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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국磔迦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8 · 한자 1,460자 · 낭독 5.8분

「대당서역기」 제4권 「책가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磔迦國周萬餘里,東據毗播奢河,西臨信度河。國大都城周二十餘里。宜粳稻,多宿麥,出金、銀、鍮石、銅、鐵。時候暑熱,土多風飆。風俗暴惡,言辭鄙褻。衣服鮮白,所謂憍奢耶衣、朝霞衣等。少事佛法,多事天神。伽藍十所,天祠數百。此國以往多有福舍,以贍貧匱,或施藥,或施食,口腹之資,行旅無累。

책가국은 둘레가 만여 리다. 동쪽으로 비파사하에 기대고 서쪽으로 신도하에 임하였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이십여 리다. 메벼에 마땅하고 보리가 많으며 금과 은과 놋쇠와 구리와 쇠가 난다. 철에 따라 덥고 뜨거우며 땅에 회오리바람이 많다. 풍속이 사납고 악하며 말이 낮고 더럽다. 옷은 산뜻하고 흰데 이른바 교사야 옷과 조하 옷 들이다. 불법을 적게 섬기고 천신을 많이 섬긴다. 절이 열이요 하늘신 사당가 수백이다. 이 나라는 지난날 복된 집이 많아 가난하고 모자란 이를 넉넉히 하였으니, 더러는 약을 베풀고 더러는 밥을 베풀어 입과 배의 밑천을 대매 길손이 매인 데가 없었다.

2사갈라 옛 성

大城西南十四五里,至奢羯羅故城。垣堵雖壞,基趾尚固,周二十餘里。其中更築小城,周六七里。居人富饒,即此國之故都也。

큰 성 서남쪽 열네댓 리를 가면 사갈라 옛 성에 이른다. 담은 무너졌으나 터는 아직 굳으며 둘레가 이십여 리다. 그 안에 다시 작은 성을 쌓았으니 둘레가 예닐곱 리다. 사는 사람이 넉넉하니 곧 이 나라의 옛 도읍이다.

3마혜라구라왕

數百年前,有王號摩醯邏矩羅,都治此城,王諸印度。有才智,性勇烈,鄰境諸國,莫不臣伏。機務餘閑,欲習佛法,令於僧中推一俊德。時諸僧徒莫敢應命:少欲無為,不求聞達;博學高明,有懼威嚴。是時王家舊僮,染衣已久,辭論清雅,言談贍敏,眾共推舉,而以應命。王曰:「我敬佛法,遠訪名僧,眾推此隸,與我談論。常謂僧中賢明肩比,以今知之,夫何敬哉?」於是宣令五印度國,繼是佛法並皆毀滅,僧徒斥逐,無復孑遺。

수백 년 전에 왕이 있어 마혜라구라라 하였는데, 이 성에 도읍하여 여러 인도를 다스렸다. 재주와 지혜가 있고 성품이 용맹하고 매워 이웃한 여러 나라가 신하로 굽히지 않는 데가 없었다. 나랏일의 남은 겨를에 불법을 익히려 하여, 승려 가운데 뛰어난 덕을 가진 이 하나를 밀어 올리게 하였다. 그때 여러 승려가 감히 명에 응하지 못하였다. 욕심이 적은 이는 함이 없어 이름이 드러나기를 구하지 않았고, 널리 배워 높고 밝은 이는 위엄을 두려워하였다. 이때 왕가의 옛 종이 물들인 옷을 입은 지 오래되었는데, 말과 논이 맑고 아정하며 말솜씨가 넉넉하고 재빨랐으므로 여럿이 함께 밀어 명에 응하게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내가 불법을 공경하여 멀리 이름난 승려를 찾았는데, 여럿이 이 종을 밀어 나와 이야기하게 하였다. 늘 승려 가운데 어질고 밝은 이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여겼는데, 오늘로 알겠으니 무엇을 공경하겠는가」 하였다. 이에 다섯 인도 나라에 영을 내려, 이어져 온 불법을 다 헐어 없애고 승려를 내쫓아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였다.

협주 1

唐言大族。

당나라 말로는 대족이다.

