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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效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10 · 한자 4,329자 · 낭독 17.3분

「순자」 유효 「儒效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大儒之效:武王崩,成王幼,周公屏成王而及武王以屬天下,惡天下之倍周也。履天子之籍,聽天下之斷,偃然如固有之,而天下不稱貪焉;殺管叔,虛殷國,而天下不稱戾焉;兼制天下,立七十一國,姬姓獨居五十三人,而天下不稱偏焉。教誨開導成王,使諭於道,而能揜迹於文、武。周公歸周,反籍於成王,而天下不輟事周,然而周公北面而朝之。天子也者,不可以少當也,不可以假攝爲也。能則天下歸之,不能則天下去之,是以周公屏成王而及武王以屬天下,惡天下之離周也。成王冠,成人,周公歸周反籍焉,明不滅主之義也。周公無天下矣,鄉有天下,今無天下,非擅也;成王鄉無天下,今有天下,非奪也:變埶次序節然也。故以枝代主而非越也,以弟誅兄而非曓也,君臣易位而非不順也。因天下之和,遂文、武之業,明主枝之義,抑亦變化矣,天下厭然猶一也。非聖人莫之能爲,夫是之謂大儒之效。

큰 선비의 보람. 무왕이 죽고 성왕이 어리매 주공이 성왕을 물리고 무왕을 이어 천하를 맡았으니 천하가 주나라를 저버릴까 미워한 것이다. 천자의 자리를 밟고 천하의 끊음을 들으며 훌쩍 본디 제 것인 듯하였으나 천하가 탐한다 일컫지 않았고, 관숙을 죽이고 은나라를 비웠으나 천하가 사납다 일컫지 않았고, 천하를 아울러 마름질하여 일흔한 나라를 세우고 희씨가 홀로 쉰세 사람을 차지하였으나 천하가 치우쳤다 일컫지 않았다.

성왕을 가르치고 이끌어 도를 깨우치게 하여 능히 문왕과 무왕에게 자취를 가릴 수 있게 하였다. 주공이 주나라로 돌아가 자리를 성왕에게 돌려주었으나 천하가 주나라 섬기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주공은 북면하여 조회하였다.

천자란 어림으로 당할 수 없고 빌려 대신할 수 없다. 능하면 천하가 그에게 돌아오고 능하지 못하면 천하가 그를 떠난다. 그래서 주공이 성왕을 물리고 무왕을 이어 천하를 맡았으니 천하가 주나라에서 떨어질까 미워한 것이다. 성왕이 갓을 쓰고 어른이 되매 주공이 주나라로 돌아가 자리를 돌려주었으니 임금을 없애지 않는다는 옳음을 밝힌 것이다.

주공에게 천하가 없어졌다. 지난날 천하가 있다가 이제 천하가 없으니 제멋대로 한 것이 아니요, 성왕이 지난날 천하가 없다가 이제 천하가 있으니 빼앗은 것이 아니다. 형세를 바꾸고 차례를 매김이 절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곁가지로 줄기를 대신하여도 넘은 것이 아니요, 아우로서 형을 베어도 사나운 것이 아니요, 임금과 신하가 자리를 바꾸어도 따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천하의 화함을 말미암아 문왕과 무왕의 업을 이루고 줄기와 곁가지의 옳음을 밝혔으니 또한 바뀌고 달라진 것이나 천하가 넉넉히 오히려 하나였다. 성인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으니 무릇 이를 큰 선비의 보람이라 한다.

秦昭王問孫卿子曰:「儒無益於人之國。」孫卿子曰:「儒者法先王,隆禮義,謹乎臣子而致貴其上者也。人主用之,則埶在本朝而宜;不用,則退編百姓而慤,必爲順下矣。雖窮困凍餧,必不以邪道爲貪;無置錐之地而明於持社稷之大義;嘄呼而莫之能應,然而通乎財萬物、養百姓之經紀。埶在人上則王公之材也,在人下則社稷之臣,國君之寶也。雖隱於窮閻漏屋,人莫不貴之,道誠存也。仲尼將爲司寇,沈猶氏不敢朝飲其羊,公慎氏出其妻,慎潰氏踰境而徙,魯之粥牛馬者不豫賈,必蚤正以待之也。居於闕黨,闕黨之子弟罔不分,有親者取多,孝弟以化之也。儒者在本朝則美政,在下位則美俗,儒之爲人下如是矣。」王曰:「然則其爲人上何如?」孫卿曰:「其爲人上也廣大矣:志意定乎內,禮節修乎朝,法則度量正乎官,忠信愛利形乎下,行一不義、殺一無罪而得天下,不爲也。此君義信乎人矣,通於四海,則天下應之如讙。是何也?則貴名白而天下治也。故近者歌謳而樂之,遠者竭蹶而趨之,四海之內若一家,通達之屬莫不從服,夫是之謂人師。《詩》曰:『自西自東,自南自北,無思不服。』此之謂也。夫其爲人下也如彼,其爲人上也如此,何謂其無益於人之國也?」昭王曰:「善。」

진 소왕이 손경자에게 물었다. 「선비는 남의 나라에 이로움이 없다.」

손경자가 말하였다. 「선비란 앞선 임금을 법 삼고 예와 옳음을 높이며 신하와 아들 노릇에 삼가 그 위를 지극히 귀하게 하는 이입니다. 임금이 그를 쓰면 형세가 조정에 있어 마땅하고, 쓰지 않으면 물러나 백성에 끼어 참되니 반드시 따르는 아래가 됩니다.

