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篇
世俗之為說者曰:「主道利周。」
세속에 말하는 이가 말한다. 「임금의 도는 두루 감추는 것이 이롭다.」
是不然。主者、民之唱也,上者、下之儀也。彼將聽唱而應,視儀而動;唱默則民無應也,儀隱則下無動也;不應不動,則上下無以相有也。若是,則與無上同也!不祥莫大焉。故上者、下之本也。上宣明,則下治辨矣;上端誠,則下愿愨矣;上公正,則下易直矣。治辨則易一,愿愨則易使,易直則易知。易一則彊,易使則功,易知則明,是治之所由生也。上周密,則下疑玄矣;上幽險,則下漸詐矣;上偏曲,則下比周矣。疑玄則難一,漸詐則難使,比周則難知。難一則不彊,難使則不功,難知則不明,是亂之所由作也。故主道利明不利幽,利宣不利周。故主道明則下安,主道幽則下危。故下安則貴上,下危則賤上。故上易知,則下親上矣;上難知,則下畏上矣。下親上則上安,下畏上則上危。故主道莫惡乎難知,莫危乎使下畏己。傳曰:「惡之者眾則危。」書曰:「克明明德。」詩曰:「明明在下。」故先王明之,豈特玄之耳哉!
이는 그렇지 않다. 임금은 백성이 부르는 소리요 위는 아래의 몸가짐이다. 저들은 장차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응하고 몸가짐을 보고 움직인다. 부르는 소리가 잠잠하면 백성이 응할 것이 없고 몸가짐이 숨으면 아래가 움직일 것이 없다. 응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위아래가 서로 가질 길이 없다. 이와 같으면 위가 없는 것과 같으니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위는 아래의 밑동이다. 위가 펴 밝히면 아래가 다스려지고 가려지며, 위가 바르고 참되면 아래가 삼가고 참되며, 위가 공변되고 바르면 아래가 쉽고 곧다. 다스려지고 가려지면 하나 되기 쉽고, 삼가고 참되면 부리기 쉽고, 쉽고 곧으면 알기 쉽다. 하나 되기 쉬우면 굳세고, 부리기 쉬우면 공이 있고, 알기 쉬우면 밝으니 이것이 다스림이 말미암아 나는 바다.
위가 두루 빽빽이 감추면 아래가 의심하고 아득해지며, 위가 그윽하고 험하면 아래가 차츰 속이며, 위가 치우치고 굽으면 아래가 패거리 짓는다. 의심하고 아득하면 하나 되기 어렵고, 차츰 속이면 부리기 어렵고, 패거리 지으면 알기 어렵다. 하나 되기 어려우면 굳세지 못하고, 부리기 어려우면 공이 없고, 알기 어려우면 밝지 못하니 이것이 어지러움이 말미암아 일어나는 바다.
그러므로 임금의 도는 밝은 것이 이롭고 그윽한 것이 이롭지 않으며, 펴는 것이 이롭고 두루 감추는 것이 이롭지 않다. 그러므로 임금의 도가 밝으면 아래가 편안하고 임금의 도가 그윽하면 아래가 위태롭다. 아래가 편안하면 위를 귀히 여기고 아래가 위태로우면 위를 천히 여긴다. 그러므로 위를 알기 쉬우면 아래가 위를 친히 하고 위를 알기 어려우면 아래가 위를 두려워한다. 아래가 위를 친히 하면 위가 편안하고 아래가 위를 두려워하면 위가 위태롭다.
그러므로 임금의 도는 알기 어려운 것보다 나쁜 것이 없고 아래로 하여금 저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보다 위태로운 것이 없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미워하는 이가 많으면 위태롭다」 하였고, 「서」에 이르기를 「능히 밝은 덕을 밝힌다」 하였고, 「시」에 이르기를 「밝고 밝음이 아래에 있네」 하였다. 그러므로 앞선 임금이 이를 밝혔으니 어찌 다만 아득하게만 하였겠는가.
世俗之為說者曰:「桀紂有天下,湯武篡而奪之。」
세속에 말하는 이가 말한다. 「걸과 주가 천하를 가졌는데 탕임금과 무왕이 빼앗았다.」
是不然。以桀紂為常有天下之籍則然,親有天下之籍則不然,天下謂在桀紂則不然。
이는 그렇지 않다. 걸과 주가 늘 천하의 자리를 가졌다 하면 그렇지만, 몸소 천하의 자리를 가졌다 하면 그렇지 않고, 천하가 걸과 주에게 있었다 하면 그렇지 않다.
古者天子千官,諸侯百官。以是千官也,令行於諸夏之國,謂之王。以是百官也,令行於境內,國雖不安,不至於廢易遂亡,謂之君。聖王之子也,有天下之後也,埶籍之所在也,天下之宗室也,然而不材不中,內則百姓疾之,外則諸侯叛之,近者境內不一,遙者諸侯不聽,令不行於境內,甚者諸侯侵削之,攻伐之。若是,則雖未亡,吾謂之無天下矣。聖王沒,有埶籍者罷不足以縣天下,天下無君;諸侯有能德明威積,海內之民莫不願得以為君師;然而暴國獨侈,安能誅之,必不傷害無罪之民,誅暴國之君,若誅獨夫。若是,則可謂能用天下矣。能用天下之謂王。湯武非取天下也,脩其道,行其義,興天下之同利,除天下之同害,而天下歸之也。桀紂非去天下也,反禹湯之德,亂禮義之分,禽獸之行,積其凶,全其惡,而天下去之也。天下歸之之謂王,天下去之之謂亡。故桀紂無天下,湯武不弒君,由此效之也。湯武者,民之父母也;桀紂者、民之怨賊也。今世俗之為說者,以桀紂為君,而以湯武為弒,然則是誅民之父母,而師民之怨賊也,不祥莫大焉。以天下之合為君,則天下未嘗合於桀紂也。然則以湯武為弒,則天下未嘗有說也,直墮之耳。
옛적에 천자에게 천 벼슬이 있고 제후에게 백 벼슬이 있었다. 이 천 벼슬로 명이 여러 중원의 나라에 행해지면 그를 왕이라 하고, 이 백 벼슬로 명이 지경 안에 행해져 나라가 비록 편안하지 않아도 폐하여 갈리고 마침내 없어지는 데 이르지 않으면 그를 임금이라 한다.
