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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論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17 · 한자 1,855자 · 낭독 7.4분

「순자」 천론 「天論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天行有常,不為堯存,不為桀亡。應之以治則吉,應之以亂則凶。彊本而節用,則天不能貧;養備而動時,則天不能病;脩道而不貳,則天不能禍。故水旱不能使之飢,寒暑不能使之疾,祆怪不能使之凶。本荒而用侈,則天不能使之富;養略而動罕,則天不能使之全;倍道而妄行,則天不能使之吉。故水旱未至而飢,寒暑未薄而疾,祆怪未至而凶--受時與治世同,而殃禍與治世異,不可以怨天,其道然也。故明於天人之分,則可謂至人矣。

하늘의 운행에는 떳떳함이 있다. 요임금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니요 걸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스림으로 응하면 길하고 어지러움으로 응하면 흉하다.

밑동을 굳세게 하고 씀을 아끼면 하늘도 가난하게 할 수 없고, 기름이 갖추어지고 움직임이 때에 맞으면 하늘도 병들게 할 수 없고, 도를 닦아 두 마음을 두지 않으면 하늘도 재앙을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장마와 가뭄도 주리게 할 수 없고, 추위와 더위도 앓게 할 수 없고, 요사한 괴이함도 흉하게 할 수 없다.

밑동이 거칠고 씀이 사치스러우면 하늘도 가멸게 할 수 없고, 기름이 소략하고 움직임이 드물면 하늘도 온전하게 할 수 없고, 도를 등지고 함부로 행하면 하늘도 길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장마와 가뭄이 이르기도 전에 주리고, 추위와 더위가 닥치기도 전에 앓고, 요사한 괴이함이 이르기도 전에 흉하다.

받은 때는 다스려진 세상과 같은데 재앙은 다스려진 세상과 다르니 하늘을 원망할 수 없다. 그 도가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의 나눔에 밝으면 지극한 사람이라 이를 만하다.

不為而成,不求而得,夫是之謂天職。如是者,雖深、其人不加慮焉;雖大、不加能焉;雖精、不加察焉,夫是之謂不與天爭職。天有其時,地有其財,人有其治,夫是之謂能參。舍其所以參,而願其所參,則惑矣。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구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 무릇 이를 하늘의 직분이라 한다. 이러한 것은 비록 깊어도 그 사람이 헤아림을 더하지 않고, 비록 커도 능함을 더하지 않고, 비록 정밀해도 살핌을 더하지 않으니 무릇 이를 하늘과 직분을 다투지 않는다 한다.

하늘에는 그 때가 있고 땅에는 그 재물이 있고 사람에게는 그 다스림이 있으니 무릇 이를 능히 셋이 된다 한다. 셋이 되는 까닭을 버리고 그 셋 됨을 바라니 헷갈린 것이다.

列星隨旋,日月遞炤,四時代御,陰陽大化,風雨博施,萬物各得其和以生,各得其養以成,不見其事,而見其功,夫是之謂神。皆知其所以成,莫知其無形,夫是之謂天功。唯聖人為不求知天。

벌여 선 별들이 따라 돌고, 해와 달이 갈마들어 비추고, 네 철이 갈마들어 다스리고, 음과 양이 크게 달라지고, 바람과 비가 널리 베풀어져 만물이 저마다 그 어우러짐을 얻어 나고 저마다 그 기름을 얻어 이루어진다. 그 일은 보이지 않고 그 공만 보이니 무릇 이를 신령함이라 한다.

다 그 이루어진 바는 알되 그 꼴 없음은 알지 못하니 무릇 이를 하늘의 공이라 한다. 오직 성인만이 하늘을 알려 하지 않는다.

