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순자 › 비상

非相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7 · 한자 2,119자 · 낭독 8.5분

「순자」 비상 「非相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相人,古之人無有也,學者不道也。古者有姑布子卿,今之世,梁有唐舉,相人之形狀顏色而知其吉凶妖祥,世俗稱之。古之人無有也,學者不道也。故相形不如論心,論心不如擇術。形不勝心,心不勝術。術正而心順之,則形相雖惡而心術善,無害爲君子也;形相雖善而心術惡,無害爲小人也。君子之謂吉,小人之謂凶。故長短、小大、善惡、形相,非吉凶也。古之人無有也,學者不道也。葢帝堯長,帝舜短,文王長,周公短,仲尼長,子弓短。昔者衞靈公有臣曰公孫呂,身長七尺,面長三尺,焉廣三寸,鼻目耳具,而名動天下。楚之孫叔敖,期思之鄙人也,突禿長左,軒較之下,而以楚霸。葉公子高,微小短瘠,行若將不勝其衣。然白公之亂也,令尹子西、司馬子期皆死焉;葉公子高入據楚,誅白公,定楚國,如反手爾,仁義功名善於後世。故事不揣長,不揳大,不權輕重,亦將志乎爾。長短、大小、美惡形相,豈論也哉!且徐偃王之狀,目可瞻馬;仲尼之狀,面如蒙倛;周公之狀,身如斷菑;皋陶之狀,色如削瓜;閎夭之狀,面無見膚;傅說之狀,身如植鰭;伊尹之狀,面無須麋;禹跳,湯偏,堯、舜參牟子。從者將論志意,比類文學邪?直將差長短,辨美惡,而相欺傲邪?古者桀、紂長巨姣美,天下之傑也,筋力越勁,百人之敵也。然而身死國亡,爲天下大僇,後世言惡則必稽焉。是非容貌之患也,聞見之不衆,議論之卑爾。今世俗之亂君,鄉曲之儇子,莫不美麗姚冶,奇衣婦飾,血氣態度擬於女子;婦人莫不願得以爲夫,處女莫不願得以爲士,弃其親家而欲奔之者,比肩竝起。然而中君羞以爲臣,中父羞以爲子,中兄羞以爲弟,中人羞以爲友,俄則束乎有司而戮乎大市,莫不呼天啼哭,苦傷其今而後悔其始。是非容貌之患也,聞見之不衆,議論之卑爾。然則從者將孰可也?

사람의 상을 보는 일은 옛사람에게 없었고 배우는 이가 말하지 않았다. 옛날에 고포자경(姑布子卿)이 있었고 지금 세상에 양(梁)나라의 당거(唐擧)가 있어, 사람의 꼴과 낯빛을 보고 그 길하고 흉함과 요사하고 상서로움을 안다 하니 세속이 이를 일컫는다. 옛사람에게는 없었고 배우는 이가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꼴을 보는 것은 마음을 논함만 못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재주를 가림만 못하다. 꼴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은 재주를 이기지 못한다. 재주가 바르고 마음이 그것을 따르면, 꼴과 상이 비록 미워도 마음과 재주가 착하니 군자 되기에 해로울 것이 없다. 꼴과 상이 비록 좋아도 마음과 재주가 모지니 소인 되기에 해로울 것이 없다. 군자를 길하다 하고 소인을 흉하다 한다.

그러므로 길고 짧음과 작고 큼과 좋고 미움과 꼴과 상은 길하고 흉함이 아니다. 옛사람에게는 없었고 배우는 이가 말하지 않았다.

대개 요임금은 컸고 순임금은 작았으며, 문왕은 컸고 주공은 작았으며, 중니는 컸고 자궁(子弓)은 작았다.

옛날 위나라 영공에게 공손려(公孫呂)라는 신하가 있어 키가 일곱 자요 얼굴 길이가 석 자요 이마 너비가 세 치인데 코와 눈과 귀가 갖추어져 이름이 천하를 움직였다.

초나라 손숙오는 기사(期思)의 시골 사람으로 대머리에 왼쪽이 길고 수레 가로대 아래에 들 만큼 작았으나 초나라를 으뜸이 되게 하였다.

섭공 자고(葉公子高)는 작고 여위어 걸으면 옷도 이기지 못할 듯하였다. 그러나 백공(白公)의 난에 영윤 자서와 사마 자기가 다 죽었는데, 섭공 자고가 들어가 초나라를 차지하고 백공을 베고 초나라를 안정시키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였고, 어짊과 옳음과 공과 이름이 뒷세상에 좋았다.

