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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學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4 · 한자 1,759자 · 낭독 7.0분

「순자」 권학 「勸學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君子曰:學不可以已。靑,取之於藍而靑於藍;冰,水爲之而寒於水。木直中繩,輮以爲輪,其曲中規,雖有槁曓,不復挺者,輮使之然也。故木受繩則直,金就礪則利,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知明而行無過矣。故不登髙山,不知天之髙也;不臨深谿,不知地之厚也;不聞先王之遺言,不知學問之大也。于、越、夷、貉之子,生而同聲,長而異俗,教使之然也。《詩》曰:「嗟爾君子,無恆安息。靖共爾位,好是正直。神之聽之,介爾景福。」神莫大於化道,福莫長於無禍。吾嘗終日而思矣,不如須臾之所學也,吾嘗跂而望矣,不如登髙之博見也。登髙而招,臂非加長也,而見者遠;順風而呼,聲非加疾也,而聞者彰。假輿馬者,非利足也,而致千里;假舟檝者,非能水也,而絶江河。君子生非異也,善假於物也。南方有鳥焉,名曰蒙鳩,以羽爲巣而編之以髮,繫之葦苕,風至苕折,卵破子死。巣非不完也,所繫者然也。西方有木焉,名曰射干,莖長四寸,生於髙山之上,而臨百仞之淵,木莖非能長也,所立者然也。蓬生麻中,不扶而直。蘭槐之根是爲芷。其漸之滫,君子不近,庶人不服,其質非不美也,所漸者然也。故君子居必擇鄕,遊必就士,所以防邪僻而近中正也。物類之起,必有所始。榮辱之來,必象其德。肉腐出蟲,魚枯生蠹。怠慢忘身,禍災乃作。强自取柱,柔自取束。邪穢在身,怨之所構。施薪若一,火就燥也;平地若一,水就濕也。草木疇生,禽獸羣焉,物各從其類也。是故質的張而弓矢至焉,林木茂而斧斤至焉,樹成蔭而衆鳥息焉,醯酸而蜹聚焉。故言有召禍也,行有招辱也,君子愼其所立乎!

군자가 말하였다. 배움은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 물감은 쪽에서 얻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나무가 곧아 먹줄에 맞더라도 구부려 바퀴를 만들면 그 굽음이 그림쇠에 맞는다. 비록 볕에 말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구부림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나아가면 날카로워진다. 군자가 널리 배우고 날로 제 몸을 세 번 살피면 앎이 밝아지고 행실에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깊은 골짜기에 다가서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줄 모르고, 앞선 임금의 남긴 말을 듣지 않으면 배움이 큰 줄 모른다.

우(于)와 월과 이(夷)와 맥(貉)의 아이가 나면서는 울음소리가 같은데 자라서 풍속이 다른 것은 가르침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시」에 이르기를 「아, 그대 군자여, 늘 편안히 쉬려 하지 말라. 네 자리를 삼가 지키고 바르고 곧음을 좋아하라. 신이 이를 들으시고 너에게 큰 복을 주시리라」 하였다.

신령함은 도에 녹아드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복은 재앙이 없는 것보다 긴 것이 없다.

내가 일찍이 온종일 생각해 보았으나 잠깐 배운 것만 못하였고, 내가 일찍이 발꿈치를 들고 바라보았으나 높은 데 올라 널리 보는 것만 못하였다.

높은 데 올라 손짓하면 팔이 더 길어진 것이 아닌데 보는 이가 멀리서도 보고, 바람을 따라 부르면 소리가 더 빨라진 것이 아닌데 듣는 이가 또렷이 듣는다. 수레와 말을 빌린 이는 발이 빠른 것이 아닌데 천 리에 이르고, 배와 노를 빌린 이는 헤엄을 잘 치는 것이 아닌데 강과 하수를 건넌다. 군자는 나면서부터 남다른 것이 아니라 물건을 잘 빌리는 것이다.

남녘에 새가 있어 이름을 몽구(蒙鳩)라 한다. 깃으로 둥지를 짓고 머리털로 엮어 갈대 이삭에 매어 둔다. 바람이 이르러 이삭이 꺾이면 알이 깨지고 새끼가 죽는다. 둥지가 온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맨 자리가 그러한 것이다.

서녘에 나무가 있어 이름을 사간(射干)이라 한다. 줄기 길이가 네 치인데 높은 산 위에 나서 백 길 못을 굽어본다. 나무줄기가 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 자리가 그러한 것이다.

