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惡篇
人之性惡,其善者僞也。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順是,故争奪生而辭讓亡焉;生而有疾惡焉,順是,故殘賊生而忠信亡焉;生而有耳目之欲,有好聲色焉,順是,故淫亂生而禮義文理亡焉。然則從人之性,順人之情,必出於争奪,合於犯分亂理而歸於曓。故必將有師法之化,禮義之道,然後出於辭讓,合於文理,而歸於治。用此觀之,然則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故枸木必將待檃栝、烝、矯然後直,鈍金必將待礱、厲然後利。今人之性惡,必將待師法然後正,得禮義然後治。今人無師法則偏險而不正,無禮義則悖亂而不治。古者聖王以人性惡,以爲偏險而不正,悖亂而不治,是以爲之起禮義,制法度,以矯飾人之情性而正之,以擾化人之情性而導之也。始皆出於治,合於道者也。今人之,化師法,積文學,道禮義者爲君子;縱性情,安恣睢,而違禮義者爲小人。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孟子曰:「今之學者,其性善。」曰:是不然。是不及知人之性,而不察乎人之性、僞之分者也。凡性者,天之就也,不可學,不可事;禮義者,聖人之所生也,人之所學而能,所事而成者也。不可學、不可事而在人者謂之性,可學而能、可事而成之在人者謂之僞。是性、僞之分也。今人之性,目可以見,耳可以聽。夫可以見之明不離目,可以聽之聰不離耳,目明而耳聰,不可學明矣。孟子曰:「今人之性善,將皆失喪其性故也。」曰:若是,則過矣。今人之性,生而離其朴,離其資,必失而喪之。用此觀之,然則人之性惡明矣。所謂性善者,不離其朴而美之,不離其資而利之也。使夫資朴之於美,心意之於善,若夫可以見之明不離目,可以聽之聰不離耳,故曰目明而耳聰也。今人之性,飢而欲飽,寒而欲煖,勞而欲休,此人之情性也。今人見長而不敢先食者,將有所讓也;勞而不敢求息者,將有所代也。夫子之讓乎父,弟之讓乎兄,子之代乎父,弟之代乎兄,此二行者,皆反於性而悖於情也。然而孝子之道,禮義之文理也。故順情性則不辭讓矣,辭讓則悖於情性矣。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
사람의 성품은 모질다.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이제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함이 있으니 이를 따르므로 다투고 빼앗음이 나고 사양이 없어진다. 나면서 시새우고 미워함이 있으니 이를 따르므로 해치고 도적질함이 나고 참됨과 미더움이 없어진다. 나면서 귀와 눈의 욕심이 있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함이 있으니 이를 따르므로 넘치고 어지러움이 나고 예와 옳음과 글과 결이 없어진다.
그러한즉 사람의 성품을 좇고 사람의 정을 따르면 반드시 다투고 빼앗음에서 나와 갈래를 범하고 이치를 어지럽힘에 맞아 사나움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의 달라지게 함과 예와 옳음의 이끎이 있은 뒤에야 사양에서 나와 글과 결에 맞아 다스림으로 돌아간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굽은 나무는 반드시 도지개와 찜과 바로잡음을 기다린 뒤에야 곧아지고, 무딘 쇠는 반드시 숫돌과 줄을 기다린 뒤에야 날카로워진다. 이제 사람의 성품이 모지니 반드시 스승과 법을 기다린 뒤에야 바르고 예와 옳음을 얻은 뒤에야 다스려진다. 이제 사람에게 스승과 법이 없으면 치우치고 험하여 바르지 않고, 예와 옳음이 없으면 어그러지고 어지러워 다스려지지 않는다.
