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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비라벌솔도국劫比羅伐窣堵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17 · 한자 2,326자 · 낭독 9.3분

「대당서역기」 제6권 「겁비라벌솔도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劫比羅伐窣堵國周四千餘里。空城十數,荒蕪已甚。王城頹圮,周量不詳。其內宮城周十四五里,壘磚而成,基址峻固。空荒久遠,人里稀曠,無大君長,城各立主。土地良沃,稼穡時播。氣序無愆,風俗和暢。伽藍故基千有餘所,而宮城之側有一伽藍,僧徒三十餘人,習學小乘正量部教。天祠兩所,異道雜居。

겁비라벌솔도국은 둘레가 사천여 리다. 빈 성이 열 남짓이요 거칠어짐이 이미 심하다. 왕성이 무너져 둘레와 크기를 자세히 알 수 없다. 그 안 궁성은 둘레가 열네댓 리인데 벽돌을 쌓아 지었고 터가 높고 굳다. 비고 거칠어진 지 오래고 멀어 사람 사는 마을이 드물고 성기며, 큰 임금이 없이 성마다 저마다 주인을 세웠다. 땅이 좋고 기름져 심고 거두기를 때맞추어 한다. 기후에 어그러짐이 없고 풍속이 화창하다. 절의 옛터가 천여 곳인데, 궁성 곁에 절 하나가 있어 승려가 삼십여 명이요 소승 정량부의 가르침을 익혀 배운다. 하늘신 사당가 둘이요 외도가 섞여 산다.

2정반왕의 궁터와 마야 부인의 침전

宮城內有故基,凈飯王正殿也。上建精舍,中作王像。其側不遠有故基,摩訶摩耶。夫人寢殿也。上建精舍,中作夫人之像。其側精舍,是釋迦菩薩降神母胎處,中有菩薩降神之像。上座部菩薩以嗢呾羅頞沙荼月三十日夜降神母胎,當此五月十五日;諸部則以此月二十三日夜降神母胎,當此五月八日。

궁성 안에 옛터가 있으니 정반왕의 정전이다. 위에 정사를 세우고 그 안에 왕의 상을 만들었다. 그 곁 멀지 않은 데 옛터가 있으니 마하마야 부인의 침전이다. 위에 정사를 세우고 그 안에 부인의 상을 만들었다. 그 곁 정사는 석가보살이 신을 내려 어머니 태에 드신 자리로, 그 안에 보살이 신을 내리시는 상이 있다. 상좌부는 보살이 올달라알사다월 삼십일 밤에 신을 내려 어머니 태에 드셨다 하니 이곳의 오월 십오일에 해당하고, 여러 부는 이 달 이십삼일 밤에 신을 내려 어머니 태에 드셨다 하니 이곳의 오월 팔일에 해당한다.

협주 1

唐言大術

당나라 말로는 대술이다.

3아사타 선인이 태자의 상을 보다

菩薩降神東北有窣堵波,阿私多仙相太子處。菩薩誕靈之日,嘉祥輻湊。時凈飯王召諸相師而告之曰:「此子生也,善惡何若?宜悉乃心,明言以對。」曰:「依先聖之記,考吉祥之應,在家作轉輪聖王,舍家當成等正覺。」是時阿私多仙自遠而至,叩門請見。王甚慶悅,躬迎禮敬,請就寶座,曰:「不意大仙今日降顧。」仙曰:「我在天宮安居宴坐,忽見諸天群從蹈舞,我時問言:『何悅豫之甚也?』曰:『大仙當知,贍部洲中釋種凈飯王第一夫人今產太子,當證三菩提,圓明一切智。』我聞是語,故來瞻仰。所悲朽耄,不遭聖化。」

