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安西
「왕오천축국전」 한 권 「안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신라 승려 혜초가 스무 살 무렵 인도와 서역 마흔 나라를 발로 밟고 쓴 여행기. 천 년 넘게 사라졌다가 1908년 돈황 석굴에서 두루마리 잔본으로 되찾았다. 고향을 그리는 오언시 다섯 수가 함께 실려 있다.
1개원 15년 안서에 이르다
開元十五年十一月上旬。至安西。于時節度大使趙君。
개원(開元) 15년(727) 11월 상순에 안서(安西)에 이르렀다. 그때 절도대사는 조군(趙君)이었다.
2안서의 한나라 절
且於安西。有兩所漢僧住持。行大乘法。不食肉也。大雲寺主秀行。善能講說。先是。京中七寶臺寺僧大雲寺□維那。名義超善解律藏。舊是京中莊嚴寺僧也大雲寺上座。名明惲。大有行業。亦是京中僧。此等僧。大好住持甚有道心樂崇□德龍興寺主。名法海。雖是漢兒生安西。學識人風。不殊華夏。
또 안서에는 한나라 승려가 주지하는 절이 두 곳 있어 대승법을 행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다.
대운사(大雲寺) 주지 수행(秀行)은 강설을 잘한다. 전에는 서울(장안) 칠보대사(七寶臺寺)의 승려였다. 대운사 □유나(維那)는 이름이 의초(義超)니 율장(律藏)을 잘 풀며, 본디 서울 장엄사(莊嚴寺) 승려다. 대운사 상좌는 이름이 명운(明惲)이니 행업이 크며 역시 서울 승려다. 이들 승려는 주지 노릇을 아주 잘하며 도심이 깊고 □덕 높이기를 즐긴다.
용흥사(龍興寺) 주지는 이름이 법해(法海)니, 한나라 아이로 안서에서 났지만 학식과 사람됨이 중화(華夏)에 못지않다.
3우전과 소륵의 한나라 절
于闐有一漢寺。名龍興寺。有一漢僧。名□□。是彼寺主。大好住持。彼僧是河北冀州人士疎勒亦有漢大雲寺。有一漢僧住持。即是崏州人士
우전에도 한나라 절이 하나 있으니 이름이 용흥사다. 한나라 승려 한 분이 있어 이름은 □□인데 그 절의 주지다. 주지 노릇을 아주 잘한다. 그 승려는 하북 기주(冀州) 사람이다.
소륵에도 한나라 대운사가 있고 한나라 승려 한 분이 주지하니, 곧 민주(崏州)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