그러므로 일은 길이를 재지 않고 크기를 헤아리지 않고 가볍고 무거움을 저울질하지 않으며 다만 뜻을 볼 뿐이다. 길고 짧음과 크고 작음과 곱고 미운 꼴과 상을 어찌 논하겠는가.

또 서언왕(徐偃王)의 모습은 눈이 말을 우러러볼 만하였고, 중니의 모습은 얼굴이 탈을 쓴 듯하였고, 주공의 모습은 몸이 마른 나무를 자른 듯하였고, 고요(皋陶)의 모습은 낯빛이 깎은 오이 같았고, 굉요(閎夭)의 모습은 얼굴에 살갗이 보이지 않았고, 부열(傅說)의 모습은 몸이 지느러미를 세운 듯하였고, 이윤의 모습은 얼굴에 수염과 눈썹이 없었다. 우임금은 절뚝거렸고 탕임금은 한쪽이 굽었고 요임금과 순임금은 눈동자가 겹이었다.

좇는 이들은 뜻을 논하고 배움을 견주려 하는가, 아니면 다만 길고 짧음을 가리고 곱고 미움을 따져 서로 속이고 거만하려 하는가.

옛날 걸과 주는 크고 잘생겨 천하의 뛰어난 이였고 힘줄과 힘이 뛰어나 백 사람을 맞섰다. 그런데도 몸이 죽고 나라가 없어져 천하의 큰 죽임이 되었고, 뒷세상에서 모짊을 말하면 반드시 그들을 든다. 이는 얼굴의 근심이 아니라 듣고 봄이 많지 못하고 논의가 낮아서다.

이제 세속의 어지러운 임금과 시골 마을의 약삭빠른 아이들이 곱고 아리땁지 않은 이가 없어, 이상한 옷에 여자처럼 꾸미고 피와 기운과 몸가짐이 여자를 닮았다. 여인들이 지아비로 얻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고 처녀들이 남편으로 얻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어, 제 집을 버리고 달아나려는 이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어난다. 그런데도 어지간한 임금은 그를 신하 삼기를 부끄러워하고, 어지간한 아비는 그를 아들 삼기를 부끄러워하고, 어지간한 형은 그를 아우 삼기를 부끄러워하고, 어지간한 사람은 그를 벗 삼기를 부끄러워한다. 이윽고 관리에게 묶여 저잣거리에서 죽임을 당하면 하늘을 부르며 울부짖지 않는 이가 없어 그 지금을 아파하고 그 처음을 뉘우친다. 이는 얼굴의 근심이 아니라 듣고 봄이 많지 못하고 논의가 낮아서다.

그러면 좇는 이들은 어느 쪽을 옳다 하겠는가.

人有三不祥:幼而不肯事長,賤而不肯事貴,不肖而不肯事賢,是人之三不祥也。人有三必窮:爲上則不能愛下,爲下則好非其上,是人之一必窮也。鄉則不若,偝則謾之,是人之二必窮也。知行淺薄,曲直有以相縣矣,然而仁人不能推,知士不能明,是人之三必窮也。人有此三數行者,以爲上則必危,爲下則必滅。《詩》曰:「雨雪瀌瀌,宴然聿消。莫肯下隧,式居屢驕。」此之謂也。人之所以爲人者,何已也?曰:以其有辨也。飢而欲食,寒而欲煖,勞而欲息,好利而惡害,是人之所生而有也,是無待而然者也,是禹、桀之所同也。然則人之所以爲人者,非特以二足而無毛也,以其有辨也。今夫狌狌形笑,亦二足而無毛也,然而君子啜其羹,食其胾。故人之所以爲人者,非特以其二足而無毛也,以其有辨也。夫禽獸有父子而無父子之親,有牝牡而無男女之別,故人道莫不有辨。辨莫大於分,分莫大於禮,禮莫大於聖王。聖王有百,吾孰法焉?故曰:文久而滅,節族久而絶,守法數之有司極禮而褫。故曰:欲觀聖王之跡,則於其粲然者矣,後王是也。彼後王者,天下之君也,舍後王而道上古,譬之是猶舍己之君而事人之君也。故曰:欲觀千歲則數今日,欲知億萬則審一二,欲知上世則審周道,欲知周道則審其人所貴君子。故曰:以近知遠,以一知萬,以微知明。此之謂也。

사람에게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함이 있다. 어리면서 어른 섬기기를 즐기지 않음, 천하면서 귀한 이 섬기기를 즐기지 않음, 못나면서 어진 이 섬기기를 즐기지 않음 — 이것이 사람의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함이다.

