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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蔽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17 · 한자 3,315자 · 낭독 13.3분

「순자」 해폐 「解蔽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凡人之患,蔽於一曲,而闇於大理。治則復經,兩疑則惑矣。天下無二道,聖人無兩心。今諸侯異政,百家異說,則必或是或非,或治或亂。亂國之君,亂家之人,此其誠心,莫不求正而以自為也。妒繆於道,而人誘其所迨也。私其所積,唯恐聞其惡也。倚其所私,以觀異術,唯恐聞其美也。是以與治雖走,而是己不輟也。豈不蔽於一曲,而失正求也哉!心不使焉,則白黑在前而目不見,雷鼓在側而耳不聞,況於使者乎?德道之人,亂國之君非之上,亂家之人非之下,豈不哀哉!

무릇 사람의 근심은 한 굽이에 가려 큰 이치에 어두운 것이다. 다스려지면 떳떳함으로 돌아오나 둘을 다 의심하면 헷갈린다.

천하에 두 도가 없고 성인에게 두 마음이 없다. 이제 제후가 정사를 달리하고 백가가 말을 달리하니 반드시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며 다스려지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어지러운 나라의 임금과 어지러운 집의 사람도 그 참된 마음은 바름을 구하여 스스로 하려 하지 않는 이가 없다. 다만 도에서 시새우고 어긋나 남이 그 다가가는 바로 꾄다. 제가 쌓은 것을 사사로이 하여 오직 그 모짊을 들을까 두려워하고, 제가 사사로이 하는 것에 기대어 다른 재주를 보되 오직 그 아름다움을 들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다스림과 함께 달아나면서도 제가 옳다 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어찌 한 굽이에 가려 바른 구함을 잃은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이 부리지 않으면 희고 검은 것이 앞에 있어도 눈이 보지 못하고 우레와 북이 곁에 있어도 귀가 듣지 못하는데, 하물며 부림을 받는 이야 어떻겠는가.

도를 얻은 사람을 어지러운 나라의 임금이 위에서 그르다 하고 어지러운 집의 사람이 아래에서 그르다 하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故為蔽:欲為蔽,惡為蔽,始為蔽,終為蔽,遠為蔽,近為蔽,博為蔽,淺為蔽,古為蔽,今為蔽。凡萬物異則莫不相為蔽,此心術之公患也。

그러므로 가림이 되는 것은 이러하다. 바람이 가림이 되고 미움이 가림이 되고, 처음이 가림이 되고 마침이 가림이 되고, 멂이 가림이 되고 가까움이 가림이 되고, 넓음이 가림이 되고 얕음이 가림이 되고, 옛것이 가림이 되고 지금 것이 가림이 된다. 무릇 만물이 다르면 서로 가림이 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마음 쓰는 재주의 공변된 근심이다.

昔人君之蔽者,夏桀殷紂是也。桀蔽於末喜斯觀,而不知關龍逢,以惑其心,而亂其行。紂蔽於妲己、飛廉,而不知微子啟,以惑其心,而亂其行。故群臣去忠而事私,百姓怨非而不用,賢良退處而隱逃,此其所以喪九牧之地,而虛宗廟之國也。桀死於鬲山,紂縣於赤旆。身不先知,人又莫之諫,此蔽塞之禍也。成湯監於夏桀,故主其心而慎治之,是以能長用伊尹,而身不失道,此其所以代夏王而受九有也。文王監於殷紂,故主其心而慎治之,是以能長用呂望,而身不失道,此其所以代殷王而受九牧也。遠方莫不致其珍;故目視備色,耳聽備聲,口食備味,形居備宮,名受備號,生則天下歌,死則四海哭。夫是之謂至盛。詩曰:「鳳凰秋秋,其翼若干,其聲若簫。有鳳有凰,樂帝之心。」此不蔽之福也。

옛날 임금으로서 가린 이는 하나라 걸과 은나라 주가 그러하다. 걸은 말희와 사관(斯觀)에 가려 관룡봉을 알지 못하여 그 마음이 홀리고 그 행실이 어지러웠다. 주는 달기와 비렴에 가려 미자계를 알지 못하여 그 마음이 홀리고 그 행실이 어지러웠다.

그러므로 뭇 신하가 참됨을 버리고 사사로움을 섬기고, 백성이 원망하고 그르다 하여 쓰이지 않고, 어질고 착한 이가 물러나 숨었다. 이것이 아홉 목(牧)의 땅을 잃고 종묘의 나라를 비운 까닭이다. 걸은 격산(鬲山)에서 죽고 주는 붉은 깃발에 걸렸다. 제 몸이 먼저 알지 못하고 남이 또 간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가려 막힌 재앙이다.

