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宥坐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9 · 한자 1,558자 · 낭독 6.2분

「순자」 유좌 「宥坐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孔子觀於魯桓公之廟,有欹器焉。孔子問於守廟者曰:「此爲何器?」守廟者曰:「此蓋爲宥坐之器。」孔子曰:「吾聞宥坐之器者,虛則欹,中則正,滿則覆。」孔子顧謂弟子曰:「注水焉!」弟子挹水而注之,中而正,滿而覆,虛而欹。孔子喟然而歎曰:「吁!惡有滿而不覆者哉!」子路曰:「敢問持滿有道乎?」孔子曰:「聰明聖知,守之以愚;功被天下,守之以讓;勇力撫世,守之以怯;富有四海,守之以謙。此所謂挹而損之之道也。」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보는데 기울어진 그릇이 있었다. 공자가 사당 지키는 이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릇이오.」

사당 지키는 이가 말하였다. 「이것은 아마 자리 곁에 두는 그릇일 것입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자리 곁에 두는 그릇은 비면 기울고 알맞으면 바르고 가득 차면 엎어진다 하였소.」

공자가 제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물을 부어 보아라.」 제자가 물을 떠서 부으니 알맞으매 바르고 가득 차매 엎어지고 비매 기울었다.

공자가 한숨지으며 탄식하였다. 「아, 어찌 가득 차고서 엎어지지 않는 것이 있겠느냐.」

자로가 말하였다. 「감히 여쭙니다. 가득함을 지키는 데 도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귀 밝고 눈 밝고 거룩하고 슬기로우면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공이 천하를 덮으면 사양으로 지키고, 날래고 힘세어 세상을 누르면 겁냄으로 지키고, 가멸어 사해를 가지면 겸손으로 지킨다. 이것이 이른바 떠서 덜어 내는 도다.」

孔子爲魯攝相,朝七日而誅少正卯。門人進問曰:「夫少正卯,魯之聞人也,夫子爲政而始誅之,得無失乎?」孔子曰:「居!吾語女其故。人有惡者五,而盜竊不與焉:一曰心達而險,二曰行辟而堅,三曰言僞而辯,四曰記醜而博,五曰順非而澤。此五者有一於人,則不得免於君子之誅,而少正卯兼有之。故居處足以聚徒成羣,言談足飾邪營衆,强足以反是獨立,此小人之桀雄也,不可不誅也。是以湯誅尹諧,文王誅潘止,周公誅管叔,太公誅華仕,管仲誅付里乙,子產誅鄧析、史付,此七子者,皆異世同心,不可不誅也。《詩》曰:『憂心悄悄,慍於羣小。』小人成羣,斯足憂也。」

공자가 노나라의 재상 일을 대신 맡아 조정에 나간 지 이레 만에 소정묘(少正卯)를 베었다.

문인이 나아가 물었다. 「무릇 소정묘는 노나라에 이름난 사람인데 선생께서 정사를 하시며 처음으로 그를 베셨으니 그르침이 없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앉거라. 내가 너에게 그 까닭을 말하겠다.

사람에게 모진 것이 다섯 있는데 도둑질은 여기 들지 않는다. 첫째는 마음이 통달하되 음험함이요, 둘째는 행실이 치우치되 굳음이요, 셋째는 말이 거짓되되 밝음이요, 넷째는 추한 것을 기억하되 넓음이요, 다섯째는 그름을 따르되 윤이 남이다. 이 다섯 가운데 하나만 사람에게 있어도 군자의 벰을 면하지 못하는데 소정묘는 이를 아울러 가졌다.

그러므로 사는 데가 무리를 모아 떼를 이루기에 넉넉하고, 말이 그릇됨을 꾸미고 뭇 사람을 홀리기에 넉넉하고, 굳세어 옳음을 뒤집고 홀로 서기에 넉넉하니, 이는 소인 가운데 뛰어난 이라 베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탕임금은 윤해(尹諧)를 베고, 문왕은 반지(潘止)를 베고, 주공은 관숙을 베고, 태공은 화사(華仕)를 베고, 관중은 부리을(付里乙)을 베고, 자산은 등석과 사부(史付)를 베었다. 이 일곱 사람은 다 세상이 다르되 마음이 같으니 베지 않을 수 없었다.

