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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견世説新語 忿狷第三十一

세설신어 世說新語 · 유의경(劉義慶) 엮음 · 유효표(劉孝標) 주 · 남조 송(5세기) · 양 유효표 주 · 단락 8 · 한자 556자 · 낭독 2.2분

「세설신어」 「분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 몇 살 난 아이가 아버지 무릎에서 한 대답이다. 이튿날 다시 묻자 「해가 가깝습니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했다.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이백여 해,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과 몸짓만을 서른여섯 갈래로 나누어 모았다. 덕행·언어·정사·문학에서 시작해 사치·성냄·시새움·원수까지 내려가니, 기릴 것과 나무랄 것을 같은 무게로 놓은 셈이다. 대숲의 일곱 사람이 나오고, 왕희지가 사위로 뽑히고, 눈 오는 밤 배를 저어 벗의 집 앞까지 갔다가 흥이 다했다며 돌아온다. 한 조각이 대개 서너 줄, 길어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유효표가 백여 종의 책을 끌어와 단 주는 그 책들이 거의 다 없어진 지금 도리어 본문보다 길게 남았다.

1이에 성품 나쁜 이를 죽이다

魏武有一妓,聲最清高,而情性酷惡。欲殺則愛才,欲置則不堪。於是選百人一時俱教。少時,果有一人聲及之,便殺惡性者。

위나라 무제에게 한 기생이 있어 소리가 가장 맑고 높았으나 정과 성품이 몹시 나빴다.

죽이자니 곧 재주가 아깝고 두자니 곧 견딜 수 없었다.

이에 백 사람을 뽑아 한때에 함께 가르쳤다.

조금 뒤에 과연 한 사람이 소리가 그에 미치매 곧 성품 나쁜 이를 죽였다.

2안기에게 이런 성품이 있었어도 오히려 마땅히 한 터럭도 논할 것이 없으리니 하물며 남전이랴

王藍田性急。嘗食雞子,以筯刺之,不得,便大怒,舉以擲地。雞子於地圓轉未止,仍下地以屐齒蹍之,又不得,瞋甚,復於地取內口中,齧破即吐之。王右軍聞而大笑曰:「使安期有此性,猶當無一豪可論,況藍田邪?」

왕남전이 성품이 급하였다.

일찍이 달걀을 먹는데 젓가락으로 이를 찌르다가 얻지 못하매 곧 크게 성내어 들어 땅에 던졌다.

달걀이 땅에서 굴러 그치지 않으니, 그대로 땅에 내려 나막신 굽으로 이를 밟다가 또 얻지 못하였다.

성냄이 심하여 다시 땅에서 가져다 입안에 넣고 깨물어 깨뜨리고 곧 뱉었다.

왕우군이 듣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안기에게 이런 성품이 있었어도 오히려 마땅히 한 터럭도 논할 것이 없으리니 하물며 남전이랴."

협주 1

《中興書》曰:「述清貴簡正,少所推屈,唯以性急為累。」安期,述父也。有名德,已見。

『중흥서』에 이르기를 「왕술이 맑고 귀하고 간결하고 발라 밀어 굽히는 바가 적었는데, 오직 성품이 급함으로 얽매임을 삼았다」 하였다. 안기는 왕술의 아비다. 이름과 덕이 있으니 이미 보인다.

3차기가 귀신 손 같은데 억지로 와서 남의 팔을 잡는가

王司州嘗乘雪往王螭許。司州言氣少有牾逆於螭,便作色不夷。司州覺惡,便輿床就之,持其臂曰:「汝詎復足與老兄計?」螭撥其手曰:「冷如鬼手馨,彊來捉人臂!」

왕사주가 일찍이 눈을 타고 왕이호의 처소에 갔다.

사주의 말과 기운이 조금 이호에게 거스름이 있으매, 곧 낯빛을 지어 평온하지 않았다.

사주가 나쁨을 깨닫고 곧 평상을 들어 그에게 나아가 그 팔을 잡고 말하였다. "네가 어찌 다시 늙은 형과 따지기에 넉넉하냐."

이호가 그 손을 뿌리치며 말하였다. "차기가 귀신 손 같은데 억지로 와서 남의 팔을 잡는가."

협주 2

王胡之、王恬並已見。恬小字螭虎。

왕호지와 왕념은 아울러 이미 보인다. 왕념의 아이 적 이름은 이호다.

按《王氏譜》:胡之是恬從祖兄。

살피건대 『왕씨보』에 왕호지는 왕념의 종조형이다.

4원생이 성냄 옮기는 것을 보니 안자가 귀함을 알겠다

桓宣武與袁彥道樗蒱,袁彥道齒不合,遂厲色擲去五木。溫太真云:「見袁生遷怒,知顏子為貴。」

환선무가 원언도와 저포를 하는데 원언도가 끗수가 맞지 않으매, 마침내 낯빛을 매섭게 하여 다섯 나무를 던져 버렸다.

온태진이 말하였다. "원생이 성냄 옮기는 것을 보니 안자가 귀함을 알겠다."

협주 1

《論語》曰:「哀公問弟子孰為好學?孔子曰:『有顏回者,好學,不遷怒,不貳過,不幸短命死矣。』」

『논어』에 이르기를 「애공이 제자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하는가 물으니, 공자께서 『안회라는 이가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여 성냄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두 번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 목숨이 짧아 죽었다』 하셨다」 하였다.