성탕은 하나라 걸을 거울 삼았으므로 그 마음을 주인 삼아 삼가 다스렸다. 그래서 능히 오래 이윤을 쓰고 몸이 도를 잃지 않았으니, 이것이 하나라 왕을 대신하여 아홉 고을을 받은 까닭이다. 문왕은 은나라 주를 거울 삼았으므로 그 마음을 주인 삼아 삼가 다스렸다. 그래서 능히 오래 여망을 쓰고 몸이 도를 잃지 않았으니, 이것이 은나라 왕을 대신하여 아홉 목을 받은 까닭이다.

먼 데서 그 보배를 바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눈은 갖춘 빛깔을 보고 귀는 갖춘 소리를 듣고 입은 갖춘 맛을 먹고 몸은 갖춘 궁에 살고 이름은 갖춘 칭호를 받아, 살아서는 천하가 노래하고 죽어서는 사해가 곡하였다. 무릇 이를 지극한 성함이라 한다.

「시」에 이르기를 「봉황이 너울너울 그 날개가 방패 같고 그 소리가 퉁소 같네. 봉이 있고 황이 있어 하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네」 하였다. 이것이 가리지 않음의 복이다.

昔人臣之蔽者,唐鞅奚齊是也。唐鞅蔽於欲權而逐載子,奚齊蔽於欲國而罪申生;唐鞅戮於宋,奚齊戮於晉。逐賢相而罪孝兄,身為刑戮,然而不知,此蔽塞之禍也。故以貪鄙、背叛、爭權而不危辱滅亡者,自古及今,未嘗有之也。鮑叔、甯戚、隰朋仁知且不蔽,故能持管仲,而名利福祿與管仲齊。召公、呂望仁知且不蔽,故能持周公而名利福祿與周公齊。傳曰:「知賢之為明,輔賢之謂能,勉之彊之,其福必長。」此之謂也。此不蔽之福也。

옛날 신하로서 가린 이는 당앙(唐鞅)과 해제(奚齊)가 그러하다. 당앙은 권세를 바라는 데 가려 재자(載子)를 내쫓았고, 해제는 나라를 바라는 데 가려 신생(申生)에게 죄를 씌웠다. 당앙은 송나라에서 죽임을 당하고 해제는 진나라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어진 재상을 내쫓고 효성스러운 형에게 죄를 씌워 몸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알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가려 막힌 재앙이다.

그러므로 탐하고 낮고 배반하고 권세를 다투면서 위태롭고 욕되고 없어지지 않은 이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일찍이 있은 적이 없다.

포숙과 영척과 습붕은 어질고 슬기롭고 또 가리지 않았으므로 능히 관중을 붙들어 이름과 이로움과 복과 녹이 관중과 나란하였다. 소공과 여망은 어질고 슬기롭고 또 가리지 않았으므로 능히 주공을 붙들어 이름과 이로움과 복과 녹이 주공과 나란하였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어진 이를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하고 어진 이를 돕는 것을 능함이라 하니, 힘쓰고 굳세게 하면 그 복이 반드시 길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이것이 가리지 않음의 복이다.

昔賓孟之蔽者,亂家是也。墨子蔽於用而不知文。宋子蔽於欲而不知得。慎子蔽於法而不知賢。申子蔽於埶而不知知。惠子蔽於辭而不知實。莊子蔽於天而不知人。故由用謂之道,盡利矣。由欲謂之道,盡嗛矣。由法謂之道,盡數矣。由埶謂之道,盡便矣。由辭謂之道,盡論矣。由天謂之道,盡因矣。此數具者,皆道之一隅也。夫道者體常而盡變,一隅不足以舉之。曲知之人,觀於道之一隅,而未之能識也。故以為足而飾之,內以自亂,外以惑人,上以蔽下,下以蔽上,此蔽塞之禍也。孔子仁知且不蔽,故學亂術足以為先王者也。一家得周道,舉而用之,不蔽於成積也。故德與周公齊,名與三王並,此不蔽之福也。

옛날 손으로 온 이들 가운데 가린 이는 어지러운 갈래들이 그러하다.