「시」에 이르기를 『마음이 시름겨워 뭇 소인에게 성이 나네』 하였다. 소인이 떼를 이루면 이것이 근심할 만하다.」

孔子爲魯司寇,有父子訟者,孔子拘之,三月不別。其父請止,孔子舍之。季孫聞之不說,曰:「是老也欺予,語予曰:『爲國家必以孝。』今殺一人以戮不孝,又舍之。」冉子以告。孔子慨然歎曰:「嗚呼!上失之,下殺之,其可乎!不教其民而聽其獄,殺不辜也。三軍大敗,不可斬也;獄犴不治,不可刑也,罪不在民故也。嫚令謹誅,賊也;今生也有時,歛也無時,暴也;不教而責成功,虐也。已此三者,然後刑可卽也。《書》曰:『義刑義殺,勿庸以卽,予維曰未有順事。』言先教也。故先王既陳之以道,上先服之;若不可,尚賢以綦之;若不可,廢不能以單之;綦三年而百姓從風矣。邪民不從,然後俟之以刑,則民知罪矣。《詩》曰:『尹氏大師,維周之氐,秉國之均,四方是維,天子是庳,卑民不迷。』是以威厲而不試,刑錯而不用,此之謂也。今之世則不然:亂其教,繁其刑,其民迷惑而墮焉,則從而制之,是以刑彌繁而邪不勝。三尺之岸而虛車不能登也,百仞之山任負車登焉,何則?陵遲故也。數仞之牆而民不踰也,百仞之山而豎子馮而游焉,陵遲故也。今之世陵遲已久矣,而能使民勿踰乎!《詩》曰:『周道如砥,其直如矢。君子所履,小人所視。眷焉顧之,潸焉出涕!』豈不哀哉!」

공자가 노나라 사구(司寇)가 되었을 때 아비와 아들이 송사하는 이가 있었다. 공자가 그를 가두고 석 달을 가리지 않았다. 그 아비가 그만두기를 청하니 공자가 놓아주었다.

계손이 듣고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이 늙은이가 나를 속였구나. 나에게 이르기를 『나라와 집을 다스림은 반드시 효도로 한다』 하더니, 이제 한 사람을 죽여 불효를 죽이는 것을 보이겠다 하고는 또 놓아주었다.」

염자가 이를 아뢰었다. 공자가 서글피 탄식하였다.

「아, 위에서 잃고 아래를 죽이는 것이 옳겠는가. 그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그 옥사를 들어 죄 없는 이를 죽이는 것이다. 삼군이 크게 무너져도 베어서는 안 되고, 옥사가 다스려지지 않아도 형벌해서는 안 되니 죄가 백성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명은 게을리하면서 벰은 삼가는 것은 해치는 것이요, 이제 나는 것은 때가 있는데 거두는 데 때가 없는 것은 사나운 것이요, 가르치지 않고 공을 이루라 다그치는 것은 모진 것이다. 이 셋을 그만둔 뒤에야 형벌에 나아갈 수 있다.

「서」에 이르기를 『옳게 형벌하고 옳게 죽이되 곧바로 쓰지 말고, 나는 오직 아직 따르는 일이 있지 않다 하라』 하였으니 가르침을 먼저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앞선 임금이 이미 도로 벌여 놓고 위에서 먼저 그것을 입었다. 그래도 안 되면 어진 이를 높여 다하게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능하지 못한 이를 물려 다하게 하였다. 세 해를 다하면 백성이 바람처럼 따랐다. 그릇된 백성이 따르지 않은 뒤에야 형벌로 기다리니 그러면 백성이 죄를 안다.

「시」에 이르기를 『윤씨 태사여, 주나라의 밑동이라. 나라의 저울대를 잡아 사방을 붙들고 천자를 받드니 백성이 헷갈리지 않네』 하였다. 그래서 위엄이 매서워도 쓰지 않고 형벌이 놓여 있어도 쓰지 않으니 이를 이름이다.

이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 가르침을 어지럽히고 그 형벌을 잦게 하니 그 백성이 헷갈려 빠진다. 그러면 좇아 마름질하니 그래서 형벌이 더욱 잦아도 그릇됨을 이기지 못한다.