거룩한 왕의 아들이요 천하를 가진 이의 뒤요 형세와 자리가 있는 데요 천하의 종실인데, 재목이 못 되고 맞지 않아 안으로는 백성이 미워하고 밖으로는 제후가 저버리며, 가까이는 지경 안이 하나 되지 않고 멀리는 제후가 듣지 않고 명이 지경 안에 행해지지 않으며 심하면 제후가 침노하여 깎고 쳐서 친다. 이와 같으면 비록 아직 없어지지 않았어도 나는 천하가 없다 하겠다.
거룩한 왕이 죽고 형세와 자리를 가진 이가 못나서 천하를 달 수 없으면 천하에 임금이 없는 것이다. 제후 가운데 능히 덕이 밝고 위엄이 쌓인 이가 있어 바다 안 백성이 아무도 얻어 임금과 스승 삼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는데, 사나운 나라가 홀로 넘치면 어찌 능히 그를 베지 않겠는가. 반드시 죄 없는 백성을 다쳐 해치지 않고 사나운 나라의 임금을 베기를 외로운 사내 베듯 한다. 이와 같으면 능히 천하를 쓴다 할 만하다. 능히 천하를 씀을 왕이라 한다.
탕임금과 무왕은 천하를 취한 것이 아니라 그 도를 닦고 그 옳음을 행하여 천하가 같이 이로운 것을 일으키고 천하가 같이 해로운 것을 없애매 천하가 그에게 돌아온 것이다. 걸과 주는 천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우임금과 탕임금의 덕을 거스르고 예와 옳음의 갈래를 어지럽히고 새와 짐승의 행실을 하여 그 흉함을 쌓고 그 악함을 온전히 하매 천하가 그를 떠난 것이다. 천하가 그에게 돌아옴을 왕이라 하고 천하가 그를 떠남을 없어짐이라 한다.
그러므로 걸과 주에게 천하가 없었고 탕임금과 무왕이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님을 이로써 밝힌다. 탕임금과 무왕은 백성의 어버이요 걸과 주는 백성이 원망하는 도적이다. 이제 세속에 말하는 이가 걸과 주를 임금으로 삼고 탕임금과 무왕을 죽였다 하니, 그러면 이는 백성의 어버이를 베고 백성이 원망하는 도적을 스승 삼는 것이라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천하의 합함으로 임금을 삼는다면 천하가 일찍이 걸과 주에게 합한 적이 없다. 그러면 탕임금과 무왕을 죽였다 함은 천하에 일찍이 그런 말이 있은 적이 없으니 다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일 뿐이다.
故天子唯其人。天下者,至重也,非至彊莫之能任;至大也,非至辨莫之能分;至眾也,非至明莫之能和。此三至者,非聖人莫之能盡。故非聖人莫之能王。聖人備道全美者也,是縣天下之權稱也。桀紂者、其志慮至險也,其志意至闇也,其行為至亂也;親者疏之,賢者賤之,生民怨之。禹湯之後也,而不得一人之與;刳比干,囚箕子,身死國亡,為天下之大僇,後世之言惡者必稽焉,是不容妻子之數也。故至賢疇四海,湯武是也;至罷不能容妻子,桀紂是也。今世俗之為說者,以桀紂為有天下,而臣湯武,豈不過甚矣哉!譬之,是猶傴巫跛匡大自以為有知也。
그러므로 천자는 오직 그 사람이라야 한다. 천하란 지극히 무거우니 지극히 굳센 이가 아니면 아무도 맡지 못하고, 지극히 크니 지극히 가리는 이가 아니면 아무도 나누지 못하고, 지극히 많으니 지극히 밝은 이가 아니면 아무도 화하게 하지 못한다. 이 세 지극함은 성인이 아니면 아무도 다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아니면 아무도 왕 노릇 하지 못한다. 성인은 도를 갖추고 아름다움을 온전히 한 이니 천하를 다는 저울이다.
걸과 주는 그 뜻과 헤아림이 지극히 험하고 그 뜻이 지극히 어둡고 그 행함이 지극히 어지러워, 친한 이가 멀리하고 어진 이가 천히 여기고 사는 백성이 원망하였다. 우임금과 탕임금의 뒤인데도 한 사람의 함께함도 얻지 못하였다. 비간을 가르고 기자를 가두어 몸이 죽고 나라가 없어져 천하의 큰 웃음거리가 되었고, 뒷세상이 악함을 말하면 반드시 여기를 상고한다. 이는 아내와 자식도 담지 못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어질면 사해를 밭 삼으니 탕임금과 무왕이 이들이요, 지극히 못나면 아내와 자식도 담지 못하니 걸과 주가 이들이다. 이제 세속에 말하는 이가 걸과 주가 천하를 가졌다 하고 탕임금과 무왕을 신하로 삼으니 어찌 지나침이 심하지 않은가. 비유하면 이는 곱사등이 무당과 절름발이가 크게 스스로 앎이 있다 여기는 것과 같다.
