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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벌실저국室羅伐悉底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22 · 한자 2,637자 · 낭독 10.5분

「대당서역기」 제6권 「실라벌실저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室羅伐悉底國周六千餘里。都城荒頹,疆埸無紀。宮城故基周二十餘里,雖多荒圮,尚有居人。穀稼豐,氣序和。風俗淳質,篤學好福。伽藍數百,圮壞良多,僧徒寡少,學正量部。天祠百所,外道甚多。

실라벌실저국은 둘레가 육천여 리다. 도성은 거칠어 무너지고 지경에 벼리가 없다. 궁성 옛터는 둘레가 이십여 리인데, 거칠고 무너진 데가 많으나 아직 사는 사람이 있다. 곡식이 넉넉하고 기후가 고르다. 풍속이 순박하고 질박하며 배움에 도탑고 복을 좋아한다. 절이 수백인데 무너진 것이 매우 많고 승려가 적으며 정량부를 배운다. 하늘신 사당가 백이요 외도가 몹시 많다.

2승군왕의 궁터

此則如來在世之時,缽邏犀那恃多王所治國都也。故宮城內有故基,勝軍王殿餘址地。

이는 곧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 발라서나시다왕이 다스리던 나라의 도읍이다. 옛 궁성 안에 옛터가 있으니 승군왕 궁전의 남은 자리다.

협주 1

唐言勝軍。舊曰波斯匿,訛略也。

당나라 말로는 승군이다. 옛적에는 파사닉이라 하였으나 잘못되고 줄인 것이다.

3생주 비구니의 정사와 선시의 옛집

次東不遠,有一故基,上建小窣堵波,昔勝軍王為如來所建大法堂也。法堂側不遠,故基上有窣堵波,是佛姨母缽邏阇缽底苾芻尼精舍,勝軍王之所建立。次東窣堵波,是蘇達多故宅也。

그 동쪽 멀지 않은 데 옛터 하나가 있고 위에 작은 탑을 세웠으니, 옛날 승군왕이 여래를 위해 세운 큰 법당이다. 법당 곁 멀지 않은 옛터 위에 탑이 있으니, 이는 부처의 이모 발라사발저 비구니의 정사요 승군왕이 세운 것이다. 그 동쪽 탑은 소달다의 옛집이다.

협주 2

唐言生主。舊云波阇波提,訛也。

당나라 말로는 생주다. 옛적에는 파사파제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唐言善施。舊曰須達,訛也。

당나라 말로는 선시다. 옛적에는 수달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4손가락 테를 두른 사람

善施長者宅側有大窣堵波,是鴦窶利摩羅舍邪之處。鴦窶利摩羅者,室羅伐悉底之兇人也。作害生靈,為暴城國,殺人取指,冠首為鬘。將欲害母,以充指數。世尊悲湣,方行導化。遙見世尊,竊自喜曰:「我今生天必矣。先師有教,遺言在茲,害佛殺母,當生梵天。」謂其母曰:「老今且止,先當害彼大沙門。」尋即仗劍往逆世尊。如來於是徐行而退,兇人指鬘疾驅不逮。世尊謂曰:「何守鄙志,舍善本,激惡源?」時指鬘聞誨,悟所行非,因即歸命,求入法中,精勤不怠,證羅漢果。

선시 장자의 집 곁에 큰 탑이 있으니, 이는 앙구리마라가 삿됨을 버린 자리다. 앙구리마라는 실라벌실저의 흉악한 사람이다. 산 것들을 해쳐 성과 나라에 사나움을 부리며, 사람을 죽여 손가락을 취하고 머리에 두르는 테를 삼았다. 장차 어미를 해쳐 손가락 수를 채우려 하였다. 세존이 가엾이 여겨 바야흐로 가서 이끄셨다. 멀리서 세존을 보고 남몰래 스스로 기뻐하여 이르기를 「내가 이제 하늘에 나는 것이 틀림없다. 앞선 스승의 가르침이 있으니 남긴 말이 여기 있다 — 부처를 해치고 어미를 죽이면 마땅히 범천에 난다」 하고, 그 어미에게 이르기를 「늙은이는 이제 잠깐 그치시오. 먼저 저 큰 사문을 해쳐야겠소」 하였다. 이어 곧 칼을 들고 세존을 맞받으러 갔다. 여래가 이에 천천히 걸어 물러나시는데, 흉악한 지만은 빨리 달려도 미치지 못하였다. 세존이 이르시기를 「어찌 낮은 뜻을 지켜 착한 뿌리를 버리고 악한 근원을 부추기느냐」 하셨다. 그때 지만이 가르침을 듣고 제가 한 일이 그른 줄을 깨달아, 그로 말미암아 곧 부처께 귀의하여 법 안에 들기를 구하고,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아 아라한의 열매를 얻었다.

