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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論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21 · 한자 4,339자 · 낭독 17.4분

「순자」 예론 「禮論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禮起於何也?曰:人生而有欲,欲而不得,則不能無求。求而無度量分界,則不能不爭;爭則亂,亂則窮。先王惡其亂也,故制禮義以分之,以養人之欲,給人之求。使欲必不窮於物,物必不屈於欲。兩者相持而長,是禮之所起也。

예는 어디서 일어났는가. 말하기를, 사람이 나면서 바람이 있는데 바라되 얻지 못하면 구하지 않을 수 없고, 구하되 헤아림과 갈래의 금이 없으면 다투지 않을 수 없다. 다투면 어지럽고 어지러우면 막힌다.

앞선 임금이 그 어지러움을 미워하였으므로 예와 옳음을 지어 갈라, 사람의 바람을 기르고 사람의 구함을 대었다. 바람이 반드시 물건에 막히지 않게 하고 물건이 반드시 바람에 굽히지 않게 하여 둘이 서로 붙들며 자라게 하였다. 이것이 예가 일어난 바다.

故禮者養也。芻豢稻梁,五味調香,所以養口也;椒蘭芬苾,所以養鼻也;雕琢刻鏤,黼黻文章,所以養目也;鐘鼓管磬,琴瑟竽笙,所以養耳也;疏房檖貌,越席床笫几筵,所以養體也。故禮者養也。

그러므로 예란 기름이다. 고기와 쌀밥과 기장밥과 다섯 맛의 고른 향은 입을 기르는 바요, 산초와 난초의 향기는 코를 기르는 바요, 새기고 쪼고 아로새긴 것과 수놓은 무늬는 눈을 기르는 바요, 종과 북과 피리와 경쇠와 거문고와 비파와 우와 생황은 귀를 기르는 바요, 트인 방과 깊은 마루와 부들자리와 평상과 대자리와 안석은 몸을 기르는 바다. 그러므로 예란 기름이다.

君子既得其養,又好其別。曷謂別?曰:貴賤有等,長幼有差,貧富輕重皆有稱者也。故天子大路越席,所以養體也;側載睪芷,所以養鼻也;前有錯衡,所以養目也;和鸞之聲,步中武象,趨中韶護,所以養耳也;龍旗九斿,所以養信也;寢兕持虎,蛟韅、絲末、彌龍,所以養威也;故大路之馬必信至,教順,然後乘之,所以養安也。孰知夫出死要節之所以養生也!孰知夫出費用之所以養財也!孰知夫恭敬辭讓之所以養安也!孰知夫禮義文理之所以養情也!故人苟生之為見,若者必死;苟利之為見,若者必害;苟怠惰偷懦之為安,若者必危;苟情說之為樂,若者必滅。故人一之於禮義,則兩得之矣;一之於情性,則兩喪之矣。故儒者將使人兩得之者也,墨者將使人兩喪之者也,是儒墨之分也。

군자는 이미 그 기름을 얻고 또 그 가름을 좋아한다.

가름이란 무엇인가. 말하기를, 귀하고 천함에 등급이 있고 어른과 아이에 차례가 있고 가난하고 가멸고 가볍고 무거움에 다 걸맞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의 큰 수레에 부들자리를 까는 것은 몸을 기르는 바요, 곁에 향초를 싣는 것은 코를 기르는 바요, 앞에 무늬 놓은 멍에가 있는 것은 눈을 기르는 바요, 방울 소리가 걸으면 무(武)와 상(象)에 맞고 종종걸음 치면 소(韶)와 호(護)에 맞는 것은 귀를 기르는 바요, 용 그린 기에 아홉 술이 달린 것은 미더움을 기르는 바요, 무소 가죽을 깔고 범 가죽을 두르고 교룡 무늬 뱃대끈과 실로 짠 가장자리와 용을 새긴 멍에는 위엄을 기르는 바다. 그러므로 큰 수레의 말은 반드시 미더움이 지극하고 가르쳐 길든 뒤에야 타니 편안함을 기르는 바다.

누가 무릇 죽음에 나아가 절개를 지키는 것이 삶을 기르는 바인 줄 알겠는가. 누가 무릇 쓰임을 내는 것이 재물을 기르는 바인 줄 알겠는가. 누가 무릇 공손하고 사양하는 것이 편안함을 기르는 바인 줄 알겠는가. 누가 무릇 예와 옳음과 글과 결이 정을 기르는 바인 줄 알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구차히 사는 것만 보면 그런 이는 반드시 죽고, 구차히 이로움만 보면 그런 이는 반드시 해롭고, 구차히 게으르고 나약함을 편안함으로 삼으면 그런 이는 반드시 위태롭고, 구차히 정의 기쁨을 즐거움으로 삼으면 그런 이는 반드시 없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와 옳음에 한결같으면 둘을 다 얻고 정과 성품에 한결같으면 둘을 다 잃는다. 그러므로 유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둘을 다 얻게 하는 이요 묵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둘을 다 잃게 하는 이니, 이것이 유가와 묵가의 갈림이다.

禮有三本:天地者,生之本也;先祖者,類之本也;君師者,治之本也。無天地,惡生?無先祖,惡出?無君師,惡治?三者偏亡,焉無安人。故禮、上事天,下事地,尊先祖,而隆君師。是禮之三本也。

예에 세 밑동이 있다. 하늘과 땅은 낳음의 밑동이요, 조상은 겨레의 밑동이요, 임금과 스승은 다스림의 밑동이다. 하늘과 땅이 없으면 어디서 나며, 조상이 없으면 어디서 나오며, 임금과 스승이 없으면 어찌 다스리겠는가. 셋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편안한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예는 위로 하늘을 섬기고 아래로 땅을 섬기며 조상을 높이고 임금과 스승을 받든다. 이것이 예의 세 밑동이다.

