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
1마한의 쉰여 나라
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爲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辰韓者,古之辰國也。馬韓在西。其民土著,種植,知蠶桑,作綿布。各有長帥,大者自名爲臣智,其次爲邑借,散在山海間,無城郭。有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莫盧國、古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凡五十餘國。大國萬餘家,小國數千家,總十餘萬戶。辰王治月支國。臣智,或加優呼。臣雲遣支報,安邪踧支濆。臣離兒不例,狗邪秦支廉之號。其官有魏率善、邑君、歸義侯、中郎將、都尉、伯長。
한(韓)은 대방 남쪽에 있다. 동과 서는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으로 왜(倭)와 잇대었으며 사방 사천 리쯤 된다. 세 겨레가 있으니 하나는 마한이요 둘은 진한이요 셋은 변한이다. 진한은 옛 진국(辰國)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다. 그 백성은 붙박이로 살며 곡식을 심고 누에치기를 알아 무명과 베를 짠다. 각각 장수가 있어 큰 이는 스스로 신지(臣智)라 하고 그다음은 읍차(邑借)라 한다. 산과 바다 사이에 흩어져 있고 성곽이 없다.
원양국(爰襄國)·모수국(牟水國)·상외국(桑外國)·소석삭국(小石索國)·대석삭국(大石索國)·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신분고국(臣濆沽國)·백제국(伯濟國)·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일화국(日華國)·고탄자국(古誕者國)·고리국(古離國)·노람국(怒藍國)·월지국(月支國)·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소위건국(素謂乾國)·고원국(古爰國)·막로국(莫盧國)·비리국(卑離國)·점리비국(占離卑國)·신흔국(臣釁國)·지침국(支侵國)·구로국(狗盧國)·비미국(卑彌國)·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고포국(古蒲國)·치리국국(致利鞠國)·염로국(冉路國)·아림국(兒林國)·사로국(駟盧國)·내비리국(內卑離國)·감해국(感奚國)·만로국(萬盧國)·벽비리국(辟卑離國)·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일리국(一離國)·불미국(不彌國)·지반국(支半國)·구소국(狗素國)·첩로국(捷盧國)·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신소도국(臣蘇塗國)·막로국(莫盧國)·고랍국(古臘國)·임소반국(臨素半國)·신운신국(臣雲新國)·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일난국(一難國)·구해국(狗奚國)·불운국(不雲國)·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원지국(爰池國)·건마국(乾馬國)·초리국(楚離國)이 있으니 모두 쉰여 나라다.
큰 나라는 만여 집이요 작은 나라는 몇천 집이니 모두 십여만 호다. 진왕(辰王)은 월지국에서 다스린다.
신지에게는 더러 더 높여 부르는 이름을 붙이니 「신운견지보(臣雲遣支報)」·「안야축지분(安邪踧支濆)」·「신리아불례(臣離兒不例)」·「구야진지렴(狗邪秦支廉)」의 칭호가 그것이다. 그 벼슬에 위솔선(魏率善)·읍군(邑君)·귀의후(歸義侯)·중랑장·도위·백장(伯長)이 있다.
2준이 위만에게 빼앗기다
侯准既僭號稱王,爲燕亡人衛滿所攻奪,
후(侯) 준(准)이 참람히 왕이라 일컫다가 연나라에서 도망한 사람 위만에게 쳐서 빼앗김을 당하고,
3위략 — 기자의 후손에서 위만까지
《魏略》曰:昔箕子之後朝鮮侯,見周衰,燕自尊爲王,欲東略地,朝鮮侯亦自稱爲王,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其大夫禮諫之,乃止。使禮西說燕,燕止之,不攻。後子孫稍驕虐,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番汗爲界,朝鮮遂弱。及秦並天下,使蒙恬築長城,到遼東。時朝鮮王否立,畏秦襲之,略服屬秦,不肯朝會。否死,其子准立。二十餘年而陳、項起,天下亂,燕、齊、趙民愁苦,稍稍亡往准,准乃置之於西方。及漢以盧綰爲燕王,朝鮮與燕界於浿水。及綰反,入匈奴,燕人衛滿亡命,爲胡服,東度浿水,詣准降,說准求居西界,(故)中國亡命爲朝鮮籓屏。准信寵之,拜爲博士,賜以圭,封之百里,令守西邊。滿誘亡黨,衆稍多,乃詐遣人告准,言漢兵十道至,求入宿衛,遂還攻准。准與滿戰,不敵也。
위략(魏略)에 이르기를, 예전에 기자의 후손인 조선후가, 주나라가 쇠하고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하며 동으로 땅을 치려 하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스스로 왕이라 일컫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맞아 쳐서 주나라 왕실을 높이려 하였다. 그 대부 예(禮)가 간하매 이에 그만두었다. 예를 서쪽으로 보내어 연나라를 달래니 연나라가 그만두고 치지 않았다.
