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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名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20 · 한자 3,067자 · 낭독 12.3분

「순자」 정명 「正名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後王之成名:刑名從商,爵名從周,文名從禮,散名之加於萬物者,則從諸夏之成俗曲期,遠方異俗之鄉,則因之而為通。

뒷임금이 이름을 이룬 법은 이러하다. 형벌의 이름은 상나라를 따르고, 벼슬의 이름은 주나라를 따르고, 꾸밈의 이름은 예를 따른다. 만물에 붙이는 흩어진 이름은 여러 하(夏)나라의 이룬 풍속과 굽이굽이 약속한 것을 따르고, 먼 데 풍속이 다른 고장은 그에 말미암아 통하게 한다.

散名之在人者:生之所以然者謂之性;性之和所生,精合感應,不事而自然謂之性。性之好、惡、喜、怒、哀、樂謂之情。情然而心為之擇謂之慮。心慮而能為之動謂之偽;慮積焉,能習焉,而後成謂之偽。正利而為謂之事。正義而為謂之行。所以知之在人者謂之知;知有所合謂之智。所以能之在人者謂之能;能有所合謂之能。性傷謂之病。節遇謂之命:是散名之在人者也,是後王之成名也。

사람에게 있는 흩어진 이름은 이러하다.

나면서 그러한 바를 성품이라 한다. 성품의 어우러짐이 낳는 바로, 알맹이가 어울려 느끼고 응하여 일삼지 않아도 저절로 그러한 것을 성품이라 한다.

성품의 좋아함과 미워함과 기뻐함과 성냄과 슬퍼함과 즐거워함을 정이라 한다. 정이 그러한데 마음이 이를 가리는 것을 헤아림이라 한다. 마음이 헤아리고 능함이 이를 위해 움직이는 것을 지어냄이라 한다. 헤아림이 쌓이고 능함이 익은 뒤에 이루어지는 것을 지어냄이라 한다.

이로움을 바로 하여 하는 것을 일이라 하고, 옳음을 바로 하여 하는 것을 행실이라 한다.

아는 바탕이 사람에게 있는 것을 앎이라 하고, 앎이 맞는 바가 있는 것을 슬기라 한다. 능한 바탕이 사람에게 있는 것을 능함이라 하고, 능함이 맞는 바가 있는 것을 능함이라 한다.

성품이 다치는 것을 병이라 하고, 때에 마주치는 것을 운명이라 한다.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흩어진 이름이요 뒷임금이 이름을 이룬 것이다.

故王者之制名,名定而實辨,道行而志通,則慎率民而一焉。故析辭擅作名,以亂正名,使民疑惑,人多辨訟,則謂之大姦。其罪猶為符節度量之罪也。故其民莫敢託為奇辭以亂正名,故其民愨;愨則易使,易使則公。其民莫敢託為奇辭以亂正名,故壹於道法,而謹於循令矣。如是則其跡長矣。跡長功成,治之極也。是謹於守名約之功也。今聖王沒,名守慢,奇辭起,名實亂,是非之形不明,則雖守法之吏,誦數之儒,亦皆亂也。若有王者起,必將有循於舊名,有作於新名。然則所為有名,與所緣以同異,與制名之樞要,不可不察也。

그러므로 왕 노릇 하는 이가 이름을 마름질하매, 이름이 정해지면 알맹이가 가려지고 도가 행해지면 뜻이 통하니 삼가 백성을 이끌어 하나로 한다.

그러므로 말을 쪼개고 제멋대로 이름을 지어 바른 이름을 어지럽히고 백성으로 하여금 의심하고 헷갈리게 하여 사람이 따지고 다투는 일이 많아지면, 이를 큰 간사함이라 한다. 그 죄가 부절과 되와 자를 속인 죄와 같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감히 기이한 말을 지어 바른 이름을 어지럽히지 못하니 그 백성이 도탑다. 도타우면 부리기 쉽고 부리기 쉬우면 공이 이루어진다. 그 백성이 감히 기이한 말을 지어 바른 이름을 어지럽히지 못하므로 도와 법에 하나 되고 명을 좇음에 삼간다. 이와 같으면 그 자취가 길다. 자취가 길고 공이 이루어지는 것이 다스림의 끝이다. 이것이 이름의 약속을 지키는 데 삼간 공이다.