故可以有奪人國,不可以有奪人天下;可以有竊國,不可以有竊天下也。可以奪之者可以有國,而不可以有天下;竊可以得國,而不可以得天下。是何也?曰:國、小具也,可以小人有也,可以小道得也,可以小力持也;天下者、大具也,不可以小人有也,不可以小道得也,不可以小力持也。國者、小人可以有之,然而未必不亡也;天下者,至大也,非聖人莫之能有也。
그러므로 남의 나라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남의 천하를 빼앗을 수는 없고, 나라를 훔칠 수는 있어도 천하를 훔칠 수는 없다. 빼앗을 수 있는 이는 나라를 가질 수 있어도 천하를 가질 수 없고, 훔쳐서 나라를 얻을 수는 있어도 천하를 얻을 수는 없다.
이는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나라는 작은 갖춤이라 소인이 가질 수 있고 작은 도로 얻을 수 있고 작은 힘으로 지닐 수 있으나, 천하는 큰 갖춤이라 소인이 가질 수 없고 작은 도로 얻을 수 없고 작은 힘으로 지닐 수 없다. 나라는 소인이 가질 수 있으나 반드시 없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요, 천하는 지극히 크니 성인이 아니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
世俗之為說者曰:「治古無肉刑,而有象刑:墨黥,慅嬰,共、艾畢,剕、枲屨,殺、赭衣而不純。治古如是。」
세속에 말하는 이가 말한다. 「옛 다스려진 세상에는 살을 베는 형벌이 없고 본뜬 형벌이 있었다. 이마에 자자하는 형벌은 검은 두건으로, 코 베는 형벌은 풀로 짠 갓끈으로, 궁형은 쑥빛 무릎덮개로, 발 베는 형벌은 삼신으로, 죽이는 형벌은 붉은 옷에 선을 두르지 않는 것으로 하였다. 옛 다스려진 세상이 이러하였다.」
是不然。以為治邪?則人固莫觸罪,非獨不用肉刑,亦不用象刑矣。以為人或觸罪矣,而直輕其刑,然則是殺人者不死,傷人者不刑也。罪至重而刑至輕,庸人不知惡矣,亂莫大焉。凡刑人之本,禁暴惡惡,且懲其未也。殺人者不死,而傷人者不刑,是謂惠暴而寬賊也,非惡惡也。故象刑殆非生於治古,並起於亂今也。
이는 그렇지 않다. 다스려졌다 여긴다면 사람이 본디 아무도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니 살을 베는 형벌을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본뜬 형벌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혹 죄를 지었는데 다만 그 형벌을 가벼이 하였다면, 이는 사람을 죽인 이가 죽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한 이가 형벌받지 않는 것이다. 죄가 지극히 무거운데 형벌이 지극히 가벼우면 어지간한 사람이 나쁜 줄 모르게 되니 어지러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무릇 사람을 형벌하는 밑동은 사나움을 금하고 악함을 미워하며 또 그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 이가 죽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한 이가 형벌받지 않으면 이는 사나운 이에게 은혜롭고 도적에게 너그러운 것이라 악함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뜬 형벌은 아마 옛 다스려진 세상에서 난 것이 아니라 어지러운 지금에 아울러 일어난 것이다.
治古不然。凡爵列、官職、賞慶、刑罰,皆報也,以類相從者也。一物失稱,亂之端也。夫德不稱位,能不稱官,賞不當功,罰不當罪,不祥莫大焉。昔者武王伐有商,誅紂,斷其首,縣之赤旆。夫征暴誅悍,治之盛也。殺人者死,傷人者刑,是百王之所同也,未有知其所由來者也。
옛 다스려진 세상은 그렇지 않다. 무릇 벼슬의 차례와 벼슬자리와 기림과 상과 형벌은 다 갚음이니 갈래로 서로 좇는 것이다. 한 가지 물건이 걸맞음을 잃으면 어지러움의 실마리다. 무릇 덕이 자리에 걸맞지 않고 능함이 벼슬에 걸맞지 않고 상이 공에 마땅하지 않고 벌이 죄에 마땅하지 않으면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옛적에 무왕이 상나라를 치고 주를 베어 그 머리를 잘라 붉은 기에 달았다. 무릇 사나운 이를 치고 사나운 이를 베는 것은 다스림의 성함이다. 사람을 죽인 이가 죽고 사람을 다치게 한 이가 형벌받는 것은 온갖 왕이 같이한 바요 그 말미암아 온 바를 아는 이가 있지 않다.
刑稱罪,則治;不稱罪,則亂。故治則刑重,亂則刑輕,犯治之罪固重,犯亂之罪固輕也。書曰:「刑罰世輕世重。」此之謂也。
형벌이 죄에 걸맞으면 다스려지고 죄에 걸맞지 않으면 어지럽다. 그러므로 다스려지면 형벌이 무겁고 어지러우면 형벌이 가벼우니, 다스려진 세상에서 범한 죄는 본디 무겁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범한 죄는 본디 가볍기 때문이다. 「서」에 이르기를 「형벌은 세상에 따라 가볍고 세상에 따라 무겁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世俗之為說者曰:「湯武不善禁令。」曰:「是何也?」曰:「楚越不受制。」
세속에 말하는 이가 말한다. 「탕임금과 무왕은 금하고 명함을 잘하지 못하였다.」 「이는 어째서인가.」 「초나라와 월나라가 마름질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是不然。湯武者、至天下之善禁令者也。湯居亳,武王居鄗,皆百里之地也,天下為一,諸侯為臣,通達之屬,莫不振動從服以化順之,曷為楚越獨不受制也!
이는 그렇지 않다. 탕임금과 무왕은 천하에 지극히 금하고 명함을 잘한 이다. 탕임금은 박에 살고 무왕은 호에 살았으니 다 백 리 땅이었는데, 천하가 하나 되고 제후가 신하가 되어 통하는 무리가 떨쳐 움직여 좇아 굴복하고 감화되어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찌 초나라와 월나라만 홀로 마름질을 받지 않았겠는가.
