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타국 상摩揭陁國(上)
摩揭陁國周五千餘里,城少居人,邑多編戶。地沃壤,滋稼穡,有異稻種,其粒粗大,香味殊越,光色特甚,彼俗謂之供大人米。土地墊濕,邑居高原。孟夏之後,仲秋之前,平居流水,可以泛舟。風欲淳質,氣序濕暑。崇重志學,尊敬佛法。伽藍五十餘所,僧徒萬有餘人,並多宗習大乘法教。天祠數十,異道寔多。
마게타국은 둘레가 오천여 리다. 성에는 사는 사람이 적고 고을에는 호적에 든 집이 많다. 땅이 기름져 심고 거두는 것이 잘 자란다. 남다른 벼 씨가 있어 그 낟알이 굵고 크며 향과 맛이 유난히 뛰어나고 빛깔이 유난히 곱다. 그 고장에서 이를 큰사람쌀이라 이른다. 땅이 낮고 축축하여 사는 고을을 높은 벌에 두었다. 첫여름 뒤부터 가을 가운데 앞까지는 평지에 물이 흘러 배를 띄울 만하다. 풍속이 순박하고 질박하며 기후가 축축하고 덥다. 뜻을 세워 배움을 무겁게 높이고 불법을 높이 공경한다. 절이 오십여요 승려가 만여 명인데 다들 대승의 법과 가르침을 으뜸으로 삼아 많이 익힌다. 하늘신 사당가 수십이요 외도가 참으로 많다.
殑伽河南有故城,周七十餘里,荒蕪雖久,基址尚在。昔者人壽無量歲時,號拘蘇摩補羅城,王宮多花,故以名焉。逮乎人壽數千歲,更名波咤厘子城。
긍가하 남쪽에 옛 성이 있으니 둘레가 칠십여 리다. 거칠어진 지 오래나 터는 아직 있다. 옛날 사람의 수명이 한없던 때에 구소마보라성이라 하였으니, 왕궁에 꽃이 많았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사람의 수명이 수천 살에 이르러 다시 파타리자성이라 이름하였다.
협주 2
唐言香花宮城。
당나라 말로는 향기로운 꽃의 궁성이다.
舊曰巴連弗邑,訛也。
옛적에는 파련불읍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3파탈리 나무와 혼인한 서생
初,有婆羅門高才博學,門人數千,傳以授業。諸學徒相從遊觀,有一書生徘徊悵望。同儔謂曰:「夫何憂乎?」曰:「盛色方剛,羈遊履影,歲月已久,藝業無成。顧此為言,憂心彌劇。」於是學徒戲言之曰:「今將為子求娉婚親。」乃假立二人為男父母,二人為女父母,遂坐波咤厘樹,謂女婿樹也。采時果,酌清流,陳婚姻之緒,請好合之期。時假女父攀花枝以授書生曰:「斯嘉偶也,幸無辭焉。」書生之心欣然自得,日暮言歸,懷戀而止。學徒曰:「前言戲耳!幸可同歸。林中猛獸恐相殘害。」書生遂留,往來樹側。景夕之後,異光燭野,管弦清雅,帷帳陳列。俄見老翁策杖來慰,復有一嫗攜引少女,並賓從盈路,袨服奏樂。翁乃指少女曰:「此君之弱室也。」酣歌樂宴,經七日焉。學徒疑為獸害,往而求之,乃見獨坐樹陰,若對上客,告與同歸,辭不從命。後自入城,拜謁親故,說其始末。聞者驚駭,與諸友人同往林中,咸見花樹是一大第,童僕役使馳驅往來,而彼老翁從容接對,陳饌奏樂,賓主禮備。諸友還城,具告遠近。期歲之後,生一子男。謂其妻曰:「吾今欲歸,未忍離阻。適復留止,棲寄飄露。」其妻既聞,具以白父。翁謂書生曰:「人生行樂,詎必故鄉?今將築室,宜無異志。」於是役使靈徒,功成不日。香花舊城,遷都此邑。由彼子故,神為築城,自爾之後,因名波咤厘子城焉。
