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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융西戎

삼국지 동이전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 진수(陳壽), 주석 배송지(裴松之) · 3세기 말 (주는 429년) · 단락 11 · 한자 3,220자 · 낭독 12.9분

「삼국지 동이전」 「서융」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중국 사람이 둘레 나라를 적은 가장 오래된 기록. 부여·고구려·옥저·읍루·예·삼한·왜인이 여기 처음 나온다. 같은 붓이 북쪽 오환·선비와 서쪽 대진(로마)까지 한 권에 적어, 그때 중국이 남을 어떤 잣대로 갈라 보았는지가 함께 드러난다.

1저(氐) — 중국과 섞여 살며 두 말을 쓴다

《魏略西戎傳》曰:氐人有王,所從來久矣。自漢開益州,置武都郡,排其種人,分竄山谷間,或在福祿,或在汧、隴左右。其種非一,稱槃瓠之後,或號青氐,或號白氐,或號蚺氐,此蓋蟲之類而處中國,人即其服色而名之也。其自相號曰盍稚,各有王侯,多受中國封拜。近去建安中,興國氐王阿貴、白項氐王千萬各有部落萬餘,至十六年,從馬超爲亂。超破之後,阿貴爲夏侯淵所攻滅,千萬西南入蜀,其部落不能去,皆降。國家分徙其前後兩端者,置扶風、美陽,今之安夷、撫夷二部護軍所典是也。其(太)守善,分留天水、南安界,今之廣魏郡所守是也。其俗,語不與中國同,及羌雜胡同,各自有姓,姓如中國之姓矣。其衣服尚青絳。俗能織布,善田種,畜養豕牛馬驢騾。其婦人嫁時著衽露,其緣飾之制有似羌,衽露有似中國袍。皆編髮。多知中國語,由與中國錯居故也。其自還種落間,則自氐語。

위략(魏略) 서융전(西戎傳)에 이르기를, 저인(氐人)에게 왕이 있은 지가 오래되었다. 한나라가 익주를 열고 무도군을 두면서 그 겨레를 밀어내니, 나뉘어 산골짜기 사이로 달아나 더러는 복록(福祿)에 있고 더러는 견(汧)과 농(隴) 좌우에 있다.

그 겨레가 하나가 아니어서 반호(槃瓠)의 후손이라 일컫는다. 더러는 청저(青氐)라 하고 더러는 백저(白氐)라 하고 더러는 염저(蚺氐)라 하는데, 이는 아마 벌레 무리인데 중국에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 옷 빛깔을 따라 이름한 것이다. 저희끼리 서로 부르기를 합치(盍稚)라 하며, 각각 왕과 후가 있어 중국의 봉함을 받은 이가 많다.

가까이 건안 연간에 흥국(興國)의 저왕 아귀와 백항(白項)의 저왕 천만이 각각 부락 만여를 거느렸는데, 십육년에 이르러 마초를 좇아 난을 일으켰다. 마초가 깨진 뒤에 아귀는 하후연에게 쳐서 멸함을 당하였고 천만은 서남으로 촉에 들어갔는데, 그 부락은 떠나지 못하고 다 항복하였다. 나라에서 그 앞뒤 두 끝에 있던 이를 나누어 옮겨 부풍과 미양에 두었으니 지금의 안이(安夷)와 무이(撫夷) 두 부의 호군이 맡은 바가 이것이요, 착하게 지킨 이는 나누어 천수와 남안 지경에 머물게 하였으니 지금의 광위군이 지키는 바가 이것이다.

그 풍속에 말이 중국과 같지 않고 강(羌)이나 여러 호와도 같지 않다. 각각 성이 있는데 성은 중국의 성과 같다. 그 옷은 푸른빛과 붉은빛을 숭상한다. 풍속이 베를 짤 줄 알고 밭 갈고 씨 뿌리기를 잘하며 돼지와 소와 말과 나귀와 노새를 기른다.

그 부인은 시집갈 때 임로(衽露)를 입는데, 가선 두르는 법은 강과 비슷하고 임로는 중국의 도포와 비슷하다. 다 머리를 땋는다. 중국 말을 아는 이가 많으니 중국과 섞여 살기 때문이다. 제 겨레 사이로 돌아가면 저희 저(氐)의 말을 쓴다.