비록 막히고 가난하여 얼고 주려도 반드시 그릇된 길로 탐하지 않고, 송곳 꽂을 땅이 없어도 사직을 붙드는 큰 옳음에 밝습니다. 부르짖어도 응하는 이가 없으나 만물을 재물로 하고 백성을 기르는 벼리에 통합니다. 형세가 남의 위에 있으면 왕공의 재목이요, 남의 아래에 있으면 사직의 신하요 나라 임금의 보배입니다. 비록 궁벽한 마을 새는 집에 숨어 있어도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으니 도가 참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중니가 사구가 되려 하매 심유씨가 감히 아침에 제 양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였고, 공신씨가 그 아내를 내보냈고, 신궤씨가 지경을 넘어 옮겨 갔고, 노나라에서 소와 말을 파는 이가 값을 부풀리지 않았으니 반드시 일찍 바로잡아 기다린 것입니다. 궐당에 사시매 궐당의 아들과 아우가 그물질한 것을 나누는데 어버이 있는 이가 많이 가졌으니 효도와 공손으로 그들을 감화시킨 것입니다.

선비란 조정에 있으면 정사를 아름답게 하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 풍속을 아름답게 하니, 선비가 남의 아래 됨이 이와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러면 그가 남의 위가 되면 어떠한가.」

손경자가 말하였다. 「그가 남의 위가 되면 넓고 큽니다. 뜻이 안에서 정해지고 예의 마디가 조정에서 닦이고 법과 도량이 벼슬에서 발라지고 참됨과 미더움과 사랑과 이로움이 아래에 나타나, 한 가지 옳지 않은 일을 행하고 한 죄 없는 이를 죽여 천하를 얻는대도 하지 않습니다. 이 임금의 옳음이 사람에게 미더워 사해에 통하면 천하가 기뻐하는 소리처럼 응합니다.

이는 어째서입니까. 귀한 이름이 밝고 천하가 다스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이는 노래하여 즐거워하고 먼 이는 넘어지며 달려오며 사해 안이 한 집 같아 통하는 무리가 다 좇아 굴복하니, 무릇 이를 사람의 스승이라 합니다. 「시」에 이르기를 「서에서 동에서 남에서 북에서 굴복하지 않는 이가 없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입니다.

무릇 그가 남의 아래 됨이 저와 같고 그가 남의 위 됨이 이와 같은데 어찌 그가 남의 나라에 이로움이 없다 하십니까.」

소왕이 말하였다. 「좋구나.」

先王之道,人之隆也,比中而行之。曷謂中?曰:禮義是也。道者,非天之道,非地之道,人之所以道也,君子之所道也。君子之所謂賢者,非能徧能人之所能之謂也;君子之所謂知者,非能徧知人之所知之謂也;君子之所謂辯者,非能徧辯人之所辯之謂也;君子之所謂察者,非能徧察人之所察之謂也;有所正矣。相高下,視墝肥,序五種,君子不如農人;通貨財,相美惡,辯貴賤,君子不如賈人;設規矩,陳繩墨,便備用,君子不如工人;不卹是非然不然之情,以相薦撙,以相恥怍,君子不若惠施、鄧析。若夫謫德而定次,量能而授官,使賢不肖皆得其位,能不能皆得其官,萬物得其宜,事變得其應,慎、墨不得進其談,惠施、鄧析不敢竄其察,言必當理,事必當務,是然後君子之所長也。凡事行,有益於理者立之,無益於理者廢之,夫是之謂中事。凡知說,有益於理者爲之,無益於理者舍之,夫是之謂中說。事行失中謂之姦事,知說失中謂之姦道。姦事姦道,治世之所棄,而亂世之所從服也。若夫充虛之相施易也,堅白、同異之分隔也,是聰耳之所不能聽也,明目之所不能見也,辯士之所不能言也,雖有聖人之知,未能僂指也。不知無害爲君子,知之無損爲小人。工匠不知無害爲巧,君子不知無害爲治。王公好之則亂法,百姓好之則亂事。而狂惑戇陋之人,乃始率其羣徒,辯其談說,明其辟稱,老身長子,不知惡也。夫是之謂上愚,曾不如相雞狗之可以爲名也。《詩》曰:「爲鬼爲蜮,則不可得。有靦面目,視人罔極。作此好歌,以極反側。」此之謂也。

앞선 임금의 도는 사람의 높음이니 가운데에 견주어 행한다. 무엇을 가운데라 하는가. 말하기를, 예와 옳음이 그것이다.

도란 하늘의 도도 아니요 땅의 도도 아니요 사람이 말미암는 바요 군자가 걷는 바다.

군자가 이르는 어짊이란 남이 능한 바를 두루 능함을 이름이 아니요, 군자가 이르는 앎이란 남이 아는 바를 두루 앎을 이름이 아니요, 군자가 이르는 따짐이란 남이 따지는 바를 두루 따짐을 이름이 아니요, 군자가 이르는 살핌이란 남이 살피는 바를 두루 살핌을 이름이 아니다. 바로잡을 바가 있는 것이다.

높낮이를 보고 메마르고 걸음을 살펴 다섯 가지 씨앗을 차례 짓는 데는 군자가 농부만 못하고, 재물을 통하고 좋고 나쁨을 보고 귀하고 천함을 가리는 데는 군자가 장사꾼만 못하고, 그림쇠와 곱자를 놓고 먹줄을 벌여 쓰임을 갖추는 데는 군자가 장인만 못하고, 옳고 그름과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의 정을 돌아보지 않고 서로 밀치고 서로 부끄럽게 하는 데는 군자가 혜시와 등석만 못하다.