5그때 사람들이 그 성품이 급하나 받아들이는 바가 있음을 탄식하다

謝無奕性麤彊。以事不相得,自往數王藍田,肆言極罵。王正色面壁不敢動,半日。謝去良久,轉頭問左右小吏曰:「去未?」答云:「已去。」然後復坐。時人嘆其性急而能有所容。

사무혁이 성품이 거칠고 굳세었다.

일이 서로 맞지 않음으로 스스로 가서 왕남전을 나무라며 말을 멋대로 하여 지극히 욕하였다.

왕씨가 낯빛을 바로 하고 벽을 마주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기를 한나절 하였다.

사씨가 간 지 한참 뒤에 머리를 돌려 곁의 작은 아전에게 물었다. "갔느냐."

대답하였다. "이미 갔습니다."

그런 뒤에야 다시 앉았다.

그때 사람들이 그 성품이 급하나 받아들일 줄 안다고 감탄하였다.

6다만 남이 이렇게 자랑하고 헛기침함이 많으니 자못 그 저절로 그러함을 덜기에 넉넉하다

王令詣謝公,值習鑿齒已在坐,當與併榻。王徙倚不坐,公引之與對榻。去後,語胡兒曰:「子敬實自清立,但人為爾多矜咳,殊足損其自然。」

왕영이 사공을 찾아갔는데 마침 습착치가 이미 자리에 있어 마땅히 평상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

왕씨가 옮겨 기대고 앉지 않으매 공이 그를 이끌어 평상을 마주하게 하였다.

간 뒤에 호아에게 말하였다. "자경은 실로 절로 맑게 섰다. 다만 남이 이렇게 자랑하고 헛기침함이 많으니 자못 그 저절로 그러함을 덜기에 넉넉하다."

협주 1

劉謙之《晉紀》曰:「王獻之性甚整峻,不交非類。」

유겸지의 『진기』에 이르기를 「왕헌지가 성품이 몹시 가지런하고 준엄하여 같은 무리가 아니면 사귀지 않았다」 하였다.

7이른바 세력과 이로움의 사귐을 옛사람이 부끄러워하였다

王大、王恭嘗俱在何僕射坐。恭時為丹陽尹,大始拜荊州。訖將乖之際,大勸恭酒。恭不為飲,大逼彊之,轉苦,便各以帬帶繞手。恭府近千人,悉呼入齋,大左右雖少,亦命前,意便欲相殺。射無計,因起排坐二人之間,方得分散。所謂勢利之交,古人羞之。

왕대와 왕공이 일찍이 함께 하복야의 자리에 있었다.

왕공이 그때 단양윤이었고 왕대는 비로소 형주에 임명되었다.

마치고 장차 갈릴 즈음에 왕대가 왕공에게 술을 권하였다.

왕공이 마시지 않으매 왕대가 억지로 다그쳐 굴러 괴로워지니, 곧 저마다 치마끈으로 손을 감았다.

왕공의 부에는 천 사람 가까이 있어 다 불러 서재에 들이고, 왕대의 곁 사람은 비록 적었으나 또한 앞에 오라 명하여 뜻이 곧 서로 죽이려 하였다.

복야가 꾀가 없어 이로 인해 일어나 두 사람 사이 자리를 밀치니 바야흐로 나뉘어 흩어질 수 있었다.

이른바 세력과 이로움의 사귐을 옛사람이 부끄러워하였다.

협주 2

《中興書》曰:「何澄字子玄,清正有器望。歷尚書左僕射。」

『중흥서』에 이르기를 「하징은 자가 자현이니 맑고 발라 기량과 명망이 있었다. 상서좌복야를 지냈다」 하였다.

《靈鬼志謠徵》曰:「初,桓石民為荊州,鎮上時,民忽歌黃曇曲曰:『黃曇英揚州,大佛來上朋。』少時,石民死,王忱為荊州。」佛大,忱小字也。

『영귀지요징』에 이르기를 「처음에 환석민이 형주가 되어 위에 진 칠 때, 백성이 홀연히 「황담곡」을 노래하여 이르기를 『황담의 꽃부리가 양주에 날리니 큰 부처가 와서 벗에 오른다』 하였다. 조금 뒤에 환석민이 죽고 왕침이 형주가 되었다」 하였다. 불대는 왕침의 아이 적 이름이다.

8괴이할 바가 없다 마땅히 남군의 장난일 뿐이다

桓南郡小兒時,與諸從兄弟各養鵝共鬥。南郡鵝每不如,甚以為忿;迺夜往鵝欄間,取諸兄弟鵝悉殺之。既曉,家人咸以驚駭,云是變怪,以白車騎。車騎曰:「無所致怪,當是南郡戲耳!」問,果如之。

환남군이 어릴 때 여러 종형제와 저마다 거위를 길러 함께 싸움을 붙였다.

남군의 거위가 늘 못하매 몹시 이를 성내어, 이에 밤에 거위 우리 사이에 가서 여러 형제의 거위를 가져다 다 죽였다.

이윽고 새벽이 되매 집 사람이 다 놀라고 두려워 이는 바뀐 괴이함이라 하여 거기에게 아뢰었다.

거기가 말하였다. "괴이할 바가 없다. 마땅히 남군의 장난일 뿐이다."

물으니 과연 그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