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순자 › 요문

堯問篇

순자 荀子 · 순황(荀況) · 기원전 3세기 · 단락 7 · 한자 1,267자 · 낭독 5.1분

「순자」 요문 「堯問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한 자리에 순자는 성악(性惡)을 놓았다. 사람의 성품은 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하고 시새우고 미워하니, 그대로 두면 다투고 빼앗아 어지러워진다 — 그러므로 스승과 법으로 되게 하고 예와 옳음으로 이끈 뒤에야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되는 것이라 했다. 첫 편 「권학」이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되 쪽보다 푸르다」로 열고, 「천론」은 하늘을 사람 일에서 떼어 내 「하늘을 크게 여겨 사모하기보다 물건으로 길러 마름질하라」고 한다. 「예론」은 예가 어디서 왔는지를 바람과 물건의 다툼에서 풀고, 「악론」은 음악을 그르다 한 묵자를 받아친다. 「정명」은 이름이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은 약속임을 밝히고, 「성상」 한 편은 노동요 가락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실은 노래다. 「임금은 배요 뭇 사람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엎기도 한다」가 「왕제」에 있다. 이사와 한비가 그 문하에서 나왔다.

堯問於舜曰:「我欲致天下,爲之奈何?」對曰:「執一無失,行微無怠,忠信無勌,而天下自來。執一如天地,行微如日月,忠誠盛於內,賁於外,形於四海。天下其在一隅邪!夫有何足致也?」

요임금이 순에게 물었다. 「내가 천하를 이르게 하고자 하는데 어찌하면 되겠는가.」

대답하였다. 「하나를 잡아 잃지 않고, 작은 것을 행하되 게을리하지 않고, 참되고 미덥되 지치지 않으면 천하가 절로 옵니다. 하나를 잡기를 하늘과 땅같이 하고, 작은 것을 행하기를 해와 달같이 하며, 참됨이 안에 성하여 밖으로 넘쳐 사해에 꼴로 드러납니다. 천하가 한 모퉁이에 있을 뿐이니 무릇 무엇을 이르게 할 것이 있겠습니까.」

魏武侯謀事而當,羣臣莫能逮,退朝而有喜色。吳起進曰:「亦嘗有以楚莊王之語聞於左右者乎?」武侯曰:「楚莊王之語何如?」吳起對曰:「楚莊王謀事而當,羣臣莫能逮,退朝而有憂色。申公巫臣進問曰:『王朝而有憂色,何也?』莊王曰:『不穀謀事而當,羣臣莫能逮,是以憂也。其在中蘬之言也,曰:「諸侯自爲得師者王,得友者霸,得疑者存,自爲謀而莫己若者亡。」今以不穀之不肖而羣臣莫能逮,吾國幾於亡乎!是以憂也。』楚莊王以憂,而君以憙。」武侯逡巡再拜曰:「天使夫子振寡人之過也。」

위나라 무후가 일을 꾀하여 마땅하매 뭇 신하가 아무도 미치지 못하니, 조회를 물러나며 기쁜 낯빛이 있었다.

오기가 나아가 말하였다. 「일찍이 초 장왕의 말을 곁에서 아뢴 이가 있었습니까.」

무후가 말하였다. 「초 장왕의 말이 어떠하오.」

오기가 대답하였다.

「초 장왕이 일을 꾀하여 마땅하매 뭇 신하가 아무도 미치지 못하니, 조회를 물러나며 근심하는 낯빛이 있었습니다. 신공 무신이 나아가 물어 『왕께서 조회에 근심하는 낯빛이 있으시니 어째서입니까』 하였습니다.

장왕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일을 꾀하여 마땅하매 뭇 신하가 아무도 미치지 못하니 그래서 근심한다. 중훼(中蘬)의 말에 이르기를 「제후로서 스스로 스승을 얻은 이는 왕 노릇 하고, 벗을 얻은 이는 으뜸이 되고, 의심해 주는 이를 얻은 이는 남고, 스스로 꾀하여 저만 한 이가 없는 이는 없어진다」 하였다. 이제 내가 못났는데도 뭇 신하가 아무도 미치지 못하니 우리 나라가 없어짐에 가깝구나. 그래서 근심한다.』

초 장왕은 근심하였는데 임금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무후가 머뭇거리며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하늘이 그대를 보내 과인의 허물을 떨쳐 주게 하였소.」

