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世説新語 尤悔第三十三
1네가 이미 내 임성을 죽였으니 다시 내 동아를 죽이지 마라
魏文帝忌弟任城王驍壯。因在卞太后閤共圍棊,並噉棗,文帝以毒置諸棗蔕中。自選可食者而進,王弗悟,遂雜進之。既中毒,太后索水救之。帝預敕左右毀缾罐,太后徒跣趨井,無以汲。須臾,遂卒。復欲害東阿,太后曰:「汝已殺我任城,不得復殺我東阿。」
위나라 문제가 아우 임성왕이 날래고 씩씩함을 꺼렸다.
변태후의 방에서 함께 바둑을 두며 아울러 대추를 먹게 되었는데, 문제가 독을 여러 대추 꼭지 가운데 넣었다.
스스로 먹을 만한 것을 가려 먹었으나 왕이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섞어 먹었다.
이윽고 독에 맞으매 태후가 물을 찾아 그를 건지려 하였다.
임금이 미리 곁의 사람에게 병과 항아리를 헐라 명하였으므로, 태후가 맨발로 우물에 달려갔으나 길을 것이 없었다.
잠깐 뒤에 마침내 죽었다.
다시 동아를 해치려 하매 태후가 말하였다. "네가 이미 내 임성을 죽였으니 다시 내 동아를 죽이지 마라."
협주 2
魏略曰:「任城威王彰,字子文,太祖卞太后弟二子。性剛勇而黃須,北討代郡,獨與麾下百餘人突虜而走。太祖聞曰:『我黃須兒可用也!』」魏志春秋曰:「黃初三年,彰來朝。初,彰問璽綬,將有異志,故來朝不即得見,有此忿懼而暴薨。」
『위략』에 이르기를 「임성 위왕 조창은 자가 자문이요 태조 변태후의 둘째 아들이다. 성품이 굳세고 날래며 누런 수염이었는데, 북쪽으로 대군을 치며 홀로 휘하 백 남짓 사람과 오랑캐를 뚫고 달렸다. 태조가 듣고 『내 누런 수염 아이는 쓸 만하다』 하였다」 하였다. 『위지춘추』에 이르기를 「황초 삼 년에 조창이 조회하러 왔다. 처음에 조창이 옥새와 인끈을 물어 장차 남다른 뜻이 있으려 하였으므로, 조회하러 와서 곧바로 뵘을 얻지 못하매 이런 성냄과 두려움이 있어 갑작스레 죽었다」 하였다.
魏志方伎傳曰:「文帝問占夢周宣:『吾夢磨錢文,欲滅而愈更明,何謂?』宣悵然不對。帝固問之,宣曰:『陛下家事,雖欲爾,而太后不聽,是以欲滅更明耳。』帝欲治弟植之罪,逼於太后,但加貶爵。」
『위지·방기전』에 이르기를 「문제가 꿈 점치는 주선에게 묻기를 『내가 돈의 글자를 가는데 없애려 하여도 더욱 밝아지는 꿈을 꾸었으니 무슨 말인가』 하였다. 주선이 서운히 대답하지 않다가 임금이 굳이 물으니, 주선이 『폐하의 집안일입니다. 비록 그러고자 하시나 태후께서 들으시지 않으니, 이 때문에 없애려 하여도 더욱 밝아질 뿐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아우 조식의 죄를 다스리려 하다가 태후에게 다그쳐져 다만 벼슬을 낮추는 데 그쳤다」 하였다.
2왕제가 이 때문에 절하지 않아 안씨 첩이라 이르다
王渾後妻,琅邪顏氏女。王時為徐州刺史,交禮拜訖,王將答拜,觀者咸曰:「王侯州將,新婦州民,恐無由答拜。」王乃止。武子以其父不答拜,不成禮,恐非夫婦;不為之拜,謂為顏妾。顏氏恥之。以其門貴,終不敢離。
왕혼의 뒤 아내는 낭야 안씨의 딸이다.
왕씨가 그때 서주자사였는데, 예를 나누어 절하기를 마치고 왕씨가 장차 답하여 절하려 하매 보는 이가 다 말하였다. "왕후는 주의 장수요 새댁은 주의 백성이니, 아마 답하여 절할 까닭이 없습니다."