처음에 어떤 바라문이 재주가 높고 배움이 넓어 문인이 수천이었는데, 이어 가며 업을 가르쳤다. 여러 배우는 무리가 서로 좇아 노닐며 구경하는데, 한 서생이 서성이며 서운히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무리가 이르기를 「무엇을 근심하는가」 하니, 이르기를 「한창때가 바야흐로 굳센데 나그네로 떠돌며 그림자만 밟은 지 세월이 이미 오래고, 재주와 업은 이룬 것이 없다. 이를 돌아보아 말하자니 근심스러운 마음이 더욱 심하다」 하였다. 이에 배우는 무리가 장난으로 이르기를 「이제 그대를 위해 혼인을 청해 주겠다」 하고, 이에 두 사람을 남자 쪽 부모로 삼고 두 사람을 여자 쪽 부모로 삼아, 마침내 파타리 나무 아래 앉았으니 이를 사위 나무라 한다. 철 따라 나는 열매를 따고 맑은 흐름을 떠서, 혼인의 실마리를 늘어놓고 좋이 합할 날을 청하였다. 그때 거짓 여자 쪽 아버지가 꽃가지를 잡아 서생에게 주며 이르기를 「이 아름다운 짝이니 부디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서생의 마음이 기꺼워 스스로 흡족하였는데, 해가 저물어 돌아가자 하매 그리움을 품고 머물렀다. 배우는 무리가 이르기를 「앞의 말은 장난일 뿐이다. 부디 함께 돌아가자. 숲 속의 사나운 짐승이 해칠까 두렵다」 하였다. 서생이 마침내 남아 나무 곁을 오갔다. 저녁 뒤에 남다른 빛이 들을 비추고 관현이 맑고 아정하며 휘장이 벌여 섰다. 이윽고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와서 위로하고, 또 한 할미가 어린 여자를 이끌고 왔는데, 손과 종이 길에 가득하고 좋은 옷을 입고 풍류를 아뢰었다. 늙은이가 이에 어린 여자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그대의 아내다」 하였다. 흥겹게 노래하고 즐거이 잔치하기를 이레가 지났다. 배우는 무리가 짐승에게 해를 입었으리라 의심하여 가서 찾으니, 홀로 나무 그늘에 앉아 마치 높은 손을 마주한 듯하였다. 함께 돌아가자 하니 사양하고 명을 좇지 않았다. 뒤에 스스로 성에 들어가 친척과 옛벗을 뵙고 그 처음과 끝을 말하니, 듣는 이가 놀랐다. 여러 벗과 함께 숲 속에 가니, 다들 꽃나무가 큰 저택이 되고 아이 종과 부리는 이가 달려 오가며, 저 늙은이가 조용히 맞아 대접하여 반찬을 차리고 풍류를 아뢰며 손과 주인의 예가 갖추어진 것을 보았다. 여러 벗이 성에 돌아와 멀고 가까운 데 다 알렸다. 한 해 뒤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 아내에게 이르기를 「내가 이제 돌아가고자 하나 차마 떠나지 못하겠고, 마침 다시 머물자니 떠도는 이슬에 붙어 사는 셈이오」 하였다. 그 아내가 듣고 갖추어 아버지에게 아뢰니, 늙은이가 서생에게 이르기를 「사람이 살며 즐기는 데 어찌 반드시 고향이라야 하겠는가. 이제 집을 지어 줄 터이니 마땅히 다른 뜻을 두지 말라」 하였다. 이에 신령한 무리를 부려 며칠 안 되어 공을 이루었다. 향기로운 꽃의 옛 성에서 이 고을로 도읍을 옮겼다. 저 아들로 말미암아 귀신이 성을 쌓았으므로, 그때부터 뒤로 파타리자성이라 이름한 것이다.
4무우왕이 지옥을 만든 자리
王故宮北有石柱,高數十尺,是無憂王作地獄處。釋迦如來涅槃之後第一百年,有阿輸迦王者,頻毗娑羅王之曾孫也,自王舍城遷都波咤厘,重築外郭,周於故城。年代浸遠,唯餘故基。伽藍、天祠及窣堵波,餘址數百,存者二三。唯故宮北臨殑伽河,小城中有千餘家。
왕의 옛 궁 북쪽에 돌기둥이 있으니 높이가 수십 자다. 이는 무우왕이 지옥을 만든 자리다. 석가여래가 열반하신 뒤 백 해째에 아수가왕이라는 이가 있었으니 빈비사라왕의 증손이다. 왕사성에서 파타리로 도읍을 옮기고 바깥 성을 거듭 쌓아 옛 성을 둘렀다. 연대가 점점 멀어 오직 옛터만 남았다. 절과 하늘신 사당와 탑의 남은 터가 수백인데 남은 것은 두엇뿐이다. 오직 옛 궁 북쪽 긍가하에 임한 작은 성 안에 천여 집이 있다.