故王者天太祖,諸侯不敢壞,大夫士有常宗,所以別貴始;貴始得之本也。郊止乎天子,而社止於諸侯,道及士大夫,所以別尊者事尊,卑者事卑,宜大者巨,宜小者小也。故有天下者事七世,有一國者事五世,有五乘之地者事三世,有三乘之地者事二世,持手而食者不得立宗廟,所以別積厚,積厚者流澤廣,積薄者流澤狹也。

그러므로 왕 노릇 하는 이가 태조를 하늘에 짝하고 제후가 감히 무너뜨리지 못하며 대부와 선비에게 떳떳한 종가가 있는 것은 비롯함을 귀히 여김을 가르는 바다. 비롯함을 귀히 여김이 덕의 밑동이다.

교(郊) 제사는 천자에 그치고 사(社) 제사는 제후에 그치며 도(道) 제사는 사대부에 미치니, 높은 이가 높은 것을 섬기고 낮은 이가 낮은 것을 섬기며 큰 데 마땅한 것은 크게 하고 작은 데 마땅한 것은 작게 함을 가르는 바다.

그러므로 천하를 가진 이는 일곱 대를 섬기고, 한 나라를 가진 이는 다섯 대를 섬기고, 수레 다섯을 낼 땅을 가진 이는 세 대를 섬기고, 수레 셋을 낼 땅을 가진 이는 두 대를 섬기며, 손으로 벌어먹는 이는 종묘를 세우지 못한다. 쌓은 것이 두터운지 엷은지를 가르는 바니, 쌓은 것이 두터우면 흐르는 은택이 넓고 쌓은 것이 엷으면 흐르는 은택이 좁다.

大饗,尚玄尊,俎生魚,先大羹,貴食飲之本也。饗,尚玄尊而用酒醴,先黍稷而飯稻粱。祭,齊大羹而飽庶羞,貴本而親用也。貴本之謂文,親用之謂理,兩者合而成文,以歸大一,夫是之謂大隆。故尊之尚玄酒也,俎之尚生魚也,豆之先大羹也,一也。利爵之不醮也,成事之俎不嘗也,三臭之不食也,一也。大昏之未發齊也,太廟之未入尸也,始卒之未小斂也,一也。大路之素未集也,郊之麻絻也,喪服之先散麻也,一也。三年之喪,哭之不反也,清廟之歌,一唱而三歎也,縣一鐘,尚拊膈,朱絃而通越也,一也。

큰 잔치에는 검은 술동이를 높이고 도마에 날생선을 올리고 맹물국을 먼저 놓으니 먹고 마심의 밑동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잔치에는 검은 술동이를 높이면서 술과 단술을 쓰고, 기장과 피를 먼저 놓으면서 쌀밥과 기장밥을 먹는다. 제사에는 맹물국을 가지런히 놓으면서 온갖 반찬으로 배부르게 한다. 밑동을 귀히 여기면서 쓰임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밑동을 귀히 여김을 꾸밈이라 하고 쓰임을 가까이함을 결이라 한다. 둘이 아울러 꾸밈을 이루어 큰 하나로 돌아가니 무릇 이를 크게 받듦이라 한다.

그러므로 술동이에 검은 술을 높이는 것과 도마에 날생선을 높이는 것과 굽 높은 그릇에 맹물국을 먼저 놓는 것이 하나다. 잔을 다 비우지 않는 것과 일을 마친 도마의 것을 맛보지 않는 것과 세 번 냄새만 맡고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다. 큰 혼례에 아직 재계를 하지 않은 때와 태묘에 아직 시동이 들지 않은 때와 갓 죽어 아직 소렴하지 않은 때가 하나다. 큰 수레의 흰 바탕에 아직 꾸밈을 모으지 않은 것과 교 제사의 삼베 면류관과 상복에 흩은 삼을 먼저 하는 것이 하나다. 세 해 상에 곡하되 되돌리지 않는 것과 청묘(淸廟)의 노래에 한 사람이 부르고 셋이 화답하는 것과 종 하나를 달고 부(拊)와 격(膈)을 높이며 붉은 줄에 구멍을 뚫는 것이 하나다.

凡禮,始乎梲,成乎文,終乎悅校。故至備,情文俱盡;其次,情文代勝;其下復情以歸大一也。天地以合,日月以明,四時以序,星辰以行,江河以流,萬物以昌,好惡以節,喜怒以當,以為下則順,以為上則明,萬變不亂,貳之則喪也。禮豈不至矣哉!立隆以為極,而天下莫之能損益也。本末相順,終始相應,至文以有別,至察以有說,天下從之者治,不從者亂,從之者安,不從者危,從之者存,不從者亡,小人不能測也。

무릇 예는 거칢에서 비롯하여 꾸밈에서 이루어지고 기쁨에서 마친다. 그러므로 지극히 갖추어지면 정과 꾸밈이 다 다하고, 그다음은 정과 꾸밈이 갈마들어 이기고, 그 아래는 정으로 돌아가 큰 하나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이 이로써 아우르고, 해와 달이 이로써 밝고, 네 철이 이로써 차례 짓고, 별이 이로써 다니고, 강과 하수가 이로써 흐르고, 만물이 이로써 창성하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이로써 마디 지어지고, 기뻐하고 성냄이 이로써 마땅해진다. 아래가 되면 따르고 위가 되면 밝아 만 가지로 달라져도 어지럽지 않으나, 두 마음을 두면 잃는다.

예가 어찌 지극하지 않은가. 받듦을 세워 끝으로 삼으면 천하가 아무도 덜거나 더하지 못한다. 밑동과 끄트머리가 서로 따르고 마침과 비롯함이 서로 응하며, 지극한 꾸밈으로 가름이 있고 지극한 살핌으로 말이 있다. 천하가 이를 좇으면 다스려지고 좇지 않으면 어지러우며, 좇으면 편안하고 좇지 않으면 위태롭고, 좇으면 있고 좇지 않으면 없어진다. 소인은 이를 헤아리지 못한다.

