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순자 › 중니

仲尼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5 · 한자 1,256자 · 낭독 5.0분

「순자」 중니 「仲尼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仲尼之門人,五尺之豎子言羞稱乎五伯。是何也?曰:然。彼誠可羞稱也。齊桓,五伯之盛者也,前事則殺兄而争國;內行則姑姊妹之不嫁者七人,閨門之內,般樂奢汏,以齊之分奉之而不足;外事則詐邾,襲莒,并國三十五。其事行也若是其險汙淫汏也,彼固曷足稱乎大君子之門哉!

중니의 문인은 다섯 자 어린아이라도 다섯 패자를 일컫기를 부끄러워하였다. 이는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그렇다, 저들은 참으로 일컫기 부끄러운 이들이다.

제 환공은 다섯 패자 가운데 성한 이다. 앞선 일로는 형을 죽이고 나라를 다투었다. 안의 행실로는 고모와 누이와 누이동생 가운데 시집가지 못한 이가 일곱이었고, 안방 안에서 즐기고 사치하여 제나라의 몫을 다 바쳐도 넉넉하지 않았다. 밖의 일로는 주(邾)나라를 속이고 거(莒)나라를 덮치고 나라 서른다섯을 아울렀다. 그 일의 행함이 이처럼 음험하고 더럽고 넘치고 사치하니, 저이가 참으로 어찌 큰 군자의 문에서 일컬어질 수 있겠는가.

若是而不亡,乃霸,何也?曰:於乎!夫齊桓公有天下之大節焉,夫孰能亡之?倓然見管仲之能足以託國也,是天下之大知也。安忘其怒,出忘其讎,遂立爲仲父,是天下之大決也。立以爲仲父,而貴戚莫之敢妬也;與之高、國之位,而本朝之臣莫之敢惡也;與之書社三百,而富人莫之敢距也。貴賤長少,秩秩焉莫不從桓公而貴敬之,是天下之大節也。諸侯有一節如是,則莫之能亡也;桓公兼此數節者而盡有之,夫又何可亡也?其霸也,宜哉!非幸也,數也。然而仲尼之門,五尺之竪子言羞稱五伯,是何也?曰:然。彼非本政教也,非致隆高也,非綦文理也,非服人之心也。鄉方略,審勞佚,畜積修鬬而能顛倒其敵者也。詐心以勝矣。彼以讓飾争,依乎仁而蹈利者也,小人之傑也,彼固曷足稱乎大君子之門哉!彼王者則不然。致賢而能以救不肖,致彊而能以寬弱,戰必能殆之而羞與之鬬,委然成文以示之天下,而曓國安自化矣,有災繆者然後誅之。故聖王之誅也,綦省矣。文王誅四,武王誅二,周公卒業,至於成王則安以無誅矣。故道豈不行矣哉!文王載百里地而天下一,桀、紂舍之,厚於有天下之埶而不得以匹夫老。故善用之,則百里之國足以獨立矣;不善用之,則楚六千里而爲讎人役。故人主不務得道而廣有其埶,是其所以危也。

이러한데도 없어지지 않고 도리어 으뜸이 된 것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아, 무릇 제 환공에게 천하의 큰 마디가 있으니 누가 능히 그를 없애겠는가.

거리낌 없이 관중의 능함이 나라를 맡길 만함을 알아본 것은 천하의 큰 앎이다. 편안히 그 성냄을 잊고 나아가 그 원수 됨을 잊고 마침내 세워 중보로 삼은 것은 천하의 큰 결단이다.

세워 중보로 삼으매 귀한 겨레붙이가 감히 시새우지 못하였고, 고씨와 국씨의 자리를 주매 조정의 신하가 감히 미워하지 못하였고, 서사(書社) 삼백을 주매 가멸은 이가 감히 막지 못하였다. 귀하고 천하고 어른이고 아이가 차례차례 환공을 좇아 그를 귀히 여기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이는 천하의 큰 마디다.

제후에게 이런 마디가 하나만 있어도 아무도 그를 없애지 못하는데, 환공은 이 여러 마디를 아울러 다 가졌으니 무릇 또 어찌 없앨 수 있겠는가. 그가 으뜸이 된 것은 마땅하다. 요행이 아니라 셈이다.

그런데도 중니의 문에서 다섯 자 어린아이가 다섯 패자를 일컫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그렇다. 저들은 정사와 가르침을 밑동으로 삼은 것이 아니요, 높음을 지극히 한 것이 아니요, 글과 결을 다한 것이 아니요, 사람의 마음을 굴복시킨 것이 아니다.