이제 거룩한 임금이 없어져 이름 지킴이 게을러지고 기이한 말이 일어나 이름과 알맹이가 어지럽고 옳고 그름의 꼴이 밝지 않으니, 비록 법을 지키는 아전과 셈을 외는 선비라도 다 어지럽다.

만일 왕 노릇 하는 이가 일어나면 반드시 옛 이름을 좇는 것도 있고 새 이름을 짓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즉 이름을 두는 까닭과 같고 다름을 말미암는 바와 이름을 마름질하는 지도리와 요긴함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異形離心交喻,異物名實玄紐,貴賤不明,同異不別;如是,則志必有不喻之患,而事必有困廢之禍。故知者為之分別制名以指實,上以明貴賤,下以辨同異。貴賤明,同異別,如是則志無不喻之患,事無困廢之禍,此所為有名也。

꼴이 다르고 마음이 떨어져 서로 깨우치며, 다른 물건의 이름과 알맹이가 그윽이 얽히고, 귀하고 천함이 밝지 않고 같고 다름이 갈리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뜻에 반드시 깨우치지 못하는 근심이 있고 일에 반드시 막히고 무너지는 재앙이 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가 그를 위하여 갈라 이름을 마름질하여 알맹이를 가리키니, 위로는 귀하고 천함을 밝히고 아래로는 같고 다름을 가린다. 귀하고 천함이 밝고 같고 다름이 갈리면, 뜻에 깨우치지 못하는 근심이 없고 일에 막히고 무너지는 재앙이 없다. 이것이 이름을 두는 까닭이다.

然則何緣而以同異?曰:緣天官。凡同類同情者,其天官之意物也同。故比方之疑似而通,是所以共其約名以相期也。形體、色理以目異;聲音清濁、調竽、奇聲以耳異;甘、苦、鹹、淡、辛、酸、奇味以口異;香、臭、芬、鬱、腥、臊、漏庮、奇臭以鼻異;疾、癢、凔、熱、滑、鈹、輕、重以形體異;說、故、喜、怒、哀、樂、愛、惡、欲以心異。心有徵知。徵知,則緣耳而知聲可也,緣目而知形可也。然而徵知必將待天官之當簿其類,然後可也。五官簿之而不知,心徵知而無說,則人莫不然謂之不知。此所緣而以同異也。

그러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같고 다르게 하는가. 말하기를, 하늘이 준 벼슬아치로 말미암는다.

무릇 같은 무리로서 같은 정을 지닌 것은 그 하늘이 준 벼슬아치가 물건을 뜻하는 바가 같다. 그러므로 견주어 비슷한 것으로 통하니, 이것이 그 약속한 이름을 함께하여 서로 기약하는 까닭이다.

꼴과 몸과 빛깔과 결은 눈으로 가리고, 소리의 맑고 흐림과 가락과 기이한 소리는 귀로 가리고, 달고 쓰고 짜고 싱겁고 맵고 시고 기이한 맛은 입으로 가리고, 향기와 냄새와 꽃다움과 짙음과 비린내와 누린내와 썩은내와 기이한 냄새는 코로 가리고, 아프고 가렵고 차고 뜨겁고 미끄럽고 껄끄럽고 가볍고 무거움은 몸으로 가리고, 기쁨과 까닭과 성냄과 슬픔과 즐거움과 사랑과 미움과 바람은 마음으로 가린다.

마음에는 부르는 앎이 있다. 부르는 앎이 있으면 귀로 말미암아 소리를 아는 것이 되고 눈으로 말미암아 꼴을 아는 것이 된다. 그러나 부르는 앎은 반드시 하늘이 준 벼슬아치가 그 무리를 적어 대기를 기다린 뒤에야 된다. 다섯 벼슬아치가 적었는데도 알지 못하고 마음이 불러 알되 말이 없으면, 사람이 이를 알지 못한다 하지 않는 이가 없다. 이것이 말미암아 같고 다르게 하는 바다.