왕씨가 이에 그쳤다.
무자가 그 아비가 답하여 절하지 않아 예를 이루지 않았으니 아마 부부가 아니리라 하여, 그를 위해 절하지 않고 안씨 첩이라 일렀다.
안씨가 이를 부끄러워하였으나 그 문벌이 귀하므로 마침내 감히 떠나지 못하였다.
협주 1
婚姻之禮,人道之大,豈由一不拜而遂為妾媵者乎?世說之言,於是乎紕繆。
혼인의 예는 사람의 도의 큰 것이니, 어찌 한 번 절하지 않았다 하여 마침내 첩이 되는 것이겠는가. 『세설』의 말이 여기서 그르다.
3화정의 학 울음을 듣고자 한들 다시 얻을 수 있으랴
陸平原河橋敗,為盧志所讒,被誅。臨刑嘆曰:「欲聞華亭鶴唳,可復得乎!」
육평원이 하교에서 패하고 노지에게 헐뜯긴 바 되어 죽임을 입었다.
형벌에 임하여 탄식하였다. "화정의 학 울음을 듣고자 한들 다시 얻을 수 있으랴."
협주 2
王隱晉書曰:「成都王穎討長沙王乂,使陸為都督前鋒諸軍事。」機別傳曰:「成都王長史盧志,與機弟雲趣舍不同。又黃門孟玖求為邯鄲令於穎,穎教付雲,雲時為左司馬,曰:『刑餘之人,不可以君民!』玖聞此怨雲,與志讒構日至。及機於七里澗大敗,玖誣機謀反所致,穎乃使牽秀斬機。先是,夕夢黑幔繞車,手決不開,惡之。明旦,秀兵奄至,機解戎服,箸衣幍見秀,容貌自若,遂見害。時年四十三。軍士莫不流涕。是日天地霧合,大風折木,平地尺雪。」干寶晉紀曰:「初,陸抗誅步闡,百口皆盡,有識尤之。及機、雲見害,三族無遺。」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성도왕 사마영이 장사왕 사마예를 칠 때 육기에게 앞 봉우리 여러 군사의 일을 도독하게 하였다」 하였다. 『기별전』에 이르기를 「성도왕의 장사 노지가 육기의 아우 육운과 나아가고 버림이 같지 않았다. 또 황문 맹구가 한단령 되기를 사마영에게 구하매 사마영이 육운에게 주라 가르쳤는데, 육운이 그때 좌사마로 있으며 『형벌 받은 나머지 사람은 백성에게 임금 노릇 할 수 없다』 하였다. 맹구가 이를 듣고 육운을 원망하여 노지와 헐뜯어 얽음이 날로 이르렀다. 육기가 칠리간에서 크게 패함에 미쳐, 맹구가 육기가 배반을 꾀하여 이른 바라 무고하매 사마영이 이에 견수를 시켜 육기를 베었다. 이보다 앞서 저녁에 검은 휘장이 수레를 두르는데 손으로 헤쳐도 열리지 않는 꿈을 꾸고 이를 나쁘게 여겼다. 이튿날 아침에 견수의 군사가 갑자기 이르매, 육기가 군복을 풀고 옷과 두건을 쓰고 견수를 보는데 모습이 태연하였고 마침내 해를 입었다. 그때 나이 마흔셋이었다. 군사가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날 하늘과 땅이 안개로 덮이고 큰 바람이 나무를 꺾고 평지에 눈이 한 자였다」 하였다. 간보의 『진기』에 이르기를 「처음에 육항이 보천을 베매 백 식구가 다 다하니 아는 이가 이를 허물하였다. 육기와 육운이 해를 입음에 미쳐 세 겨레가 남음이 없었다」 하였다.