2자로와 여러 강

其嫁娶有似於羌,此蓋乃昔所謂西戎在於街、冀、豲道者也。今雖都統於郡國,然故自有王侯在其虛落間。又故武都地陰平街左右,亦有萬餘落。貲虜,本匈奴也,匈奴名奴婢爲貲。始建武時,匈奴衰,分去其奴婢,亡匿在金城、武威、酒泉北黑水、西河東西,畜牧逐水草,鈔盜涼州,部落稍多,有數萬,不與東部鮮卑同也。其種非一,有大胡,有丁令,或頗有羌雜處,由本亡奴婢故也。當漢、魏之際,其大人有檀柘,死後,其枝大人南近在廣魏、令居界,有禿瑰來數反,爲涼州所殺。今有劭提,或降來,或遁去,常爲西州道路患也。敦煌西域之南山中,從婼羌西至蔥領數千里,有月氏餘種蔥茈羌、白馬、黃牛羌,各有酋豪,北與諸國接,不知其道里廣狹。傳聞黃牛羌各有種類,孕身六月生,南與白馬羌鄰。西域諸國,漢初開其道,時有三十六,後分爲五十餘。從建武以來,更相吞滅,於今有二十道。

그 혼인은 강과 비슷함이 있으니, 이는 아마 예전에 이른바 서융으로 가(街)와 기(冀)와 환도(豲道)에 있던 이들일 것이다. 이제 비록 군국(郡國)에 통틀어 매였으나 예전대로 왕과 후가 그 마을 사이에 있다. 또 옛 무도 땅 음평가 좌우에도 만여 락이 있다.

자로(貲虜)는 본디 흉노다. 흉노는 종을 자(貲)라 부른다. 건무 연간 처음에 흉노가 쇠하여 그 종들이 나뉘어 떠나 금성과 무위와 주천 북쪽 흑수와 서하 동서에 달아나 숨어, 물과 풀을 따라 가축을 치고 양주를 노략질하였다. 부락이 차츰 많아져 몇만이 되었는데 동부 선비와는 같지 않다. 그 겨레가 하나가 아니어서 대호(大胡)도 있고 정령(丁令)도 있으며 더러는 강이 자못 섞여 사니, 본디 도망한 종들이기 때문이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갈리던 즈음에 그 대인에 단자(檀柘)가 있었는데, 죽은 뒤에 그 갈래 대인이 남으로 광위와 영거 지경 가까이 있었다. 독괴라는 이가 와서 여러 번 배반하다가 양주에게 죽었다. 이제 소제(劭提)가 있어 더러는 항복해 오고 더러는 달아나 늘 서주(西州) 길의 근심이 된다.

돈황과 서역의 남산 가운데, 야강(婼羌)에서 서로 총령(蔥領)에 이르기까지 몇천 리에 월지의 남은 겨레인 총자강(蔥茈羌)과 백마강(白馬羌)과 황우강(黃牛羌)이 있어 각각 추장이 있다. 북으로 여러 나라와 잇대었는데 그 길의 넓고 좁음은 알지 못한다. 전해 듣기로 황우강에는 각각 여러 갈래가 있는데 아이를 배어 여섯 달 만에 낳으며 남으로 백마강과 이웃한다.

서역의 여러 나라는 한나라 처음에 그 길을 열었을 때 서른여섯이 있었는데 뒤에 나뉘어 쉰여가 되었다. 건무 이래로 서로 삼키고 멸하여 이제는 스무 길이 있다.

3서역으로 가는 세 길과 부도경

從敦煌玉門關入西域,前有二道,今有三道。從玉門關西出,經婼羌轉西,越蔥領,經縣度,入大月氏,爲南道。從玉門關西出,發都護井,回三隴沙北頭,經居盧倉,從沙西井轉西北,過龍堆,到故樓蘭,轉西詣龜茲,至蔥領,爲中道。從玉門關西北出,經橫坑,辟三隴沙及龍堆,出五船北,到車師界戊己校尉所治高昌,轉西與中道合龜茲,爲新道。凡西域所出,有前史已具詳,今故略說。南道西行,且志國、小宛國、精絕國、樓蘭國皆並屬鄯善也。戎盧國、扞彌國、渠勒國、〔皮山國〕皆並屬於寘。罽賓國、大夏國、高附國、天竺國皆並屬大月氏。臨兒國,浮屠經云其國王生浮屠。浮屠,太子也。父曰屑頭邪,母云莫邪。浮屠身服色黃,髮青如青絲,乳青毛,蛉赤如銅。始莫邪夢白象而孕,及生,從母左脅出,生而有結,墮地能行七步。此國在天竺城中。天竺又有神人,名沙律。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

돈황 옥문관에서 서역으로 들어가는데 예전에는 두 길이 있었고 이제는 세 길이 있다.

옥문관에서 서로 나가 야강을 지나 서로 돌아 총령을 넘고 현도(縣度)를 지나 대월지에 드는 것이 남도(南道)다.

옥문관에서 서로 나가 도호정(都護井)을 떠나 삼롱사(三隴沙) 북쪽 머리를 돌아 거로창(居盧倉)을 지나고, 사서정(沙西井)에서 서북으로 돌아 용퇴(龍堆)를 지나 옛 누란(樓蘭)에 이르고, 서로 돌아 구자(龜茲)에 나아가 총령에 이르는 것이 중도(中道)다.

옥문관에서 서북으로 나가 횡갱(橫坑)을 지나 삼롱사와 용퇴를 피하고 오선(五船) 북쪽으로 나가, 차사(車師) 지경의 무기교위가 다스리는 고창(高昌)에 이르고 서로 돌아 중도와 구자에서 합치는 것이 신도(新道)다.

