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능軻比能
1가비능이 중국을 본받다
軻比能本小種鮮卑,以勇健,斷法平端,不貪財物,衆推以爲大人。部落近塞,自袁紹據河北,中國人多亡叛歸之,教作兵器鎧楯,頗學文字。故其勒御部衆,擬則中國,出入弋獵,建立旌麾,以鼓節爲進退。建安中,因閻柔上貢獻。太祖西征關中,田銀反河間,比能將三千餘騎隨柔擊破銀。後代郡烏丸反,比能復助爲寇害,太祖以鄢陵侯彰爲驍騎將軍,北征,大破之。比能走出塞,後復通貢獻。延康初,比能遣使獻馬,文帝亦立比能爲附義王。黃初二年,比能出諸魏人在鮮卑者五百餘家,還居代郡。明年,比能帥部落大人小子代郡烏丸脩武盧等三千餘騎,驅牛馬七萬餘口交市,遣魏人千餘家居上谷。後與東部鮮卑大人素利及步度根三部爭鬪,更相攻擊。田豫和合,使不得相侵。五年,比能復擊素利,豫帥輕騎徑進掎其後。比能使別小帥瑣奴拒豫,豫進討,破走之,由是懷貳。乃與輔國將軍鮮于輔書曰:「夷狄不識文字,故校尉閻柔保我於天子。
가비능은 본디 작은 겨레의 선비인데, 용맹하고 굳세며 법 가르기가 고르고 바르며 재물을 탐하지 않으므로 무리가 밀어 대인으로 삼았다.
부락이 변새에 가까워 원소가 하북을 차지한 뒤로 중국 사람이 많이 달아나 배반하여 그에게 돌아가니, 병기와 갑옷과 방패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글자도 자못 배웠다. 그러므로 부의 무리를 거느려 다스림에 중국을 본받고, 드나들며 사냥할 때 깃발을 세우고 북장단으로 나아가고 물러났다.
건안 연간에 염유를 통하여 공물을 올렸다. 태조가 서로 관중을 칠 때 전은이 하간에서 배반하매, 가비능이 삼천여 기병을 거느리고 염유를 따라 전은을 쳐서 깨뜨렸다. 뒤에 대군의 오환이 배반하매 가비능이 다시 도와 도둑질하여 해를 끼치니, 태조가 언릉후 조창을 효기장군으로 삼아 북으로 쳐서 크게 깨뜨렸다. 가비능이 변새 밖으로 달아났다가 뒤에 다시 공물을 통하였다.
연강 처음에 가비능이 사신을 보내어 말을 바치매 문제가 또한 가비능을 부의왕(附義王)으로 삼았다. 황초 이년에 가비능이 선비에 있던 위나라 사람 오백여 집을 내보내 대군에 돌아와 살게 하였다. 이듬해에 부락 대인의 작은아들과 대군 오환의 수무로 등 삼천여 기병을 거느리고 소와 말 칠만여 마리를 몰아 와 저자를 열어 바꾸고, 위나라 사람 천여 집을 보내어 상곡에 살게 하였다.
뒤에 동부 선비의 대인 소리와 보도근 세 부가 다투어 서로 쳤다. 전예가 화해시켜 서로 침노하지 못하게 하였다. 오년에 가비능이 다시 소리를 치매 전예가 가벼운 기병을 거느리고 곧바로 나아가 그 뒤를 잡아당겼다. 가비능이 별부의 소수 쇄노를 시켜 전예를 막게 하였으나 전예가 나아가 쳐서 깨뜨려 달아나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두 마음을 품었다.
이에 보국장군 선우보에게 글을 보내어 말하였다. "이적(夷狄)은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지난날 교위 염유가 천자께 나를 보증하였습니다.
2「소와 말도 좋은 물과 풀을 안다」
我與素利爲讎,往年攻擊之,而田校尉助素利。我臨陣使瑣奴往,聞使君來,即便引軍退。步度根數數鈔盜,又殺我弟,而誣我以鈔盜。我夷狄雖不知禮義,兄弟子孫受天子印綬,牛馬尚知美水草,況我有人心邪!將軍當保明我於天子。」輔得書以聞帝,帝復使豫招納安慰。比能衆遂彊盛,控弦十餘萬騎。每鈔畧得財物,均平分付,一決目前,終無所私,故得衆死力,餘部大人皆敬憚之,然猶未能及檀石槐也。
나와 소리는 원수인지라 지난해에 그를 쳤는데 전 교위가 소리를 도왔습니다. 내가 진에 임하여 쇄노를 보냈으나 사군(使君)이 온다는 말을 듣고 곧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습니다. 보도근이 자주 노략질하고 또 내 아우를 죽이고서 도리어 나를 노략질하였다고 무고합니다.
