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타라국健馱邏國
健馱邏國東西千餘里,南北八百餘里,東臨信度河。國大都城號布路沙布邏,周四十餘里。王族絕嗣,役屬迦畢試國。邑里空荒,居人稀少,宮城一隅有千餘戶。穀稼殷盛,花果繁茂,多甘蔗,出石蜜。氣序溫暑,略無霜雪。人性恇怯,好習典藝,多敬異道,少信正法。自古已來,印度之境作論諸師,則有那羅延天、無著菩薩、世親菩薩、法救、如意、脅尊者等本生處也。僧伽藍十餘所,摧殘荒廢,蕪漫蕭條,諸窣堵波頗多頹圮。天祠百數,異道雜居。
건타라국은 동서로 천여 리, 남북으로 팔백여 리다. 동쪽으로 신도하에 닿는다. 나라의 큰 도성은 이름을 포로사포라라 하며 둘레가 사십여 리다. 왕족의 대가 끊겨 가필시국에 매여 부림을 받는다. 고을과 마을이 비고 거칠어 사는 사람이 드물며, 궁성 한 모퉁이에 천여 호가 있다. 곡식 농사가 넉넉하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다. 사탕수수가 많고 석밀이 난다. 기후가 따뜻하고 무더우며 서리와 눈이 거의 없다. 사람의 성품이 겁이 많고 옛 글과 재주를 익히기를 좋아한다. 다른 도를 많이 공경하고 바른 법을 적게 믿는다. 예로부터 인도 경계에서 논을 지은 여러 스승, 곧 나라연천·무착보살·세친보살·법구·여의·협존자 들이 난 곳이다. 절이 열 남짓인데 꺾이고 무너져 거칠고 쓸쓸하며, 여러 탑이 자못 많이 무너졌다. 하늘신 사당가 백을 헤아리고 외도가 섞여 산다.
2부처의 바리를 모셨던 자리
王城內東北有一故基,昔佛缽之寶臺也。如來涅槃之後,缽流此國,經數百年,式遵供養,流轉諸國,在波剌斯。
왕성 안 동북쪽에 옛터 하나가 있으니 옛날 부처의 바리를 모신 보배 대다. 여래가 열반에 드신 뒤 바리가 이 나라로 흘러와 수백 년 동안 법식대로 공양을 받다가 여러 나라로 옮겨 다녀 지금은 파랄사에 있다.
3네 부처가 앉으신 비발라 나무
城外東南八九里有卑缽羅樹,高百餘尺,枝葉扶疏,蔭影蒙密。過去四佛已坐其下,今猶現有四佛坐像。賢劫之中,九百九十六佛皆當坐焉。冥祇警衛,靈鑒潛被。釋迦如來於此樹下南面而坐,告阿難曰:「我去世後,當四百年,有王命世,號迦膩色迦,此南不遠起窣堵波,吾身所有骨肉舍利,多集此中。」
성 밖 동남쪽 팔구 리에 비발라 나무가 있으니 높이가 백여 자다. 가지와 잎이 우거지고 그늘이 짙다. 지나간 네 부처가 이미 그 아래 앉으셨고, 지금도 네 부처의 앉은 상이 있다. 현겁 가운데 구백구십육 부처가 다 여기에 앉으실 것이다. 그윽한 신이 지키고 신령한 살핌이 은밀히 미친다. 석가여래가 이 나무 아래서 남쪽을 향해 앉으시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사백 년이 되면 세상을 다스릴 왕이 있어 이름을 가니색가라 하리라. 이 남쪽 멀지 않은 데 탑을 세우면 내 몸의 뼈와 살 사리가 그 안에 많이 모이리라」 하셨다.
4가니색가왕의 큰 탑
卑缽羅樹南有窣堵波,迦膩色迦王之所建也。迦膩色迦王以如來涅槃之後第四百年,君臨膺運,統贍部洲,不信罪福,輕毀佛法。畋遊草澤,遇見白兔,王親奔逐,至此忽滅。見有牧牛小豎,於林樹間作小窣堵波,其高三尺。王曰:「汝何所為?」牧豎對曰:「昔釋迦佛聖智懸記:『當有國王於此勝地建窣堵波,吾身舍利多聚其內。』大王聖德宿殖,名符昔記,神功勝福,允屬斯辰,故我今者先相警發。」說此語已,忽然不現。王聞是說,喜慶增懷,自負其名大聖先記,因發正信,深敬佛法。周小窣堵波,更建石窣堵波,欲以功力彌覆其上。隨其數量,恒出三尺,若是增高,逾四百尺。基趾所峙,周一里半,層基五級,高一百五十尺,方乃得覆小窣堵波。王因喜慶,復於其上更起二十五層金銅相輪,即以如來舍利一斛而置其中,式修供養。營建才迄,見小窣堵波在大基東南隅下傍出其半。王心不平,便即擲棄,遂住窣堵波第二級下石基中半現,復於本處更出小窣堵波。王乃退而嘆曰:「嗟夫,人事易迷,神功難掩,靈聖所扶,憤怒何及!」慚懼既已,謝咎而歸。其二窣堵波今猶現在,有嬰疾病欲祈康愈者,塗香散花,至誠歸命,多蒙瘳差。