옛날 거룩한 임금은 사람의 성품이 모지고 치우치고 험하여 바르지 않으며 어그러지고 어지러워 다스려지지 않는다 여겼다.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예와 옳음을 일으키고 법도를 지어, 사람의 정과 성품을 바로잡아 꾸며 바르게 하고 길들여 달라지게 하여 이끌었다. 비로소 다 다스림에서 나와 도에 맞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 가운데 스승과 법에 달라지고 글과 배움을 쌓고 예와 옳음을 따르는 이는 군자가 되고, 성품과 정을 놓아 버리고 제멋대로 함을 편히 여겨 예와 옳음을 어기는 이는 소인이 된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이제 배우는 이는 그 성품이 착하다」 하였다. 말하기를, 이는 그렇지 않다. 이는 사람의 성품을 알기에 미치지 못하고 사람의 성품과 지어냄의 갈림을 살피지 못한 것이다.
무릇 성품이란 하늘이 이룬 것이라 배울 수도 없고 일삼을 수도 없다. 예와 옳음이란 성인이 낸 것이라 사람이 배워서 능하고 일삼아서 이루는 것이다. 배울 수도 없고 일삼을 수도 없이 사람에게 있는 것을 성품이라 하고, 배워서 능하고 일삼아서 이룰 수 있게 사람에게 있는 것을 지어냄이라 한다. 이것이 성품과 지어냄의 갈림이다.
이제 사람의 성품은 눈이 볼 수 있고 귀가 들을 수 있다. 무릇 볼 수 있는 밝음이 눈을 떠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밝음이 귀를 떠나지 않으니, 눈이 밝고 귀가 밝은 것은 배울 수 없음이 밝다.
맹자가 말하기를 「이제 사람의 성품은 착한데 장차 다 그 성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였다. 말하기를, 이와 같다면 지나치다. 이제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그 통나무를 떠나고 그 바탕을 떠나 반드시 잃어버린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다.
이른바 성품이 착하다는 것은 그 통나무를 떠나지 않고 아름답게 하고 그 바탕을 떠나지 않고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저 바탕과 통나무가 아름다움에 대하여, 마음과 뜻이 착함에 대하여, 마치 볼 수 있는 밝음이 눈을 떠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밝음이 귀를 떠나지 않는 것과 같다면, 그러므로 눈이 밝고 귀가 밝다 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의 성품은 주리면 배부르고자 하고 추우면 따뜻하고자 하고 수고로우면 쉬고자 하니 이것이 사람의 정과 성품이다. 이제 사람이 어른을 보고 감히 먼저 먹지 않는 것은 사양하는 바가 있어서요, 수고로워도 감히 쉬기를 구하지 않는 것은 대신하려는 바가 있어서다.
무릇 아들이 아비에게 사양하고 아우가 형에게 사양하며, 아들이 아비를 대신하고 아우가 형을 대신하는 이 두 행실은 다 성품에 거스르고 정에 어긋난다. 그런데도 효자의 도요 예와 옳음의 글과 결이다. 그러므로 정과 성품을 따르면 사양하지 않고, 사양하면 정과 성품에 어긋난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問者曰:「人之性惡,則禮義惡生?」應之曰:凡禮義者,是生於聖人之僞,非故生於人之性也。故陶人埏埴而爲器,然則器生於陶人之僞,非故生於人之性也。故工人斲木而成器,然則器生於工人之僞,非故生於人之性也。聖人積思慮,習僞故,以生禮義而起法度,然則禮義法度者,是生於聖人之僞,非故生於人之性也。若夫目好色,耳好聽,口好味,心好利,骨體膚理好愉佚,是皆生於人之情性者也,感而自然,不待事而後生之者也。夫感而不能然,必且待事而後然者,謂之生於僞。是性、僞之所生,其不同之徵也。故聖人化性而起僞,僞起而生禮義,禮義生而制法度。然則禮義法度者,是聖人之所生也。故聖人之所以同於衆,其不異於衆者,性也;所以異而過衆者,僞也。夫好利而欲得者,此人之情性也。假之有弟兄資財而分者,且順情性,好利而欲得,若是,則兄弟相拂奪矣;且化禮義之文理,若是則讓乎國人矣。故順情性則弟兄争矣,化禮義則讓乎國人矣。凡人之欲爲善者,爲性惡也。夫薄願厚,惡願美,狹願廣,貧願富,賤願貴,苟無之中者,必求於外;故富而不願財,貴而不願埶,苟有之中者,必不及於外。用此觀之,人之欲爲善者,爲性惡也。今人之性,固無禮義,故彊學而求有之也;性不知禮義,故思慮而求知之也。然則性而已,則人無禮義,不知禮義。人無禮義則亂,不知禮義則悖。然則性而已,則悖亂在己。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
묻는 이가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이 모질다면 예와 옳음은 어디서 났는가.」
응하여 말한다. 무릇 예와 옳음이란 성인의 지어냄에서 난 것이지 본디 사람의 성품에서 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옹기장이가 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니, 그러한즉 그릇은 옹기장이의 지어냄에서 난 것이지 본디 사람의 성품에서 난 것이 아니다. 장인이 나무를 깎아 그릇을 이루니, 그러한즉 그릇은 장인의 지어냄에서 난 것이지 본디 사람의 성품에서 난 것이 아니다.