보살이 신을 내리신 자리 동북쪽에 탑이 있으니 아사타 선인이 태자의 상을 본 자리다. 보살이 신령히 태어나신 날에 아름다운 상서가 바퀴살처럼 모여들었다. 그때 정반왕이 여러 상 보는 이를 불러 이르기를 「이 아이가 났으니 좋고 나쁨이 어떠한가.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밝게 말해 답하라」 하니, 이르기를 「앞선 성인의 기록에 따라 길한 상서의 응함을 살피건대, 집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되고 집을 떠나면 마땅히 바른 깨달음을 이루겠습니다」 하였다. 이때 아사타 선인이 먼 데서 이르러 문을 두드리고 뵙기를 청하였다. 왕이 몹시 기뻐 몸소 맞아 예를 올리고 보배 자리에 나아가기를 청하며 이르기를 「뜻밖에 큰 선인께서 오늘 굽어보아 주십니다」 하였다. 선인이 이르기를 「내가 하늘 궁에 편안히 머물러 고요히 앉았는데, 홀연히 여러 하늘 무리가 좇아 춤추는 것을 보고 그때 물어 이르기를 『무엇이 이토록 기쁜가』 하였습니다. 이르기를 『큰 선인은 아소서. 섬부주 가운데 석가 겨레 정반왕의 첫째 부인이 이제 태자를 낳으니, 마땅히 바른 깨달음을 얻어 온갖 지혜를 두렷이 밝히리라』 하였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그래서 우러러보러 왔습니다. 슬픈 것은 늙어 삭아 거룩한 교화를 만나지 못하는 일입니다」 하였다.

4코끼리를 던진 자리

城南門有窣堵波,是太子與諸釋角力擲象之處。太子伎藝多能,獨拔倫匹。凈飯大王懷慶將返,仆夫馭象,方欲出城,提婆達多素負強力,自外而入,問馭者曰:「嚴駕此象,其誰欲乘?」曰:「太子將還,故往奉馭。」提婆達多發憤引象,批其顙,蹴其臆,僵仆塞路,杜絕行途,無能轉移,人眾填塞。難陁後至,而問之曰:「誰死此象?」曰:「提婆達多。」即曳之僻路。太子至,又問曰:「誰為不善,害此象耶?」曰:「提婆達多害以杜門,難陁引之開徑。」太子乃舉象高擲,越度城塹,其象墮地,為大深坑,土俗相傳為象墮坑也。其側精舍中作太子像。其側又有精舍,太子妃寢宮也,中作耶輸陁羅,並有羅怙羅像。宮側精舍作受業之像,太子學堂故基也。

성 남문에 탑이 있으니 이는 태자가 여러 석가 사람과 힘을 겨루어 코끼리를 던진 자리다. 태자는 재주와 기예에 능한 것이 많아 홀로 무리에서 빼어났다. 정반대왕이 기쁨을 품고 돌아가려 하매 마부가 코끼리를 몰아 바야흐로 성을 나서려 하는데, 제바달다가 본디 힘이 세다고 자부하여 밖에서 들어오다가 마부에게 물어 이르기를 「이 코끼리에 멍에를 매었으니 그 누가 타려 하는가」 하니, 이르기를 「태자가 돌아가시려 하므로 가서 몰아 받들려 합니다」 하였다. 제바달다가 성을 내어 코끼리를 끌어당겨 그 이마를 치고 그 가슴을 차니, 넘어져 길을 막아 다니는 길이 끊겼는데 아무도 옮기지 못하여 사람들이 가득 메웠다. 난타가 뒤에 이르러 물어 이르기를 「누가 이 코끼리를 죽였는가」 하니, 이르기를 「제바달다입니다」 하였다. 곧 끌어 한쪽 길로 옮겼다. 태자가 이르러 또 물어 이르기를 「누가 착하지 못한 짓을 하여 이 코끼리를 해쳤는가」 하니, 이르기를 「제바달다가 해쳐 문을 막았고 난타가 끌어 길을 열었습니다」 하였다. 태자가 이에 코끼리를 들어 높이 던지니 성의 해자를 넘어갔고, 그 코끼리가 땅에 떨어져 크고 깊은 구덩이가 되었다. 그 고장에서 서로 전하여 코끼리가 떨어진 구덩이라 한다. 그 곁 정사 안에 태자의 상을 만들었다. 그 곁에 또 정사가 있으니 태자비의 침궁이다. 그 안에 야수타라의 상을 만들었고 아울러 라후라의 상이 있다. 궁 곁 정사에는 배움을 받는 상을 만들었으니 태자가 배우던 집의 옛터다.

5성을 넘으신 자리

城東南隅有一精舍,中作太子乘白馬淩虛之像,是逾城處也。

성 동남쪽 모퉁이에 정사 하나가 있으니, 그 안에 태자가 흰 말을 타고 허공을 넘는 상을 만들었다. 이는 성을 넘으신 자리다.