무릇 서역에서 나는 것은 앞선 역사에 이미 갖추어 자세하므로 이제 대략만 말한다. 남도로 서쪽으로 가면 저지국(且志國)·소완국(小宛國)·정절국(精絕國)·누란국(樓蘭國)이 다 선선(鄯善)에 속한다. 융로국(戎盧國)·한미국(扞彌國)·거륵국(渠勒國)·피산국(皮山國)이 다 우전(于寘)에 속한다. 계빈국(罽賓國)·대하국(大夏國)·고부국(高附國)·천축국(天竺國)이 다 대월지에 속한다.

임아국(臨兒國)은 부도경(浮屠經)에 그 나라 왕이 부도(浮屠)를 낳았다고 한다. 부도는 태자다. 아버지는 설두야(屑頭邪)요 어머니는 막야(莫邪)라 한다. 부도는 몸의 빛이 누렇고 머리털은 푸르러 푸른 실 같으며, 젖은 푸른 털이요 눈동자는 붉어 구리 같다. 처음에 막야가 흰 코끼리 꿈을 꾸고 아이를 배었는데, 낳을 때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에서 나왔고 나면서 상투가 있었으며 땅에 떨어져 일곱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이 나라는 천축성 안에 있다. 천축에는 또 신인(神人)이 있어 이름을 사율(沙律)이라 한다.

예전 한나라 애제 원수 원년에 박사 제자 경로가 대월지 왕의 사신 이존에게서 부도경을 입으로 받았는데, 「다시 서는 이」가 그 사람이라 하였다.

4노자가 서쪽으로 나가 호를 가르쳤다는 말

浮屠所載臨蒲塞、桑門、伯聞、疏問、白疏間、比丘、晨門,皆弟子號也。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相出入,蓋以爲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竺、教胡。浮屠屬弟子別號,合有二十九,不能詳載,故略之如此。車離國一名禮惟特,一名沛隸王,在天竺東南三千餘里,其地卑濕暑熱。其王治沙奇城,有別城數十,人民怯弱,月氏、天竺擊服之。其地東西南北數千里,人民男女皆長一丈八尺,乘象、橐扆以戰,今月氏役稅之。盤越國一名漢越王,在天竺東南數千里,與益部相近,其人小與中國人等,蜀人賈似至焉。南道而西極轉東南盡矣。中道西行尉梨國、危須國、山王國皆並屬焉耆,姑墨國、溫宿國、尉頭國皆並屬龜茲也。楨中國、莎車國、竭石國、渠沙國、西夜國、依耐國、滿犁國、億若國、榆令國、損毒國、休脩國、琴國皆並屬疏勒。自是以西,大宛、安息、條支、烏弋。烏弋一名排特,此四國次在西,本國也,無增損。

부도경에 실린 임포색(臨蒲塞)·상문(桑門)·백문(伯聞)·소문(疏問)·백소간(白疏間)·비구(比丘)·신문(晨門)은 다 제자의 이름이다. 부도경에 실린 것이 중국의 노자경(老子經)과 서로 드나듦이 있으니, 아마 노자가 서로 관문을 나가 서역의 천축을 지나며 호(胡)를 가르쳤다고 여긴 것이다. 부도에 딸린 제자의 딴 이름이 모두 스물아홉인데 자세히 실을 수 없으므로 이처럼 줄인다.

차리국(車離國)은 예유특(禮惟特)이라고도 하고 패례왕(沛隸王)이라고도 하는데, 천축 동남쪽 삼천여 리에 있고 그 땅이 낮고 습하며 덥다. 그 왕은 사기성(沙奇城)에서 다스리며 딴 성이 몇십이 있다. 백성이 겁이 많고 약하여 월지와 천축이 쳐서 복종시켰다. 그 땅이 동서남북 몇천 리요 백성은 남녀가 다 키가 한 장 여덟 자이며 코끼리와 낙타를 타고 싸운다. 이제 월지가 부리고 세를 물린다.

반월국(盤越國)은 한월왕(漢越王)이라고도 하는데 천축 동남쪽 몇천 리에 있어 익주와 서로 가깝다. 그 사람은 조금 작아 중국 사람과 비슷하며 촉 사람 장사치가 이르는 듯하다. 남도로 서쪽 끝에 이르러 동남으로 돌면 다한다.

중도로 서쪽으로 가면 위리국(尉梨國)·위수국(危須國)·산왕국(山王國)이 다 언기(焉耆)에 속하고, 고묵국(姑墨國)·온숙국(溫宿國)·위두국(尉頭國)이 다 구자에 속한다. 정중국(楨中國)·사차국(莎車國)·갈석국(竭石國)·거사국(渠沙國)·서야국(西夜國)·의내국(依耐國)·만리국(滿犁國)·억약국(億若國)·유령국(榆令國)·손독국(損毒國)·휴수국(休脩國)·금국(琴國)이 다 소륵(疏勒)에 속한다.