禮之理誠深矣,「堅白」「同異」之察入焉而溺;其理誠大矣,擅作典制辟陋之說入焉而喪;其理誠高矣,暴慢恣孳輕俗以為高之屬入焉而隊。故繩墨誠陳矣,則不可欺以曲直;衡誠縣矣,則不可欺以輕重;規矩誠設矣,則不可欺以方圓;君子審於禮,則不可欺以詐偽。故繩者,直之至;衡者,平之至;規矩者,方圓之至;禮者,人道之極也。然而不法禮,不足禮,謂之無方之民;法禮,足禮,謂之有方之士。禮之中焉能思索,謂之能慮;禮之中焉能勿易,謂之能固。能慮、能固,加好者焉,斯聖人矣。故天者,高之極也;地者,下之極也;無窮者,廣之極也;聖人者,人道之極也。故學者,固學為聖人也,非特學無方之民也。

예의 이치가 참으로 깊어 굳음과 흼, 같음과 다름을 따지는 이가 들어가면 빠지고, 그 이치가 참으로 커서 제멋대로 법과 제도를 지어 좁고 치우친 말을 하는 이가 들어가면 잃고, 그 이치가 참으로 높아 사납고 게으르고 제멋대로 하며 세속을 가벼이 여겨 높은 체하는 무리가 들어가면 떨어진다.

그러므로 먹줄이 참으로 놓이면 굽고 곧음으로 속일 수 없고, 저울이 참으로 매달리면 가볍고 무거움으로 속일 수 없고, 그림쇠와 곱자가 참으로 놓이면 모나고 둥긂으로 속일 수 없다. 군자가 예에 밝으면 속임과 거짓으로 속일 수 없다.

그러므로 먹줄은 곧음의 지극함이요, 저울은 고름의 지극함이요, 그림쇠와 곱자는 모나고 둥긂의 지극함이요, 예는 사람 도리의 끝이다.

그러하되 예를 법 삼지 않고 예를 넉넉히 하지 않으면 방향 없는 백성이라 하고, 예를 법 삼고 예를 넉넉히 하면 방향 있는 선비라 한다. 예 가운데서 능히 생각하고 찾으면 능히 헤아린다 하고, 예 가운데서 능히 바꾸지 않으면 능히 굳다 한다. 능히 헤아리고 능히 굳으며 거기에 좋아함을 더하면 이것이 성인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높음의 끝이요, 땅은 낮음의 끝이요, 다함없음은 넓음의 끝이요, 성인은 사람 도리의 끝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본디 성인 되기를 배우는 것이지 다만 방향 없는 백성 되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禮者,以財物為用,以貴賤為文,以多少為異,以隆殺為要。文理繁,情用省,是禮之隆也。文理省,情用繁,是禮之殺也。文理情用相為內外表墨,並行而雜,是禮之中流也。故君子上致其隆,下盡其殺,而中處其中。步驟馳騁厲鶩不外是矣。是君子之壇宇宮廷也。人有是,士君子也;外是,民也;於是其中焉,方皇周挾,曲得其次序,是聖人也。故厚者,禮之積也;大者,禮之廣也;高者,禮之隆也;明者,禮之盡也。詩曰:「禮儀卒度,笑語卒獲。」此之謂也。

예란 재물로 쓰임을 삼고, 귀하고 천함으로 꾸밈을 삼고, 많고 적음으로 다름을 삼고, 받들고 줄임으로 요긴함을 삼는다.

꾸밈과 결이 잦고 정과 쓰임이 줄면 이는 예의 받듦이요, 꾸밈과 결이 줄고 정과 쓰임이 잦으면 이는 예의 줄임이다. 꾸밈과 결과 정과 쓰임이 서로 안팎과 겉이 되어 아울러 행하며 섞이면 이는 예의 가운데 흐름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위로 그 받듦을 다하고 아래로 그 줄임을 다하며 가운데로 그 가운데에 머문다. 걷고 달리고 내닫고 치달아도 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것이 군자의 뜰이요 궁정이다. 사람이 여기 있으면 선비와 군자요, 이 밖에 있으면 백성이요, 이 가운데서 두루 돌아 굽어서도 그 차례를 얻으면 성인이다.

그러므로 두터움은 예가 쌓인 것이요, 큼은 예가 넓은 것이요, 높음은 예가 받들어진 것이요, 밝음은 예가 다한 것이다. 「시」에 이르기를 「예와 몸가짐이 다 법도에 맞고 웃음과 말이 다 알맞구나」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禮者,謹於治生死者也。生、人之始也,死、人之終也,終始俱善,人道畢矣。故君子敬始而慎終,終始如一,是君子之道,禮義之文也。夫厚其生而薄其死,是敬其有知,而慢其無知也,是姦人之道而倍叛之心也。君子以倍叛之心接臧穀,猶且羞之,而況以事其所隆親乎!故死之為道也,一而不可得再復也,臣之所以致重其君,子之所以致重其親,於是盡矣。故事生不忠厚,不敬文,謂之野;送死不忠厚,不敬文,謂之瘠。君子賤野而羞瘠,故天子棺槨七重,諸侯五重,大夫三重,士再重。然後皆有衣衾多少厚薄之數,皆有翣菨文章之等,以敬飾之,使生死終始若一;一足以為人願,是先王之道,忠臣孝子之極也。天子之喪動四海,屬諸侯;諸侯之喪動通國,屬大夫;大夫之喪動一國,屬脩士;脩士之喪動一鄉,屬朋友;庶人之喪合族黨,動州里;刑餘罪人之喪,不得合族黨,獨屬妻子,棺槨三寸,衣衾三領,不得飾棺,不得晝行,以昏殣,凡緣而往埋之,反無哭泣之節,無衰麻之服,無親疏月數之等,各反其平,各復其始,已葬埋,若無喪者而止,夫是之謂至辱。

예란 살고 죽음을 다스리는 데 삼가는 것이다. 삶은 사람의 처음이요 죽음은 사람의 마침이니, 마침과 비롯함이 다 좋으면 사람의 도리가 마쳐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처음을 공경하고 마침을 삼가 마침과 비롯함을 하나같이 하니, 이것이 군자의 도요 예와 옳음의 꾸밈이다.