伯禽將歸於魯,周公謂伯禽之傅曰:「汝將行,盍志而子美德乎?」對曰:「其爲人寬,好自用,以慎。此三者,其美德已。」周公曰:「嗚呼!以人惡爲美德乎?君子好以道德,故其民歸道。彼其寬也,出無辨矣,女又美之。彼其好自用也,是所以窶小也。君子力如牛,不與牛争力;走如馬,不與馬争走;知如士,不與士争知。彼争者,均者之氣也,女又美之。彼其慎也,是其所以淺也。聞之曰:無越踰不見士。見士問曰:『無乃不察乎?』不聞,卽物少至,少至則淺。彼淺者,賤人之道也,女又美之。吾語女:我,文王之爲子,武王之爲弟,成王之爲叔父。吾於天下不賤矣,然而吾所執贄而見者十人,還贄而相見者三十人,貌執之士者百有餘人,欲言而請畢事者千有餘人,於是吾僅得三士焉,以正吾身,以定天下。吾所以得三士者,亡於十人與三十人中,乃在百人與千人之中。故上士吾薄爲之貌,下士吾厚爲之貌。人人皆以我爲越踰好士,然故士至,士至而後見物,見物然後知其是非之所在。戒之哉!女以魯國驕人,幾矣!夫仰禄之士猶可驕也,正身之士不可驕也。彼正身之士,舍貴而爲賤,舍富而爲貧,舍佚而爲勞,顏色黎黑而不失其所,是以天下之紀不息,文章不廢也。」

백금(伯禽)이 노나라로 돌아가려 할 때 주공이 백금의 스승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떠나려 하니 어찌 내 아들의 아름다운 덕을 말해 주지 않는가.」

대답하였다. 「그 사람됨이 너그럽고, 스스로 쓰기를 좋아하고, 삼갑니다. 이 셋이 그 아름다운 덕입니다.」

주공이 말하였다.

「아, 사람의 모진 것을 아름다운 덕이라 하는가.

군자는 도와 덕으로 좋아하므로 그 백성이 도에 돌아온다. 저 너그러움이란 나서면 가림이 없는 것인데 그대가 또 그것을 아름답다 한다. 저 스스로 쓰기를 좋아함이란 좁고 작아지는 까닭이다. 군자는 힘이 소 같아도 소와 힘을 다투지 않고, 달리기가 말 같아도 말과 달리기를 다투지 않고, 앎이 선비 같아도 선비와 앎을 다투지 않는다. 저 다투는 것은 고만고만한 이들의 기운인데 그대가 또 그것을 아름답다 한다. 저 삼감이란 그 얕은 까닭이다.

내가 들으니 『넘어서 선비를 보지 않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였다. 선비를 보고 묻기를 『살피지 못한 것이 없습니까』 하지 않으면 듣지 못하고, 곧 물건이 적게 이르고, 적게 이르면 얕아진다. 저 얕은 것은 천한 사람의 도인데 그대가 또 그것을 아름답다 한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겠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아우요 성왕의 삼촌이다. 내가 천하에 천하지 않다. 그런데도 내가 폐백을 잡고 뵌 이가 열 사람이요, 폐백을 돌려주고 서로 본 이가 서른 사람이요, 얼굴을 잡고 대한 선비가 백 사람이 넘고, 말하고자 하여 일을 마치기를 청한 이가 천 사람이 넘는다. 이에 내가 겨우 세 선비를 얻어 내 몸을 바로 하고 천하를 정하였다.

내가 세 선비를 얻은 데는 열 사람과 서른 사람 가운데가 아니라 곧 백 사람과 천 사람 가운데였다. 그러므로 윗길 선비에게는 내가 얼굴을 엷게 하고 아랫길 선비에게는 내가 얼굴을 두터이 한다. 사람마다 다 나를 넘어서 선비를 좋아한다 여기니, 그러므로 선비가 이르고, 선비가 이른 뒤에 물건을 보고, 물건을 본 뒤에 그 옳고 그름이 있는 데를 안다.

경계할지어다. 그대가 노나라로 남에게 뽐낸다면 위태롭다. 무릇 녹을 우러르는 선비에게는 오히려 뽐낼 수 있으나 몸을 바로 하는 선비에게는 뽐낼 수 없다. 저 몸을 바로 하는 선비는 귀함을 버리고 천함이 되고, 가멸음을 버리고 가난함이 되고, 편안함을 버리고 수고로움이 되며, 낯빛이 검게 그을려도 그 자리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천하의 벼리가 그치지 않고 글이 무너지지 않는다.」

語曰:「繒丘之封人,見楚相孫叔敖曰:『吾聞之也:處官久者士妒之,禄厚者民怨之,位尊者君恨之。爲相國有此三者而不得罪於楚之士民,何也?』孫叔敖曰:『吾三相楚而心瘉卑,每益禄而施瘉博,位滋尊而禮瘉恭,是以不得罪於楚之士民也。』」

말에 이르기를, 증구(繒丘)의 봉인이 초나라 재상 손숙오를 보고 말하였다. 「제가 들으니 벼슬에 오래 있는 이는 선비가 시새우고, 녹이 두터운 이는 백성이 원망하고, 자리가 높은 이는 임금이 한스러워한다 합니다. 재상이 되어 이 셋이 있는데도 초나라의 선비와 백성에게 죄를 얻지 않으니 어째서입니까.」

손숙오가 말하였다. 「내가 세 번 초나라 재상이 되었으되 마음이 더욱 낮아지고, 녹이 더할수록 베풂이 더욱 넓어지고, 자리가 더욱 높아질수록 예가 더욱 공손해졌소. 그래서 초나라의 선비와 백성에게 죄를 얻지 않았소.」