성인이 생각을 쌓고 지어냄을 익혀 예와 옳음을 내고 법도를 일으켰으니, 그러한즉 예와 옳음과 법도는 성인의 지어냄에서 난 것이지 본디 사람의 성품에서 난 것이 아니다.
무릇 눈이 빛깔을 좋아하고 귀가 듣기를 좋아하고 입이 맛을 좋아하고 마음이 이로움을 좋아하고 뼈와 살과 살갗이 즐겁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 사람의 정과 성품에서 나는 것이다. 느끼면 저절로 그러하여 일삼기를 기다린 뒤에 나는 것이 아니다. 무릇 느껴도 그럴 수 없어 반드시 일삼기를 기다린 뒤에야 그러한 것을 지어냄에서 난다 한다. 이것이 성품과 지어냄이 나는 바가 같지 않다는 증험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성품을 달라지게 하여 지어냄을 일으키고, 지어냄이 일어나 예와 옳음을 내고, 예와 옳음이 나서 법도를 지었다. 그러한즉 예와 옳음과 법도는 성인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뭇 사람과 같아 다르지 않은 바는 성품이요, 달라 뭇 사람을 넘어서는 바는 지어냄이다.
무릇 이로움을 좋아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정과 성품이다. 가령 아우와 형에게 재물이 있어 나눈다 하자. 정과 성품을 따라 이로움을 좋아하여 얻고자 하면 형과 아우가 서로 떨쳐 빼앗을 것이요, 예와 옳음의 글과 결에 달라지면 나라 사람에게까지 사양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과 성품을 따르면 아우와 형이 다투고, 예와 옳음에 달라지면 나라 사람에게 사양한다.