然後隨而命之,同則同之,異則異之。單足以喻則單,單不足以喻則兼;單與兼無所相避則共;雖共不為害矣。知異實者之異名也,故使異實者莫不異名也,不可亂也,猶使同實者莫不同名也。

그런 뒤에 따라 이름 붙이니 같으면 같이하고 다르면 달리한다. 홑으로 깨우칠 수 있으면 홑으로 하고, 홑으로 깨우칠 수 없으면 아울러 한다. 홑과 아우름이 서로 피할 바가 없으면 함께하니, 비록 함께하여도 해로울 것이 없다.

알맹이가 다른 것은 이름이 다른 줄을 알므로, 알맹이가 다른 것으로 하여금 이름이 다르지 않은 것이 없게 하여 어지럽힐 수 없게 한다. 알맹이가 같은 것으로 하여금 이름이 같지 않은 것이 없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故萬物雖眾,有時而欲無舉之,故謂之物;物也者,大共名也。推而共之,共則有共,至於無共然後止。有時而欲偏舉之,故謂之鳥獸。鳥獸也者,大別名也。推而別之,別則有別,至於無別然後至。

그러므로 만물이 비록 많으나 때로는 다 들지 않으려 하므로 물건이라 이르니, 물건이란 크게 함께하는 이름이다. 밀어서 함께하고 함께하면 또 함께함이 있어, 함께할 것이 없는 데 이른 뒤에야 그친다.

때로는 치우쳐 들려 하므로 새와 짐승이라 이르니, 새와 짐승이란 크게 가르는 이름이다. 밀어서 가르고 가르면 또 가름이 있어, 가를 것이 없는 데 이른 뒤에야 그친다.

名無固宜,約之以命,約定俗成謂之宜,異於約則謂之不宜。名無固實,約之以命實,約定俗成,謂之實名。名有固善,徑易而不拂,謂之善名。

이름에 본디 마땅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여 이름 붙이니, 약속이 정해지고 풍속이 이루어진 것을 마땅하다 하고 약속과 다른 것을 마땅하지 않다 한다.

이름에 본디 알맹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여 알맹이를 이름 붙이니, 약속이 정해지고 풍속이 이루어진 것을 알맹이의 이름이라 한다.

이름에 본디 좋음이 있으니, 곧고 쉬워 거스르지 않으면 좋은 이름이라 한다.

物有同狀而異所者,有異狀而同所者,可別也。狀同而為異所者,雖可合,謂之二實。狀變而實無別而為異者,謂之化。有化而無別,謂之一實。此事之所以稽實定數也。此制名之樞要也。後王之成名,不可不察也。

물건에는 모양이 같되 자리가 다른 것이 있고 모양이 다르되 자리가 같은 것이 있으니 가를 수 있다. 모양이 같되 자리가 다른 것은 비록 아우를 수 있어도 두 알맹이라 한다. 모양이 달라졌으되 알맹이가 갈리지 않고 달라진 것을 달라짐이라 한다. 달라짐이 있되 가름이 없으면 한 알맹이라 한다. 이것이 일에서 알맹이를 살피고 셈을 정하는 바다. 이것이 이름을 마름질하는 지도리와 요긴함이니, 뒷임금이 이름을 이룬 것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見侮不辱」,「聖人不愛己」,「殺盜非殺人也」,此惑於用名以亂名者也。驗之所為有名,而觀其孰行,則能禁之矣。「山淵平」,「情欲寡」,「芻豢不加甘,大鐘不加樂」,此惑於用實,以亂名者也。驗之所緣以同異,而觀其孰調,則能禁之矣。「非而謁楹」,「有牛馬非馬也,」此惑於用名以亂實者也。驗之名約,以其所受,悖其所辭,則能禁之矣。

「업신여김을 당해도 욕되지 않다」, 「성인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 「도둑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 이는 이름을 써서 이름을 어지럽히는 데 홀린 것이다. 이름을 두는 까닭에 견주어 어느 것이 통하는지 보면 능히 금할 수 있다.

