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대당서역기 › 제7권

전주국戰主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9 · 한자 959자 · 낭독 3.8분

「대당서역기」 제7권 「전주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戰主國周二千餘里,都城臨殑伽河,周十餘里。居人豐樂,邑里相鄰。土地膏腴,稼穡時播。氣序和暢,風俗淳質,人性獷烈,邪正兼信。伽藍十餘所,僧徒減千人,並皆遵習小乘教法。天祠二十,異道雜居。

전주국은 둘레가 이천여 리요 도성은 긍가하에 임하였고 둘레가 십여 리다. 사는 사람이 넉넉하고 즐거우며 고을과 마을이 서로 이웃한다. 땅이 기름져 심고 거두기를 때맞추어 한다. 기후가 화창하고 풍속이 순박하고 질박하며 사람의 성품이 거칠고 매섭다. 삿된 것과 바른 것을 아울러 믿는다. 절이 십여요 승려가 천 명에 조금 못 미치는데 모두 소승의 가르침과 법을 좇아 익힌다. 하늘신 사당가 스물이요 외도가 섞여 산다.

大城西北伽藍中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印度記》曰:此中有如來舍利一升。昔者世尊嘗於此處,七日之中,為天人眾顯說妙法。其側則有過去三佛坐及經行遺跡之處。鄰此復有慈氏菩薩像,形量雖小,威神嶷然,靈鑒潛通,奇跡間起。

큰 성 서북쪽 절 안의 탑은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인도기』에 이르기를 「이 안에 여래의 사리 한 되가 있다」 하였다. 옛날 세존이 일찍이 이곳에서 이레 동안 하늘과 사람의 무리를 위해 묘한 법을 드러내 말씀하셨다. 그 곁에는 지나간 세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가 있다. 이에 잇대어 또 자씨보살의 상이 있으니, 모습과 크기는 비록 작으나 위엄과 신통이 우뚝하여 신령한 비춤이 남몰래 통하고 기이한 자취가 이따금 일어난다.

3귀 안 뚫은 절

大城東行二百餘里,至阿避陁羯剌拿僧伽藍。周垣不廣,雕飾甚工,花池交影,臺閣連甍,僧徒肅穆,眾儀癢序。聞諸先志曰:昔大雪山北睹貨邏國有樂學沙門,二三同志禮誦餘閑,每相謂曰:「妙理幽玄,非言談所究。聖跡昭著,可足趾所尋。宜詢莫逆,親觀聖跡。」於是二三交友杖錫同遊。既至印度,寓諸伽藍,輕其邊鄙,莫之見舍。外迫風露,內累口腹,顏色憔悴,形容枯槁。時此國王出遊近效,見諸客僧,怪而問曰:「何方乞士?何所因來?耳既不穿,衣又垢弊。」沙門對曰:「我,睹貨邏國人也。恭承遺教,高蹈俗塵,率其同好,觀禮聖跡。慨以薄福,眾所同棄,印度沙門,莫顧羈旅。欲還本土,巡禮未周,雖迫勤苦,心遂後已。」王聞其說,用增悲感,即斯勝地,建立伽藍,白氎題書,為之制曰:「我惟尊居世上,貴極人中,斯皆三寶之靈祐也。既為人王,受佛付囑,凡厥染衣,吾當惠濟。建此伽藍,式招羈旅。自今已來,諸穿耳僧,我此伽藍不得止舍。」因其事跡,故以名焉。

큰 성에서 동쪽으로 이백여 리를 가면 아피타갈랄나 절에 이른다. 둘레 담은 넓지 않으나 새기고 꾸민 것이 매우 공교하고, 꽃 못이 서로 비치며 대와 누각이 용마루를 잇대었다. 승려가 엄숙하고 무리의 몸가짐이 차례가 있다. 앞선 기록에서 들으니 이러하다. 옛날 큰 설산 북쪽 도화라국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문이 있어, 두셋 뜻이 같은 이들이 예불하고 외는 틈마다 늘 서로 이르기를 「묘한 이치는 그윽하고 아득하여 말로 궁구할 바가 아니요, 거룩한 자취는 환히 드러나 발로 찾을 만하다. 마땅히 거스름 없는 벗과 의논하여 거룩한 자취를 몸소 보자」 하였다. 이에 두셋 벗이 지팡이를 짚고 함께 노닐었다. 인도에 이르러 여러 절에 붙었으나, 그 변두리 사람이라 낮추어 보아 아무도 재워 주지 않았다. 밖으로 바람과 이슬에 몰리고 안으로 입과 배에 매여 낯빛이 초췌하고 모습이 마르고 시들었다. 그때 이 나라 왕이 가까운 들에 나와 노닐다가 여러 나그네 승려를 보고 괴이히 여겨 물어 이르기를 「어느 곳의 빌어먹는 이인가. 무슨 까닭으로 왔는가. 귀도 뚫지 않았고 옷도 때 묻고 해졌구나」 하였다. 사문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도화라국 사람입니다. 남기신 가르침을 공손히 이어 세속의 티끌을 높이 밟고, 뜻이 같은 이들을 거느려 거룩한 자취에 예를 올리러 왔습니다. 복이 엷어 뭇 사람에게 함께 버림받아, 인도의 사문이 나그네를 돌아보지 않으니 슬픕니다. 제 땅으로 돌아가려 하나 두루 예를 올리지 못하였으므로, 비록 부지런한 괴로움에 몰려도 마음이 마침내 뒤로 미룰 뿐입니다」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슬픈 느낌이 더하여, 곧 이 뛰어난 땅에 절을 세우고 흰 고운 천에 글을 적어 규정을 만들어 이르기를 「내가 오직 세상 위에 높이 살고 사람 가운데 지극히 귀함은 다 삼보의 신령한 도우심이다. 이미 사람의 왕이 되어 부처의 부촉을 받았으니, 무릇 물들인 옷을 입은 이는 내가 마땅히 은혜로이 건지겠다. 이 절을 세워 나그네를 부른다. 이제부터 뒤로 여러 귀 뚫은 승려는 이 절에 머물러 묵을 수 없다」 하였다. 그 일의 자취로 말미암아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협주 1

唐言不穿耳。

당나라 말로는 귀를 뚫지 않았다는 뜻이다.

