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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닉世説新語 惑溺第三十五

세설신어 世說新語 · 유의경(劉義慶) 엮음 · 유효표(劉孝標) 주 · 남조 송(5세기) · 양 유효표 주 · 단락 7 · 한자 603자 · 낭독 2.4분

「세설신어」 「혹닉」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 몇 살 난 아이가 아버지 무릎에서 한 대답이다. 이튿날 다시 묻자 「해가 가깝습니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했다.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이백여 해,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과 몸짓만을 서른여섯 갈래로 나누어 모았다. 덕행·언어·정사·문학에서 시작해 사치·성냄·시새움·원수까지 내려가니, 기릴 것과 나무랄 것을 같은 무게로 놓은 셈이다. 대숲의 일곱 사람이 나오고, 왕희지가 사위로 뽑히고, 눈 오는 밤 배를 저어 벗의 집 앞까지 갔다가 흥이 다했다며 돌아온다. 한 조각이 대개 서너 줄, 길어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유효표가 백여 종의 책을 끌어와 단 주는 그 책들이 거의 다 없어진 지금 도리어 본문보다 길게 남았다.

1올해 도적을 깨뜨림이 바로 종놈을 위한 것이었구나

魏甄后惠而有色,先為袁熙妻,甚獲寵。曹公之屠鄴也,令疾召甄,左右白:「五官中郎已將去。」公曰:「今年破賊正為奴。」

위나라 견후가 슬기롭고 얼굴이 고와 먼저 원희의 아내가 되어 몹시 사랑을 얻었다.

조공이 업을 무찌를 때 급히 견씨를 부르라 하니 곁의 사람이 아뢰었다. "오관중랑이 이미 데려갔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올해 도적을 깨뜨림이 바로 종놈을 위한 것이었구나."

협주 1

《魏略》曰:「建安中,袁紹為中子熙娶甄會女。紹死,熙出在幽州,甄留侍姑。及鄴城破,五官將從而入紹舍,見甄怖,以頭伏姑膝上。五官將謂紹妻袁夫人:『扶甄令舉頭。』見其色非凡,稱歎之。太祖聞其意,遂為迎娶,擅室數歲。」《世語》曰:「太祖下鄴,文帝先入袁尚府,見婦人被髮垢面垂涕,立紹妻劉後。文帝問,知是熙妻,使令攬髮,以袖拭面,姿貌絕倫。既過,劉謂甄曰:『不復死矣。』遂納之,有子。」《魏氏春秋》曰:「五官將納熙妻也,孔融與太祖書曰:『武王伐紂,以妲己賜周公。』太祖以融博學,真謂書傳所記。後見融問之,對曰:『以今度古,想其然也。』」

『위략』에 이르기를 「건안 연간에 원소가 가운데 아들 원희를 위해 견회의 딸을 맞았다. 원소가 죽으매 원희가 나가 유주에 있고 견씨는 남아 시어미를 모셨다. 업성이 깨짐에 미쳐 오관장이 따라 들어가 원소의 집에 이르러, 견씨가 두려워 머리를 시어미 무릎 위에 엎드린 것을 보았다. 오관장이 원소의 아내 원부인에게 이르기를 『견씨를 붙들어 머리를 들게 하시오』 하였다.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이를 일컬어 탄식하였다. 태조가 그 뜻을 듣고 마침내 위해 맞아들이니 방을 오로지한 것이 몇 해였다」 하였다. 『세어』에 이르기를 「태조가 업에 내려오매 문제가 먼저 원상의 부에 들어가, 부인이 머리를 풀고 낯이 때 묻어 눈물을 드리우며 원소의 아내 유씨 뒤에 선 것을 보았다. 문제가 물어 이가 원희의 아내인 줄 알고 머리를 걷게 하여 소매로 낯을 닦으니 자태와 모습이 짝이 없었다. 이윽고 지나가매 유씨가 견씨에게 이르기를 『다시 죽지 않겠다』 하고 마침내 그를 들이니 아들이 있었다」 하였다. 『위씨춘추』에 이르기를 「오관장이 원희의 아내를 들이매 공융이 태조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무왕이 주를 치고 달기를 주공에게 내렸습니다』 하였다. 태조가 공융이 널리 배웠으므로 참으로 글과 전기에 적힌 바라 하였다. 뒤에 공융을 보고 이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제로 옛날을 헤아려 그러하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였다」 하였다.

2부인의 덕은 일컫기에 넉넉하지 않으니 마땅히 얼굴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荀奉倩與婦至篤,冬月婦病熱,乃出中庭自取冷,還以身熨之。婦亡,奉倩後少時亦卒。以是獲譏於世。奉倩曰:「婦人德不足稱,當以色為主。」裴令聞之曰:「此乃是興到之事,非盛德言,冀後人未昧此語。」

순봉천이 아내와 지극히 도타워, 겨울달에 아내가 열이 나는 병이 들매 이에 뜰 가운데 나가 스스로 찬 기운을 취하여 돌아와 몸으로 이를 다려 주었다.