저 덕을 헤아려 차례를 정하고 능함을 헤아려 벼슬을 주어 어질고 못난 이가 다 그 자리를 얻고 능하고 능하지 못한 이가 다 그 벼슬을 얻으며, 만물이 그 마땅함을 얻고 일의 달라짐이 그 응함을 얻어, 신도와 묵자가 그 말을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혜시와 등석이 감히 그 살핌을 끼우지 못하며, 말이 반드시 이치에 마땅하고 일이 반드시 힘씀에 마땅하니 이런 뒤에야 군자의 잘하는 바다.

무릇 일과 행함에 이치에 이로운 것은 세우고 이치에 이롭지 않은 것은 버리니 무릇 이를 가운데 일이라 한다. 무릇 앎과 말에 이치에 이로운 것은 하고 이치에 이롭지 않은 것은 놓으니 무릇 이를 가운데 말이라 한다. 일과 행함이 가운데를 잃으면 간사한 일이라 하고 앎과 말이 가운데를 잃으면 간사한 도라 한다. 간사한 일과 간사한 도는 다스려진 세상이 버리는 바요 어지러운 세상이 좇아 굴복하는 바다.

저 채움과 빔이 서로 옮겨 바뀐다느니 굳음과 힘, 같음과 다름이 갈라진다느니 하는 것은 밝은 귀로도 들을 수 없고 밝은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따지는 선비도 말할 수 없으며, 비록 성인의 앎이 있어도 손가락 꼽아 셀 수 없다. 알지 못해도 군자 됨에 해롭지 않고 알아도 소인 됨에 덜림이 없다. 장인이 알지 못해도 공교로움에 해롭지 않고 군자가 알지 못해도 다스림에 해롭지 않다. 왕공이 이를 좋아하면 법을 어지럽히고 백성이 이를 좋아하면 일을 어지럽힌다.

그런데 미치고 홀리고 어리석고 좁은 사람이 마침내 그 무리를 이끌고 그 말을 따지고 그 견줌을 밝히며, 몸이 늙고 아들이 자라도록 나쁜 줄 알지 못한다. 무릇 이를 가장 어리석음이라 하니, 닭과 개를 보아 이름을 얻는 것만도 못하다. 「시」에 이르기를 「귀신이 되고 물여우가 되면 얻을 수 없으나, 낯이 있어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끝이 없네. 이 좋은 노래를 지어 뒤척임을 다하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我欲賤而貴,愚而智,貧而富,可乎?曰:其唯學乎。彼學者,行之,曰士也;敦慕焉,君子也;知之,聖人也。上爲聖人,下爲士君子,孰禁我哉!鄉也,混然涂之人也,俄而竝乎堯、禹,豈不賤而貴矣哉!鄉也,效門室之辨,混然曾不能決也,俄而原仁義,分是非,圓囘天下於掌上而辯白黑,豈不愚而知矣哉!鄉也,胥靡之人,俄而治天下之大器舉在此,豈不貧而富矣哉!今有人於此,屑然藏千溢之寶,雖行貣而食,人謂之富矣。彼寶也者,衣之不可衣也,食之不可食也,賣之不可僂售也,然而人謂之富,何也?豈不大富之器誠在此也?是杅杅亦富人已,豈不貧而富矣哉!故君子無爵而貴,無禄而富,不言而信,不怒而威,窮處而榮,獨居而樂,豈不至尊、至富、至重、至嚴之情舉積此哉!故曰:貴名不可以比周争也,不可以夸誕有也,不可以埶重脅也,必將誠此然後就也。争之則失,讓之則至,遵道則積,夸誕則虛。故君子務修其內而讓之於外,務積德於身而處之以遵道,如是,則貴名起如日月,天下應之如雷霆。故曰:君子隱而顯,微而明,辭讓而勝。《詩》曰:「鶴鳴于九皋,聲聞于天。」此之謂也。鄙夫反是。比周而譽俞少,鄙争而名俞辱,煩勞以求安利,其身俞危。《詩》曰:「民之無良,相怨一方。受爵不讓,至于己斯亡。」此之謂也。故能小而事大,辟之是猶力之少而任重也,舍粹折無適也。身不肖而誣賢,是猶傴伸而好升高也,指其頂者愈衆。故明主譎德而序位,所以爲不亂也;忠臣誠能然後敢受職,所以爲不窮也。分不亂於上,能不窮於下,治辯之極也。《詩》曰:「平平左右,亦是率從。」是言上下之交不相亂也。

나는 천하면서 귀하고 어리석으면서 슬기롭고 가난하면서 가멸고자 하니 되겠는가. 말하기를, 오직 배움뿐이다.

저 배우는 이가 이를 행하면 선비라 하고, 도타이 사모하면 군자라 하고, 이를 알면 성인이라 한다. 위로는 성인이 되고 아래로는 선비와 군자가 되니 누가 나를 막겠는가.

지난날에는 뒤섞인 길 위의 사람이었는데 이윽고 요임금·우임금과 나란해지니 어찌 천하면서 귀해진 것이 아닌가. 지난날에는 문간과 방의 가림을 뒤섞여 일찍이 끊지 못하였는데 이윽고 어짊과 옳음을 캐고 옳고 그름을 가르며 천하를 손바닥 위에 굴리고 희고 검음을 따지니 어찌 어리석으면서 슬기로워진 것이 아닌가. 지난날에는 매인 종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윽고 천하를 다스리는 큰 그릇이 다 여기 있으니 어찌 가난하면서 가멸어진 것이 아닌가.