天職既立,天功既成,形具而神生,好惡喜怒哀樂臧焉,夫是之謂天情。耳目鼻口形能各有接而不相能也,夫是之謂天官。心居中虛,以治五官,夫是之謂天君。財非其類以養其類,夫是之謂天養。順其類者謂之福,逆其類者謂之禍,夫是之謂天政。暗其天君,亂其天官,棄其天養,逆其天政,背其天情,以喪天功,夫是之謂大凶。聖人清其天君,正其天官,備其天養,順其天政,養其天情,以全其天功。如是,則知其所為,知其所不為矣;則天地官而萬物役矣。其行曲治,其養曲適,其生不傷,夫是之謂知天。

하늘의 직분이 이미 서고 하늘의 공이 이미 이루어져 꼴이 갖추어지고 신이 나매, 좋아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함이 거기 깃드니 무릇 이를 하늘의 정이라 한다.

귀와 눈과 코와 입과 몸이 저마다 닿는 바가 있되 서로 대신하지 못하니 무릇 이를 하늘의 벼슬아치라 한다.

마음은 가운데 빈 데 있어 다섯 벼슬아치를 다스리니 무릇 이를 하늘의 임금이라 한다.

제 무리 아닌 것을 마름질하여 제 무리를 기르니 무릇 이를 하늘의 기름이라 한다.

제 무리를 따르는 것을 복이라 하고 제 무리를 거스르는 것을 재앙이라 하니 무릇 이를 하늘의 정사라 한다.

그 하늘의 임금을 어둡게 하고, 그 하늘의 벼슬아치를 어지럽히고, 그 하늘의 기름을 버리고, 그 하늘의 정사를 거스르고, 그 하늘의 정을 등져 하늘의 공을 잃으니 무릇 이를 큰 흉함이라 한다.

성인은 그 하늘의 임금을 맑게 하고, 그 하늘의 벼슬아치를 바르게 하고, 그 하늘의 기름을 갖추고, 그 하늘의 정사를 따르고, 그 하늘의 정을 길러 그 하늘의 공을 온전히 한다. 이와 같이 하면 그 할 바를 알고 그 하지 않을 바를 아니, 하늘과 땅이 벼슬아치가 되고 만물이 부림을 받는다. 그 행함이 두루 다스려지고 그 기름이 두루 알맞고 그 삶이 다치지 않으니 무릇 이를 하늘을 안다 한다.

故大巧在所不為,大智在所不慮。所志於天者,已其見象之可以期者矣;所志於地者,已其見宜之可以息者矣:所志於四時者,已其見數之可以事者矣;所志於陰陽者,已其見和之可以治者矣。官人守天,而自為守道也。

그러므로 큰 공교로움은 하지 않는 데 있고 큰 슬기는 헤아리지 않는 데 있다.

하늘에 대하여 뜻을 두는 것은 그 드러난 조짐 가운데 기약할 만한 것에 그치고, 땅에 대하여 뜻을 두는 것은 그 드러난 마땅함 가운데 자라게 할 만한 것에 그치고, 네 철에 대하여 뜻을 두는 것은 그 드러난 셈 가운데 일삼을 만한 것에 그치고, 음과 양에 대하여 뜻을 두는 것은 그 드러난 어우러짐 가운데 다스릴 만한 것에 그친다.

벼슬아치는 하늘의 일을 지키고 나는 스스로 도를 지킬 뿐이다.

治亂,天邪?曰:日月星辰瑞厤,是禹桀之所同也,禹以治,桀以亂;治亂非天也。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하늘 때문인가. 말하기를, 해와 달과 별과 책력은 우임금과 걸이 같은 바인데 우임금은 다스렸고 걸은 어지럽혔다.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하늘이 아니다.

時邪?曰:繁啟蕃長於春夏,畜積收臧於秋冬,是禹桀之所同也,禹以治,桀以亂;治亂非時也。

때 때문인가. 말하기를, 봄과 여름에 무성히 트고 자라며 가을과 겨울에 쌓아 거두는 것은 우임금과 걸이 같은 바인데 우임금은 다스렸고 걸은 어지럽혔다.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때가 아니다.