비발라 나무 남쪽에 탑이 있으니 가니색가왕이 세운 것이다. 가니색가왕은 여래가 열반에 드신 뒤 사백 년에 임금이 되어 운을 받아 섬부주를 거느렸으나, 죄와 복을 믿지 않고 불법을 가벼이 헐뜯었다. 풀 우거진 못가에서 사냥하다가 흰 토끼를 만나 왕이 몸소 좇았는데 여기 이르러 홀연히 사라졌다. 보니 소치는 아이가 숲 사이에서 작은 탑을 만들고 있었으니 높이가 석 자였다. 왕이 「너는 무엇을 하느냐」 하니 아이가 대답하기를 「옛날 석가불이 거룩한 지혜로 미리 적으시기를 『마땅히 어떤 국왕이 이 뛰어난 자리에 탑을 세우면 내 몸의 사리가 그 안에 많이 모이리라』 하셨습니다. 대왕께서는 거룩한 덕을 지난 세상에 심으시어 이름이 옛 기록에 들어맞고, 신묘한 공과 뛰어난 복이 참으로 이때에 속하므로, 제가 이제 먼저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였다. 이 말을 마치자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쁨이 더하여, 큰 성인이 미리 적으신 이름이 제 것임을 스스로 믿고 이에 바른 믿음을 내어 불법을 깊이 공경하였다. 작은 탑을 두르고 다시 돌탑을 세워 공력으로 그 위를 덮으려 하였는데, 그 수를 따라 늘 석 자가 솟아나 이렇게 높아지기를 사백 자를 넘겼다. 터가 선 데가 둘레 한 리 반이요 층진 터가 다섯 단에 높이가 백오십 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작은 탑을 덮을 수 있었다. 왕이 기뻐 다시 그 위에 스물다섯 층 금동 상륜을 세우고, 곧 여래의 사리 한 섬을 그 안에 두어 법식대로 공양하였다. 짓기를 겨우 마치자 작은 탑이 큰 터 동남쪽 모퉁이 아래로 반쯤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왕이 마음에 편치 않아 곧 던져 버렸으나, 마침내 탑 둘째 단 아래 돌 터 가운데에 반쯤 드러나 머물렀고, 다시 본디 자리에도 작은 탑이 나왔다. 왕이 이에 물러나 탄식하기를 「아아, 사람의 일은 헷갈리기 쉽고 신묘한 공은 가리기 어렵구나. 신령한 성인이 붙드는 바이니 성낸들 어찌 미치겠는가」 하였다. 부끄럽고 두려워한 뒤 허물을 빌고 돌아갔다. 그 두 탑이 지금도 있으니, 병에 걸려 낫기를 비는 이가 향을 바르고 꽃을 뿌리며 지극한 정성으로 목숨을 맡기면 낫는 이가 많다.
5금빛 개미가 새긴 두 상
大窣堵波東面石陛南鏤作二小窣堵波,一高三尺,一高五尺,規摹形狀如大窣堵波。又作兩軀佛像,一高四尺,一高六尺,擬菩提樹下加趺坐像,日光照燭,金色晃曜,陰影漸移,石文青紺。聞諸耆舊曰:數百年前,石基之隙有金色蟻,大者如指,小者如麥,同類相從,嚙其石壁,文若雕鏤,廁以金沙,作為此像,今猶現在。
큰 탑 동쪽 돌층계 남쪽에 작은 탑 둘을 새겼는데 하나는 높이가 석 자요 하나는 다섯 자로, 본과 모양이 큰 탑과 같다. 또 부처 상 두 구를 만들었으니 하나는 높이가 넉 자요 하나는 여섯 자로, 보리수 아래 가부좌한 상을 본떴다. 햇빛이 비치면 금빛이 눈부시고 그늘이 차차 옮으면 돌 무늬가 검푸르다. 늙은이들에게 들으니, 수백 년 전 돌 터 틈에 금빛 개미가 있었는데 큰 것은 손가락만 하고 작은 것은 보리알만 하였다. 같은 무리가 서로 좇아 그 돌벽을 갉으니 무늬가 새긴 듯하였고, 금모래를 섞어 이 상을 만들었다 한다. 지금도 남아 있다.