협주 1

唐言指鬘。舊曰央掘摩羅,訛也。

당나라 말로는 지만이다. 옛적에는 앙굴마라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5기원정사 — 급고독원

城南五六里有逝多林,是給孤獨園。勝軍王大臣善施為佛建精舍。昔為伽藍,今已荒廢。東門左右各建石柱,高七十餘尺,左柱鏤輪相於其端,右柱刻牛形於其上,並無憂王之所建也。室宇傾圮,唯餘故基,獨一磚室巋然獨在,中有佛像。昔者如來升三十三天,為母說法之後,勝軍王聞出愛王刻檀佛像,乃造此像。

성 남쪽 대여섯 리에 서다림이 있으니 이는 급고독원이다. 승군왕의 대신 선시가 부처를 위해 세운 정사다. 옛날에는 절이었으나 이제는 이미 거칠어 버려졌다. 동문 좌우에 각각 돌기둥을 세웠으니 높이가 칠십여 자다. 왼쪽 기둥은 그 끝에 바퀴 모양을 새겼고 오른쪽 기둥은 그 위에 소 모양을 새겼으니, 다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집이 기울고 무너져 오직 옛터만 남았는데, 홀로 벽돌 방 하나가 우뚝 서 있고 그 안에 불상이 있다. 옛날 여래가 삼십삼천에 올라 어머니를 위해 법을 말씀하신 뒤에, 승군왕이 출애왕이 전단을 새겨 불상을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이 상을 지은 것이다.

협주 1

唐言勝林。舊曰祇陁,訛也。

당나라 말로는 승림이다. 옛적에는 기타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6금을 깔아 산 동산

善施長者仁而聰敏,積而能散,拯乏濟貧,哀孤恤老,時美其德,號給孤獨焉。聞佛功德,深生尊敬,願建精舍,請佛降臨。世尊命舍利子隨瞻揆焉,唯太子逝多園地爽塏。尋詣太子,具以情告。太子戲言:「金遍乃賣。」善施聞之,心豁如也,即出藏金,隨言布地。有少未滿,太子請留,曰:「佛誠良田,宜植善種。」即於空地,建立精舍。世尊即之,告阿難曰:「園地善施所買,林樹逝多所施,二人同心,式崇功業。自今已去,應謂此地為逝多林給孤獨園。」

선시 장자는 어질고 총명하며 민첩하여, 쌓되 잘 흩어서 모자란 이를 건지고 가난한 이를 구제하며 외로운 이를 가엾이 여기고 늙은 이를 돌보았다. 그때 사람들이 그 덕을 아름다이 여겨 「외로운 이에게 주는 사람」이라 불렀다. 부처의 공덕을 듣고 깊이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정사를 세워 부처를 모셔 오기를 원하였다. 세존이 사리자에게 명하여 따라가 살펴 헤아리게 하시니, 오직 서다 태자의 동산 땅이 시원하고 높았다. 이어 태자에게 나아가 뜻을 갖추어 아뢰니, 태자가 장난으로 이르기를 「금을 두루 깔면 팔겠다」 하였다. 선시가 듣고 마음이 활짝 트여, 곧 곳간의 금을 내어 말대로 땅에 깔았다. 조금 채우지 못한 데가 있자 태자가 남겨 두기를 청하며 이르기를 「부처는 참으로 좋은 밭이니 마땅히 착한 씨를 심으리라」 하고, 곧 그 빈 땅에 정사를 세웠다. 세존이 그곳에 나아가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동산 땅은 선시가 산 것이요 숲의 나무는 서다가 베푼 것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공업을 높였으니, 이제부터 뒤로 마땅히 이 땅을 서다림 급고독원이라 하라」 하셨다.