묵자는 쓰임에 가려 꾸밈을 알지 못하였다. 송자는 바람에 가려 얻음을 알지 못하였다. 신자(慎子)는 법에 가려 어진 이를 알지 못하였다. 신자(申子)는 형세에 가려 앎을 알지 못하였다. 혜자는 말에 가려 알맹이를 알지 못하였다. 장자는 하늘에 가려 사람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쓰임에서 도를 말하면 이로움을 다할 뿐이요, 바람에서 도를 말하면 흡족함을 다할 뿐이요, 법에서 도를 말하면 셈을 다할 뿐이요, 형세에서 도를 말하면 편함을 다할 뿐이요, 말에서 도를 말하면 논함을 다할 뿐이요, 하늘에서 도를 말하면 말미암음을 다할 뿐이다.

이 여러 가지는 다 도의 한 모퉁이다. 무릇 도란 떳떳함을 몸으로 삼고 달라짐을 다하는 것이라 한 모퉁이로는 들 수 없다. 굽이만 아는 사람은 도의 한 모퉁이를 보고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넉넉하다 여겨 꾸며, 안으로 스스로 어지럽고 밖으로 남을 홀리며, 위가 아래를 가리고 아래가 위를 가린다. 이것이 가려 막힌 재앙이다.

공자는 어질고 슬기롭고 또 가리지 않았으므로 어지러운 재주를 배워도 앞선 임금이 될 만하였다. 한 갈래로 주나라의 도를 얻어 들어 썼으니 이룬 쌓음에 가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덕이 주공과 나란하고 이름이 세 왕과 나란하니 이것이 가리지 않음의 복이다.

聖人知心術之患,見蔽塞之禍,故無欲、無惡、無始、無終、無近、無遠、無博、無淺、無古、無今,兼陳萬物而中縣衡焉。是故眾異不得相蔽以亂其倫也。

성인은 마음 쓰는 재주의 근심을 알고 가려 막힌 재앙을 보았다. 그러므로 바람도 없고 미움도 없고 처음도 없고 마침도 없고 가까움도 없고 멂도 없고 넓음도 없고 얕음도 없고 옛것도 없고 지금 것도 없이, 만물을 아울러 벌여 놓고 그 가운데 저울을 단다. 그러므로 뭇 다른 것들이 서로 가려 그 차례를 어지럽히지 못한다.

何謂衡?曰:道。故心不可以不知道;心不知道,則不可道,而可非道。人孰欲得恣,而守其所不可,以禁其所可?以其不可道之心取人,則必合於不道人,而不合於道人。以其不可道之心與不道人論道人,亂之本也。夫何以知?曰:心知道,然後可道;可道然後守道以禁非道。以其可道之心取人,則合於道人,而不合於不道之人矣。以其可道之心與道人論非道,治之要也。何患不知?故治之要在於知道。

무엇을 저울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도다.

그러므로 마음은 도를 알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도를 알지 못하면 도를 옳다 하지 못하고 도 아닌 것을 옳다 한다. 사람이 누가 마음대로 하기를 바라면서 제가 옳다 하지 않는 것을 지켜 제가 옳다 하는 것을 금하겠는가.

그 도를 옳다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취하면 반드시 도 없는 사람과 맞고 도 있는 사람과 맞지 않는다. 그 도를 옳다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도 없는 사람과 더불어 도 있는 사람을 논하는 것이 어지러움의 밑동이다.

무엇으로 아는가. 말하기를, 마음이 도를 안 뒤에야 도를 옳다 하고, 도를 옳다 한 뒤에야 도를 지켜 도 아닌 것을 금한다. 그 도를 옳다 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취하면 도 있는 사람과 맞고 도 없는 사람과 맞지 않는다. 그 도를 옳다 하는 마음으로 도 있는 사람과 더불어 도 아닌 것을 논하는 것이 다스림의 요긴함이다. 무엇을 알지 못할까 근심하겠는가. 그러므로 다스림의 요긴함은 도를 아는 데 있다.

人何以知道?曰:心。心何以知?曰:虛壹而靜。心未嘗不臧也,然而有所謂虛;心未嘗不兩也,然而有所謂壹;心未嘗不動也,然而有所謂靜。人生而有知,知而有志;志也者,臧也;然而有所謂虛;不以所已臧害所將受謂之虛。心生而有知,知而有異;異也者,同時兼知之;同時兼知之,兩也;然而有所謂一;不以夫一害此一謂之壹。心臥則夢,偷則自行,使之則謀;故心未嘗不動也;然而有所謂靜;不以夢劇亂知謂之靜。未得道而求道者,謂之虛壹而靜。作之:則將須道者之虛則人,將事道者之壹則盡,盡將思道者靜則察。知道察,知道行,體道者也。虛壹而靜,謂之大清明。萬物莫形而不見,莫見而不論,莫論而失位。坐於室而見四海,處於今而論久遠。疏觀萬物而知其情,參稽治亂而通其度,經緯天地而材官萬物,制割大理而宇宙裡矣。恢恢廣廣,孰知其極?睪睪廣廣,孰知其德?涫涫紛紛,孰知其形?明參日月,大滿八極,夫是之謂大人。夫惡有蔽矣哉!

