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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라국尼波羅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4 · 한자 236자 · 낭독 0.9분

「대당서역기」 제7권 「니파라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尼波羅國周四千餘里,在雪山中。國大都城周二十餘里。山川連屬,宜穀稼,多花果,出赤銅、犛牛、命命鳥。貨用赤銅錢。氣序寒烈,風俗險诐,人性剛獷,信義輕薄。無學藝,有工巧。形貌醜弊,邪正兼信。伽藍、天祠接堵連隅。僧徒二千餘人,大小二乘,兼功綜習。外道異學,其數不詳。

니파라국은 둘레가 사천여 리요 설산 가운데 있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이십여 리다. 산과 내가 잇달아 붙었고 곡식에 마땅하며 꽃과 열매가 많다. 붉은 구리와 이우와 명명조가 난다. 재화로 붉은 구릿돈을 쓴다. 기후가 차고 매서우며 풍속이 험하고 치우쳤다. 사람의 성품이 굳세고 거칠며 믿음과 의리가 가볍고 엷다. 배움과 재예가 없으나 손재주가 있다. 생김새가 추하고 해졌으며 삿된 것과 바른 것을 아울러 믿는다. 절과 하늘신 사당가 담을 잇대고 모퉁이를 이었다. 승려가 이천여 명인데 대승과 소승 둘을 아울러 힘써 익힌다. 외도와 다른 배움은 그 수를 자세히 알 수 없다.

王,剎帝利栗呫婆種也。志學清高,純信佛法。近代有王,號鴦輸伐摩,碩學聰睿,自制《聲明論》,重學敬德,遐邇著聞。

왕은 찰제리 율첨바의 겨레다. 배움에 뜻을 두어 맑고 높으며 불법을 순수히 믿는다. 요즈음 왕이 있어 이름을 앙수벌마라 하는데, 배움이 크고 총명하며 슬기로워 스스로 『성명론』을 지었다. 배움을 무겁게 여기고 덕을 공경하여 멀고 가까운 데 이름이 드러났다.

협주 1

唐言光胄。

당나라 말로는 광주다.

3불이 이는 못

都城東南有小水池,以人火投之,水即焰起。更投餘物,亦變為火。

도성 동남쪽에 작은 물 못이 있으니 사람이 불을 던지면 물에서 곧 불꽃이 인다. 다시 다른 물건을 던져도 또한 불로 바뀐다.

從此復還吠舍厘河,南渡殑伽河,至摩揭陁國。

여기서 다시 폐사리 강으로 돌아와 남쪽으로 긍가하를 건너면 마게타국에 이른다.

협주 1

舊曰摩伽陁,又曰摩竭提,皆訛也。中印度境。

옛적에는 마가타라 하고 또 마갈제라 하였으나 다 잘못이다. 중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