6몸이 둘로 나뉜 그림 부처
大窣堵波石陛南面有畫佛像,高一丈六尺,自胸已上,分現兩身,從胸已下,合為一體。聞諸先志曰:初,有貧士傭力自濟,得一金錢,願造佛像。至窣堵波所,謂畫工曰:「我今欲圖如來妙相,有一金錢,酬工尚少,宿心憂負,迫於貧乏。」時彼畫工鑒其至誠,無云價直,許為成功。復有一人,事同前跡,持一金錢,求畫佛像。畫工是時受二人錢,求妙丹青,共畫一像。二人同日俱來禮敬,畫工乃同指一像,示彼二人,而謂之曰:「此是汝所作之佛像也。」二人相視,若有所懷。畫工心知其疑也,謂二人曰:「何思慮之久乎?凡所受物,毫厘不虧。斯言不謬,像必神變。」言聲未靜,像現靈異,分身交影,光相昭著。二人悅服,心信歡喜。
큰 탑 돌층계 남쪽 면에 그린 부처 상이 있으니 높이가 한 길 여섯 자다. 가슴 위로는 두 몸으로 나뉘어 나타나고 가슴 아래로는 합하여 한 몸이 되었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처음에 가난한 사람이 품을 팔아 스스로 살아가다가 금전 하나를 얻어 부처 상 만들기를 원하였다. 탑이 있는 데 이르러 화공에게 이르기를 「내가 이제 여래의 묘한 상을 그리려 하나 금전이 하나뿐이라 삯으로는 오히려 적습니다. 오랜 마음에 걱정과 짐이 되나 가난에 몰려 이러합니다」 하였다. 그때 그 화공이 그 지극한 정성을 살펴 값을 말하지 않고 이루어 주기를 허락하였다. 또 한 사람이 앞과 같은 일로 금전 하나를 가지고 부처 상 그리기를 청하였다. 화공이 이때 두 사람의 돈을 받아 좋은 물감을 구해 함께 한 상을 그렸다. 두 사람이 같은 날 함께 와서 예배하니, 화공이 이에 한 상을 함께 가리키며 두 사람에게 이르기를 「이것이 그대들이 만든 부처 상입니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보며 품은 바가 있는 듯하였다. 화공이 그 의심을 마음으로 알고 두 사람에게 이르기를 「어찌 그리 오래 생각하십니까. 무릇 받은 것에서 털끝만큼도 축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그르지 않다면 상이 반드시 신묘하게 변할 것입니다」 하였다. 말소리가 채 잦아들기 전에 상이 신령한 이적을 나타내어 몸을 나누어 그림자를 사귀니 빛과 상이 뚜렷이 드러났다. 두 사람이 기뻐 감복하고 마음으로 믿어 기뻐하였다.
7밤에 걸어 나온 흰 돌부처
大窣堵波西南百餘步,有白石佛像,高一丈八尺,北面而立,多有靈相,數放光明。時有人見像出夜行,旋繞大窣堵波。近有群賊欲入行盜,像出迎賊,賊黨怖退,像歸本處,住立如故。群盜因此改過自新,遊行邑裏,具告遠近。
큰 탑 서남쪽 백여 걸음에 흰 돌부처 상이 있으니 높이가 한 길 여덟 자요 북쪽을 향해 섰다. 신령한 상이 많고 자주 밝은 빛을 놓는다. 때로 상이 나와 밤에 다니며 큰 탑을 도는 것을 본 이가 있다. 근래 도둑 떼가 들어와 훔치려 하자 상이 나와 도둑을 맞이하니, 도둑 무리가 두려워 물러갔고 상은 본디 자리로 돌아와 전처럼 섰다. 도둑 떼가 이 일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고 고을을 다니며 멀고 가까운 데 낱낱이 알렸다.
8일곱 번 타고 일곱 번 선 탑
大窣堵波左右,小窣堵波魚鱗百數。佛像莊嚴,務窮工思,殊香異音,時有聞聽,靈仙聖賢,或見旋繞。此窣堵波者,如來懸記,七燒七立,佛法方盡。先賢記曰:成壞已三。初至此國,適遭火災,當見營構,尚未成功。
큰 탑 좌우에 작은 탑이 물고기 비늘처럼 백을 헤아린다. 불상의 꾸밈이 솜씨와 생각을 다하였고, 남다른 향과 기이한 소리가 때때로 들리며, 신령한 신선과 성현이 도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 탑은 여래가 미리 적으시기를 「일곱 번 타고 일곱 번 서야 불법이 비로소 다하리라」 하셨다. 앞선 어진 이의 기록에 이르기를 「이루어지고 무너지기가 이미 세 번이다」 하였다. 이 나라에 처음 이르렀을 때 마침 불난 재앙을 만나, 지금 짓고 있음을 보았으나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9가니색가왕의 절
大窣堵波西有故伽藍,迦膩色迦王之所基也。重閣累榭,層臺洞戶,旌召高僧,式昭景福。雖則圮毀,尚曰奇工。僧徒減少,並學小乘。自建伽藍,異人間出,諸作論師及證聖果,清風尚扇,至德無泯。
큰 탑 서쪽에 옛 절이 있으니 가니색가왕이 터를 닦은 것이다. 겹다락과 층집, 층대와 통한 문이 높은 승려를 불러 큰 복을 밝히려 한 것이다. 무너지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기이한 솜씨라 할 만하다. 승려가 줄어 적으며 모두 소승을 배운다. 절을 세운 뒤로 남다른 이가 잇달아 나와, 여러 논을 지은 스승과 성인의 과위를 증득한 이가 있어 맑은 기풍이 아직 부치고 지극한 덕이 스러지지 않았다.
