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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복저국至那僕底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4 · 한자 447자 · 낭독 1.8분

「대당서역기」 제4권 「지나복저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至那僕底國周二千餘里。國大都城周十四五里。稼穡滋茂,果木稀疏。編戶安業,國用豐贍。氣序溫暑,風俗怯弱。學綜真俗,信兼邪正。伽藍十所,天祠八所。

지나복저국은 둘레가 이천여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열네댓 리다. 심고 거두는 것이 잘 자라고 무성하나 과일나무가 드물고 성기다. 호적에 든 집이 생업에 편안하고 나라 살림이 넉넉하다. 기후가 따뜻하고 덥고 풍속이 겁이 많고 약하다. 배움이 참됨과 세속을 아우르고 믿음이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겸한다. 절이 열이요 하늘신 사당가 여덟이다.

2한나라 사람의 봉지

昔迦膩色迦王之御宇也,聲振鄰國,威被殊俗,河西蕃維,畏威送質。迦膩色迦王既得質子,賞遇隆厚,三時易館,四兵警衛。此國則質子冬所居也,故曰至那仆底。質子所居,因為國號。此境以往,洎諸印度,土無梨、桃,質子所植,因謂桃曰至那你,梨曰至那羅阇弗呾邏。故此國人深敬東土,更相指語:「是我先王本國人也。」

옛날 가니색가왕이 천하를 다스릴 때 이름이 이웃 나라에 떨치고 위엄이 다른 풍속에 미쳐, 하서의 울타리 나라들이 위엄을 두려워하여 볼모를 보냈다. 가니색가왕이 볼모로 온 왕자를 얻자 상과 대우가 두터웠고 세 철마다 관사를 바꾸며 네 가지 군사가 지켰다. 이 나라는 곧 볼모가 겨울에 살던 곳이므로 지나복저라 한다. 볼모가 살던 데라 하여 나라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이 경계에서 여러 인도에 이르기까지 땅에 배와 복숭아가 없었는데 볼모가 심었으므로, 이로 인해 복숭아를 지나니라 하고 배를 지나라사불달라라 한다. 그러므로 이 나라 사람들이 동쪽 땅을 깊이 공경하여 서로 가리키며 「저이는 우리 선왕의 본국 사람이다」 한다.

협주 3

唐言漢封。

당나라 말로는 한나라의 봉지다.

唐言漢持來。

당나라 말로는 한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다.

唐言漢王子。

당나라 말로는 한나라 왕자다.

3답말소벌나 절

大城東南行五百餘里,至荅秣蘇伐那僧伽藍。僧徒三百餘人,學說一切有部,眾儀肅穆,德行清高,小乘之學特為博究。賢劫千佛皆於此地集天人眾,說深妙法。釋迦如來涅槃之後第三百年中,有迦多衍那論師者,於此制《發智論》焉。暗林伽藍中有窣堵波,高二百餘尺,無憂王之所建也。其側則有過去四佛坐及經行遺跡之處。小窣堵波、諸大石室,鱗次相望,不詳其數,並是劫初已來諸果聖人於此寂滅,差難備舉,齒骨猶在。繞山伽藍周二十里,佛舍利窣堵波數百千所,連隅接影。

큰 성 동남쪽으로 오백여 리를 가면 답말소벌나 절에 이른다. 승려가 삼백여 명인데 설일체유부를 배우며, 무리의 몸가짐이 엄숙하고 덕행이 맑고 높으며 소승의 배움을 특히 널리 궁구하였다. 현겁의 천 부처가 다 이 땅에서 하늘과 사람의 무리를 모아 깊고 묘한 법을 말씀하신다. 석가여래가 열반에 드신 뒤 삼백 년 가운데 가다연나 논사가 여기서 『발지론』을 지었다. 어두운 숲 절 안에 탑이 있으니 높이가 이백여 자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그 곁에는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가 있다. 작은 탑과 여러 큰 석실이 비늘처럼 잇달아 마주 보아 그 수를 자세히 알 수 없는데, 다 겁 초 이래로 여러 과위를 얻은 성인이 여기서 적멸에 든 것이라 낱낱이 들기 어렵고 이와 뼈가 아직 남아 있다. 산을 두른 절이 둘레 이십 리인데,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이 수백 수천이라 모퉁이가 잇닿고 그림자가 맞닿는다.

협주 2

唐言暗林。

당나라 말로는 어두운 숲이다.

舊曰迦旃延,訛也。

옛적에는 가전연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從此東北行百四五十里,至阇爛達羅國。

여기서 동북쪽으로 백사오십 리를 가면 사란달라국에 이른다.

협주 1

北印度境。

북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