아내가 죽으매 봉천도 뒤에 조금 있다 죽었다.

이로써 세상의 나무람을 얻었다.

봉천이 말하였다. "부인의 덕은 일컫기에 넉넉하지 않으니 마땅히 얼굴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배영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이는 이에 흥이 이르러 나온 일이요 성한 덕의 말이 아니니, 뒷사람이 이 말에 어둡지 않기를 바란다."

협주 2

《粲別傳》曰:「粲常以婦人才智不足論,自宜以色為主。驃騎將軍曹洪女有色,粲於是聘焉。容服帷帳甚麗,專房燕婉。歷年後婦病亡。未殯,傅嘏往喭粲,粲不明而神傷。嘏問曰:『婦人才色,並茂為難。子之聘也,遺才存色,非難遇也,何哀之甚?』粲曰:『佳人難再得!顧逝者不能有傾城之異,然未可易遇也。』痛悼不能已已。歲餘亦亡。亡時年二十九。粲簡貴,不與常人交接,所交者一時俊傑。至葬夕,赴期者裁十餘人,悉同年相知名士也。哭之,感慟路人。粲雖褊隘,以燕婉自喪,然有識猶追惜其能言。」

『찬별전』에 이르기를 「순찬이 늘 부인의 재주와 슬기는 논하기에 넉넉하지 않으니 절로 마땅히 얼굴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하였다. 표기장군 조홍의 딸이 얼굴이 고우매 순찬이 이에 그를 맞았다. 모습과 옷과 휘장이 몹시 고왔고 방을 오로지하여 편안하고 화목하였다. 여러 해 뒤에 아내가 병들어 죽었다. 아직 빈소를 차리기 전에 부하가 순찬을 조문하러 가니, 순찬이 곡하지 않고 정신이 다쳤다. 부하가 묻기를 『부인의 재주와 빛이 아울러 무성하기는 어렵소. 그대의 맞음은 재주를 버리고 빛을 두는 것이니 만나기 어렵지 않은데 어찌 슬퍼함이 심하오』 하였다. 순찬이 『아름다운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소. 돌아보건대 간 이가 성을 기울일 남다름은 없었으나 그래도 쉬이 만날 수는 없소』 하였다. 아파하고 슬퍼하기를 그치지 못하다가 한 해 남짓에 또한 죽었다. 죽을 때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순찬이 간결하고 귀하여 여느 사람과 사귀지 않았으니 사귄 이는 한때의 뛰어난 이들이었다. 장사 지내는 저녁에 이르러 기약에 나아온 이가 겨우 열 남짓 사람이었는데 다 같은 또래로 서로 아는 이름난 선비였다. 그를 곡함에 길 가는 사람을 아프게 하였다. 순찬이 비록 좁고 좁아 편안하고 화목함으로 스스로 죽었으나, 아는 이는 오히려 그 말 잘함을 좇아 아까워하였다」 하였다.

何劭論粲曰:「仲尼稱『有德者有言』。而荀粲減於是,力顧所言有餘,而識不足。」

하소가 순찬을 논하여 이르기를 「중니께서 『덕 있는 이는 말이 있다』 일컬으셨는데, 순찬은 여기서 덜하다. 힘써 돌아보건대 말한 바는 남음이 있으나 앎이 넉넉하지 않다」 하였다.

3곽후가 마침내 아들이 없었다

賈公閭後妻郭氏酷妒,有男兒名黎民,生載周,充自外還,乳母抱兒在中庭,兒見充喜踊,充就乳母手中嗚之。郭遙望見,謂充愛乳母,即殺之。兒悲思啼泣,不飲它乳,遂死。郭后終無子。

가공려의 뒤 아내 곽씨가 모질게 시새웠다.

사내아이가 있어 이름이 여민인데 나서 돌을 맞았다.

가충이 밖에서 돌아오매 젖어미가 아이를 안고 뜰 가운데 있었는데, 아이가 가충을 보고 기뻐 뛰니 가충이 젖어미 손 가운데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곽씨가 멀리서 바라보고 가충이 젖어미를 아낀다 하여 곧 그를 죽였다.

아이가 슬피 그리워 울고 눈물 흘리며 다른 젖을 마시지 않아 마침내 죽었다.

곽후가 마침내 아들이 없었다.

협주 2

《充別傳》曰:「充父逵,晚有子,故名曰充,字公閭,言後必有充閭之異。」

『충별전』에 이르기를 「가충의 아버지 가규가 늦게 아들을 얻었으므로 이름을 충(充)이라 하고 자를 공려(公閭)라 하니, 뒤에 반드시 마을을 채울 남다름이 있으리라는 말이다」 하였다.