협주 2
唐言無憂,歸曰阿育,訛也。
당나라 말로는 무우다. 옛적에는 아육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唐言影堅,舊曰頻婆娑羅,訛也。
당나라 말로는 영견이다. 옛적에는 빈바사라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5사문 하나로 지옥이 헐리다
初,無憂王嗣位之後,舉措苛暴,乃立地獄,作害生靈。周垣峻峙,隅樓特起,猛焰洪爐,銛鋒利刃,備諸苦具,擬像幽塗,招募兇人,立為獄主。初以國中犯法罪人,無校輕重,總入塗炭。後以行經獄次,擒以誅戮,至者皆死,遂滅口焉。時有沙門,初入法眾,巡里乞食,遇至獄門,獄吏兇人擒欲殘害。沙門惶怖,請得禮懺。俄見一人縛來入獄,斬截手足,磔裂形骸,俯仰之間,肢體糜散。沙門見已,深增悲悼,成無常觀,證無學果。獄卒曰:「可以死矣。」沙門既證聖果,心夷生死,雖入鑊湯,若在清池,有大蓮花而為之座。獄主驚駭,馳使白王,王遂躬觀,深贊靈祐。獄主曰:「大王當死。」王曰:「云何?」對曰:「王先垂命,令監刑獄,凡至獄垣皆從殺害,不云王入而獨免死。」王曰:「法已一定,理無再變。我先垂令,豈除汝身?汝久濫生,我之咎也。」即命獄卒,投之洪爐。獄主既死,王乃得出,於是頹墻堙壍,廢獄寬刑。
처음에 무우왕이 자리를 이은 뒤 하는 일이 가혹하고 사나워, 이에 지옥을 세워 산 것들을 해쳤다. 둘레 담이 높이 솟고 모퉁이 다락이 유난히 일어섰으며, 사나운 불꽃과 큰 화로와 날카로운 칼날로 온갖 괴로운 기구를 갖추어 저승길을 본떴다. 흉악한 사람을 뽑아 옥주로 세웠다. 처음에는 나라 안에서 법을 어긴 죄인을 가볍고 무거움을 가리지 않고 다 도탄에 넣었다. 뒤에는 옥 곁을 지나가는 이도 잡아 죽여, 이른 이는 다 죽어 마침내 입을 막았다. 그때 어떤 사문이 처음 법의 무리에 들어 마을을 돌며 빌어먹다가, 마침 옥문에 이르니 옥리인 흉악한 사람이 잡아 해치려 하였다. 사문이 두려워 예를 올리고 뉘우칠 틈을 청하였다. 이윽고 한 사람이 묶여 옥에 들어와 손발이 잘리고 몸이 찢겨, 굽어보고 우러르는 사이에 팔다리가 문드러져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사문이 보고 슬픔이 깊이 더하여 모든 것이 덧없음을 꿰뚫어 보고 더 배울 것 없는 열매를 증득하였다. 옥졸이 이르기를 「이제 죽어도 되겠다」 하였다. 사문이 이미 거룩한 열매를 증득하매 마음이 나고 죽음에 평탄하여, 끓는 가마에 들어도 맑은 못에 있는 듯하고 큰 연꽃이 그 자리가 되었다. 옥주가 놀라 사람을 달려 보내 왕에게 아뢰니, 왕이 마침내 몸소 보고 신령한 도우심을 깊이 기렸다. 옥주가 이르기를 「대왕도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어째서인가」 하였다. 대답하기를 「왕께서 먼저 명을 내리시어 형옥을 맡게 하시며, 무릇 옥 담에 이른 이는 다 죽이라 하셨을 뿐 왕이 들면 홀로 죽음을 면한다고는 이르지 않으셨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법이 이미 정해졌으니 이치로 다시 바꿀 수 없다. 내가 먼저 명을 내렸으니 어찌 네 몸만 덜겠느냐. 네가 오래 함부로 살았음은 내 허물이다」 하고, 곧 옥졸에게 명하여 큰 화로에 던지게 하였다. 옥주가 죽은 뒤에야 왕이 나올 수 있었다. 이에 담을 무너뜨리고 해자를 메워 옥을 없애고 형벌을 너그럽게 하였다.