무릇 사람이 착함을 하고자 하는 것은 성품이 모질기 때문이다. 무릇 엷은 이는 두텁기를 바라고, 미운 이는 아름답기를 바라고, 좁은 이는 넓기를 바라고, 가난한 이는 가멸기를 바라고, 천한 이는 귀하기를 바란다. 진실로 제 안에 없는 것을 반드시 밖에서 구한다. 그러므로 가멸면 재물을 바라지 않고 귀하면 권세를 바라지 않으니, 진실로 제 안에 있는 것은 반드시 밖에 미치지 않는다. 이로써 보면 사람이 착함을 하고자 하는 것은 성품이 모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의 성품에는 본디 예와 옳음이 없으므로 억지로 배워 가지기를 구하고, 성품이 예와 옳음을 알지 못하므로 생각하고 헤아려 알기를 구한다. 그러한즉 성품뿐이라면 사람에게 예와 옳음이 없고 예와 옳음을 알지 못한다. 사람에게 예와 옳음이 없으면 어지럽고 예와 옳음을 알지 못하면 어그러진다. 그러한즉 성품뿐이라면 어그러짐과 어지러움이 제게 있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孟子曰:「人之性善。」曰:是不然。凡古今天下之所謂善者,正理平治也;所謂惡者,偏險悖亂也。是善惡之分也已。今誠以人之性固正理平治邪?則有惡用聖王,惡用禮義哉!雖有聖王禮義,將曷加於正理平治也哉!今不然,人之性惡。故古者聖人以人之性惡,以爲偏險而不正,悖亂而不治,故爲之立君上之埶以臨之,明禮義以化之,起法正以治之,重刑罰以禁之,使天下皆出於治,合於善也。是聖王之治,而禮義之化也。今當試去君上之埶,無禮義之化,去法正之治,無刑罰之禁,倚而觀天下民人之相與也,若是,則夫彊者害弱而奪之,衆者曓寡而譁之,天下悖亂而相亡不待頃矣。用此觀之,然則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故善言古者必有節於今,善言天者必有徵於人。凡論者,貴其有辨合,有符驗,故坐而言之,起而可設,張而可施行。今孟子曰「人之性善」,無辨合符驗,坐而言之,起而不可設,張而不可施行,豈不過甚矣哉!故性善則去聖王,息禮義矣;性惡則與聖王,貴禮義矣。故檃栝之生,爲枸木也;繩墨之起,爲不直也;立君上,明禮義,爲性惡也。用此觀之,然則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直木不待檃栝而直者,其性直也;枸木必將待檃栝、烝、矯然後直者,以其性不直也。今人之性惡,必將待聖王之治,禮義之化,然後皆出於治,合於善也。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성품은 착하다」 하였다. 말하기를, 이는 그렇지 않다.
무릇 옛날과 지금 천하가 이른바 착하다 하는 것은 바른 이치와 고른 다스림이요, 이른바 모질다 하는 것은 치우치고 험하고 어그러지고 어지러움이다. 이것이 착함과 모짊의 갈림일 뿐이다.
이제 참으로 사람의 성품이 본디 바른 이치와 고른 다스림이라면 거룩한 임금을 어디에 쓰며 예와 옳음을 어디에 쓰겠는가. 비록 거룩한 임금과 예와 옳음이 있은들 바른 이치와 고른 다스림에 무엇을 더하겠는가.
이제 그렇지 않다. 사람의 성품은 모질다. 그러므로 옛날 성인은 사람의 성품이 모지고 치우치고 험하여 바르지 않으며 어그러지고 어지러워 다스려지지 않는다 여겼다.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임금의 형세를 세워 임하게 하고, 예와 옳음을 밝혀 달라지게 하고, 법과 바름을 일으켜 다스리고, 형벌을 무겁게 하여 금하여, 천하로 하여금 다 다스림에서 나와 착함에 맞게 하였다. 이것이 거룩한 임금의 다스림이요 예와 옳음의 달라지게 함이다.
이제 시험 삼아 임금의 형세를 버리고 예와 옳음의 달라지게 함을 없애고, 법과 바름의 다스림을 버리고 형벌의 금함을 없애고서, 기대어 천하 사람이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본다고 하자. 이와 같으면 무릇 굳센 이가 약한 이를 해쳐 빼앗고 많은 이가 적은 이에게 사납게 굴어 시끄러워, 천하가 어그러지고 어지러워 서로 없어지기를 잠깐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옛것을 잘 말하는 이는 반드시 지금에 들어맞음이 있고, 하늘을 잘 말하는 이는 반드시 사람에게 증험이 있다. 무릇 논하는 이는 가림이 맞고 부절의 증험이 있음을 귀히 여긴다. 그러므로 앉아서 말하면 일어나 베풀 수 있고 펼쳐 행할 수 있다.