彼王者之制也,視形埶而制械用,稱遠邇而等貢獻,豈必齊哉!故魯人以榶,衛人用柯,齊人用一革,土地刑制不同者,械用、備飾不可不異也。故諸夏之國同服同儀,蠻、夷、戎、狄之國同服不同制。封內甸服,封外侯服,侯衛賓服,蠻夷要服,戎狄荒服。甸服者祭,侯服者祀,賓服者享,要服者貢,荒服者終王。日祭、月祀、時享、歲貢、終王,夫是之謂視形埶而制械用,稱遠近而等貢獻;是王者之制也。
저 왕 노릇 하는 이의 제도는 꼴과 형세를 보아 기물과 쓰임을 마름질하고 멀고 가까움에 걸맞게 바치는 것을 등급 지으니 어찌 반드시 가지런하겠는가. 그러므로 노나라 사람은 당(榶)을 쓰고 위나라 사람은 가(柯)를 쓰고 제나라 사람은 한 가죽을 쓰니, 땅과 꼴과 제도가 같지 않은 것은 기물과 쓰임과 갖추어 꾸밈이 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중원의 나라는 옷을 같이하고 몸가짐을 같이하며, 만·이·융·적의 나라는 옷을 같이하되 제도를 같이하지 않는다. 봉한 안은 전복(甸服)이요 봉한 밖은 후복(侯服)이요 후와 위는 빈복(賓服)이요 만과 이는 요복(要服)이요 융과 적은 황복(荒服)이다. 전복은 날마다 제사하고 후복은 달마다 제사하고 빈복은 철마다 바치고 요복은 해마다 바치고 황복은 왕이 갈릴 때 한 번 온다. 날마다 제사하고 달마다 제사하고 철마다 바치고 해마다 바치고 왕이 갈릴 때 오는 것, 무릇 이를 꼴과 형세를 보아 기물과 쓰임을 마름질하고 멀고 가까움에 걸맞게 바치는 것을 등급 짓는다 하니 이것이 왕 노릇 하는 이의 제도다.
彼楚越者,且時享、歲貢,終王之屬也,必齊之日祭月祀之屬,然後曰受制邪?是規磨之說也。溝中之瘠也,則未足與及王者之制也。語曰:「淺不足與測深,愚不足與謀智,坎井之蛙,不可與語東海之樂。」此之謂也。
저 초나라와 월나라는 또한 철마다 바치고 해마다 바치고 왕이 갈릴 때 오는 무리인데, 반드시 날마다 제사하고 달마다 제사하는 무리와 가지런히 한 뒤에야 마름질을 받았다 하겠는가. 이는 그림쇠로 갈아 맞추려는 말이다. 도랑 속의 여윈 이는 아직 왕 노릇 하는 이의 제도에 미쳐 함께할 수 없다. 말에 이르기를 「얕은 이와 깊은 것을 잴 수 없고, 어리석은 이와 슬기로움을 꾀할 수 없으며, 구덩이 우물의 개구리와 동해의 즐거움을 말할 수 없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世俗之為說者曰:「堯舜擅讓。」
세속에 말하는 이가 말한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제멋대로 물려주었다.」
是不然。天子者,埶位至尊,無敵於天下,夫有誰與讓矣?道德純備,智惠甚明,南面而聽天下,生民之屬莫不震動從服以化順之。天下無隱士,無遺善,同焉者是也,異焉者非也。夫有惡擅天下矣。
이는 그렇지 않다. 천자는 형세와 자리가 지극히 높아 천하에 맞설 이가 없으니 무릇 누구에게 물려주겠는가. 도와 덕이 순수히 갖추어지고 슬기와 은혜가 매우 밝아 남면하여 천하를 들으매 사는 백성의 무리가 떨쳐 움직여 좇아 굴복하고 감화되어 따르지 않는 이가 없다. 천하에 숨은 선비가 없고 빠뜨린 착함이 없어 그와 같은 이가 옳고 그와 다른 이가 그르다. 무릇 어찌 천하를 제멋대로 물려줌이 있겠는가.
曰:「死而擅之。」
말하기를, 「죽으면서 물려준 것이다」 한다.
是又不然。聖王在上,決德而定次,量能而授官,皆使民載其事而各得其宜。不能以義制利,不能以偽飾性,則兼以為民。聖王已沒,天下無聖,則固莫足以擅天下矣。天下有聖,而在後子者,則天下不離,朝不易位,國不更制,天下厭然,與鄉無以異也;以堯繼堯,夫又何變之有矣!聖不在後子而在三公,則天下如歸,猶復而振之矣。天下厭然,與鄉無以異也;以堯繼堯,夫又何變之有矣!唯其徙朝改制為難。故天子生則天下一隆,致順而治,論德而定次,死則能任天下者必有之矣。夫禮義之分盡矣,擅讓惡用矣哉!
이 또한 그렇지 않다. 거룩한 왕이 위에 있어 덕을 끊어 차례를 정하고 능함을 헤아려 벼슬을 주어, 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 일을 지고 저마다 마땅함을 얻게 한다. 옳음으로 이로움을 마름질하지 못하고 인위로 성품을 꾸미지 못하는 이는 아울러 백성으로 삼는다.
거룩한 왕이 이미 죽고 천하에 성인이 없으면 본디 아무도 천하를 제멋대로 물려줄 수 없다. 천하에 성인이 있어 뒤의 아들에게 있으면 천하가 떠나지 않고 조정이 자리를 바꾸지 않고 나라가 제도를 고치지 않아 천하가 넉넉히 지난날과 다를 것이 없다. 요임금으로 요임금을 잇는 것이니 무릇 또 무슨 달라짐이 있겠는가.
성인이 뒤의 아들에게 있지 않고 삼공에게 있으면 천하가 돌아가듯 하여 오히려 되돌려 떨칠 뿐이다. 천하가 넉넉히 지난날과 다를 것이 없다. 요임금으로 요임금을 잇는 것이니 무릇 또 무슨 달라짐이 있겠는가. 오직 조정을 옮기고 제도를 고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그러므로 천자가 살아서는 천하가 하나로 높이고 따름을 이루어 다스려지며 덕을 논하여 차례를 정하고, 죽으면 능히 천하를 맡을 이가 반드시 있다. 무릇 예와 옳음의 갈래가 다한 것이니 제멋대로 물려줌을 어디에 쓰겠는가.
