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榮辱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7 · 한자 2,649자 · 낭독 10.6분

「순자」 영욕 「榮辱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憍泄者,人之殃也。恭儉者,偋五兵也。雖有戈矛之刺,不如恭儉之利也。故與人善言,煖於布帛;傷人之言,深於矛戟。故薄薄之地,不得履之,非地不安也,危足無所履者,凡在言也。巨涂則讓,小涂則殆,雖欲不謹,若云不使。

교만하고 방자한 것은 사람의 재앙이요 공손하고 검소한 것은 다섯 병기를 물리치는 것이다. 비록 창과 세모창의 찌름이 있어도 공손하고 검소함의 날카로움만 못하다.

그러므로 남에게 좋은 말을 주는 것은 베와 비단보다 따뜻하고, 남을 다치게 하는 말은 창과 갈래창보다 깊다.

그러므로 넓고 넓은 땅인데도 밟지 못하는 것은 땅이 편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발이 위태로워 밟을 데가 없는 것은 다 말에 있다. 큰길에서는 사양하고 좁은 길에서는 위태로우니, 비록 삼가지 않으려 한들 그리되지 않는다.

快快而亡者,怒也;察察而殘者,忮也;博而窮者,訾也;清之而俞濁者,口也;豢之而俞瘠者,交也;辯而不說者,争也;直立而不見知者,勝也;廉而不見貴者,劌也;勇而不見憚者,貪也;信而不見敬者,好剸行也;此小人之所務而君子之所不爲也。

시원시원하다가 없어지는 것은 성냄이요, 밝게 살피다가 다치는 것은 시새움이요, 넓으면서 막히는 것은 헐뜯음이요, 맑게 하려는데 더욱 흐려지는 것은 입이요, 먹여 기르는데 더욱 여위는 것은 사귐이요, 말이 밝은데 기쁘지 않은 것은 다툼이요, 곧게 섰는데 알아주지 않는 것은 이기려 함이요, 모난데 귀히 여겨지지 않는 것은 벰이요, 날랜데 꺼려지지 않는 것은 탐냄이요, 미더운데 공경받지 못하는 것은 제멋대로 하기를 좋아함이다. 이는 소인이 힘쓰는 바요 군자가 하지 않는 바다.

鬬者,忘其身者也,忘其親者也,忘其君者也。行其少頃之怒而喪終身之軀,然且爲之,是忘其身也;家室立殘,親戚不免乎刑戮,然且爲之,是忘其親也;君上之所惡也,刑法之所大禁也,然且爲之,是忘其君也。憂忘其身,內忘其親,上忘其君,是刑法之所不舍也,聖王之所不畜也。乳彘觸虎,乳㺃不遠遊,不忘其親也。人也,憂忘其身,內忘其親,上忘其君,則是人也而曾㺃彘之不若也。凡鬬者,必自以爲是而以人爲非也。己誠是也,人誠非也,則是己君子而人小人也,以君子與小人相賊害也。憂以忘其身,內以忘其親,上以忘其君,豈不過甚矣哉!是人也,所謂「以狐父之戈钃牛矢」也。將以爲智邪?則愚莫大焉。將以爲利邪?則害莫大焉。將以爲榮邪?則辱莫大焉。將以爲安邪?則危莫大焉。人之有鬬,何哉?我欲屬之狂惑疾病邪,則不可,聖王又誅之。我欲屬之鳥鼠禽獸邪,則又不可,其形體又人,而好惡多同。人之有鬬,何哉?我甚醜之!

싸우는 이는 제 몸을 잊은 이요 제 어버이를 잊은 이요 제 임금을 잊은 이다.

잠깐의 성냄을 행하여 죽도록 지닐 몸을 잃는데도 그것을 하니 이는 제 몸을 잊은 것이다. 집안이 곧 무너지고 겨레붙이가 형벌을 면하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하니 이는 제 어버이를 잊은 것이다. 임금이 미워하는 바요 형법이 크게 금하는 바인데도 그것을 하니 이는 제 임금을 잊은 것이다.