사람은 무엇으로 도를 아는가. 말하기를, 마음이다. 마음은 무엇으로 아는가. 말하기를, 비고 하나 되고 고요함이다.

마음은 일찍이 간직하지 않은 적이 없으나 이른바 빔이 있고, 마음은 일찍이 둘이 아닌 적이 없으나 이른바 하나 됨이 있고, 마음은 일찍이 움직이지 않은 적이 없으나 이른바 고요함이 있다.

사람이 나면서 앎이 있고 알면 새김이 있다. 새김이란 간직함이다. 그런데도 이른바 빔이 있으니, 이미 간직한 것으로 장차 받을 것을 해치지 않음을 빔이라 한다.

마음이 나면서 앎이 있고 알면 다름이 있다. 다름이란 한때에 아울러 아는 것이다. 한때에 아울러 아는 것이 둘이다. 그런데도 이른바 하나가 있으니, 저 하나로 이 하나를 해치지 않음을 하나 됨이라 한다.

마음은 누우면 꿈꾸고 게으르면 절로 다니고 부리면 꾀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일찍이 움직이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른바 고요함이 있으니, 꿈과 어지러움으로 앎을 어지럽히지 않음을 고요함이라 한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하고 도를 구하는 이에게 비고 하나 되고 고요하라 이른다. 이를 지으면, 장차 도를 기다리는 이는 비어야 들어가고, 도를 섬기려는 이는 하나 되어야 다하고, 도를 생각하려는 이는 고요해야 살핀다. 도를 알아 살피고 도를 알아 행하면 도를 몸으로 삼은 이다.

비고 하나 되고 고요함을 크게 맑고 밝음이라 한다. 만물이 꼴을 이루고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보이고 논해지지 않는 것이 없고, 논해지고 제자리를 잃는 것이 없다. 방에 앉아 사해를 보고 지금에 있으면서 아득한 옛날을 논한다. 만물을 두루 보아 그 정을 알고,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을 견주어 살펴 그 법도에 통하고, 하늘과 땅을 날실 씨실로 삼아 만물을 마름질하여 벼슬 주고, 큰 이치를 갈라 마름질하니 우주가 다스려진다.

넓고 넓으니 누가 그 끝을 알며, 크고 크니 누가 그 덕을 알며, 끓고 어지러우니 누가 그 꼴을 알겠는가. 밝기가 해와 달에 나란하고 크기가 여덟 끝에 가득 차니, 무릇 이를 큰 사람이라 한다. 무릇 어찌 가림이 있겠는가.

心者,形之君也,而神明之主也,出令而無所受令。自禁也,自使也,自奪也,自取也,自行也,自止也。故口可劫而使墨云,形可劫而使詘申,心不可劫而使易意,是之則受,非之則辭。故曰:心容--其擇也無禁,必自現,其物也雜博,其情之至也不貳。詩云:「采采卷耳,不盈傾筐。嗟我懷人,寘彼周行。」傾筐易滿也,卷耳易得也,然而不可以貳周行。故曰:心枝則無知,傾則不精,貳則疑惑。以贊稽之,萬物可兼知也。身盡其故則美。類不可兩也,故知者擇一而壹焉。

마음이란 꼴의 임금이요 신명의 주인이다. 명을 내되 받는 데가 없다. 스스로 금하고 스스로 부리고 스스로 빼앗고 스스로 취하고 스스로 다니고 스스로 그친다.

그러므로 입은 힘으로 눌러 잠잠하게 하거나 말하게 할 수 있고, 몸은 힘으로 눌러 굽히거나 펴게 할 수 있으나, 마음은 힘으로 눌러 뜻을 바꾸게 할 수 없다. 옳다 하면 받고 그르다 하면 물리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마음이 품는 것은 그 가림에 막힘이 없어 반드시 스스로 드러나고, 그 물건이 뒤섞여 넓되 그 정이 지극하면 둘이 되지 않는다 한다.