6네 문에서 보신 것

城四門外各有精舍,中作老、病、死人、沙門之像,是太子遊觀,睹相增懷,深厭塵俗,於此感悟,命仆回駕。

성의 네 문 밖에 각각 정사가 있어 그 안에 늙은이와 병든 이와 죽은 사람과 사문의 상을 만들었다. 이는 태자가 노닐며 보다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더하여, 티끌 같은 세속을 깊이 싫어하고 여기서 느껴 깨달아 마부에게 수레를 돌리라 명하신 자리다.

7가라가촌타 부처가 나신 성

城南行五十餘里,至故城,有窣堵波,是賢劫中人壽六萬歲時迦羅伽村馱佛本生城也。城南不遠有窣堵波,成正覺已見父之處。城東南窣堵波,有彼如來遺身舍利。前建石柱,高三十餘尺,上刻師子之像,傍記寂滅之事,無憂王建焉。

성 남쪽으로 오십여 리를 가면 옛 성에 이르는데 탑이 있으니, 이는 현겁 가운데 사람의 수명이 육만 살이던 때에 가라가촌타 부처가 나신 성이다. 성 남쪽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뒤 아버지를 뵌 자리다. 성 동남쪽 탑에는 그 여래의 남기신 몸의 사리가 있다. 앞에 돌기둥을 세웠으니 높이가 삼십여 자요 위에 사자의 상을 새겼으며, 곁에 고요히 사라지신 일을 적었다.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8가낙가모니 부처가 나신 성

迦羅迦村馱佛城東北行三十餘里,至故大城,中有窣堵波,是賢劫中人壽四萬歲時,迦諾迦牟尼佛本生城也。東北不遠有窣堵波,成正覺已度父之處。次北窣堵波,有彼如來遺身舍利。前建石柱,高二十餘尺,上刻師子之像,傍記寂滅之事,無憂王之所建也。

가라가촌타 부처의 성 동북쪽으로 삼십여 리를 가면 옛 큰 성에 이르는데 그 안에 탑이 있으니, 이는 현겁 가운데 사람의 수명이 사만 살이던 때에 가낙가모니 부처가 나신 성이다. 동북쪽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뒤 아버지를 건지신 자리다. 그 북쪽 탑에는 그 여래의 남기신 몸의 사리가 있다. 앞에 돌기둥을 세웠으니 높이가 이십여 자요 위에 사자의 상을 새겼으며, 곁에 고요히 사라지신 일을 적었다.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9나무 그늘에서 밭갈이를 보시다

城東北四十餘里,有窣堵波,是太子坐樹陰,觀耕田,於此習定,而得離欲。凈飯王見太子坐樹陰,入寂定,日光回照,樹影不移,心知靈聖,更深珍敬。

성 동북쪽 사십여 리에 탑이 있으니, 이는 태자가 나무 그늘에 앉아 밭갈이를 보다가 여기서 선정을 익혀 하고자 함을 여읜 자리다. 정반왕이 태자가 나무 그늘에 앉아 고요한 선정에 든 것을 보았는데, 햇빛이 돌아 비쳐도 나무 그림자가 옮기지 않았다. 마음으로 신령하고 거룩한 줄 알고 더욱 깊이 소중히 여기고 공경하였다.

10석가족이 죽임을 당한 자리

大城西北,有數百千窣堵波,釋種誅死處也。毗戶擇迦王既克諸釋,虜其族類,得九千九百九十萬人,並從殺戮,積屍如莽,流血成池。天警人心,收骸瘞葬。

큰 성 서북쪽에 수백 수천의 탑이 있으니 석가의 씨가 죽임을 당한 자리다. 비로택가왕이 여러 석가를 이기고 그 겨레붙이를 사로잡아 구천구백구십만 사람을 얻어 다 죽이니, 주검이 쌓여 덤불 같고 흐르는 피가 못을 이루었다. 하늘이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 뼈를 거두어 묻어 장사 지냈다.

