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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世説新語 紕漏第三十四

세설신어 世說新語 · 유의경(劉義慶) 엮음 · 유효표(劉孝標) 주 · 남조 송(5세기) · 양 유효표 주 · 단락 8 · 한자 676자 · 낭독 2.7분

「세설신어」 「비루」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 몇 살 난 아이가 아버지 무릎에서 한 대답이다. 이튿날 다시 묻자 「해가 가깝습니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했다.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이백여 해,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과 몸짓만을 서른여섯 갈래로 나누어 모았다. 덕행·언어·정사·문학에서 시작해 사치·성냄·시새움·원수까지 내려가니, 기릴 것과 나무랄 것을 같은 무게로 놓은 셈이다. 대숲의 일곱 사람이 나오고, 왕희지가 사위로 뽑히고, 눈 오는 밤 배를 저어 벗의 집 앞까지 갔다가 흥이 다했다며 돌아온다. 한 조각이 대개 서너 줄, 길어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유효표가 백여 종의 책을 끌어와 단 주는 그 책들이 거의 다 없어진 지금 도리어 본문보다 길게 남았다.

1뭇 계집종이 입을 가리고 그를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王敦初尚主,如廁,見漆箱盛乾棗,本以塞鼻,王謂廁上亦下果,食遂至盡。既還,婢擎金澡盤盛水,瑠璃盌盛澡豆;因倒箸水中而飲之,謂是乾飯。群婢莫不掩口而笑之。

왕돈이 처음 공주에게 장가들어 뒷간에 갔다가 옻칠한 상자에 마른 대추를 담아 둔 것을 보았다.

본디 코를 막는 것인데 왕돈은 뒷간에도 또한 과일을 놓는가 하여 먹어 마침내 다하였다.

이윽고 돌아오매 계집종이 금 대야에 물을 담고 유리 사발에 씻는 콩가루를 담아 받쳐 들었다.

이로 인해 물 가운데 쏟아 마시고 이는 마른 밥이라 하였다.

뭇 계집종이 입을 가리고 그를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협주 1

敦尚武帝女舞陽公主,字脩褘。

왕돈이 무제의 딸 무양공주에게 장가들었으니 자가 수의다.

2신의 아비가 도 없음을 만나 다친 것이 크고 아픔이 깊습니다

元皇初見賀司空,言及吳時事,問:「孫皓燒鋸截一賀頭,是誰?」司空未得言,元皇自憶曰:「是賀劭。」司空流涕曰:「臣父遭遇無道,創巨痛深,無以仰答明詔。」元皇愧慙,三日不出。

원황제가 처음 하사공을 보고 말이 오나라 때 일에 미쳐 물었다. "손호가 톱을 달구어 한 하씨의 머리를 끊었다는데 이는 누구인가."

사공이 아직 말을 얻지 못하였는데 원황제가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였다. "이는 하소다."

사공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신의 아비가 도 없음을 만나 다친 것이 크고 아픔이 깊으니, 밝으신 조칙에 우러러 답할 바가 없습니다."

원황제가 부끄러워 사흘을 나가지 않았다.

협주 2

邵即循父也。皓凶暴驕矜,邵上書切諫,皓深恨之。親近憚邵貞正,譖云謗毀國事。被詰責。後還復職。邵中惡風,口不能言語,皓疑邵託疾,收付酒藏,考掠千數,卒無一言。鋸殺之。

하소는 곧 하순의 아비다. 손호가 흉하고 사납고 교만하고 자랑하매 하소가 글을 올려 절박하게 간하니 손호가 깊이 그를 한하였다. 가까운 이들이 하소의 곧고 바름을 꺼려 헐뜯어 나랏일을 헐고 비방한다 하매 따져 꾸짖음을 입었다. 뒤에 돌아와 소임을 되찾았다. 하소가 나쁜 바람에 맞아 입으로 말하지 못하매, 손호가 하소가 병을 핑계 삼는가 의심하여 잡아 술 곳간에 붙이고 천 번으로 헤아려 때리며 살폈으나 마침내 한마디도 없었다. 톱으로 그를 죽였다.

《禮記》:「創巨者其日久,痛深者其愈遲。」

『예기』에 「다친 것이 큰 이는 그 날이 오래고 아픔이 깊은 이는 그 나음이 더디다」 하였다.

3경이 이아를 익히 읽지 않아 거의 배움을 권하다 죽을 뻔하였구려

蔡司徒渡江,見彭蜞,大喜曰:「蟹有八足,加以二螯。」令烹之。既食,吐下委頓,方知非蟹。後向謝仁祖說此事,謝曰:「卿讀爾雅不熟,幾為勸學死。」

채사도가 강을 건너와 방게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말하였다. "게는 여덟 발이 있고 두 집게를 더한다 하였다."

삶으라 하였다.

이윽고 먹고 토하고 내려 무너져 지쳐서야 바야흐로 게가 아님을 알았다.

