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환烏丸
1위서에 적힌 오환의 풍속 — 젊은이를 귀히 여긴다
《魏書》曰:烏丸者,東胡也。漢初,匈奴冒頓滅其國,餘類保烏丸山,因以爲號焉。俗善騎射,隨水草放牧,居無常處,以穹廬爲宅,皆東向。日弋獵禽獸,食肉飲酪,以毛毳爲衣。貴少賤老,其性悍驁,怒則殺父兄,而終不害其母,以母有族類,父兄以己爲種,無復報者故也。常推募勇健能理決鬥訟相侵犯者爲大人,邑落各有小帥,不世繼也。數百千落自爲一部,大人有所召呼,刻木爲信,邑落傳行,無文字,而部衆莫敢違犯。氏姓無常,以大人健者名字爲姓。大人已下,各自畜牧治產,不相徭役。其嫁娶皆先私通,略將女去,或半歲百日,然後遣媒人送馬牛羊以爲聘娶之禮。婿隨妻歸,見妻家無尊卑,旦起皆拜,而不自拜其父母。爲妻家僕役二年,妻家乃厚遣送女,居處財物,一出妻家。故其俗從婦人計,至戰鬥時,乃自決之。父子男女,相對蹲踞,悉髡頭以爲輕便。婦人至嫁時乃養發,分爲髻,著句決,飾以金碧,猶中國有冠步搖也。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오환은 동호다. 한나라 처음에 흉노의 묵특이 그 나라를 멸하매 남은 무리가 오환산(烏丸山)을 지켰으므로 이를 이름으로 삼았다.
풍속이 말 타고 활쏘기를 잘하며, 물과 풀을 따라 놓아 먹이고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다. 궁려(穹廬)를 집으로 삼는데 다 동쪽을 향한다. 날마다 새와 짐승을 주살로 사냥하고 고기를 먹고 젖을 마시며 털로 옷을 지어 입는다.
젊은 이를 귀히 여기고 늙은 이를 천히 여긴다. 그 성품이 사납고 거칠어 성나면 아버지와 형을 죽이면서도 끝내 그 어머니는 해치지 않는다. 어머니에게는 겨레붙이가 있으나 아버지와 형은 저를 같은 씨로 여겨 다시 갚을 이가 없기 때문이다.
늘 용맹하고 굳세며 싸움과 송사와 서로 침범하는 일을 잘 가려 결단하는 이를 밀어 대인으로 삼고, 읍락마다 소수(小帥)를 두는데 대를 이어 물려주지 않는다. 몇백에서 몇천 락(落)이 스스로 한 부(部)가 된다. 대인이 부를 일이 있으면 나무에 새겨 믿음으로 삼아 읍락에 돌려 보내니, 글자가 없어도 부의 무리가 감히 어기지 못한다.
씨와 성이 일정하지 않아 대인 가운데 굳센 이의 이름자를 성으로 삼는다. 대인 아래로는 저마다 가축을 치고 살림을 다스리며 서로 부역시키지 않는다.
혼인은 다 먼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여자를 앗아 데려간 뒤, 반 해나 백 날쯤 지나서 중매를 보내어 말과 소와 양을 보내는 것으로 장가드는 예를 삼는다. 사위가 아내를 따라 돌아가 처가 사람을 보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다 절하되, 제 부모에게는 절하지 않는다. 처가의 종노릇을 두 해 하면 처가가 이에 두터이 딸을 보내니, 사는 집과 재물이 다 처가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그 풍속이 부인의 헤아림을 좇고, 싸울 때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결단한다.
아비와 아들, 사내와 계집이 서로 마주 쭈그려 앉으며, 다 머리를 깎아 가볍고 편하게 한다. 부인은 시집갈 때가 되어서야 머리를 기르고 나누어 쪽을 지으며 구결(句決)을 쓰고 금과 옥으로 꾸미니, 중국에 관(冠)과 보요(步搖)가 있는 것과 같다.