曰:「老衰而擅。」
말하기를, 「늙고 쇠하여 물려준 것이다」 한다.
是又不然。血氣筋力則有衰,若夫智慮取舍則無衰。
이 또한 그렇지 않다. 피와 기운과 힘줄과 힘은 쇠함이 있으나 저 슬기와 헤아림과 취하고 버림은 쇠함이 없다.
曰:「老者不堪其勞而休也。」
말하기를, 「늙은 이가 그 수고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쉰 것이다」 한다.
是又畏事者之議也。天子者埶至重而形至佚,心至愉而志無所詘,而形不為勞,尊無上矣。衣被則服五采,雜間色,重文繡,加飾之以珠玉;食飲則重大牢而備珍怪,期臭味,曼而饋,伐皋而食,雍而徹乎五祀,執薦者百餘人,侍西房;居則設張容,負依而坐,諸侯趨走乎堂下;出戶而巫覡有事,出門而宗祝有事,乘大路趨越席以養安,側載睪芷以養鼻,前有錯衡以養目,和鸞之聲,步中武象,趨中韶護以養耳,三公奉軶、持納,諸侯持輪、挾輿、先馬,大侯編後,大夫次之,小侯元士次之,庶士介而夾道,庶人隱竄,莫敢視望。居如大神,動如天帝。持老養衰,猶有善於是者與?不老者、休也,休猶有安樂恬愉如是者乎?故曰:諸侯有老,天子無老。
이 또한 일을 두려워하는 이의 의논이다. 천자는 형세가 지극히 무겁고 몸이 지극히 편안하며, 마음이 지극히 즐겁고 뜻이 굽히는 바가 없으며, 몸이 수고롭지 않고 높기가 위가 없다.
입는 것은 다섯 빛깔을 입고 사이 빛깔을 섞고 무늬와 수를 겹치고 구슬과 옥으로 더 꾸민다. 먹는 것은 큰 희생을 겹치고 진귀한 것을 갖추어 냄새와 맛을 기약하고, 느릿느릿 올리고 북을 쳐서 먹으며, 화한 음악으로 물리고 다섯 제사에 올린다. 올리는 것을 잡은 이가 백여 명이 서쪽 방에서 모신다.
머물 때는 휘장을 치고 병풍을 등지고 앉으매 제후가 당 아래로 종종걸음친다. 지게문을 나서면 무당과 박수가 일을 하고 대문을 나서면 종축이 일을 한다. 큰 수레를 타되 부들자리를 밟아 편안함을 기르고, 곁에 향초를 실어 코를 기르고, 앞에 무늬 놓은 멍에가 있어 눈을 기르고, 방울 소리가 걸으면 「무」와 「상」에 맞고 달리면 「소」와 「호」에 맞아 귀를 기른다.
삼공이 멍에를 받들고 고삐를 잡고, 제후가 바퀴를 잡고 수레를 끼고 말 앞에 서며, 큰 후가 뒤에 늘어서고 대부가 그다음이고 작은 후와 원사가 그다음이며, 뭇 선비가 갑옷 입고 길을 끼고 뭇 사람이 숨어 감히 바라보지 못한다. 머물기를 큰 신처럼 하고 움직이기를 하늘 임금처럼 한다.
늙음을 지니고 쇠함을 기르는 데 이보다 좋은 것이 또 있겠는가. 늙지 않은 이가 쉰다 한들 쉬는 데 이처럼 편안하고 즐겁고 태연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제후에게는 늙음이 있어도 천자에게는 늙음이 없다 한다.
有擅國,無擅天下,古今一也。夫曰堯舜擅讓,是虛言也,是淺者之傳,陋者之說也,不知逆順之理,小大、至不至之變者也,未可與及天下之大理者也。
나라를 제멋대로 함은 있어도 천하를 제멋대로 함은 없으니 옛날과 지금이 하나다. 무릇 요임금과 순임금이 제멋대로 물려주었다 함은 헛말이다. 이는 얕은 이가 전한 것이요 좁은 이의 말이니, 거스름과 따름의 이치와 작고 큼과 이르고 이르지 못함의 달라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아직 천하의 큰 이치에 미쳐 함께할 만하지 않다.
世俗之為說者曰:「堯舜不能教化。」是何也?曰:「朱象不化。」
세속에 말하는 이가 말한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가르쳐 달라지게 하지 못하였다.」 「이는 어째서인가.」 「단주와 상이 감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是不然也:堯舜至天下之善教化者也。南面而聽天下,生民之屬莫不振動從服以化順之。然而朱象獨不化,是非堯舜之過,朱象之罪也。堯舜者、天下之英也;朱象者、天下之嵬,一時之瑣也。今世俗之為說者,不怪朱象,而非堯舜,豈不過甚矣哉!夫是之謂嵬說。羿蜂門者、天下之善射者也,不能以撥弓曲矢中微;王梁造父者、天下之善馭者也,不能以辟馬毀輿致遠。堯舜者、天下之善教化者也,不能使嵬瑣化。何世而無嵬?何時而無瑣?自太皞燧人莫不有也。故作者不祥,學者受其殃,非者有慶。詩曰:「下民之孽,匪降自天。噂沓背憎,職競由人。」此之謂也。
이는 그렇지 않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천하에 지극히 가르쳐 달라지게 함을 잘한 이다. 남면하여 천하를 들으매 사는 백성의 무리가 떨쳐 움직여 좇아 굴복하고 감화되어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단주와 상만 홀로 감화되지 않았으니 이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허물이 아니라 단주와 상의 죄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천하의 꽃이요 단주와 상은 천하의 괴상함이요 한때의 자잘함이다. 이제 세속에 말하는 이가 단주와 상을 괴이히 여기지 않고 요임금과 순임금을 그르다 하니 어찌 지나침이 심하지 않은가. 무릇 이를 괴상한 말이라 한다.