4유일왕에게 사로잡히다

摩揭陁國婆羅阿叠多王崇敬佛法,愛育黎元,以大族王淫刑虐政,自守疆埸,不恭職貢。時大族王治兵將討。幼日王知其聲問,告諸臣曰:「今聞寇至,不忍鬥其兵也。幸諸僚庶赦而不罪,賜此微軀潛行草澤。」言畢出宮,依緣山野。國中感恩慕從者數萬餘人,棲竄海島。大族王以兵付弟,浮海往伐。幼日王守其厄險,輕騎誘戰,金鼓一震,奇兵四起,生擒大族,反接引見。大族王自愧失道,以衣蒙面。幼日王踞師子床,群官周衛,乃命侍臣告大族曰:「汝露其面,吾欲有辭。」大族對曰:「臣主易位,怨敵相視,既非交好,何用面談?」再三告示,終不從命。於是宣令數其罪曰:「三寶福田,四生攸賴,茍任豺狼,傾毀勝業。福不祐汝,見擒於我。罪無可赦,宜從刑辟。」時幼日王母博聞強識,善達占相。聞殺大族也,疾告幼日王曰:「我嘗聞大族奇姿多智,欲一見之。」幼日王命引大族至母宮中。幼日母曰:「嗚呼,大族幸勿恥也!世間無常,榮辱更事,吾猶汝母,汝若吾子,宜去蒙衣,一言面對。」大族曰:「昔為敵國之君,今為俘囚之虜,隳廢王業,亡滅宗祀,上愧先靈,下慚黎庶,誠恥面目。俯仰天地,不能自喪,故此蒙衣。」王母曰:「興廢隨時,存亡有運。以心齊物,則得喪俱忘;以物齊心,則毀譽更起。宜信業報,與時推移,去蒙對語,或存軀命。」大族謝曰:「茍以不才,嗣膺王業,刑政失道,國祚亡滅,雖在縲紲之中,尚貪旦夕之命。敢承大造,面謝厚恩。」於是去蒙衣,出其面。王母曰:「子其自愛,當終爾壽。」已而告幼日王曰:「先典有訓,宥過好生。今大族王積惡雖久,餘福未盡,若殺此人,十二年中,菜色相視。然有中興之氣,終非大國之王,當據北方,有小國土。」幼日王承慈母之命,湣失國之君,娉以稚女,待以殊禮,總其遺兵,更加衛從,來出海島。