11군사를 막은 네 사람

誅釋西南,有四小窣堵波,四釋種拒軍處。初,勝軍王嗣位也,求婚釋種。釋種鄙其非類,謬以家人之女,重禮娉焉。勝軍王立為正後,其產子男,是為毗盧擇迦王。毗盧擇迦王欲就舅氏請益受業,至此城南,見新講堂,即中憩駕。諸釋聞之,逐而詈曰:「卑賤婢子,敢居此室!此室諸釋建也,擬佛居焉。」毗盧擇迦嗣位之後,追復前辱,便興甲兵,至此屯軍。釋種四人躬耕畎畝,便即抗拒。兵寇退散,已而入城。族人以為承輪王之祚胤,為法王之宗子,敢行兇暴,安忍殺害,汙辱宗門,絕親遠放。四人被逐,北趣雪山,一為烏仗那國王,一為梵衍那國王,一為呬摩呾羅國王,一為商彌國王,奕世傳業,苗裔不絕。

석가를 벤 자리 서남쪽에 작은 탑 넷이 있으니 석가의 씨 네 사람이 군사를 막은 자리다. 처음에 승군왕이 자리를 이었을 때 석가의 씨에게 혼인을 구하였다. 석가의 씨가 그 무리가 아님을 낮추어 보아, 속여서 집안 사람의 딸을 무거운 예로 시집보냈다. 승군왕이 세워 바른 왕후로 삼으니 그가 아들을 낳았고 이가 비로택가왕이다. 비로택가왕이 외가에 나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배움을 받으려 하여 이 성 남쪽에 이르렀다가 새로 지은 강당을 보고 곧 그 안에서 수레를 쉬었다. 여러 석가가 듣고 쫓아내며 꾸짖어 이르기를 「낮고 천한 종의 자식이 감히 이 집에 있는가. 이 집은 여러 석가가 지은 것이요 부처가 계실 자리로 삼은 것이다」 하였다. 비로택가가 자리를 이은 뒤에 지난날의 욕을 갚으려고 곧 군사를 일으켜 여기에 이르러 진을 쳤다. 석가의 씨 네 사람이 몸소 밭을 갈다가 곧 맞서 막으니 군사와 도적이 물러나 흩어졌고, 이윽고 성에 들어왔다. 겨레 사람들이 이르기를, 전륜왕의 복을 이은 자손이요 법왕의 맏아들로서 감히 흉악하고 사나운 짓을 행하고 죽이고 해치기를 차마 하여 가문을 더럽혔다 하여, 친함을 끊고 멀리 내쳤다. 네 사람이 쫓겨나 북쪽 설산으로 가서, 하나는 오장나국의 왕이 되고 하나는 범연나국의 왕이 되고 하나는 희마달라국의 왕이 되고 하나는 상미국의 왕이 되어, 대대로 업을 전하여 후손이 끊이지 않았다.

12부처가 아버지를 뵈러 돌아오시다

城南三四里尼拘律樹林有窣堵波,無憂王建也。釋迦如來成正覺已,還國見父王為說法處。凈飯王知如來降魔軍已,遊行化導,情懷渴仰,思得禮敬。乃命使請如來曰:「昔期成佛,當還本生。斯言在耳,時來降趾。」使至佛所,具宣王意。如來告曰:「卻後七日,當還本生。」使臣還以白王,凈飯王乃告命臣庶掃灑衢路,儲積香花,與諸群臣四十里外佇駕奉迎。是時如來與大眾俱,八金剛周衛,四天王前導,帝釋與欲界天侍左,梵王與色界天侍右,諸苾芻僧列在其後。維佛在眾,如月映星,威神動三界,光明逾七曜,步虛空,至本生國。王與從臣禮敬已畢,俱共還國,止尼拘盧陁僧伽藍。其側不遠有窣堵波,是如來於大樹下,東面而坐,受姨母金縷袈裟。次此窣堵波,是如來於此度八王子及五百釋種處。