무릇 그 삶을 두터이 하고 그 죽음을 엷게 하는 것은 앎이 있는 것을 공경하고 앎이 없는 것을 업신여기는 것이니, 이는 간사한 이의 도요 등지고 배반하는 마음이다. 군자가 등지고 배반하는 마음으로 종을 대하는 것도 오히려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그 받들어 친한 이를 섬김에랴.

그러므로 죽음이 도가 됨은 한 번뿐이요 다시 얻을 수 없다. 신하가 그 임금을 지극히 무겁게 하는 바요 아들이 그 어버이를 지극히 무겁게 하는 바가 여기서 다한다.

그러므로 산 이를 섬김에 참되고 두텁지 않고 공경하고 꾸미지 않으면 거칠다 하고, 죽은 이를 보냄에 참되고 두텁지 않고 공경하고 꾸미지 않으면 여위다 한다. 군자는 거친 것을 천히 여기고 여윈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므로 천자의 널과 덧널이 일곱 겹이요 제후가 다섯 겹이요 대부가 세 겹이요 선비가 두 겹이다. 그런 뒤에 다 옷과 이불의 많고 적음과 두텁고 엷음의 셈이 있고, 다 부채와 무늬의 등급이 있어 공경히 꾸며 살고 죽음과 마침과 비롯함이 하나같게 한다. 하나같음이 사람의 바람이 될 만하니 이것이 앞선 임금의 도요 참된 신하와 효자의 끝이다.

천자의 상은 사해를 움직여 제후를 모으고, 제후의 상은 온 나라에 통하여 대부를 모으고, 대부의 상은 한 나라를 움직여 닦은 선비를 모으고, 닦은 선비의 상은 한 마을을 움직여 벗을 모으고, 뭇 사람의 상은 겨레와 이웃을 아울러 고을을 움직인다.

형벌을 받은 죄인의 상은 겨레와 이웃을 아우르지 못하고 홀로 아내와 자식만 모으며, 널과 덧널이 세 치요 옷과 이불이 세 벌이요, 널을 꾸미지 못하고 낮에 다니지 못하고 어스름에 묻으며, 두르는 대로 가서 묻고 돌아와서는 곡하는 마디가 없고 상복이 없고 가깝고 먼 달수의 등급이 없다. 저마다 그 예사로움으로 돌아가고 저마다 그 처음으로 돌아가, 이미 묻고 나면 상이 없는 이 같아 그친다. 무릇 이를 지극한 욕됨이라 한다.

禮者,謹於吉凶不相厭者也。紸纊聽息之時,則夫忠臣孝子亦知其閔矣,然而殯斂之具,未有求也;垂涕恐懼,然而幸生之心未已,持生之事未輟也。卒矣,然後作具之。故雖備家必踰日然後能殯,三日而成服。然後告遠者出矣,備物者作矣。故殯久不過七十日,速不損五十日。是何也?曰:遠者可以至矣,百求可以得矣,百事可以成矣;其忠至矣,其節大矣,其文備矣。然後月朝卜日,月夕卜宅,然後葬也。當是時也,其義止,誰得行之?其義行,誰得止之?故三月之葬,其貌以生設飾死者也,殆非直留死者以安生也,是致隆思慕之義也。

예란 길함과 흉함이 서로 덮지 않게 삼가는 것이다.

솜을 코에 대어 숨을 살피는 때에는 저 참된 신하와 효자도 그 근심을 안다. 그러나 빈소와 염하는 갖춤을 아직 구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고 두려워하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 그치지 않고 살리려는 일이 아직 그치지 않는다. 마치고 나서야 갖춘다.

그러므로 비록 갖춘 집이라도 반드시 날을 넘긴 뒤에야 빈소를 차릴 수 있고 사흘 만에 상복을 이룬다. 그런 뒤에 먼 데 알리는 이가 나가고 물건을 갖추는 이가 일한다.

그러므로 빈소는 오래 두어도 일흔 날을 넘지 않고 빨라도 쉰 날을 줄이지 않는다. 이는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먼 데 있는 이가 이를 수 있고 온갖 구할 것을 얻을 수 있고 온갖 일을 이룰 수 있다. 그 참됨이 지극하고 그 마디가 크고 그 꾸밈이 갖추어진다.

그런 뒤에 달 첫머리에 날을 점치고 달 그믐에 자리를 점친 뒤에 묻는다. 이때에 그 옳음이 그치라 하면 누가 행하겠으며, 그 옳음이 행하라 하면 누가 그치겠는가.

그러므로 석 달 만의 장사는 그 모양이 산 이처럼 꾸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지, 죽은 이를 붙들어 두어 산 이를 편안케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받들고 사모하는 옳음을 다하는 것이다.

喪禮之凡,變而飾,動而遠,久而平。故死之為道也,不飾則惡,惡則不哀;尒則翫,翫則厭,厭則忘,忘則不敬。一朝而喪其嚴親,而所以送葬之者,不哀不敬,則嫌於禽獸矣,君子恥之。故變而飾,所以滅惡也;動而遠,所以遂敬也;久而平,所以優生也。

상례의 큰 줄기는 달라지면 꾸미고, 옮기면 멀어지고, 오래되면 고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도가 됨은 이러하다. 꾸미지 않으면 미워지고 미워지면 슬프지 않으며, 가까이 두면 예사로워지고 예사로워지면 싫증나고 싫증나면 잊고 잊으면 공경하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그 엄한 어버이를 잃고서 장사 지내 보내는 데 슬퍼하지도 공경하지도 않으면 새와 짐승에 가까우니 군자가 이를 부끄러워한다.

