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저보라국秣底補羅國
秣底補羅國周六千餘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宜穀、麥,多花果。氣序和暢,風俗淳質。崇尚學藝,深閑咒術。信邪正者,其徒相半。王,戍陀羅種也,不信佛法,敬事天神。伽藍十餘所,僧徒八百餘人,多學小乘教說一切有部。天祠五十餘所,異道雜居。
말저보라국은 둘레가 육천여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이십여 리다. 곡식과 보리에 마땅하고 꽃과 열매가 많다. 기후가 화창하고 풍속이 순박하고 질박하다. 배움과 재예를 높이 숭상하고 주문의 술법에 깊이 익숙하다. 삿된 것을 믿는 이와 바른 것을 믿는 이가 그 무리가 반반이다. 왕은 수타라 겨레인데 불법을 믿지 않고 천신을 공경히 섬긴다. 절이 십여요 승려가 팔백여 명인데 소승의 가르침인 설일체유부를 많이 배운다. 하늘신 사당가 오십여요 외도가 섞여 산다.
2구나발랄바 논사와 자씨
大城南四五里,至小伽藍,僧徒五十餘人。昔瞿拿缽剌婆論師於此作《辯真》等論,凡百餘部。論師少而英傑,長而弘敏,博物強識,碩學多聞。本習大乘,未窮玄奧,因覽《毗婆沙論》,退業而學小乘,作數十部論,破大乘綱紀,成小乘執著。又制俗書數十餘部,非斥先進所作典論。覃思佛經,十數不決,研精雖久,疑情未除。時有提婆犀那羅漢,往來睹史多天,德光願見慈氏,決疑請益,天軍以神通力,接上天宮。既見慈氏,長揖不禮。天軍謂曰:「慈氏菩薩次紹佛位,何乃自高,敢不致敬?方欲受業,如何不屈?」德光對曰:「尊者此言,誠為指誨。然我具戒苾芻,出家弟子,慈氏菩薩受天福樂,非出家之侶,而欲作禮,恐非所宜。」菩薩知其我慢心固,非聞法器,往來三返,不得決疑。更請天軍,重欲覲禮。天軍惡其我慢,蔑而不對。德光既不遂心,便起恚恨,即趣山林,修發通定,我慢未除,不證道果。
큰 성 남쪽 네댓 리를 가면 작은 절에 이르니 승려가 오십여 명이다. 옛날 구나발랄바 논사가 여기서 『변진』 등 논을 지으니 무릇 백여 부다. 논사는 어려서 뛰어났고 자라서는 넓고 민첩하였으며, 사물을 널리 알고 기억이 굳세며 배움이 크고 들은 것이 많았다. 본디 대승을 익혔으나 그윽하고 깊은 데를 다하지 못하였는데, 『비바사론』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하던 업을 물리고 소승을 배워 수십 부 논을 지어 대승의 벼리를 깨뜨리고 소승의 집착을 이루었다. 또 세속의 글 수십여 부를 지어 앞선 이들이 지은 전적과 논을 그르다 배척하였다. 부처의 경을 깊이 생각하되 열 몇 가지를 결단하지 못하여, 정밀히 연구한 지 오래되었으나 의심이 풀리지 않았다. 그때 제바서나 나한이 도사다천을 오갔으므로, 덕광이 자씨를 뵙고 의심을 결단하고 가르침을 청하기를 바라니, 천군이 신통의 힘으로 하늘 궁으로 데려갔다. 자씨를 뵙자 길게 읍하되 절하지 않았다. 천군이 이르기를 「자씨보살은 다음으로 부처의 자리를 이으실 분인데 어찌 스스로 높이 여겨 감히 공경을 다하지 않으시오. 바야흐로 학업을 받으려 하면서 어찌 굽히지 않으시오」 하였다. 덕광이 대답하기를 「존자의 이 말씀은 참으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나는 계를 갖춘 비구요 집을 나온 제자입니다. 자씨보살은 하늘의 복락을 받는 분이라 집을 나온 무리가 아닌데 절을 하려 함은 마땅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보살이 그 아만이 굳어 법을 들을 그릇이 아님을 알았으므로, 세 번 오갔으나 의심을 결단하지 못하였다. 다시 천군에게 청하여 거듭 뵙기를 바랐으나, 천군이 그 아만을 미워하여 업신여기고 대답하지 않았다. 덕광이 마음을 이루지 못하자 곧 성내고 한하여 산림으로 나아가 신통을 내는 선정을 닦았으나, 아만을 없애지 못하여 도의 과위를 증득하지 못하였다.
협주 2
唐言德光。
당나라 말로는 덕광이다.