地邪?曰:得地則生,失地則死,是又禹桀之所同也,禹以治,桀以亂;治亂非地也。詩曰:「天作高山,大王荒之。彼作矣,文王康之。」此之謂也。

땅 때문인가. 말하기를, 땅을 얻으면 살고 땅을 잃으면 죽는 것은 또한 우임금과 걸이 같은 바인데 우임금은 다스렸고 걸은 어지럽혔다.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땅이 아니다. 「시」에 이르기를 「하늘이 높은 산을 지으니 태왕이 이를 열었네. 저이가 지으매 문왕이 이를 편안히 하였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天不為人之惡寒也輟冬,地不為人之惡遼遠也輟廣,君子不為小人之匈匈也輟行。天有常道矣,地有常數矣,君子有常體矣。君子道其常,而小人計其功。詩曰:「禮義之不愆,何恤人之言兮!」此之謂也。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미워한다고 겨울을 그만두지 않고, 땅은 사람이 멀고 아득함을 미워한다고 넓음을 그만두지 않고, 군자는 소인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행함을 그만두지 않는다. 하늘에 떳떳한 도가 있고 땅에 떳떳한 셈이 있고 군자에게 떳떳한 몸이 있다. 군자는 그 떳떳함을 말하고 소인은 그 공을 셈한다. 「시」에 이르기를 「예와 옳음에 어그러지지 않으니 남의 말을 어찌 근심하랴」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楚王後車千乘,非知也;君子啜菽飲水,非愚也;是節然也。若夫志意脩,德行厚,知慮明,生於今而志乎古,則是其在我者也。故君子敬其在己者,而不慕其在天者;小人錯其在己者,而慕其在天者。君子敬其在己者,而不慕其在天者,是以日進也;小人錯其在己者,而慕其在天者,是以日退也。故君子之所以日進,與小人之所以日退,一也。君子小人之所以相縣者,在此耳。

초나라 왕이 뒤따르는 수레가 천 채인 것은 슬기로워서가 아니요, 군자가 콩을 씹고 물을 마시는 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이는 형편이 그러한 것이다.

무릇 뜻이 닦이고 덕과 행실이 두텁고 슬기와 생각이 밝아 지금 나서 옛것에 뜻을 두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제게 있는 것을 공경하고 하늘에 있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소인은 제게 있는 것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것을 부러워한다. 군자는 제게 있는 것을 공경하고 하늘에 있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으므로 날로 나아가고, 소인은 제게 있는 것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것을 부러워하므로 날로 물러간다. 그러므로 군자가 날로 나아가는 까닭과 소인이 날로 물러가는 까닭은 하나다. 군자와 소인이 서로 벌어지는 까닭이 여기 있을 뿐이다.

星隊木鳴,國人皆恐。曰:是何也?曰:無何也!是天地之變,陰陽之化,物之罕至者也。怪之,可也;而畏之,非也。夫日月之有蝕,風雨之不時,怪星之黨見,是無世而不常有之。上明而政平,則是雖並世起,無傷也;上闇而政險,則是雖無一至者,無益也。夫星之隊,木之鳴,是天地之變,陰陽之化,物之罕至者也;怪之,可也;而畏之,非也。

별이 떨어지고 나무가 우니 나라 사람이 다 두려워한다. 말하기를, 이는 무엇인가. 말하기를, 아무것도 아니다. 이는 하늘과 땅의 달라짐이요 음과 양의 바뀜이요 물건 가운데 드물게 이르는 것이다.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괜찮으나 두려워하는 것은 그르다.

무릇 해와 달이 먹히고 바람과 비가 때에 맞지 않고 괴이한 별이 무리 지어 나타나는 것은 어느 세상에나 늘 있지 않은 적이 없다. 위가 밝고 정사가 고르면 이것이 비록 한 세상에 아울러 일어나도 다칠 것이 없고, 위가 어둡고 정사가 험하면 이것이 비록 하나도 이르지 않아도 보탬이 없다.

무릇 별이 떨어지고 나무가 우는 것은 하늘과 땅의 달라짐이요 음과 양의 바뀜이요 물건 가운데 드물게 이르는 것이다.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괜찮으나 두려워하는 것은 그르다.