그러므로 달라지면 꾸미는 것은 미움을 없애는 바요, 옮기면 멀어지는 것은 공경을 이루는 바요, 오래되면 고르게 되는 것은 산 이를 넉넉히 하는 바다.

禮者、斷長續短,損有餘,益不足,達愛敬之文,而滋成行義之美者也。故文飾、麤惡,聲樂、哭泣,恬愉、憂戚;是反也;然而禮兼而用之,時舉而代御。故文飾、聲樂、恬愉,所以持平奉吉也;麤惡、哭泣、憂戚,所以持險奉凶也。故其立文飾也,不至於窕冶;其立麤惡也,不至於瘠棄;其立聲樂、恬愉也,不至於流淫、惰慢;其立哭泣、哀戚也,不至於隘懾傷生,是禮之中流也。

예란 긴 것을 끊고 짧은 것을 이으며, 남는 것을 덜고 모자란 것을 더하여, 사랑과 공경의 꾸밈에 이르고 행실과 옳음의 아름다움을 불려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꾸밈과 거칢, 소리와 악과 곡함, 편안한 즐거움과 근심과 서러움은 서로 거꾸로다. 그러나 예는 이를 아울러 써서 때에 맞추어 들고 갈마들어 부린다.

그러므로 꾸밈과 소리와 악과 편안한 즐거움은 고름을 지키고 길함을 받드는 바요, 거칢과 곡함과 근심과 서러움은 험함을 지키고 흉함을 받드는 바다.

그러므로 그 꾸밈을 세우되 야하고 요염한 데 이르지 않고, 그 거칢을 세우되 여위고 버리는 데 이르지 않고, 그 소리와 악과 편안한 즐거움을 세우되 흐르고 넘치고 게으른 데 이르지 않고, 그 곡함과 슬픔과 서러움을 세우되 막히고 겁내어 삶을 다치는 데 이르지 않는다. 이것이 예의 가운데 흐름이다.

故情貌之變,足以別吉凶,明貴賤親疏之節,期止矣。外是,姦也;雖難,君子賤之。故量食而食之,量要而帶之,相高以毀瘠,是姦人之道,非禮義之文也,非孝子之情也,將以有為者也。故說豫、娩澤,憂戚、萃惡,是吉凶憂愉之情發於顏色者也。歌謠、謷笑、哭泣、諦號,是吉凶憂愉之情發於聲音者也。芻豢、稻梁、酒醴,餰鬻、魚肉、菽藿、酒漿,是吉凶憂愉之情發於食飲者也。卑絻、黼黻、文織,資麤、衰絰、菲繐、菅屨,是吉凶憂愉之情發於衣服者也。疏房、檖貌、越席、床笫、几筵,屬茨、倚廬、席薪、枕塊,是吉凶憂愉之情發於居處者也。兩情者,人生固有端焉。若夫斷之繼之,博之淺之,益之損之,類之盡之,盛之美之,使本末終始,莫不順比,足以為萬世則,則是禮也。非順孰脩為之君子,莫之能知也。

그러므로 정과 모습의 달라짐은 길함과 흉함을 가르고 귀하고 천함과 가깝고 먼 것의 마디를 밝히기에 넉넉하면 거기서 그친다. 이 밖은 간사함이다. 비록 어려워도 군자가 이를 천히 여긴다.

그러므로 밥을 헤아려 먹고 허리를 헤아려 띠를 매면서 여윔으로 서로 높은 체하는 것은 간사한 이의 도요 예와 옳음의 꾸밈이 아니며 효자의 정이 아니다. 장차 무엇을 하려는 이다.

그러므로 기쁘고 윤나는 것과 근심스럽고 시들어 미운 것은 길하고 흉하고 근심스럽고 즐거운 정이 낯빛에 드러난 것이다. 노래와 웃음과 곡함과 부르짖음은 길하고 흉하고 근심스럽고 즐거운 정이 소리에 드러난 것이다. 고기와 쌀밥과 기장밥과 술과 단술, 미음과 죽과 물고기와 고기와 콩과 콩잎과 술과 장은 길하고 흉하고 근심스럽고 즐거운 정이 먹고 마심에 드러난 것이다. 관과 수놓은 무늬와 무늬 짠 비단, 거친 삼베와 상복과 짚신과 왕골신은 길하고 흉하고 근심스럽고 즐거운 정이 옷에 드러난 것이다. 트인 방과 깊은 마루와 부들자리와 평상과 안석, 띠를 덮은 여막과 기댄 오두막과 섶자리와 흙베개는 길하고 흉하고 근심스럽고 즐거운 정이 사는 데 드러난 것이다.

이 두 정은 사람이 나면서 본디 그 실마리를 가진 것이다. 무릇 이를 끊고 잇고 넓히고 얕게 하고 더하고 덜고 갈래 지어 다하고 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여, 밑동과 끄트머리와 마침과 비롯함이 따라 나란하지 않은 것이 없어 만대의 법이 될 만하게 하는 것이 예다. 따라 익히 닦아 행한 군자가 아니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故曰:性者、本始材朴也;偽者、文理隆盛也。無性則偽之無所加,無偽則性不能自美。性偽合,然後成聖人之名,一天下之功於是就也。故曰:天地合而萬物生,陰陽接而變化起,性偽合而天下治。天能生物,不能辨物也,地能載人,不能治人也;宇中萬物生人之屬,待聖人然後分也。詩曰:「懷柔百神,及河喬嶽。」此之謂也。

그러므로 이르기를, 성품이란 밑동이 되는 처음의 재목이요 통나무며, 지어냄이란 꾸밈과 결이 받들어져 성한 것이다. 성품이 없으면 지어냄이 더할 데가 없고, 지어냄이 없으면 성품이 스스로 아름다울 수 없다. 성품과 지어냄이 아우른 뒤에야 성인의 이름을 이루고 천하를 하나로 하는 공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아울러 만물이 나고, 음과 양이 이어져 달라지고 바뀜이 일어나고, 성품과 지어냄이 아울러 천하가 다스려진다 한다.