방략을 향하고 수고로움과 편안함을 살피고 쌓아 두고 싸움을 닦아 능히 그 적을 뒤엎은 이들이다. 속이는 마음으로 이긴 것이다. 저들은 사양으로 다툼을 꾸미고 어짊에 기대어 이로움을 밟은 이들이니 소인 가운데 뛰어난 이다. 저이가 참으로 어찌 큰 군자의 문에서 일컬어질 수 있겠는가.

저 왕 노릇 하는 이는 그렇지 않다. 지극히 어질면서 능히 못난 이를 건지고, 지극히 굳세면서 능히 약한 이에게 너그럽고, 싸우면 반드시 위태롭게 할 수 있으면서도 더불어 싸우기를 부끄러워하고, 넉넉히 글을 이루어 천하에 보이면 사나운 나라가 절로 편안히 달라진다. 재앙을 부르고 그르친 이가 있은 뒤에야 벤다.

그러므로 거룩한 임금의 벰은 지극히 적다. 문왕은 넷을 베고 무왕은 둘을 베었으며 주공이 그 일을 마쳤고, 성왕에 이르러서는 편안하여 벨 것이 없었다. 그러니 도가 어찌 행해지지 않았겠는가.

문왕은 백 리 땅을 지니고도 천하가 하나가 되었고, 걸과 주는 그것을 버려 천하를 가진 형세가 두터웠는데도 필부로 늙지도 못하였다. 그러므로 잘 쓰면 백 리 나라로도 홀로 서기에 넉넉하고, 잘 쓰지 못하면 초나라가 육천 리라도 원수의 부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임금이 도를 얻기에 힘쓰지 않고 그 형세만 넓히니 이것이 그가 위태로운 까닭이다.

持寵處位終身不厭之術:主尊貴之,則恭敬而僔;主信愛之,則謹慎而嗛;主專任之,則拘守而詳:主安近之,則慎比而不邪;主疏遠之,則全一而不倍;主損絀之,則恐懼而不怨。貴而不爲夸,信而不處謙,任重而不敢專,財利至則善而不及也,必將盡辭讓之義然後受,福事至則和而理,禍事至則静而理,富則廣施,貧則用節,可貴可賤也,可富可貧也,可殺而不可使爲姦也,是持寵處位終身不厭之術也。雖在貧窮徒處之埶,亦取象於是矣,夫是之謂吉人。《詩》云:「媚茲一人,應侯順德。永言孝思,昭哉嗣服。」此之謂也。

사랑받음을 지키고 자리에 있으면서 죽도록 싫증나지 않는 재주는 이러하다.

임금이 높이고 귀히 여기면 공손하고 삼가며 모으고, 임금이 믿고 사랑하면 삼가고 조심하며 겸손하고, 임금이 오로지 맡기면 지켜 삼가며 자세히 하고, 임금이 가까이 두면 삼가 따르되 그릇되지 않고, 임금이 멀리하면 온전히 하나로 하되 등지지 않고, 임금이 덜어 내치면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않는다.

귀해도 뽐내지 않고, 믿음을 받아도 겸손함에 머물지 않고, 소임이 무거워도 감히 오로지하지 않고, 재물과 이로움이 이르면 좋아하되 미치려 하지 않아 반드시 사양하는 옳음을 다한 뒤에 받는다. 복된 일이 이르면 어우러져 조리 있고, 재앙이 이르면 고요하여 조리 있다. 가멸면 널리 베풀고 가난하면 씀을 아낀다. 귀해질 수도 천해질 수도 있고 가멸 수도 가난할 수도 있으며, 죽일 수는 있어도 간사한 짓을 하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사랑받음을 지키고 자리에 있으면서 죽도록 싫증나지 않는 재주다.

비록 가난하고 막혀 헛되이 지내는 형세에 있어도 또한 여기서 본을 취하니, 무릇 이를 길한 사람이라 한다. 「시」에 이르기를 「이 한 사람을 사랑하여 임금의 순한 덕에 응하네. 길이 효도를 생각하니 밝구나, 이어받은 일이여」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求善處大重,理任大事,擅寵於萬乘之國,必無後患之術:莫若好同之,援賢博施,除怨而無妨害人。能耐任之,則慎行此道也。能而不耐任,且恐失寵,則莫若早同之,推賢讓能而安隨其後。如是,有寵則必榮,失寵則必無罪,是事君者之寶而必無後患之術也。故知者之舉事也,滿則慮嗛,平則慮險,安則慮危,曲重其豫,猶恐及其旤,是以百舉而不陷也。孔子曰:「巧而好度必節,勇而好同必勝,知而好謙必賢。」此之謂也。愚者反是。處重擅權,則好專事而妬賢能,抑有功而擠有罪,志驕盈而輕舊怨,以𠫤嗇而不行施道乎上,爲重招權於下以妨害人,雖欲無危,得乎哉!是以位尊則必危,任重則必廢,擅寵則必辱,可立而待也,可炊而傹也。是何也?則墮之者衆而持之者寡矣。

큰 자리에 잘 처하고 큰일을 맡아 다스리며 만승의 나라에서 사랑을 홀로 받으면서 반드시 뒷근심이 없기를 구하는 재주는 이러하다.