物之已至者,人祆則可畏也:楛耕傷稼,楛耨失歲,政險失民;田薉稼惡,糴貴民飢,道路有死人:夫是之謂人祆。政令不明,舉錯不時,本事不理,勉力不時,則牛馬相生,六畜作祆:夫是之謂人祆。禮義不脩,內外無別,男女淫亂,則父子相疑,上下乖離,寇難並至:夫是之謂人祆。祆是生於亂。三者錯,無安國。其說甚爾,其菑甚慘。勉力不時,則牛馬相生,六畜作祆,可怪也,而亦可畏也。傳曰:「萬物之怪書不說。」無用之辯,不急之察,棄而不治。若夫君臣之義,父子之親,夫婦之別,則日切瑳而不舍也。

물건 가운데 이미 이른 것으로는 사람의 요사함이 두려워할 만하다.

거칠게 갈아 곡식을 다치고, 거칠게 김매어 해를 놓치고, 정사가 험하여 백성을 잃고, 밭이 거칠고 곡식이 나쁘고, 쌀값이 비싸 백성이 주리고, 길에 죽은 사람이 있는 것 — 무릇 이를 사람의 요사함이라 한다.

정사와 명이 밝지 않고, 일을 벌임이 때에 맞지 않고, 밑동 되는 일이 다스려지지 않고, 힘씀이 때에 맞지 않아 소와 말이 서로 낳고 여섯 가축이 요사한 짓을 하는 것 — 무릇 이를 사람의 요사함이라 한다.

예와 옳음이 닦이지 않고, 안과 밖에 갈림이 없고, 사내와 여자가 넘쳐 어지러워 아비와 아들이 서로 의심하고 위아래가 어그러져 갈라지고 도적과 어려움이 아울러 이르는 것 — 무릇 이를 사람의 요사함이라 한다.

요사함은 어지러움에서 난다. 이 셋이 뒤섞이면 편안한 나라가 없다. 그 말은 매우 가깝고 그 재앙은 매우 참혹하다. 힘씀이 때에 맞지 않아 소와 말이 서로 낳고 여섯 가축이 요사한 짓을 하는 것은 괴이하게 여길 만하고 또한 두려워할 만하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만물의 괴이함을 글은 말하지 않는다」 하였다. 쓸모없는 따짐과 급하지 않은 살핌은 버리고 다스리지 않는다. 무릇 임금과 신하의 옳음, 아비와 아들의 친함, 지아비와 지어미의 갈림이라면 날로 갈고 닦아 놓지 않는다.

雩而雨,何也?曰:無何也,猶不雩而雨也。日月食而救之,天旱而雩,卜筮然後決大事,非以為得求也,以文之也。故君子以為文,而百姓以為神。以為文則吉,以為神則凶也。

비를 빌면 비가 오는 것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아무것도 아니다. 빌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과 같다.

해와 달이 먹히면 구하고, 하늘이 가물면 비를 빌고, 점을 친 뒤에 큰일을 결정하는 것은 구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꾸미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것을 꾸밈으로 여기고 백성은 그것을 신령함으로 여긴다. 꾸밈으로 여기면 길하고 신령함으로 여기면 흉하다.

在天者莫明於日月,在地者莫明於水火,在物者莫明於珠玉,在人者莫明於禮義。故日月不高,則光明不赫;水火不積,則暉潤不博;珠玉不睹乎外,則王公不以為寶;禮義不加於國家,則功名不白。故人之命在天,國之命在禮。君人者,隆禮尊賢而王,重法愛民而霸,好利多詐而危,權謀傾覆幽險而亡矣。

하늘에 있는 것으로 해와 달보다 밝은 것이 없고, 땅에 있는 것으로 물과 불보다 밝은 것이 없고, 물건에 있는 것으로 구슬과 옥보다 밝은 것이 없고,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 예와 옳음보다 밝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높지 않으면 빛이 빛나지 않고, 물과 불이 쌓이지 않으면 빛과 윤이 넓지 않고, 구슬과 옥이 밖으로 보이지 않으면 왕공이 보배로 여기지 않고, 예와 옳음이 나라와 집에 더해지지 않으면 공과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있고 나라의 운명은 예에 있다. 사람을 다스리는 이가 예를 높이고 어진 이를 높이면 왕 노릇 하고, 법을 무겁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면 으뜸이 되고, 이로움을 좋아하고 속임이 많으면 위태롭고, 권세와 꾀로 뒤엎고 그윽이 음험하면 없어진다.