10협존자의 방
第三重閣有波栗濕縛尊者室,久已傾頓,尚立旌表。初,尊者之為梵志師也,年垂八十,舍家染衣。城中少年便誚之曰:「愚夫朽老,一何淺智!夫出家者,有二業焉,一則習定,二乃誦經。而今衰耄,無所進取,濫跡清流,徒知飽食。」時脅尊者聞諸譏議,因謝時人而自誓曰:「我若不通三藏理,不斷三界欲,得六神通,具八解脫,終不以脅而至於席!」自爾之後,唯日不足,經行宴坐,住立思惟,晝則研習理教,夜乃靜慮凝神,綿歷三歲,學通三藏,斷三界欲,得三明智,時人敬仰,因號脅尊者焉。
셋째 층 다락에 파율습박 존자의 방이 있으니 무너진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표를 세워 두었다. 처음 존자가 범지들의 스승이었을 때 나이가 여든에 가까웠는데 집을 버리고 물들인 옷을 입었다. 성 안 젊은이들이 곧 비웃어 말하기를 「어리석은 늙은이가 어찌 그리 얕은 지혜인가. 무릇 집을 나온 이에게는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선정을 익힘이요 둘은 경을 외움이다. 그런데 이제 늙어 나아가 얻을 바가 없으면서 맑은 흐름에 함부로 자취를 두어 한갓 배부르게 먹을 줄만 아는구나」 하였다. 그때 협존자가 이 비웃는 말들을 듣고 이에 사람들에게 사례하고 스스로 맹세하기를 「내가 만일 삼장의 이치에 통하지 못하고 삼계의 욕심을 끊지 못하며, 여섯 신통을 얻고 여덟 해탈을 갖추지 못한다면, 끝내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 뒤로 날이 모자라도록 거닐고 앉으며 서서 생각하되, 낮에는 이치와 가르침을 갈고닦고 밤에는 고요히 생각하여 정신을 모았다. 세 해를 이어 배움이 삼장에 통하고 삼계의 욕심을 끊었으며 세 가지 밝은 지혜를 얻었다. 그때 사람들이 공경하고 우러러 이로 인해 협존자라 불렀다.
협주 1
唐言脅。
당나라 말로는 옆구리다.
11세친의 방
脅尊者室東有故房,世親菩薩於此制《阿毗達磨俱舍論》,人而敬之,封以記焉。
협존자의 방 동쪽에 옛 방이 있으니 세친보살이 여기서 『아비달마구사론』을 지었다. 사람들이 공경하여 봉하고 표를 세워 두었다.
12여의론사와 초일왕
世親室南五十餘步,第二重閣,末笯曷剌他論師於此制《毗婆沙論》。論師以佛涅槃之後一千年中利見也。少好學,有才辯,聲問遐被,法俗歸心。時室羅伐悉底國毗訖羅摩阿叠多王威風遠洽,臣諸印度,日以五億金錢周給貧窶孤獨。主藏臣懼國用乏匱也,乃諷諫曰:「大王威被殊俗,澤及昆蟲,請增五億金錢,以賑四方匱乏。府庫既空,更稅有土,重斂不已,怨聲載揚,則君上有周給之恩,臣下被不恭之責。」王曰:「聚有餘,給不足,非茍為身侈靡國用。」遂加五億,惠諸貧乏。其後畋遊,逐豕失蹤,有尋知跡者,賞一億金錢,如意論師一使人剃髮,輒賜一億金錢,其國史臣依即書記。王恥見高,心常怏怏,欲眾辱如意論師。乃招集異學德業高深者百人,而下令曰:「欲收視聽,遊諸真境,異道紛雜,歸心靡措,今考優劣,專精遵奉。」洎乎集論,重下令曰:「外道論師並英俊也,沙門法眾宜善宗義,勝則崇敬佛法,負則誅戮僧徒。」於是如意詰諸外道,九十九人已退飛矣。下席一人,視之蔑如也,因而劇談,論及火煙。王與外道咸喧言曰:「如意論師辭義有失!夫先煙而後及火,此事理之常也。」如意雖欲釋難,無聽覽者。恥見眾辱,齰斷其舌,乃書誡門人世親曰:「黨援之眾,無競大義;群迷之中,無辯正論。」言畢而死。居未久,超日王失國,興王膺運,表式英賢。世親菩薩欲雪前恥,來白王曰:「大王以聖德君臨,為含識主命。先師如意學窮玄奧,前王宿撼,眾挫高名,我承導誘,欲復前怨。」其王知如意哲人也,美世親雅操焉,乃召諸外道與如意論者。世親重述先旨,外道謝屈而退。
세친의 방 남쪽 오십여 걸음 둘째 층 다락에서 말노갈랄타 논사가 『비바사론』을 지었다. 논사는 부처가 열반에 드신 뒤 천 년 만에 나타난 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재주와 말솜씨가 있어 이름이 멀리 퍼지매 승려와 속인이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때 실라벌실저국 비흘라마아질다왕이 위엄과 기풍이 멀리 미쳐 여러 인도를 신하로 삼고, 날마다 금전 오억으로 가난하고 외로운 이를 두루 돕고 있었다. 곳간을 맡은 신하가 나라 살림이 모자랄까 두려워하여 넌지시 간하기를 「대왕의 위엄이 다른 풍속에까지 입히고 은택이 벌레에까지 미칩니다. 청컨대 금전 오억을 더하여 사방의 모자란 이를 구제하소서. 곳간이 비면 다시 땅 있는 이에게 세를 매기고, 거듭 거두기를 그치지 않으면 원망하는 소리가 오를 것이니, 임금께는 두루 베푼 은혜가 있으나 신하는 공손하지 못하다는 꾸지람을 입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남는 것을 모아 모자란 데 주는 것이지, 구차히 내 몸을 위해 나라 살림을 사치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마침내 오억을 더하여 여러 가난한 이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 뒤 사냥을 나가 멧돼지를 좇다가 자취를 잃으니, 그 자취를 찾아 아는 이에게 금전 일억을 상으로 주었다. 