뒤에 자손이 차츰 교만하고 모질어지매 연나라가 이에 장수 진개를 보내어 그 서쪽을 쳐서 땅 이천여 리를 빼앗고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로 삼으니 조선이 마침내 약해졌다.
진나라가 천하를 아우르매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이르렀다. 그때 조선 왕 부(否)가 섰는데 진나라가 습격할까 두려워 대충 진나라에 복속하였으나 조회에는 나가려 하지 않았다. 부가 죽고 그 아들 준이 즉위하였다.
스무여 해 만에 진승과 항우가 일어나 천하가 어지러워지매 연·제·조의 백성이 시름하고 괴로워 조금씩 준에게 도망해 오니, 준이 이에 그들을 서쪽에 두었다.
한나라가 노관을 연왕으로 삼으매 조선과 연나라는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 노관이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매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오랑캐 옷을 입고 동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나아가 항복하고, 준을 달래어 서쪽 경계에 살기를 구하며 중국에서 망명한 이들로 조선의 울타리가 되겠다 하였다.
준이 믿고 아껴 박사(博士)로 삼고 규(圭)를 내리며 백 리를 봉하여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이 도망해 온 무리를 꾀어 사람이 차츰 많아지매, 이에 거짓으로 사람을 보내어 준에게 알리기를 한나라 군사가 열 길로 이르니 들어가 숙위하기를 구한다 하고, 마침내 돌아서서 준을 쳤다. 준이 위만과 싸웠으나 대적하지 못하였다.
4준이 바다로 달아나 한왕이 되다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其後絕滅,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
그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달아나 한(韓) 땅에 살면서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하였다. 그 뒤에 끊어져 없어졌으나 이제 한 사람 가운데 오히려 그 제사를 받드는 이가 있다. 한나라 때에는 낙랑군에 속하여 네 철에 나아가 뵈었다.
협주 1
《魏略》曰:其子及親留在國者,因冒姓韓氏。准王海中,不與朝鮮相往來。
위략에 이르기를, 그 아들과 친척으로 나라에 남아 있던 이는 이로 인하여 한씨(韓氏)를 성으로 삼았다. 준은 바다 가운데서 왕 노릇 하며 조선과 서로 오가지 않았다.
5위략 — 염사 사람 치가 한나라 사람 천오백을 되찾다
《魏略》曰:初,右渠未破時,朝鮮相曆谿卿以諫右渠不用,東之辰國,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至王莽地皇時,廉斯鑡爲辰韓右渠帥,聞樂浪土地美,人民饒樂,亡欲來降。出其邑落,見田中驅雀男子一人,其語非韓人。問之,男子曰:「我等漢人,名戶來,我等輩千五百人伐材木,爲韓所擊得,皆斷髮爲奴,積三年矣。」鑡曰:「我當降漢樂浪,汝欲去不?」戶來曰:「可。」(辰)鑡因將戶來(來)出詣含資縣,縣言郡,郡即以鑡爲譯,從芩中乘大船入辰韓,逆取戶來。降伴輩尚得千人,其五百人已死。鑡時曉謂辰韓:「汝還五百人。若不者,樂浪當遣萬兵乘船來擊汝。」辰韓曰:「五百人已死,我當出贖直耳。」乃出辰韓萬五千人,弁韓布萬五千匹,鑡收取直還。郡表鑡功義,賜冠幘、田宅,子孫數世,至安帝延光四年時,故受復除。
위략에 이르기를, 처음에 우거가 아직 깨지지 않았을 때 조선의 상(相)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쓰이지 않으매 동으로 진국(辰國)에 갔다. 그때 백성으로 따라 나가 산 이가 이천여 호였는데, 또한 조선에 공물 바치는 무리와는 서로 오가지 않았다.
왕망 지황 연간에 이르러 염사(廉斯) 사람 치(鑡)가 진한의 우거수(右渠帥)가 되었는데, 낙랑의 땅이 좋고 백성이 넉넉하고 즐겁다는 말을 듣고 달아나 항복하러 오려 하였다.