八王故事曰:「華亭,吳由拳縣郊外墅也,有清泉茂林。吳平後,陸機兄弟共游於此十餘年。」語林曰:「機為河北都督,聞警角之聲,謂孫丞曰:『聞此不如華亭鶴唳。』故臨刑而有此歎。」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화정은 오나라 유권현 밖의 별장이니 맑은 샘과 우거진 숲이 있다. 오나라가 평정된 뒤에 육기 형제가 여기서 함께 노닌 것이 열 남짓 해였다」 하였다. 『어림』에 이르기를 「육기가 하북도독이 되어 경계하는 뿔피리 소리를 듣고 손승에게 이르기를 『이를 들으니 화정의 학 울음만 못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형벌에 임하여 이런 탄식이 있었다」 하였다.
4이 때문에 마침내 세운 바가 없었다
劉琨善能招延,而拙於撫御。一日雖有數千人歸投,其逃散而去亦復如此。所以卒無所建。
유곤이 부르고 맞아들이기는 잘하였으나 어루만져 몰기는 서툴렀다.
하루에 비록 몇천 사람이 돌아와 의탁하여도, 그 달아나 흩어져 감이 또한 다시 이와 같았다.
이 때문에 마침내 세운 바가 없었다.
협주 1
鄧粲晉紀曰:「琨為并州牧,糾合齊盟,驅率戎旅,而內不撫其民,遂至喪軍失士,無成功也。」敬徹按:「琨以永嘉元年為并州,于時晉陽空城,寇盜四攻,而能收合士眾,抗行淵、勒,十年之中,敗而能振,不能撫御,其得如此乎?凶荒之日,千里無煙,豈一日有數千人歸之?若一日數千人去之,又安得一紀之間以對大難乎?」
등찬의 『진기』에 이르기를 「유곤이 병주목이 되어 가지런히 맹세를 모으고 군사를 몰아 이끌었으나, 안으로 그 백성을 어루만지지 않아 마침내 군사를 잃고 선비를 잃어 이룬 공이 없었다」 하였다. 경철이 살피건대 「유곤이 영가 원년에 병주가 되었는데, 이때 진양은 빈 성이요 도적이 사방에서 쳤는데도 선비와 무리를 거두어 모아 유연과 석륵에게 맞서 다니고, 열 해 가운데 패하고도 떨칠 수 있었으니, 어루만져 몰지 못하고서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흉하고 거친 날에 천 리에 연기가 없었으니 어찌 하루에 몇천 사람이 그에게 돌아왔겠는가. 만일 하루에 몇천 사람이 그를 떠났다면 또 어찌 열두 해 사이에 큰 어려움에 맞설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5다시 강족 사람을 동쪽으로 가게 할 수 없다
王平子始下,丞相語大將軍:「不可復使羌人東行。」平子面似羌。
왕평자가 처음 내려오매 승상이 대장군에게 말하였다. "다시 강족 사람을 동쪽으로 가게 할 수 없소."
평자는 낯이 강족을 닮았다.
협주 1
按王澄自為王敦所害,丞相名德,豈應有斯言也。
살피건대 왕징은 절로 왕돈에게 해를 입었고 승상은 이름과 덕이 있으니 어찌 마땅히 이런 말이 있었겠는가.
6내가 주후를 죽이지 않았으나 주후가 나로 말미암아 죽었으니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이 사람에게 저버렸다
王大將軍起事,丞相兄弟詣闕謝。周侯深憂諸王,始入,甚有憂色。丞相呼周侯曰:「百口委卿!」周直過不應。既入,苦相存救。既釋,周大說,飲酒。及出,諸王故在門。周曰:「今年殺諸賊奴,當取金印如斗大繫肘後。」大將軍至石頭,問丞相曰:「周侯可為三公不?」丞相不答。又問:「可為尚書令不?」又不應。因云:「如此,唯當殺之耳!」復默然。逮周侯被害,丞相後知周侯救己,嘆曰:「我不殺周侯,周侯由我而死。幽冥中負此人!」
왕대장군이 일을 일으키매 승상 형제가 대궐에 나아가 사죄하였다.
주후가 깊이 여러 왕씨를 걱정하여 처음 들어갈 때 몹시 근심하는 낯빛이 있었다.
승상이 주후를 불러 말하였다. "백 식구를 경에게 맡기오."
주씨가 곧바로 지나가며 응하지 않았다.
이윽고 들어가 괴로이 서로 두어 건지려 하였다. 이미 풀리매 주씨가 크게 기뻐하여 술을 마셨다.