쑥이 삼밭에 나면 붙들지 않아도 곧다. 난괴(蘭槐)의 뿌리를 지(芷)라 한다. 그것을 구정물에 담그면 군자가 가까이하지 않고 뭇 사람이 차지 않는다. 그 바탕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담근 것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살 때 반드시 마을을 가리고 노닐 때 반드시 선비에게 나아가니, 그릇되고 치우침을 막고 가운데 바름에 가까이하려는 것이다.

물건의 무리가 일어나는 데는 반드시 비롯하는 바가 있고 영광과 욕됨이 오는 데는 반드시 그 덕을 닮는다.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나고 물고기가 마르면 좀이 난다. 게으르고 느슨하여 제 몸을 잊으면 재앙이 이에 인다.

굳센 것은 스스로 기둥이 되기를 취하고 부드러운 것은 스스로 묶이기를 취한다. 그릇되고 더러운 것이 몸에 있으면 원망이 얽히는 바다.

섶을 한결같이 펴 놓아도 불은 마른 데로 나아가고, 땅을 한결같이 고르게 해도 물은 젖은 데로 나아간다. 풀과 나무는 무리 지어 나고 새와 짐승은 떼 지어 사니 물건이 저마다 그 무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녁을 펼치면 활과 화살이 이르고, 숲의 나무가 우거지면 도끼가 이르고, 나무가 그늘을 이루면 뭇 새가 쉬고, 식초가 시어지면 초파리가 모인다. 그러므로 말에는 재앙을 부르는 것이 있고 행실에는 욕됨을 부르는 것이 있으니, 군자는 그 서는 자리를 삼갈 것이다.

積土成山,風雨興焉;積水成淵,蛟龍生焉;積善成德,而神明自得,聖心備焉。故不積蹞歩,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騏驥一躍,不能十歩;駑馬十駕,功在不舍。鍥而舍之,朽木不折;鍥而不舍,金石可鏤。螾無爪牙之利,筋骨之强,上食埃土,下飲黃泉,用心一也。蟹六跪而二螯,非虵蟺之穴無可寄託者,用心躁也。是故無冥冥之志者無昭昭之明,無惛惛之事者無赫赫之功。行衢道者不至,事兩君者不容。目不能兩視而明,耳不能兩聽而聰。螣蛇無足而飛,梧鼠五技而窮。《詩》曰:「尸鳩在桑,其子七兮。淑人君子,其儀一兮。其儀一兮,心如結兮。」故君子結於一也。

흙이 쌓여 산을 이루면 바람과 비가 일고, 물이 쌓여 못을 이루면 교룡이 나고, 착함이 쌓여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절로 얻어지고 거룩한 마음이 갖추어진다.

그러므로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고 작은 흐름을 쌓지 않으면 강과 바다를 이룰 수 없다.

천리마도 한 번 뛰어 열 걸음을 가지 못하고, 둔한 말이 열흘을 가는 것은 그 공이 놓지 않는 데 있다. 새기다가 놓아 버리면 썩은 나무도 꺾지 못하고, 새기며 놓지 않으면 쇠와 돌도 뚫을 수 있다.

지렁이는 손톱과 어금니의 날카로움도 힘줄과 뼈의 굳셈도 없으나 위로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 누런 샘물을 마시니 마음 씀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게는 여섯 발과 두 집게가 있으나 뱀과 두렁허리의 굴이 아니면 몸 붙일 데가 없으니 마음 씀이 들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윽이 잠긴 뜻이 없는 이에게는 환한 밝음이 없고, 묵묵히 하는 일이 없는 이에게는 빛나는 공이 없다. 갈림길을 가는 이는 이르지 못하고 두 임금을 섬기는 이는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눈은 두 가지를 보면서 밝을 수 없고 귀는 두 가지를 들으면서 밝을 수 없다. 등사(螣蛇)는 발이 없어도 날고 석서(梧鼠)는 재주가 다섯이나 막힌다.

「시」에 이르기를 「뻐꾸기가 뽕나무에 있고 그 새끼가 일곱이네. 착한 사람 군자여, 그 몸가짐이 한결같네. 그 몸가짐이 한결같으니 마음이 맺힌 듯하네」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하나에 맺힌다.