6팔만사천 탑
地獄南不遠有窣堵波,基址傾陷,惟餘覆缽之勢,寶為廁飾,石作欄檻,即八萬四千之一也。無憂王以人功建於宮中焉。中有如來舍利一升,靈鑒間起,神光時燭。無憂王廢獄之後,遇近護大阿羅漢,方便善誘,隨機導化。王謂羅漢曰:「幸以宿福,位據人尊,慨茲障累,不遭佛化。今者如來遺身舍利,欲重修建諸窣堵波。」羅漢曰:「大王以福德力,役使百靈,以弘誓心匡護三寶,是所願也,今其時矣。」因為廣說獻土之因,如來懸記興建之功。無憂王聞以慶悅,召集鬼神而令之曰:「法王導利,含靈有慶,我資宿善,尊極人中。如來遺身,重修供養,今爾鬼神戮力同心!境極贍部,戶滿拘胝,以佛舍利起窣堵波。心發於我,功成於汝,勝福之利,非欲獨有,宜各營構,待後告命。」鬼神受旨,在所興功,功既成已,咸來請命。無憂王既開八國所建諸窣堵波,分其舍利,付鬼神已,謂羅漢曰:「我心所欲,諸處同時藏下舍利。心雖此冀,事未從欲。」羅漢白王:「命鬼神至所期日,日有隱蔽,其狀如手,此時也,宜下舍利。」王承此旨,宣告鬼神。逮乎期日,無憂王觀候光景,日正中時,羅漢以神通力,伸手蔽日,營建之所咸皆瞻仰,同於此時功績咸畢。
지옥 남쪽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터가 기울고 꺼져 오직 엎은 바리의 모습만 남았다. 보배로 끼워 꾸미고 돌로 난간을 지었으니 곧 팔만사천 가운데 하나다. 무우왕이 사람의 힘으로 궁 안에 세운 것이다. 그 안에 여래의 사리 한 되가 있어 신령한 비춤이 이따금 일어나고 신묘한 빛이 때때로 비친다. 무우왕이 지옥을 없앤 뒤 근호 대아라한을 만나매, 방편으로 잘 꾀어 기미에 따라 이끌어 교화하였다. 왕이 아라한에게 이르기를 「다행히 지난날의 복으로 자리가 사람 가운데 높은 데 있으나, 이 가림과 걸림이 슬퍼 부처의 교화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여래가 남기신 몸의 사리로 여러 탑을 거듭 세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아라한이 이르기를 「대왕이 복덕의 힘으로 온갖 신령을 부리고 넓은 서원의 마음으로 삼보를 바로잡아 지키니, 이는 바라던 바요 이제 그때입니다」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흙을 바친 인연과 여래가 미리 적어 두신 세우는 공을 널리 말하였다. 무우왕이 듣고 기뻐하여 귀신을 불러 모아 명하여 이르기를 「법왕이 이끌어 이롭게 하시매 뜻 있는 것들에게 경사가 있고, 내가 지난날의 착함에 힘입어 사람 가운데 지극히 높다. 여래가 남기신 몸에 거듭 공양을 닦으려 하니, 이제 너희 귀신들은 힘을 모아 마음을 같이하라. 지경은 섬부주 끝까지, 집은 구지에 차도록 부처의 사리로 탑을 세우라. 마음은 나에게서 났으나 공은 너희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뛰어난 복의 이로움을 홀로 가지려 함이 아니니, 마땅히 저마다 지어 두고 뒤에 알리는 명을 기다리라」 하였다. 귀신이 뜻을 받아 있는 데마다 공을 일으켰고, 공이 이미 이루어지매 다 와서 명을 청하였다. 무우왕이 여덟 나라가 세운 여러 탑을 열어 그 사리를 나누어 귀신에게 맡기고 나서 아라한에게 이르기를 「내 마음에 바라는 바는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사리를 내려 모시는 것입니다. 마음은 비록 이를 바라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였다. 아라한이 왕에게 아뢰기를 「귀신에게 명하여 기약한 날에 이르러, 해에 가리는 것이 있어 그 모양이 손 같거든 이때가 그때이니 마땅히 사리를 내리라 하소서」 하였다. 왕이 이 뜻을 받아 귀신에게 알렸다. 기약한 날에 이르러 무우왕이 빛과 그림자를 살펴 기다리다가 해가 한가운데 있을 때, 아라한이 신통의 힘으로 손을 뻗어 해를 가리니 짓는 자리마다 다 우러러보아, 같은 이때에 공적이 다 끝났다.
7여래의 발자국이 남은 돌
窣堵波側不遠,精舍中有大石,如來所履,雙跡猶存,其長尺有八寸,廣餘六寸矣。兩跡俱有輪相,十指皆帶花文,魚形映起,光明時照。昔者如來將取寂滅,北趣拘屍那城,南顧摩揭陁國,蹈此石上,告阿難曰:「吾今最後留此足跡,將入寂滅,顧摩揭陁也。百歲之後,有無憂王命世君臨,建都此地,匡護三寶,役使百神。」及無憂王之嗣位也,遷都築邑,掩周跡石,既近宮城,恒親供養。後諸國王竟欲舉歸,石雖不大,眾莫能轉。近者設賞迦王毀壞佛法,遂即石所,欲滅聖跡,鑿已還平,文彩如故。於是捐棄殑伽河流,尋復本處。其側窣堵波,即過去四佛坐及經行遺跡之所。
탑 곁 멀지 않은 정사 안에 큰 돌이 있으니 여래가 밟으신 두 자국이 아직 남아 있다. 그 길이가 한 자 여덟 치요 너비가 여섯 치 남짓이다. 두 자국에 다 바퀴 무늬가 있고 열 발가락에 다 꽃무늬를 띠었으며 물고기 모양이 비쳐 일어나고 밝은 빛이 때때로 비친다. 옛날 여래가 장차 고요히 사라지려 하시며 북쪽으로 구시나성으로 가시다가 남쪽으로 마게타국을 돌아보시고 이 돌 위를 밟으시며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마지막으로 이 발자국을 남기고 장차 고요히 사라지려 하며 마게타를 돌아본다. 백 해 뒤에 무우왕이라는 이가 세상에 명을 받아 임금이 되어 이 땅에 도읍을 세우고 삼보를 바로잡아 지키며 온갖 신을 부릴 것이다」 하셨다. 무우왕이 자리를 이으매 도읍을 옮기고 고을을 쌓으며 자취 있는 돌을 둘러 가렸는데, 궁성에 가까우므로 늘 몸소 공양하였다. 뒤에 여러 나라 왕이 다투어 들어 가져가려 하였으나, 돌이 크지 않은데도 아무도 옮기지 못하였다. 요즈음 설상가왕이 불법을 헐어 무너뜨리며 마침내 돌 있는 데로 가서 거룩한 자취를 없애려고 쪼아 내고 다시 고르게 하였으나, 무늬와 빛깔이 전과 같았다. 이에 긍가하 흐름에 버렸으나 이내 다시 본디 자리로 돌아왔다. 그 곁 탑은 곧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다.