2죽은 이의 넋을 개가 적산으로 데려간다
父兄死,妻後母執嫂;若無執嫂者,則己子以親之次妻伯叔焉,死則歸其故夫。俗識鳥獸孕乳,時以四節,耕種常用布穀鳴爲候。地宜青穄、東牆,東牆似蓬草,實如葵子,至十月熟。能作白酒,而不知作麹蘖。米常仰中國。大人能作弓矢鞍勒,鍛金鐵爲兵器,能刺韋作文繡,織縷氈毼。有病,知以艾灸,或燒石自熨,燒地臥上,或隨痛病處,以刀決脈出血,及祝天地山川之神,無針藥。貴兵死,斂屍有棺,始死則哭,葬則歌舞相送。肥養犬,以采繩嬰牽,並取亡者所乘馬、衣物、生時服飾,皆燒以送之。特屬累犬,使護死者神靈歸乎赤山。赤山在遼東西北數千里,如中國人以死之魂神歸泰山也。至葬日,夜聚親舊員坐,牽犬馬曆位,或歌哭者,擲肉與之。使二人口頌咒文,使死者魂神徑至,歷險阻,勿令橫鬼遮護,達其赤山,然後殺犬馬衣物燒之。敬鬼神,祠天地日月星辰山川,及先大人有健名者,亦同祠以牛羊,祠畢皆燒之。
아버지와 형이 죽으면 뒤어머니를 아내로 삼고 형수를 거둔다. 만약 형수를 거둘 이가 없으면 제 아들이 친함의 차례를 따라 백부와 숙부의 아내를 아내로 삼고, 죽으면 본디 지아비에게 돌려보낸다.
풍속에 새와 짐승이 새끼 배고 젖 먹이는 것으로 네 철을 알며, 밭 갈고 씨 뿌리는 것은 늘 뻐꾸기 우는 것을 철로 삼는다. 땅에는 청제(青穄)와 동장(東牆)이 알맞다. 동장은 쑥과 비슷하고 열매는 아욱씨 같으며 시월에 익는다. 백주(白酒)를 만들 줄 알되 누룩 만드는 법은 모른다. 쌀은 늘 중국에 기댄다.
대인은 활과 화살과 안장과 굴레를 만들 줄 알고, 쇠를 두드려 병기를 만들며, 가죽에 수를 놓고 실을 짜서 모직을 만든다.
병이 나면 쑥으로 뜸뜰 줄 알고, 더러는 돌을 달구어 몸을 지지거나 땅을 달구어 그 위에 눕고, 더러는 아픈 자리를 따라 칼로 맥을 갈라 피를 내며, 하늘과 땅과 산천의 신에게 빈다. 침과 약은 없다.
싸우다 죽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주검을 거둘 때 널을 쓰며, 처음 죽으면 곡하고 장사 지낼 때는 노래하고 춤추어 보낸다. 개를 살찌워 기르고 채색 끈으로 매어 끌며, 아울러 죽은 이가 타던 말과 옷가지와 살았을 때 꾸미던 것을 다 태워 보낸다. 특히 개에게 거듭 부탁하여 죽은 이의 넋을 지켜 적산(赤山)으로 돌아가게 한다. 적산은 요동 서북쪽 몇천 리에 있으니, 중국 사람이 죽은 넋은 태산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과 같다.
장사 지내는 날이 되면 밤에 친척과 벗이 모여 둘러앉고, 개와 말을 끌어 자리를 돌게 하며, 노래하거나 곡하는 이에게 고기를 던져 준다. 두 사람에게 주문을 외게 하여 죽은 이의 넋이 곧바로 이르러 험한 데를 지나되 몹쓸 귀신이 막지 못하고 적산에 다다르게 한 뒤에, 개와 말을 죽이고 옷가지와 함께 태운다.
귀신을 공경하여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별과 산천에 제사하고, 앞선 대인 가운데 굳센 이름이 있는 이도 함께 소와 양으로 제사하며, 제사가 끝나면 다 태운다.