昔者瓠巴鼓瑟而流魚出聽,伯牙鼓琴而六馬仰秣。故聲無小而不聞,行無隱而不形;玉在山而草木潤,淵生珠而崖不枯。爲善不積邪,安有不聞者乎?學惡乎始?惡乎終?曰:其數則始乎誦經,終乎讀禮;其義則始乎爲士,終乎爲聖人。眞積力久則入,學至乎没而後止也。故學數有終,若其義則不可須臾舍也。爲之,人也;舍之,禽獸也。故《書》者,政事之紀也;《詩》者,中聲之所止也;《禮》者,法之大分,類之綱紀也。故學至乎《禮》而止矣。夫是之謂道德之極。《禮》之敬文也,《樂》之中和也,《詩》、《書》之博也,《春秋》之微也,在天地之間者畢矣。君子之學也,入乎耳,箸乎心,布乎四體,形乎動静,端而言,蝡而動,一可以爲法則。小人之學也,入乎耳,出乎口。口耳之間則四寸耳,曷足以美七尺之軀哉!古之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君子之學也,以美其身;小人之學也,以爲禽犢。故不問而告謂之傲,問一而告二謂之囋。傲、非也;囋,非也;君子如嚮矣。學莫便乎近其人。《禮》、《樂》法而不説,《詩》、《書》故而不切,《春秋》約而不速。方其人之習君子之説,則尊以徧矣,周於世矣。故曰學莫便乎近其人。學之經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上不能好其人,下不能隆禮,安特將學雜識志,順《詩》、《書》而已耳,則末世窮年,不免爲陋儒而已。將原先王,本仁義,則禮正其經緯蹊徑也。若挈裘領,詘五指而頓之,順者不可勝數也。不道禮憲,以《詩》、《書》爲之,譬之猶以指測河也,以戈舂黍也,以錐飡壺也,不可以得之矣。故隆禮,雖未明,法士也;不隆禮,雖察辯,散儒也。問楛者勿告也,告楛者勿問也,説楛者勿聽也,有争氣者勿與辯也。故必由其道至,然後接之,非其道則避之。故禮恭而後可與言道之方,辭順而後可與言道之理,色從而後可與言道之致。故未可與言而言謂之傲,可與言而不言謂之隱,不觀氣色而言謂之瞽。故君子不傲,不隱,不瞽,謹順其身。《詩》曰:「匪交匪舒,天子所予。」此之謂也。

옛날 호파(瓠巴)가 비파를 타니 물속의 물고기가 나와 들었고, 백아가 거문고를 타니 여섯 말이 고개를 들고 여물을 먹었다.

그러므로 소리는 작아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행실은 숨어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이 나고, 못에 구슬이 나면 벼랑이 마르지 않는다. 착함을 하되 쌓지 않아서인가, 어찌 들리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

배움은 어디서 비롯하고 어디서 마치는가. 말하기를, 그 차례로는 경(經)을 외는 데서 비롯하여 예(禮)를 읽는 데서 마치고, 그 뜻으로는 선비가 되는 데서 비롯하여 성인이 되는 데서 마친다.

참되게 쌓고 힘씀이 오래면 들어가고, 배움은 죽은 뒤에야 그친다. 그러므로 배움의 차례에는 마침이 있으나 그 뜻으로 말하면 잠시도 놓을 수 없다. 그것을 하면 사람이요 놓으면 새와 짐승이다.

그러므로 「서」는 정사의 벼리요, 「시」는 알맞은 소리가 머무는 데요, 「예」는 법의 큰 갈래요 무리의 벼리다. 그러므로 배움은 「예」에 이르러 그친다. 무릇 이를 도덕의 지극함이라 한다.

「예」의 공경하고 꾸밈과 「악」의 알맞고 어우러짐과 「시」·「서」의 넓음과 「춘추」의 은미함,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 다 여기서 다한다.

군자의 배움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고 온몸에 퍼져 움직임과 고요함에 드러난다. 가만히 말하고 꼬물거려 움직여도 다 본보기가 될 만하다. 소인의 배움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뿐이니 어찌 일곱 자 몸을 아름답게 하기에 넉넉하겠는가.

옛날 배우는 이는 저를 위하였고 지금 배우는 이는 남을 위한다. 군자의 배움은 그 몸을 아름답게 하고 소인의 배움은 짐승과 송아지 삼아 바친다.

그러므로 묻지 않았는데 일러 주는 것을 시끄럽다 하고,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일러 주는 것을 잔소리라 한다. 시끄러운 것도 그르고 잔소리도 그르다. 군자는 메아리 같다.

배움에는 그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편한 것이 없다. 「예」와 「악」은 법을 보이되 풀어 말하지 않고, 「시」와 「서」는 옛일을 적되 몸에 닿지 않고, 「춘추」는 간략하되 빠르지 않다. 그 사람이 군자의 말을 익힐 때에는 높고 두루 미쳐 세상일에 두루 통한다. 그러므로 배움에는 그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편한 것이 없다 한다.

