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대당서역기 › 제3권

달차시라국呾叉始羅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8 · 한자 1,319자 · 낭독 5.3분

「대당서역기」 제3권 「달차시라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呾叉始羅國周二千餘里,國大都城周十餘里。酋豪力競,王族絕嗣,往者役屬迦畢試國,近又附庸迦濕彌羅國。地稱沃壤,稼墻殷盛,泉流多,花果茂。氣序和暢,風俗輕勇,崇敬三寶。伽藍雖多,荒蕪已甚,僧徒寡少,並學大乘。

달차시라국은 둘레가 이천여 리요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십여 리다. 우두머리들이 힘으로 다투고 왕족의 대가 끊겨, 지난날에는 가필시국에 매여 부림을 받다가 근래에는 또 가습미라국에 딸렸다. 땅이 기름지다 일컬어지고 농사가 넉넉하고 성하며 샘이 많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다. 기후가 화창하고 풍속이 가볍고 날래며 삼보를 높이 공경한다. 절은 많으나 거칠어진 것이 이미 심하고 승려가 적으며 모두 대승을 배운다.

2의라발달라 용왕의 못

大城西北七十餘里,有醫羅缽呾羅龍王池,周百餘步。其水澄清,雜色蓮花同榮異彩。此龍者,即昔迦葉波佛時壞醫羅缽呾羅樹苾芻也。故今彼土請雨祈晴,必與沙門共至池所,彈指慰問,隨願必果。

큰 성 서북쪽 칠십여 리에 의라발달라 용왕의 못이 있으니 둘레가 백여 걸음이다. 그 물이 맑고 여러 빛 연꽃이 함께 피어 빛을 달리한다. 이 용은 곧 옛날 가섭파 부처 때에 의라발달라 나무를 상하게 한 비구다. 그러므로 지금도 저 땅에서 비를 빌고 갬을 빌 때 반드시 사문과 함께 못에 이르러 손가락을 튀기며 위문하면 원하는 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3네 큰 보배 곳간의 한 자리

龍池東南行三十餘里,入兩山間,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高百餘尺。是釋迦如來懸記,當來慈氏世尊出世之時,自然有四大寶藏,即斯勝地,當其一所。聞之先志曰:或時地震,諸山皆動,周藏百步,無所傾搖。諸有愚夫妄加發掘,地為震動,人皆蹎仆。傍有伽藍,圮損已甚,久絕僧徒。

용못 동남쪽으로 삼십여 리를 가서 두 산 사이에 들면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높이가 백여 자다. 이는 석가여래가 미리 적으시기를, 오실 자씨 세존이 세상에 나실 때 저절로 네 큰 보배 곳간이 있으리라 하셨는데, 곧 이 뛰어난 자리가 그 하나에 해당한다. 옛 기록에 들으니, 더러 땅이 흔들려 여러 산이 다 움직여도 이 곳간을 두른 백 걸음 안은 흔들리는 바가 없다 한다. 어리석은 자들이 함부로 파헤치면 땅이 진동하여 사람들이 다 넘어진다. 곁에 절이 있으나 무너지고 상한 것이 이미 심하여 오래도록 승려가 끊겼다.

4몹쓸 병이 나은 탑

城北十二三里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或至齋日,時放光明,神花天樂,頗有見聞。聞諸先志曰:近有婦人,身嬰惡癩,竊至窣堵波,責躬禮懺,見其庭宇有諸糞穢,掬除灑掃,塗香散花,更采青蓮,重布其地。惡疾除愈,形貌增妍,身出名香,青蓮同馥。斯勝地也,是如來在昔修菩薩行,為大國王,號戰達羅缽刺婆,唐言月光。志求菩提,斷頭惠施。若此之舍,凡歷千生。

성 북쪽 열두세 리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더러 재일이면 때때로 밝은 빛을 놓고 신령한 꽃과 하늘 음악을 보고 들은 이가 자못 있다. 옛 기록에 들으니, 근래에 어떤 부인이 몸에 몹쓸 나병이 들어 몰래 탑에 이르러 제 몸을 꾸짖고 예배하며 참회하였다. 그 뜰에 여러 더러운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쓸어 내고 물을 뿌려 쓸며, 향을 바르고 꽃을 뿌리고 다시 푸른 연꽃을 캐어 그 땅에 거듭 폈다. 몹쓸 병이 나아 없어지고 모습이 더욱 고와졌으며 몸에서 이름난 향이 나 푸른 연꽃과 같은 향기가 났다 한다. 이 뛰어난 자리는 여래가 옛날 보살행을 닦으며 큰 나라의 왕이 되어 이름을 전달라발랄바 — 당나라 말로 월광 — 라 하였을 때, 보리를 뜻으로 구하여 머리를 끊어 은혜로이 베푸신 자리다. 이와 같이 버리기를 무릇 천 생을 지나셨다.