그런데 여의 논사도 제 머리를 깎아 준 사람에게 곧 금전 일억을 내리니, 그 나라 사관이 이를 그대로 나란히 적었다. 왕은 남이 높이 보이는 것을 부끄러이 여겨 마음이 늘 언짢았으므로 여러 사람 앞에서 여의 논사를 욕보이려 하였다. 이에 다른 배움 가운데 덕과 업이 높고 깊은 이 백 명을 불러 모으고 영을 내리기를 「보고 듣는 것을 거두어 참된 경지에 노닐고자 하나 다른 도가 어지러이 섞여 마음 둘 데가 없다. 이제 낫고 못함을 견주어 오로지 정밀한 것을 좇아 받들겠다」 하였다. 논에 모이기에 이르러 거듭 영을 내리기를 「외도 논사들은 다 뛰어난 이들이다. 사문의 법 무리는 마땅히 종지와 뜻을 잘 세우라. 이기면 불법을 높이 공경할 것이요 지면 승려를 죽이겠다」 하였다. 이에 여의가 여러 외도를 따져 물으니 아흔아홉 사람이 이미 물러나 달아났다. 자리 아래 한 사람은 보기에 대수롭지 않았으므로 이에 한껏 이야기하다가 논이 불과 연기에 미쳤다. 왕과 외도가 다 떠들어 말하기를 「여의 논사의 말과 뜻에 잘못이 있다. 무릇 연기가 먼저요 불이 뒤인 것이 일의 이치에 떳떳한 것이다」 하였다. 여의가 그 힐난을 풀려 하였으나 들어 주는 이가 없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욕보인 것을 부끄러이 여겨 제 혀를 깨물어 끊고, 이에 제자 세친에게 글을 남겨 경계하기를 「무리 지어 돕는 이가 많은 데서는 큰 뜻을 다툴 수 없고, 헤매는 무리 가운데서는 바른 논을 가릴 수 없다」 하였다. 말을 마치고 죽었다. 오래지 않아 초일왕이 나라를 잃고 새 왕이 운을 받아 뛰어난 이를 드러내어 본으로 삼았다. 세친보살이 앞선 부끄러움을 씻고자 하여 왕에게 아뢰기를 「대왕께서 거룩한 덕으로 임금이 되시어 목숨 있는 것들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앞선 스승 여의는 배움이 그윽하고 깊은 데를 다하였으나, 앞선 왕이 오래 유감을 품어 여러 사람 앞에서 높은 이름을 꺾었습니다. 제가 그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니 앞선 원한을 갚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왕이 여의가 밝은 사람인 줄 알고 세친의 아정한 지조를 아름다이 여겨, 이에 여러 외도로서 여의와 논하던 이들을 불렀다. 세친이 앞선 뜻을 거듭 폈고 외도는 굽힘을 사죄하고 물러갔다.
협주 2
唐言如意。
당나라 말로는 여의다.
唐言超日。
당나라 말로는 초일이다.
13포색갈라벌저성
迦膩色迦王伽藍東北行五十餘里,渡大河,至布色羯邏伐底城,周十四五里。居人殷盛,閭閻洞連。城西門外有一天祠,天像威嚴,靈異相繼。
가니색가왕의 절에서 동북쪽으로 오십여 리를 가서 큰 강을 건너면 포색갈라벌저성에 이르니 둘레가 열네댓 리다. 사는 사람이 넉넉하고 성하며 마을이 통하여 이어졌다. 성 서문 밖에 하늘신 사당가 하나 있으니 천상이 위엄 있고 신령한 이적이 잇달아 나타난다.
14세우 논사가 논을 지은 자리
城東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即過去四佛說法之處。古先聖賢自中印度降神導物,斯地寔多,即伐蘇蜜呾羅論師於此制《眾事分阿毗達磨論》。
성 동쪽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곧 지나간 네 부처가 법을 말씀하신 자리다. 옛 성현이 중인도에서 신령을 내려 만물을 이끈 자취가 이 땅에 실로 많다. 곧 벌소밀달라 논사가 여기서 『중사분아비달마론』을 지었다.
협주 1
唐言世友。舊曰和須蜜多,訛也。
당나라 말로는 세우다. 옛적에는 화수밀다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15법구 논사가 논을 지은 자리
城北四五里有故伽藍,庭宇荒涼,僧徒寡少,然皆遵習小乘法教。即達磨呾邏多論師於此制《雜阿毗達磨論》。
성 북쪽 네댓 리에 옛 절이 있으니 뜰과 집이 거칠고 쓸쓸하며 승려가 적으나, 모두 소승의 법과 가르침을 좇아 익힌다. 곧 달마달라다 논사가 여기서 『잡아비달마론』을 지었다.
협주 1
唐言法救。舊曰達摩多羅,訛也。
당나라 말로는 법구다. 옛적에는 달마다라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16천 생을 두고 눈을 보시한 자리
伽藍側有窣堵波,高數百尺,無憂王之所建也,雕木文石,頗異人工。是釋迦佛昔為國王,修菩薩行,從眾生欲,惠施不倦,喪身若遺,於此國土千生為王,即斯勝地千生舍眼。
절 곁에 탑이 있으니 높이가 수백 자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나무를 새기고 돌에 무늬를 놓은 것이 자못 사람의 솜씨와 다르다. 이는 석가불이 옛날 국왕이 되어 보살행을 닦으며 중생의 바람을 좇아 은혜로이 베풀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몸 버리기를 헌 것 버리듯 하여, 이 국토에서 천 생을 왕이 되고 곧 이 뛰어난 자리에서 천 생을 눈을 보시한 곳이다.