이제 여기 어떤 사람이 잘게 천 일(溢)의 보배를 감추고 비록 빌어 먹더라도 사람이 가멸다 한다. 저 보배란 입어도 입을 수 없고 먹어도 먹을 수 없고 팔아도 대뜸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이 가멸다 하니 어째서인가. 어찌 크게 가멸어질 그릇이 참으로 여기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어수룩한 이도 또한 가멸은 사람이니 어찌 가난하면서 가멸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군자는 벼슬이 없어도 귀하고 녹이 없어도 가멸고 말하지 않아도 미덥고 성내지 않아도 위엄 있고 막혀 살아도 영광스럽고 홀로 살아도 즐거우니, 어찌 지극히 높고 지극히 가멸고 지극히 무겁고 지극히 엄한 정이 다 여기 쌓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귀한 이름은 패거리 지어 다투어 얻을 수 없고 자랑하고 허탄하여 가질 수 없고 형세와 무거움으로 을러 얻을 수 없으니 반드시 장차 이를 참되게 한 뒤에야 이룬다 한다. 다투면 잃고 사양하면 이르고 도를 좇으면 쌓이고 자랑하고 허탄하면 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안을 닦기에 힘쓰고 밖으로 사양하며, 덕을 몸에 쌓기에 힘쓰고 도를 좇음으로 처한다. 이와 같으면 귀한 이름이 해와 달처럼 일어나고 천하가 우레처럼 응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군자는 숨어도 드러나고 작아도 밝고 사양해도 이긴다 한다. 「시」에 이르기를 「학이 아홉 굽이 늪에서 우니 소리가 하늘에 들리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더러운 사내는 이와 거꾸로다. 패거리 지을수록 기림이 적어지고 낮게 다툴수록 이름이 욕되고 번거로이 수고하여 편안함과 이로움을 구할수록 제 몸이 위태롭다. 「시」에 이르기를 「백성이 어질지 못하여 서로 한쪽만 원망하네. 벼슬을 받고 사양하지 않아 제 몸에 이르러 이에 망하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능함이 작으면서 일이 크면, 비유하면 이는 힘이 적으면서 무거운 것을 지는 것과 같아 부서지고 꺾이는 것 말고는 갈 데가 없다. 몸이 못나면서 어진 이를 속이면, 이는 곱사등이가 펴려 하면서 높이 오르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아 그 정수리를 가리키는 이가 더욱 많아진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덕을 헤아려 자리를 차례 지으니 어지럽지 않게 하는 까닭이요, 참된 신하는 참으로 능한 뒤에 감히 직분을 받으니 막히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갈래가 위에서 어지럽지 않고 능함이 아래에서 막히지 않는 것이 다스림과 가림의 끝이다. 「시」에 이르기를 「고르고 고른 좌우여, 또한 이를 따르네」 하였으니, 이는 위아래의 사귐이 서로 어지럽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以從俗爲善,以貨財爲寶,以養生爲己至道,是民德也。行法至堅,不以私欲亂所聞,如是,則可謂勁士矣。行法至堅,好修正其所聞以橋飾其情性,其言多當矣而未諭也,其行多當矣而未安也,其知慮多當矣而未周密也,上則能大其所隆,下則能開道不己若者,如是,則可謂篤厚君子矣。修百王之法若辨白黑,應當時之變若數一二,行禮要節而安之若生四枝,要時立功之巧若詔四時;平正和民之善,億萬之衆而博若一人,如是,則可謂聖人矣。井井兮其有理也,嚴嚴兮其能敬己也,分分兮其有終始也,猒猒兮其能長久也,樂樂兮其執道不殆也,炤炤兮其用知之明也,修修兮其用統類之行也,綏綏兮其有文章也,熙熙兮其樂人之臧也,隱隱兮其恐人之不當也,如是,則可謂聖人矣。此其道出乎一。曷謂一?曰:執神而固。曷謂神?曰:盡善挾治之謂神,萬物莫足以傾之之謂固,神固之謂聖人。聖人也者,道之管也。天下之道管是矣,百王之道一是矣,故《詩》、《書》、《禮》、《樂》之道歸是矣。《詩》言是,其志也;《書》言是,其事也;《禮》言是,其行也;《樂》言是,其和也;《春秋》言是,其微也。故《風》之所以爲不逐者,取是以節之也;《小雅》之所以爲《小雅》者,取是而文之也;《大雅》之所以爲《大雅》者,取是而光之也;《頌》之所以爲至者,取是而通之也:天下之道畢是矣。鄉是者臧,倍是者亡。鄉是如不臧,倍是如不亡者,自古及今,未嘗有也。

풍속을 좇는 것을 착함으로 삼고 재물을 보배로 삼고 삶을 기르는 것을 제 지극한 도로 삼는 것은 백성의 덕이다.

법을 행함이 지극히 굳어 사사로운 바람으로 들은 바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굳센 선비라 할 만하다.

법을 행함이 지극히 굳고 그 들은 바를 닦고 바로잡아 그 정과 성품을 바로잡기를 좋아하되, 그 말이 마땅한 것이 많으나 아직 훤히 깨닫지 못하고 그 행실이 마땅한 것이 많으나 아직 편안하지 못하고 그 앎과 헤아림이 마땅한 것이 많으나 아직 두루 빽빽하지 못하며, 위로는 그 높이는 바를 크게 하고 아래로는 저만 못한 이를 열어 이끌면 도탑고 두터운 군자라 할 만하다.

온갖 왕의 법을 닦기를 희고 검음 가리듯 하고, 그때의 달라짐에 응하기를 하나 둘 세듯 하고, 예를 행하고 마디를 요긴히 하여 편안하기를 네 팔다리처럼 하고, 때를 요긴히 하여 공을 세우는 공교로움이 네 철에 명하는 듯하며, 고르고 발라 백성을 화하게 하는 착함이 억만 무리에 넓기가 한 사람 같으면 성인이라 할 만하다.