8무우왕의 돌기둥
佛跡精舍側不遠,有大石柱,高三十餘尺。書記殘缺,其大略曰:「無憂王信根貞固,三以贍部洲施佛、法、僧,三以諸珍寶重自酬贖。」其辭云云,大略斯在。
부처의 자취를 모신 정사 곁 멀지 않은 데 큰 돌기둥이 있으니 높이가 삼십여 자다. 글로 적은 것이 헐고 이지러졌으나 그 대략에 이르기를 「무우왕은 믿는 뿌리가 곧고 굳어, 세 번 섬부주를 부처와 법과 승가에 베풀고 세 번 여러 진귀한 보배로 거듭 스스로 되사들였다」 하였다. 그 말이 이러이러하니 대략이 여기 있다.
9집을 나간 아우를 위해 지은 돌집
故宮北有大石室,外若崇山,內廣數丈,是無憂王為出家弟役使神鬼之所建也。初,無憂王有同母弟,名摩醯因陁羅,生自貴族,服僣王制,奢侈縱暴,眾庶懷怨。國輔老臥進諫王曰:「驕弟作威,亦已太甚。夫政平則國治,人和則主安,古之明訓,由來久矣。願存國典,收付執法。」無憂王泣謂弟曰:「吾承基緒,覆燾生靈,況爾同胞,豈忘惠愛?不先匡導,已陷刑法。上懼先靈,下迫眾議。」摩醯因陁羅稽首謝曰:「不自謹行,敢干國憲,願賜再生,更寬七日。」於是置諸幽室,嚴加守衛,珍羞上饌,進貢無虧。守者唱曰:「已過一日,餘有六日。」至第六日已,既深憂懼,更勵身心,便獲果證。升虛空,示神跡,尋出塵俗,遠棲巖谷。無憂王躬往謂曰:「昔拘國制,欲致嚴刑。豈意清升,取證聖果。既無滯累,可以還國。」弟曰:「昔羈愛網,心馳聲色,今出危城,志悅山谷。願棄人間,長從谷壑。」王曰:「欲靜心慮,豈必幽若?吾從爾志,當為崇樹。」遂召命鬼神而告之曰:「吾於後日廣備珍羞,爾曹相率來集我會,各持大石,自為床坐。」諸神受命,至期畢萃。眾會既已,王告神曰:「石座縱橫,宜自積聚。因功不勞,壘為虛室。」諸神受命,不日而成。無憂王躬往迎請,止此山廬。
옛 궁 북쪽에 큰 돌집이 있으니 밖은 높은 산 같고 안은 넓이가 몇 길이다. 이는 무우왕이 집을 나간 아우를 위해 귀신을 부려 세운 것이다. 처음에 무우왕에게 같은 어머니의 아우가 있어 이름을 마혜인타라라 하였는데, 귀한 겨레에서 나 왕의 제도를 참람히 입고 사치하고 방자하며 사나워 뭇 사람이 원망을 품었다. 나라를 돕는 늙은 신하가 왕에게 나아가 간하여 이르기를 「교만한 아우가 위엄을 부리는 것이 이미 너무 심합니다. 무릇 정사가 고르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사람이 화합하면 임금이 편안한 것은 옛 밝은 가르침으로 온 지 오래입니다. 원컨대 나라의 법을 지켜 법 맡은 이에게 넘기소서」 하였다. 무우왕이 울며 아우에게 이르기를 「내가 터를 이어 산 것들을 덮어 기르거늘, 하물며 너는 한배에서 났으니 어찌 은혜와 사랑을 잊었겠느냐. 먼저 바로잡아 이끌지 못하여 이미 형법에 빠졌다. 위로는 앞선 신령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뭇 의논에 몰린다」 하였다. 마혜인타라가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여 이르기를 「스스로 삼가 행하지 못하고 감히 나라의 법을 범하였습니다. 원컨대 다시 살 길을 주시어 이레만 더 너그러이 하소서」 하였다. 이에 그윽한 방에 두고 엄히 지키게 하되, 진귀한 반찬과 좋은 음식을 바치는 데 이지러짐이 없게 하였다. 지키는 이가 외치기를 「이미 하루가 지났고 엿새가 남았다」 하였다. 엿새째에 이르러 근심과 두려움이 깊어지매 몸과 마음을 더욱 힘써 곧 열매를 얻었다. 허공에 올라 신통한 자취를 보이고 이어 티끌 같은 세속을 나와 멀리 바위 골짜기에 깃들었다. 무우왕이 몸소 가서 이르기를 「옛날 나라의 법에 매여 엄한 형벌에 이르게 하려 하였는데, 어찌 맑게 올라 거룩한 열매를 증득할 줄 생각하였겠느냐. 이미 걸림이 없으니 나라로 돌아올 만하다」 하였다. 