3흉노에게 눌리다가 도리어 그 무덤을 파다
飲食必先祭。其約法,違大人言死,盜不止死。其相殘殺,令都落自相報,相報不止,詣大人平之,有罪者出其牛羊以贖死命,乃止。自殺其父兄無罪。其亡叛爲大人所捕者,諸邑落不肯受,皆逐使至雍狂地。地無山,有沙漠、流水、草木,多蝮蛇,在丁令之西南,烏孫之東北,以窮困之。自其先爲匈奴所破之後,人衆孤弱,爲匈奴臣服,常歲輸牛馬羊,過時不具,輒虜其妻子。至匈奴壹衍鞮單于時,烏丸轉強,發掘匈奴單于塚,將以報冒頓所破之恥。壹衍鞮單于大怒,發二萬騎以擊烏丸。大將軍霍光聞之,遣度遼將軍范明友將三萬騎出遼東追擊匈奴。比明友兵至,匈奴已引去。烏丸新被匈奴兵,乘其衰弊,遂進擊烏丸,斬首六千餘級,獲三王首還。後數復犯塞,明友輒征破之。至王莽末,並與匈奴爲寇。光武定天下,遣伏波將軍馬援將三千騎,從五原關出塞征之,無利,而殺馬千餘匹。
먹고 마실 때에는 반드시 먼저 제사한다. 그 법의 약속에, 대인의 말을 어기면 죽이고 도둑질을 그치지 않으면 죽인다. 서로 죽이면 그 읍락끼리 스스로 갚게 하고, 갚음이 그치지 않으면 대인에게 나아가 고르게 하며, 죄 있는 자가 소와 양을 내어 죽을 목숨을 대신하면 이에 그친다. 제 아버지와 형을 죽인 것은 죄가 없다.
달아나 배반하였다가 대인에게 잡힌 자는 여러 읍락이 받아 주려 하지 않아 다 쫓아 옹광(雍狂) 땅에 이르게 한다. 그 땅에는 산이 없고 사막과 흐르는 물과 풀과 나무가 있으며 살무사가 많다. 정령(丁令)의 서남쪽, 오손(烏孫)의 동북쪽에 있으니 그로써 궁하고 곤하게 한다.
그 선대가 흉노에게 깨진 뒤로 사람이 외롭고 약하여 흉노에게 신하로 복종하고, 늘 해마다 소와 말과 양을 바쳤는데 때가 지나도록 갖추지 못하면 그때마다 그 처자를 사로잡아 갔다. 흉노 일연제(壹衍鞮) 선우 때에 이르러 오환이 차츰 강해져 흉노 선우의 무덤을 파헤쳐 묵특에게 깨진 부끄러움을 갚으려 하였다.
일연제 선우가 크게 노하여 이만 기병을 내어 오환을 쳤다. 대장군 곽광이 이를 듣고 도료장군 범명우를 보내어 삼만 기병을 거느리고 요동으로 나가 흉노를 뒤쫓아 치게 하였다. 명우의 군사가 이를 즈음에 흉노는 이미 물러가 있었다. 오환이 갓 흉노의 군사를 겪었으므로 그 쇠하고 지친 틈을 타 마침내 나아가 오환을 쳐서 육천여 급을 베고 세 왕의 머리를 얻어 돌아왔다.
뒤에 여러 번 다시 변새를 범하매 명우가 그때마다 쳐서 깨뜨렸다. 왕망 말년에 이르러 흉노와 아울러 도둑질하였다. 광무제가 천하를 평정하고 복파장군 마원을 보내어 삼천 기병을 거느리고 오원관으로 변새를 나가 쳤으나 이로움이 없고 말 천여 필만 잃었다.
4한나라 안으로 들어와 살게 되다
烏丸遂盛,鈔擊匈奴,匈奴轉徙千里,漠南地空。建武二十五年,烏丸大人郝旦等九千餘人率衆詣闕,封其渠帥爲侯王者八十餘人,使居塞內,布列遼東屬國、遼西、右北平、漁陽、廣陽、上穀、代郡、雁門、太原、朔方諸郡界,招來種人,給其衣食,置校尉以領護之,遂爲漢偵備,擊匈奴、鮮卑。至永平中,漁陽烏丸大人欽志賁帥種人叛,鮮卑還爲寇害,遼東太守祭肜募殺志賁,遂破其衆。至安帝時,漁陽、右北平、雁門烏丸率衆王無何等復與鮮卑、匈奴合,鈔略代郡、上穀、涿郡、五原,乃以大司農何熙行車騎將軍,左右羽林五營士,發緣邊七郡黎陽營兵合二萬人擊之。匈奴降,鮮卑、烏丸各還塞外。是後,烏丸稍復親附,拜其大人戎末廆爲都尉。至順帝時,戎末廆率將王侯咄歸、去延等從烏丸校尉耿曄出塞擊鮮卑有功,還皆拜爲率衆王,賜束帛。
오환이 마침내 성해져 흉노를 노략하고 치니, 흉노가 천 리를 옮겨 가 막남 땅이 비었다.