唐言天軍。
당나라 말로는 천군이다.
3중현 논사와 세친
德光伽藍北三四里,有大伽藍,僧徒二百餘人,並學小乘法教,是眾賢論師壽終之處。論師迦濕彌羅國人也,聰敏博達,幼傳雅譽,特深研究說一切有部《毗婆沙論》。時有世親菩薩,一心玄道,求解言外,破毗婆沙師所執,作《阿毗達磨俱舍論》,辭義善巧,理致精高。眾賢循覽,遂有心焉。於是沈研鉆極十有二歲,作《俱舍雹論》二萬五千頌,凡八十萬言矣。所謂言深致遠,窮幽洞微。告門人曰:「以我逸才,持我正論,逐斥世親,挫其鋒銳,無令老叟獨擅先名。」於是學徒四三俊彥,持所作論,推訪世親。世親是時在磔迦國奢羯羅城,遠傳聲問眾賢當至。世親聞已,即治行裝。門人懷疑,前進諫曰:「大師德高先哲,名擅當時,遠近學徒莫不推謝。今聞眾賢,一何惶遽?必有所下,我曹厚顏。」世親曰:「吾今遠遊,非避此子。顧此國中,無復鑒達。眾賢後進也,詭辯若流,我衰耄矣,莫能持論。欲以一言頹其異執,引至中印度,對諸耄彥,察乎真偽,詳乎得失。」尋即命侶,負笈遠遊。眾賢論師當後一日至此伽藍,忽覺氣衰,於是裁書謝世親曰:「如來寂滅,弟子部執,傳其宗學,各擅專門,黨同道,疾異部。愚以寡昧,猥承傳習,覽所制《阿毗達磨俱舍論》,破毗婆沙師大義,輒不量力,深究彌年,作為此論,扶正宗學。智小謀大,死其將至。菩薩宣暢微言,抑揚至理,不毀所執,得存遺文,斯為幸矣,死何悔哉?」於是歷選門人有辭辯者而告之曰:「吾誠後學,輕淩先達,命也如何?當從斯沒!汝持是書及所制論,謝彼菩薩,代我悔過。」授辭適畢,奄爾云亡。門人奉書至世親所而致辭曰:「我師眾賢已舍壽命,遺言致書,責躬謝咎。不墜其名,非所敢望。」世親菩薩覽書閱論,沈吟久之,謂門人曰:「眾賢論師聰敏後進,理雖不足,辭乃有餘。我今欲破眾賢之論,若指諸掌。顧以垂終之托,重其知難之辭,茍緣大義,存其宿志,況乎此論發明我宗?」遂為改題為《順正理論》。門人諫曰:「眾賢未沒,大師遠跡,既得其論,又為改題,凡厥學徒,何顏受愧?」世親菩薩欲除眾疑,而說頌曰:「如師子王,避豕遠逝,二力勝負,智者應知。」眾賢死已,焚屍收骨,於伽藍西北二百餘步庵沒羅林中,起窣堵波,今猶現在。
덕광의 절 북쪽 서너 리에 큰 절이 있으니 승려가 이백여 명이요 모두 소승의 법과 가르침을 배운다. 이는 중현 논사가 목숨을 마친 곳이다. 논사는 가습미라국 사람인데 총명하고 널리 통달하여 어려서부터 훌륭한 이름이 전하였고, 특히 설일체유부의 『비바사론』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때 세친보살이 한마음으로 그윽한 도를 좇아 말 밖의 뜻을 구하여, 비바사 스승들이 잡은 것을 깨뜨리고 『아비달마구사론』을 지었으니 말과 뜻이 훌륭하고 이치가 정밀하고 높았다. 중현이 두루 보고 마침내 마음에 두는 바가 있었다. 이에 열두 해를 깊이 연구하고 파고들어 『구사박론』 이만오천 송을 지으니 무릇 팔십만 자다. 이른바 말이 깊고 뜻이 멀어 그윽한 데를 다하고 은미한 데를 꿰뚫었다. 문인들에게 이르기를 「나의 뛰어난 재주로 나의 바른 논을 지녀 세친을 좇아 배척하고 그 날카로움을 꺾어, 늙은이가 홀로 앞선 이름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겠다」 하였다. 이에 배우는 무리 가운데 서넛 뛰어난 이가 지은 논을 가지고 세친을 찾아갔다. 세친은 이때 책가국 사갈라성에 있었는데, 중현이 온다는 소문이 멀리 전해졌다. 세친이 듣고 곧 행장을 꾸렸다. 문인들이 의심을 품고 나아가 간하기를 「큰 스승께서는 덕이 앞선 어진 이들보다 높고 이름이 당대에 홀로 뛰어나, 멀고 가까운 데 배우는 무리가 물러나 사양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이제 중현이 온다는 말을 들으시고 어찌 그리 허둥대십니까. 