「산과 못이 평평하다」, 「정은 바람이 적다」, 「고기가 더 달지 않고 큰 종이 더 즐겁지 않다」 — 이는 알맹이를 써서 이름을 어지럽히는 데 홀린 것이다. 같고 다름을 말미암는 바에 견주어 어느 것이 고른지 보면 능히 금할 수 있다.

「기둥을 가리키는 것이 그르다」, 「소와 말이 있는 것은 말이 아니다」 — 이는 이름을 써서 알맹이를 어지럽히는 데 홀린 것이다. 이름의 약속에 견주어 그 받아들이는 바로 그 물리치는 바를 거스르게 하면 능히 금할 수 있다.

凡邪說辟言之離正道而擅作者,無不類於三惑者矣。故明君知其分而不與辨也。夫民易一以道,而不可與共故。故明君臨之以埶,道之以道,申之以命,章之以論,禁之以刑。故民之化道也如神,辨說惡用矣哉!今聖王沒,天下亂,姦言起,君子無埶以臨之,無刑以禁之,故辨說也。實不喻,然後命,命不喻,然後期,期不喻,然後說,說不喻,然後辨。故期命辨說也者,用之大文也,而王業之始也。名聞而實喻,名之用也。累而成文,名之麗也。用麗俱得,謂之知名。名也者,所以期累實也。辭也者,兼異實之名以論一意也。辨說也者,不異實名以喻動靜之道也。期命也者,辨說之用也。辨說也者,心之象道也。心也者,道之工宰也。道也者,治之經理也。心合於道,說合於心,辭合於說。正名而期,質請而喻,辨異而不過,推類而不悖。聽則合文,辨則盡故。以正道而辨姦,猶引繩以持曲直。是故邪說不能亂,百家無所竄。有兼聽之明,而無矜奮之容;有兼覆之厚,而無伐德之色。說行則天下正,說不行則白道而冥窮。是聖人之辨說也。詩曰:「顒顒卬卬,如圭如璋,令聞令望,豈弟君子,四方為綱。」此之謂也。

무릇 그릇된 말과 치우친 말이 바른 도를 떠나 제멋대로 지어진 것은 이 세 홀림에 붙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그 갈림을 알아 더불어 따지지 않는다.

무릇 백성은 도로 하나 되게 하기는 쉬우나 더불어 그 까닭을 함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형세로 임하고 도로 이끌고 명으로 펴고 논함으로 밝히고 형벌로 금한다. 그러므로 백성이 도에 달라지는 것이 신 같으니 따지고 말함을 어디에 쓰겠는가.

이제 거룩한 임금이 없어져 천하가 어지럽고 간사한 말이 일어나는데, 군자에게 임할 형세가 없고 금할 형벌이 없다. 그러므로 따지고 말한다.

알맹이가 깨우쳐지지 않은 뒤에 이름 붙이고, 이름이 깨우쳐지지 않은 뒤에 기약하고, 기약이 깨우쳐지지 않은 뒤에 말하고, 말이 깨우쳐지지 않은 뒤에 따진다. 그러므로 기약하고 이름 붙이고 따지고 말하는 것은 쓰임의 큰 꾸밈이요 왕업의 처음이다.

이름을 듣고 알맹이가 깨우쳐지는 것이 이름의 쓰임이요, 쌓여 글을 이루는 것이 이름의 고움이다. 쓰임과 고움을 다 얻으면 이름을 안다 한다.

이름이란 알맹이를 쌓아 기약하는 바요, 말이란 알맹이가 다른 이름을 아울러 한 뜻을 논하는 것이요, 따지고 말함이란 알맹이와 이름을 달리하지 않고 움직임과 고요함의 도를 깨우치는 것이요, 기약하고 이름 붙임이란 따지고 말함의 쓰임이다.

따지고 말함이란 마음이 도를 본뜬 것이요, 마음이란 도의 장인이요 다스리는 이며, 도란 다스림의 날실과 이치다. 마음이 도에 맞고 말이 마음에 맞고 말씨가 말에 맞는다.