「시」에 이르기를 「도꼬마리를 캐고 캐도 기운 광주리에 차지 않네. 아,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여 저 큰길에 놓아두네」 하였다. 기운 광주리는 채우기 쉽고 도꼬마리는 얻기 쉬우나, 큰길에 마음을 둘로 나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마음이 갈라지면 앎이 없고 기울면 정밀하지 않고 둘이 되면 의심하고 헷갈린다 한다. 도움으로 견주어 살피면 만물을 아울러 알 수 있다. 몸이 그 까닭을 다하면 아름답다. 갈래는 둘이 될 수 없으므로 슬기로운 이는 하나를 가려 하나로 한다.

農精於田,而不可以為田師;賈精於市,而不可以為市師;工精於器,而不可以為器師。有人也,不能此三技,而可使治三官。曰:精於道者也。精於物者也。精於物者以物物,精於道者兼物物。故君子壹於道,而以贊稽物。壹於道則正,以贊稽物則察;以正志行察論,則萬物官矣。昔者舜之治天下也,不以事詔而萬物成。處一危之,其榮滿側;養一之微,榮矣而未知。故道經曰:「人心之危,道心之微。」危微之幾,惟明君子而後能知之。故人心譬如槃水,正錯而勿動,則湛濁在下,而清明在上,則足以見鬒眉而察理矣。微風過之,湛濁動乎下,清明亂於上,則不可以得大形之正也。心亦如是矣。故導之以理,養之以清,物莫之傾,則足以定是非決嫌疑矣。小物引之,則其正外易,其心內傾,則不足以決麤理矣。故好書者眾矣,而倉頡獨傳者,壹也;好稼者眾矣,而后稷獨傳者,壹也。好樂者眾矣,而夔獨傳者,壹也;好義者眾矣,而舜獨傳者,壹也。倕作弓,浮游作矢,而羿精於射;奚仲作車,乘杜作乘馬,而造父精於御:自古及今,未嘗有兩而能精者也。曾子曰:「是其庭可以搏鼠,惡能與我歌矣!」

농부는 밭에 정밀하나 밭의 스승이 될 수 없고, 장사꾼은 저자에 정밀하나 저자의 스승이 될 수 없고, 장인은 그릇에 정밀하나 그릇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있어 이 세 재주에 능하지 못하면서도 세 벼슬을 다스리게 할 수 있다. 말하기를, 도에 정밀한 이다. 물건에 정밀한 이는 물건으로 물건을 다루고, 도에 정밀한 이는 물건을 아울러 다룬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에 하나 되고 그로써 물건을 도와 견주어 살핀다. 도에 하나 되면 바르고 물건을 도와 견주어 살피면 밝다. 바른 뜻으로 밝은 논함을 행하면 만물이 벼슬을 얻는다.

옛날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일마다 이르지 않아도 만물이 이루어졌다. 하나에 머물러 위태롭게 여기니 그 영화가 곁에 가득하고, 하나를 길러 작게 하니 영화로우면서도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도경(道經)」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작다」 하였다. 위태롭고 작은 기미는 오직 밝은 군자라야 능히 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비유하면 소반의 물과 같다. 바로 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흐린 것이 아래에 가라앉고 맑은 것이 위에 있어, 수염과 눈썹을 보고 결을 살필 수 있다. 작은 바람이 지나가면 흐린 것이 아래에서 움직이고 맑은 것이 위에서 어지러워져 큰 꼴의 바름도 얻을 수 없다. 마음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이치로 이끌고 맑음으로 길러 물건이 기울이지 못하면 옳고 그름을 정하고 의심스러움을 끊기에 넉넉하다. 작은 물건이 끌면 그 바름이 밖에서 바뀌고 그 마음이 안에서 기울어 거친 이치조차 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글을 좋아한 이가 많았으나 창힐만이 전해진 것은 하나였기 때문이요, 농사를 좋아한 이가 많았으나 후직만이 전해진 것은 하나였기 때문이요, 악을 좋아한 이가 많았으나 기(夔)만이 전해진 것은 하나였기 때문이요, 옳음을 좋아한 이가 많았으나 순임금만이 전해진 것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수(倕)가 활을 짓고 부유(浮游)가 화살을 지었으나 예(羿)가 쏘기에 정밀하였고, 해중(奚仲)이 수레를 짓고 승두(乘杜)가 네 마리 말 메는 법을 지었으나 조보가 몰기에 정밀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둘을 하면서 정밀할 수 있은 이는 일찍이 있지 않았다.