반드시 낮추시는 바가 있다면 저희가 낯이 두꺼울 것입니다」 하였다. 세친이 이르기를 「내가 이제 멀리 가는 것은 이 사람을 피함이 아니다. 다만 이 나라 안에 다시 살펴 통달한 이가 없다. 중현은 후배이나 궤변이 물 흐르는 듯하고, 나는 늙어 논을 지탱하지 못하겠다. 한마디로 그 다른 집착을 무너뜨리려 하여 중인도로 이끌어 여러 늙은 어진 이들 앞에서 참과 거짓을 살피고 얻고 잃음을 자세히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곧 벗을 불러 책 상자를 지고 멀리 떠났다. 중현 논사가 하루 뒤에 이 절에 이르렀는데 홀연히 기운이 쇠함을 느꼈다. 이에 글을 지어 세친에게 사례하기를 「여래가 적멸에 드신 뒤 제자들이 갈래를 지어 그 종파의 배움을 전하며 저마다 문을 세워, 같은 편을 무리 짓고 다른 갈래를 미워합니다. 어리석고 어두운 몸으로 외람되이 전해 익힘을 이어받아, 지으신 『아비달마구사론』이 비바사 스승들의 큰 뜻을 깨뜨림을 보고 문득 힘을 헤아리지 않고 여러 해를 깊이 파고들어 이 논을 지어 바른 종파의 배움을 붙들었습니다. 지혜는 작은데 꾀함이 커서 죽음이 장차 이르렀습니다. 보살께서 은미한 말을 펴고 지극한 이치를 누르고 드날리시되, 잡은 바를 헐지 않으시고 남긴 글을 남겨 두신다면 이것이 다행이니 죽은들 무엇을 뉘우치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문인 가운데 말솜씨 있는 이를 가려 이르기를 「나는 참으로 뒤에 배운 사람으로서 앞선 이를 가벼이 넘보았으니 운명을 어찌하겠는가. 마땅히 여기서 죽으리라. 너는 이 글과 지은 논을 가지고 저 보살께 사례하여 나를 대신해 허물을 뉘우쳐 다오」 하였다. 말을 마치자 문득 죽었다. 문인이 글을 받들고 세친이 있는 데 이르러 아뢰기를 「저희 스승 중현이 이미 목숨을 버리며 글을 남겨 제 몸을 꾸짖고 허물을 사죄하였습니다. 그 이름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은 감히 바랄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세친보살이 글을 보고 논을 읽고 오래 잠겨 생각하다가 문인에게 이르기를 「중현 논사는 총명한 후배라 이치는 넉넉하지 못하나 말은 남음이 있다. 내가 이제 중현의 논을 깨뜨리기는 손바닥을 가리키듯 쉽다. 다만 죽음에 임해 부탁한 것을 돌아보고 어려움을 안 그 말을 무겁게 여기며, 구차히 큰 뜻을 인연하여 그 오랜 뜻을 남겨 두려 한다. 하물며 이 논이 나의 종지를 밝힘에랴」 하고, 마침내 제목을 고쳐 『순정리론』이라 하였다. 문인이 간하기를 「중현이 죽지 않았을 때 큰 스승께서는 멀리 자취를 옮기셨는데, 이제 그 논을 얻고서 또 제목을 고쳐 주시니 무릇 배우는 무리가 무슨 낯으로 부끄러움을 받겠습니까」 하였다. 세친보살이 여러 의심을 없애려 하여 송을 지어 이르기를 「사자왕이 돼지를 피해 멀리 가는 것과 같으니, 두 힘의 이기고 짐은 지혜로운 이가 마땅히 알리라」 하였다. 중현이 죽은 뒤 주검을 태워 뼈를 거두어, 절 서북쪽 이백여 걸음 암몰라 숲 가운데에 탑을 세우니 지금도 그대로 있다.