아우가 이르기를 「옛날 사랑의 그물에 매여 마음이 소리와 빛에 달렸으나, 이제 위태로운 성을 나와 뜻이 산골짜기를 기뻐합니다. 원컨대 인간을 버리고 길이 골짜기를 좇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마음의 생각을 고요히 하고자 함에 어찌 반드시 그윽한 데라야 하겠느냐. 내가 네 뜻을 좇아 마땅히 높이 세워 주겠다」 하고, 마침내 귀신을 불러 명하여 이르기를 「내가 뒷날 진귀한 반찬을 널리 갖추리니, 너희는 서로 이끌고 내 모임에 와 모이되 저마다 큰 돌을 가져와 스스로 앉을 평상으로 삼으라」 하였다. 여러 신이 명을 받아 기약한 때에 다 모였다. 뭇 모임이 이미 끝나매 왕이 신에게 이르기를 「돌 자리가 가로세로 놓였으니 마땅히 스스로 모아 쌓으라. 공을 들여 수고하지 않고 쌓아서 빈방을 만들라」 하였다. 여러 신이 명을 받아 며칠 안 되어 이루었다. 무우왕이 몸소 가서 맞아 청하여 이 산의 집에 머물게 하였다.
협주 1
唐言大帝。
당나라 말로는 대제다.
10돌구유
故宮北,地獄南,有大石槽,是無憂王匠役神功,作為此器,飯僧之時,以儲食也。
옛 궁 북쪽 지옥 남쪽에 큰 돌구유가 있으니, 이는 무우왕이 신묘한 공력을 부려 이 그릇을 만든 것으로 승려에게 밥을 줄 때 음식을 쌓아 두던 것이다.
11작은 돌산의 석실
故宮西南有小石山,周巖谷間,數十石室,無憂王為近護等諸阿羅漢役使鬼神之所建立。傍有故臺餘基積石,池沼漣漪,清瀾澄鑒,鄰國遠人謂之聖水,若有飲濯,罪垢消滅。
옛 궁 서남쪽에 작은 돌산이 있으니 두른 바위와 골짜기 사이에 석실 수십이 있다. 무우왕이 근호 들 여러 아라한을 위해 귀신을 부려 세운 것이다. 곁에 옛 대의 남은 터에 돌을 쌓았고, 못이 잔물결 지며 맑은 물결이 밝게 비친다. 이웃 나라 먼 데 사람이 이를 성스러운 물이라 하니, 마시거나 씻으면 죄와 때가 사라져 없어진다고 한다.
12다섯 탑
山西南有五窣堵波,崇基已陷,餘趾尚高,遠而望之,郁若山阜,面各數百步,後人於上重更修建小窣堵波。《印度記》曰:昔無憂王建八萬四千窣堵波已,尚餘五升舍利,故別崇建五窣堵波,制奇諸處,靈異間起,以表如來五分法身。薄信之徒竊相評議,云是昔者難陁王建此五藏,以儲七寶。其後有王,不甚淳信,聞先疑議,肆其貪求,興動軍師,躬臨發掘。地震山傾,雲昏日翳,窣堵波中大聲雷震,士卒僵仆,象馬驚奔。自茲已降,無敢覬覦。或曰:「眾議雖多,未為確論。」循古所記,信得其實。
산 서남쪽에 탑 다섯이 있으니 높은 터가 이미 꺼졌으나 남은 자취가 아직 높아, 멀리서 바라보면 우거져 산언덕 같고 면마다 각각 수백 걸음이다. 뒷사람이 그 위에 거듭 작은 탑을 다시 세웠다. 『인도기』에 이르기를 「옛날 무우왕이 팔만사천 탑을 세우고도 아직 사리 다섯 되가 남아, 그래서 따로 다섯 탑을 높이 세웠는데 지은 것이 여러 곳보다 기이하고 신령한 이적이 이따금 일어나 여래의 다섯으로 나뉜 법의 몸을 나타낸다」 하였다. 믿음이 엷은 무리가 몰래 서로 평하여 의논하기를 「이는 옛날 난타왕이 이 다섯 곳간을 지어 일곱 보배를 쌓아 둔 것이다」 하였다. 그 뒤에 어떤 왕이 그리 순수히 믿지 않아, 앞선 의심스러운 의논을 듣고 그 탐내는 마음을 마음껏 하여 군사를 일으켜 몸소 가서 파헤쳤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기울며 구름이 어둡고 해가 가려지고, 탑 가운데서 큰 소리가 우레처럼 울려 군사가 넘어지고 코끼리와 말이 놀라 달아났다. 이때부터 뒤로 감히 넘보는 이가 없었다. 더러 이르기를 「뭇 의논이 비록 많으나 확실한 논은 아니다」 하니, 옛 기록을 좇는 것이 참으로 그 실상을 얻는 길이다.