건무 이십오년에 오환의 대인 학단 등 구천여 사람이 무리를 거느리고 대궐에 나아왔다. 그 거수 팔십여 사람을 후와 왕으로 봉하고 변새 안에 살게 하여, 요동속국·요서·우북평·어양·광양·상곡·대군·안문·태원·삭방 여러 군의 지경에 벌여 두었다. 제 겨레를 불러들이고 옷과 밥을 주며 교위를 두어 거느려 지키게 하니, 마침내 한나라를 위하여 살피고 지키며 흉노와 선비를 쳤다.
영평 연간에 이르러 어양의 오환 대인 흠지분이 제 겨레를 거느리고 배반하고 선비가 도로 도둑질하여 해를 끼치매, 요동태수 제융이 사람을 사서 지분을 죽이고 마침내 그 무리를 깨뜨렸다.
안제 때에 이르러 어양과 우북평과 안문의 오환 솔중왕 무하 등이 다시 선비·흉노와 합쳐 대군·상곡·탁군·오원을 노략하매, 이에 대사농 하희에게 거기장군의 일을 대신 맡기고 좌우 우림의 다섯 영 군사와 변방 일곱 군의 여양 영병을 내어 모두 이만 사람으로 쳤다. 흉노가 항복하고 선비와 오환은 각각 변새 밖으로 돌아갔다.
이 뒤로 오환이 차츰 다시 친하게 붙으매 그 대인 융말외를 도위로 삼았다. 순제 때에 이르러 융말외가 왕과 후인 돌귀와 거연 등을 거느리고 오환교위 경엽을 따라 변새를 나가 선비를 쳐서 공이 있으매, 돌아와 다 솔중왕으로 삼고 비단 묶음을 내렸다.
5한나라 말의 네 대인
漢末,遼西烏丸大人丘力居,衆五千餘落,上谷烏丸大人難樓,衆九千餘落,各稱王,而遼東屬國烏丸大人蘇僕延,衆千餘落,自稱峭王,右北平烏丸大人烏延,衆八百餘落,自稱汗魯王,皆有計策勇健。中山太守張純叛入丘力居衆中,自號彌天安定王,爲三郡烏丸元帥,寇略青、徐、幽、冀四州,殺略吏民。靈帝末,以劉虞爲州牧,募胡斬純首,北州乃定。後丘力居死,子樓班年小,從子蹋頓有武略,代立,總攝三王部,衆皆從其教令。袁紹與公孫瓚連戰不決,蹋頓遣使詣紹求和親,助紹擊瓚,破之。紹矯制賜蹋頓、峭王、汗魯王印綬,皆以爲單于。
한나라 말에 요서 오환의 대인 구력거는 무리가 오천여 락이요, 상곡 오환의 대인 난루는 무리가 구천여 락인데 각각 왕이라 일컬었다. 요동속국 오환의 대인 소복연은 무리가 천여 락인데 스스로 초왕(峭王)이라 하고, 우북평 오환의 대인 오연은 무리가 팔백여 락인데 스스로 한로왕(汗魯王)이라 하였으니, 다 꾀가 있고 용맹하며 굳세었다.
중산태수 장순이 배반하여 구력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이라 부르고 세 군 오환의 원수가 되어, 청주·서주·유주·기주 네 주를 도둑질하고 노략하며 벼슬아치와 백성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영제 말에 유우를 주목으로 삼아 호(胡)를 사서 장순의 목을 베게 하니 북쪽 주가 이에 평정되었다.
뒤에 구력거가 죽었는데 아들 누반이 나이 어리고 조카 답돈이 무략이 있으므로 대신 서서 세 왕의 부를 통틀어 거느리니, 무리가 다 그 가르침과 명령을 좇았다. 원소가 공손찬과 잇달아 싸워 결판이 나지 않으매, 답돈이 사신을 보내어 원소에게 나아가 화친을 구하고 원소를 도와 공손찬을 쳐서 깨뜨렸다. 원소가 조서를 사칭하여 답돈과 초왕과 한로왕에게 인수(印綬)를 내리고 다 선우로 삼았다.