나옴에 미쳐 여러 왕씨가 짐짓 문에 있으니 주씨가 말하였다. "올해에 여러 도적 종놈을 죽이고 마땅히 말 만한 금 도장을 얻어 팔꿈치 뒤에 매겠다."
대장군이 석두에 이르러 승상에게 물었다. "주후는 삼공이 될 만하오."
승상이 대답하지 않았다.
또 물었다. "상서령은 될 만하오."
또 응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오직 마땅히 그를 죽일 뿐이오."
다시 잠잠하였다.
주후가 해를 입음에 이르러 승상이 뒤에 주후가 저를 건지려 한 줄 알고 탄식하였다. "내가 주후를 죽이지 않았으나 주후가 나로 말미암아 죽었으니,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이 사람에게 저버렸구나."
협주 1
虞預晉書曰:「敦克京邑,參軍呂漪說敦曰:『周顗、戴淵,皆有名望,足以惑眾。視近日之言,無慚懼之色,若不除之,役將未歇也。』敦即然之,遂害淵、顗。初,漪為臺郎,淵既上官,素有高氣,以漪小器待之,故售其說焉。」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왕돈이 서울을 이기매 참군 여의가 왕돈을 달래어 이르기를 『주의와 대연이 다 이름과 명망이 있어 무리를 헷갈리게 하기에 넉넉합니다. 요사이 말을 보매 부끄럽고 두려워하는 낯빛이 없으니, 만일 이를 없애지 않으면 부역이 장차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돈이 곧 그렇다 하여 마침내 대연과 주의를 해쳤다. 처음에 여의가 대랑이 되었을 때 대연이 이미 윗벼슬아치로 본디 높은 기운이 있어 여의를 작은 그릇으로 대접하였으므로, 그 말을 판 것이다」 하였다.
7만일 공의 말과 같다면 복이 어찌 길 수 있으랴
王導、溫嶠俱見明帝,帝問溫前世所以得天下之由。溫未答。頃,王曰:「溫嶠年少未諳,臣為陛下陳之。」王迺具敘宣王創業之始,誅夷名族,寵樹同己。及文王之末,高貴鄉公事。明帝聞之,覆面著床曰:「若如公言,祚安得長!」
왕도와 온교가 함께 명제를 뵈니, 임금이 온씨에게 앞 세상에서 천하를 얻은 까닭을 물었다.
온씨가 아직 대답하지 못하였다.
잠깐 뒤에 왕씨가 말하였다. "온교는 나이가 젊어 익히 알지 못하니 신이 폐하를 위해 이를 아뢰겠습니다."
왕씨가 이에 갖추어 선왕이 업을 처음 세울 때 이름난 겨레를 베고 죽이며 저와 같은 이를 사랑하고 심은 것과, 문왕의 말년과 고귀향공의 일을 폈다.
명제가 이를 듣고 낯을 덮어 평상에 대고 말하였다. "만일 공의 말과 같다면 복이 어찌 길 수 있으랴."
협주 1
宣王創業,誅曹爽,任蔣濟之流者是也。高貴鄉公之事,已見上。
선왕이 업을 처음 세울 때 조상을 베고 장제 같은 무리에게 맡긴 것이 이것이다. 고귀향공의 일은 이미 위에 보인다.
8세상의 어지러움을 만나 마침내 여기 이르렀구나
王大將軍於眾坐中曰:「諸周由來未有作三公者。」有人答曰:「唯周侯邑五馬領頭而不克。」大將軍曰:「我與周洛下相遇,一面頓盡。值世紛紜,遂至於此!」因為流涕。
왕대장군이 뭇사람이 앉은 가운데서 말하였다. "여러 주씨가 예부터 삼공이 된 이가 있지 않았소."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오직 주후가 다섯 말 머리를 거느리는 데를 차지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대장군이 말하였다. "내가 주씨와 낙양 아래서 서로 만나 한 번 낯을 보고 문득 다하였소. 세상의 어지러움을 만나 마침내 여기 이르렀구나."
이로 인해 눈물을 흘렸다.