사람에게 반드시 막히는 세 가지가 있다. 위가 되어서는 아래를 사랑하지 못하고 아래가 되어서는 그 위를 그르다 하기 좋아하는 것이 사람이 반드시 막히는 첫째다. 마주해서는 그러지 못하고 등지고서 헐뜯는 것이 사람이 반드시 막히는 둘째다. 앎과 행실이 얕고 엷어 굽고 곧음이 서로 크게 벌어지는데도 어진 사람이 밀어 주지 못하고 슬기로운 선비가 밝혀 주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 반드시 막히는 셋째다.

사람에게 이 세 가지 행실이 있으면 위가 되어서는 반드시 위태롭고 아래가 되어서는 반드시 없어진다. 「시」에 이르기를 「눈비가 펑펑 내리다가도 볕이 나면 곧 스러지네. 낮추기를 즐기지 않고 늘 거만히 앉았구나」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사람이 사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말하기를, 가림이 있기 때문이다.

주리면 먹고자 하고 추우면 따뜻하고자 하고 수고로우면 쉬고자 하고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미워하는 것은 사람이 나면서 가진 것이요 기다림 없이 그러한 것이니 우임금과 걸이 같은 바다. 그러한즉 사람이 사람 되는 까닭은 다만 두 발이고 털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저 성성이는 꼴이 사람 같고 또한 두 발이고 털이 없다. 그런데도 군자가 그 국을 마시고 그 고기를 먹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 되는 까닭은 다만 두 발이고 털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림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새와 짐승에게 아비와 아들은 있어도 아비와 아들의 친함은 없고, 암수는 있어도 사내와 여자의 갈림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도에는 가림이 없는 것이 없다.

가림은 갈래보다 큰 것이 없고, 갈래는 예보다 큰 것이 없고, 예는 거룩한 임금보다 큰 것이 없다. 거룩한 임금이 백 분인데 내가 누구를 법 삼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글은 오래되면 스러지고 가락과 마디는 오래되면 끊어지며, 법과 셈을 지키는 관리도 예를 다하면 벗겨진다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거룩한 임금의 자취를 보고자 하면 그 환한 데서 볼 것이니 뒷임금이 그것이라 한다. 저 뒷임금이란 천하의 임금이다. 뒷임금을 버리고 아득한 옛날을 말하는 것은, 비유하면 제 임금을 버리고 남의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 해를 보고자 하면 오늘을 헤아리고, 억만을 알고자 하면 하나둘을 살피고, 윗세상을 알고자 하면 주나라의 도를 살피고, 주나라의 도를 알고자 하면 그 사람들이 귀히 여긴 군자를 살피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알고 하나로 만을 알고 작은 것으로 밝은 것을 안다 하니 이를 이름이다.

夫妄人曰:「古今異情,其所以治亂者異道。」而衆人惑焉。彼衆人者,愚而無說,陋而無度者也。其所見焉,猶可欺也,而況於千世之傳也!妄人者,門庭之間,猶可誣欺也,而況於千世之上乎!聖人何以不可欺?曰:聖人者,以己度者也。故以人度人,以情度情,以類度類,以說度功,以道觀盡,古今一度也。類不悖,雖久同理,故鄉乎邪曲而不迷,觀乎雜物而不惑,以此度之。五帝之外無傳人,非無賢人也,久故也。五帝之中無傳政,非無善政也,久故也。禹、湯有傳政而不若周之察也,非無善政也,久故也。傳者久則論略,近則論詳,略則舉大,詳則舉小。愚者聞其略而不知其詳,聞其詳而不知其大也,是以文久而滅,節族久而絶。

무릇 망령된 사람이 말하기를 「옛날과 지금은 정이 다르고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까닭이 길이 다르다」 하니 뭇 사람이 이에 헷갈린다. 저 뭇 사람이란 어리석어 말이 없고 좁아 법도가 없는 이들이다. 그 보는 것도 오히려 속일 수 있는데 하물며 천 대에 전해 온 것이랴. 망령된 사람은 문과 뜰 사이의 일도 오히려 거짓으로 속일 수 있는데 하물며 천 대 위의 일이랴.