협주 1
難
본에 따라 여기에 「난(難)」 자가 더 있다.
6원소가 세 왕에게 내린 글
《英雄記》曰:紹遣使即拜烏丸三王爲單于,皆安車、華蓋、羽旄、黃屋、左纛。版文曰:「使持節大將軍督幽、青、並領冀州牧阮鄉侯紹,承制詔遼東屬國率衆王頒下、烏丸遼西率衆王蹋頓、右北平率衆王汗盧維:乃祖慕義遷善,款塞內附,北捍玁狁,東拒濊貊,世守北陲,爲百姓保障,雖時侵犯王略,命將徂征厥罪,率不旋時,悔愆變改,方之外夷,最又聰惠者也。始有千夫長、百夫長以相統領,用能悉乃心,克有勳力於國家,稍受王侯之命。自我王室多故,公孫瓚作難,殘夷厥土之君,以侮天慢主,是以四海之內,並執干戈以衛社稷。三王奮氣裔土,忿奸憂國,控弦與漢兵爲表裏,誠甚忠孝,朝所嘉焉。然而虎兕長蛇,相隨塞路,王官爵命,否而無聞。夫有勳不賞,俾勤者怠。今遣行謁者楊林,齎單于璽綬車服,以對爾勞。其各綏靜部落,教以謹慎,無使作凶作慝。世復爾祀位,長爲百蠻長。厥有咎有不臧者,泯於爾祿,而喪於乃庸,可不勉乎!烏桓單于都護部衆,左右單于受其節度,他如故事。」
영웅기(英雄記)에 이르기를, 원소가 사신을 보내어 곧 오환의 세 왕을 선우로 삼고 다 안거(安車)와 화개(華蓋)와 우모(羽旄)와 황옥(黃屋)과 좌독(左纛)을 주었다. 그 판문(版文)에 이르기를,
"사지절 대장군으로 유주·청주·병주를 감독하고 기주목을 겸한 완향후 소(紹)는 제(制)를 받들어, 요동속국 솔중왕 반하와 오환 요서 솔중왕 답돈과 우북평 솔중왕 한로유에게 조(詔)한다.
너희 할아버지가 의로움을 사모하고 착한 데로 옮겨 변새를 두드려 안으로 붙었고, 북으로 험윤을 막고 동으로 예맥을 물리쳐 대대로 북쪽 변방을 지켜 백성의 울타리가 되었다. 비록 때로 왕의 다스림을 침범하여 장수에게 명하여 그 죄를 치게 한 일이 있었으나, 대개 때가 돌기도 전에 허물을 뉘우쳐 고쳤으니, 바깥 이(夷)에 견주면 가장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다.
처음에 천부장과 백부장을 두어 서로 거느리게 하니, 능히 너희 마음을 다하여 나라에 공과 힘이 있었고 차츰 왕과 후의 명을 받았다.
우리 왕실에 일이 많은 뒤로 공손찬이 난을 일으켜 그 땅의 임금을 해치고 하늘을 업신여기며 임금을 얕보았다. 이 때문에 사해 안이 아울러 방패와 창을 잡고 사직을 지켰다. 세 왕이 변두리 땅에서 기운을 떨쳐 간사한 자에게 분내고 나라를 근심하여, 활을 당겨 한나라 군사와 안팎이 되었으니, 참으로 몹시 충성되고 효성스러워 조정이 아름다이 여기는 바다.
그러나 범과 외뿔소와 긴 뱀이 서로 잇달아 길을 막아 왕의 벼슬과 작명이 막혀 들리지 못하였다. 무릇 공이 있는데 상 주지 않으면 부지런한 자를 게으르게 만든다. 이제 행알자 양림을 보내어 선우의 새수(璽綬)와 수레와 옷을 가지고 가서 너희 수고에 답하게 한다.
각각 부락을 어루만져 고요하게 하고 삼가고 조심하도록 가르쳐 흉한 일과 사특한 일을 짓지 말게 하라. 대대로 너희 제사와 자리를 되돌려 주어 길이 온 만이의 어른이 되게 하겠다. 허물이 있고 착하지 못한 자는 그 녹을 잃고 그 공을 잃을 것이니 힘쓰지 않겠는가. 오환 선우는 부의 무리를 도호(都護)하고 좌우 선우는 그 절도를 받으며, 그 밖의 것은 옛일대로 한다."