이로부터 서쪽은 대완(大宛)·안식(安息)·조지(條支)·오익(烏弋)이다. 오익은 배특(排特)이라고도 한다. 이 네 나라가 차례로 서쪽에 있으니 본디 나라 그대로여서 늘고 줄어듦이 없다.

5대진국 — 바다 서쪽의 나라

前世謬以爲條支在大秦西,今其實在東。前世又謬以爲強於安息,今更役屬之,號爲安息西界。前世又謬以爲弱水在條支西,今弱水在大秦西。前世又謬以爲從條支西行二百餘日,近日所入,今從大秦西近日所入。大秦國一號犁靬,在安息、條支西大海之西,從安息界安穀城乘船,直截海西,遇風利二月到,風遲或一歲,無風或三歲。其國在海西,故俗謂之海西。有河出其國,西又有大海。海西有遲散城,從國下直北至烏丹城,西南又渡一河,乘船一日乃過。西南又渡一河,一日乃過。凡有大都三,卻從安穀城陸道直北行之海北,復直西行之海西,復直南行經之烏遲散城,渡一河,乘船一日乃過。周回繞海,凡當渡大海六日乃到其國。國有小城邑合四百餘,東西南北數千里。其王治濱側河海,以石爲城郭。其土地有松、柏、槐、梓、竹、葦、楊柳、梧桐、百草。民俗,田種五穀,畜乘有馬、騾、驢、駱駝。

앞선 세상에서 잘못 조지가 대진(大秦) 서쪽에 있다고 여겼으나 이제 그 실상은 동쪽에 있다. 앞선 세상에서 또 잘못 조지가 안식보다 강하다고 여겼으나 이제 도리어 안식에 부림을 받아 매여 안식의 서쪽 지경이라 부른다. 앞선 세상에서 또 잘못 약수(弱水)가 조지 서쪽에 있다고 여겼으나 이제 약수는 대진 서쪽에 있다. 앞선 세상에서 또 잘못 조지에서 서로 이백여 날을 가면 해 지는 데 가깝다고 여겼으나, 이제는 대진에서 서쪽이 해 지는 데 가깝다.

대진국은 이간(犁靬)이라고도 하며 안식과 조지 서쪽 큰 바다의 서쪽에 있다. 안식 지경의 안곡성(安穀城)에서 배를 타고 곧바로 바다를 가로질러 서로 가면, 바람이 좋으면 두 달에 이르고 바람이 더디면 한 해, 바람이 없으면 세 해가 걸리기도 한다. 그 나라가 바다 서쪽에 있으므로 세상에서 해서(海西)라 이른다.

그 나라에서 나오는 강이 있고 서쪽에 또 큰 바다가 있다. 바다 서쪽에 지산성(遲散城)이 있다. 나라에서 곧바로 북으로 오단성(烏丹城)에 이르고, 서남으로 또 강 하나를 건너는데 배로 하루 만에 지난다. 서남으로 또 강 하나를 건너는데 하루 만에 지난다.

무릇 큰 도읍이 셋이다. 안곡성에서 뭍길로 곧바로 북으로 가서 바다 북쪽에 이르고, 다시 곧바로 서로 가서 바다 서쪽에 이르며, 다시 곧바로 남으로 가서 오지산성(烏遲散城)을 지나 강 하나를 건너는데 배로 하루 만에 지난다. 둘레를 돌아 바다를 감돌아 무릇 큰 바다를 엿새 건너야 그 나라에 이른다.

나라에 작은 성읍이 모두 사백여요 동서남북이 몇천 리다. 그 왕은 강과 바다 가에서 다스리며 돌로 성곽을 만든다. 그 땅에는 소나무·잣나무·홰나무·가래나무·대·갈대·수양버들·오동과 온갖 풀이 있다. 백성의 풍속에 오곡을 심고, 기르고 타는 것에 말과 노새와 나귀와 낙타가 있다.

6재앙이 있으면 임금을 갈아 세운다

桑蠶。俗多奇幻,口中出火,自縛自解,跳十二丸巧妙。其國無常主,國中有災異,輒更立賢人以爲王,而生放其故王,王亦不敢怨。其俗人長大平正,似中國人而胡服。自云本中國一別也,常欲通使於中國,而安息圖其利,不能得過。其俗能胡書。其制度,公私宮室爲重屋,旌旗擊鼓,白蓋小車,郵驛亭置如中國。從安息繞海北到其國,人民相屬,十里一亭,三十里一置,終無盜賊。但有猛虎、獅子爲害,行道不群則不得過。其國置小王數十,其王所治城周回百餘里,有官曹文書。王有五宮,一宮間相去十里,其王平旦之一宮聽事,至日暮一宿,明日復至一宮,五日一周。置三十六將,每議事,一將不至則不議也。王出行,常使從人持一韋囊自隨,有白言者,受其辭投囊中,還宮乃省爲決理。以水晶作宮柱及器物。作弓矢。其別枝封小國,曰澤散王,曰驢分王,曰且蘭王,曰賢督王,曰汜復王,曰于羅王,其餘小王國甚多,不能一一詳之也。

뽕과 누에가 있다. 풍속에 기이한 요술이 많아 입에서 불을 내고 스스로 묶었다 스스로 풀며 열두 방울을 던져 받는 재주가 교묘하다.