이름을 바로 하여 기약하고, 바탕을 청하여 깨우치고, 다름을 가리되 지나치지 않고, 무리를 밀되 어그러지지 않는다. 들으면 글에 맞고 따지면 까닭을 다한다. 바른 도로 간사함을 가리는 것은 먹줄을 당겨 굽고 곧음을 붙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릇된 말이 어지럽히지 못하고 백가가 숨을 데가 없다.

아울러 듣는 밝음이 있되 뽐내어 떨치는 낯빛이 없고, 아울러 덮는 두터움이 있되 덕을 자랑하는 낯빛이 없다. 말이 행해지면 천하가 바르고 말이 행해지지 않으면 도를 밝히고 그윽이 물러난다. 이것이 성인의 따지고 말함이다.

「시」에 이르기를 「우러르고 우러러 홀 같고 장 같네. 아름다운 이름과 아름다운 바람이여, 기쁘고 편안한 군자가 사방의 벼리로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辭讓之節得矣,長少之理順矣;忌諱不稱,祅辭不出。以仁心說,以學心聽,以公心辨。不動乎眾人之非譽,不治觀者之耳目,不賂貴者之權埶,不利傳辟者之辭。故能處道而不貳,咄而不奪,利而不流,貴公正而賤鄙爭,是士君子之辨說也。詩曰:「長夜漫兮,永思騫兮,大古之不慢兮,禮義之不愆兮,何恤人之言兮!」此之謂也。

사양하는 마디를 얻고 어른과 아이의 이치를 따르며, 꺼리는 것을 일컫지 않고 요사한 말을 내지 않는다. 어진 마음으로 말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듣고 공변된 마음으로 따진다.

뭇 사람의 헐뜯음과 기림에 움직이지 않고, 보는 이의 귀와 눈을 꾸미지 않고, 귀한 이의 권세에 뇌물을 주지 않고, 옮겨 다니는 이의 말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도에 머물러 두 마음을 두지 않고, 꾸짖음을 받아도 빼앗기지 않고, 이로워도 흐르지 않으며, 공변되고 바름을 귀히 여기고 낮고 다투는 것을 천히 여긴다. 이것이 선비와 군자의 따지고 말함이다.

「시」에 이르기를 「긴 밤이 아득하여라, 길이 허물을 생각하네. 아득한 옛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예와 옳음에 어그러지지 않으니 남의 말을 어찌 근심하랴」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君子之言,涉然而精,俛然而類,差差然而齊。彼正其名,當其辭,以務白其志義者也。彼名辭也者,志義之使也,足以相通,則舍之矣。苟之,姦也。故名足以指實,辭足以見極,則舍之矣。外是者,謂之訒,是君子之所棄,而愚者拾以為己寶。故愚者之言,芴然而粗,嘖然而不類,誻誻然而沸,彼誘其名,眩其辭,而無深於其志義者也。故窮藉而無極,甚勞而無功,貪而無名。故知者之言也,慮之易知也,行之易安也,持之易立也,成則必得其所好,而不遇其所惡焉。而愚者反是。詩曰:「為鬼為蜮,則不可得。有靦面目,視人罔極。作此好歌,以極反側。」此之謂也。

군자의 말은 깊이 들어가되 정밀하고, 몸을 낮추되 갈래가 있고, 들쭉날쭉하되 가지런하다. 저이는 그 이름을 바로 하고 그 말을 마땅히 하여 그 뜻과 옳음을 밝히기에 힘쓰는 이다.

저 이름과 말이란 뜻과 옳음의 심부름꾼이라 서로 통하기에 넉넉하면 놓아둔다. 구차히 하는 것은 간사함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알맹이를 가리키기에 넉넉하고 말이 끝을 보이기에 넉넉하면 놓아둔다. 이 밖의 것을 말 더듬음이라 하니, 이는 군자가 버리는 바인데 어리석은 이가 주워 제 보배로 삼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이의 말은 어렴풋하고 거칠며, 시끄럽되 갈래가 없고, 재잘거려 끓는다. 저이는 그 이름에 꾀이고 그 말에 어지러워져 그 뜻과 옳음에 깊음이 없다. 그러므로 다하도록 끌어대도 끝이 없고 몹시 수고로우면서 공이 없고 탐하면서 이름이 없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의 말은 헤아리기 알기 쉽고 행하기 편안하기 쉽고 지키기 서기 쉬우니, 이루면 반드시 그 좋아하는 바를 얻고 그 미워하는 바를 만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이는 이와 거꾸로다.