17범왕과 제석이 세운 두 탑
舍眼東不遠有二石窣堵波,各高百餘尺。右則梵王所立,左乃天帝所建,以妙珍寶而瑩飾之。如來寂滅,寶變為石。基雖傾陷,尚曰崇高。
눈을 보시한 자리 동쪽 멀지 않은 데 돌탑 둘이 있으니 각각 높이가 백여 자다. 오른쪽 것은 범왕이 세우고 왼쪽 것은 천제가 세웠으며, 묘한 진귀한 보배로 빛나게 꾸몄다. 여래가 적멸에 드시자 보배가 돌로 변하였다. 터가 기울고 꺼졌으나 오히려 높다 할 만하다.
18귀자모를 교화한 자리
梵、釋窣堵波西北行五十餘里,有窣堵波,是釋迦如來於此化鬼子母,令不害人,故此國俗祭以求嗣。
범왕과 제석의 탑에서 서북쪽으로 오십여 리를 가면 탑이 있으니, 석가여래가 여기서 귀자모를 교화하여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신 곳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 풍속에 제사하여 자식을 구한다.
19상막가 보살
化鬼子母北行五十餘里,有窣堵波。是商莫迦菩薩恭行鞠養,侍盲父母,於此采果,遇王遊獵,毒矢誤中,至誠感靈,天帝傅藥,德動明聖,尋即復蘇。
귀자모를 교화한 자리에서 북쪽으로 오십여 리를 가면 탑이 있다. 상막가 보살이 공손히 봉양하여 눈먼 부모를 모시며 여기서 열매를 따다가, 왕이 사냥 나온 것을 만나 독화살에 잘못 맞았는데, 지극한 정성이 신령을 감동시켜 천제가 약을 발라 주니 덕이 밝은 성인을 움직여 곧 다시 살아난 곳이다.
협주 1
舊曰睒摩菩薩,訛也。
옛적에는 섬마 보살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20발로사성 — 수달나 태자
商莫迦菩薩被害東南行二百餘里,至跋虜沙城。城北有窣堵波,是蘇達拿太子以父王大象施婆羅門,蒙譴被擯,顧謝國人,既出郭門,於此告別。其側伽藍,五十餘僧,並小乘學也。昔伊濕伐邏論師於此制《阿毗達磨明燈論》。
상막가 보살이 해를 입은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이백여 리를 가면 발로사성에 이른다. 성 북쪽에 탑이 있으니, 수달나 태자가 아버지 왕의 큰 코끼리를 바라문에게 주었다가 꾸지람을 듣고 내쫓겨, 나라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성문을 나서서 여기서 작별한 자리다. 그 곁 절에는 승려 오십여 명이 있는데 모두 소승을 배운다. 옛날 이습벌라 논사가 여기서 『아비달마명등론』을 지었다.
협주 2
唐言善牙。
당나라 말로는 선아다.
唐言自在。
당나라 말로는 자재다.
21남매를 판 자리
跋虜沙城東門外有一伽藍,僧徒五十餘人,並大乘學也。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立。昔蘇達拿太子擯在彈多落迦山,婆羅門乞其男女,於此鬻賣。
발로사성 동문 밖에 절이 하나 있으니 승려가 오십여 명인데 모두 대승을 배운다.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수달나 태자가 탄다락가산으로 쫓겨났을 때 바라문이 그 아들과 딸을 구걸하매 여기서 팔아넘긴 자리다.
협주 1
舊曰檀特山,訛也。
옛적에는 단특산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22탄다락가산
跋虜沙城東北二十餘里,至彈多落迦山。嶺上有窣堵波,無憂王所建。蘇達拿太子於此棲隱。其側不遠有窣堵波,太子於此以男女施婆羅門,婆羅門捶其男女,流血染地,今諸草木猶帶絳色。巖間石室,太子及妃習定之處。谷中林樹垂條若帷,並是太子昔所遊止。其側不遠有一石廬,即古仙人之所居也。
발로사성 동북쪽 이십여 리를 가면 탄다락가산에 이른다. 산마루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수달나 태자가 여기에 깃들어 숨었다. 그 곁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태자가 여기서 아들과 딸을 바라문에게 주었는데 바라문이 그 아이들을 때려 흐른 피가 땅을 물들여, 지금도 여러 풀과 나무가 오히려 붉은빛을 띤다. 바위 사이 석실은 태자와 아내가 선정을 익히던 곳이다. 골짜기 숲의 나무는 늘어진 가지가 휘장 같으니 다 태자가 옛날 노닐고 머물던 곳이다. 그 곁 멀지 않은 데 돌집 하나가 있으니 곧 옛 선인이 살던 곳이다.
23외뿔 선인의 자취
仙廬西北行百餘里,越一小山,至大山。山南有伽藍,僧徒鮮少,並學大乘。其側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昔獨角仙人所居之處。仙人為淫女誘亂,退失神通,淫女乃駕其肩而還城邑。
선인의 집에서 서북쪽으로 백여 리를 가서 작은 산 하나를 넘으면 큰 산에 이른다. 산 남쪽에 절이 있으니 승려가 매우 적고 모두 대승을 배운다. 그 곁 탑은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외뿔 선인이 살던 곳이다. 선인이 음탕한 여인에게 꾀임을 받아 신통을 잃으니, 음탕한 여인이 이에 그 어깨에 올라타고 성으로 돌아왔다.