그 나라에 일정한 임금이 없어 나라에 재앙과 이변이 있으면 그때마다 어진 사람을 다시 세워 왕으로 삼고 옛 왕은 산 채로 내치는데, 왕도 감히 원망하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키가 크고 반듯하여 중국 사람과 비슷하나 호(胡)의 옷을 입는다. 스스로 본디 중국에서 갈린 한 갈래라 하며 늘 중국에 사신을 통하고자 하나, 안식이 그 이익을 꾀하여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 풍속에 호의 글자를 쓸 줄 안다.

그 제도에 공사(公私)의 집이 다 이층집이며, 기를 세우고 북을 치고 흰 일산을 단 작은 수레를 쓰며, 역참과 정(亭)을 두는 것이 중국과 같다. 안식에서 바다 북쪽을 돌아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백성이 서로 잇달아 십 리에 정 하나, 삼십 리에 역참 하나가 있어 끝내 도둑이 없다. 다만 사나운 범과 사자가 해를 끼쳐 길 갈 때 무리 짓지 않으면 지나가지 못한다.

그 나라에 작은 왕 몇십을 두었고, 그 왕이 다스리는 성은 둘레가 백여 리이며 관청과 문서가 있다. 왕에게 궁이 다섯이 있어 궁과 궁 사이가 십 리씩 떨어졌다. 왕이 새벽에 한 궁에 가서 일을 보고 해 저물면 하룻밤 자며, 이튿날 다시 한 궁에 이르러 닷새에 한 바퀴를 돈다. 서른여섯 장수를 두어 일을 의논할 때마다 한 장수라도 이르지 않으면 의논하지 않는다.

왕이 나갈 때는 늘 따르는 사람에게 가죽 주머니 하나를 들고 따르게 하여, 아뢸 말이 있는 이가 있으면 그 말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궁에 돌아와 살펴 판결한다. 수정으로 궁의 기둥과 그릇을 만든다. 활과 화살을 만든다.

그 갈래로 봉해진 작은 나라에 택산왕(澤散王)·여분왕(驢分王)·저란왕(且蘭王)·현독왕(賢督王)·사복왕(汜復王)·우라왕(于羅王)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왕의 나라가 몹시 많아 하나하나 자세히 할 수 없다.

7해서포와 아홉 빛깔 돌

國出細絺。作金銀錢,金錢一當銀錢十。有織成細布,言用水羊毳,名曰海西布。此國六畜皆出水,或云非獨用羊毛也,亦用木皮或野繭絲作,織成氍毹、毾㲪、罽帳之屬皆好,其色又鮮于海東諸國所作也。又常利得中國絲,解以爲胡綾,故數與安息諸國交市於海中。海水苦不可食,故往來者希到其國中。山出九色次玉石,一曰青,二曰赤,三曰黃,四曰白,五曰黑,六曰綠,七曰紫,八曰紅,九曰紺。今伊吾山中有九色石,即其類。陽嘉三年時,疏勒王臣槃獻海西青石、金帶各一。又今西域舊圖云罽賓、條支諸國出琦石,即次玉石也。大秦多金、銀、銅、鐵、鉛、錫、神龜、白馬、硃髦、駭雞犀、玳瑁、玄熊、赤螭、辟毒鼠、大貝、車渠、瑪瑙、南金、翠爵、羽翮、象牙、符采玉、明月珠、夜光珠、真白珠、虎珀、珊瑚、赤白黑綠黃青紺縹紅紫十種流離、璆琳、琅玕、水精、玫瑰、雄黃、雌黃、碧、五色玉、黃白黑綠紫紅絳紺金黃縹留黃十種氍毹、五色毾㲪、五色九色首下毾㲪、金縷繡、雜色綾、金塗布、緋持布、發陸布、緋持渠布、火浣布、阿羅得布、巴則布、度代布、溫宿布、五色桃布、絳地金織帳、五色鬥帳、一微木、二蘇合、狄提、迷迷、兜納、白附子、薰陸、郁金、芸膠、薰草木十二種香。

나라에서 고운 갈포가 난다. 금돈과 은돈을 만드는데 금돈 하나가 은돈 열에 맞먹는다. 짜서 만든 고운 베가 있는데 물양(水羊)의 솜털을 쓴다고 하며 이름을 해서포(海西布)라 한다. 이 나라의 여섯 가축이 다 물에서 난다고 한다. 더러는 양털만 쓰는 것이 아니라 나무껍질이나 들누에 실도 써서 만든다 한다. 짜서 만든 구유(氍毹)와 탑등(毾㲪)과 모직 장막 따위가 다 좋고, 그 빛깔이 또 바다 동쪽 여러 나라에서 만든 것보다 곱다.