《晉諸公贊》云:「郭氏即賈后母也。為性高朗,知后無子,甚憂愛愍懷,每勸厲之。臨亡,誨賈后,令盡意於太子,言甚切至。趙充華及賈謐母,並勿令出入宮中。又曰:『此皆亂汝事!』后不能用,終至誅夷。」臣按:傅暢此言,則郭氏賢明婦人也。向令賈后撫愛愍懷,豈當縱其妒悍,自斃其子。然則物我不同,或老壯情異乎?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곽씨는 곧 가후의 어미다. 성품이 높고 환하여 가후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몹시 민회태자를 걱정하고 아껴, 늘 그를 권하고 힘썼다. 죽음에 임하여 가후를 가르쳐 태자에게 뜻을 다하게 하니 말이 몹시 절박하고 지극하였다. 조충화와 가밀의 어미를 아울러 궁 안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이들이 다 네 일을 어지럽힐 것이다』 하였다. 가후가 쓰지 못하여 마침내 죽임에 이르렀다」 하였다. 신이 살피건대 부창의 이 말로 보면 곧 곽씨는 어질고 밝은 부인이다. 저번에 가후로 하여금 민회를 어루만져 아끼게 하였으니, 어찌 마땅히 그 시새우고 사나움을 멋대로 하여 스스로 그 아들을 죽였겠는가. 그러면 곧 남과 나가 같지 않음인가, 아니면 늙음과 젊음에 정이 다름인가.

4천하가 넓고 넓은데 괴부인도 그 예를 좇을 수 있겠는가

孫秀降晉,晉武帝厚存寵之,妻以姨妹蒯氏,室家甚篤。妻嘗妒,乃罵秀為「貉子」。秀大不平,遂不復入。蒯氏大自悔責,請救於帝。時大赦,群臣咸見。既出,帝獨留秀,從容謂曰:「天下曠蕩,蒯夫人可得從其例不?」秀免冠而謝,遂為夫婦如初。

손수가 진나라에 항복하매 진나라 무제가 두터이 두고 사랑하여, 이모의 아우 괴씨를 아내로 주니 집안이 몹시 도타웠다.

아내가 일찍이 시새워 이에 손수를 꾸짖어 「오랑캐 새끼」라 하였다.

손수가 크게 언짢아하여 마침내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괴씨가 크게 스스로 뉘우쳐 꾸짖고 임금에게 건져 주기를 청하였다.

그때 크게 사면하여 뭇 신하가 다 뵈었다.

이윽고 나오는데 임금이 홀로 손수를 머물게 하고 조용히 일러 말하였다. "천하가 넓고 넓은데 괴부인도 그 예를 좇을 수 있겠는가."

손수가 관을 벗고 사죄하여 마침내 지아비와 지어미 됨이 처음과 같았다.

협주 2

《太原郭氏錄》曰:「秀字彥才,吳郡吳人,為下口督,甚有威恩。孫皓憚欲除之,遣將軍何定溯江而上,辭以捕鹿三千口供廚。秀豫知謀,遂來歸化。世祖喜之,以為驃騎將軍、交州牧。」

『태원곽씨록』에 이르기를 「손수는 자가 언재요 오군 오 사람이니 하구독이 되어 몹시 위엄과 은혜가 있었다. 손호가 꺼려 그를 없애려 하여 장군 하정을 보내 강을 거슬러 오르게 하며, 사슴 삼천 마리를 잡아 부엌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라 말을 부쳤다. 손수가 그 꾀를 미리 알고 마침내 와서 귀화하였다. 세조가 기뻐하여 표기장군과 교주목으로 삼았다」 하였다.

《晉陽秋》曰:「蒯氏,襄陽人,祖良,吏部尚書。父鈞,南陽太守。」

『진양추』에 이르기를 「괴씨는 양양 사람이니 할아버지 괴량은 이부상서요 아버지 괴균은 남양태수다」 하였다.

5딸을 한수에게 아내로 주다

韓壽美姿容,賈充辟以為掾。充每聚會,賈女於青璅中看,見壽,說之。恆懷存想,發於吟詠。後婢往壽家,具述如此,并言女光麗。壽聞之心動,遂請婢潛修音問。及期往宿。壽蹻捷絕人,踰牆而入,家中莫知。自是充覺女盛自拂拭,說暢有異於常。後會諸吏,聞壽有奇香之氣,是外國所貢,一著人,則歷月不歇。充計武帝唯賜己及陳騫,餘家無此香,疑壽與女通,而垣牆重密,門閤急峻,何由得爾?乃託言有盜,令人修牆。使反曰:「其餘無異,唯東北角如有人跡。而牆高,非人所踰。」充乃取女左右婢考問,即以狀對。充秘之,以女妻壽。

한수가 자태와 모습이 아름다우매 가충이 불러 아전으로 삼았다.