예와 봉문은 천하에 활을 잘 쏘는 이나 뒤틀린 활과 굽은 화살로 작은 것을 맞히지 못하고, 왕량과 조보는 천하에 수레를 잘 모는 이나 절뚝이는 말과 헐린 수레로 멀리 이르지 못한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천하에 가르쳐 달라지게 함을 잘한 이나 괴상하고 자잘한 이를 감화시키지는 못한다.
어느 세상엔들 괴상한 이가 없으며 어느 때엔들 자잘한 이가 없겠는가. 태호와 수인 때부터 없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말을 짓는 이는 상서롭지 못하고 배우는 이는 그 재앙을 받고 그르다 하는 이는 기림이 있다. 「시」에 이르기를 「아랫백성의 재앙이 하늘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마주해선 재잘거리고 등지면 미워하니 오로지 다투는 것이 사람에게서 말미암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世俗之為說者曰:「太古薄葬,棺厚三寸,衣衾三領,葬田不妨田,故不掘也;亂今厚葬飾棺,故抇也。」
세속에 말하는 이가 말한다. 「아주 옛적에는 장사를 엷게 하여 널이 세 치 두께요 옷과 이불이 세 벌이며 무덤이 밭을 막지 않았으므로 파헤치지 않았다. 어지러운 지금은 장사를 두터이 하고 널을 꾸미므로 파헤친다.」
是不及知治道,而不察於抇不抇者之所言也。凡人之盜也,必以有為,不以備不足,則以重有餘也。而聖王之生民也,皆使富厚優猶知足,而不得以有餘過度。故盜不竊,賊不刺,狗豕吐菽粟,而農賈皆能以貨財讓。風俗之美,男女自不取於涂,而百姓羞拾遺。故孔子曰:「天下有道,盜其先變乎!」雖珠玉滿體,文繡充棺,黃金充槨,加之以丹矸,重之以曾青,犀象以為樹,琅玕、龍茲、華覲以為實,人猶莫之抇也。是何故也?則求利之詭緩,而犯分之羞大也。
이는 다스리는 도를 알지 못하고 파헤치고 파헤치지 않는 까닭을 살피지 못한 이의 말이다.
무릇 사람이 훔치는 것은 반드시 무엇을 위함이니, 모자란 것을 갖추려 함이 아니면 남는 것을 무겁게 하려 함이다. 그런데 거룩한 왕이 백성을 살림에 다 가멸고 두텁고 넉넉하여 넉넉함을 알게 하되 남는 것으로 도를 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도둑이 훔치지 않고 도적이 찌르지 않으며, 개와 돼지가 콩과 조를 뱉고 농부와 장사꾼이 다 재물로 사양할 수 있었다. 풍속의 아름다움이 사내와 계집이 절로 길에서 주워 가지지 않고 백성이 떨어진 것 줍기를 부끄러워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천하에 도가 있으면 도둑이 그 먼저 달라지리라」 하였다. 비록 구슬과 옥이 몸에 가득하고 무늬와 수가 널에 차고 황금이 덧널에 차며, 단사를 더하고 증청을 겹치고 무소와 코끼리로 나무를 삼고 낭간과 용자와 화근으로 열매를 삼아도 사람이 오히려 아무도 파헤치지 않는다. 이는 무슨 까닭인가. 이로움 구함이 굽고 느슨하며 갈래를 범함의 부끄러움이 크기 때문이다.
夫亂今然後反是。上以無法使,下以無度行;知者不得慮,能者不得治,賢者不得使。若是,則上失天性,下失地利,中失人和。故百事廢,財物詘,而禍亂起。王公則病不足於上,庶人則凍餧羸瘠於下。於是焉桀紂群居,而盜賊擊奪以危上矣。安禽獸行,虎狼貪,故脯巨人而炙嬰兒矣。若是則有何尤抇人之墓,抉人之口而求利矣哉!雖此裸而薶之,猶且必抇也,安得葬薶哉!彼乃將食其肉而齕其骨也。
무릇 어지러운 지금은 이와 거꾸로다. 위는 법 없이 부리고 아래는 도 없이 행한다. 슬기로운 이가 헤아리지 못하고 능한 이가 다스리지 못하고 어진 이가 부림받지 못한다.
이와 같으면 위로 하늘 성품을 잃고 아래로 땅 이로움을 잃고 가운데로 사람 화함을 잃는다. 그러므로 온갖 일이 폐하고 재물이 굽어 재앙과 어지러움이 일어난다. 왕공은 위에서 넉넉하지 못함을 앓고 뭇 사람은 아래에서 얼고 주려 여윈다.
이에 걸과 주가 무리 지어 살고 도적이 쳐서 빼앗아 위를 위태롭게 한다. 새와 짐승의 행실을 편안히 여기고 범과 이리처럼 탐하므로 큰 사람을 포로 뜨고 갓난아이를 구워 먹는다. 이와 같으면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남의 입을 벌려 이로움을 구하는 것을 어찌 허물하겠는가. 비록 벌거벗겨 묻어도 오히려 반드시 파헤치리니 어찌 장사 지내 묻을 수 있겠는가. 저이는 곧 그 살을 먹고 그 뼈를 갉을 것이다.