협주 1
鄧粲晉紀曰:「王敦參軍,有於敦坐樗蒱,臨當成都,馬頭被殺,因謂曰:『周家奕世令望,而位不至三公,伯仁垂作而不果,有似下官此馬。』敦慨然流涕曰:『伯仁總角時,與於東宮,相遇一面,披衿便許之三司,何圖不幸,王法所裁,悽愴之深,言何能盡!』」
등찬의 『진기』에 이르기를 「왕돈의 참군이 왕돈의 자리에서 저포를 하다가 성도에 다다르려 할 즈음에 말 머리가 죽임을 당하매, 이로 인해 이르기를 『주씨 집안이 여러 대에 이름과 명망이 있으나 자리가 삼공에 이르지 못하였고, 백인이 거의 되려다 이루지 못하였으니 아랫벼슬아치의 이 말과 비슷합니다』 하였다. 왕돈이 감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백인이 총각일 때 동궁에서 서로 한 번 낯을 만나고 옷깃을 헤쳐 곧 삼사를 허락하였는데, 어찌 불행히 왕법에 마름질될 줄 헤아렸으랴. 처량함의 깊음을 말로 어찌 다할 수 있으랴』 하였다」 하였다.
9온교가 옷자락을 끊고 가다
溫公初受劉司空使勸進,母崔氏固駐之,嶠絕裾而去。迄於崇貴,鄉品猶不過也。每爵皆發詔。
온공이 처음 유사공의 심부름을 받아 자리에 나아가기를 권하게 되매, 어머니 최씨가 굳이 그를 붙들었으나 온교가 옷자락을 끊고 갔다.
높고 귀함에 이르도록 시골의 품평이 오히려 지나가지 않았다. 벼슬마다 다 조칙을 내렸다.
협주 2
溫氏譜曰:「嶠父襜,娶清河崔參女。」
『온씨보』에 이르기를 「온교의 아버지 온담이 청하 최참의 딸을 맞았다」 하였다.
虞預晉書曰:「元帝即位,以溫嶠為散騎侍郎。嶠以母亡,逼賊,不得往臨葬,固辭。詔曰:『嶠以未葬,朝議又頗有異同,故不拜。其令入坐議,吾將折其衷。』」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원제가 자리에 오르매 온교로 산기시랑을 삼았다. 온교가 어미가 죽었는데 도적에게 다그쳐져 가서 장사에 임하지 못하였다 하여 굳이 사양하였다. 조칙에 이르기를 『온교가 아직 장사 지내지 못하였다 하고 조정의 의논도 또 자못 같고 다름이 있으므로 임명되지 못하였다. 들어와 앉아 의논하게 하라. 내가 장차 그 절충을 하겠다』 하였다」 하였다.
10대장부가 이에 유원규에게 팔렸구나
庾公欲起周子南,子南執辭愈固。庾每詣周,庾從南門入,周從後門出。庾嘗一往奄至,周不及去,相對終日。庾從周索食,周出蔬食,庾亦彊飯,極歡;并語世故,約相推引,同佐世之任。既仕,至將軍二千石,而不稱意。中宵慨然曰:「大丈夫乃為庾元規所賣!」一嘆,遂發背而卒。
유공이 주자남을 일으키려 하매 자남이 사양함을 잡기를 더욱 굳게 하였다.
유씨가 주씨를 찾아갈 때마다 유씨가 남쪽 문으로 들어가면 주씨는 뒷문으로 나갔다.
유씨가 일찍이 한 번은 갑자기 이르매 주씨가 미처 가지 못하여 서로 마주하여 온종일 있었다.
유씨가 주씨에게 밥을 구하니 주씨가 나물밥을 내었는데, 유씨가 또한 억지로 먹으며 지극히 기뻐하였다.
아울러 세상 일을 말하며 서로 밀어 이끌어 세상을 돕는 소임을 함께하기를 약속하였다.
이윽고 벼슬하여 장군 이천석에 이르렀으나 뜻에 걸맞지 않았다.
밤중에 감개하여 말하였다. "대장부가 이에 유원규에게 팔렸구나."
한 번 탄식하고 마침내 등창이 나서 죽었다.