하늘은 능히 물건을 낳되 물건을 가리지 못하고, 땅은 능히 사람을 싣되 사람을 다스리지 못한다. 우주 가운데 만물과 사람의 무리는 성인을 기다린 뒤에야 갈린다. 「시」에 이르기를 「온갖 신을 품어 어루만져 하수와 높은 산에까지 미치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喪禮者,以生者飾死者也,大象其生以送其死也。故事死如生,事亡如存,終始一也。始卒,沐浴、鬠體、飯唅,象生執也。不沐則濡櫛三律而止,不浴則濡巾三式而止。充耳而設瑱,飯以生稻,唅以槁骨,反生術矣。設褻衣,襲三稱,縉紳而無鉤帶矣。設掩面儇目,鬠而不冠笄矣。書其名,置於其重,則名不見而柩獨明矣。薦器:則冠有鍪而毋縰,罋廡虛而不實,有簟席而無床笫,木器不成斲,陶器不成物,薄器不成內,笙竽具而不和,琴瑟張而不均,輿藏而馬反,告不用也。具生器以適墓,象徙道也。略而不盡,貌而不功,趨輿而藏之,金革轡靷而不入,明不用也。象徙道,又明不用也,是皆所以重哀也。故生器文而不功,明器貌而不用。凡禮,事生,飾歡也;送死,飾哀也;祭祀,飾敬也;師旅,飾威也。是百王之所同,古今之所一也,未有知其所由來者也。故壙壟、其貌象室屋也;棺槨、其貌象版蓋斯象拂也;無帾絲歶縷翣,其貌以象菲帷幬尉也。抗折,其貌以象槾茨番閼也。故喪禮者,無他焉,明死生之義,送以哀敬,而終周藏也。故葬埋,敬藏其形也;祭祀,敬事其神也;其銘誄繫世,敬傳其名也。事生,飾始也;送死,飾終也;終始具,而孝子之事畢,聖人之道備矣。刻死而附生謂之墨,刻生而附死謂之惑,殺生而送死謂之賊。大象其生以送其死,使死生終始莫不稱宜而好善,是禮義之法式也,儒者是矣。

상례란 산 이로 죽은 이를 꾸미는 것이니, 그 삶을 크게 본떠 그 죽음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 하고 없는 이 섬기기를 있는 이 섬기듯 하여 마침과 비롯함이 하나다.

갓 죽었을 때 머리 감기고 몸 씻기고 머리 묶고 입에 밥을 물리는 것은 산 이를 다루던 것을 본뜬 것이다. 머리를 감기지 않으면 빗을 적셔 세 번 빗고 그치고, 몸을 씻기지 않으면 수건을 적셔 세 번 닦고 그친다. 귀를 채우고 귀막이를 놓으며, 밥은 날쌀로 하고 입에 마른 뼈를 물리니 산 이의 법을 거꾸로 한 것이다. 속옷을 놓고 세 벌을 껴입히며, 큰 띠를 매되 갈고리 띠는 없다. 얼굴을 덮고 눈을 가리며, 머리를 묶되 갓과 비녀는 하지 않는다. 그 이름을 적어 그 신주에 두면 이름은 보이지 않고 널만 밝다.

올리는 그릇은 이러하다. 갓에는 두건이 있되 머리싸개가 없고, 항아리는 비어 채우지 않고, 대자리는 있되 평상은 없고, 나무 그릇은 깎아 이루지 않고, 질그릇은 물건을 이루지 않고, 엷은 그릇은 안을 이루지 않고, 생황과 우는 갖추되 고르지 않고, 거문고와 비파는 줄을 매되 고르지 않고, 수레는 묻되 말은 돌려보내니 쓰지 않음을 알리는 것이다.

산 이의 그릇을 갖추어 무덤에 가는 것은 옮겨 가는 길을 본뜬 것이다. 소략하여 다하지 않고 모양만 내고 쓸모 있게 하지 않으며, 수레를 몰아 묻되 쇠와 가죽과 고삐와 끈은 넣지 않으니 쓰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옮겨 가는 길을 본뜨고 또 쓰지 않음을 밝히니 이는 다 슬픔을 무겁게 하는 바다.

그러므로 산 이의 그릇은 꾸미되 쓸모 있게 하지 않고, 밝은 그릇은 모양만 내고 쓰지 않는다.

무릇 예는 산 이를 섬기면 기쁨을 꾸미고, 죽은 이를 보내면 슬픔을 꾸미고, 제사하면 공경을 꾸미고, 군사를 내면 위엄을 꾸민다. 이는 온갖 임금이 같이한 바요 옛날과 지금이 하나인 바니, 그 말미암아 온 바를 아는 이가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무덤과 봉분은 그 모양이 방과 집을 본뜬 것이요, 널과 덧널은 그 모양이 널판과 덮개를 본뜬 것이요, 덮개와 실과 술과 부채는 그 모양이 문발과 휘장을 본뜬 것이요, 광중 덮는 나무는 그 모양이 흙손질한 지붕과 울을 본뜬 것이다.

그러므로 상례란 다른 것이 아니다. 죽고 사는 옳음을 밝혀 슬픔과 공경으로 보내고 마침내 두루 감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묻는 것은 그 꼴을 공경히 감추는 것이요, 제사는 그 신을 공경히 섬기는 것이요, 그 명(銘)과 뇌(誄)와 계보는 그 이름을 공경히 전하는 것이다. 산 이를 섬김은 처음을 꾸미는 것이요 죽은 이를 보냄은 마침을 꾸미는 것이니, 마침과 비롯함이 갖추어지면 효자의 일이 마쳐지고 성인의 도가 갖추어진다.

죽은 이를 깎아 산 이에게 붙이는 것을 묵(墨)이라 하고, 산 이를 깎아 죽은 이에게 붙이는 것을 홀림이라 하고, 산 이를 죽여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을 해침이라 한다. 그 삶을 크게 본떠 그 죽음을 보내어, 죽고 삶과 마침과 비롯함이 걸맞고 마땅하며 착함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는 것이 예와 옳음의 법식이니 유자가 그러하다.

