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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삭가국鞞索迦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3 · 한자 307자 · 낭독 1.2분

「대당서역기」 제5권 「비삭가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鞞索迦國周四千餘里。國大都城周十六里。穀稼殷盛,花果具繁。氣序和暢,風俗淳質,好學不倦,求福不回。伽藍二十餘所,僧眾三千餘人,並學小乘正量部法。天祠五十餘所,外道甚多。

비삭가국은 둘레가 사천여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십육 리다. 곡식이 넉넉하고 성하며 꽃과 열매가 두루 번성하다. 기후가 화창하고 풍속이 순박하고 질박하다.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고 복을 구하되 돌이키지 않는다. 절이 이십여요 승려가 삼천여 명인데 모두 소승 정량부의 법을 배운다. 하늘신 사당가 오십여요 외도가 몹시 많다.

2이 있다와 없다로 다툰 자리

城南道左有大伽藍。昔提婆設摩阿羅漢於此造《識身論》,說無我人;瞿波阿羅漢作《聖教要實論》,說有我人。因此法執,遂深諍論。又是護法菩薩於此七日中摧伏小乘一百論師。伽藍側有窣堵波,高二百餘尺,無憂王所建也,如來昔日六年於此說法導化。說法側有奇樹,高六七尺,春秋遞代,常無增減。是如來昔嘗凈齒,棄其遺枝,因植根柢,繁茂至今。諸邪見人及外道眾競來殘伐,尋生如故。其側不遠,有過去四佛座及經行遺跡之所。復有如來髮、爪窣堵波。靈基連隅,林沼交映。

성 남쪽 길 왼편에 큰 절이 있다. 옛날 제바설마 아라한이 여기서 『식신론』을 지어 나와 사람이 없다고 말하였고, 구파 아라한이 『성교요실론』을 지어 나와 사람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법에 붙잡힘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다툼이 깊어졌다. 또 이는 호법보살이 여기서 이레 동안 소승 논사 백 사람을 꺾어 엎드리게 한 자리다. 절 곁에 탑이 있으니 높이가 이백여 자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가 옛날 여섯 해 동안 여기서 법을 말씀하여 이끌어 교화하셨다. 설법하신 자리 곁에 기이한 나무가 있으니 높이가 예닐곱 자요, 봄가을이 갈마들어도 늘 늘거나 줄지 않는다. 이는 여래가 옛날 일찍이 이를 닦으시고 그 버린 가지를 심어 뿌리가 내려 이제까지 무성한 것이다. 여러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과 외도의 무리가 다투어 와서 베었으나 이내 전과 같이 났다. 그 곁 멀지 않은 데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가 있다. 또 여래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모신 탑이 있다. 신령한 터가 모퉁이마다 이어지고 숲과 못이 서로 비친다.

從此東北行五百餘里,至室羅伐悉底國。

여기서 동북쪽으로 오백여 리를 가면 실라벌실저국에 이른다.

협주 1

舊曰舍衛,訛也。中印度境。

옛적에는 사위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중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