같이하기를 좋아하고 어진 이를 끌어 주고 널리 베풀며 원망을 걷어 남을 해치지 않는 것만 한 것이 없다. 능히 소임을 견딜 수 있으면 삼가 이 도를 행한다. 능하되 소임을 견디지 못하고 또 사랑을 잃을까 두려우면, 일찍 같이하여 어진 이를 밀고 능한 이에게 사양하고 편안히 그 뒤를 좇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이와 같이 하면 사랑을 받으면 반드시 영광스럽고 사랑을 잃어도 반드시 죄가 없으니, 이는 임금을 섬기는 이의 보배요 반드시 뒷근심이 없는 재주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가 일을 벌일 때는 차면 이지러짐을 헤아리고, 고르면 험함을 헤아리고, 편안하면 위태로움을 헤아려 거듭거듭 미리 대비하면서도 오히려 재앙이 미칠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백 가지를 벌여도 빠지지 않는다. 공자가 말하기를 「공교로우면서 법도를 좋아하면 반드시 마디가 있고, 날래면서 같이하기를 좋아하면 반드시 이기고, 슬기로우면서 겸손을 좋아하면 반드시 어질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어리석은 이는 이와 거꾸로다. 큰 자리에 있어 권세를 홀로 쥐면 일을 오로지하기 좋아하고 어질고 능한 이를 시새우며, 공 있는 이를 누르고 죄 있는 이를 밀어내며, 뜻이 뽐내고 가득 차 묵은 원망을 가벼이 여기고, 인색하여 위에 베푸는 도를 행하지 않고 아래에서 권세를 끌어모아 남을 해친다. 비록 위태롭지 않으려 한들 되겠는가.

그러므로 자리가 높으면 반드시 위태롭고, 소임이 무거우면 반드시 무너지고, 사랑을 홀로 받으면 반드시 욕되니, 서서 기다릴 만하고 밥 한 번 지을 사이에 다다를 만하다. 이는 어째서인가. 무너뜨리는 이가 많고 붙드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天下之行術:以事君則必通,以爲仁則必聖,立隆而勿貳也。然後恭敬以先之,忠信以統之,慎謹以行之,端愨以守之,頓窮則從之疾力以申重之。君雖不知,無怨疾之心;功雖甚大,無伐德之色;省求,多功,愛敬不勌;如是,則常無不順矣。以事君則必通,以爲仁則必聖,夫之謂天下之行術。少事長,賤事貴,不肖事賢,是天下之通義也。有人也,埶不在人上而羞爲人下,是姦人之心也。志不免乎姦心,行不免乎姦道,而求有君子聖人之名,辟之是猶伏而咶天,救經而引其足也。說必不行矣,俞務而俞遠。故君子時詘則詘,時伸則伸也。

천하에 행하는 재주는 이러하다. 이로써 임금을 섬기면 반드시 통하고 이로써 어짊을 하면 반드시 거룩하다.

높음을 세우고 두 마음을 두지 않는다. 그런 뒤에 공손함으로 앞서고, 참되고 미더움으로 아우르고, 삼가고 조심함으로 행하고, 바르고 도타움으로 지키고, 막히고 다하면 좇아 힘써 거듭한다.

임금이 비록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고, 공이 비록 매우 커도 덕을 자랑하는 낯빛이 없으며, 구하기를 적게 하고 공을 많이 하고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면 늘 따르지 않는 일이 없다. 이로써 임금을 섬기면 반드시 통하고 이로써 어짊을 하면 반드시 거룩하니, 무릇 이를 천하에 행하는 재주라 한다.

어린 이가 어른을 섬기고 천한 이가 귀한 이를 섬기고 못난 이가 어진 이를 섬기는 것은 천하에 통하는 옳음이다. 여기 사람이 있어 형세가 남 위에 있지 않은데 남 아래 되기를 부끄러워하면 이는 간사한 이의 마음이다. 뜻이 간사한 마음을 면하지 못하고 행실이 간사한 도를 면하지 못하면서 군자와 성인의 이름이 있기를 구하는 것은, 비유하면 엎드려 하늘을 핥고 목맨 이를 구한다며 그 발을 당기는 것과 같다. 말이 반드시 행해지지 않고 힘쓸수록 더욱 멀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때가 굽으면 굽고 때가 펴지면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