증자가 말하였다. 「그 뜰이 쥐를 잡을 만하니 어찌 나와 노래할 수 있겠는가.」

空石之中有人焉,其名曰觙。其為人也,善射以好思。耳目之欲接,則敗其思;蚊虻之聲聞,則挫其精。是以闢耳目之欲,而遠蚊虻之聲,閑居靜思則通。思仁若是,可謂微乎?孟子惡敗而出妻,可謂能自彊矣,未及思也;有子惡臥而焠掌,可謂能自忍矣;未及好也。闢耳目之欲,遠蚊虻之聲,可謂危矣;未可謂微也。夫微者,至人也。至人也,何忍!何彊!何危!故濁明外景,清明內景,聖人縱其欲,兼其情,而制焉者理矣;夫何彊!何忍!何危!故仁者之行道也,無為也;聖人之行道也,無彊也。仁者之思也恭,聖者之思也樂。此治心之道也。

빈 돌 가운데 사람이 있어 이름을 급(觙)이라 하였다. 그 사람됨이 활을 잘 쏘고 생각하기를 좋아하였다. 귀와 눈의 바람이 닿으면 그 생각이 무너지고 모기와 등에 소리가 들리면 그 정밀함이 꺾였다. 그래서 귀와 눈의 바람을 물리치고 모기와 등에 소리를 멀리하고 한가로이 앉아 고요히 생각하면 통하였다.

어짊을 생각함이 이와 같으면 작다 이를 만한가. 맹자가 무너짐을 미워하여 아내를 내보낸 것은 능히 스스로 굳세다 이를 만하나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고, 유자(有子)가 잠을 미워하여 손바닥을 지진 것은 능히 스스로 참았다 이를 만하나 좋아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귀와 눈의 바람을 물리치고 모기와 등에 소리를 멀리한 것은 위태롭다 이를 만하나 작다 이를 수는 없다.

무릇 작은 이는 지극한 사람이다. 지극한 사람이 무엇을 참으며 무엇을 굳세게 하며 무엇을 위태로이 여기겠는가. 그러므로 흐리고 밝은 것은 밖으로 비추고 맑고 밝은 것은 안으로 비춘다. 성인은 그 바람을 놓아두고 그 정을 아우르되 마름질함이 이치에 맞다. 무릇 무엇을 굳세게 하며 무엇을 참으며 무엇을 위태로이 여기겠는가.

그러므로 어진 이가 도를 행함은 함이 없고 성인이 도를 행함은 굳셈이 없다. 어진 이의 생각은 공손하고 성인의 생각은 즐겁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도다.

凡觀物有疑,中心不定,則外物不清。吾慮不清,未可定然否也。冥冥而行者,見寢石以為伏虎也,見植林以為後人也:冥冥蔽其明也。醉者越百步之溝,以為蹞步之澮也;俯而出城門,以為小之閨也:酒亂其神也。厭目而視者,視一為兩;掩耳而聽者,聽漠漠而以為哅哅:埶亂其官也。故從山上望牛者若羊,而求羊者不下牽也:遠蔽其大也。從山下望木者,十仞之木若箸,而求箸者不上折也:高蔽其長也。水動而景搖,人不以定美惡:水埶玄也。瞽者仰視而不見星,人不以定有無:用精惑也。有人焉以此時定物,則世之愚者也。彼愚者之定物,以疑決疑,決必不當。夫苟不當,安能無過乎?

무릇 물건을 보는 데 의심이 있어 속마음이 정해지지 않으면 바깥 물건이 맑지 않다. 내 헤아림이 맑지 않으면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을 정할 수 없다.

어둑한 데서 다니는 이는 누운 돌을 보고 엎드린 범이라 하고 선 숲을 보고 뒤따르는 사람이라 하니, 어둑함이 그 밝음을 가린 것이다.

취한 이는 백 걸음 도랑을 뛰면서 반걸음 개울인 줄 알고 굽혀 성문을 나가면서 작은 쪽문인 줄 아니, 술이 그 신을 어지럽힌 것이다.

눈을 눌러 보는 이는 하나를 둘로 보고 귀를 막고 듣는 이는 조용한 것을 시끄럽다 하니, 형세가 그 벼슬아치를 어지럽힌 것이다.

그러므로 산 위에서 소를 바라보면 양 같으나 양을 구하는 이가 내려가 끌지 않으니 멂이 그 큼을 가린 것이요, 산 아래에서 나무를 바라보면 열 길 나무가 젓가락 같으나 젓가락을 구하는 이가 올라가 꺾지 않으니 높음이 그 길이를 가린 것이다.