이제 맹자가 「사람의 성품은 착하다」 하나 가림이 맞음도 없고 부절의 증험도 없어, 앉아서 말하면 일어나 베풀 수 없고 펼쳐 행할 수 없으니 어찌 지나침이 심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성품이 착하면 거룩한 임금을 버리고 예와 옳음을 그치게 되고, 성품이 모질면 거룩한 임금과 함께하고 예와 옳음을 귀히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도지개가 난 것은 굽은 나무 때문이요, 먹줄이 일어난 것은 곧지 않기 때문이요, 임금을 세우고 예와 옳음을 밝힌 것은 성품이 모질기 때문이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곧은 나무가 도지개를 기다리지 않고 곧은 것은 그 성품이 곧기 때문이요, 굽은 나무가 반드시 도지개와 찜과 바로잡음을 기다린 뒤에야 곧아지는 것은 그 성품이 곧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의 성품이 모지니 반드시 거룩한 임금의 다스림과 예와 옳음의 달라지게 함을 기다린 뒤에야 다 다스림에서 나와 착함에 맞는다. 이로써 보면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問者曰:「禮義積僞者,是人之性,故聖人能生之也。」應之曰:是不然。夫陶人埏埴而生瓦,然則瓦埴豈陶人之性也哉?工人斲木而生器,然則器木豈工人之性也哉?夫聖人之於禮義也,辟則陶埏而生之也,然則禮義積僞者,豈人之本性也哉?凡人之性者,堯、舜之與桀、跖,其性一也;君子之與小人,其性一也。今將以禮義積僞爲人之性邪?然則有曷貴堯、禹,曷貴君子矣哉?凡貴堯、禹、君子者,能化性,能起僞,僞起而生禮義。然則聖人之於禮義積僞也,亦猶陶埏而爲之也。用此觀之,然則禮義積僞者,豈人之性也哉!所賤於桀、跖、小人者,從其性,順其情,安恣睢,以出乎貪利争奪。故人之性惡明矣,其善者僞也。天非私曾、騫、孝己而外衆人也,然而曾、騫、孝己獨厚於孝之實而全於孝之名者,何也?以綦於禮義故也。天非私齊、魯之民而外秦人也,然而於父子之義,夫婦之別,不如齊、魯之孝具敬父者,何也?以秦人從情性,安恣睢,慢於禮義故也。豈其性異矣哉?
묻는 이가 말하였다. 「예와 옳음과 쌓은 지어냄이 사람의 성품이므로 성인이 능히 그것을 낸 것이다.」
응하여 말한다. 이는 그렇지 않다. 무릇 옹기장이가 흙을 이겨 기와를 내니, 그러한즉 기와와 흙이 어찌 옹기장이의 성품이겠는가. 장인이 나무를 깎아 그릇을 내니, 그러한즉 그릇과 나무가 어찌 장인의 성품이겠는가.
무릇 성인이 예와 옳음에 대한 것은 비유하면 흙을 이겨 내는 것과 같다. 그러한즉 예와 옳음과 쌓은 지어냄이 어찌 사람의 본디 성품이겠는가.
무릇 사람의 성품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걸과 도척과 그 성품이 하나요, 군자가 소인과 그 성품이 하나다. 이제 예와 옳음과 쌓은 지어냄을 사람의 성품이라 하겠는가. 그러면 어찌 요임금과 우임금을 귀히 여기며 어찌 군자를 귀히 여기겠는가.
무릇 요임금과 우임금과 군자를 귀히 여기는 것은 능히 성품을 달라지게 하고 능히 지어냄을 일으켜, 지어냄이 일어나 예와 옳음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성인이 예와 옳음과 쌓은 지어냄에 대한 것은 또한 흙을 이겨 만드는 것과 같다. 이로써 보면 예와 옳음과 쌓은 지어냄이 어찌 사람의 성품이겠는가.
걸과 도척과 소인을 천히 여기는 까닭은 그 성품을 좇고 그 정을 따르고 제멋대로 함을 편히 여겨 이로움을 탐하고 다투어 빼앗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품이 모진 것이 밝고 그 착함은 지어낸 것이다.
