 자가 도서요 하동 안읍 사람이다. 할아버지 위열은 팽성호군이요 아버지 위소는 광평령이다. 위전은 광희 처음에 응양장군과 강주자사에 임명되었다」 하였다.
《本草》曰:「王不留行,生太山,治金瘡,除風,久服之,輕身。」
『본초』에 이르기를 「왕불류행은 태산에서 나니 쇠붙이에 다친 데를 다스리고 풍을 없애며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진다」 하였다.
《中興書》曰:「李軌字弘範,江夏人。仕至尚書郎。」按軌,劉氏之甥,此應弘度,非弘範也。
『중흥서』에 이르기를 「이궤는 자가 홍범이요 강하 사람이다. 벼슬이 상서랑에 이르렀다」 하였다. 살피건대 이궤는 유씨의 생질이니, 이는 마땅히 홍도라야 하고 홍범이 아니다.
7삼가 큰 낭군이 알게 하지 마라
王丞相儉節,帳下甘果,盈溢不散。涉春爛敗,都督白之,公令舍去。曰:「慎不可令大郎知。」
왕승상이 검소하고 절약하매 휘장 아래 단 과일이 넘쳐 흩어지지 않았다.
봄에 이르러 문드러져 무너지매 도독이 이를 아뢰니, 공이 버리게 하며 말하였다. "삼가 큰 낭군이 알게 하지 마라."
협주 1
王悅也。
왕열이다.
8짐짓 심을 만합니다
蘇峻之亂,庾太尉南奔見陶公。陶公雅相賞重。陶性儉吝,及食,噉薤,庾因留白。陶問:「用此何為?」庾云:「故可種。」於是大嘆庾非唯風流,兼有治實。
소준의 난에 유태위가 남쪽으로 달아나 도공을 뵈니 도공이 우아하게 서로 기리고 무겁게 여겼다.
도씨가 성품이 검소하고 인색하였는데, 먹음에 미쳐 염교를 먹으며 유량이 이로 인해 흰 밑동을 남겼다.
도씨가 물었다. "이를 무엇에 쓰려 하오."
유씨가 말하였다. "짐짓 심을 만합니다."
이에 유씨가 다만 풍류만이 아니라 아울러 다스림의 실됨이 있다 크게 감탄하였다.
9이에 하루를 창고를 열어 뜻대로 쓰게 하다
郗公大聚歛,有錢數千萬。嘉賓意甚不同,常朝旦問訊。郗家法:子弟不坐。因倚語移時,遂及財貨事。郗公曰:「汝正當欲得吾錢耳!」迺開庫一日,令任意用。郗公始正謂損數百萬許。嘉賓遂一日乞與親友,周旋略盡。郗公聞之,驚怪不能已。
치공이 크게 모아 거두어 돈이 몇천만 있었다.
가빈이 뜻에 몹시 같지 않아 늘 아침마다 문안하였다.
치씨 집안 법에 자제가 앉지 않으므로, 이로 인해 기대어 말하기를 때가 옮기도록 하다가 마침내 재물의 일에 미쳤다.
치공이 말하였다. "너는 바로 마땅히 내 돈을 얻고자 할 뿐이다."
이에 하루를 창고를 열어 뜻대로 쓰게 하였다.
치공이 처음에는 바로 몇백만쯤 덜리리라 하였는데, 가빈이 마침내 하루에 가까운 벗에게 빌어 주어 두루 지내는 이들에게 거의 다 하였다.
치공이 이를 듣고 놀라고 괴이히 여겨 그치지 못하였다.
협주 1
《中興書》曰:「超少卓犖而不羈,有曠世之度。」
『중흥서』에 이르기를 「치초가 젊어서 우뚝하여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트이게 하는 도량이 있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