7병든 비구를 씻기신 자리

給孤獨園東北有窣堵波,是如來洗病苾芻處。昔如來在世也,有病苾芻含苦獨處。世尊見而問曰:「汝何所苦?汝何獨居?」曰:「我性疏懶,不耐看病,故今嬰疾,無人瞻視。」如來是時湣而告曰:「善男子,我今看汝。」以手拊摩,病苦皆愈。扶出戶外,更易敷蓐,親為盥洗,改著新衣。佛語苾芻:「當自勤勵。」聞誨感恩,心悅身豫。

급고독원 동북쪽에 탑이 있으니 이는 여래가 병든 비구를 씻기신 자리다. 옛날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 병든 비구가 괴로움을 머금고 홀로 있었다. 세존이 보시고 물어 이르시기를 「너는 무엇이 괴로우냐. 너는 어찌 홀로 있느냐」 하시니, 이르기를 「제 성품이 성기고 게을러 병 보살피기를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병이 들었는데 돌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였다. 여래가 이때 가엾이 여겨 이르시기를 「착한 남자여, 내가 이제 너를 보살피겠다」 하시고, 손으로 어루만지시니 병의 괴로움이 다 나았다. 부축하여 문밖으로 내고 자리를 새로 갈며, 몸소 씻겨 새 옷으로 갈아입히셨다. 부처가 비구에게 이르시기를 「마땅히 스스로 부지런히 힘쓰라」 하시니, 가르침을 듣고 은혜에 감동하여 마음이 기쁘고 몸이 편안하였다.

8띠 하나를 들지 못한 신통

給孤獨園西北有小窣堵波,是沒特伽羅子運神通力舉舍利子衣帶不動之處。昔佛在無熱惱池,人天咸集,唯舍利子不時從會。佛命沒特伽羅往召來集。沒特伽羅承命而往,舍利子方補護法衣。沒特伽羅曰:「世尊今在無熱惱池,命我召爾。」舍利子曰:「且止,須我補竟,與子偕行。」沒特伽羅曰:「若不速行,欲運神力,舉爾石室至大會所。」舍利子乃解衣帶置地,曰:「若舉此帶,我身或動。」時沒特伽羅運大神通,舉帶不動,地為之震。因以神足還詣佛所,見舍利子已在會坐。沒特伽羅俯而嘆曰:「乃今以知神通之力不如智慧之力矣。」

급고독원 서북쪽에 작은 탑이 있으니, 이는 몰특가라자가 신통의 힘을 부려도 사리자의 옷 띠를 들어 움직이지 못한 자리다. 옛날 부처가 무열뇌지에 계실 때 사람과 하늘이 다 모였는데 오직 사리자만 때맞추어 모임에 오지 않았다. 부처가 몰특가라에게 명하여 가서 불러 오게 하셨다. 몰특가라가 명을 받들어 가니 사리자가 바야흐로 법의를 깁고 있었다. 몰특가라가 이르기를 「세존이 지금 무열뇌지에 계시며 나에게 그대를 부르라 하셨소」 하니, 사리자가 이르기를 「잠깐 그치시오. 내가 깁기를 마치기를 기다려 그대와 함께 가겠소」 하였다. 몰특가라가 이르기를 「만일 빨리 가지 않으면 신통의 힘을 부려 그대의 석실을 들어 큰 모임 자리로 옮기겠소」 하였다. 사리자가 이에 옷 띠를 풀어 땅에 놓고 이르기를 「이 띠를 들 수 있거든 내 몸도 혹 움직이리라」 하였다. 그때 몰특가라가 큰 신통을 부렸으나 띠를 들지 못하고 땅이 그 때문에 흔들렸다. 이에 신족으로 부처 계신 데로 돌아오니 사리자가 이미 모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몰특가라가 굽어보며 탄식하여 이르기를 「이제야 신통의 힘이 지혜의 힘만 못한 줄을 알겠다」 하였다.