성 남쪽 서너 리 니구율 나무 숲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석가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뒤 나라로 돌아와 아버지 왕을 뵙고 법을 말씀하신 자리다. 정반왕이 여래가 마군을 항복받고 두루 다니며 교화해 이끄신 줄 알고, 마음에 목마르게 우러러 예를 올리기를 바랐다. 이에 사자를 보내 여래께 청하여 이르기를 「옛날 부처를 이루면 마땅히 나신 곳으로 돌아오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귀에 있으니 때가 되었으매 걸음을 내려 주소서」 하였다. 사자가 부처 계신 데 이르러 왕의 뜻을 갖추어 아뢰니, 여래가 이르시기를 「이레 뒤에 마땅히 나신 곳으로 돌아가겠다」 하셨다. 사신이 돌아와 왕에게 아뢰니, 정반왕이 이에 신하와 백성에게 명하여 거리를 쓸고 물 뿌리며 향과 꽃을 쌓아 두게 하고, 여러 신하와 함께 사십 리 밖에서 수레를 기다려 받들어 맞이하였다. 이때 여래가 큰 무리와 함께 오시는데, 여덟 금강이 두루 지키고 사천왕이 앞에서 이끌며, 제석이 욕계의 하늘과 함께 왼쪽에서 모시고 범왕이 색계의 하늘과 함께 오른쪽에서 모시며, 여러 비구 승가가 그 뒤에 벌여 섰다. 오직 부처만이 무리 가운데 계시니 달이 별을 비추는 듯하였다. 위엄과 신통이 삼계를 움직이고 밝은 빛이 일곱 별을 넘었으며, 허공을 걸어 나신 나라에 이르셨다. 왕과 따르는 신하가 예를 올려 마치고 함께 나라로 돌아와 니구로타 절에 머물렀다. 그 곁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이는 여래가 큰 나무 아래에서 동쪽을 보고 앉아 이모의 금실 가사를 받으신 자리다. 이 탑 다음은 여래가 여기서 여덟 왕자와 오백 석가의 씨를 건지신 자리다.

13돌 천상이 일어나 태자를 맞다

城東門內路左有窣堵波,昔一切義成太子於此習諸技藝。門外有自在天祠,祠中石天像,危然起勢,是太子在繈褓中所入祠也。凈飯王自臘伐尼園迎太子還也,途次天祠。王曰:「此天祠多靈鑒,諸釋童稚求祐必效,宜將太子至彼修敬。」是時傅母抱而入祠,其石天像起迎太子,太子已出,天像復坐。

성 동문 안 길 왼편에 탑이 있으니, 옛날 일체의성 태자가 여기서 여러 재주와 기예를 익혔다. 문 밖에 자재하늘신 사당가 있고 사당 안에 돌로 만든 천상이 있어 우뚝 일어서는 형세인데, 이는 태자가 포대기에 싸였을 때 들어간 사당이다. 정반왕이 납벌니 동산에서 태자를 맞아 돌아올 때 길에 하늘신 사당가 있었다. 왕이 이르기를 「이 하늘신 사당는 신령한 살핌이 많아 여러 석가의 어린아이들이 도움을 구하면 반드시 응한다. 마땅히 태자를 저기 데려가 공경을 닦게 하라」 하였다. 이때 보모가 안고 사당에 드니 그 돌 천상이 일어나 태자를 맞이하였고, 태자가 나가자 천상이 다시 앉았다.

14화살이 뚫어 솟은 샘

城南門外路左有窣堵波,是太子與諸釋角藝,射鐵鼓。從此東南三十餘里,有小窣堵波,其側有泉,泉流澄鏡,是太子與諸釋引強校能,弦矢既分,穿鼓過表,至地沒羽,因湧清流。時俗相傳,謂之箭泉。夫有疾病,飲沐多愈。遠方之人持泥以歸,隨其所苦,漬以塗額,靈神冥衛,多蒙痊愈。

성 남문 밖 길 왼편에 탑이 있으니, 이는 태자가 여러 석가 사람과 재주를 겨루어 쇠북을 쏜 자리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삼십여 리에 작은 탑이 있고 그 곁에 샘이 있으니, 샘의 흐름이 맑아 거울 같다. 이는 태자가 여러 석가 사람과 활을 당겨 재주를 견줄 때, 시위와 화살이 갈리자 북을 뚫고 표적을 지나 땅에 이르러 깃까지 묻혔고 그로 말미암아 맑은 흐름이 솟은 자리다. 그때 풍속이 서로 전하여 화살 샘이라 한다. 무릇 병이 있는 이가 마시고 씻으면 낫는 일이 많다. 먼 데 사람이 진흙을 가지고 돌아가 그 괴로운 데에 따라 적셔 이마에 바르면, 신령이 보이지 않게 지켜 낫는 일이 많다.