마게타국 바라아질다왕은 불법을 높이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해 길렀다. 대족왕이 형벌을 함부로 하고 정사를 사납게 하므로, 스스로 제 강토를 지키고 조공의 직분을 받들지 않았다. 그때 대족왕이 군사를 다스려 치려 하였다. 유일왕이 그 소문을 듣고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이제 도적이 온다 하니 그 군사와 싸움을 차마 하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여러 관원과 백성은 용서하고 죄 주지 말며, 이 하찮은 몸으로 하여금 풀 우거진 못에 숨어 다니게 하라」 하였다. 말을 마치고 궁을 나가 산과 들에 기대어 살았다. 나라 안에서 은혜에 감동하여 따르는 이가 수만이었으므로 바다 섬에 깃들어 숨었다. 대족왕이 군사를 아우에게 맡기고 바다를 건너가 쳤다. 유일왕이 그 험한 목을 지키다가 가벼운 기병으로 꾀어 싸우니, 징과 북이 한 번 울리자 기이한 군사가 사방에서 일어나 대족을 사로잡아 뒤로 묶어 끌어다 뵈었다. 대족왕이 스스로 도리를 잃은 것을 부끄러이 여겨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유일왕이 사자 자리에 걸터앉고 여러 관원이 두루 지키는 가운데, 이에 시중드는 신하에게 명하여 대족에게 이르기를 「너는 그 얼굴을 드러내라. 내가 할 말이 있다」 하였다. 대족이 대답하기를 「신하와 임금이 자리를 바꾸어 원수로 서로 보는 터에, 이미 좋게 사귄 사이가 아니니 얼굴을 맞대고 말할 것이 무엇이냐」 하였다. 두세 번 일러도 끝내 명을 좇지 않았다. 이에 영을 내려 그 죄를 세어 이르기를 「삼보는 복밭이라 네 가지로 나는 것들이 힘입는 바인데, 구차히 승냥이와 이리에게 맡겨 뛰어난 업을 기울여 헐었다. 복이 너를 돕지 않아 나에게 사로잡혔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다. 마땅히 형벌에 처하라」 하였다. 그때 유일왕의 어머니는 들은 것이 많고 기억이 굳세며 관상에 밝았다. 대족을 죽인다는 말을 듣고 급히 유일왕에게 일러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들으니 대족은 자태가 남다르고 지혜가 많다 하니 한번 보고 싶다」 하였다. 유일왕이 명하여 대족을 어머니의 궁 안으로 데려오게 하였다. 유일왕의 어머니가 이르기를 「아아, 대족은 부디 부끄러워 마라. 세상은 덧없어 영화와 욕됨이 번갈아 오는 일이다. 내가 네 어미와 같고 네가 내 아들과 같으니, 마땅히 덮은 옷을 걷고 한마디 얼굴을 맞대고 하자」 하였다. 대족이 이르기를 「옛날에는 적국의 임금이었고 지금은 사로잡힌 포로입니다. 왕업을 무너뜨리고 종묘를 망하게 하였으니, 위로는 선조의 넋에 부끄럽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부끄러워 참으로 낯을 들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우러르고 굽어보아도 스스로 죽지 못하였으므로 이렇게 옷을 덮었습니다」 하였다. 왕의 어머니가 이르기를 「일어나고 무너짐은 때를 따르고 있고 없음은 운이 있다. 마음으로 사물을 고르게 보면 얻음과 잃음을 함께 잊고, 사물로 마음을 고르게 하면 헐뜯음과 기림이 번갈아 일어난다. 마땅히 업의 갚음을 믿고 때와 더불어 옮겨 가라. 덮은 것을 걷고 마주 말하면 혹 몸과 목숨을 보전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 대족이 사례하기를 「구차히 재주 없는 몸으로 왕업을 이어받아 형벌과 정사가 도리를 잃어 나라의 복이 망하였습니다. 비록 오라에 묶인 가운데 있으나 아직 아침저녁의 목숨을 탐합니다. 감히 큰 지으심을 받들어 얼굴을 마주하고 두터운 은혜에 사례합니다」 하였다. 이에 덮은 옷을 걷고 그 얼굴을 드러냈다. 왕의 어머니가 이르기를 「그대는 스스로 아껴 마땅히 그대의 수명을 다하라」 하고, 이윽고 유일왕에게 이르기를 「옛 책에 가르침이 있으니 허물을 용서하고 살리기를 좋아하라 하였다. 이제 대족왕이 악을 쌓은 지 오래되었으나 남은 복이 다하지 않았다. 만일 이 사람을 죽이면 열두 해 동안 굶주린 낯빛으로 서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흥할 기운이 있으니 끝내 큰 나라의 왕은 아니요 마땅히 북방을 차지하여 작은 나라 땅을 가지리라」 하였다. 유일왕이 자애로운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나라를 잃은 임금을 가엾이 여겨, 어린 딸을 시집보내고 남다른 예로 대하며 그 남은 군사를 모두 모아 호위를 더해 주어 바다 섬을 나오게 하였다.

협주 1

唐言幼日。

당나라 말로는 유일이다.

5가습미라를 빼앗고 건타라를 도륙하다

大族王弟還國自立,大族失位,藏竄山野,北投迦濕彌羅國。迦濕彌羅王深加禮命,湣以失國,封以土邑。歲月既淹,率其邑人,矯殺迦濕彌羅王而自尊立。乘其戰勝之威,西討健馱邏國,潛兵伏甲,遂殺其王,國族大臣,誅鋤殄滅。毀窣堵波,廢僧伽藍,凡一千六百所。兵殺之外,餘有九億人,皆欲誅戮,無遺噍類。時諸輔佐咸進諫曰:「大王威懾強敵,兵不交鋒,誅其首惡,黎庶何咎?願以微躬,代所應死。」王曰:「汝信佛法,崇重冥福,擬成佛果,廣說本生,欲傳我惡於未來世乎?汝宜復位,勿有再辭。」於是以三億上族,臨信度河岸殺之;三億中族,下沈信度河流殺之;三億下族,分賜兵士。於是持其亡國之貨,振旅而歸。曾未改歲,尋即殂落。於時雲霧冥晦,大地震動,暴風奮發。時證果人湣而嘆曰:「妄殺無辜,毀滅佛法,墮無間獄,流轉未已。」