하늘이 증삼과 민자건과 효기를 사사로이 하고 뭇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증삼과 민자건과 효기가 홀로 효도의 알맹이에 두텁고 효도의 이름을 온전히 한 것은 어째서인가. 예와 옳음에 지극하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제나라와 노나라 백성을 사사로이 하고 진나라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비와 아들의 옳음과 지아비와 지어미의 갈림에서 제나라와 노나라처럼 효도가 갖추어지고 아비를 공경함만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진나라 사람이 정과 성품을 좇고 제멋대로 함을 편히 여겨 예와 옳음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어찌 그 성품이 다르겠는가.
「塗之人可以爲禹」,曷謂也?曰:凡禹之所以爲禹者,以其爲仁義法正也。然則仁義法正有可知可能之理,然而塗之人也,皆有可以知仁義法正之質,皆有可以能仁義法正之具,然則其可以爲禹明矣。今以仁義法正爲固無可知可能之理邪?然則唯禹不知仁義法正,不能仁義法正也。將使塗之人固無可以知仁義法正之質,而固無可以能仁義法正之具邪?然則塗之人也,且內不可以知父子之義,外不可以知君臣之正。不然。今塗之人者,皆內可以知父子之義,外可以知君臣之正,然則其可以知之質,可以能之具,其在塗之人明矣。今使塗之人者以其可以知之質,可以能之具,本夫仁義法正之可知可能之理,可能之具,然則其可以爲禹明矣。今使塗之人伏術爲學,專心一志,思索孰察,加日縣久,積善而不息,則通於神明,參於天地矣。故聖人者,人之所積而致矣。曰:「聖可積而致,然而皆不可積,何也?」曰:可以而不可使也。故小人可以爲君子而不肯爲君子,君子可以爲小人而不肯爲小人。小人、君子者,未嘗不可以相爲也,然而不相爲者,可以而不可使也。故塗之人可以爲禹則然,塗之人能爲禹則未必然也。雖不能爲禹,無害可以爲禹。足可以徧行天下,然而未嘗有徧行天下者也。夫工匠、農、賈,未嘗不可以相爲事也,然而未嘗能相爲事也。用此觀之,然則可以爲,未必能也;雖不能,無害可以爲。然則能不能之與可不可,其不同遠矣,其不可以相爲明矣。堯問於舜曰:「人情何如?」舜對曰:「人情甚不美,又何問焉?妻子具而孝衰於親,嗜欲得而信衰於友,爵禄盈而忠衰於君。人之情乎!人之情乎!甚不美,又何問焉!」唯賢者爲不然。有聖人之知者,有士君子之知者,有小人之知者,有役夫之知者:多言則文而類,終日議其所以,言之千舉萬變,其統類一也,是聖人之知也。少言則徑而省,論而法,若佚之以繩,是士君子之知也。其言也謟,其行也悖,其舉事多悔,是小人之知也。齊給、便敏而無類,雜能、旁魄而無用,析速、粹孰而不急,不恤是非,不論曲直,以期勝人爲意,是役夫之知也。有上勇者,有中勇者,有下勇者:天下有中,敢直其身;先王有道,敢行其意;上不循於亂世之君,下不俗於亂世之民;仁之所在無貧窮,仁之所亡無富貴;天下知之,則欲與天下同苦樂之;天下不知之,則傀然獨立天地之間而不畏:是上勇也。禮恭而意儉,大齊信焉而輕貨財,賢者敢推而尚之,不肖者敢援而廢之:是中勇也。輕身而重貨,恬禍而廣解,苟免,不恤是非、然不然之情,以期勝人爲意:是下勇也。繁弱、鉅黍,古之良弓也,然而不得排㯳則不能自正。桓公之蔥,大公之闕,文王之禄,莊君之曶,闔閭之干將、莫邪、鉅闕、辟閭,此皆古之良劒也,然而不加砥厲則不能利,不得人力則不能斷。驊騮、騹、驥、纖離、緑耳,此皆古之良馬也,然而必前有銜轡之制,後有鞭策之威,加之以造父之馭,然後一日而致千里也。夫人雖有性質美而心辯知,必將求賢師而事之,擇良友而友之。得賢師而事之,則所聞者堯、舜、禹、湯之道也;得良友而友之,則所見者忠、信、敬、讓之行也。身日進於仁義而不自知也者,靡使然也。今與不善人處,則所聞者欺誣詐僞也,所見者汙漫、淫邪、貪利之行也,身且加於刑戮而不自知者,靡使然也。傳曰:「不知其子視其友,不知其君視其左右。」靡而已矣,靡而已矣。
「길 가는 사람도 우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이름인가.