9여래가 쓰시던 우물

舉帶窣堵波側不遠有井,如來在世,汲充佛用。其側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中有如來舍利。經行之跡,說法之處,並樹旌表,建窣堵波。冥祗警衛,靈瑞間起,或鼓天樂,或聞神香,景福之祥,難以備述。

띠를 든 탑 곁 멀지 않은 데 우물이 있으니,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 길어다 부처의 쓰임에 대었다. 그 곁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그 안에 여래의 사리가 있다. 거니신 자취와 법을 말씀하신 자리마다 다 표를 세우고 탑을 세웠다. 보이지 않는 신령이 지키고 신령한 상서가 이따금 일어나, 더러는 하늘 풍류를 울리고 더러는 신묘한 향내가 나니, 큰 복의 상서로움을 다 적기 어렵다.

10음녀를 죽여 부처를 헐뜯은 자리

伽藍後不遠,是外道梵志殺淫女以謗佛處。如來十力無畏,一切種智,人天宗仰,聖賢遵奉。時諸外道共相議曰:「宜行詭詐,眾中謗辱。」乃誘雇淫女,詐為聽法,眾所知已,密而殺之,埋屍樹側,稱怨告王。王命求訪,於逝多園得其屍焉。是時外道高聲唱言:「喬答摩大沙門常稱戒忍,今私此女,殺而滅口。既淫既殺,何戒何忍?」諸天空中隨聲唱道:「外道兇人為此謗耳。」

절 뒤 멀지 않은 데는 외도 범지가 음녀를 죽여 부처를 헐뜯은 자리다. 여래는 열 가지 힘과 두려움 없음과 온갖 종류의 지혜를 갖추어 사람과 하늘이 으뜸으로 우러르고 성현이 좇아 받들었다. 그때 여러 외도가 서로 의논하여 이르기를 「마땅히 속임수를 써서 뭇 사람 가운데서 헐뜯어 욕보이자」 하고, 이에 음녀를 꾀어 사서 법을 듣는 척하게 하였다. 여럿이 그것을 알게 된 뒤 남몰래 죽여 나무 곁에 묻고, 원통하다 일컬으며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찾아보라 명하니 서다원에서 그 주검을 얻었다. 이때 외도가 소리를 높여 외치기를 「교답마 큰 사문이 늘 계와 참음을 일컫더니, 이제 이 여자를 사사로이 하고 죽여 입을 막았다. 이미 음란하고 이미 죽였으니 무슨 계며 무슨 참음인가」 하였다. 여러 하늘이 허공에서 소리를 따라 외쳐 이르기를 「외도의 흉악한 사람이 이 헐뜯음을 지었을 뿐이다」 하였다.

11제바달다가 산 채로 떨어진 구덩이

伽藍東百餘步,有大深坑,是提婆達多欲以毒藥害佛,生身陷入地獄處。提婆達多,斛飯王之子也。精勤十二年,已誦持八萬法藏。後為利故,求學神通,親近惡友,共相議曰:「我相三十,減佛未幾;大眾圍繞,何異如來?」思惟是已,即事破僧。舍利子、沒特伽羅子奉佛指告,承佛威神,說法誨喻,僧復和合。提婆達多惡心不舍,以惡毒藥置指爪中,欲因作禮,以傷害佛。方行此謀,自遠而來,至於此也,地遂坼焉,生陷地獄。

절 동쪽 백여 걸음에 크고 깊은 구덩이가 있으니, 이는 제바달다가 독약으로 부처를 해치려다가 산 몸으로 지옥에 떨어진 자리다. 제바달다는 곡반왕의 아들이다. 열두 해를 부지런히 힘써 이미 팔만 법장을 외어 지녔다. 뒤에 이익을 위하여 신통 배우기를 구하고 나쁜 벗을 가까이하여 서로 의논해 이르기를 「내 모습이 서른이니 부처에게 모자란 것이 얼마 안 되고, 대중이 둘러싸니 여래와 무엇이 다른가」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승가를 깨는 일에 나섰다. 사리자와 몰특가라자가 부처의 이르심을 받들고 부처의 위엄과 신통을 이어 법을 말하여 타이르니 승가가 다시 화합하였다. 제바달다가 악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독한 약을 손톱 안에 넣어, 절을 하는 김에 부처를 다치게 하려 하였다. 바야흐로 이 꾀를 행하려고 멀리서 와 여기에 이르매 땅이 마침내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

협주 1

唐言天授。

당나라 말로는 천수다.