또 늘 중국의 실을 얻어 풀어서 호릉(胡綾)을 만드는 것을 이롭게 여기므로, 자주 안식 여러 나라와 바다 가운데서 장사한다. 바닷물이 써서 마실 수 없으므로 오가는 이가 그 나라 안에 이르는 일이 드물다.

산에서 아홉 빛깔의 차옥석(次玉石)이 나니 첫째 푸른빛, 둘째 붉은빛, 셋째 누런빛, 넷째 흰빛, 다섯째 검은빛, 여섯째 초록빛, 일곱째 자줏빛, 여덟째 다홍빛, 아홉째 감빛이다. 이제 이오(伊吾) 산 가운데 아홉 빛깔 돌이 있으니 곧 그 무리다. 양가 삼년에 소륵왕 신반이 해서의 푸른 돌과 금띠를 각각 하나씩 바쳤다. 또 이제 서역의 옛 그림에 계빈과 조지 여러 나라에서 기석(琦石)이 난다 하니 곧 차옥석이다.

대진에는 금·은·구리·쇠·납·주석과, 신귀(神龜)·흰말·주모(硃髦)·해계서(駭雞犀)·대모(玳瑁)·검은곰·붉은 이무기·벽독서(辟毒鼠)·큰 조개·차거(車渠)·마노·남금(南金)·물총새·깃털·상아·부채옥(符采玉)·명월주(明月珠)·야광주·참된 흰 구슬·호박·산호가 많다. 붉은빛·흰빛·검은빛·초록빛·누런빛·푸른빛·감빛·옥빛·다홍빛·자줏빛 열 가지 유리와, 구림(璆琳)·낭간(琅玕)·수정·매괴(玫瑰)·웅황·자황·벽옥·다섯 빛깔 옥이 있다. 누런빛·흰빛·검은빛·초록빛·자줏빛·다홍빛·붉은빛·감빛·금빛·옥빛의 유황(留黃) 열 가지 구유와, 다섯 빛깔 탑등과, 다섯 빛깔 아홉 빛깔의 수하(首下) 탑등과, 금실 수와 여러 빛깔 능(綾)이 있다. 금도포(金塗布)·비지포(緋持布)·발륙포(發陸布)·비지거포(緋持渠布)·화완포(火浣布)·아라득포(阿羅得布)·파칙포(巴則布)·도대포(度代布)·온숙포(溫宿布)·다섯 빛깔 도포(桃布)와, 붉은 바탕에 금을 짜 넣은 장막과 다섯 빛깔 두장(鬥帳)이 있다. 향으로는 일미목(一微木)·이소합(二蘇合)·적제(狄提)·미미(迷迷)·두납(兜納)·백부자(白附子)·훈륙(薰陸)·울금(郁金)·운교(芸膠)·훈초목(薰草木) 열두 가지 향이 있다.

8대진에 딸린 작은 나라들

大秦道既從海北陸通,又循海而南,與交趾七郡外夷比,又有水道通益州、永昌、故永昌出異物。前世但論有水道,不知有陸道,今其略如此,其民人戶數不能備詳也。自蔥領西,此國最大,置諸小王甚多,故錄其屬大者矣。澤散王屬大秦,其治在海中央,北至驢分,水行半歲,風疾時一月到,最與安息安穀城相近,西南詣大秦都不知里數。驢分王屬大秦,其治去大秦都二千里。從驢分城西之大秦渡海,飛橋長二百三十里,渡海道西南行,繞海直西行。且蘭王屬大秦。從思陶國直南渡河,乃直西行之且蘭三千里。道出河南,乃西行,從且蘭復直西行之汜復國六百里。南道會汜復,乃西南之賢督國。且蘭、汜復直南,乃有積石,積石南乃有大海,出珊瑚,真珠。且蘭、汜復、斯賓阿蠻北有一山,東西行。大秦、海西東各有一山,皆南北行。賢督王屬大秦,其治東北去汜復六百里。汜復王屬大秦,其治東北去于羅三百四十里渡海也。

대진으로 가는 길은 이미 바다 북쪽에서 뭍으로 통하고, 또 바다를 따라 남으로 가면 교지(交趾) 일곱 군 바깥 이(夷)와 잇닿는다. 또 물길이 있어 익주와 영창에 통하므로 영창에서 기이한 물건이 난다. 앞선 세상에서는 다만 물길이 있다고만 논하고 뭍길이 있는 줄 몰랐다. 이제 그 대략이 이와 같으나 그 백성의 호수는 갖추어 자세히 할 수 없다. 총령에서 서쪽으로 이 나라가 가장 크고 둔 작은 왕이 몹시 많으므로 그 가운데 큰 것만 적는다.