물이 움직여 그림자가 흔들려도 사람이 그것으로 곱고 미움을 정하지 않으니 물의 형세가 그윽하기 때문이요, 눈먼 이가 우러러보아 별을 보지 못해도 사람이 그것으로 있고 없음을 정하지 않으니 그 정밀함 씀이 홀렸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때에 물건을 정한다면 세상의 어리석은 이다. 저 어리석은 이가 물건을 정하는 것은 의심으로 의심을 끊는 것이니 끊음이 반드시 마땅하지 않다. 무릇 진실로 마땅하지 않으면 어찌 허물이 없겠는가.

夏首之南有人焉;曰涓蜀梁。其為人也,愚而善畏。明月而宵行,俯見其影,以為伏鬼也;仰視其髮,以為立魅也。背而走,比至其家,失氣而死。豈不哀哉!凡人之有鬼也,必以其感忽之間,疑玄之時定之。此人之所以無有而有無之時也,而己以定事。故傷於濕而痺,痺而擊鼓烹豚,則必有敝鼓喪豚之費矣,而未有俞疾之福也。故雖不在夏首之南,則無以異矣。

하수(夏首)의 남쪽에 사람이 있어 연촉량(涓蜀梁)이라 하였다. 그 사람됨이 어리석고 겁이 많았다. 밝은 달에 밤길을 가다가 굽어 제 그림자를 보고 엎드린 귀신이라 하고, 우러러 제 머리털을 보고 선 도깨비라 하였다. 등지고 달아나 제 집에 이르러 기운을 잃고 죽었다. 어찌 슬프지 않은가.

무릇 사람에게 귀신이 있다 하는 것은 반드시 그 어렴풋한 사이와 의심스럽고 그윽한 때에 정한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없는 것을 있다 하고 있는 것을 없다 하는 때인데, 제가 이로써 일을 정한다.

그러므로 축축한 데 다쳐 저리면, 저리다고 북을 치고 돼지를 삶으면 반드시 북이 해지고 돼지를 잃는 비용이 있을 뿐 병이 낫는 복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비록 하수의 남쪽에 있지 않아도 다를 것이 없다.

凡以知,人之性也;可以知,物之理也。以可以知人之性,求可以知物之理,而無所疑止之,則沒世窮年不能無也。其所以貫理焉雖億萬,已不足浹萬物之變,與愚者若一。學、老身長子,而與愚者若一,猶不知錯,夫是之謂妄人。故學也者,固學止之也。惡乎止之?曰:止諸至足。曷謂至足?曰:聖王。聖也者,盡倫者也;王也者,盡制者也;兩盡者,足以為天下極矣。故學者以聖王為師,案以聖王之制為法,法其法以求其統類,以務象效其人。嚮是而務,士也;類是而幾,君子也;知之,聖人也。故有知非以慮是,則謂之懼;有勇非以持是,則謂之賊;察孰非以分是,則謂之篡;多能非以脩蕩是,則謂之知;辯利非以言是,則謂之詍。傳曰:「天下有二:非察是,是察非。」謂合王制不合王制也。天下不以是為隆正也,然而猶有能分是非、治曲直者邪?

무릇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성품이요, 알 수 있는 대상은 물건의 이치다. 알 수 있는 사람의 성품으로 알 수 있는 물건의 이치를 구하되 의심하여 그칠 데가 없으면, 세상이 다하고 해가 다하도록 능히 다하지 못한다.

그 이치를 꿴 것이 비록 억만이라도 만물의 달라짐을 두루 적실 수 없어 어리석은 이와 하나 같다. 배워 몸이 늙고 자식이 자라도록 하되 어리석은 이와 하나 같고 오히려 그칠 줄 모르면, 무릇 이를 망령된 사람이라 한다.

그러므로 배움이란 본디 그칠 데를 배우는 것이다. 어디서 그치는가. 말하기를, 지극히 넉넉한 데서 그친다. 무엇을 지극히 넉넉하다 하는가. 말하기를, 거룩한 임금이다. 거룩함이란 차례를 다한 것이요 임금이란 제도를 다한 것이니, 둘을 다하면 천하의 끝이 될 만하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거룩한 임금을 스승 삼고 거룩한 임금의 제도를 법 삼으며, 그 법을 법 삼아 그 벼리와 갈래를 구하고 그 사람을 본떠 닮기에 힘쓴다. 이를 향해 힘쓰면 선비요, 이를 닮아 가까우면 군자요, 이를 알면 성인이다.