밖으로 제 몸을 잊고 안으로 제 어버이를 잊고 위로 제 임금을 잊으니, 이는 형법이 놓아두지 않는 바요 거룩한 임금이 기르지 않는 바다.

젖 먹이는 돼지도 범을 들이받고 젖 먹이는 개도 멀리 나가 놀지 않으니 제 새끼를 잊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면서 밖으로 제 몸을 잊고 안으로 제 어버이를 잊고 위로 제 임금을 잊는다면, 이는 사람이면서 개와 돼지만도 못한 것이다.

무릇 싸우는 이는 반드시 스스로 옳다 하고 남을 그르다 한다. 제가 참으로 옳고 남이 참으로 그르다면 이는 제가 군자요 남이 소인인 것이니, 군자로서 소인과 서로 해치는 것이다. 밖으로 제 몸을 잊고 안으로 제 어버이를 잊고 위로 제 임금을 잊으니 어찌 지나침이 심하지 않은가.

이런 사람은 이른바 「호보(狐父)의 창으로 쇠똥을 자른다」는 것이다.

슬기롭다 하겠는가. 어리석음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이롭다 하겠는가. 해로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영광이라 하겠는가. 욕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편안하다 하겠는가. 위태로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사람이 싸움을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내가 그를 미치고 홀린 병에 붙이려 하나 그럴 수 없으니 거룩한 임금이 또 그를 벤다. 내가 그를 새와 쥐와 짐승에 붙이려 하나 또 그럴 수 없으니, 그 몸이 또 사람이요 좋아하고 미워함이 많이 같다. 사람이 싸움을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나는 그것을 몹시 추하게 여긴다.

有㺃彘之勇者,有賈盜之勇者,有小人之勇者,有士君子之勇者:争飲食,無廉恥,不知是非,不辟死傷,不畏衆彊,恈恈然唯利飲食之見,是㺃彘之勇也。爲事利,争貨財,無辭讓,果敢而振,猛貪而戾,恈恈然唯利之見,是賈盜之勇也。輕死而曓,是小人之勇也。義之所在,不傾於權,不顧其利,舉國而與之不爲改視,重死持義而不橈,是士君子之勇也。

개와 돼지의 날램이 있고, 장사꾼과 도둑의 날램이 있고, 소인의 날램이 있고, 선비와 군자의 날램이 있다.

마시고 먹는 것을 다투고 부끄러움이 없으며, 옳고 그름을 모르고 죽고 다침을 피하지 않으며, 뭇 사람의 굳셈을 두려워하지 않고, 게걸스레 오직 이로움과 마실 것 먹을 것만 보니 이는 개와 돼지의 날램이다.

일을 이롭게 하려 재화를 다투고 사양함이 없으며, 과감히 떨치고 사납게 탐하고 거스르며, 게걸스레 오직 이로움만 보니 이는 장사꾼과 도둑의 날램이다.

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사나우니 이는 소인의 날램이다.

옳음이 있는 데에 권세로 기울지 않고 그 이로움을 돌아보지 않으며, 온 나라를 들어 준다 해도 보는 눈을 고치지 않고, 죽음을 무겁게 여기되 옳음을 잡아 굽히지 않으니 이는 선비와 군자의 날램이다.

鯈䱁者,浮陽之魚也,胠於沙而思水,則無逮矣。挂於患而思謹,則無益矣。自知者不怨人,知命者不怨天,怨人者窮,怨天者無志。失之己,反之人,豈不迂乎哉!

피라미와 모래무지는 볕에 뜨는 물고기다. 모래에 얹혀서야 물을 생각하니 미치지 못한다. 근심에 걸려서야 삼감을 생각하니 보탬이 없다.

스스로를 아는 이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아는 이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남을 원망하는 이는 막히고 하늘을 원망하는 이는 뜻이 없다. 제게서 잃고 남에게 돌리니 어찌 에돌지 않은가.