뒤에 사인조를 향해 이 일을 말하니 사씨가 말하였다. "경이 『이아』를 익히 읽지 않아 거의 배움을 권하다 죽을 뻔하였구려."

협주 1

《大戴禮·勸學篇》曰:「蟹二螯八足,非蛇蟺之穴無所寄託者,用心躁也。」故蔡邕為勸學章取義焉。《爾雅》曰:「螖蠌小者勞,即彭蜞也,似蟹而小。」今彭蜞小於蟹,而大於彭螖,即《爾雅》所謂螖蠌也。然此三物,皆八足二螯,而狀甚相類。蔡謨不精其小大,食而致弊,故謂讀《爾雅》不熟也。

『대대례·권학편』에 이르기를 「게는 두 집게와 여덟 발이니 뱀과 두렁허리의 구멍이 아니면 붙어 맡길 데가 없는 것은 마음 씀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채옹이 권학장을 지으며 뜻을 취하였다. 『이아』에 이르기를 「골택 가운데 작은 것을 노(勞)라 하니 곧 방게다. 게와 비슷하나 작다」 하였다. 이제 방게는 게보다 작고 골활보다 크니 곧 『이아』에 이른바 골택이다. 그러나 이 세 물건이 다 여덟 발에 두 집게요 생김이 몹시 서로 비슷하다. 채모가 그 크고 작음을 정하게 알지 못하고 먹어 폐단에 이르렀으므로, 『이아』를 익히 읽지 않았다 이른 것이다.

4이는 정 있는 어리석음이다

任育長年少時,甚有令名。武帝崩,選百二十挽郎,一時之秀彥,育長亦在其中。王安豐選女壻,從挽郎搜其勝者,且擇取四人,任猶在其中。童少時神明可愛,時人謂育長影亦好。自過江,便失志。王丞相請先度時賢共至石頭迎之,猶作疇日相待,一見便覺有異。坐席竟,下飲,便問人云:「此為茶?為茗?」覺有異色,乃自申明云:「向問飲為熱,為冷耳。」嘗行從棺邸下度,流涕悲哀。王丞相聞之曰:「此是有情癡。」

임육장이 나이 어릴 때 몹시 좋은 이름이 있었다.

무제가 죽으매 백스무 명 만가 부르는 낭을 뽑았는데 한때의 빼어난 이들이었고 육장도 또한 그 가운데 있었다.

왕안풍이 사위를 뽑는데 만가 낭에서 그 나은 이를 찾아 또 넷을 가려 취하매 임씨가 오히려 그 가운데 있었다.

어리고 젊었을 때 정신과 밝음이 사랑스러워 그때 사람들이 육장은 그림자도 또한 좋다 하였다.

강을 건넌 뒤로 곧 뜻을 잃었다.

왕승상이 먼저 건너온 그때 어진 이를 청하여 함께 석두에 이르러 그를 맞으며, 오히려 지난날처럼 서로 대접하려 하였는데 한 번 보고 곧 남다름이 있음을 깨달았다.

자리에 앉기를 마치고 마실 것을 내리매 곧 사람에게 물었다. "이는 차인가 늦차인가."

남다른 낯빛이 있음을 깨닫고 이에 스스로 펴 밝혔다. "아까 물은 것은 마실 것이 뜨거운가 찬가일 뿐이오."

일찍이 다니다가 널 가게 아래를 지나며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였다.

왕승상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이는 정 있는 어리석음이다."

협주 1

《晉百官名》曰:「任瞻字育長,樂安人。父琨,少府卿。瞻歷謁者、僕射、都尉、天門太守。」

『진백관명』에 이르기를 「임첨은 자가 육장이요 낙안 사람이다. 아버지 임곤은 소부경이다. 임첨은 알자와 복야와 도위와 천문태수를 지냈다」 하였다.

5세상 사람이 이로써 중랑을 헐뜯고 또한 내가 함께 이를 하였다 말한다

謝虎子嘗上屋熏鼠。胡兒既無由知父為此事,聞人道「癡人有作此者」。戲笑之。時道此非復一過。太傅既了己之不知,因其言次,語胡兒曰:「世人以此謗中郎,亦言我共作此。」胡兒懊熱,一月日閉齋不出。太傅虛託引己之過,以相開悟,可謂德教。

사호자가 일찍이 지붕에 올라 쥐를 연기로 쫓았다.

호아는 이미 아비가 이 일을 한 줄 알 까닭이 없어, 남이 「어리석은 사람이 이를 하는 이가 있다」 말함을 듣고 놀려 웃었다.

그때 이를 말한 것이 다시 한 번만이 아니었다.

태부가 이미 제가 알지 못함을 알고, 그 말하는 차례에 따라 호아에게 말하였다. "세상 사람이 이로써 중랑을 헐뜯고 또한 내가 함께 이를 하였다 말한다."

호아가 뉘우쳐 달아올라 한 달을 서재를 닫고 나오지 않았다.

태부가 헛되이 제 허물을 끌어 부쳐 이로써 서로 열어 깨우쳤으니 덕의 가르침이라 이를 만하다.