12구가리가 떨어진 구덩이

其南復有大坑,瞿伽梨苾芻毀謗如來,生身陷入地獄。

그 남쪽에 또 큰 구덩이가 있으니, 구가리 비구가 여래를 헐뜯어 산 몸으로 지옥에 떨어진 자리다.

13전차 바라문 여자가 떨어진 구덩이

瞿伽梨陷坑南八百餘步,有大深坑,是戰遮婆羅門女毀謗如來,生身陷入地獄之處。佛為人天說諸法要,有外道弟子,遙見世尊,大眾恭敬,便自念曰:「要於今日辱喬答摩,敗其善譽,當令我師獨擅芳聲。」乃懷系木盂,至給孤獨園,於大眾中揚聲唱曰:「此說法人與我私通,腹中之子乃釋種也。」邪見者莫不信然,貞固者知為訕謗。時天帝釋欲除疑故,化為白鼠,嚙斷盂系,系斷之聲震動大眾,凡諸見聞增深喜悅。眾中一人起持木盂,示彼女曰:「是汝兒耶?」是時也,地自開坼,全身墜陷,入無間獄,具受其殃。凡此三坑,洞無涯底,秋夏霖雨,溝池泛溢,而此深坑,嘗無水止。

구가리가 떨어진 구덩이 남쪽 팔백여 걸음에 크고 깊은 구덩이가 있으니, 이는 전차 바라문의 딸이 여래를 헐뜯어 산 몸으로 지옥에 떨어진 자리다. 부처가 사람과 하늘을 위해 여러 법의 요체를 말씀하시는데, 어떤 외도의 제자가 멀리서 세존을 보니 대중이 공경하고 있었다.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오늘 반드시 교답마를 욕보여 그 좋은 이름을 무너뜨리고, 우리 스승만이 홀로 꽃다운 이름을 누리게 하리라」 하고, 이에 나무 바리를 품고 끈으로 매고서 급고독원에 이르러 큰 무리 가운데서 소리를 높여 외치기를 「이 법을 말하는 사람이 나와 사사로이 통하였으니, 배 속의 아이가 곧 석가의 씨다」 하였다. 삿된 견해를 가진 이는 그럴싸하다 믿지 않는 이가 없었고, 곧고 굳은 이는 헐뜯음인 줄 알았다. 그때 천제석이 의심을 없애려고 흰 쥐로 변하여 바리를 맨 끈을 물어 끊었다.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대중을 흔들어, 무릇 보고 들은 이들이 기쁨을 더하였다.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 나무 바리를 들고 그 여자에게 보이며 이르기를 「이것이 네 아이냐」 하였다. 이때 땅이 절로 갈라져 온몸이 떨어져 무간지옥에 들어 그 앙갚음을 다 받았다. 무릇 이 세 구덩이는 뚫려 바닥이 없다. 가을과 여름 장맛비에 도랑과 못이 넘쳐도 이 깊은 구덩이에는 일찍이 물이 고인 적이 없다.

14하늘신 사당의 그림자와 정사의 그림자

伽藍東六七十步有一精舍,高六十餘尺,中有佛像,東面而坐。如來在昔於此與諸外道論議。次東有天祠,量等精舍。日旦流光,天祠之影不蔽精舍;日將落照,精舍之影遂覆天祠。

절 동쪽 예순일흔 걸음에 정사 하나가 있으니 높이가 육십여 자다. 그 안에 불상이 있어 동쪽을 보고 앉아 있다. 여래가 옛날 여기서 여러 외도와 논하셨다. 그 동쪽에 하늘신 사당가 있으니 크기가 정사와 같다. 해가 아침에 빛을 흘릴 때 하늘신 사당의 그림자는 정사를 가리지 못하고, 해가 지려고 비출 때에는 정사의 그림자가 마침내 하늘신 사당를 덮는다.

