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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루挹婁

삼국지 동이전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 진수(陳壽), 주석 배송지(裴松之) · 3세기 말 (주는 429년) · 단락 1 · 한자 276자 · 낭독 1.1분

「삼국지 동이전」 동이 「읍루」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중국 사람이 둘레 나라를 적은 가장 오래된 기록. 부여·고구려·옥저·읍루·예·삼한·왜인이 여기 처음 나온다. 같은 붓이 북쪽 오환·선비와 서쪽 대진(로마)까지 한 권에 적어, 그때 중국이 남을 어떤 잣대로 갈라 보았는지가 함께 드러난다.

1읍루 — 옛 숙신씨의 나라

挹婁在夫餘東北千餘里,濱大海,南與北沃沮接,未知其北所極。其土地多山險。其人形似夫餘,言語不與夫餘、句麗同。有五穀、牛、馬、麻布。人多勇力。無大君長,邑落各有大人。處山林之間,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土氣寒,劇於夫餘。其俗好養豬,食其肉,衣其皮。冬以豬膏塗身,厚數分,以禦風寒。夏則裸袒,以尺布隱其前後,以蔽形體。其人不絜,作溷在中央,人圍其表居。其弓長四尺,力如弩,矢用楛,長尺八寸,青石爲鏃,古之肅慎氏之國也。善射,射人皆入(因)。矢施毒,人中皆死。出赤玉,好貂,今所謂挹婁貂是也。自漢已來,臣屬夫餘,夫餘責其租賦重,以黃初中叛之。夫餘數伐之,其人衆雖少,所在山險,鄰國人畏其弓矢,卒不能服也。其國便乘船寇盜,鄰國患之。東夷飲食類皆用俎豆,唯挹婁不,法俗最無綱紀也。

읍루는 부여 동북 천여 리에 있으며 큰 바다에 잇대었다. 남으로 북옥저와 잇대었고 그 북쪽이 어디까지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 땅에는 험한 산이 많다.

그 사람의 생김새는 부여와 비슷하나 말은 부여·고구려와 같지 않다. 오곡과 소와 말과 삼베가 있다. 사람에게 용맹과 힘이 많다. 큰 임금이 없고 읍락마다 각각 대인이 있다.

산림 사이에 살며 늘 굴에서 지내는데, 큰 집은 깊이가 아홉 사다리이며 깊을수록 좋게 여긴다. 땅의 기운이 차서 부여보다 심하다. 그 풍속이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여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입는다. 겨울에는 돼지기름을 몸에 바르는데 두께가 몇 푼이 되게 하여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여름에는 벌거벗고 한 자 베로 앞뒤를 가려 몸을 덮는다. 그 사람들은 깨끗하지 않아 뒷간을 가운데 만들고 사람이 그 둘레에 산다.

그 활은 길이가 넉 자요 힘이 쇠뇌 같다. 화살은 호(楛)나무를 쓰는데 길이가 한 자 여덟 치요 푸른 돌로 살촉을 삼으니, 옛 숙신씨(肅慎氏)의 나라다. 활을 잘 쏘아 사람을 쏘면 다 맞힌다. 화살에 독을 발라 사람이 맞으면 다 죽는다.

붉은 옥과 좋은 담비가 나니 이제 이른바 읍루담비가 이것이다.

한나라 이래로 부여에 신하로 속하였는데, 부여가 그 조세를 무겁게 물리므로 황초 연간에 배반하였다. 부여가 여러 번 쳤으나 그 사람의 무리가 비록 적어도 있는 곳이 험한 산이요 이웃 나라 사람이 그 활과 화살을 두려워하여 끝내 복종시키지 못하였다. 그 나라는 배 타기에 익숙하여 도둑질하니 이웃 나라가 이를 근심하였다.

동이는 먹고 마심에 대개 다 조두(俎豆)를 쓰는데 오직 읍루만 쓰지 않으니, 법과 풍속에 벼리와 기강이 가장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