협주 2

虎子,據小字。據字玄道,尚書褒第二子。年三十三亡。

호자는 사거의 아이 적 이름이다. 사거는 자가 현도요 상서 사부의 둘째 아들이다. 나이 서른셋에 죽었다.

中郎,據也。章伸反。按世有兄弟三人,則謂第二者為中。今謝昆弟有六,而以據為中郎,未可解。當由有三時,以中為稱,因仍不改也。

중랑은 사거다. 「장신(章伸)」의 반절이다. 살피건대 세상에 형제 세 사람이 있으면 곧 둘째 되는 이를 중(中)이라 이른다. 이제 사씨의 형제가 여섯인데 사거를 중랑이라 하니 알 수 없다. 마땅히 셋일 때가 있어 중으로 일컫고 그대로 고치지 않은 데서 말미암았으리라.

6신이 나아가고 물러남에 오직 궁합니다

殷仲堪父病虛悸,聞床下蟻動,謂是牛鬬。孝武不知是殷公,問仲堪「有一殷,病如此不?」仲堪流涕而起曰:「臣進退唯谷。」

은중감의 아버지가 허하고 두근거리는 병이 들어, 평상 아래 개미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이는 소가 싸운다 하였다.

효무제가 이가 은공인 줄 알지 못하고 중감에게 물었다. "한 은씨가 있어 병이 이와 같다는데 그러한가."

중감이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 말하였다. "신이 나아가고 물러남에 오직 궁합니다."

협주 2

《殷氏譜》曰:「殷師字師子。祖識、父融,並有名。師至驃騎咨議,生仲堪。」《續晉陽秋》曰:「仲堪父曾有失心病,仲堪腰不解帶,彌年父卒。」

『은씨보』에 이르기를 「은사는 자가 사자다. 할아버지 은식과 아버지 은융이 아울러 이름이 있었다. 은사는 표기자의에 이르렀고 중감을 낳았다」 하였다.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중감의 아버지가 일찍이 마음 잃는 병이 있으매 중감이 허리에 띠를 풀지 않은 것이 해를 넘겨 아비가 죽기까지였다」 하였다.

《大雅詩》也。毛公注曰:「谷,窮也。」

「대아」 시다. 모공의 주에 이르기를 「곡(谷)은 궁함이다」 하였다.

7하늘 때가 아직 따뜻하여 준치와 새우젓을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虞嘯父為孝武侍中,帝從容問曰:「卿在門下,初不聞有所獻替。」虞家富春,近海,謂帝望其意氣,對曰:「天時尚煗,䱥魚蝦䱹未可致,尋當有所上獻。」帝撫掌大笑。

우소부가 효무제의 시중이 되었는데 임금이 조용히 물었다. "경이 문하에 있으면서 처음부터 바치고 갈음하는 바가 있다 듣지 못하였소."

우씨의 집이 부춘이라 바다에 가까우매, 임금이 그 뜻과 기운을 바란다 여겨 대답하였다. "하늘 때가 아직 따뜻하여 준치와 새우젓을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이윽고 마땅히 올려 바칠 바가 있겠습니다."

임금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협주 1

《中興書》曰:「嘯父,會稽人,光祿潭之孫,右將軍純之子。少歷顯位,與王廞同廢為庶人。義旗初,為會稽內史。」

『중흥서』에 이르기를 「우소부는 회계 사람이니 광록 우담의 손자요 우장군 우순의 아들이다. 젊어서 드러난 자리를 지냈고 왕흠과 함께 폐하여져 여느 사람이 되었다. 옳음의 깃발이 일어난 처음에 회계내사가 되었다」 하였다.

8경은 어찌하여 남의 일을 그르치는가

王大喪後,朝論或云「國寶應作荊州」。國寶主簿夜函白事,云:「荊州事已行。」國寶大喜,而夜開閤,喚綱紀話勢,雖不及作荊州,而意色甚恬。曉遣參問,都無此事。即喚主簿數之曰:「卿何以誤人事邪?」

왕대가 죽은 뒤에 조정의 의논이 더러 「국보가 마땅히 형주가 되겠다」 하였다.

국보의 주부가 밤에 일을 봉하여 아뢰기를 「형주 일이 이미 행하여졌습니다」 하였다.

국보가 크게 기뻐하여 밤에 방문을 열고 벼리 되는 이를 불러 형세를 이야기하는데, 비록 형주 됨을 말하는 데는 미치지 않았으나 뜻과 낯빛이 몹시 편안하였다.

새벽에 사람을 보내 물어보니 도무지 이런 일이 없었다.

곧 주부를 불러 나무랐다. "경은 어찌하여 남의 일을 그르치는가."

협주 1

《晉安帝紀》曰:「王忱死,會稽王欲以國寶代之。孝武中,詔用仲堪,乃止。」

『진안제기』에 이르기를 「왕침이 죽으매 회계왕이 국보로 그를 대신하게 하려 하였다. 효무제 가운데 조칙으로 중감을 쓰매 이에 그쳤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