7태조가 유성에서 답돈을 베다
後樓班大,峭王率其部衆奉樓班爲單于,蹋頓爲王。然蹋頓多畫計策。廣陽閻柔,少沒烏丸、鮮卑中,爲其種所歸信。柔乃因鮮卑衆,殺烏丸校尉邢舉代之,紹因寵慰以安北邊。後袁尚敗奔蹋頓,憑其勢,復圖冀州。會太祖平河北,柔帥鮮卑、烏丸歸附,遂因以柔爲校尉,猶持漢使節,治廣甯如舊。建安十一年,太祖自征蹋頓於柳城,潛軍詭道,未至百餘里,虜乃覺。尚與蹋頓將衆逆戰於凡城,兵馬甚盛。太祖登高望虜陳,(柳)軍未進,觀其小動,乃擊破其衆,臨陳斬蹋頓首,死者被野。速附丸、樓班、烏延等走遼東,遼東悉斬,傳送其首。其餘遺迸皆降。及幽州、并州柔所統烏丸萬餘落,悉徙其族居中國,帥從其侯王大人種衆與征伐。由是三郡烏丸爲天下名騎。
뒤에 누반이 자라매 초왕이 그 부의 무리를 거느리고 누반을 받들어 선우로 삼고 답돈은 왕이 되었다. 그러나 꾀를 내는 것은 답돈이 많았다.
광양 사람 염유는 어려서 오환과 선비 가운데 빠져 있었으므로 그 겨레가 믿고 따랐다. 염유가 이에 선비의 무리에 힘입어 오환교위 형거를 죽이고 그 자리를 대신하매, 원소가 이로 인하여 아끼고 위로하여 북쪽 변방을 편안히 하였다.
뒤에 원상이 패하여 답돈에게 달아나 그 세력에 기대어 다시 기주를 꾀하였다. 마침 태조가 하북을 평정하매 염유가 선비와 오환을 거느리고 돌아와 붙으니, 마침내 염유를 교위로 삼고 그대로 한나라 사절을 지니게 하여 예전처럼 광녕에서 다스리게 하였다.
건안 십일년에 태조가 몸소 유성에서 답돈을 쳤다. 군사를 숨기고 길을 속여 백여 리 못 미쳐서야 오랑캐가 알아차렸다. 원상과 답돈이 무리를 거느리고 범성에서 맞아 싸웠는데 군사와 말이 몹시 성하였다. 태조가 높은 데 올라 오랑캐의 진을 바라보며 군사를 나아가게 하지 않고 그 조금 움직이는 것을 살피다가, 이에 그 무리를 쳐서 깨뜨리고 진 앞에서 답돈의 목을 베니 죽은 자가 들을 덮었다.
속부환과 누반과 오연 등이 요동으로 달아났으나 요동에서 다 베어 그 머리를 보내왔고, 그 나머지 흩어진 자는 다 항복하였다. 유주와 병주에서 염유가 거느리던 오환 만여 락에 이르러서는 그 겨레를 다 옮겨 중국에 살게 하고, 그 후와 왕과 대인과 겨레 무리를 거느려 정벌에 따르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세 군의 오환이 천하에 이름난 기병이 되었다.
8경초 원년에 항복해 온 오환
《魏略》曰:景初元年秋,遣幽州刺史毌丘儉率衆軍討遼東。右北平烏丸單于寇婁敦、遼西烏丸都督率衆王護留葉,昔隨袁尚奔遼西,聞儉軍至,率衆五千餘人降。寇婁敦遣弟(阿羅獎)阿羅槃等詣闕朝貢,封其渠帥三十餘爲王,賜輿馬繒采各有差。
위략(魏略)에 이르기를, 경초 원년 가을에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어 여러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을 치게 하였다. 우북평 오환 선우 구루돈과 요서 오환 도독 솔중왕 호류엽은 예전에 원상을 따라 요서로 달아났던 이들인데, 관구검의 군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무리 오천여 사람을 거느리고 항복하였다. 구루돈이 아우 아라반 등을 보내어 대궐에 나아가 조공하매, 그 거수 서른여 사람을 왕으로 봉하고 수레와 말과 비단을 차등 있게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