말하기를, 무릇 우임금이 우임금 된 까닭은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에는 알 수 있고 능할 수 있는 이치가 있고, 길 가는 사람도 다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을 알 수 있는 바탕이 있고 다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에 능할 수 있는 갖춤이 있다. 그러한즉 그가 우임금이 될 수 있음이 밝다.
이제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에 본디 알 수 있고 능할 수 있는 이치가 없다 하겠는가. 그러면 우임금도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을 알지 못하고 능하지 못할 것이다.
길 가는 사람에게 본디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을 알 수 있는 바탕이 없고 본디 능할 수 있는 갖춤이 없다 하겠는가. 그러면 길 가는 사람은 안으로 아비와 아들의 옳음을 알 수 없고 밖으로 임금과 신하의 바름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이제 길 가는 사람도 다 안으로 아비와 아들의 옳음을 알 수 있고 밖으로 임금과 신하의 바름을 알 수 있다. 그러한즉 알 수 있는 바탕과 능할 수 있는 갖춤이 길 가는 사람에게 있음이 밝다.
이제 길 가는 사람이 그 알 수 있는 바탕과 능할 수 있는 갖춤으로 저 어짊과 옳음과 법과 바름의 알 수 있고 능할 수 있는 이치를 밑동으로 삼는다면, 그가 우임금이 될 수 있음이 밝다.
이제 길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주를 익혀 배우고 마음을 오로지하고 뜻을 하나로 하여 생각하고 찾고 익히 살피며, 날을 더하고 오래 매달려 착함을 쌓고 그치지 않게 하면 신명에 통하고 하늘과 땅과 나란히 셋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란 사람이 쌓아 이른 것이다.
말하기를 「거룩함은 쌓아 이를 수 있는데 다들 쌓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말하기를, 할 수는 있으나 시킬 수는 없다. 그러므로 소인이 군자가 될 수 있으나 군자 되기를 즐기지 않고, 군자가 소인이 될 수 있으나 소인 되기를 즐기지 않는다. 소인과 군자는 일찍이 서로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나 서로 되지 않는 것은 할 수는 있으나 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길 가는 사람이 우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하나, 길 가는 사람이 반드시 우임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우임금이 되지 못해도 우임금이 될 수 있음에는 해로울 것이 없다. 발은 온 천하를 두루 다닐 수 있으나 일찍이 온 천하를 두루 다닌 이는 없었다. 무릇 장인과 농부와 장사꾼이 일찍이 서로 일을 바꿔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나 일찍이 능히 서로 일을 바꾼 적이 없다. 이로써 보면 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능하다는 것은 아니요, 비록 능하지 못해도 할 수 있음에는 해로울 것이 없다. 그러한즉 능함과 능하지 못함이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과 그 같지 않음이 머니, 서로 바꿀 수 없음이 밝다.
요임금이 순에게 물었다. 「사람의 정은 어떠한가.」
순이 대답하였다. 「사람의 정은 몹시 아름답지 못하니 또 무엇을 물으십니까. 아내와 자식이 생기면 어버이에 대한 효도가 쇠하고, 즐기고 바라는 것을 얻으면 벗에 대한 믿음이 쇠하고, 벼슬과 녹이 차면 임금에 대한 참됨이 쇠합니다. 사람의 정이여, 사람의 정이여. 몹시 아름답지 못하니 또 무엇을 물으십니까.」
오직 어진 이만이 그렇지 않다.