榮辱之大分,安危利害之常體:先義而後利者榮,先利而後義者辱;榮者常通,辱者常窮;通者常制人,窮者常制於人:是榮辱之大分也。材慤者常安利,蕩悍者常危害;安利者常樂易,危害者常憂險,樂易者常壽長,憂險者常夭折:是安危利害之常體也。夫天生蒸民,有所以取之。志意致修,德行致厚,智慮致明,是天子之所以取天下也。政令法,舉措時,聽斷公,上則能順天子之命,下則能保百姓,是諸侯之所以取國家也。志行修,臨官治,上則能順上,下則能保其職,是士大夫之所以取田邑也。循法則、度量、刑辟、圖籍,不知其義,謹守其數,慎不敢損益也,父子相傳,以持王公,是故三代雖亡,治法猶存,是官人百吏之所以取禄職也。孝弟原慤,軥録疾力,以敦比其事業而不敢怠傲,是庶人之所以取煖衣飽食,長生久視,以免於刑戮也。飾邪說,文姦言,爲倚事,陶誕、突盜,惕、悍、憍、曓,以偷生反側於亂世之閒,是姦人之所以取危辱死刑也。其慮之不深,其擇之不謹,其定取舍楛僈,是其所以危也。材性知能,君子小人一也。好榮惡辱,好利惡害,是君子小人之所同也,若其所以求之之道則異矣。小人也者,疾爲誕而欲人之信己也,疾爲詐而欲人之親己也,禽獸之行而欲人之善己也。慮之難知也,行之難安也,持之難立也,成則必不得其所好,必遇其所惡焉。故君子者,信矣,而亦欲人之信己也;忠矣,而亦欲人之親己也;修正治辨矣,而亦欲人之善己也。慮之易知也,行之易安也,持之易立也,成則必得其所好,必不遇其所惡焉。是故窮則不隱,通則大明,身死而名彌白。小人莫不延頸舉踵而願曰:「知慮材性,固有以賢人矣。」夫不知其與己無以異也,則君子注錯之當,而小人注錯之過也。故孰察小人之知能,足以知其有餘,可以爲君子之所爲也。譬之越人安越,楚人安楚,君子安雅,是非知能材性然也,是注錯習俗之節異也。仁義德行,常安之術也,然而未必不危也;汙僈、突盜,常危之術也,然而未必不安也。故君子道其常而小人道其怪。凡人有所一同:飢而欲食,寒而欲煖,勞而欲息,好利而惡害,是人之所生而有也,是無待而然者也,是禹、桀之所同也。目辨白黑美惡,耳辨聲音清濁,口辨酸鹹甘苦,鼻辨芬芳腥臊,骨體膚理辨寒暑疾養,是又人之所常生而有也,是無待而然者也,是禹、桀之所同也。可以爲堯、禹,可以爲桀、跖,可以爲工匠,可以爲農賈,在埶注錯習俗之所積耳。是又人之所生而有也,是無待而然者也,是禹、桀之所同也。爲堯、禹則常安榮,爲桀、跖則常危辱;爲堯、禹則常愉佚,爲工匠農賈則常煩勞。然而人力爲此而寡爲彼,何也?曰:陋也。堯、禹者,非生而具者也,夫起於變故,成乎修爲,待盡而後備者也。人之生固小人,無師無法則唯利之見耳。人之生固小人,又以遇亂世,得亂俗,是以小重小也,以亂得亂也。君子非得埶以臨之,則無由得開內焉。今是人之口腹,安知禮義?安知辭讓?安知廉恥隅積?亦呥呥而噍,鄉鄉而飽已矣。人無師無法,則其心正其口腹也。今使人生而未嘗睹芻豢稻粱也,惟菽藿糟糠之爲睹,則以至足爲在此也。俄而粲然有秉芻豢稻梁而至者,則瞲然視之曰:「此何怪也?」彼臭之而嗛於鼻,嘗之而甘於口,食之而安於體,則莫不弃此而取彼矣。今以夫先王之道,仁義之統,以相羣居,以相持養,以相藩飾,以相安固邪?以夫桀、跖之道,是其爲相縣也,幾直夫芻豢稻梁之縣糟糠爾哉!然而人力爲此而寡爲彼,何也?曰:陋也。陋也者,天下之公患也,人之大殃大害也。故曰:仁者好告示人。告之示之,靡之儇之,鈆之重之,則夫塞者俄且通也,陋者俄且僩也,愚者俄且知也。是若不行,則湯、武在上曷益?桀、紂在上曷損?湯、武存則天下從而治,桀、紂存則天下從而亂。如是者,豈非人之情固可與如此,可與如彼也哉!