三年之喪,何也?曰:稱情而立文,因以飾群,別親疏貴賤之節,而不可益損也。故曰:無適不易之術也。創巨者其日久,痛甚者其愈遲,三年之喪,稱情而立文,所以為至痛極也。齊衰、苴杖、居廬、食粥、席薪、枕塊,所以為至痛飾也。三年之喪,二十五月而畢,哀痛未盡,思慕未忘,然而禮以是斷之者,豈不以送死有已,復生有節也哉!凡生天地之間者,有血氣之屬必有知,有知之屬莫不愛其類。今夫大鳥獸則失亡其群匹,越月踰時,則必反鉛;過故鄉,則必徘徊焉,鳴號焉,躑躅焉,踟躕焉,然後能去之也。小者是燕爵,猶有啁焦之頃焉,然後能去之。故有血氣之屬莫知於人,故人之於其親也,至死無窮。將由夫愚陋淫邪之人與,則彼朝死而夕忘之;然而縱之,則是曾鳥獸之不若也,彼安能相與群居而無亂乎!將由夫脩飾之君子與,則三年之喪,二十五月而畢,若駟之過隙,然而遂之,則是無窮也。故先王聖人安為之立中制節,一使足以成文理,則舍之矣。

세 해 상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정에 걸맞게 꾸밈을 세우고 이로써 무리를 꾸며, 가깝고 멀고 귀하고 천함의 마디를 가르되 더하거나 덜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맞설 것도 바꿀 것도 없는 재주라 한다.

상처가 크면 그 날이 오래고 아픔이 심하면 그 낫기가 더디다. 세 해 상은 정에 걸맞게 꾸밈을 세워 지극한 아픔의 끝을 삼은 것이다. 거친 상복과 삼 지팡이와 여막살이와 죽 먹기와 섶자리와 흙베개는 지극한 아픔을 꾸미는 바다.

세 해 상은 스물다섯 달에 마친다. 슬픔과 아픔이 아직 다하지 않고 그리움이 아직 잊히지 않았는데도 예가 이로써 끊는 것은, 어찌 죽은 이를 보냄에 그침이 있고 삶으로 돌아옴에 마디가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난 것 가운데 피와 기운 있는 무리는 반드시 앎이 있고, 앎이 있는 무리는 그 동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제 저 큰 새와 짐승은 그 무리와 짝을 잃으면 달을 넘고 철을 넘어도 반드시 돌아오고, 옛 고장을 지나면 반드시 서성이고 울부짖고 발을 구르고 머뭇거린 뒤에야 떠날 수 있다. 작은 것은 제비와 참새라도 오히려 지저귀며 슬퍼하는 잠깐이 있은 뒤에야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피와 기운 있는 무리에 사람보다 아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그 어버이에 대하여는 죽도록 다함이 없다.

저 어리석고 좁고 넘치고 그릇된 사람을 따르겠는가. 그러면 저이는 아침에 죽으면 저녁에 잊는다. 그런데도 이를 놓아두면 이는 새와 짐승만도 못한 것이니, 저들이 어찌 서로 무리 지어 살면서 어지럽지 않겠는가.

닦아 꾸민 군자를 따르겠는가. 그러면 세 해 상이 스물다섯 달에 마치는 것이 네 마리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 같은데, 그대로 좇으면 이는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앞선 임금과 성인이 이에 알맞음을 세우고 마디를 지어, 한결같이 꾸밈과 결을 이루기에 넉넉하게 하고는 놓아둔 것이다.

然則何以分之?曰:至親以期斷。是何也?曰:天地則已易矣,四時則已無矣,其在宇中者莫不更始矣,故先王案以此象之也。然則三年何也?曰:加隆焉,案使倍之,故再期也。由九月以下何也?曰:案使不及也。故三年以為隆,緦麻、小功以為殺,期、九月以為間。上取象於天,下取象於地,中取則於人,人所以群居和一之理盡矣。故三年之喪,人道之至文者也,夫是之謂至隆。是百王之所同也,古今之所一也。

그러면 무엇으로 가르는가. 말하기를, 지극히 친한 이는 한 해로 끊는다. 이는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이미 바뀌었고 네 철이 이미 다하였으며 우주 가운데 있는 것이 다시 비롯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앞선 임금이 이로써 본떴다.

그러면 세 해는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받듦을 더하여 곱으로 하였으므로 두 해다. 아홉 달 아래는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미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 해로 받듦을 삼고, 시마와 소공으로 줄임을 삼고, 한 해와 아홉 달로 그 사이를 삼는다. 위로 하늘에서 본뜨고 아래로 땅에서 본뜨고 가운데로 사람에게서 법을 취하니, 사람이 무리 지어 살며 어우러져 하나 되는 이치가 다한다.

그러므로 세 해 상은 사람 도리의 지극한 꾸밈이니 무릇 이를 지극한 받듦이라 한다. 이는 온갖 임금이 같이한 바요 옛날과 지금이 하나인 바다.

君之喪,所以取三年,何也?曰:君者、治辨之主也,文理之原也,情貌之盡也,相率而致隆之,不亦可乎?詩曰:「愷悌君子,民之父母。」彼君子者,固有為民父母之說焉。父能生之,不能養之;母能食之,不能教誨之;君者,已能食之矣,又善教誨之者也。三年畢矣哉!乳母、飲食之者也,而三月;慈母、衣被之者也,而九月;君曲備之者也,三年畢乎哉!得之則治,失之則亂,文之至也。得之則安,失之則危,情之至也。兩至者俱積焉,以三年事之,猶未足也,直無由進之耳。故社,祭社也;稷、祭稷也;郊者,並百王於上天而祭祀之也。

임금의 상이 세 해를 취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임금이란 다스려 가리는 주인이요 꾸밈과 결의 근원이요 정과 모습이 다하는 데다. 서로 이끌어 받듦을 다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시」에 이르기를 「기쁘고 편안한 군자여, 백성의 어버이로다」 하였다. 저 군자란 본디 백성의 어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아비는 능히 낳되 기르지 못하고 어미는 능히 먹이되 가르치지 못하는데, 임금은 이미 능히 먹이고 또 잘 가르친다. 세 해로 마치겠는가.