정정(井井)하여 이치가 있고, 엄엄(嚴嚴)하여 능히 제 몸을 공경하고, 분분(分分)하여 처음과 끝이 있고, 염염(猒猒)하여 능히 길고 오래고, 낙락(樂樂)하여 도를 잡아 게으르지 않고, 소소(炤炤)하여 앎을 씀이 밝고, 수수(修修)하여 벼리와 갈래를 씀이 행해지고, 수수(綏綏)하여 무늬가 있고, 희희(熙熙)하여 남의 착함을 즐거워하고, 은은(隱隱)하여 남이 마땅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이와 같으면 성인이라 할 만하다.

이 도는 하나에서 나온다. 무엇을 하나라 하는가. 말하기를, 신(神)을 잡아 굳음이다. 무엇을 신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착함을 다하고 다스림을 지닌 것을 신이라 하고, 만물이 아무것도 그를 기울일 수 없는 것을 굳음이라 하니, 신과 굳음을 성인이라 한다.

성인이란 도의 꿰미다. 천하의 도가 여기 꿰이고 온갖 왕의 도가 여기 하나이니, 그러므로 「시」와 「서」와 「예」와 「악」의 도가 여기로 돌아온다. 「시」가 이를 말한 것은 그 뜻이요, 「서」가 이를 말한 것은 그 일이요, 「예」가 이를 말한 것은 그 행실이요, 「악」이 이를 말한 것은 그 화함이요, 「춘추」가 이를 말한 것은 그 은미함이다.

그러므로 「국풍」이 방탕하지 않게 된 까닭은 이를 취하여 마디 지었기 때문이요, 「소아」가 「소아」가 된 까닭은 이를 취하여 무늬 놓았기 때문이요, 「대아」가 「대아」가 된 까닭은 이를 취하여 빛냈기 때문이요, 「송」이 지극함이 된 까닭은 이를 취하여 통했기 때문이니, 천하의 도가 여기서 다한다.

이를 향하는 이는 착하고 이를 저버리는 이는 없어진다. 이를 향하고도 착하지 않고 이를 저버리고도 없어지지 않은 이는 예로부터 이제까지 일찍이 있지 않았다.

客有道曰:「孔子曰:『周公其盛乎!身貴而愈恭,家富而愈儉,勝敵而愈戒。』」應之曰:「是殆非周公之行,非孔子之言也。武王崩,成王幼,周公屏成王而及武王,履天子之籍,負扆而坐,諸侯趨走堂下。當是時也,夫又誰爲恭矣哉!兼制天下,立七十一國,姬姓獨居五十三人焉,周之子孫苟不狂惑者,莫不爲天下之顯諸侯,孰謂周公儉哉!武王之誅紂也,行之日以兵忌,東面而迎太歲,至汜而汎,至懷而壞,至共頭而山隧。霍叔懼曰:『出三日而五災至,無乃不可乎?』周公曰:『刳比干而囚箕子,飛廉、惡來知政,夫又惡有不可焉?』遂選馬而進,朝食於戚,暮宿於百泉,旦厭於牧之野,鼓之而紂卒易鄉,遂乘殷人而誅紂。葢殺者非周人,因殷人也。故無首虜之獲,無蹈難之賞,反而定三革,偃五兵,合天下,立聲樂,於是《武》、《象》起而《韶》、《護》廢矣。四海之內,莫不變心易慮以化順之,故外闔不閉,跨天下而無蘄。當是時也,夫又誰爲戒矣哉!」

어떤 손이 말하기를 「공자가 말하되 주공은 성대하도다. 몸이 귀할수록 더욱 공손하고 집이 가멸수록 더욱 검소하고 적을 이길수록 더욱 조심하였다 하였다」 하였다.

이에 응하여 말한다. 「이는 아마 주공의 행실도 아니요 공자의 말도 아니다.

무왕이 죽고 성왕이 어리매 주공이 성왕을 물리고 무왕을 이어 천자의 자리를 밟고 병풍을 등지고 앉으매 제후가 당 아래로 종종걸음쳤다. 이때에 또 누구에게 공손하였겠는가.

천하를 아울러 마름질하여 일흔한 나라를 세우고 희씨가 홀로 쉰세 사람을 차지하여, 주나라의 자손이 진실로 미치고 홀린 이가 아니면 천하의 드러난 제후가 되지 않은 이가 없으니 누가 주공을 검소하다 하겠는가.

무왕이 주(紂)를 벨 때 떠난 날이 군사에 꺼리는 날이었고 동쪽을 향하여 태세(太歲)를 맞았으며, 사수에 이르러 물이 넘치고 회에 이르러 무너지고 공두에 이르러 산이 떨어졌다. 곽숙이 두려워 말하기를 『나온 지 사흘에 다섯 재앙이 이르렀으니 아마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주공이 말하기를 『비간을 가르고 기자를 가두었으며 비렴과 오래가 정사를 아는데 또 어찌 안 될 것이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말을 가려 나아갔다.

아침에 척(戚)에서 먹고 저물어 백천에서 자고 아침에 목야에 다다라 북을 치니 주의 군사가 방향을 바꾸었고, 마침내 은나라 사람을 타고 주를 베었다. 대개 죽인 이가 주나라 사람이 아니라 은나라 사람을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를 베어 사로잡은 얻음이 없고 어려움을 밟은 상이 없었다.