24비마 천녀의 상
跋虜沙城東北五十餘里,至崇山。山有青石大自在天婦像,毗摩天女也。聞諸土俗曰:此天像者,自然有也。靈異既多,祈禱亦眾。印度諸國求福請願,貴賤畢萃,遠近咸會。其有願見天神形者,至誠無貳,絕食七日,或有得見,求願多遂。山下有大自在天祠,塗灰外道式修祠祀。
발로사성 동북쪽 오십여 리를 가면 높은 산에 이른다. 산에 푸른 돌로 만든 대자재천의 아내 상이 있으니 비마 천녀다. 그 고장 사람들에게 들으니, 이 천상은 저절로 생긴 것이라 한다. 신령한 이적이 많으므로 비는 이도 많다. 인도 여러 나라에서 복을 구하고 원을 비는 이들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다 모이며 멀고 가까운 데서 다 온다. 천신의 모습을 뵙기를 바라는 이가 지극한 정성으로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이레를 굶으면 더러 뵙는 이가 있고 구하는 원도 흔히 이루어진다. 산 아래에 대자재천의 사당이 있어 재를 바르는 외도가 법식대로 제사를 지낸다.
25오탁가한다성
毗摩天祠東南行百五十里,至烏鐸迦漢荼城。周二十餘里,南臨信度河。居人富樂,寶貨盈積,諸方珍異,多集於此。
비마 하늘신 사당에서 동남쪽으로 백오십 리를 가면 오탁가한다성에 이른다. 둘레가 이십여 리요 남쪽으로 신도하에 닿는다. 사는 사람이 넉넉하고 즐거우며 보배와 재화가 쌓여 있다. 여러 지방의 진귀하고 기이한 것이 이곳에 많이 모인다.
26파니니 선인이 난 곳
烏鐸迦漢荼城西北行二十餘里,至娑羅睹邏邑,是制《聲明論》波你尼仙本生處也。遂古之初,文字繁廣,時經劫壞,世界空虛,長壽諸天,降靈導俗,由是之故,文籍生焉。自時厥後,其源泛濫。梵王、天帝作則隨時,異道諸仙各制文字。人相祖述,競習所傳,學者虛功,難用詳究。人壽百歲之時,有波你尼仙,生知博物,湣時澆薄,欲削浮偽,刪定繁猥,遊方問道,遇自在天,遂申述作之志。自在天曰:「盛矣哉!吾當祐汝。」仙人受教而退,於是研精覃思,捃摭群言,作為字書,備有千頌,頌三十二言矣。究極今古,總括文言,封以進上。王甚珍異,下令國中,普使傳習,有誦通利,賞千斤錢。所以師資傳授,盛行當世。故此邑中諸婆羅門碩學高才,博物強識。
오탁가한다성에서 서북쪽으로 이십여 리를 가면 사라도라 고을에 이르니, 『성명론』을 지은 파니니 선인이 난 곳이다. 아득한 옛적 처음에는 문자가 번거롭고 넓었는데, 겁이 지나 무너지고 세계가 비었다가 오래 사는 여러 하늘이 신령을 내려 풍속을 이끌었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글과 서적이 생겼다. 그 뒤로 그 근원이 넘쳐 흘렀다. 범왕과 천제가 때에 따라 법을 세우고 다른 도의 여러 선인이 저마다 문자를 지었다. 사람들이 서로 이어 말하며 전해진 것을 다투어 익히니, 배우는 이가 헛되이 힘을 써 자세히 궁구하기 어려웠다. 사람의 수명이 백 살이던 때에 파니니 선인이 있어 나면서부터 사물을 널리 알았다. 그때가 각박해진 것을 가엾이 여겨 뜬 거짓을 깎고 번거롭고 잡된 것을 덜어 정하고자 하여, 여러 곳을 다니며 도를 묻다가 자재천을 만나 마침내 지으려는 뜻을 아뢰었다. 자재천이 이르기를 「장하다, 내가 마땅히 너를 돕겠다」 하였다. 선인이 가르침을 받고 물러나, 이에 정밀하게 갈고 깊이 생각하여 여러 말을 주워 모아 자서를 지으니 천 송을 갖추었고 한 송이 서른두 자였다. 이제와 옛을 끝까지 궁구하고 글과 말을 총괄하여 봉해 올렸다. 왕이 매우 진귀하고 남다르게 여겨 나라 안에 영을 내려 두루 전해 익히게 하고, 외워 통달한 이에게는 천 근의 돈을 상으로 주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가 전해 주고 받아 그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므로 이 고을 안의 여러 바라문은 배움이 크고 재주가 높으며 사물을 널리 알고 기억이 굳세다.