夫曰:太古薄葬,故不抇也;亂今厚葬,故抇也。是特姦人之誤於亂說,以欺愚者而淖陷之,以偷取利焉。夫是之謂大姦。傳曰:「危人而自安,害人而自利。」此之謂也。
무릇 아주 옛적에는 장사를 엷게 하여 파헤치지 않고 어지러운 지금은 장사를 두터이 하여 파헤친다 함은, 다만 간사한 사람이 어지러운 말에 그르쳐 어리석은 이를 속여 진창에 빠뜨리고 구차히 이로움을 취하는 것이다. 무릇 이를 큰 간사함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남을 위태롭게 하고 저는 편안하며 남을 해치고 저는 이롭게 한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子宋子曰:「明見侮之不辱,使人不鬥。人皆以見侮為辱,故鬥於也;知見侮之為不辱,則不鬥矣。」
자송자가 말하였다.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 욕됨이 아님을 밝히면 사람이 싸우지 않게 된다. 사람이 다 업신여김 받는 것을 욕됨으로 여기므로 싸우니, 업신여김 받는 것이 욕됨이 아님을 알면 싸우지 않는다.」
應之曰:然則以人之情為不惡侮乎?
이에 응하여 말한다. 「그러면 사람의 정이 업신여김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曰:「惡而不辱也。」
말하기를, 「미워하되 욕되지는 않다.」
曰:若是,則必不得所求焉。凡人之鬥也,必以其惡之為說,非以其辱之為故也。今俳優、侏儒、狎徒詈侮而不鬥者,是豈鉅知見侮之為不辱哉。然而不鬥者,不惡故也。今人或入其央瀆,竊其豬彘,則援劍戟而逐之,不避死傷。是豈以喪豬為辱也哉!然而不憚鬥者,惡之故也。雖以見侮為辱也,不惡則不鬥;雖知見侮為不辱,惡之則必鬥。然則鬥與不鬥邪,亡於辱之與不辱也,乃在於惡之與不惡也。夫今子宋子不能解人之惡侮,而務說人以勿辱也,豈不過甚矣哉!金舌弊口,猶將無益也。不知其無益,則不知;知其無益也,直以欺人,則不仁。不仁不知,辱莫大焉。將以為有益於人,則與無益於人也,則得大辱而退耳!說莫病是矣。
말한다. 「이와 같으면 반드시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 무릇 사람이 싸우는 것은 반드시 그 미워함을 까닭으로 삼는 것이지 그 욕됨을 까닭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이제 광대와 난쟁이와 놀이꾼이 꾸짖고 업신여겨도 싸우지 않으니 이 어찌 업신여김 받는 것이 욕됨이 아님을 크게 알아서겠는가. 그런데도 싸우지 않는 것은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이 혹 그 도랑에 들어와 그 돼지를 훔치면 칼과 창을 잡고 쫓으며 죽고 다침을 피하지 않는다. 이 어찌 돼지 잃음을 욕됨으로 여겨서겠는가. 그런데도 싸움을 꺼리지 않는 것은 미워하기 때문이다.
비록 업신여김 받는 것을 욕됨으로 여겨도 미워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고, 비록 업신여김 받는 것이 욕됨이 아님을 알아도 미워하면 반드시 싸운다. 그러면 싸우고 싸우지 않음은 욕되고 욕되지 않음에 있지 않고 곧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음에 있다.
무릇 이제 자송자가 사람이 업신여김을 미워함은 풀지 못하고 사람에게 욕되지 말라고 달래기에 힘쓰니 어찌 지나침이 심하지 않은가. 쇠 혀가 되어 입이 헤지도록 하여도 오히려 이로움이 없을 것이다.
그 이로움 없음을 모르면 슬기롭지 못한 것이요, 그 이로움 없음을 알면서 다만 사람을 속인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다. 어질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하니 욕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장차 사람에게 이로움이 있다 여겼는데 사람에게 이로움이 없으니 큰 욕됨을 얻고 물러날 뿐이다. 말 가운데 이보다 병든 것이 없다.」
子宋子曰:「見侮不辱。」
자송자가 말하였다. 「업신여김을 받아도 욕되지 않다.」
應之曰:凡議必先立隆正,然後可也。無隆正則是非不分,而辨訟不決,故所聞曰:「天下之大隆,是非之封界,分職名象之所起,王制是也。」故凡言議期命是非,以聖王為師。而聖王之分,榮辱是也。
이에 응하여 말한다. 무릇 의논은 반드시 먼저 높은 바름을 세운 뒤에야 된다. 높은 바름이 없으면 옳고 그름이 갈리지 않고 따지고 다툼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들은 바에 이르기를 「천하의 큰 높음이요 옳고 그름의 봉한 지경이요 갈래와 직분과 이름과 꼴이 일어나는 바가 왕의 제도다」 하였다. 그러므로 무릇 말하고 의논하고 옳고 그름을 기약하여 이름 붙이는 데는 거룩한 왕을 스승 삼는다. 그런데 거룩한 왕의 갈래는 영광과 욕됨이 그것이다.
是有兩端矣。有義榮者,有埶榮者;有義辱者,有埶辱者。志意脩,德行厚,知慮明,是榮之由中出者也,夫是之謂義榮。爵列尊,貢祿厚,形埶勝,上為天子諸侯,下為卿相士大夫,是榮之從外至者也,夫是之謂埶榮。流淫汙僈,犯分亂理,驕暴貪利,是辱之由中出者也,夫是之謂義辱。詈侮捽搏,捶笞臏腳,斬斷枯磔,藉靡后縛,是辱之由外至者也,夫是之謂埶辱。是榮辱之兩端也。
여기 두 끝이 있다. 옳음의 영광이 있고 형세의 영광이 있으며, 옳음의 욕됨이 있고 형세의 욕됨이 있다.
뜻이 닦이고 덕과 행실이 두텁고 앎과 헤아림이 밝은 것은 영광이 가운데서 나온 것이니 무릇 이를 옳음의 영광이라 한다. 벼슬의 차례가 높고 바치는 녹이 두텁고 몸의 형세가 나아 위로 천자와 제후가 되고 아래로 경과 재상과 사대부가 되는 것은 영광이 밖에서 이른 것이니 무릇 이를 형세의 영광이라 한다.