돌아와 세 가지 갑옷을 정하고 다섯 가지 병기를 눕히고 천하를 합하고 소리와 음악을 세우니, 이에 「무(武)」와 「상(象)」이 일어나고 「소(韶)」와 「호(護)」가 폐하여졌다. 사해 안이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고쳐 감화되어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으므로 바깥문을 닫지 않고 천하를 걸터앉아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이때에 또 누구를 조심하였겠는가.」

造父者,天下之善御者也,無輿馬則無所見其能。羿者,天下之善射者也,無弓矢則無所見其巧。大儒者,善調一天下者也,無百里之地則無所見其功。輿固馬選矣,而不能以至遠一日而千里,則非造父也。弓調矢直矣,而不能射遠中微,則非羿也。用百里之地,而不能以調一天下,制彊曓,則非大儒也。彼大儒者,雖隱於窮閻漏屋,無置錐之地,而王公不能與之争名;在一大夫之位,則一君不能獨畜,一國不能獨容,成名況乎諸侯,莫不願得以爲臣;用百里之地而千里之國莫能與之争勝,笞棰曓國,齊一天下,而莫能傾也。是大儒之徵也。其言有類,其行有禮,其舉事無悔,其持險應變曲當,與時遷徙,與世偃仰,千舉萬變,其道一也。是大儒之稽也。其窮也,俗儒笑之;其通也,英傑化之,嵬瑣逃之,邪說畏之,衆人媿之。通則一天下,窮則獨立貴名,天不能死,地不能埋,桀、跖之世不能汙,非大儒莫之能立,仲尼、子弓是也。故有俗人者,有俗儒者,有雅儒者,有大儒者。不學問,無正義,以富利爲隆,是俗人者也。逢衣淺帶,解果其冠,略法先王而足亂世術,繆學雜舉,不知法後王而一制度,不知隆禮義而殺《詩》、《書》;其衣冠行僞已同於世俗矣,然而不知惡者;其言議談說已無異於墨子矣,然而明不能別;呼先王以欺愚者而求衣食焉,得委積足以揜其口則揚揚如也;隨其長子,事其便辟,舉其上客,𠌼然若終身之虜而不敢有他志:是俗儒者也。法後王,一制度,隆禮義而殺《詩》、《書》,其言行已有大法矣,然而明不能齊法教之所不及,聞見之所未至,則知不能類也,知之曰知之,不知曰不知,內不自以誣,外不自以欺,以是尊賢畏法而不敢怠傲,是雅儒者也。法先王,統禮義,一制度,以淺持博,以古持今,以一持萬,苟仁義之類也,雖在鳥獸之中,若別白黑,倚物怪變,所未嘗聞也,所未嘗見也,卒然起一方,則舉統類而應之,無所儗㤰,張法而度之,則晻然若合符節,是大儒者也。故人主用俗人則萬乘之國亡,用俗儒則萬乘之國存,用雅儒則千乘之國安,用大儒則百里之地久而後三年,天下爲一,諸侯爲臣,用萬乘之國則舉錯而定,一朝而伯。

조보는 천하에 수레를 잘 모는 이나 수레와 말이 없으면 그 능함을 보일 데가 없다. 예(羿)는 천하에 활을 잘 쏘는 이나 활과 화살이 없으면 그 공교로움을 보일 데가 없다. 큰 선비는 천하를 잘 고르고 하나로 하는 이나 백 리 땅이 없으면 그 공을 보일 데가 없다.

수레가 굳고 말이 가려졌는데도 멀리 이르러 하루 천 리를 가지 못하면 조보가 아니다. 활이 고르고 화살이 곧은데도 멀리 쏘아 작은 것을 맞히지 못하면 예가 아니다. 백 리 땅을 쓰고도 천하를 고르고 하나로 하여 굳세고 사나운 이를 마름질하지 못하면 큰 선비가 아니다.

저 큰 선비는 비록 궁벽한 마을 새는 집에 숨어 송곳 꽂을 땅이 없어도 왕공이 그와 이름을 다투지 못하고, 한 대부의 자리에 있으면 한 임금이 홀로 기를 수 없고 한 나라가 홀로 담을 수 없어 이름 이룸이 제후에 견주어 아무도 얻어 신하 삼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으며, 백 리 땅을 쓰면 천 리 나라도 아무도 그와 이김을 다투지 못하여 사나운 나라를 매질하고 천하를 가지런히 하나로 하여 아무도 기울일 수 없다. 이것이 큰 선비의 증표다.

그 말에 갈래가 있고 그 행실에 예가 있고 그 일을 듦에 뉘우침이 없고 그 험함을 지니고 달라짐에 응함이 굽이굽이 마땅하며, 때와 더불어 옮기고 세상과 더불어 엎드리고 우러러 천 번 들고 만 번 달라져도 그 도는 하나다. 이것이 큰 선비의 상고할 바다.

그가 막히면 속된 선비가 비웃고 그가 통하면 뛰어난 이가 그에게 감화되고 우뚝하고 자잘한 이가 달아나고 그릇된 말이 두려워하고 뭇 사람이 부끄러워한다. 통하면 천하를 하나로 하고 막히면 홀로 서서 이름이 귀하여, 하늘도 죽일 수 없고 땅도 묻을 수 없고 걸과 척의 세상도 더럽힐 수 없으니, 큰 선비가 아니면 아무도 세울 수 없다. 중니와 자궁이 이들이다.

그러므로 속된 사람이 있고 속된 선비가 있고 바른 선비가 있고 큰 선비가 있다.

배우고 묻지 않고 바른 옳음이 없고 가멸음과 이로움을 높음으로 삼으니 이것이 속된 사람이다.

넓은 옷에 얕은 띠를 하고 그 갓을 헐렁하게 쓰며, 앞선 임금을 얼추 법 삼으나 어지러운 세상의 재주에 만족하고, 그릇 배우고 어수선히 들어 뒷임금을 법 삼아 제도를 하나로 할 줄 모르고 예와 옳음을 높이고 「시」와 「서」를 덜 줄 모른다. 그 옷과 갓과 행실과 거짓이 이미 세속과 같은데도 나쁜 줄 모르고, 그 말과 의논과 이야기가 이미 묵자와 다름이 없는데도 밝게 가리지 못한다. 앞선 임금을 불러 어리석은 이를 속여 옷과 밥을 구하고, 쌓아 둔 것을 얻어 제 입을 가리기에 넉넉하면 우쭐한다. 그 맏아들을 따르고 그 편벽된 이를 섬기고 그 윗손을 받들어, 멍하니 죽도록 사로잡힌 이처럼 감히 다른 뜻을 두지 못한다. 이것이 속된 선비다.