「시」에 이르기를 「귀신이 되고 물여우가 되면 얻을 수 없으나, 낯이 있어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끝이 없네. 이 좋은 노래를 지어 뒤척임을 다하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凡語治而待去欲者,無以道欲而困於有欲者也。凡語治而待寡欲者,無以節欲而困於多欲者也。有欲無欲,異類也,生死也,非治亂也。欲之多寡,異類也,情之數也,非治亂也。欲不待可得,而求者從所可。欲不待可得,所受乎天也;求者從所可,所受乎心也。所受乎天之一欲,制於所受乎心之多,固難類所受乎天也。人之所欲生甚矣,人之惡死甚矣;然而人有從生成死者,非不欲生而欲死也,不可以生而可以死也。故欲過之而動不及,心止之也。心之所可中理,則欲雖多,奚傷於治?欲不及而動過之,心使之也。心之所可失理,則欲雖寡,奚止於亂?故治亂在於心之所可,亡於情之所欲。不求之其所在,而求之其所亡,雖曰我得之,失之矣。

무릇 다스림을 말하면서 바람을 없애기를 기다리는 이는 바람을 이끌 길이 없어 바람 있음에 막힌 이다. 무릇 다스림을 말하면서 바람을 적게 하기를 기다리는 이는 바람에 마디를 지을 길이 없어 바람 많음에 막힌 이다.

바람이 있음과 바람이 없음은 무리가 다르니 살고 죽음이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아니다. 바람의 많고 적음은 무리가 다르니 정의 셈이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아니다.

바람은 얻을 수 있음을 기다리지 않고 구하는 이는 옳다 하는 바를 좇는다. 바람이 얻을 수 있음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하늘에서 받은 바요, 구하는 이가 옳다 하는 바를 좇는 것은 마음에서 받은 바다. 하늘에서 받은 한 가지 바람이 마음에서 받은 여럿에 마름질되니, 참으로 하늘에서 받은 것에 견주기 어렵다.

사람이 살기를 바람이 심하고 사람이 죽기를 미워함이 심하다. 그런데도 사람이 삶을 좇다가 죽음을 이루는 이가 있으니, 살기를 바라지 않고 죽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살 수 없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람이 지나쳐도 움직임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그치게 한 것이다. 마음이 옳다 하는 바가 이치에 맞으면 바람이 비록 많아도 다스림에 무엇을 다치겠는가. 바람이 미치지 못하는데 움직임이 지나친 것은 마음이 그리하게 한 것이다. 마음이 옳다 하는 바가 이치를 잃으면 바람이 비록 적어도 어지러움에서 어찌 그치겠는가.

그러므로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마음이 옳다 하는 바에 있고 정이 바라는 바에 있지 않다. 그 있는 데서 구하지 않고 그 없는 데서 구하면서 비록 내가 얻었다 한들 잃은 것이다.

性者、天之就也;情者、性之質也;欲者、情之應也。以所欲為可得而求之,情之所必不免也。以為可而道之,知所必出也。故雖為守門,欲不可去,性之具也。雖為天子,欲不可盡。欲雖不可盡,可以近盡也。欲雖不可去,求可節也。所欲雖不可盡,求者猶近盡;欲雖不可去,所求不得,慮者欲節求也。道者、進則近盡,退則節求,天下莫之若也。

성품이란 하늘이 이룬 것이요, 정이란 성품의 바탕이요, 바람이란 정의 응함이다.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여겨 구하는 것은 정이 반드시 면하지 못하는 바요, 옳다 여겨 이끄는 것은 앎이 반드시 내는 바다.

그러므로 비록 문지기가 되어도 바람을 없앨 수 없으니 성품의 갖춤이요, 비록 천자가 되어도 바람을 다할 수 없다. 바람은 비록 다할 수 없어도 거의 다하게 할 수 있고, 바람은 비록 없앨 수 없어도 구함에 마디를 지을 수 있다.