흘러 넘치고 더럽고 게으르며 갈래를 범하고 이치를 어지럽히며 교만하고 사납고 이로움을 탐하는 것은 욕됨이 가운데서 나온 것이니 무릇 이를 옳음의 욕됨이라 한다. 꾸짖고 업신여기고 붙들어 치며 매질하고 종지뼈를 빼고 다리를 자르며 베고 끊고 찢어 걸며 밧줄로 묶고 뒤로 결박하는 것은 욕됨이 밖에서 이른 것이니 무릇 이를 형세의 욕됨이라 한다. 이것이 영광과 욕됨의 두 끝이다.
故君子可以有埶辱,而不可以有義辱;小人可以有埶榮,而不可以有義榮。有埶辱無害為堯,有埶榮無害為桀。義榮埶榮,唯君子然後兼有之;義辱埶辱,唯小人然後兼有之。是榮辱之分也。聖王以為法,士大夫以為道,官人以為守,百姓以成俗,萬世不能易也。
그러므로 군자는 형세의 욕됨은 있을 수 있어도 옳음의 욕됨은 있을 수 없고, 소인은 형세의 영광은 있을 수 있어도 옳음의 영광은 있을 수 없다. 형세의 욕됨이 있어도 요임금 됨에 해롭지 않고 형세의 영광이 있어도 걸이 됨에 해롭지 않다.
옳음의 영광과 형세의 영광은 오직 군자라야 아울러 가지고, 옳음의 욕됨과 형세의 욕됨은 오직 소인이라야 아울러 가진다. 이것이 영광과 욕됨의 갈래다. 거룩한 왕이 이를 법으로 삼고 사대부가 이를 도로 삼고 벼슬한 사람이 이를 지킴으로 삼고 백성이 이로써 풍속을 이루니 만대에도 바꿀 수 없다.
今子宋子則不然,獨詘容為己,慮一朝而改之,說必不行矣。譬之,是猶以塼涂塞江海也,以焦僥而戴太山也,蹎跌碎折,不待頃矣。二三子之善於子宋子者,殆不若止之,將恐得傷其體也。
이제 자송자는 그렇지 않아 홀로 몸을 굽혀 제 것으로 삼고 하루아침에 이를 고치기를 헤아리니 그 말이 반드시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면 이는 벽돌과 진흙으로 강과 바다를 막으려는 것과 같고 초요에게 태산을 이게 하는 것과 같으니, 넘어지고 부서지고 꺾이기를 잠깐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두어 사람 자송자와 좋게 지내는 이들은 아마 말리는 것만 못하니 그 몸을 다칠까 두렵다.
子宋子曰:「人之情,欲寡,而皆以己之情,為欲多,是過也。」故率其群徒,辨其談說,明其譬稱,將使人知情之欲寡也。
자송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정은 바람이 적은데 다 제 정을 바람이 많다고 여기니 이는 지나침이다.」 그러므로 그 무리를 이끌고 그 말을 따지고 그 견줌을 밝혀 장차 사람으로 하여금 정이 바람이 적음을 알게 하려 하였다.
應之曰:然則亦以人之情為目不欲綦色,耳不欲綦聲,口不欲綦味,鼻不欲綦臭,形不欲綦佚--此五綦者,亦以人之情為不欲乎?
이에 응하여 말한다. 「그러면 또한 사람의 정이 눈이 빛깔을 다하고자 하지 않고 귀가 소리를 다하고자 하지 않고 입이 맛을 다하고자 하지 않고 코가 냄새를 다하고자 하지 않고 몸이 편안함을 다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 다섯 다함도 사람의 정이 바라지 않는다 여기는가.」
曰:「人之情,欲是已。」
말하기를, 「사람의 정은 이를 바랄 뿐이다.」
曰:若是,則說必不行矣。以人之情為欲,此五綦者而不欲多,譬之,是猶以人之情為欲富貴而不欲貨也,好美而惡西施也。古之人為之不然。以人之情為欲多而不欲寡,故賞以富厚而罰以殺損也。是百王之所同也。故上賢祿天下,次賢祿一國,下賢祿田邑,愿愨之民完衣食。今子宋子以是之情為欲寡而不欲多也,然則先王以人之所不欲者賞,而以人之欲者罰邪?亂莫大焉。今子宋子嚴然而好說,聚人徒,立師學,成文典,然而說不免於以至治為至亂也,豈不過甚矣哉!
말한다. 「이와 같으면 그 말이 반드시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정이 이 다섯 다함을 바란다 하면서 많음을 바라지 않는다 하니, 비유하면 이는 사람의 정이 가멸고 귀함을 바라면서 재물은 바라지 않는다 하고 아름다움을 좋아하면서 서시를 미워한다 하는 것과 같다.
옛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의 정이 많음을 바라고 적음을 바라지 않는다 여겼으므로 가멸고 두터움으로 상 주고 죽이고 덞으로 벌하였으니 이는 온갖 왕이 같이한 바다. 그러므로 위의 어진 이는 천하를 녹으로 하고 그다음 어진 이는 한 나라를 녹으로 하고 아래 어진 이는 밭과 고을을 녹으로 하며, 삼가고 참된 백성은 옷과 밥을 온전히 한다.
이제 자송자는 사람의 정이 바람이 적고 많음을 바라지 않는다 하니, 그러면 앞선 임금이 사람이 바라지 않는 것으로 상 주고 사람이 바라는 것으로 벌하였다는 것인가. 어지러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이제 자송자가 엄연히 말하기를 좋아하여 사람 무리를 모으고 스승과 배움을 세우고 글과 법을 이루었으나, 그 말이 지극한 다스림을 지극한 어지러움으로 삼음을 면하지 못하니 어찌 지나침이 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