영광과 욕됨의 큰 갈림, 편안함과 위태로움과 이로움과 해로움의 떳떳한 몸은 이러하다.

옳음을 먼저 하고 이로움을 뒤로 하는 이는 영광스럽고, 이로움을 먼저 하고 옳음을 뒤로 하는 이는 욕되다. 영광스러운 이는 늘 통하고 욕된 이는 늘 막힌다. 통한 이는 늘 남을 마름질하고 막힌 이는 늘 남에게 마름질당한다. 이것이 영광과 욕됨의 큰 갈림이다.

바탕이 도타운 이는 늘 편안하고 이롭고, 흔들리고 사나운 이는 늘 위태롭고 해롭다. 편안하고 이로운 이는 늘 즐겁고 편하고, 위태롭고 해로운 이는 늘 근심스럽고 험하다. 즐겁고 편한 이는 늘 오래 살고, 근심스럽고 험한 이는 늘 일찍 죽는다. 이것이 편안함과 위태로움과 이로움과 해로움의 떳떳한 몸이다.

무릇 하늘이 뭇 백성을 낳으매 그것을 얻는 까닭이 있다.

뜻이 지극히 닦이고 덕과 행실이 지극히 두텁고 슬기와 생각이 지극히 밝은 것이 천자가 천하를 얻는 까닭이다.

정사와 명이 법에 맞고 일을 벌임이 때에 맞고 듣고 끊음이 공변된 것, 위로는 천자의 명을 따를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제후가 나라와 집을 얻는 까닭이다.

뜻과 행실이 닦이고 벼슬에 임하여 다스리며, 위로는 윗사람을 따를 수 있고 아래로는 그 직분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사대부가 밭과 고을을 얻는 까닭이다.

법과 되와 자와 형벌과 문서를 좇아 그 뜻은 알지 못해도 그 셈을 삼가 지키고 감히 덜고 더하지 않으며 아비와 아들이 서로 전하여 왕공을 붙드는 것 — 그러므로 세 왕조가 비록 없어졌어도 다스리는 법이 오히려 남았으니 — 이것이 벼슬아치와 온갖 아전이 녹과 직분을 얻는 까닭이다.

효도하고 공손하고 삼가고 도타우며 부지런히 힘써 그 일을 도탑게 하고 감히 게으르거나 거만하지 않은 것이, 뭇 사람이 따뜻한 옷과 배부른 밥을 얻고 오래 살아 형벌을 면하는 까닭이다.

그릇된 말을 꾸미고 간사한 말을 다듬고 치우친 일을 하며, 속이고 넘보고 훔치며, 사납고 거만하고 모질어 어지러운 세상 사이에서 구차히 살며 뒤척이는 것이, 간사한 이가 위태로움과 욕됨과 죽음의 형벌을 얻는 까닭이다.

그 헤아림이 깊지 못하고 그 가림이 삼가지 못하고 그 취하고 버림을 정함이 거칠고 게으르니, 이것이 그가 위태로운 까닭이다.

바탕과 성품과 앎과 능함은 군자와 소인이 하나다. 영광을 좋아하고 욕됨을 미워하며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미워하는 것은 군자와 소인이 같은 바다. 다만 그것을 구하는 길이 다를 뿐이다.

소인이란 힘써 허탄한 짓을 하면서 남이 저를 믿어 주기를 바라고, 힘써 속이면서 남이 저를 친히 하기를 바라고, 새와 짐승의 행실을 하면서 남이 저를 좋다 하기를 바란다. 그 헤아림이 알기 어렵고 그 행함이 편안하기 어렵고 그 지킴이 서기 어려우니, 이루어도 반드시 그 좋아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반드시 그 미워하는 바를 만난다.