15사리자가 외도와 논한 자리

影覆精舍東三四里有窣堵波,是尊者舍利子與外道論議處。初,善施長者買逝多太子園,欲為如來建立精舍,時尊者舍利子隨長者而瞻揆,外道六師求角神力,舍利子隨事攝化,應物降伏。

그림자가 덮는 정사 동쪽 서너 리에 탑이 있으니, 이는 존자 사리자가 외도와 논한 자리다. 처음에 선시 장자가 서다 태자의 동산을 사서 여래를 위해 정사를 세우려 할 때, 존자 사리자가 장자를 따라가 살펴 헤아렸다. 외도 여섯 스승이 신통의 힘으로 겨루기를 구하니, 사리자가 일에 따라 거두어 교화하고 사물에 응하여 항복받았다.

16외도를 꺾고 청을 받으신 자리

其側精舍前建窣堵波,如來於此摧諸外道,又受毗舍佉母請。

그 곁 정사 앞에 탑을 세웠으니, 여래가 여기서 여러 외도를 꺾으시고 또 비사거 어머니의 청을 받으신 자리다.

17마른나무 아래에서 군사를 돌린 자리

受請窣堵波南,是毗盧擇迦王興甲兵誅釋種,至此見佛歸兵之處。毗盧擇迦王嗣位之後,追怨前辱,興甲兵,動大眾,部署已畢,申命方行。時有苾芻聞以白佛,世尊於是坐枯樹下。毗盧擇迦王遙見世尊,下乘禮敬,退而言曰:「茂樹扶疏,何故不坐?枯株朽蘗,而乃遊止?」世尊告曰:「宗族者,枝葉也。枝葉將危,庇蔭何在?」王曰:「世尊為宗親耳,可以回駕。」於是睹聖感懷,還軍返國。

청을 받으신 탑 남쪽은 비로택가왕이 군사를 일으켜 석가의 씨를 베려다가 여기에 이르러 부처를 뵙고 군사를 돌린 자리다. 비로택가왕이 자리를 이은 뒤에 지난날의 욕을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큰 무리를 움직여, 부서를 다 짜고 명을 펴 바야흐로 가려 하였다. 그때 어떤 비구가 듣고 부처께 아뢰니, 세존이 이에 마른나무 아래에 앉으셨다. 비로택가왕이 멀리서 세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예를 올린 뒤 물러나 여쭈기를 「무성한 나무가 우거졌는데 어찌 앉지 않으시고, 마른 등걸과 썩은 그루에 노닐어 머무십니까」 하니, 세존이 이르시기를 「겨레붙이는 가지와 잎이다. 가지와 잎이 위태로우려 하니 그늘이 어디 있겠느냐」 하셨다. 왕이 이르기를 「세존이 겨레를 위하실 뿐이니, 수레를 돌리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거룩한 이를 뵙고 마음이 움직여 군사를 돌려 나라로 돌아갔다.

협주 1

舊曰毗流離王,訛也。

옛적에는 비류리왕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18석가족 여인들이 죽은 자리

還軍之側,有窣堵波,是釋女被戮處。毗盧擇迦王誅釋克勝,簡五百女充實宮闈。釋女憤恚,怨言不遜,詈其王「家人之子也」。王聞發怒,命令誅戮。執法者奉王教,刖其手足,投諸坑阱。時諸釋女含苦稱佛,世尊聖鑒,照其苦毒,告命苾芻,攝衣而往,為諸釋女說微妙法,所謂羈纏五欲,流轉三途,恩愛別離,生死長遠。時諸釋女聞佛指誨,遠塵離垢,得法眼凈,同時命終,俱生天上。時天帝釋化作婆羅門,收骸火葬。後人記焉。

군사를 돌린 자리 곁에 탑이 있으니 이는 석가의 여인들이 죽임을 당한 자리다. 비로택가왕이 석가를 쳐 이기고, 오백 여인을 가려 궁궐을 채웠다. 석가의 여인들이 성내어 원망하는 말이 공손하지 않아, 그 왕을 「종의 자식」이라 꾸짖었다. 왕이 듣고 노하여 죽이라 명하였다. 법을 맡은 이가 왕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 손과 발을 자르고 구덩이에 던졌다. 그때 여러 석가의 여인들이 괴로움을 머금고 부처를 일컬으니, 세존이 거룩히 살피시어 그 괴로움과 아픔을 비추시고, 비구들에게 명하여 옷을 여미고 가시어 여러 석가의 여인들을 위해 미묘한 법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다섯 가지 하고자 함에 얽매이면 세 갈래 길에 굴러 흐르고, 은혜와 사랑은 헤어지며 나고 죽음이 아득히 멀다는 것이었다. 그때 여러 석가의 여인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맑아졌으며, 한꺼번에 목숨을 마치고 다 함께 하늘에 났다. 그때 천제석이 바라문으로 변하여 뼈를 거두어 불살라 장사 지냈다. 뒷사람이 이를 적어 두었다.