석 자 언덕도 빈 수레가 오르지 못하는데 백 길 산은 짐 실은 수레가 오른다. 어째서인가. 비탈이 완만하기 때문이다. 두어 길 담도 백성이 넘지 못하는데 백 길 산은 어린아이가 기어올라 논다. 비탈이 완만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은 비탈져 무너진 지 이미 오래인데 백성으로 하여금 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시」에 이르기를 『주나라 길이 숫돌 같고 그 곧기가 화살 같네. 군자가 밟는 바요 소인이 보는 바라. 돌아보고 돌아보매 주르르 눈물이 나네』 하였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詩》曰:「瞻彼日月,悠悠我思。道之云遠,曷云能來!」子曰:「伊稽首,不其有來乎?」

「시」에 이르기를 「저 해와 달을 바라보니 내 생각이 아득하네. 길이 멀다 하니 어찌 능히 오랴」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머리를 조아리면 어찌 옴이 없겠는가.」

孔子觀於東流之水,子貢問於孔子曰:「君子之所以見大水必觀焉者是何?」孔子曰:「夫水,大徧與諸生而無爲也,似德。其流也埤下,裾拘必循其理,似義。其洸洸乎不淈盡,似道。若有決行之,其應佚若聲響,其赴百仞之谷不懼,似勇。主量必平,似法。盈不求概,似正。淖約微達,似察。以出以入,以就鮮絜,似善化。其萬折也必東,似志。是故見大水必觀焉。」

공자가 동으로 흐르는 물을 보는데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가 큰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무릇 물은 널리 뭇 생명에게 주면서도 함이 없으니 덕과 비슷하다. 그 흐름이 낮은 데로 가고 굽은 데서도 반드시 그 이치를 좇으니 옳음과 비슷하다. 그 넘실넘실하여 다하지 않으니 도와 비슷하다.

터서 흐르게 하면 그 응함이 메아리처럼 빠르고 백 길 골짜기로 달려가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날램과 비슷하다. 양을 재면 반드시 고르니 법과 비슷하다. 가득 차도 밀어 고르기를 구하지 않으니 바름과 비슷하다. 부드럽게 작은 데까지 이르니 살핌과 비슷하다. 드나들며 깨끗하게 하니 착하게 달라지게 함과 비슷하다.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으로 가니 뜻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큰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본다.」

孔子曰:「吾有恥也,吾有鄙也,吾有殆也:幼不能彊學,老無以教之,吾恥之。去其故鄉,事君而達,卒遇故人,曾無舊言,吾鄙之。與小人處者,吾殆之也。」

공자가 말하였다. 「나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 있고 낮게 여기는 것이 있고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 있다. 어려서 힘써 배우지 못하고 늙어서 가르칠 것이 없는 것을 나는 부끄러워한다. 그 고향을 떠나 임금을 섬겨 통달하고서 마침내 옛사람을 만나 옛말 한마디 없는 것을 나는 낮게 여긴다. 소인과 함께 있는 것을 나는 위태롭게 여긴다.」

孔子曰:「如垤而進,吾與之;如丘而止,吾已矣。」今學曾未如肬贅,則具然欲爲人師。

공자가 말하였다. 「개미둑만큼이라도 나아가면 나는 그와 함께하고, 언덕만 해도 그치면 나는 그만둔다.」 이제 배움이 일찍이 사마귀만큼도 못 되는데 우뚝이 남의 스승이 되려 한다.

孔子南適楚,戹於陳、蔡之閒,七日不火食,藜羹不糂,弟子皆有飢色。子路進而問之曰:「由聞之:爲善者天報之以福,爲不善者天報之以禍。今夫子累德積義懷美,行之日久矣,奚居之隱也?」孔子曰:「由不識,吾語女。女以知者爲必用邪?王子比干不見剖心乎!女以忠者爲必用邪?關龍逢不見刑乎!女以諫者爲必用邪?吳子胥不磔姑蘇東門外乎!夫遇不遇者,時也;賢不肖者,材也。君子博學深謀不遇時者多矣。由是觀之,不遇世者衆矣,何獨丘也哉!」且夫芷蘭生於深林,非以無人而不芳。君子之學,非爲通也;爲窮而不困,憂而意不衰也,知禍福終始而心不惑也。夫賢不肖者,材也;爲不爲者,人也;遇不遇者,時也;死生者,命也。今有其人不遇其時,雖賢,其能行乎?苟遇其時,何難之有?故君子博學、深謀、修身、端行以俟其時。孔子曰:「由!居!吾語女。昔晉公子重耳霸心生於曹,越王句踐霸心生於會稽,齊桓公小白霸心生於莒。故居不隱者思不遠,身不佚者志不廣。女庸安知吾不得之桑落之下?」