우리 이적이 비록 예의를 알지 못하나 형제와 자손이 천자의 인수를 받았습니다. 소와 말도 오히려 좋은 물과 풀을 알거늘, 하물며 나에게 사람의 마음이 있음이겠습니까. 장군께서는 마땅히 천자께 나를 보증하여 밝혀 주소서."
선우보가 글을 얻어 황제에게 아뢰매 황제가 다시 전예를 시켜 불러들여 편안히 위로하게 하였다.
가비능의 무리가 마침내 강성해져 활 당기는 기병이 십여만이었다. 노략하여 재물을 얻을 때마다 고르게 나누어 주고 눈앞에서 한 번에 결단하여 끝내 사사로이 하는 바가 없었으므로 무리의 죽을힘을 얻었고, 다른 부의 대인이 다 그를 공경하고 꺼렸다. 그러나 아직 단석괴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3자객에게 죽다
太和二年,豫遣譯夏舍詣比能女壻鬱築鞬部,舍爲鞬所殺。其秋,豫將西部鮮卑蒲頭、泄歸泥出塞討鬱築鞬,大破之。還至馬城,比能自將三萬騎圍豫七日。上谷太守閻志,柔之弟也,素爲鮮卑所信。志往解喻,即解圍去。後幽州刺史王雄并領校尉,撫以恩信。比能數款塞,詣州奉貢獻。至青龍元年,比能誘納步度根,使叛并州,與結和親,自勒萬騎迎其累重於陘北。并州刺史畢軌遣將軍蘇尚、董弼等擊之,比能遣子將騎與尚等會戰於樓煩,臨陣害尚、弼。至三年中,雄遣勇士韓龍刺殺比能,更立其弟。
태화 이년에 전예가 통역 하사를 가비능의 사위 울축건의 부에 보냈는데 하사가 울축건에게 죽었다. 그해 가을에 전예가 서부 선비의 포두와 설귀니를 거느리고 변새를 나가 울축건을 쳐서 크게 깨뜨렸다.
돌아와 마성에 이르매 가비능이 몸소 삼만 기병을 거느리고 전예를 이레 동안 에워쌌다. 상곡태수 염지는 염유의 아우인데 본디 선비가 믿는 바였다. 염지가 가서 타이르매 곧 에움을 풀고 갔다.
뒤에 유주자사 왕웅이 교위를 겸하여 은혜와 믿음으로 어루만지니, 가비능이 여러 번 변새를 두드려 주에 나아가 공물을 바쳤다.
청룡 원년에 이르러 가비능이 보도근을 꾀어 받아들여 병주를 배반하게 하고 함께 화친을 맺으며, 몸소 만 기병을 거느리고 형북에서 그 살림과 짐을 맞았다. 병주자사 필궤가 장군 소상과 동필 등을 보내어 치매, 가비능이 아들을 보내어 기병을 거느리고 소상 등과 누번에서 만나 싸워 진 앞에서 소상과 동필을 죽였다.
삼년 중에 이르러 왕웅이 용사 한룡을 보내어 가비능을 찔러 죽이고 그 아우를 다시 세웠다.
4소리·미가·궐기
素利、彌加、厥機皆爲大人,在遼西、右北平、漁陽塞外,道遠初不爲邊患,然其種衆多於比能。建安中,因閻柔上貢獻,通市,太祖皆表寵以爲王。厥機死,又立其子沙末汗爲親漢王。延康初,又各遣使獻馬。文帝立素利、彌加爲歸義王。素利與比能更相攻擊。太和二年,素利死。子小,以弟成律歸爲王,代攝其衆。
소리와 미가와 궐기는 다 대인이 되어 요서와 우북평과 어양의 변새 밖에 있었다. 길이 멀어 처음에는 변방의 근심이 되지 않았으나 그 겨레의 무리는 가비능보다 많았다.
건안 연간에 염유를 통하여 공물을 올리고 저자를 통하매 태조가 다 표를 올려 아끼어 왕으로 삼았다. 궐기가 죽으매 또 그 아들 사말한을 친한왕(親漢王)으로 세웠다. 연강 처음에 또 각각 사신을 보내어 말을 바쳤다. 문제가 소리와 미가를 귀의왕으로 세웠다.
소리가 가비능과 서로 치고 쳤다. 태화 이년에 소리가 죽었는데 아들이 어리므로 아우 성률귀를 왕으로 삼아 그 무리를 대신 거느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