배움의 큰 벼리로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빠른 것이 없고 예를 높이는 것이 그다음이다. 위로 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고 아래로 예를 높이지 못하면, 다만 잡된 기록이나 배우고 「시」와 「서」를 따를 뿐이니 말세에 나이를 다하도록 좁은 선비를 면하지 못한다.

앞선 임금을 근원으로 삼고 어짊과 옳음을 밑동으로 삼으려면 예가 그 날실과 씨실이요 지름길이다. 갖옷의 깃을 잡고 다섯 손가락을 굽혀 떨면 따라오는 것을 이루 셀 수 없는 것과 같다.

예의 법도를 말하지 않고 「시」와 「서」로 하는 것은, 비유하면 손가락으로 강을 재고 창으로 기장을 찧고 송곳으로 병 안의 것을 떠먹는 것과 같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예를 높이면 비록 밝지 못해도 법도 있는 선비요, 예를 높이지 않으면 비록 살펴 따져도 흩어진 선비다.

거친 것을 묻는 이에게는 일러 주지 말고, 거친 것을 일러 주는 이에게는 묻지 말고, 거친 것을 말하는 이는 듣지 말고, 다투는 기운이 있는 이와는 따지지 말라. 그러므로 반드시 그 도로 이른 뒤에야 사귀고 그 도가 아니면 피한다.

그러므로 예가 공손한 뒤에야 더불어 도의 방향을 말할 수 있고, 말이 순한 뒤에야 더불어 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고, 낯빛이 따르는 뒤에야 더불어 도의 지극함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데 말하는 것을 시끄럽다 하고, 더불어 말할 수 있는데 말하지 않는 것을 숨긴다 하고, 기색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을 눈멀었다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시끄럽지 않고 숨기지 않고 눈멀지 않아 삼가 그 몸을 따르게 한다.

「시」에 이르기를 「사귐에 게으르지도 느슨하지도 않으니 천자가 주시는 바라」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百發失一,不足謂善射;千里蹞歩不至,不足謂善御;倫類不通,仁義不一,不足謂善學。學也者,固學一之也。一出焉,一入焉,涂巷之人也。其善者少,不善者多,桀、紂、盜跖也。全之盡之,然後學者也。君子知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也,故誦數以貫之,思索以通之,爲其人以處之,除其害者以持養之,使目非是無欲見也,使耳非是無欲聞也,使口非是無欲言也,使心非是無欲慮也。及至其致好之也,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心利之有天下。是故權利不能傾也,羣衆不能移也,天下不能蕩也。生乎由是,死乎由是,夫是之謂德操。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能定能應,夫是之謂成人。天見其明,地見其光,君子貴其全也。

백 번 쏘아 하나를 놓치면 활을 잘 쏜다 하기에 모자라고, 천 리에 반걸음이 모자라 이르지 못하면 수레를 잘 몬다 하기에 모자라고, 무리와 갈래에 통하지 못하고 어짊과 옳음이 한결같지 않으면 배움을 잘한다 하기에 모자란다.

배움이란 본디 하나로 배우는 것이다. 한 번 나가고 한 번 들어오면 거리의 사람이다. 그 착한 것이 적고 착하지 않은 것이 많으면 걸과 주와 도척이다. 온전히 하고 다한 뒤에야 배우는 이다.

군자는 온전하지 않고 순수하지 않은 것이 아름답기에 모자란 줄 안다. 그러므로 외고 헤아려 꿰고, 생각하고 찾아 통하고, 그 사람이 되어 머물고, 그 해로운 것을 덜어 지켜 기른다. 눈으로 하여금 이것이 아니면 보고자 하지 않게 하고, 귀로 하여금 이것이 아니면 듣고자 하지 않게 하고, 입으로 하여금 이것이 아니면 말하고자 하지 않게 하고, 마음으로 하여금 이것이 아니면 생각하고자 하지 않게 한다.

그것을 지극히 좋아함에 이르러서는 눈이 다섯 빛깔보다 그것을 좋아하고, 귀가 다섯 소리보다 그것을 좋아하고, 입이 다섯 맛보다 그것을 좋아하고, 마음이 천하를 가지는 것보다 그것을 이롭게 여긴다.

그러므로 권세와 이로움도 기울이지 못하고 뭇 사람도 옮기지 못하고 천하도 흔들지 못한다. 살아서도 이로 말미암고 죽어서도 이로 말미암으니 무릇 이를 덕의 지킴이라 한다.

덕을 지킨 뒤에야 정해질 수 있고 정해진 뒤에야 응할 수 있다. 정해지고 응할 수 있으면 무릇 이를 이룬 사람이라 한다.

하늘은 그 밝음을 드러내고 땅은 그 빛남을 드러내니, 군자는 그 온전함을 귀히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