5구마라라다 논사의 절

舍頭窣堵波側有僧伽藍,庭宇荒涼,僧徒減少。昔經部拘摩羅邏多論師於此制述諸論。

머리를 버린 탑 곁에 절이 있으니 뜰과 집이 거칠고 쓸쓸하며 승려가 줄었다. 옛날 경부의 구마라라다 논사가 여기서 여러 논을 지었다.

협주 1

唐言童受。

당나라 말로는 동수다.

6구랑나 태자의 탑

城外東南,南山之陰有窣堵波,高百餘尺,是無憂王太子拘浪拿為繼母所誣抉目之處,無憂王所建也。盲人祈請,多有復明。

성 밖 동남쪽 남산 그늘에 탑이 있으니 높이가 백여 자다. 이는 무우왕의 태자 구랑나가 계모에게 무고를 당해 눈을 뽑힌 자리이며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눈먼 사람이 빌면 다시 밝아지는 이가 많다.

7구랑나 태자 이야기

此太子正后生也,儀貌妍雅,慈仁夙著。正后終沒,繼室驕淫,縱其惛愚,私逼太子,太子瀝泣引責,退身謝罪。繼母見違,彌增忿怒,候王閑隙,從容言曰:「夫呾叉始羅,國之要領,非親弟子,其可寄乎?今者,太子仁孝著聞,親賢之故,物議斯在。」王惑聞說,雅悅奸謀,即命太子,而誡之曰:「吾承餘緒,垂統繼業,唯恐失墜,忝負先王。呾叉始羅國之襟帶,吾今命爾作鎮彼國。國事殷重,人情詭雜,無妄去就,有虧基緒。凡有召命,驗吾齒印。印在吾口,其有謬乎?」於是太子銜命來鎮。歲月雖淹,繼室彌怒,詐發制書,紫泥封記,候王眠睡,竊齒為印,馳使而往,賜以責書。輔臣跪讀,相顧失圖。太子問曰:「何所悲乎?」曰:「大王有命,書責太子,抉去兩目,逐棄山谷,任其夫妻,隨時生死。雖有此命,尚未可依。今宜得請,面縛待罪。」太子曰:「父而賜死,其敢辭乎?齒印為封,誠無謬矣。」命旃荼羅抉去其眼。眼既失明,乞貸自濟,流離展轉,至父都城。其妻告曰:「此是王城。嗟乎,饑寒良苦!昔為王子,今作乞人!願得聞知,重申先責。」於是謀計,入王內廄,於夜後分,泣對清風,長嘯悲吟,箜篌鼓和。王在高樓,聞其雅唱,辭甚怨悲,怪而問曰:「箜篌歌聲,似是吾子,今以何故而來此乎?」即問內廄:「誰為歌嘯?」遂將盲人而來對旨。王見太子,銜悲問曰:「誰害汝身,遭此禍?愛子喪明,猶自不覺,凡百黎元,如何究察?天乎,天乎,何德之衰!」太子悲泣,謝而對曰:「誠以不孝,負責於天,某年月日,忽奉慈旨,無由致辭,不敢逃責。」其王心知繼室為不軌也,無所究察,便加刑辟。時菩提樹伽藍有瞿沙大阿羅漢者,四辯無礙,三明具足。王將盲子,陳告其事,惟願慈悲,令得復明。時彼羅漢受王請已,即於是日宣令國人:「吾於後日,欲說妙理,人持一器,來此聽法,以盛泣淚也。」於是遠近相趨,士女雲集。是時阿羅漢說十二因緣,凡厥聞法,莫不悲耿,以所持器盛其瀝泣。說法既已,總收眾淚,置之金盤,而自誓曰:「凡吾所說,諸佛至理。理若不真,說有紕繆,斯則已矣;如其不爾,願以眾淚,洗彼盲眼,眼得復明,明視如昔。」發是語訖,持淚洗眼,眼遂復明。王乃責彼輔臣,詰諸僚佐,或黜或放,或遷或死,諸豪世祿移居雪山東北沙磧之中。