그러므로 앎이 있되 옳음을 헤아리는 데 쓰지 않으면 이를 두려움이라 하고, 날램이 있되 옳음을 붙드는 데 쓰지 않으면 이를 해침이라 하고, 살피고 익히되 옳음을 가르는 데 쓰지 않으면 이를 찬탈이라 하고, 능함이 많되 옳음을 닦아 넓히는 데 쓰지 않으면 이를 약음이라 하고, 말이 밝고 날카롭되 옳음을 말하는 데 쓰지 않으면 이를 수다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천하에 둘이 있으니 그름으로 옳음을 살피고 옳음으로 그름을 살핀다」 하였다. 왕의 제도에 맞고 맞지 않음을 이름이다. 천하가 이를 받듦의 바름으로 삼지 않는데도 오히려 능히 옳고 그름을 가르고 굽고 곧음을 다스릴 이가 있겠는가.

若夫非分是非,非治曲直,非辨治亂,非治人道,雖能之無益於人,不能無損於人;案直將治怪說,玩奇辭,以相撓滑也;案彊鉗而利口,厚顏而忍詬,無正而恣孳,妄辨而幾利;不好辭讓,不敬禮節,而好相推擠:此亂世姦人之說也,則天下之治說者,方多然矣。傳曰:「析辭而為察,言物而為辨,君子賤之。博聞彊志,不合王制,君子賤之。」此之謂也。

무릇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도 아니고, 굽고 곧음을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을 가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도리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면, 비록 능해도 남에게 보탬이 없고 능하지 못해도 남에게 덜함이 없다.

다만 곧바로 괴이한 말을 다루고 기이한 말을 가지고 놀며 서로 흔들어 어지럽힐 뿐이다. 억지로 입을 놀리고 낯이 두꺼워 꾸지람을 견디며, 바름이 없이 제멋대로 하고 함부로 따져 이로움을 노린다. 사양을 좋아하지 않고 예와 마디를 공경하지 않으며 서로 밀치기를 좋아한다. 이는 어지러운 세상 간사한 이의 말인데, 천하에 다스림을 말한다는 이들이 바야흐로 이런 이가 많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말을 쪼개어 살핌으로 삼고 물건을 말하여 가림으로 삼는 것을 군자가 천히 여긴다. 널리 듣고 굳게 새겨도 왕의 제도에 맞지 않으면 군자가 천히 여긴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為之無益於成也,求之無益於得也,憂戚之無益於幾也,則廣焉能棄之矣,不以自妨也,不少頃干之胸中。不慕往,不閔來,無邑憐之心,當時則動,物至而應,事起而辨,治亂可否,昭然明矣。

하여도 이룸에 보탬이 없고, 구하여도 얻음에 보탬이 없고, 근심하고 서러워하여도 기미에 보탬이 없으면, 넓게 능히 그것을 버리고 스스로 방해하지 않으며 잠시도 가슴속에 두지 않는다.

지난 것을 그리워하지 않고 올 것을 근심하지 않으며 서럽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다. 때를 만나면 움직이고 물건이 이르면 응하고 일이 일어나면 가리니, 다스려짐과 어지러움과 옳고 그름이 환히 밝다.

周而成,泄而敗,明君無之有也。宣而成,隱而敗,闇君無之有也。故人君者,周則讒言至矣,直言反矣;小人邇而君子遠矣!詩云:「墨以為明,狐狸而蒼。」此言上幽而下險也。君人者,宣則直言至矣,而讒言反矣;君子邇而小人遠矣!詩云:「明明在下,赫赫在上。」此言上明而下化也。

두루 감추어 이루어지고 새어 무너지는 것은 밝은 임금에게는 있지 않다. 펴서 이루어지고 숨겨 무너지는 것은 어두운 임금에게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임금이 두루 감추면 헐뜯는 말이 이르고 곧은 말이 돌아서니, 소인이 가까워지고 군자가 멀어진다. 「시」에 이르기를 「검은 것을 밝다 하고 여우와 삵을 푸르다 하네」 하였으니, 이는 위가 그윽하고 아래가 험함을 말한 것이다.

임금 노릇 하는 이가 펴면 곧은 말이 이르고 헐뜯는 말이 돌아서니, 군자가 가까워지고 소인이 멀어진다. 「시」에 이르기를 「밝고 밝음이 아래에 있고 빛나고 빛남이 위에 있네」 하였으니, 이는 위가 밝고 아래가 달라짐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