그 읍락을 나서다가 밭에서 참새를 쫓는 남자 하나를 보았는데 그 말이 한(韓) 사람이 아니었다. 물으니 남자가 말하였다. "우리는 한(漢)나라 사람이요 이름은 호래(戶來)입니다. 우리 무리 천오백 사람이 재목을 베다가 한(韓)에게 잡혀 다 머리를 깎이고 종이 된 지 세 해가 되었습니다."
치가 말하였다. "나는 한나라 낙랑에 항복하려 하는데 너도 가겠느냐." 호래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치가 이에 호래를 데리고 나가 함자현(含資縣)에 이르매 현이 군에 알렸고, 군이 곧 치를 통역으로 삼아 금중(芩中)에서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가 호래의 무리를 맞아 데려오게 하였다. 항복한 동무 가운데 아직 천 사람을 얻었고 그 오백 사람은 이미 죽어 있었다.
치가 그때 진한에 타일러 말하였다. "너희는 오백 사람을 돌려주어라. 그러지 않으면 낙랑이 만 군사를 배에 태워 보내어 너희를 칠 것이다."
진한이 말하였다. "오백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우리가 마땅히 그 값을 물어 내겠다."
이에 진한 사람 만오천과 변한 베 만오천 필을 내니 치가 그 값을 거두어 돌아왔다. 군이 치의 공과 의로움을 표로 올려 관과 두건과 밭과 집을 내렸고, 자손 여러 대에 걸쳐 안제 연광 사년에 이르기까지 부역 면제를 받았다.
6기리영 싸움
桓、靈之末,韓濊強盛,郡縣不能制,民多流入韓國。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興兵伐韓濊,舊民稍出,是後倭韓遂屬帶方。景初中,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其次與邑長。其俗好衣幘,下戶詣郡朝謁,皆假衣幘,自服印綬衣幘千有餘人。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환제와 영제 말에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군과 현이 누르지 못하매 백성이 한국(韓國)으로 많이 흘러 들어갔다. 건안 연간에 공손강이 둔유현(屯有縣) 남쪽 거친 땅을 갈라 대방군으로 삼고, 공손모와 장창 등을 보내어 남은 백성을 거두어 모으고 군사를 일으켜 한과 예를 치니 옛 백성이 차츰 나왔다. 이 뒤로 왜와 한이 마침내 대방에 속하였다.
경초 연간에 명제가 몰래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보내어 바다를 건너 두 군을 평정하게 하고, 여러 한국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더 내리고 그다음에게는 읍장(邑長)을 주었다. 그 풍속이 옷과 두건을 좋아하여 하호가 군에 나아가 뵐 때 다 옷과 두건을 빌렸고, 스스로 인수와 옷과 두건을 갖춘 이가 천여 사람이었다.
부종사 오림이 낙랑이 본디 한국을 거느렸다 하여 진한 여덟 나라를 갈라 낙랑에 주었는데, 벼슬아치와 통역이 옮겨 전하는 사이에 다름이 생겼다. 신지가 한(韓)을 격동시켜 분내게 하여 대방군 기리영(崎離營)을 쳤다. 그때 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치매 궁준은 싸우다 죽었고 두 군이 마침내 한을 멸하였다.
7소도와 천군
其俗少綱紀,國邑雖有主帥,邑落雜居,不能善相制禦。無跪拜之禮。居處作草屋土室,形如塚,其戶在上,舉家共在中,無長幼男女之別。其葬有槨無棺,不知乘牛馬,牛馬盡於送死。以瓔珠爲財寶,或以綴衣爲飾,或以縣頸垂耳,不以金銀錦繡爲珍。其人性強勇,魁頭露紒,如炅兵,衣布袍,足履革蹻蹋。其國中有所爲及官家使築城郭,諸年少勇健者,皆鑿脊皮,以大繩貫之,又以丈許木鍤之,通日嚾呼作力,不以爲痛,既以勸作,且以爲健。常以五月下種訖,祭鬼神,群聚歌舞,飲酒晝夜無休。其舞,數十人俱起相隨,踏地低昂,手足相應,節奏有似鐸舞。十月農功畢,亦復如之。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邑。名之爲蘇塗。立大木,縣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浮屠,而所行善惡有異。其北方近郡諸國差曉禮俗,其遠處直如囚徒奴婢相聚。
그 풍속에 벼리와 기강이 적어, 나라와 읍에 비록 주수(主帥)가 있으나 읍락이 섞여 살아 서로 잘 누르지 못한다. 꿇어 절하는 예가 없다. 사는 곳은 풀로 지붕을 이은 흙집을 만드는데 모양이 무덤 같고 문이 위에 있다. 온 집안이 함께 그 안에 있어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
장사에 덧널은 있으나 널은 없다. 소와 말을 탈 줄 모르고 소와 말은 다 죽은 이를 보내는 데 쓴다. 구슬을 재물과 보배로 삼아 더러는 옷에 꿰어 꾸미고 더러는 목에 걸고 귀에 드리우며, 금과 은과 비단과 수를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성품이 굳세고 용맹하며 머리를 드러내어 상투를 튼 것이 빛나는 병기 같다. 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는다.