13계원 절
故城東南有屈屈咤阿濫摩。僧伽藍,無憂王之所建焉。無憂王初信佛法也,式遵崇建,修殖善種,召集千僧,凡、聖兩眾,四事供養,什物周給。頹毀已久,基址尚在。
옛 성 동남쪽에 굴굴타아람마 절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무우왕이 처음 불법을 믿을 때 법식대로 좇아 높이 세우고 착한 씨를 심어 길렀으며, 천 승려를 불러 모아 범부와 성인 두 무리에 네 가지로 공양하고 세간 살림을 두루 대었다. 무너진 지 이미 오래나 터는 아직 있다.
협주 2
居勿反。
거와 물의 반절로 읽는다.
唐言雞園。
당나라 말로는 계원이다.
14반쪽 아마락과를 보시한 왕
伽藍側有大窣堵波,名阿摩落迦。阿摩落迦者,印度藥果之名也。無憂王遘疾彌留,知命不濟,欲舍珍寶,崇樹福田。權臣執政,誡勿從欲。其後因食,留阿摩落果,玩之半爛,握果長息,問諸臣曰:「贍部洲主今是何人?」諸臣對曰:「惟獨大王。」王曰:「不然。我今非主。惟此半果,而得自在。嗟乎!世間富貴,危甚風燭。位據區宇,名高稱謂,臨終匱乏,見逼強臣,天下非己,半果斯在!」乃命侍臣而告之曰:「持此半果,詣彼雞園,施諸眾僧,作如是說:『昔一贍部洲主,今半阿摩落王,稽首大德僧前,願受最後之施。凡諸所有,皆已喪失,惟斯半果,得少自在。哀愍貧乏,增長福種。』」僧中上座作如是言:「無憂大王宿期弘濟,瘧疾在躬,奸臣擅命,積寶非己,半果為施。承王來命,普施眾僧。」即召典事,羹中總煮,收其果核,起窣堵波。既荷厚恩,遂旌顧命。
절 곁에 큰 탑이 있으니 이름을 아마락가라 한다. 아마락가란 인도 약나무 열매의 이름이다. 무우왕이 병들어 오래 앓다가 목숨이 건지지 못할 줄 알고, 진귀한 보배를 내어 복밭을 높이 심고자 하였다. 권세 있는 신하가 정사를 잡고 뜻대로 하지 못하게 경계하였다. 그 뒤 밥을 먹다가 아마락가 열매를 남겼는데, 만지작거려 반쯤 문드러지매 열매를 쥐고 길게 한숨지으며 여러 신하에게 물어 이르기를 「섬부주의 주인이 이제 누구인가」 하니, 여러 신하가 대답하기를 「오직 대왕뿐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나는 이제 주인이 아니다. 오직 이 반쪽 열매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아아, 세간의 부귀가 바람 앞의 촛불보다 위태롭구나. 자리는 온 땅을 차지하고 이름은 일컬음이 높으나, 목숨을 마치매 궁핍하여 강한 신하에게 몰리니, 천하가 내 것이 아니요 반쪽 열매가 여기 있을 뿐이다」 하였다. 이에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이 반쪽 열매를 가지고 저 계원에 가서 여러 승려에게 베풀며 이렇게 말하라. 『옛날 한 섬부주의 주인이던 이가 이제 반쪽 아마락과의 왕이 되어, 큰 덕 있는 승가 앞에 머리를 조아려 마지막 보시를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무릇 가진 바를 다 잃고 오직 이 반쪽 열매만 조금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모자람을 가엾이 여기시어 복의 씨를 늘려 주소서』 하라」 하였다. 승가 가운데 상좌가 이렇게 말하기를 「무우 대왕이 지난날 널리 건지기를 기약하였으나, 학질이 몸에 있고 간사한 신하가 명을 마음대로 하여 쌓은 보배가 제 것이 아니매 반쪽 열매를 보시로 삼았다. 왕의 오신 명을 받들어 뭇 승려에게 두루 베푼다」 하고, 곧 일 맡은 이를 불러 국에 다 넣어 삶고 그 씨를 거두어 탑을 세웠다. 이미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므로 마침내 돌아보신 명을 드러낸 것이다.