19비로택가왕이 땅에 빠진 자리

誅釋窣堵波側不遠,有大涸池,是毗盧擇迦王陷身入地獄處。世尊觀釋女已,還給孤獨園,告諸苾芻:「今毗盧擇迦王卻後七日,為火所燒。」王聞佛記,甚懷惶懼。至第七日,安樂無危。王用歡慶,命諸宮女往至池側,娛遊樂飲。猶懼火起,鼓棹清流,隨波泛濫。熾焰飆發,焚輕舟,墜王身,入無間獄,備受諸苦。

석가를 벤 탑 곁 멀지 않은 데 크게 마른 못이 있으니, 이는 비로택가왕이 몸이 빠져 지옥에 들어간 자리다. 세존이 석가의 여인들을 살피시고 급고독원으로 돌아와 여러 비구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비로택가왕이 이레 뒤에 불에 탈 것이다」 하셨다. 왕이 부처의 예언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이레째에 이르러 편안하여 위태로움이 없자, 왕이 기뻐하여 여러 궁녀에게 명해 못가에 가서 놀며 즐기고 마시게 하였다. 그래도 불이 일까 두려워 맑은 흐름에 노를 저어 물결을 따라 떠다녔다. 세찬 불꽃이 회오리처럼 일어나 가벼운 배를 태우고 왕의 몸을 떨어뜨려 무간지옥에 들게 하니, 온갖 괴로움을 다 받았다.

20눈을 얻은 숲

伽藍西北三四里,至得眼林。有如來經行之跡,諸聖習定之所,並樹封記,建窣堵波。昔此國群盜五百,橫行邑里,跋扈城國。勝軍王捕獲已,抉去其眼,棄於深林。群盜苦逼,求哀稱佛。是時如來在逝多精舍,聞悲聲,起慈心,清風和暢,吹雪山藥,滿其眼已,尋得復明。而見世尊在其前住,發菩提心,歡喜頂禮,投杖而去,因植根焉。

절 서북쪽 서너 리에 득안림에 이른다. 여래가 거니신 자취와 여러 성인이 선정을 익힌 자리가 있어, 다 표를 세워 적고 탑을 세웠다. 옛날 이 나라의 도적 무리 오백이 마을을 함부로 다니며 성과 나라에 발호하였다. 승군왕이 잡아서 그 눈을 뽑고 깊은 숲에 버렸다. 도적 무리가 괴로움에 몰려 슬피 빌며 부처를 일컬었다. 이때 여래가 서다정사에 계시다가 슬픈 소리를 들으시고 자애로운 마음을 내시니, 맑은 바람이 화창하게 불어 설산의 약을 날려 그 눈에 채우매 이내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세존이 그 앞에 서 계신 것을 보고 보리의 마음을 내어 기뻐하며 이마를 조아려 절하고, 지팡이를 던지고 갔는데 그로 말미암아 뿌리가 내렸다.

21가섭파 부처가 나신 성

大城西北六十餘里有故城,是賢劫中人壽二萬歲時,迦葉波佛本生城也。城南有窣堵波,成正覺已初見父處。城北有窣堵波,有迦葉波佛全身舍利。並無憂王所建也。

큰 성 서북쪽 육십여 리에 옛 성이 있으니, 이는 현겁 가운데 사람의 수명이 이만 살이던 때에 가섭파 부처가 나신 성이다. 성 남쪽에 탑이 있으니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뒤 처음으로 아버지를 뵌 자리다. 성 북쪽에 탑이 있으니 가섭파 부처의 온몸 사리가 있다. 다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從此東南行五百餘里,至劫比羅伐窣堵國

여기서 동남쪽으로 오백여 리를 가면 겁비라벌솔도국에 이른다.

협주 1

舊曰迦毗羅衛國,訛也。中印度境。

옛적에는 가비라위국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중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