그러므로 군자란 미더우면서 또한 남이 저를 믿어 주기를 바라고, 참되면서 또한 남이 저를 친히 하기를 바라고, 닦고 바르게 하고 다스려 가리면서 또한 남이 저를 좋다 하기를 바란다. 그 헤아림이 알기 쉽고 그 행함이 편안하기 쉽고 그 지킴이 서기 쉬우니, 이루면 반드시 그 좋아하는 바를 얻고 반드시 그 미워하는 바를 만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막혀도 숨지 않고 통하면 크게 밝으며 몸이 죽어도 이름이 더욱 드러난다.

소인은 목을 늘이고 발꿈치를 들어 바라며 말하지 않는 이가 없다. 「슬기와 헤아림과 바탕과 성품이 본디 남보다 어진 데가 있구나.」 그것이 저와 다를 것이 없음을 알지 못하니, 군자는 두고 놓음이 마땅하고 소인은 두고 놓음이 지나친 것이다.

그러므로 소인의 앎과 능함을 익히 살피면 그가 넉넉하여 군자가 하는 바를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유하면 월나라 사람이 월나라를 편히 여기고 초나라 사람이 초나라를 편히 여기며 군자가 바른 것을 편히 여기는 것과 같으니, 이는 앎과 능함과 바탕과 성품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두고 놓음과 익힌 풍속의 마디가 다른 것이다.

어짊과 옳음과 덕과 행실은 늘 편안한 재주이나 반드시 위태롭지 않은 것은 아니요, 더럽고 게으르고 넘보고 훔치는 것은 늘 위태로운 재주이나 반드시 편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떳떳함을 말하고 소인은 그 괴이함을 말한다.

무릇 사람에게 한가지로 같은 바가 있다. 주리면 먹고자 하고, 추우면 따뜻하고자 하고, 수고로우면 쉬고자 하고,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미워하는 것 — 이는 사람이 나면서 가진 것이요 기다림 없이 그러한 것이니 우임금과 걸이 같은 바다.

눈이 희고 검음과 곱고 미움을 가리고, 귀가 소리의 맑고 흐림을 가리고, 입이 시고 짜고 달고 씀을 가리고, 코가 향기와 비린내를 가리고, 뼈와 살과 살갗이 춥고 더움과 아픔과 가려움을 가리는 것 — 이 또한 사람이 늘 나면서 가진 것이요 기다림 없이 그러한 것이니 우임금과 걸이 같은 바다.

요임금과 우임금이 될 수도 있고 걸과 도척이 될 수도 있으며, 장인이 될 수도 있고 농부와 장사꾼이 될 수도 있는 것은 형세와 두고 놓음과 익힌 풍속이 쌓인 데 달렸을 뿐이다. 이 또한 사람이 나면서 가진 것이요 기다림 없이 그러한 것이니 우임금과 걸이 같은 바다.

요임금과 우임금이 되면 늘 편안하고 영광스럽고, 걸과 도척이 되면 늘 위태롭고 욕되며, 요임금과 우임금이 되면 늘 즐겁고 편하고, 장인과 농부와 장사꾼이 되면 늘 번거롭고 수고롭다. 그런데도 사람이 힘써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는 이가 적은 것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좁기 때문이다.

요임금과 우임금은 나면서 갖춘 이가 아니다. 무릇 옛것을 바꾸는 데서 일어나 닦고 함에서 이루어져 다한 뒤에야 갖추어진 이다.

사람이 나면서는 본디 소인이라 스승이 없고 법이 없으면 오직 이로움만 볼 뿐이다. 사람이 나면서 본디 소인인데 또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어지러운 풍속을 얻으니, 이는 작은 것으로 작은 것을 겹치고 어지러움으로 어지러움을 얻는 것이다. 군자가 형세를 얻어 임하지 않으면 열어 들일 길이 없다.

이제 이 사람의 입과 배가 어찌 예와 옳음을 알며 어찌 사양을 알며 어찌 부끄러움과 모서리와 쌓음을 알겠는가. 또한 우물우물 씹어 배부르기만 할 뿐이다. 사람에게 스승이 없고 법이 없으면 그 마음이 바로 그 입과 배다.