나라 안에 할 일이 있거나 관가에서 성곽을 쌓게 할 때, 젊고 용맹하고 굳센 이는 다 등가죽을 뚫어 큰 줄을 꿰고 또 한 장쯤 되는 나무를 꽂고서 온종일 소리치며 힘을 쓰는데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이로써 일하기를 권하기도 하고 또 굳센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늘 오월에 씨 뿌리기를 마치면 귀신에게 제사하고 떼 지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술을 마신다. 그 춤은 몇십 사람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밟고 몸을 낮추었다 높였다 하고 손과 발이 서로 맞으니, 가락이 탁무(鐸舞)와 비슷함이 있다. 시월에 농사일을 마치면 또한 이와 같이 한다.
귀신을 믿어 나라와 읍마다 각각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게 제사하기를 맡기니 이름을 천군(天君)이라 한다. 또 여러 나라에 각각 딴 읍이 있어 이름을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긴다. 도망한 이가 그 안에 이르면 다 돌려보내지 않으니 도둑질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浮屠)와 비슷함이 있으나 행하는 바의 좋고 나쁨은 다름이 있다.
그 북쪽으로 군에 가까운 여러 나라는 예의와 풍속을 제법 알고, 먼 곳은 그저 죄수와 종이 모여 있는 것과 같다.
8배만 한 밤과 주호
無他珍寶。禽獸草木略與中國同。出大栗,大如梨。又出細尾雞,其尾皆長五尺餘。其男子時時有文身。又有州胡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其人差短小,言語不與韓同,皆髡頭如鮮卑,但衣韋,好養牛及豬。其衣有上無下,略如裸勢。乘船往來,巿買韓中。
다른 진기한 보배는 없다.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는 대략 중국과 같다. 큰 밤이 나는데 크기가 배만 하다. 또 가는 꼬리 닭이 나는데 그 꼬리가 다 길이 다섯 자 남짓이다. 그 남자는 때때로 몸에 무늬를 새긴 이가 있다.
또 주호(州胡)가 마한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 위에 있다. 그 사람은 조금 키가 작고 말이 한(韓)과 같지 않으며, 다 머리를 깎아 선비와 같고 다만 가죽옷을 입으며 소와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그 옷은 위는 있고 아래가 없어 거의 벗은 꼴이다. 배를 타고 오가며 한(韓)에서 사고판다.
9진한 — 낙랑 사람을 아잔이라 부른다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有城柵。其言語不與馬韓同,名國爲邦,弓爲弧,賊爲寇,行酒爲行觴。相呼皆爲徒,有似秦人,非但燕、齊之名物也。名樂浪人爲阿殘;東方人名我爲阿,謂樂浪人本其殘餘人。今有名之爲秦韓者。始有六國,稍分爲十二國。
진한은 마한 동쪽에 있다. 그 늙은이들이 대를 물려 전하기를, 스스로 옛적에 진(秦)나라의 부역을 피해 도망해 와 한국에 이르매 마한이 그 동쪽 지경 땅을 갈라 주었다 한다. 성책이 있다.
그 말이 마한과 같지 않아,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호(弧)라 하고 도둑을 구(寇)라 하고 술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한다. 서로 부를 때 다 도(徒)라 하니 진나라 사람과 비슷함이 있고, 다만 연나라와 제나라의 이름이나 물건만은 아니다.
낙랑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부르는데, 동방 사람은 나를 아(阿)라 하니 낙랑 사람이 본디 저희 남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제 이를 진한(秦韓)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처음에 여섯 나라가 있었는데 차츰 나뉘어 열두 나라가 되었다.