가충이 모을 때마다 가씨의 딸이 푸른 창살 가운데서 보다가 한수를 보고 그를 기뻐하였다.

늘 그리는 마음을 품어 읊조림에 드러내었다.

뒤에 계집종이 한수의 집에 가서 이와 같음을 갖추어 펴고 아울러 딸이 빛나고 곱다 말하였다.

한수가 이를 듣고 마음이 움직여 마침내 계집종에게 몰래 소식을 닦기를 청하였다.

기약에 이르러 가서 묵었다. 한수가 날래고 재빠름이 남보다 뛰어나 담을 넘어 들어가매 집 안이 알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가충이 딸이 성하게 스스로 털고 닦으며 기뻐 시원함이 여느 때와 남다름을 깨달았다.

뒤에 여러 아전을 모았는데 한수에게 기이한 향기가 있음을 맡으니, 이는 바깥 나라에서 바친 바로 한 번 사람에게 붙으면 곧 달을 지나도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가충이 헤아리매 무제가 오직 저와 진건에게만 내렸고 다른 집에 이 향이 없으므로, 한수가 딸과 통하는가 의심하였으나 담이 겹겹이 빽빽하고 문이 급하고 준엄한데 무엇으로 그럴 수 있었으랴 하였다.

이에 도적이 있다 말을 부쳐 사람에게 담을 고치게 하였다.

심부름꾼이 돌아와 말하였다. "그 나머지는 남다름이 없고 오직 동북 모퉁이만 사람 자취가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담이 높아 사람이 넘을 바가 아닙니다."

가충이 이에 딸의 곁 계집종을 잡아 다잡아 물으니 곧 모습대로 대답하였다.

가충이 이를 숨기고 딸을 한수에게 아내로 주었다.

협주 3

《晉諸公贊》曰:「壽字德真,南陽赭陽人。曾祖暨,魏司徒,有高行。」壽敦家風,性忠厚,豈有若斯之事?諸書無聞,唯見世說,自未可信。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한수는 자가 덕진이요 남양 자양 사람이다. 증조 한기는 위나라 사도로 높은 행실이 있었다」 하였다. 한수가 집안의 바람을 도타이 하고 성품이 참되고 두터웠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여러 책에 들리는 바 없고 오직 『세설』에만 보이니 절로 믿을 수 없다.

《十洲記》曰:「漢武帝時,西域月氏國王遣使獻香四兩,大如雀卵,黑如桑椹,燒之,芳氣經三月不歇。」蓋此香也。

『십주기』에 이르기를 「한나라 무제 때 서역 월지국 왕이 사신을 보내 향 넉 냥을 바쳤는데 크기가 참새 알만 하고 검기가 오디 같으며, 이를 태우매 꽃다운 기운이 석 달을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하였다. 대개 이 향이다.

《郭子》謂與韓壽通者,乃是陳騫女,即以妻壽,未婚而女亡。壽因娶賈氏,故世因傳是充女。

『곽자』는 한수와 통한 이가 이에 진건의 딸이요 곧 한수에게 아내로 주었는데, 혼인하기 전에 딸이 죽었다 한다. 한수가 이로 인해 가씨를 맞았으므로 세상이 이로 인해 가충의 딸이라 전한다.

6내가 경을 경이라 하지 않으면 누가 마땅히 경을 경이라 하겠소

王安豐婦,常卿安豐。安豐曰:「婦人卿婿,於禮為不敬,後勿復爾。」婦曰:「親卿愛卿,是以卿卿;我不卿卿,誰當卿卿?」遂恆聽之。

왕안풍의 아내가 늘 안풍을 경이라 하였다.

안풍이 말하였다. "부인이 지아비를 경이라 함은 예에 공경하지 않음이 되니 뒤에 다시 그러지 마시오."

아내가 말하였다. "경을 가까이하고 경을 아끼므로 이로써 경을 경이라 합니다. 내가 경을 경이라 하지 않으면 누가 마땅히 경을 경이라 하겠소."

마침내 늘 이를 들어 주었다.

7채공이 이를 뇌상서라 하다

王丞相有幸妾姓雷,頗預政事納貨。蔡公謂之「雷尚書」。

왕승상에게 사랑하는 첩이 있어 성이 뇌씨인데, 자못 정사에 끼고 재물을 들였다.

채공이 이를 「뇌상서」라 하였다.

협주 1

《語林》曰:「雷有寵,生恬、洽。」

『어림』에 이르기를 「뇌씨가 사랑을 받아 왕념과 왕흡을 낳았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