성인은 어찌하여 속일 수 없는가. 말하기를, 성인이란 저로써 헤아리는 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사람을 헤아리고, 정으로 정을 헤아리고, 무리로 무리를 헤아리고, 말로 공을 헤아리고, 도로 전부를 보니 옛날과 지금이 한 법도다. 무리가 어그러지지 않으면 비록 오래되어도 이치가 같다. 그러므로 그릇되고 굽은 데를 향해도 홀리지 않고 뒤섞인 물건을 보아도 헷갈리지 않으니, 이로써 헤아리는 것이다.

다섯 임금 밖에 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어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래되었기 때문이요, 다섯 임금 가운데 전하는 정사가 없는 것은 좋은 정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우임금과 탕임금에게 전하는 정사가 있으나 주나라만큼 자세하지 않은 것은 좋은 정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전하는 것이 오래되면 논함이 성글고 가까우면 논함이 자세하다. 성글면 큰 것을 들고 자세하면 작은 것을 든다. 어리석은 이는 그 성근 것을 듣고 그 자세함을 알지 못하고, 그 자세한 것을 듣고 그 큼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글이 오래되면 스러지고 가락과 마디가 오래되면 끊어진다.

凡言不合先王,不順禮義,謂之姦言,雖辯,君子不聽。法先王,順禮義,黨學者,然而不好言,不樂言,則必非誠士也。故君子之於言也,志好之,行安之,樂言之。故君子必辯。凡人莫不好言其所善,而君子爲甚。故贈人以言,重於金石珠玉;觀人以言,美於黼黻、文章;聽人以言,樂於鐘鼓琴瑟。故君子之於言無厭。鄙夫反是,好其實,不恤其文,是以終身不免埤汙傭俗。故《易》曰:「括囊,無咎無譽。」腐儒之謂也。

무릇 말이 앞선 임금에 맞지 않고 예와 옳음을 따르지 않으면 간사한 말이라 하니, 비록 밝아도 군자가 듣지 않는다.

앞선 임금을 법 삼고 예와 옳음을 따르며 배우는 이와 무리 짓되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하기를 즐기지 않으면 반드시 참된 선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에 대하여 뜻으로 좋아하고 행실로 편안히 하고 즐겨 말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밝게 말한다.

무릇 사람이 제 좋아하는 바를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군자가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남에게 말을 주는 것은 쇠와 돌과 구슬과 옥보다 무겁고, 남에게 말로 보이는 것은 수놓은 무늬보다 아름답고,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종과 북과 거문고와 비파보다 즐겁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에 물리지 않는다.

낮은 사내는 이와 거꾸로다. 그 알맹이만 좋아하고 그 꾸밈을 돌보지 않으니, 그래서 죽도록 낮고 더럽고 범상한 세속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역」에 이르기를 「자루를 묶으면 허물도 없고 기림도 없다」 하였으니 썩은 선비를 이름이다.

凡說之難,以至高遇至卑,以至治接至亂。未可直至也,遠舉則病繆,近世則病傭。善者於是閒也,亦必遠舉而不繆,近世而不傭,與時遷徙,與世偃仰,緩急嬴絀,府然若渠匽檃栝之於己也,曲得所謂焉,然而不折傷。故君子之度己則以繩,接人則用抴。度己以繩,故足以爲天下法則矣。接人用抴,故能寬容,因衆以成天下之大事矣。故君子賢而能容罷,知而能容愚,博而能容淺,粹而能容雜,夫是之謂兼術。《詩》曰:「徐方既同,天子之功。」此之謂也。

무릇 말의 어려움은 지극히 높은 것으로 지극히 낮은 것을 만나고 지극히 다스려진 것으로 지극히 어지러운 것을 대하는 데 있다. 곧바로 이를 수 없다. 멀리 들면 그르다는 병이 있고 가까운 세상을 들면 범상하다는 병이 있다.

잘하는 이는 그 사이에서 또한 반드시 멀리 들되 그르지 않고 가까운 세상을 들되 범상하지 않으며, 때를 따라 옮기고 세상을 따라 굽히고 펴며, 늦추고 죄고 늘이고 줄이기를 마치 물막이와 도지개가 제게 있는 듯이 하여, 굽어서도 이르려는 바를 얻으면서 꺾이거나 다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저를 재는 데는 먹줄로 하고 남을 대하는 데는 끄는 널로 한다. 저를 먹줄로 재므로 천하의 법이 될 만하고, 남을 끄는 널로 대하므로 능히 너그러이 품어 뭇 사람으로 말미암아 천하의 큰일을 이룬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질면서 능히 못난 이를 품고, 슬기로우면서 능히 어리석은 이를 품고, 넓으면서 능히 얕은 이를 품고, 순수하면서 능히 뒤섞인 이를 품는다. 무릇 이를 아우르는 재주라 한다. 「시」에 이르기를 「서(徐) 땅이 이미 같아졌으니 천자의 공이라」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談說之術:矜莊以莅之,端誠以處之,堅彊以持之,分別以喻之,譬稱以明之,欣驩芬薌以送之,寶之珍之,貴之神之,如是則說常無不受。雖不說人,人莫不貴,夫是之謂爲能貴其所貴。傳曰:「唯君子爲能貴其所貴。」此之謂也。