10변진 — 쇠가 나서 한·예·왜가 다 가져간다
弁辰亦十二國,又有諸小別邑,各有渠帥,大者名臣智,其次有險側,次有樊濊,次有殺奚,次有邑借。有已柢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弁辰接塗國、勤耆國、難彌離彌凍國、弁辰古資彌凍國、弁辰古淳是國、冉奚國、弁辰半路國、弁樂奴國、軍彌國、弁辰彌烏邪馬國、如湛國、弁辰甘路國、戶路國、州鮮國(馬延國)、弁辰狗邪國、弁辰走漕馬國、弁辰安邪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由國。弁、辰韓合二十四國,大國四五千家,小國六七百家,總四五萬戶。其十二國屬辰王。辰王常用馬韓人作之,世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土地肥美,宜種五穀及稻,曉蠶桑,作縑布,乘駕牛馬。嫁娶禮俗,男女有別。以大鳥羽送死,其意欲使死者飛揚。國出鐵,韓、濊、倭皆從取之。諸巿買皆用鐵,如中國用錢,又以供給二郡。俗喜歌舞飲酒。有瑟,其形似築,彈之亦有音曲。兒生,便以石厭其頭,欲其褊。今辰韓人皆褊頭。男女近倭,亦文身。便步戰,兵仗與馬韓同。其俗,行者相逢,皆住讓路。
변진(弁辰)도 열두 나라요, 또 여러 작은 딴 읍이 있어 각각 거수가 있다. 큰 이는 신지라 하고 그다음에 험측(險側)이 있고 다음에 번예(樊濊)가 있고 다음에 살해(殺奚)가 있고 다음에 읍차가 있다.
이저국(已柢國)·불사국(不斯國)·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근기국(勤耆國)·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염해국(冉奚國)·변진반로국(弁辰半路國)·변낙노국(弁樂奴國)·군미국(軍彌國)·변진미오야마국(弁辰彌烏邪馬國)·여담국(如湛國)·변진감로국(弁辰甘路國)·호로국(戶路國)·주선국(州鮮國)·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변진주조마국(弁辰走漕馬國)·변진안야국(弁辰安邪國)·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사로국(斯盧國)·우유국(優由國)이 있다.
변한과 진한을 합쳐 스물네 나라이니, 큰 나라는 사오천 집이요 작은 나라는 육칠백 집이라 모두 사오만 호다. 그 가운데 열두 나라가 진왕에게 속한다. 진왕은 늘 마한 사람을 써서 삼고 대대로 서로 이었다. 진왕은 스스로 서서 왕이 되지는 못한다.
땅이 기름지고 좋아 오곡과 벼를 심기에 알맞고, 누에치기를 알아 겸포(縑布)를 짜며 소와 말을 타고 부린다. 혼인하는 예와 풍속에 남녀의 구별이 있다. 큰 새의 깃으로 죽은 이를 보내니, 그 뜻은 죽은 이를 날아오르게 하려는 것이다.
나라에서 쇠가 나 한(韓)과 예(濊)와 왜(倭)가 다 여기서 가져간다. 사고팔 때 다 쇠를 쓰니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고, 또 두 군에도 대어 준다.
풍속이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즐긴다. 슬(瑟)이 있는데 그 모양이 축(築)과 비슷하고 타면 또한 가락이 있다. 아이가 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하려 한다. 이제 진한 사람은 다 머리가 납작하다. 남녀가 왜에 가까워 또한 몸에 무늬를 새긴다. 걸어서 싸우기에 익숙하고 병기는 마한과 같다. 그 풍속에 길 가는 이가 서로 만나면 다 멈추어 길을 양보한다.
협주 4
弁軍彌國
변군미국(弁軍彌國)이라고도 한다.
馬延國
마연국(馬延國).
《魏略》曰:明其爲流移之人,故爲馬韓所制。
위략에 이르기를, 그들이 흘러 옮겨 온 사람임이 분명하므로 마한에게 눌렸다.
《魏略》曰:其國作屋,橫累木爲之,有似牢獄也。
위략에 이르기를, 그 나라는 집을 지을 때 나무를 가로로 쌓아 만드니 감옥과 비슷함이 있다.
11독로국은 왜와 지경이 맞닿았다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祠祭鬼神有異,施灶皆在戶西。其瀆盧國與倭接界。十二國亦有王,其人形皆大。衣服絜清,長髮。亦作廣幅細布。法俗特嚴峻。
변진은 진한과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옷과 사는 곳이 진한과 같다. 말과 법과 풍속이 서로 비슷하나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다름이 있어, 부뚜막을 놓는 것이 다 문 서쪽이다.
그 독로국(瀆盧國)은 왜와 지경이 맞닿았다. 열두 나라에도 왕이 있으며 그 사람들은 몸이 다 크다. 옷이 깨끗하고 머리가 길다. 또한 폭이 넓은 고운 베를 짠다. 법과 풍속이 특히 엄하고 준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