이제 사람으로 하여금 나면서 고기와 쌀밥과 기장밥을 본 적 없이 오직 콩과 콩잎과 지게미와 겨만 보게 한다면, 지극히 넉넉함이 여기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윽고 환하게 고기와 쌀밥과 기장밥을 든 이가 이르면 놀라 바라보며 「이것은 무슨 괴이한 것인가」 할 것이다. 그러나 냄새를 맡아 코에 흡족하고 맛보아 입에 달고 먹어 몸에 편하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제 저 앞선 임금의 도와 어짊과 옳음의 벼리로 서로 무리 지어 살고 서로 붙들어 기르고 서로 울타리 지어 꾸미고 서로 편안히 굳게 하는 것을, 저 걸과 도척의 도와 견주면 그 사이가 어찌 고기와 쌀밥과 기장밥이 지게미와 겨와 벌어진 것만 하겠는가.

그런데도 사람이 힘써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는 이가 적은 것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좁기 때문이다. 좁음이란 천하의 공변된 근심이요 사람의 큰 재앙이요 큰 해로움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어진 이는 남에게 일러 주고 보여 주기를 좋아한다 한다. 일러 주고 보여 주고 문지르고 두르고 끌어당기고 거듭하면, 막힌 이도 이윽고 통하고 좁은 이도 이윽고 넓어지고 어리석은 이도 이윽고 슬기로워진다.

이것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탕임금과 무왕이 위에 있은들 무슨 보탬이며 걸과 주가 위에 있은들 무슨 덜함이겠는가. 탕임금과 무왕이 있으면 천하가 좇아 다스려지고 걸과 주가 있으면 천하가 좇아 어지러워진다. 이와 같다면, 어찌 사람의 정이 본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人之情,食欲有芻豢,衣欲有文繡,行欲有輿馬,又欲夫餘財蓄積之富也,然而窮年累世不知不足,是人之情也。今人之生也,方知畜雞㺃猪彘,又蓄牛羊,然而食不敢有酒肉;餘刀布,有囷窌,然而衣不敢有絲帛;約者有筐篋之藏,然而行不敢有輿馬。是何也?非不欲也,幾不長慮顧後而恐無以繼之故也?於是又節用御欲,收斂蓄藏以繼之也,是於己長慮顧後,幾不甚善矣哉!今夫偷生淺知之屬,曾此而不知也,糧食大侈,不顧其後,俄則屈安窮矣,是其所以不免於凍餓,操瓢囊爲溝壑中瘠者也。況夫先王之道,仁義之統,《詩》、《書》、《禮》、《樂》之分乎!彼固爲天下之大慮也,將爲天下生民之屬長慮顧後而保萬世也,其㳅長矣,其溫厚矣,其功盛姚遠矣,非孰修爲之君子莫之能知也。故曰:短綆不可以汲深井之泉,知不幾者不可與及聖人之言。夫《詩》、《書》、《禮》、《樂》之分,固非庸人之所知也。故曰:一之而可再也,有之而可久也,廣之而可通也,慮之而可安也,反鈆察之而俞可好也。以治情則利,以爲名則榮,以羣則和,以獨則足,樂意者其是邪?夫貴爲天子,富有天下,是人情之所同欲也。然則從人之欲則埶不能容,物不能贍也。故先王案爲之制禮義以分之,使有貴賤之等,長幼之差,知愚能不能之分,皆使人載其事而各得其宜,然後使慤禄多少厚薄之稱,是夫羣居和一之道也。故仁人在上,則農以力盡田,賈以察盡財,百工以巧盡械器,士大夫以上至於公侯,莫不以仁厚知能盡官職,夫是之謂至平。故或禄天下而不自以爲多,或監門、御旅、抱關、擊柝而不自以爲寡。故曰:「斬而齊,枉而順,不同而一。」夫是之謂人倫。《詩》曰:「受小共大共,爲下國駿蒙。」此之謂也。

사람의 정은 먹는 데 고기를 바라고 입는 데 무늬와 수를 바라고 다니는 데 수레와 말을 바라며, 또 남는 재물을 쌓아 가멸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해가 다하고 대를 거듭해도 넉넉한 줄 모르니 이것이 사람의 정이다.