대족왕의 아우가 나라에 돌아가 스스로 임금이 되었으므로 대족은 자리를 잃고 산과 들에 숨었다가 북쪽으로 가습미라국에 몸을 맡겼다. 가습미라왕이 깊이 예로 대하고 나라 잃은 것을 가엾이 여겨 고을을 떼어 봉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자 그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왕명을 꾸며 대어 가습미라왕을 죽이고 스스로 높은 자리에 섰다. 그 싸움에 이긴 위세를 타 서쪽으로 건타라국을 쳤는데, 군사를 숨기고 갑옷을 감추었다가 마침내 그 왕을 죽이고 나라의 겨레와 대신을 베어 없앴다. 탑을 헐고 절을 폐한 것이 무릇 천육백이었다. 군사가 죽인 것 밖에 남은 사람이 구억이었는데 다 죽여 산 사람 하나 남기지 않으려 하였다. 그때 여러 보좌하는 신하가 다 나아가 간하기를 「대왕의 위엄이 강한 적을 눌러 군사가 칼날을 겨루지 않았습니다. 그 우두머리 악한 자를 벨 일이지 백성에게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원컨대 하찮은 몸으로 죽어야 할 이들을 대신하게 하소서」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너희가 불법을 믿어 저승의 복을 무겁게 여기고 부처의 과위를 이루려 하며 본생을 널리 말하니, 내 악함을 뒷세상에 전하려 하는가. 너희는 마땅히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삼억의 윗 겨레는 신도하 기슭에 데려가 죽이고, 삼억의 가운데 겨레는 신도하 흐름에 잠가 죽이며, 삼억의 아랫 겨레는 군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에 그 망한 나라의 재화를 가지고 군사를 떨쳐 돌아갔다. 해가 바뀌기도 전에 곧 죽었다. 그때 구름과 안개가 어둡고 대지가 진동하며 사나운 바람이 일었다. 그때 과위를 증득한 이가 가엾이 여겨 탄식하기를 「죄 없는 이를 함부로 죽이고 불법을 헐어 없앴으니, 무간지옥에 떨어져 흘러 도는 것이 그치지 않으리라」 하였다.

6세친이 논을 지은 절

奢羯羅故城中有一伽藍,僧徒百餘人,並學小乘法。世親菩薩昔於此中制《勝義諦論》。其側窣堵波,高二百餘尺,過去四佛於此說法。又有四佛經行遺跡之所。伽藍西北五六里有窣堵波,高二百餘尺,無憂王之所建也,是過去四佛說法之處。

사갈라 옛 성 안에 절이 하나 있으니 승려가 백여 명이요 모두 소승의 법을 배운다. 세친보살이 옛날 이 안에서 『승의제론』을 지었다. 그 곁 탑은 높이가 이백여 자인데 지나간 네 부처가 여기서 법을 말씀하셨다. 또 네 부처가 거닐던 자취가 있는 자리가 있다. 절 서북쪽 대여섯 리에 탑이 있으니 높이가 이백여 자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지나간 네 부처가 법을 말씀하신 자리다.

7돌탑

新都城東北十餘里,至石窣堵波,高二百餘尺,無憂王之所建也,是如來往北方行化中路止處。《印度記》曰:窣堵波中有多舍利,或有齋日,時放光明。

새 도성 동북쪽 십여 리를 가면 돌탑에 이르니 높이가 이백여 자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가 북방으로 다니며 교화하실 때 도중에 머무신 곳이다. 『인도기』에 이르기를, 탑 안에 사리가 많아 더러 재일이면 때때로 밝은 빛을 놓는다 하였다.

從此東行五百餘里,至至那僕底國。

여기서 동쪽으로 오백여 리를 가면 지나복저국에 이른다.

협주 1

北印度境。

북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