27나한이 파니니의 후신을 교화한 자리
娑羅睹邏邑中有窣堵波,羅漢化波你尼仙後進之處。如來去世,垂五百年,有大阿羅漢自迦濕彌羅國遊化至此,乃見梵志捶訓稚童。時阿羅漢謂梵志曰:「何苦此兒?」梵志曰:「令學《聲明論》,業不時進。」阿羅漢逌爾而笑,老梵者曰:「夫沙門者,慈悲為情,湣物傷類。仁今所笑,願聞其說。」阿羅漢曰:「談不容易,恐致深疑。汝頗嘗聞波你尼仙制《聲明論》,垂訓於世乎?」婆羅門曰:「此邑之子,後進仰德,像設猶存。」阿羅漢曰:「今汝此子,即是彼仙。猶以強識,玩習世典,唯談異論,不究真理,神智唐捐,流轉未息,尚乘餘善,為汝愛子。然則世典文辭,彼疲功績,豈若如來聖教,福智冥滋?曩者南海之濱有一枯樹,五百蝙蝠於中穴居。有諸商侶止此樹下,時屬風寒,人皆饑凍,聚積樵蘇,蘊火其下,煙焰漸熾,枯樹遂燃。時商侶中有一賈客,夜分已後,誦《阿毗達磨藏》。彼諸蝙蝠雖為火困,愛好法音,忍而不去,於此命終。隨業受生,俱得人身,舍家修學,乘聞法聲,聰明利智,並證聖果,為世福田。近迦膩色迦王與脅尊者招集五百賢聖,於迦濕彌羅國作《毗婆沙論》,斯並枯樹之中五百蝙蝠也。餘雖不肖,是其一數。斯則優劣良異,飛伏懸殊。仁今愛子,可許出家。出家功德,言不能述。」時阿羅漢說此語已,示神通事,因忽不現。婆羅門深生敬異,嘆善久之,具告鄰里,遂放其子出家修學。因即回信,崇重三寶,鄉人從化,於今彌篤。
사라도라 고을 안에 탑이 있으니 나한이 파니니 선인의 뒷몸을 교화한 자리다. 여래가 세상을 떠나신 지 오백 년쯤 되었을 때, 큰 아라한이 가습미라국에서 다니며 교화하다가 여기에 이르러, 범지가 어린아이를 때리며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라한이 범지에게 이르기를 「무슨 까닭에 이 아이를 괴롭히는가」 하니 범지가 「『성명론』을 배우게 하는데 학업이 때맞추어 나아가지 않소」 하였다. 아라한이 빙그레 웃으니 늙은 범지가 말하기를 「무릇 사문이란 자비를 마음으로 삼아 만물을 가엾이 여기고 같은 무리를 아파하는 이오. 그대가 이제 웃으니 그 까닭을 듣고자 하오」 하였다. 아라한이 이르기를 「말하기가 쉽지 않으니 깊은 의심을 부를까 두렵소. 그대는 파니니 선인이 『성명론』을 지어 세상에 가르침을 드리운 것을 일찍이 들어 보았소」 하니, 바라문이 「이 고을의 아들이라 뒷사람이 그 덕을 우러러 상까지 아직 남아 있소」 하였다. 아라한이 이르기를 「지금 그대의 이 아들이 곧 그 선인이오. 아직도 굳센 기억으로 세상의 글을 익히기를 즐겨 오직 다른 논만 이야기하고 참된 이치를 궁구하지 않았으므로, 신령한 지혜를 헛되이 버리고 흘러 도는 것이 그치지 않았소. 그래도 남은 착함을 타 그대의 사랑하는 아들이 된 것이오. 그런즉 세상의 글과 말은 그 애쓴 공이 헛되니, 어찌 여래의 거룩한 가르침이 복과 지혜를 그윽이 불려 주는 것만 하겠소. 옛날 남쪽 바닷가에 마른 나무 하나가 있어 박쥐 오백 마리가 그 속 구멍에 살았소. 여러 장사꾼이 이 나무 아래 머물렀는데 때마침 바람이 차서 사람들이 다 굶주리고 얼었으므로, 나무와 풀을 모아 그 아래에 불을 지폈소. 연기와 불꽃이 차차 세어 마른 나무가 마침내 탔소. 그때 장사꾼 가운데 한 사람이 밤이 깊은 뒤에 『아비달마장』을 외웠소. 저 박쥐들이 불에 시달리면서도 법의 소리를 좋아하여 참고 떠나지 않다가 여기서 목숨을 마쳤소. 업을 따라 다시 나서 모두 사람의 몸을 얻고 집을 나와 배우니, 법의 소리를 들은 힘을 타 총명하고 슬기로워 다 성인의 과위를 증득하고 세상의 복밭이 되었소. 근래 가니색가왕이 협존자와 더불어 오백 현성을 불러 모아 가습미라국에서 『비바사론』을 지었는데, 그들이 다 마른 나무 속의 오백 박쥐요. 나 또한 못났으나 그 하나에 든다오. 그런즉 낫고 못함이 참으로 다르고 나는 것과 엎드리는 것이 아득히 갈리오. 그대가 이제 사랑하는 아들은 집을 나가게 허락하시오. 집을 나가는 공덕은 말로 다할 수 없소」 하였다. 그때 아라한이 이 말을 마치고 신통의 일을 보이더니 홀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바라문이 깊이 공경하고 남다르게 여겨 오래 착하다 감탄하고 이웃에 낱낱이 알려, 마침내 그 아들을 놓아 집을 나가 배우게 하였다. 이로 인해 믿음을 돌이켜 삼보를 높이 받들었고 고을 사람들이 따라 교화되어 오늘까지 더욱 도탑다.
從烏鐸迦漢荼城北逾山涉川,行六百餘里,至烏仗那國。
오탁가한다성에서 북쪽으로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육백여 리를 가면 오장나국에 이른다.
협주 1
唐言苑,昔輪王之苑囿也。舊曰烏場,或曰烏荼,皆訛。北印度境。
당나라 말로는 동산이니 옛날 윤왕의 동산이었다. 옛적에는 오장이라 하고 더러 오도라 하였으나 다 잘못이다. 북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