大天而思之,孰與物畜而制之!從天而頌之,孰與制天命而用之!望時而待之,孰與應時而使之!因物而多之,孰與騁能而化之!思物而物之,孰與理物而勿失之也!願於物之所以生,孰與有物之所以成!故錯人而思天,則失萬物之情。

하늘을 크게 여겨 생각하는 것이 어찌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는 것만 하겠는가. 하늘을 좇아 기리는 것이 어찌 하늘의 명을 마름질하여 쓰는 것만 하겠는가. 때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 어찌 때에 응하여 부리는 것만 하겠는가. 물건을 따라 많게 하는 것이 어찌 능함을 달려 달라지게 하는 것만 하겠는가. 물건을 생각하여 물건으로 삼는 것이 어찌 물건을 다스려 잃지 않는 것만 하겠는가. 물건이 나는 까닭을 바라는 것이 어찌 물건이 이루어지는 까닭을 가지는 것만 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을 버려 두고 하늘을 생각하면 만물의 정을 잃는다.

百王之無變,足以為道貫。一廢一起,應之以貫,理貫不亂。不知貫,不知應變。貫之大體未嘗亡也。亂生其差,治盡其詳。故道之所善,中則可從,畸則不可為,匿則大惑。水行者表深,表不明則陷。治民者表道,表不明則亂。禮者,表也。非禮,昏世也;昏世,大亂也。故道無不明,外內異表,隱顯有常,民陷乃去。

온갖 임금이 바꾸지 않은 것이 도를 꿰는 벼리가 될 만하다. 한 번 무너지고 한 번 일어나되 꿰는 것으로 응하면 꿰는 이치가 어지럽지 않다. 꿰는 것을 알지 못하면 달라짐에 응할 줄 모른다. 꿰는 것의 큰 몸은 일찍이 없어진 적이 없다. 어지러움은 그 어긋남에서 나고 다스림은 그 자세함을 다한다.

그러므로 도가 좋다 하는 바가, 알맞으면 좇을 만하고 치우치면 할 수 없고 숨으면 크게 헷갈린다.

물을 건너는 이는 깊이를 표하니 표가 밝지 않으면 빠진다.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도를 표하니 표가 밝지 않으면 어지럽다. 예란 표다. 예가 아니면 어두운 세상이요 어두운 세상은 큰 어지러움이다.

그러므로 도가 밝지 않은 데가 없고 밖과 안의 표가 다르고 숨음과 드러남에 떳떳함이 있으면 백성이 빠지는 일이 이에 없어진다.

萬物為道一偏,一物為萬物一偏。愚者為一物一偏,而自以為知道,無知也。慎子有見於後,無見於先。老子有見於詘,無見於信。墨子有見於齊,無見於畸。宋子有見於少,無見於多。有後而無先,則群眾無門。有詘而無信,則貴賤不分。有齊而無畸,則政令不施,有少而無多,則群眾不化。書曰:「無有作好,遵王之道;無有作惡,遵王之路。」此之謂也。

만물은 도의 한쪽이요 한 물건은 만물의 한쪽이다. 어리석은 이는 한 물건의 한쪽을 하고서 스스로 도를 안다 하니 앎이 없는 것이다.

신자(慎子)는 뒤를 보는 눈은 있었으나 앞을 보는 눈이 없었고, 노자는 굽힘을 보는 눈은 있었으나 폄을 보는 눈이 없었고, 묵자는 가지런함을 보는 눈은 있었으나 치우침을 보는 눈이 없었고, 송자(宋子)는 적음을 보는 눈은 있었으나 많음을 보는 눈이 없었다.

뒤만 있고 앞이 없으면 뭇 사람에게 문이 없고, 굽힘만 있고 폄이 없으면 귀하고 천함이 갈리지 않고, 가지런함만 있고 치우침이 없으면 정사와 명이 베풀어지지 않고, 적음만 있고 많음이 없으면 뭇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

「서」에 이르기를 「좋아함을 지어내지 말고 임금의 도를 따르라. 미워함을 지어내지 말고 임금의 길을 따르라」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