子貢問於孔子曰:「賜爲人下而未知也。」孔子曰:「爲人下者乎?其猶土也?深抇之而得甘泉焉,樹之而五穀蕃焉,草木殖焉,禽獸育焉,生則立焉,死則入焉,多其功而不息。爲人下者,其猶土也。」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가 남의 아래가 되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남의 아래가 된다는 것인가. 그것은 흙과 같지 않은가. 깊이 파면 단 샘을 얻고, 심으면 오곡이 무성하고, 풀과 나무가 자라고, 새와 짐승이 길러지고, 살아서는 그 위에 서고 죽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 공이 많되 그치지 않는다. 남의 아래가 되는 것은 흙과 같다.」

昔虞不用宮之奇而晉并之,萊不用子馬而齊并之,紂刳王子比干而武王得之。不親賢用知,故身死國亡也。

옛날 우(虞)나라가 궁지기를 쓰지 않아 진나라가 아울렀고, 내(萊)나라가 자마(子馬)를 쓰지 않아 제나라가 아울렀고, 주가 왕자 비간을 갈라 무왕이 얻었다. 어진 이를 친히 하고 슬기로운 이를 쓰지 않았으므로 몸이 죽고 나라가 없어졌다.

爲說者曰:「孫卿不及孔子。」是不然。孫卿迫於亂世,鰌於嚴刑,上無賢主,下遇曓秦,禮義不行,教化不成,仁者絀約,天下冥冥,行全剌之,諸侯大傾。當是時也,知者不得慮,能者不得治,賢者不得使。故君上蔽而無覩,賢人距而不受。然則孫卿懷將聖之心,蒙佯狂之色,視天下以愚。《詩》曰:「既明且哲,以保其身。」此之謂也。是其所以名聲不白,徒與不衆,光輝不博也。今之學者,得孫卿之遺言餘教,足以爲天下法式表儀,所存者神,所過者化。觀其善行,孔子弗過,世不詳察,云非聖人,奈何!天下不治,孫卿不遇時也。德若堯、禹,世少知之。方術不用,爲人所疑。其知至明,循道正行,足以爲紀綱。嗚呼!賢哉!宜爲帝王。天地不知,善桀、紂,殺賢良。比干剖心,孔子拘匡;接輿避世,箕子佯狂;田常爲亂,闔閭擅强。爲惡得福,善者有殃。今爲說者又不察其實,乃信其名。時世不同,譽何由生?不得爲政,功安能成?志修德厚,孰謂不賢乎!

말하는 이가 있어 「손경(孫卿)이 공자에 미치지 못한다」 한다. 이는 그렇지 않다.

손경은 어지러운 세상에 몰리고 매서운 형벌에 눌렸다. 위로 어진 임금이 없고 아래로 사나운 진나라를 만나 예와 옳음이 행해지지 않고 가르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진 이가 물리쳐지고 매이고 천하가 어둡고 어두워, 온전히 행하면 이를 찌르고 제후가 크게 기울었다.

그때에는 슬기로운 이가 헤아릴 수 없고 능한 이가 다스릴 수 없고 어진 이가 부려질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임금이 가려져 보지 못하고 어진 사람이 막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한즉 손경은 장차 거룩할 마음을 품고 거짓 미친 낯빛을 쓰고 천하에 어리석은 척하였다. 「시」에 이르기를 「밝고 또 슬기로워 그 몸을 지킨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이것이 그 이름이 드러나지 못하고 따르는 무리가 많지 않고 빛이 넓지 못한 까닭이다.

이제 배우는 이가 손경의 남긴 말과 남은 가르침을 얻으면 천하의 법과 본이 될 만하다. 머무는 데가 신령하고 지나는 데가 달라진다. 그 착한 행실을 보면 공자도 넘지 못하는데 세상이 자세히 살피지 않고 성인이 아니라 하니 어찌하랴.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손경이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덕이 요임금과 우임금 같아도 세상이 아는 이가 적다. 방략이 쓰이지 않고 남에게 의심받는다. 그 앎이 지극히 밝고 도를 좇아 바로 행하니 벼리가 될 만하다.

아, 어질구나. 마땅히 제왕이 될 만하다. 하늘과 땅이 알지 못하여 걸과 주를 좋다 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죽였다. 비간은 심장이 갈리고 공자는 광(匡)에서 갇혔다. 접여는 세상을 피하고 기자는 거짓 미쳤다. 전상은 난을 일으키고 합려는 굳셈을 오로지하였다. 모짊을 하고도 복을 얻고 착한 이에게 재앙이 있었다.

이제 말하는 이가 또 그 알맹이를 살피지 않고 곧 그 이름만 믿는다. 때와 세상이 같지 않으니 기림이 어디서 나겠는가. 정사를 하지 못하였으니 공이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뜻이 닦이고 덕이 두터운데 누가 어질지 않다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