바라는 바를 비록 다할 수 없어도 구하는 이는 오히려 거의 다하고, 바람을 비록 없앨 수 없어도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헤아리는 이는 구함에 마디를 지으려 한다. 도란 나아가면 거의 다하고 물러나면 구함에 마디를 지으니 천하에 이만 한 것이 없다.

凡人莫不從其所可,而去其所不可。知道之莫之若也,而不從道者,無之有也。假之有人而欲南,無多;而惡北,無寡,豈為夫南之不可盡也,離南行而北走也哉!今人所欲,無多;所惡,無寡,豈為夫所欲之不可盡也,離得欲之道,而取所惡也哉!故可道而從之,奚以損之而亂?不可道而離之,奚以益之而治?故知者論道而已矣,小家珍說之所願者皆衰矣。

무릇 사람이 그 옳다 하는 바를 좇고 그 옳지 않다 하는 바를 버리지 않는 이가 없다. 도가 이만 한 것이 없음을 알면서 도를 좇지 않는 이는 있지 않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남으로 가기를 바라 아무리 많아도 마다하지 않고 북으로 가기를 미워하여 아무리 적어도 싫어한다 하자. 어찌 저 남쪽을 다 갈 수 없다 하여 남으로 가기를 떠나 북으로 달리겠는가.

이제 사람이 바라는 바가 아무리 많아도 마다하지 않고 미워하는 바가 아무리 적어도 싫어하는데, 어찌 저 바라는 바를 다할 수 없다 하여 바람을 얻는 도를 떠나 미워하는 바를 취하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옳다 하여 좇으면 무엇으로 덜어 어지럽겠으며, 도를 옳다 하지 않고 떠나면 무엇으로 더하여 다스려지겠는가.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는 도를 논할 뿐이니, 작은 갈래의 진귀한 말이 바라는 것이 다 쇠한다.

凡人之取也,所欲未嘗粹而來也;其去也,所惡未嘗粹而往也。故人無動而不可以不與權俱。衡不正,則重縣於仰,而人以為輕;輕縣於俛,而人以為重;此人所以惑於輕重也。權不正,則禍託於欲,而人以為福;福託於惡,而人以為禍;此亦人所以惑於禍福也。道者,古今之正權也;離道而內自擇,則不知禍福之所託。易者,以一易一,人曰:無得亦無喪也,以一易兩,人曰:無喪而有得也。以兩易一,人曰:無得而有喪也。計者取所多,謀者從所可。以兩易一,人莫之為,明其數也。從道而出,猶以一易兩也,奚喪!離道而內自擇,是猶以兩易一也,奚得!其累百年之欲,易一時之嫌,然且為之,不明其數也。

무릇 사람이 취할 때 바라는 것만 순수하게 온 적이 없고, 버릴 때 미워하는 것만 순수하게 간 적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움직일 때 저울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다.

저울대가 바르지 않으면 무거운 것이 위로 매달려 사람이 가볍다 하고 가벼운 것이 아래로 매달려 사람이 무겁다 하니, 이것이 사람이 가볍고 무거움에 홀리는 까닭이다. 저울질이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바람에 얹혀 사람이 복이라 하고 복이 미움에 얹혀 사람이 재앙이라 하니, 이 또한 사람이 재앙과 복에 홀리는 까닭이다.

도란 옛날과 지금의 바른 저울이다. 도를 떠나 안으로 스스로 가리면 재앙과 복이 얹힌 데를 알지 못한다.

바꾸는 이가 하나로 하나를 바꾸면 사람이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다 하고, 하나로 둘을 바꾸면 사람이 잃음 없이 얻음이 있다 하고, 둘로 하나를 바꾸면 사람이 얻음 없이 잃음이 있다 한다. 셈하는 이는 많은 것을 취하고 꾀하는 이는 옳다 하는 바를 좇는다. 둘로 하나를 바꾸는 것을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은 그 셈이 밝기 때문이다.