협주 1
尋陽記曰:「周邵字子南,與南陽翟湯隱於尋陽廬山。庾亮臨江州,聞翟、周之風,束帶躡履而詣焉。聞庾至,轉避之。亮後密往,值邵彈鳥於林,因前與語。還,便云:『此人可起。』即拔為鎮蠻護軍、西陽太守。」其集載與邵書曰:「西陽一郡,戶口差實,非履道真純,何以鎮其流遁?詢之朝野,僉曰足下。今具上表,請足下臨之,無讓。」
『심양기』에 이르기를 「주소는 자가 자남이니 남양의 적탕과 함께 심양 여산에 숨었다. 유량이 강주에 임하여 적씨와 주씨의 바람을 듣고 띠를 매고 신을 신고 그를 찾아갔다. 유량이 이른다는 말을 듣고 돌려 그를 피하였다. 유량이 뒤에 몰래 가니 마침 주소가 숲에서 새를 쏘고 있으매, 이로 인해 나아가 더불어 말하였다. 돌아와 곧 이르기를 『이 사람은 일으킬 만하다』 하고, 곧 뽑아 진만호군과 서양태수로 삼았다」 하였다. 그 문집에 실린 주소에게 준 글에 이르기를 「서양 한 고을은 호구가 자못 실하니, 도를 밟음이 참되고 순수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그 흘러 달아남을 누르겠소. 조정과 들에 물으니 다들 족하라 하오. 이제 갖추어 표를 올려 족하가 여기 임하기를 청하니 사양하지 마시오」 하였다.
11이에 석씨에게 한을 맺고 묵은 목숨을 도무지 없애 버리다
阮思曠奉大法,敬信甚至。大兒年未弱冠,忽被篤疾。兒既是偏所愛重,為之祈請三寶,晝夜不懈。謂至誠有感者,必當蒙祐。而兒遂不濟。於是結恨釋氏,宿命都除。
완사광이 큰 법을 받들어 공경하고 믿음이 몹시 지극하였다.
큰아들이 나이 아직 스물이 되지 않았는데 홀연히 깊은 병을 입었다.
아들은 이미 치우쳐 아끼고 무겁게 여기는 바였으므로, 그를 위해 삼보에 빌기를 밤낮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극한 정성에 느낌이 있으면 반드시 마땅히 도움을 입으리라 하였다.
그런데 아들이 마침내 건져지지 못하였다.
이에 석씨에게 한을 맺고 묵은 목숨을 도무지 없애 버렸다.
협주 2
阮氏譜曰:「牖字彥倫,裕長子也。仕至州主簿。」
『완씨보』에 이르기를 「완유(阮牖)는 자가 언륜이요 완유(阮裕)의 맏아들이다. 벼슬이 주주부에 이르렀다」 하였다.
以阮公智識,必無此弊。脫此非謬,何其惑歟?夫文王期盡,聖子不能駐其年,釋種誅夷,神力無以延其命。故業有定限,報不可移。若請禱而望其靈,匪驗而忽其道,固陋之徒耳。豈可以言神明之智者哉?
완공의 슬기와 앎으로 반드시 이런 폐단이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그르지 않다면 어찌 그리 헷갈렸는가. 무릇 문왕의 기약이 다하매 성스러운 아들도 그 나이를 머물게 하지 못하였고, 석가 씨족이 베어져 죽으매 신령한 힘도 그 목숨을 늘일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업에 정해진 한이 있고 갚음은 옮길 수 없다. 만일 빌고 빌어 그 신령함을 바라다가 겪음이 없다 하여 그 도를 하찮게 여긴다면 굳고 좁은 무리일 뿐이다. 어찌 신령하고 밝은 슬기 있는 이라 말할 수 있으랴.
12선무가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桓宣武對簡文帝,不甚得語。廢海西後,宜自申敘,乃豫撰數百語,陳廢立之意。既見簡文,簡文便泣下數十行。宣武矜愧,不得一言。
환선무가 간문제를 마주하여 몹시 말을 얻지 못하였다.
해서공을 폐한 뒤에 마땅히 스스로 펴 말해야 하겠으므로, 이에 미리 몇백 마디를 지어 폐하고 세운 뜻을 아뢰려 하였다.