성인의 앎이 있고, 선비와 군자의 앎이 있고, 소인의 앎이 있고, 부림꾼의 앎이 있다.
말이 많되 꾸미고 갈래가 있으며, 온종일 그 까닭을 의논하여 말이 천 가지로 들고 만 가지로 달라져도 그 벼리와 갈래가 하나이니 이는 성인의 앎이다.
말이 적되 곧고 간략하며 논하되 법에 맞아 먹줄로 다스린 듯하니 이는 선비와 군자의 앎이다.
그 말이 아첨하고 그 행실이 어그러지며 일을 벌임에 뉘우침이 많으니 이는 소인의 앎이다.
재빠르고 날래되 갈래가 없고, 재주가 잡되고 넓되 쓸모없고, 쪼개기 빠르고 익숙하되 급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돌보지 않고 굽고 곧음을 논하지 않고 남을 이기기만 뜻으로 삼으니 이는 부림꾼의 앎이다.
윗길의 날램이 있고, 가운뎃길의 날램이 있고, 아랫길의 날램이 있다.
천하에 알맞음이 있으면 감히 그 몸을 곧게 하고, 앞선 임금에게 도가 있으면 감히 그 뜻을 행하며, 위로는 어지러운 세상의 임금을 좇지 않고 아래로는 어지러운 세상의 백성을 따르지 않는다. 어짊이 있는 데는 가난하고 막힘이 없고 어짊이 없는 데는 가멸고 귀함이 없다. 천하가 알아주면 천하와 더불어 그 괴로움과 즐거움을 같이하고자 하고, 천하가 알아주지 않으면 우뚝이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윗길의 날램이다.
예가 공손하고 뜻이 검소하며, 크게 미더움을 가지런히 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며, 어진 이는 감히 밀어 높이고 못난 이는 감히 끌어 물리친다. 이것이 가운뎃길의 날램이다.
몸을 가벼이 하고 재물을 무겁게 하며, 재앙을 태연히 여기고 널리 변명하며, 구차히 면하고 옳고 그름과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의 정을 돌보지 않고 남을 이기기만 뜻으로 삼는다. 이것이 아랫길의 날램이다.
번약(繁弱)과 거서(鉅黍)는 옛날의 좋은 활이나 도지개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바르지 못한다. 환공의 총(蔥), 태공의 궐(闕), 문왕의 녹(禄), 장군의 홀(曶), 합려의 간장·막야·거궐·벽려는 다 옛날의 좋은 칼이나 숫돌에 갈지 않으면 날카롭지 못하고 사람의 힘을 얻지 못하면 끊지 못한다. 화류와 기와 기와 섬리와 녹이는 다 옛날의 좋은 말이나, 반드시 앞에 재갈과 고삐의 마름질이 있고 뒤에 채찍의 위엄이 있으며 거기에 조보의 몲을 더한 뒤에야 하루에 천 리에 이른다.
무릇 사람이 비록 성품과 바탕이 아름답고 마음이 밝게 알아도 반드시 어진 스승을 구하여 섬기고 좋은 벗을 가려 벗해야 한다. 어진 스승을 얻어 섬기면 듣는 것이 요임금·순임금·우임금·탕임금의 도요, 좋은 벗을 얻어 벗하면 보는 것이 참됨과 미더움과 공경과 사양의 행실이다. 몸이 날로 어짊과 옳음에 나아가되 스스로 알지 못하니 물듦이 그렇게 한 것이다.
이제 착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듣는 것이 속임과 거짓이요 보는 것이 더럽고 넘치고 그릇되고 이로움을 탐하는 행실이라, 몸이 장차 형벌에 이르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하니 물듦이 그렇게 한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그 자식을 알지 못하겠거든 그 벗을 보고, 그 임금을 알지 못하겠거든 그 곁의 사람을 보라」 하였다. 물듦일 뿐이다, 물듦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