도를 좇아 나오는 것은 하나로 둘을 바꾸는 것과 같으니 무엇을 잃겠는가. 도를 떠나 안으로 스스로 가리는 것은 둘로 하나를 바꾸는 것과 같으니 무엇을 얻겠는가. 백 해에 쌓일 바람을 한때의 흡족함과 바꾸면서 그래도 그것을 하니 그 셈이 밝지 못한 것이다.

有嘗試深觀其隱而難者:志輕理而不重物者,無之有也;外重物而不內憂者,無之有也;行離理而不外危者,無之有也;外危而不內恐者,無之有也。心憂恐,則口銜芻豢而不知其味,耳聽鐘鼓而不知其聲,目視黼黻而不知其狀,輕煖平簟而體不知其安。故嚮萬物之美而不能嗛也。假而得間而嗛之,則不能離也。故嚮萬物之美而盛憂,兼萬物之美而盛害,如此者,其求物也,養生也?粥壽也?故欲養其欲而縱其情,欲養其性而危其形,欲養其樂而攻其心,欲養其名而亂其行,如此者,雖封侯稱君,其與夫盜無以異;乘軒戴絻,其與無足無以異。夫是之謂以己為物役矣。

시험 삼아 그 숨어 어려운 것을 깊이 살펴보자. 뜻이 이치를 가벼이 여기면서 물건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이는 있지 않고, 밖으로 물건을 무겁게 여기면서 안으로 근심하지 않는 이는 있지 않고, 행실이 이치를 떠나면서 밖으로 위태롭지 않은 이는 있지 않고, 밖으로 위태로우면서 안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있지 않다.

마음이 근심하고 두려우면 입에 고기를 물고도 그 맛을 알지 못하고, 귀로 종과 북을 듣고도 그 소리를 알지 못하고, 눈으로 수놓은 무늬를 보고도 그 모양을 알지 못하고, 가볍고 따뜻한 옷과 고른 자리에도 몸이 그 편안함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만물의 아름다움을 누리고도 능히 흡족하지 못한다. 가령 틈을 얻어 흡족해도 능히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만물의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근심이 성하고 만물의 아름다움을 아우르면서 해로움이 성하니, 이러한 이가 물건을 구하는 것이 삶을 기르는 것인가 목숨을 파는 것인가.

그러므로 그 바람을 기르려 하면서 그 정을 놓아 버리고, 그 성품을 기르려 하면서 그 꼴을 위태롭게 하고, 그 즐거움을 기르려 하면서 그 마음을 치고, 그 이름을 기르려 하면서 그 행실을 어지럽힌다. 이러한 이는 비록 제후에 봉해지고 임금이라 일컬어져도 저 도둑과 다를 것이 없고,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써도 발 없는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무릇 이를 제 몸이 물건에 부림받는다 한다.

心平愉,則色不及傭而可以養目,聲不及傭而可以養耳,蔬食菜羹而可以養口,麤布之衣,麤紃之履,而可以養體。局室、蘆簾、稿蓐、敝机筵,而可以養形。故雖無萬物之美而可以養樂,無埶列之位而可以養名。如是而加天下焉,其為天下多,其私樂少矣。夫是之謂重己役物。

마음이 고르고 즐거우면 빛깔이 어지간한 데 미치지 못해도 눈을 기를 수 있고, 소리가 어지간한 데 미치지 못해도 귀를 기를 수 있고, 나물밥과 나물국으로도 입을 기를 수 있고, 거친 베옷과 거친 신으로도 몸을 기를 수 있고, 좁은 방과 갈대 발과 짚자리와 해진 안석과 자리로도 꼴을 기를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만물의 아름다움이 없어도 즐거움을 기를 수 있고, 형세와 자리가 없어도 이름을 기를 수 있다. 이러한데 천하를 더한다면 그가 천하를 위함이 많고 제 사사로운 즐거움은 적을 것이다. 무릇 이를 저를 무겁게 하고 물건을 부린다 한다.

無稽之言,不見之行,不聞之謀,君子慎之。

살필 데 없는 말과 보이지 않은 행실과 듣지 못한 꾀를 군자는 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