이윽고 간문제를 뵈매 간문제가 곧 눈물을 몇십 줄 흘렸다.
선무가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13이미 꽃다움을 뒷세상에 흘리지 못한다면 또한 만 해에 냄새를 남기기에도 넉넉하지 않은가
桓公臥語曰:「作此寂寂,將為文、景所笑!」既而屈起坐曰:「既不能流芳後世,亦不足復遺臭萬載邪?」
환공이 누워서 말하였다. "이렇게 적적함을 지으니 장차 문제와 경제에게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이윽고 굽혔던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하였다. "이미 꽃다움을 뒷세상에 흘리지 못한다면 또한 만 해에 냄새를 남기기에도 넉넉하지 않은가."
협주 1
續晉陽秋曰:「桓溫既以雄武專朝,任兼將相,其不臣之心,形于音跡。曾臥對親僚,撫枕而起曰:『為爾寂寂,為文、景所笑!』眾莫敢對。」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환온이 이미 씩씩한 무예로 조정을 오로지하고 소임이 장수와 재상을 겸하매, 그 신하답지 않은 마음이 소리와 자취에 드러났다. 일찍이 누워서 가까운 아전을 마주하다가 베개를 어루만지고 일어나 이르기를 『이렇게 적적하니 문제와 경제에게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하니, 뭇사람이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14다그치고 좁은 데서는 그 평온하고 순수함을 지킬 수 없음을 참으로 알겠다
謝太傅於東船行,小人引船,或遲或速,或停或待,又放船從橫,撞人觸岸。公初不呵譴。人謂公常無嗔喜。曾送兄征西葬還,日莫雨駛,小人皆醉,不可處分。公乃於車中,手取車柱撞馭人,聲色甚厲。夫以水性沈柔,入隘奔激。方之人情,固知迫隘之地,無得保其夷粹。
사태부가 동쪽에서 배로 갈 때 작은 사람이 배를 끄는데, 더러 더디고 더러 빠르고 더러 멈추고 더러 기다리며, 또 배를 놓아 가로세로 하여 사람을 부딪고 언덕에 닿았다.
공이 처음에 꾸짖어 나무라지 않았다.
사람들이 공은 늘 성냄도 기쁨도 없다 하였다.
일찍이 형 정서를 장사 지내고 보내고 돌아오는데, 해가 저물고 비가 몰아치며 작은 사람이 다 취하여 처분할 수 없었다.
공이 이에 수레 안에서 손으로 수레 기둥을 가져다 모는 사람을 치는데 소리와 낯빛이 몹시 매서웠다.
무릇 물의 성품이 잠기고 부드러우나 좁은 데 들면 내달아 부딪친다.
이를 사람의 정에 견주면, 다그치고 좁은 데서는 그 평온하고 순수함을 지킬 수 없음을 참으로 알겠다.
협주 2
征西,謝奕。
정서는 사혁이다.
孟子曰:「湍水,決之東則東,決之西則西。搏而躍之,可使過顙;激而行之,可使在山。豈水之性哉?人可使為不善,性亦猶是也。」
『맹자』에 이르기를 「여울물은 동쪽으로 터면 곧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터면 곧 서쪽으로 간다. 쳐서 뛰게 하면 이마를 넘게 할 수 있고 부딪쳐 가게 하면 산에 있게 할 수 있으니, 어찌 물의 성품이겠는가. 사람도 좋지 않게 할 수 있으니 성품도 또한 이와 같다」 하였다.
15어찌 그 끝에 힘입으면서 그 밑동을 알지 못하랴
簡文見田稻不識,問是何草?左右答是稻。簡文還,三日不出,云:「寧有賴其末,而不識其本?」
간문제가 밭의 벼를 보고 알지 못하여 이 무슨 풀인가 물으니 곁의 사람이 벼라 대답하였다.
간문제가 돌아와 사흘을 나가지 않고 말하였다. "어찌 그 끝에 힘입으면서 그 밑동을 알지 못하랴."
협주 1
文公種菜,曾子牧羊,縱不識稻,何所多悔!此言必虛。
문공이 나물을 심고 증자가 양을 쳤으니, 비록 벼를 알지 못하였다 한들 무엇을 많이 뉘우치겠는가. 이 말은 반드시 헛되다.