뒷임금을 법 삼고 제도를 하나로 하고 예와 옳음을 높이고 「시」와 「서」를 덜어 그 말과 행실에 이미 큰 법이 있으나, 밝음이 법과 가르침이 미치지 못하는 바와 듣고 봄이 이르지 못한 바를 가지런히 하지 못하면 앎이 갈래 지을 수 없으니, 아는 것을 안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여 안으로 스스로 속이지 않고 밖으로 스스로 속이지 않으며, 이로써 어진 이를 높이고 법을 두려워하여 감히 게으르고 거만하지 못하니 이것이 바른 선비다.

앞선 임금을 법 삼고 예와 옳음을 거느리고 제도를 하나로 하며, 얕은 것으로 넓은 것을 붙들고 옛것으로 지금을 붙들고 하나로 만을 붙든다. 진실로 어짊과 옳음의 무리라면 비록 새와 짐승 가운데 있어도 희고 검음 가리듯 하고, 기이한 것과 괴상한 달라짐이 일찍이 듣지 못한 바요 일찍이 보지 못한 바로 갑자기 한쪽에서 일어나도 벼리와 갈래를 들어 응하여 머뭇거리는 바가 없으며, 법을 펴 헤아리면 어렴풋이 부절을 맞춘 듯하니 이것이 큰 선비다.

그러므로 임금이 속된 사람을 쓰면 만승의 나라가 없어지고, 속된 선비를 쓰면 만승의 나라가 남고, 바른 선비를 쓰면 천승의 나라가 편안하고, 큰 선비를 쓰면 백 리 땅으로도 오래지 않아 세 해면 천하가 하나 되고 제후가 신하가 되며, 만승의 나라에 쓰면 들어 놓자마자 정해져 하루아침에 으뜸이 된다.

不聞不若聞之,聞之不若見之,見之不若知之,知之不若行之,學至於行之而止矣。行之,明也。明之爲聖人。聖人也者,本仁義,當是非,齊言行,不失豪釐,無它道焉,已乎行之矣。故聞之而不見,雖博必謬;見之而不知,雖識必妄;知之而不行,雖敦必困。不聞不見,則雖當,非仁也,其道百舉而百陷也。故人無師無法而知則必爲盜,勇則必爲賊,云能則必爲亂,察則必爲怪,辯則必爲誕。人有師有法而知則速通,勇則速畏,云能則速成,察則速盡,辯則速論。故有師法者,人之大寶也;無師法者,人之大殃也。人無師法則隆性矣,有師法則隆積矣,而師法者,所得乎積,非所受乎性,不足以獨立而治。性也者,吾所不能爲也,然而可化也;積也者,非吾所有也,然而可爲也。注錯習俗,所以化性也;幷一而不二,所以成積也。習俗移志,安久移質,幷一而不二則通於神明,參於天地矣。故積土而爲山,積水而爲海,旦暮積謂之歲。至高謂之天,至下謂之地,宇中六指謂之極;涂之人百姓積善而全盡謂之聖人。彼求之而後得,爲之而後成,積之而後高,盡之而後聖。故聖人也者,人之所積也。人積耨耕而爲農夫,積斲削而爲工匠,積反貨而爲商賈,積禮義而爲君子。工匠之子莫不繼事,而都國之民安習其服。居楚而楚,居越而越,居夏而夏,是非天性也,積靡使然也。故人知謹注錯,慎習俗,大積靡,則爲君子矣;縱情性而不足問學,則爲小人矣。爲君子則常安榮矣,爲小人則常危辱矣。凡人莫不欲安榮而惡危辱,故唯君子爲能得其所好,小人則日徼其所惡。《詩》曰:「維此良人,弗求弗迪;唯彼忍心,是顧是復。民之貪亂,寧爲荼毒。」此之謂也。

듣지 않는 것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고,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행하는 것만 못하니 배움은 행함에 이르러 그친다. 행하면 밝고 밝으면 성인이 된다.

성인이란 어짊과 옳음에 밑동을 두고 옳고 그름에 마땅하고 말과 행실을 가지런히 하여 털끝만큼도 잃지 않는 이니 다른 도가 없다. 행함에서 그칠 뿐이다.

그러므로 듣고도 보지 않으면 비록 넓어도 반드시 그르고, 보고도 알지 못하면 비록 기억해도 반드시 망령되고,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비록 도타워도 반드시 막힌다. 듣지도 보지도 않으면 비록 마땅해도 어짊이 아니니 그 도는 백 번 들어 백 번 빠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스승이 없고 법이 없으면서 슬기로우면 반드시 도둑이 되고, 날래면 반드시 해치는 이가 되고, 능하다 하면 반드시 어지럽게 하고, 살피면 반드시 괴상해지고, 따지면 반드시 허탄해진다. 사람이 스승이 있고 법이 있으면서 슬기로우면 빨리 통하고, 날래면 곧 위엄이 서고, 능하다 하면 빨리 이루고, 살피면 빨리 다하고, 따지면 빨리 논한다.

그러므로 스승과 법이 있는 이는 사람의 큰 보배요 스승과 법이 없는 이는 사람의 큰 재앙이다. 사람이 스승과 법이 없으면 성품을 높이고 스승과 법이 있으면 쌓음을 높인다. 그런데 스승과 법이란 쌓음에서 얻는 바요 성품에서 받는 바가 아니니 홀로 서서 다스릴 수 없다.