4마하사라 마을

阿避陁羯剌拿伽藍東南行百餘里,南渡殑伽河,至摩訶娑羅邑,並婆羅門種,不遵佛法。然見沙門,先訪學業,知其強識,方深禮敬。

아피타갈랄나 절에서 동남쪽으로 백여 리를 가서 남쪽으로 긍가하를 건너면 마하사라 마을에 이른다. 다 바라문의 겨레로 불법을 좇지 않는다. 그러나 사문을 보면 먼저 배운 업을 묻고, 그 기억이 굳센 줄 알면 그제야 깊이 예를 올려 공경한다.

5나라연천사

殑伽河北,有那羅延天祠。重閣層臺,奐其麗飾。諸天之像,鐫石而成,工極人謀,靈應難究。

긍가하 북쪽에 나라연하늘신 사당가 있다. 겹다락과 층대가 그 꾸밈이 빛나고 아름답다. 여러 하늘의 상은 돌을 새겨 이룬 것으로 솜씨가 사람의 꾀를 다하였고 신령한 응함은 궁구하기 어렵다.

6들의 귀신을 항복받은 자리

那羅延天祠東行三十餘里,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大半陷地。前建石柱,高餘二丈,上作師子之像,刻記伏鬼之事。昔於此處有曠野鬼,恃大威力,啖人血肉,作害生靈,肆極妖祟。如來湣諸眾生不得其死,以神通力誘化諸鬼,導以歸依之敬,齊以不殺之戒。諸鬼承教,奉以周旋。於是舉石請佛安坐,願聞正法,克念護持。自茲厥後,無信之徒競共推移鬼置石座,動以千數,莫之能轉。茂林清池,周基左右,人至其側,無不心懼。

나라연하늘신 사당에서 동쪽으로 삼십여 리를 가면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으로 큰 절반이 땅에 꺼졌다. 앞에 돌기둥을 세웠으니 높이가 두 길 남짓이요 위에 사자의 상을 만들고 귀신을 항복받은 일을 새겨 적었다. 옛날 이곳에 들의 귀신이 있어 큰 위력을 믿고 사람의 피와 살을 먹으며 산 것들을 해쳐 요망한 재앙을 마음껏 부렸다. 여래가 여러 뭇 목숨이 제 명대로 죽지 못함을 가엾이 여겨, 신통의 힘으로 여러 귀신을 꾀어 교화하고 돌아가 의지하는 공경으로 이끌며 죽이지 않는 계로 가지런히 하셨다. 여러 귀신이 가르침을 받들어 좇아 돌았다. 이에 돌을 들어 부처께 편히 앉으시기를 청하고, 바른 법 듣기를 원하며 지켜 지니기를 마음에 새겼다. 이때부터 뒤로 믿음 없는 무리가 다투어 함께 귀신이 놓은 돌 자리를 밀어 옮기려 하여 천을 헤아리는 사람이 달려들어도 아무도 옮기지 못하였다. 무성한 숲과 맑은 못이 터의 좌우를 둘렀는데, 사람이 그 곁에 이르면 마음에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7대승을 익히는 절들

伏鬼側不遠,有數伽藍,雖多傾毀,尚有僧徒,並皆遵習大乘教法。

귀신을 항복받은 자리 곁 멀지 않은 데 절 몇이 있으니, 비록 기울고 헐린 것이 많으나 아직 승려가 있어 모두 대승의 가르침과 법을 좇아 익힌다.

8병에 붙은 사리로 세운 탑

從此東南行百餘里,至一窣堵波,基已傾陷,餘高數丈。昔者如來寂滅之後,八國大王分舍利也,量舍利婆羅門蜜塗瓶內,分授諸王,而婆羅門持瓶以歸,既得所粘舍利,遂建窣堵波,並瓶置內,因以名焉。後無憂王開取舍利瓶,改建大窣堵波,或至齋日,時燭光明。

여기서 동남쪽으로 백여 리를 가면 탑 하나에 이르는데 터가 이미 기울고 꺼져 남은 높이가 몇 길이다. 옛날 여래가 고요히 사라지신 뒤 여덟 나라의 큰 왕이 사리를 나눌 때, 사리를 헤아리던 바라문이 병 안에 꿀을 발라 두었다가 여러 왕에게 나누어 준 뒤 바라문이 병을 가지고 돌아가, 거기 붙은 사리를 얻어 마침내 탑을 세우고 병까지 그 안에 두었으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 뒤에 무우왕이 열어 사리병을 가져다가 큰 탑을 고쳐 세웠는데, 더러 재일이 되면 때때로 밝은 빛이 비친다.

從此東北渡殑伽河,行百四五十里,至吠舍厘國。

여기서 동북쪽으로 긍가하를 건너 백사오십 리를 가면 폐사리국에 이른다.

협주 1

舊曰毗舍離國,訛也。中印度境。

옛적에는 비사리국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중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