15람비니 — 태자가 나신 자리

箭泉東北行八九十里,至臘伐尼林,有釋種浴池。澄清皎鏡,雜花彌漫。其北二十四五步,有無憂花樹,今已枯悴,菩薩誕靈之處。菩薩以吠舍佉月後半八日,當此三月八日;上座部則曰以吠舍佉月後半十五日,當此三月十五日。次東窣堵波,無憂王所建,二龍浴太子處也。菩薩生已,不扶而行於四方各七步,而自言曰:「天上天下,唯吾獨尊。今茲而往,生分已盡。」隨足所蹈,出大蓮花。二龍踴出,住虛空中,而各吐水,一冷一暖,以浴太子。浴太子窣堵波東,有二清泉,傍建二窣堵波,是二龍從地踴出之處。菩薩生已,支屬宗親莫不奔馳,求水盥浴。夫人之前,二泉湧出,一冷一暖,遂以浴洗。其南窣堵波,是天帝釋捧接菩薩處。菩薩初出胎也,天帝釋以妙天衣,跪接菩薩。次有四窣堵波,是四天王抱持菩薩處也。菩薩從右脅生已,四大天王以金色氎衣捧菩薩,置金機上。至母前曰:「夫人誕斯福子,誠可歡慶。諸天尚喜,況世人乎?」

화살 샘 동북쪽으로 팔구십 리를 가면 납벌니 숲에 이르는데 석가의 씨가 목욕하던 못이 있다. 맑고 깨끗하여 밝은 거울 같고 온갖 꽃이 널리 퍼졌다. 그 북쪽 스물너덧 걸음에 무우화 나무가 있으니 이제는 이미 말라 시들었는데, 보살이 신령히 태어나신 자리다. 보살은 폐사거월 후반 팔일에 나셨으니 이곳의 삼월 팔일에 해당하고, 상좌부는 폐사거월 후반 십오일이라 하니 이곳의 삼월 십오일에 해당한다. 그 동쪽 탑은 무우왕이 세운 것으로 두 용이 태자를 목욕시킨 자리다. 보살이 나시매 붙들지 않고도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스스로 이르시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홀로 높다. 이제부터 가면 나고 죽는 몫이 이미 다하였다」 하셨다. 발이 밟는 데를 따라 큰 연꽃이 났다. 두 용이 솟아 나와 허공에 머물러 저마다 물을 뿜었는데 하나는 차고 하나는 따뜻하여 태자를 목욕시켰다. 태자를 목욕시킨 탑 동쪽에 맑은 샘 둘이 있고 곁에 탑 둘을 세웠으니, 이는 두 용이 땅에서 솟아 나온 자리다. 보살이 나시매 겨레와 친척이 달려가 물을 구해 씻기려 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부인 앞에 샘 둘이 솟아 하나는 차고 하나는 따뜻하여 마침내 그것으로 씻겼다. 그 남쪽 탑은 천제석이 보살을 받들어 안은 자리다. 보살이 처음 태에서 나오시매 천제석이 묘한 하늘 옷으로 무릎 꿇고 보살을 받았다. 다음에 탑 넷이 있으니 이는 사천왕이 보살을 안아 모신 자리다. 보살이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오시매 네 큰 천왕이 금빛 고운 옷으로 보살을 받들어 금 안석 위에 놓고 어머니 앞에 이르러 이르기를 「부인이 이 복된 아들을 낳으셨으니 참으로 기뻐하고 하례할 만합니다. 여러 하늘도 오히려 기뻐하거늘 하물며 세상 사람이겠습니까」 하였다.

16말을 새긴 돌기둥과 기름 강

四天王捧太子窣堵波側不遠,有大石柱,上作馬像,天憂王之所建也。後為惡龍霹靂,其柱中折仆地。傍有小河,東南流,土俗號曰油河。是摩耶夫人產孕已,天化此池,光潤澄凈,欲令夫人取以沐浴,除去風虛。今變為水,其流尚膩。

사천왕이 태자를 받든 탑 곁 멀지 않은 데 큰 돌기둥이 있어 위에 말의 상을 만들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저본에는 「천우왕」으로 되어 있으나 무우왕의 잘못이다). 뒤에 사나운 용의 벼락을 맞아 그 기둥이 가운데서 꺾여 땅에 넘어졌다. 곁에 작은 강이 있어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그 고장에서 기름 강이라 부른다. 이는 마야 부인이 아이를 낳으신 뒤 하늘이 이 못을 만들어, 빛나고 윤나며 맑고 깨끗하게 하여 부인이 그것으로 목욕해 바람과 허함을 없애게 하려 한 것이다. 이제는 물로 바뀌었으나 그 흐름이 아직도 미끄럽다.

從此東行曠野荒林中二百餘里,至藍摩國。

여기서 동쪽으로 넓은 들과 거친 숲 가운데 이백여 리를 가면 남마국에 이른다.

협주 1

中印度境。

중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