성품이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나 달라지게 할 수는 있고, 쌓음이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나 할 수는 있다. 놓고 두는 것과 익힌 풍속은 성품을 달라지게 하는 까닭이요, 아울러 하나로 하여 둘로 하지 않음은 쌓음을 이루는 까닭이다. 익힌 풍속이 뜻을 옮기고 편안함이 오래면 바탕을 옮기며, 아울러 하나로 하여 둘로 하지 않으면 신명에 통하고 하늘과 땅에 셋이 된다.

그러므로 흙을 쌓아 산이 되고 물을 쌓아 바다가 되고 아침저녁을 쌓아 해라 한다. 지극히 높은 것을 하늘이라 하고 지극히 낮은 것을 땅이라 하고 우주 가운데 여섯 방위를 끝이라 한다. 길 위의 사람과 백성이 착함을 쌓아 온전히 다하면 성인이라 한다.

저이는 구한 뒤에 얻고 한 뒤에 이루고 쌓은 뒤에 높고 다한 뒤에 성인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란 사람이 쌓은 것이다.

사람이 김매고 밭갊을 쌓아 농부가 되고, 깎고 다듬음을 쌓아 장인이 되고, 물건 되돌려 팖을 쌓아 장사꾼이 되고, 예와 옳음을 쌓아 군자가 된다. 장인의 아들이 일을 잇지 않는 이가 없고 도읍과 나라의 백성이 그 옷을 편안히 익힌다. 초나라에 살면 초나라 사람이 되고 월나라에 살면 월나라 사람이 되고 중원에 살면 중원 사람이 되니, 이는 하늘 성품이 아니라 쌓아 갈고닦음이 그리 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놓고 둠을 삼갈 줄 알고 익힌 풍속을 삼가고 쌓아 갈고닦음을 크게 하면 군자가 되고, 정과 성품을 놓아 배우고 묻기에 넉넉하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 군자가 되면 늘 편안하고 영광스럽고 소인이 되면 늘 위태롭고 욕되다. 무릇 사람이 편안하고 영광스럽기를 바라고 위태롭고 욕됨을 미워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그러므로 오직 군자만이 능히 그 좋아하는 바를 얻고 소인은 날마다 그 미워하는 바를 부른다.

「시」에 이르기를 「이 어진 사람은 구하지도 않고 나아가게도 않으며, 오직 저 모진 마음만 돌아보고 되풀이하네. 백성이 어지러움을 탐하여 차라리 쓴 독이 되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人論:志不免於曲私而冀人之以己爲公也,行不免於汙漫而冀人之以己爲修也,甚愚陋溝瞀而冀人之以己爲知也,是衆人也。志忍私然後能公,行忍情性然後能修,知而好問然後能才,公修而才,可謂小儒矣。志安公,行安修,知通統類,如是則可謂大儒矣。大儒者,天子三公也。小儒者,諸侯大夫士也。衆人者,工農商賈也。禮者,人主之所以爲羣臣寸尺尋丈檢式也,人倫盡矣。

사람을 논한다. 뜻이 굽고 사사로움을 면하지 못하면서 남이 저를 공변되다 여기기를 바라고, 행실이 더럽고 질펀함을 면하지 못하면서 남이 저를 닦았다 여기기를 바라고, 몹시 어리석고 좁고 어두우면서 남이 저를 슬기롭다 여기기를 바라니 이것이 뭇 사람이다.

뜻이 사사로움을 참은 뒤에야 능히 공변되고, 행실이 정과 성품을 참은 뒤에야 능히 닦이고, 슬기로우면서 묻기를 좋아한 뒤에야 능히 재주 있으니, 공변되고 닦이고 재주 있으면 작은 선비라 할 만하다.

뜻이 공변됨에 편안하고 행실이 닦임에 편안하고 앎이 벼리와 갈래에 통하면, 이와 같으면 큰 선비라 할 만하다.

큰 선비란 천자의 삼공이요, 작은 선비란 제후의 대부와 사요, 뭇 사람이란 장인과 농부와 장사꾼이다.

예란 임금이 뭇 신하에게 치와 자와 발과 길로 삼는 잣대이니 사람의 갈래가 여기서 다한다.

君子言有壇宇,行有防表,道有一隆。言道德之求,不下於安存;言志意之求,不下於上;言道德之求,不二後王。道過三代謂之蕩,法二後王謂之不雅。高之下之,小之臣之,不外是矣,是君子之所以騁志意於壇宇宮廷也。故諸侯問政不及安存,則不告也;匹夫問學不及爲士,則不教也;百家之說不及後王,則不聽也。夫是之謂君子言有壇宇,行有防表也。

군자는 말에 마당과 집이 있고 행실에 둑과 표가 있고 도에 하나의 높음이 있다.

도와 덕의 구함을 말할 때는 편안히 남는 데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뜻의 구함을 말할 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도와 덕의 구함을 말할 때는 뒷임금을 둘로 하지 않는다.

도가 세 대를 지나면 방탕하다 하고 법이 뒷임금을 둘로 하면 바르지 않다 한다. 높이고 낮추고 작게 하고 신하 삼는 것이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군자가 마당과 집과 궁정에서 뜻을 달리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제후가 정사를 물으면서 편안히 남는 데 미치지 못하면 일러 주지 않고, 필부가 배움을 물으면서 선비 되는 데 미치지 못하면 가르치지 않고, 백가의 말이 뒷임금에 미치지 못하면 듣지 않는다. 무릇 이를 군자는 말에 마당과 집이 있고 행실에 둑과 표가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