택산왕은 대진에 속하는데 그 다스리는 곳이 바다 한가운데 있다. 북으로 여분(驢分)에 이르는 데 물길로 반 해가 걸리고 바람이 빠르면 한 달에 이른다. 안식의 안곡성과 가장 가까우며, 서남으로 대진의 도읍에 이르는 리수는 알지 못한다.

여분왕은 대진에 속하는데 그 다스리는 곳이 대진의 도읍에서 이천 리 떨어졌다. 여분성에서 서로 대진에 가려면 바다를 건너는데 나는 다리(飛橋)의 길이가 이백삼십 리다. 바다를 건너 길을 서남으로 가고 바다를 돌아 곧바로 서로 간다.

저란왕은 대진에 속한다. 사도국(思陶國)에서 곧바로 남으로 강을 건너고 이에 곧바로 서로 가서 저란에 이르기까지 삼천 리다. 길이 강 남쪽으로 나와 이에 서로 가고, 저란에서 다시 곧바로 서로 가서 사복국(汜復國)에 이르기까지 육백 리다. 남도가 사복에서 만나고 이에 서남으로 현독국(賢督國)에 간다.

저란과 사복에서 곧바로 남쪽에 적석(積石)이 있고 적석 남쪽에 큰 바다가 있어 산호와 진주가 난다. 저란과 사복과 사빈(斯賓)과 아만(阿蠻) 북쪽에 산 하나가 있어 동서로 뻗었다. 대진과 해서 동쪽에 각각 산 하나가 있어 다 남북으로 뻗었다.

현독왕은 대진에 속하는데 그 다스리는 곳이 동북으로 사복에서 육백 리 떨어졌다. 사복왕은 대진에 속하는데 그 다스리는 곳이 동북으로 우라(于羅)에서 삼백사십 리 떨어졌고 바다를 건넌다.

9서왕모와 흐르는 모래 너머

于羅屬大秦,其治在汜復東北,渡河,從于羅東北又渡河,斯羅東北又渡河。斯羅國屬安息,與大秦接也。大秦西有海水,海水西有河水,河水西南北行有大山,西有赤水,赤水西有白王山,白玉山有西王母,西王母西有脩流沙,流沙西有大夏國、堅沙國、屬繇國、月氏國、四國西有黑水,所傳聞西之極矣。北新道西行,至東且彌國、西且彌國、單桓國、畢陸國、蒲陸國、烏貪國,皆並屬車師後部王。王治于賴城,魏賜其王壹多雜守魏侍中,號大都尉,受魏王印。轉西北則烏孫、康居,本國無增損也。北烏伊別國在康居北,又有柳國,又有岩國,又有奄蔡國一名阿蘭,皆與康居同俗。西與大秦東南與康居接。其國多名貂,畜牧逐水草,臨大澤,故時羈屬康居,今不屬也。呼得國在蔥嶺北,烏孫西北,康居東北,勝兵萬餘人,隨畜牧,出好馬,有貂。堅昆國在康居西北,勝兵三萬人,隨畜牧,亦多貂,有好馬。

우라는 대진에 속하는데 그 다스리는 곳이 사복 동북에 있어 강을 건넌다. 우라에서 동북으로 또 강을 건너고 사라(斯羅)에서 동북으로 또 강을 건넌다. 사라국은 안식에 속하며 대진과 잇닿았다.

대진 서쪽에 바닷물이 있고 바닷물 서쪽에 강물이 있으며, 강물 서쪽으로 남북으로 뻗은 큰 산이 있고 서쪽에 적수(赤水)가 있다. 적수 서쪽에 백옥산(白玉山)이 있고 백옥산에 서왕모(西王母)가 있으며, 서왕모 서쪽에 긴 유사(流沙)가 있고 유사 서쪽에 대하국·견사국(堅沙國)·속요국(屬繇國)·월지국이 있으며, 네 나라 서쪽에 흑수(黑水)가 있으니 전해 들은 서쪽의 끝이다.

북쪽 신도로 서로 가면 동저미국(東且彌國)·서저미국(西且彌國)·단환국(單桓國)·필륙국(畢陸國)·포륙국(蒲陸國)·오탐국(烏貪國)에 이르는데 다 차사 후부(後部) 왕에게 속한다. 왕은 뇌성(賴城)에서 다스린다. 위나라가 그 왕 일다잡에게 위나라 시중을 지키게 하고 대도위(大都尉)라 부르며 위왕의 도장을 받게 하였다. 서북으로 돌면 오손과 강거인데 본디 나라 그대로여서 늘고 줄어듦이 없다.