이제 사람이 살면서 바야흐로 닭과 개와 돼지를 기를 줄 알고 또 소와 양을 기르면서도 먹는 데 감히 술과 고기를 두지 못하고, 남는 돈이 있고 곳간이 있으면서도 입는 데 감히 비단을 두지 못하고, 아껴 모은 이가 상자에 감춘 것이 있으면서도 다니는 데 감히 수레와 말을 두지 못한다.

이는 어째서인가. 바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길게 헤아려 뒤를 돌아보아 이어 갈 것이 없을까 두려워해서가 아니겠는가. 이에 또 쓰임을 아끼고 욕심을 막으며 거두어 쌓아 이어 가니, 이는 제게 길게 헤아려 뒤를 돌아본 것이라 어찌 매우 좋지 않은가.

이제 저 구차히 살고 얕게 아는 무리는 이것조차 알지 못하여 양식을 크게 흩고 그 뒤를 돌아보지 않으니 이윽고 다하여 막힌다. 이것이 그가 얼고 주림을 면하지 못하고 바가지와 자루를 들고 도랑 가운데 마른 주검이 되는 까닭이다.

하물며 저 앞선 임금의 도와 어짊과 옳음의 벼리와 「시」·「서」·「예」·「악」의 갈래이겠는가. 저것은 본디 천하를 위한 큰 헤아림이니, 천하 백성의 무리를 위하여 길게 헤아리고 뒤를 돌아보아 만대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 흐름이 길고 그 따뜻함이 두텁고 그 공이 성하고 아득히 머니, 익히 닦아 행한 군자가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의 샘을 길을 수 없고 앎이 가깝지 못한 이와는 성인의 말에 미칠 수 없다 한다. 무릇 「시」·「서」·「예」·「악」의 갈래는 본디 범상한 사람이 아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한 번 하면 다시 할 수 있고, 가지면 오래갈 수 있고, 넓히면 통할 수 있고, 헤아리면 편안할 수 있고, 돌이켜 끌어 살피면 더욱 좋아할 만하다 한다. 그것으로 정을 다스리면 이롭고, 그것으로 이름을 삼으면 영광스럽고, 그것으로 무리 지으면 어우러지고, 그것으로 홀로 있으면 넉넉하다. 뜻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겠는가.

무릇 귀하기가 천자가 되고 가멸기가 천하를 가지는 것은 사람의 정이 다 같이 바라는 바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을 그대로 좇으면 형세가 받아들일 수 없고 물건이 넉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선 임금이 이에 예와 옳음을 지어 나누어, 귀하고 천한 등급과 어른과 아이의 차례와 슬기롭고 어리석고 능하고 능하지 못한 갈림이 있게 하고, 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일을 지고 저마다 그 마땅함을 얻게 한 뒤에, 녹의 많고 적음과 두텁고 엷음이 걸맞게 하였다. 이것이 무릇 무리 지어 살며 어우러져 하나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이 위에 있으면 농부는 힘으로 밭을 다하고, 장사꾼은 살핌으로 재물을 다하고, 온갖 장인은 재주로 연장을 다하고, 사대부로부터 위로 공후에 이르기까지 어짊과 두터움과 앎과 능함으로 벼슬을 다하지 않는 이가 없다. 무릇 이를 지극한 고름이라 한다.

그러므로 더러는 천하를 녹으로 받고도 스스로 많다 여기지 않고, 더러는 문지기와 나그네 치는 이와 빗장 지키는 이와 딱따기 치는 이가 되고도 스스로 적다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베어 내어 가지런하고, 굽혀서 따르고, 같지 않으면서 하나가 된다」 하니 무릇 이를 사람의 차례라 한다. 「시」에 이르기를 「작은 법과 큰 법을 받아 아래 나라의 큰 덮개가 되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