공자가 남으로 초나라에 가다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막혀 이레를 불에 익힌 밥을 먹지 못하고 명아줏국에 쌀알도 넣지 못하니 제자가 다 주린 낯빛이었다.

자로가 나아가 물었다. 「제가 들으니 착함을 하는 이에게 하늘이 복으로 갚고 착하지 않음을 하는 이에게 하늘이 재앙으로 갚는다 하였습니다. 이제 선생께서 덕을 쌓고 옳음을 쌓고 아름다움을 품어 행하신 날이 오래인데 어찌 이렇게 숨어 계십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유가 알지 못하는구나. 내가 너에게 말하겠다. 너는 슬기로운 이가 반드시 쓰인다고 여기느냐. 왕자 비간이 심장을 갈리지 않았느냐. 너는 참된 이가 반드시 쓰인다고 여기느냐. 관룡봉이 형벌을 받지 않았느냐. 너는 간하는 이가 반드시 쓰인다고 여기느냐. 오나라 자서가 고소 동문 밖에 찢겨 걸리지 않았느냐.

무릇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때요, 어질고 못난 것은 바탕이다. 군자가 널리 배우고 깊이 꾀하고도 때를 만나지 못한 이가 많다. 이로써 보면 세상을 만나지 못한 이가 많으니 어찌 나만이겠느냐.」

또 무릇 지초와 난초는 깊은 숲에 나되 사람이 없다고 향기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군자의 배움은 통하기 위함이 아니다. 막혀도 괴로워하지 않고 근심스러워도 뜻이 쇠하지 않으며, 재앙과 복의 마침과 비롯함을 알아 마음이 헷갈리지 않기 위함이다.

무릇 어질고 못난 것은 바탕이요, 하고 하지 않음은 사람이요, 만나고 못 만남은 때요,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이제 그 사람이 있어도 그 때를 만나지 못하면 비록 어질어도 능히 행하겠는가. 진실로 그 때를 만나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군자는 널리 배우고 깊이 꾀하고 몸을 닦고 행실을 바로 하여 그 때를 기다린다.

공자가 말하였다. 「유야, 앉거라. 내가 너에게 말하겠다. 옛날 진나라 공자 중이는 으뜸 되려는 마음이 조나라에서 났고, 월나라 왕 구천은 으뜸 되려는 마음이 회계에서 났고, 제나라 환공 소백은 으뜸 되려는 마음이 거나라에서 났다. 그러므로 사는 데가 숨지 않은 이는 생각이 멀지 않고, 몸이 편안한 이는 뜻이 넓지 않다. 네가 어찌 내가 이 뽕잎 지는 아래에서 얻지 못할 줄 알겠느냐.」

子貢觀於魯廟之北堂,出而問於孔子曰:「鄉者賜觀於太廟之北堂,吾亦未輟,還復瞻被九蓋皆繼,被有說邪?匠過絕邪?」孔子曰:「太廟之堂,亦嘗有說。官致良工,因麗節文,非無良材也,蓋曰貴文也。」

자공이 노나라 사당의 북쪽 마루를 보고 나와 공자에게 물었다. 「아까 제가 태묘의 북쪽 마루를 보고 아직 그치지 않아 돌아서 다시 저 아홉 덮개를 보니 다 이어 붙인 것이었습니다. 저것에 무슨 말이 있습니까. 장인이 잘못하여 끊은 것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태묘의 마루에도 또한 일찍이 말이 있었다. 벼슬아치가 좋은 장인을 불러 무늬를 따라 마디를 꾸민 것이지 좋은 재목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개 꾸밈을 귀히 여긴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