젖어미는 먹이는 이인데 석 달이요 자애로운 어미는 입히는 이인데 아홉 달인데, 임금은 굽이굽이 갖추는 이인데 세 해로 마치겠는가.

이를 얻으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어지러우니 꾸밈의 지극함이요, 이를 얻으면 편안하고 잃으면 위태로우니 정의 지극함이다. 두 지극함이 다 쌓였으니 세 해로 섬겨도 오히려 넉넉하지 않으나 다만 더 나아갈 길이 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社)는 토지 신에게 제사함이요, 직(稷)은 곡식 신에게 제사함이요, 교(郊)는 온갖 임금을 하늘에 아울러 제사함이다.

三月之殯,何也?曰:大之也,重之也。所致隆也,所致親也,將舉措之,遷徙之,離宮室而歸丘陵也,先王恐其不文也,是以繇其期,足之日也。故天子七月,諸侯五月,大夫三月,皆使其須足以容事,事足以容成,成足以容文,文足以容備,曲容備物之謂道矣。

석 달 빈소는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크게 여기는 것이요 무겁게 여기는 것이다. 받듦을 다하는 바요 친함을 다하는 바다. 장차 이를 들어 옮겨 궁실을 떠나 언덕으로 돌아가게 하려는데, 앞선 임금이 그것이 꾸며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였으므로 그 기한을 늘여 날을 넉넉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천자는 일곱 달, 제후는 다섯 달, 대부는 석 달이니, 다 그 기다림이 일을 담기에 넉넉하고 일이 이룸을 담기에 넉넉하고 이룸이 꾸밈을 담기에 넉넉하고 꾸밈이 갖춤을 담기에 넉넉하게 한 것이다. 굽이굽이 물건 갖춤을 담는 것을 도라 한다.

祭者、志意思慕之情也。愅詭唈僾而不能無時至焉。故人之歡欣和合之時,則夫忠臣孝子亦愅詭而有所至矣。彼其所至者,甚大動也;案屈然已,則其於志意之情者惆然不嗛,其於禮節者闕然不具。故先王案為之立文,尊尊親親之義至矣。故曰:祭者、志意思慕之情也。忠信愛敬之至矣,禮節文貌之盛矣,苟非聖人,莫之能知也。聖人明知之,士君子安行之,官人以為守,百姓以成俗;其在君子以為人道也,其在百姓以為鬼事也。故鐘鼓管磬,琴瑟竽笙,韶夏護武,汋桓箾簡象,是君子之所以為愅詭其所喜樂之文也。齊衰、苴杖、居廬、食粥、席薪、枕塊,是君子之所以為愅詭其所哀痛之文也。師旅有制,刑法有等,莫不稱罪,是君子之所以為愅詭其所敦惡之文也。卜筮視日、齋戒、脩涂、几筵、饋薦、告祝,如或饗之。物取而皆祭之,如或嘗之。毋利舉爵,主人有尊,如或觴之。賓出,主人拜送,反易服,即位而哭,如或去之。哀夫!敬夫!事死如事生,事亡如事存,狀乎無形,影然而成文。

제사란 뜻과 그리움의 정이다. 북받쳐 목이 메어 때때로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기쁘고 어우러지는 때에는 저 참된 신하와 효자도 북받쳐 이르는 바가 있다.

저 이르는 바가 몹시 크게 움직이는데, 굽혀 그만두면 뜻의 정에 서운하여 흡족하지 않고 예와 마디에 빠져 갖추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선 임금이 이에 꾸밈을 세우니 높은 이를 높이고 친한 이를 친히 하는 옳음이 지극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제사란 뜻과 그리움의 정이라 한다. 참됨과 미더움과 사랑과 공경이 지극하고 예와 마디와 꾸밈과 모습이 성하니, 진실로 성인이 아니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성인은 밝게 이를 알고, 선비와 군자는 편안히 이를 행하고, 벼슬아치는 이로써 지킴을 삼고, 백성은 이로써 풍속을 이룬다. 군자에게 있어서는 사람의 도리로 여기고 백성에게 있어서는 귀신의 일로 여긴다.

그러므로 종과 북과 피리와 경쇠와 거문고와 비파와 우와 생황과 소(韶)와 하(夏)와 호(護)와 무(武)와 작(汋)과 환(桓)과 소(箾)와 간(簡)과 상(象)은 군자가 그 기쁘고 즐거운 바를 북받쳐 꾸미는 바다.

거친 상복과 삼 지팡이와 여막살이와 죽 먹기와 섶자리와 흙베개는 군자가 그 슬프고 아픈 바를 북받쳐 꾸미는 바다.

군사에 제도가 있고 형법에 등급이 있어 죄에 걸맞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는 군자가 그 미워하는 바를 북받쳐 꾸미는 바다.

점을 쳐 날을 보고 재계하고 길을 닦고 안석과 자리를 놓고 음식을 올리고 축문을 고하기를 마치 누가 흠향하는 듯이 한다. 물건을 취하여 다 고수레하기를 마치 누가 맛보는 듯이 한다. 잔을 드는 이가 다 비우지 않고 주인이 술동이를 두기를 마치 누가 잔을 받는 듯이 한다. 손이 나가면 주인이 절하여 보내고,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나아가 곡하기를 마치 누가 떠나는 듯이 한다.

슬프구나, 공경스럽구나.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 하고 없는 이 섬기기를 있는 이 섬기듯 하여, 꼴 없는 것을 꼴 지어 그림자처럼 꾸밈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