16말하는 이가 이 죽음이 양주를 사양하고 형주로 간 것보다 어질다 하다
桓車騎在上明畋獵。東信至,傳淮上大捷。語左右云:「群謝年少,大破賊。」因發病薨。談者以為此死,賢於讓揚之荊。
환거기가 상명에서 사냥하였다.
동쪽 기별이 이르러 회수 위의 큰 이김을 전하였다.
곁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여러 사씨 젊은이가 크게 도적을 깨뜨렸구나."
이로 인해 병이 나서 죽었다.
말하는 이가 이 죽음이 양주를 사양하고 형주로 간 것보다 어질다 하였다.
협주 1
續晉陽秋曰:「桓沖本以將相異宜,才用不同,忖己德量,不及謝安,故解揚州以讓安。自謂少經軍鎮,及為荊州,聞符堅自出淮、肥,深以根本為慮,遣其隨身精兵三千人赴京師。時安已遣諸軍,且欲外示閒暇,因令沖軍還。沖大驚曰:『謝安乃有廟堂之量,不閑將略。吾量賊必破襄陽,而并力淮、肥。今大敵果至,方遊談示暇,遣諸不經事年少,而實寡弱,天下誰知?吾其左衽矣!』俄聞大勳克舉,慚慨而薨。」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환충이 본디 장수와 재상이 마땅함이 다르고 재주와 씀이 같지 않다 하여, 제 덕과 도량이 사안에 미치지 못함을 헤아렸으므로 양주를 풀어 사안에게 사양하였다. 스스로 젊어서 군사의 진을 겪었다 하였는데, 형주가 됨에 미쳐 부견이 스스로 회수와 비수로 나온다는 말을 듣고 깊이 뿌리와 밑동을 걱정하여, 그 몸을 따르는 정예 군사 삼천 사람을 서울에 보냈다. 그때 사안이 이미 여러 군사를 보내었고 또 밖으로 한가함을 보이고자 하여, 이로 인해 환충의 군사를 돌아가게 하였다. 환충이 크게 놀라 이르기를 『사안이 이에 조정을 다스릴 도량은 있으나 장수의 헤아림에 익숙하지 않다. 내가 헤아리건대 도적이 반드시 양양을 깨뜨리고 힘을 아울러 회수와 비수로 갈 것이다. 이제 큰 적이 과연 이르렀는데 바야흐로 노닐어 이야기하며 한가함을 보이고 여러 일을 겪지 않은 젊은이를 보내니 실로 적고 약하다. 천하에 누가 알랴. 우리가 그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게 되겠구나』 하였다. 이윽고 큰 공이 이루어 들렸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워 감개하며 죽었다」 하였다.
17환현이 뜻과 낯빛이 몹시 나빴다
桓公初報破殷荊州,曾講論語,至「富與貴,是人之所欲,不以其道得之,不處」。玄意色甚惡。
환공이 처음 은형주를 깨뜨렸다고 알릴 때, 일찍이 『논어』를 강론하다가 「넉넉함과 귀함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나 그 도로 얻은 것이 아니면 처하지 않는다」에 이르렀다.
환현이 뜻과 낯빛이 몹시 나빴다.
협주 2
周祗隆安記曰:「仲堪以人情注於玄,疑朝廷欲以玄代己,遣道人竺僧愆齎寶物遺相王寵幸、媒尼、左右,以罪狀玄,玄知其謀,而擊滅之。」
주기의 『융안기』에 이르기를 「은중감이 사람의 정이 환현에게 쏠린다 하여, 조정이 환현으로 저를 대신하게 하려는가 의심하였다. 도인 축승건을 보내 보배로운 물건을 가지고 상왕이 사랑하는 이와 중매쟁이와 곁의 사람에게 주어 환현을 죄주게 하려 하였는데, 환현이 그 꾀를 알고 그를 쳐서 없앴다」 하였다.
孔安國注曰:「不以其道得富貴,則仁者不處。」
공안국의 주에 이르기를 「그 도로 넉넉함과 귀함을 얻은 것이 아니면 곧 어진 이가 처하지 않는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