말하는 재주는 이러하다. 씩씩하고 무겁게 임하고, 바르고 참되게 머물고, 굳세게 잡고, 갈라 깨우치고, 견주어 밝히고, 기쁘고 향기롭게 보내며, 그것을 보배로 여기고 진귀하게 여기고 귀히 여기고 신령하게 여긴다. 이와 같이 하면 말이 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없다. 비록 남을 기쁘게 하지 못해도 사람이 귀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으니, 무릇 이를 능히 그 귀한 바를 귀히 여긴다 한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오직 군자라야 능히 그 귀한 바를 귀히 여긴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君子必辯。凡人莫不好言其所善,而君子爲甚焉。是以小人辯言險而君子辯言仁也。言而非仁之中也,則其言不若其默也,其辯不若其吶也;言而仁之中也,則好言者上矣,不好言者下也。故仁言大矣。起於上所以道於下,正令是也;起於下所以忠於上,謀救是也。故君子之行仁也無厭。志好之,行安之,樂言之,故言君子必辯。小辯不如見端,見端不如見本分。小辯而察,見端而明,本分而理,聖人士君子之分具矣。有小人之辯者,有士君子之辯者,有聖人之辯者:不先慮,不早謀,發之而當,成文而類,居錯遷徙,應變不窮,是聖人之辯者也。先慮之,早謀之,斯須之言而足聽,文而致實,博而黨正,是士君子之辯者也。聽其言則辭辯而無統,用其身則多詐而無功,上不足以順明王,下不足以和齊百姓,然而口舌之均,噡唯則節,足以爲奇偉偃卻之屬,夫是之謂姦人之雄,聖王起,所以先誅也。然後盜賊次之。盜賊得變,此不得變也。

군자는 반드시 밝게 말한다. 무릇 사람이 제 좋아하는 바를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군자가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소인은 밝게 말하되 말이 음험하고 군자는 밝게 말하되 말이 어질다.

말하되 어짊에 맞지 않으면 그 말이 그 잠잠함만 못하고 그 밝음이 그 어눌함만 못하다. 말하되 어짊에 맞으면 말하기 좋아하는 이가 위요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이가 아래다. 그러므로 어진 말이 크다.

위에서 일어나 아래를 이끄는 것이 바른 명이요, 아래에서 일어나 위에 참됨을 다하는 것이 꾀하여 구함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짊을 행함에 물리지 않는다. 뜻으로 좋아하고 행실로 편안히 하고 즐겨 말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밝게 말한다 한다.

작게 따지는 것은 실마리를 보임만 못하고, 실마리를 보이는 것은 밑동의 갈래를 보임만 못하다. 작게 따지되 살피고, 실마리를 보이되 밝고, 밑동의 갈래가 조리 있으면 성인과 선비와 군자의 갈림이 갖추어진다.

소인의 따짐이 있고 선비와 군자의 따짐이 있고 성인의 따짐이 있다.

먼저 헤아리지 않고 미리 꾀하지 않아도 내놓으면 마땅하고 글을 이루면 갈래가 있으며, 두고 놓고 옮김에 달라짐에 응하여 다하지 않으니 이는 성인의 따짐이다.

먼저 헤아리고 미리 꾀하여 잠깐의 말도 들을 만하고, 꾸미되 알맹이에 이르고 넓되 무리가 바르니 이는 선비와 군자의 따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말이 밝되 벼리가 없고, 그 몸을 쓰면 속임이 많되 공이 없으며, 위로는 밝은 임금을 따르기에 모자라고 아래로는 백성을 어우러지게 하기에 모자란다. 그런데도 입과 혀가 고르고 웅얼거림에 마디가 있어 기이하고 뽐내는 무리가 될 만하니, 무릇 이를 간사한 이의 으뜸이라 한다. 거룩한 임금이 일어나면 먼저 베는 바요 그다음이 도적이다. 도적은 달라질 수 있으나 이들은 달라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