4비말라밀다라 논사
庵沒羅林側有窣堵波,毗末羅蜜多羅論師之遺身。論師,迦濕彌羅國人也,於說一切有部而出家焉。博綜眾經,研究異論,遊五印度國,學三藏玄文,名立業成,將歸本國。途次眾賢論師窣堵波也,拊而嘆曰:「惟論師雅量清高,抑揚大義,方欲挫異部,立本宗業也,如何降年不永!我無垢友猥承末學,異時慕義,曠代懷德。世親雖沒,宗學尚傳,我盡所知,當制諸論,令贍部洲諸學人等絕大乘稱,滅世親名,斯為不朽,用盡宿心。」說是語已,心發狂亂,五舌重出,熱血流湧。知命必終,裁書悔曰:「夫大乘教者,佛法之中究竟說也。名味泯絕,理致幽玄。輕以愚昧,駁斥先進,業報皎然,滅身宜矣。敢告學人,厥鑒斯在,各慎爾志,無得懷疑。」大地為震,命遂終焉。當其死處,地陷為坑。同旅焚屍,收骸旌建。時有羅漢見而嘆曰:「惜哉!苦哉!今此論師任情執見,毀惡大乘,墮無間獄。」
암몰라 숲 곁에 탑이 있으니 비말라밀다라 논사의 남은 몸이다. 논사는 가습미라국 사람인데 설일체유부에서 집을 나왔다. 여러 경을 널리 꿰고 다른 논을 연구하며 다섯 인도 나라를 다니면서 삼장의 그윽한 글을 배웠다. 이름이 서고 업이 이루어져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가는 길에 중현 논사의 탑에 이르러 어루만지며 탄식하기를 「생각건대 논사는 도량이 넓고 맑고 높아 큰 뜻을 누르고 드날려, 바야흐로 다른 갈래를 꺾고 본디 종파의 업을 세우려 하였는데 어찌 하늘이 내린 해가 길지 못하였는가. 나 무구우가 외람되이 말학을 이어받아, 다른 때에 그 뜻을 사모하고 오랜 세대에 그 덕을 품었다. 세친이 비록 죽었으나 그 종파의 배움이 아직 전하니, 내가 아는 것을 다하여 마땅히 여러 논을 지어 섬부주의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대승이라는 이름을 끊고 세친의 이름을 없애게 하겠다. 이것이 썩지 않는 일이요 오랜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을 마치자 마음이 미쳐 어지러워지고 다섯 혀가 겹쳐 나오며 더운 피가 솟아 흘렀다. 목숨이 반드시 다할 줄 알고 글을 지어 뉘우쳐 이르기를 「무릇 대승의 가르침은 부처의 법 가운데 끝까지 다한 말씀이다. 이름과 맛이 다 스러지고 이치가 그윽하고 깊다. 어리석고 어두움으로 가벼이 앞선 이들을 반박하였으니, 업의 갚음이 뚜렷하여 몸이 스러짐이 마땅하다. 감히 배우는 이들에게 고하노니 그 거울이 여기 있다. 저마다 그대들의 뜻을 삼가 의심을 품지 말라」 하였다. 대지가 진동하고 목숨이 마침내 다하였다. 그가 죽은 자리는 땅이 꺼져 구덩이가 되었다. 함께 가던 이들이 주검을 태우고 뼈를 거두어 표를 세웠다. 그때 나한이 보고 탄식하기를 「아깝고 괴롭구나. 이제 이 논사가 제 뜻대로 견해를 잡아 대승을 헐어 미워하였으니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하였다.
협주 1
唐言無垢友。
당나라 말로는 무구우다.
5마유라성과 긍가하의 문
國西北境殑伽河東岸有摩裕羅城,周二十餘里,居人殷盛。清流交帶,出鍮石、水精、寶器。去城不遠,臨殑伽河,有大天祠,甚多靈異。其中有池,編石為岸,引殑伽水為浦,五印度人謂之殑伽河門,生福滅罪之所。常有遠方數千人,集此澡濯。樂善諸王建立福舍,備珍羞,儲醫藥,惠施鰥寡,周給孤獨。
나라 서북쪽 경계 긍가하 동쪽 기슭에 마유라성이 있으니 둘레가 이십여 리요 사는 사람이 넉넉하고 성하다. 맑은 물이 얽혀 흐르고 놋쇠·수정·보배 그릇이 난다. 성에서 멀지 않은 긍가하에 닿은 데 큰 하늘신 사당가 있어 신령한 이적이 매우 많다. 그 안에 못이 있는데 돌을 엮어 기슭을 삼고 긍가하 물을 끌어 포구를 삼았다. 다섯 인도 사람들이 이를 긍가하의 문이라 하며 복을 낳고 죄를 없애는 자리라 한다. 늘 먼 곳에서 수천 사람이 여기 모여 씻는다. 착함을 즐기는 여러 왕이 복을 베푸는 집을 세워 진귀한 음식을 갖추고 약을 쌓아, 홀아비와 과부에게 은혜를 베풀고 외로운 이를 두루 돕는다.
從此北行三百餘里,至婆羅吸摩補羅國。
여기서 북쪽으로 삼백여 리를 가면 바라흡마보라국에 이른다.
협주 1
北印度境。
북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