북오이별국(北烏伊別國)이 강거 북쪽에 있고, 또 유국(柳國)이 있고 또 암국(岩國)이 있으며, 또 엄채국(奄蔡國)이 있어 아란(阿蘭)이라고도 하는데 다 강거와 풍속이 같다. 서로는 대진과, 동남으로는 강거와 잇대었다. 그 나라에 이름난 담비가 많다. 물과 풀을 따라 가축을 치고 큰 못에 다다랐다. 예전에는 강거에 굴레 씌워져 매였으나 이제는 속하지 않는다.

호득국(呼得國)은 총령 북쪽, 오손 서북, 강거 동북에 있으며 싸울 만한 군사가 만여 사람이다. 가축을 따라다니며 좋은 말이 나고 담비가 있다. 견곤국(堅昆國)은 강거 서북에 있으며 싸울 만한 군사가 삼만 사람이다. 가축을 따라다니며 또한 담비가 많고 좋은 말이 있다.

10말 정강이를 한 사람들

丁令國在康居北,勝兵六萬人,隨畜牧,出名鼠皮,白昆子、青昆子皮。此上三國,堅昆中央,俱去匈奴單于庭安習水七千里,南去車師六國五千里,西南去康居界三千里,西去康居王治八千里。或以爲此丁令即匈奴北丁令也,而北丁令在烏孫西,似其種別也。又匈奴北有渾窳國,有屈射國,有丁令國,有隔昆國,有新梨國,明北海之南自復有丁令,非此烏孫之西丁令也。烏孫長老言北丁令有馬脛國,其人音聲似雁騖,從膝以上身頭,人也,膝以下生毛,馬脛馬蹄,不騎馬而走疾馬,其爲人勇健敢戰也。短人國在康居西北,男女皆長三尺,人衆甚多,去奄蔡諸國甚遠。康居長老傳聞常有商度此國,去康居可萬餘里。

정령국(丁令國)은 강거 북쪽에 있으며 싸울 만한 군사가 육만 사람이다. 가축을 따라다니며 이름난 쥐 가죽과 흰 곤자(昆子)와 푸른 곤자의 가죽이 난다.

이 위의 세 나라 가운데 견곤이 한가운데다. 다 흉노 선우의 뜰인 안습수(安習水)에서 칠천 리 떨어졌고, 남으로 차사 여섯 나라에서 오천 리, 서남으로 강거 지경에서 삼천 리, 서로 강거 왕이 다스리는 곳에서 팔천 리 떨어졌다.

더러는 이 정령이 곧 흉노 북쪽의 정령이라 하나, 북쪽 정령은 오손 서쪽에 있으니 그 겨레가 다른 듯하다. 또 흉노 북쪽에 혼유국(渾窳國)·굴사국(屈射國)·정령국·격곤국(隔昆國)·신리국(新梨國)이 있으니, 북해 남쪽에 따로 또 정령이 있는 것이 분명하며 이 오손 서쪽의 정령이 아니다.

오손의 늙은이가 말하기를, 북쪽 정령에 마경국(馬脛國)이 있는데 그 사람의 소리가 기러기나 집오리 같고, 무릎 위로 몸과 머리는 사람이나 무릎 아래로는 털이 나고 말의 정강이와 말굽이라 한다. 말을 타지 않고도 달리는 것이 말보다 빠르며 사람됨이 용맹하고 굳세어 싸움을 겁내지 않는다.

단인국(短人國)은 강거 서북에 있으며 남녀가 다 키가 석 자요 사람이 몹시 많고 엄채 여러 나라에서 몹시 멀다. 강거의 늙은이가 전해 듣기로, 늘 장사치가 이 나라를 지나는 일이 있는데 강거에서 만여 리쯤 떨어졌다 한다.

11어환의 논 — 웅덩이의 물고기

魚豢議曰:俗以爲營廷之魚不知江海之大,浮游之物不知四時之氣,是何也?以其所在者小與其生之短也。餘今氾覽外夷大秦諸國,猶尚曠若發蒙矣,況夫鄒衍之所推出,《大易》、《太玄》之所測度乎!徒限處牛蹄之涔,又無彭祖之年,無緣讬景風以迅遊,載騕褭以遐觀,但勞眺乎三辰,而飛思乎八荒耳。

어환이 논하여 이르기를, 세상에서 웅덩이의 물고기는 강과 바다의 큼을 알지 못하고 하루살이는 네 철의 기운을 알지 못한다 하니 어째서인가. 그 있는 곳이 작고 그 삶이 짧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바깥 이(夷)인 대진 여러 나라를 두루 훑어보니 오히려 눈 가린 것을 벗긴 듯 훤하거늘, 하물며 추연이 미루어 낸 바와 『대역(大易)』과 『태현(太玄)』이 헤아린 바이겠는가.

다만 소 발자국에 괸 물에 갇혀 있고 또 팽조의 나이도 없으니, 큰 바람에 몸을 실어 빨리 놀거나 요뇨(騕褭) 같은 준마를 타고 멀리 바라볼 인연이 없다. 그저 애써 해와 달과 별을 바라보며 여덟 끝으로 생각을 날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