이 태자는 정후가 낳은 이다. 몸가짐과 생김새가 곱고 아정하며 자애롭고 어짊이 일찍 드러났다. 정후가 죽자 뒤에 든 아내가 교만하고 음란하여, 제 어리석음을 멋대로 하여 몰래 태자를 핍박하였다. 태자가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꾸짖고 물러나 죄를 사죄하였다. 계모는 거스름을 당하자 노여움이 더욱 커졌다. 왕이 한가한 틈을 엿보아 조용히 말하기를 「무릇 달차시라는 나라의 요긴한 목인데 친한 아들이 아니면 어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이제 태자가 어질고 효성스럽다 이름이 났으니, 친하고 어진 까닭에 여론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였다. 왕이 그 말에 홀려 간사한 꾀를 몹시 기뻐하고, 곧 태자를 불러 경계하기를 「내가 남은 실마리를 이어 계통을 드리우고 업을 이었으니, 오직 떨어뜨려 선왕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 달차시라는 나라의 옷깃과 띠 같은 데이니 내 이제 너에게 명하여 저 나라를 지키게 한다. 나랏일이 무겁고 사람의 뜻이 속임과 섞임이 많으니, 함부로 가고 오지 말아 터전을 이지러뜨리지 말라. 무릇 부르는 명이 있거든 내 이빨 도장을 증험하라. 도장은 내 입에 있으니 어찌 그릇됨이 있겠느냐」 하였다. 이에 태자가 명을 받아 와서 지켰다. 세월이 오래되었으나 계모의 노여움은 더욱 커져, 거짓으로 조서를 만들고 자줏빛 진흙으로 봉해 표하되, 왕이 잠든 틈을 엿보아 몰래 이빨로 도장을 찍어 사자를 달려 보내 꾸짖는 글을 내렸다. 보좌하는 신하가 꿇어 읽고 서로 돌아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태자가 「무엇이 슬픈가」 하니, 「대왕의 명이 있어 글로 태자를 꾸짖되 두 눈을 뽑아 산골짜기에 내쫓아 그 부부가 때에 따라 살고 죽게 하라 하셨습니다. 비록 이런 명이 있으나 아직 따를 수는 없습니다. 이제 마땅히 청을 얻어 스스로 묶여 죄를 기다리소서」 하였다. 태자가 이르기를 「아버지가 죽음을 내리신들 감히 사양하겠는가. 이빨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참으로 그릇됨이 없다」 하고, 전다라에게 명하여 그 눈을 뽑게 하였다. 눈이 이미 멀자 빌어 스스로 살아가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아버지의 도성에 이르렀다. 그 아내가 이르기를 「이곳은 왕성입니다. 아아, 굶주림과 추위가 참으로 괴롭습니다. 옛날에는 왕자였는데 이제 거지가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알려지게 하여 앞선 꾸지람을 다시 펴소서」 하였다. 이에 꾀를 내어 왕의 안 마구간에 들어가, 밤 늦은 무렵에 맑은 바람을 마주해 울며 길게 읊조려 슬피 노래하고 공후로 어울려 탔다. 왕이 높은 다락에 있다가 그 아정한 노래를 들으니 말이 몹시 원망스럽고 슬프므로, 괴이히 여겨 묻기를 「공후 노랫소리가 내 아들 같은데 이제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왔는가」 하고, 곧 안 마구간에 묻기를 「누가 노래하고 읊조리느냐」 하였다. 마침내 눈먼 이를 데려와 뜻을 아뢰게 하였다. 왕이 태자를 보고 슬픔을 머금고 묻기를 「누가 네 몸을 해쳐 이런 화를 만났느냐. 사랑하는 아들이 눈을 잃었어도 오히려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으니, 온 백성을 어찌 살펴 알겠는가.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덕이 이리 쇠하였는가」 하였다. 태자가 슬피 울며 사례하여 아뢰기를 「참으로 불효하여 하늘에 꾸지람을 졌습니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홀연히 자애로운 뜻을 받들었으나 말씀 올릴 길이 없어 감히 꾸지람을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그 왕이 계모가 법도에 어긋난 짓을 한 줄 마음으로 알고, 더 살피지 않고 곧 형벌을 더하였다. 그때 보리수 절에 구사 큰 아라한이 있어 네 가지 걸림 없는 말솜씨를 갖추고 세 가지 밝음을 갖추었다. 왕이 눈먼 아들을 데리고 가 그 일을 아뢰고, 오직 자비를 베풀어 다시 밝게 하여 주기를 바랐다. 그때 저 나한이 왕의 청을 받고 곧 그날로 나라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내가 모레 묘한 이치를 말하려 하니, 사람마다 그릇 하나를 가지고 와서 법을 들으며 흘리는 눈물을 담으라」 하였다. 이에 멀고 가까운 데서 서로 달려와 남녀가 구름처럼 모였다. 이때 아라한이 열두 인연을 말하니, 무릇 법을 들은 이가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어 가지고 온 그릇에 흐르는 눈물을 담았다. 설법을 마치고 여러 사람의 눈물을 다 거두어 금쟁반에 두고 스스로 맹세하기를 「무릇 내가 말한 것은 여러 부처의 지극한 이치다. 이치가 만일 참되지 않고 말에 그릇됨이 있다면 이는 그만이려니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원컨대 여러 사람의 눈물로 저 눈먼 눈을 씻어 눈이 다시 밝아져 예전처럼 보게 하소서」 하였다. 이 말을 마치고 눈물을 가져다 눈을 씻으니 눈이 마침내 다시 밝아졌다. 왕이 이에 저 보좌하는 신하들을 꾸짖고 여러 관원을 따져, 더러는 내치고 더러는 귀양 보내며 더러는 옮기고 더러는 죽였다. 여러 세력 있는 세습 관리들을 설산 동북쪽 모래벌 가운데로 옮겨 살게 하였다.

협주 1

唐言妙音。

당나라 말로는 묘음이다.

從此東南越諸山谷,行七百餘里,至僧訶補羅國。

여기서 동남쪽으로 여러 산과 골짜기를 넘어 칠백여 리를 가면 승하보라국에 이른다.

협주 1

北印度境。

북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