15건추를 친 탑
阿摩落伽窣堵波西北故伽藍中,有窣堵波,謂建揵椎聲。
아마락가 탑 서북쪽 옛 절 안에 탑이 있으니 건추를 친 탑이라 한다.
16제바가 열두 해의 부끄러움을 씻다
初,此城內伽藍百數,僧徒肅穆,學業清高,外道學人銷聲緘口。其後僧徒相次殂落,而諸後進莫繼前修。外道師資,傳訓成藝,於是命儔召侶,千計萬數,來集僧坊,揚言唱曰:「大擊揵椎,招集學人!」群愚同止,謬有扣擊,遂白王,請校優劣。外道諸師高才達學,僧徒雖眾,辭論庸淺。外道曰:「我論勝。自今以後,諸僧伽藍不得擊揵椎以集眾也。」王允其請,依先論制。僧徒受恥,忍詬而退,十二年間不擊揵椎。時南印度那伽閼剌樹那菩薩幼傳雅譽,長擅高名,舍離欲愛,出家修學,深究妙理,位登初地。有大弟子提婆者,智慧明敏,機神警悟,白其師曰:「波咤厘城諸學人等辭屈外道,不擊揵椎,日月驟移,十二年矣。敢欲摧邪見山,然正法炬。」龍猛曰:「波咤厘城外道博學,爾非其儔,吾今行矣。」提婆曰:「欲摧腐草,詎必傾山?敢承指誨,黜諸異學。大師立外道義,而我隨文破析,詳其優劣,然後圖行。」龍猛乃扶立外義,提婆隨破其理,七日之後,龍猛失宗,已而嘆曰:「謬辭易失,邪義難扶,爾其行矣,摧彼必矣!」提婆菩薩夙擅高名,波咤厘城外道聞之也,即相召集,馳白王曰:「大王昔紆聽覽,制諸沙門不擊揵椎,願垂告命,令諸門候,鄰境異僧勿使入城,恐相黨援,輕改先制。」王允其言,嚴加伺候。提婆既至,不得入城。聞其制令,便易衣服,疊僧伽胝,置草束中,褰裳疾驅,負戴而入。既至城中,棄草披衣,至此伽藍,欲求止息。知人既寡,莫有相舍,遂宿揵椎臺上。於晨朝時,便大振擊。眾聞伺察,乃昨客遊比丘。諸僧伽藍,傳聲響應,王聞究問,莫得其先。至此伽藍,咸推提婆。提婆曰:「夫揵椎者,擊以集眾。有而不用,懸之何為?」王人報曰:「先時僧眾論議墮負,制之不擊,已十二年。」提婆曰:「有是乎?吾於今日,重聲法鼓。」使報王曰:「有異沙門欲雪前恥。」王乃召集學人,而定制曰:「論失本宗,殺身以謝。」於是外道競陳旗鼓,喧談異議,各曜辭鋒。提婆菩薩既升論座,聽其先說,隨義折破,曾不浹辰,摧諸異道。國王大臣莫不慶悅,建此靈基,以旌至德。
처음에 이 성 안에 절이 백을 헤아려 승려가 엄숙하고 배우는 업이 맑고 높으매, 외도의 배우는 이들이 소리를 죽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 뒤에 승려가 차례로 죽어 가고 여러 뒤에 나아가는 이가 앞의 닦음을 잇지 못하였다. 외도의 스승과 제자는 가르침을 전하여 재주를 이루었다. 이에 짝을 부르고 벗을 불러 천으로 헤아리고 만으로 헤아리며 승방에 와 모여, 소리를 높여 외치기를 「건추를 크게 쳐서 배우는 이를 불러 모으라」 하였다. 어리석은 무리가 함께 그치니 그릇되이 두드림이 있었고, 마침내 왕에게 아뢰어 낫고 못함을 견주기를 청하였다. 외도의 여러 스승은 재주가 높고 배움에 통달하였고, 승려는 비록 무리가 많으나 말과 논이 범상하고 얕았다. 외도가 이르기를 「내 논이 이겼다. 이제부터 뒤로 여러 절은 건추를 쳐서 무리를 모을 수 없다」 하였다. 왕이 그 청을 들어주어 앞서 논한 대로 정하였다. 승려가 부끄러움을 받고 욕을 참으며 물러나 열두 해 동안 건추를 치지 못하였다. 그때 남인도의 나가알랄수나보살이 어려서 아정한 기림을 전하고 자라서 높은 이름을 떨쳤는데, 하고자 하는 사랑을 버리고 집을 나와 배움을 닦아 묘한 이치를 깊이 궁구하여 자리가 초지에 올랐다. 큰 제자 제바라는 이가 있어 지혜가 밝고 민첩하며 기미와 정신이 깨어 있었는데, 그 스승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파타리성의 여러 배우는 이들이 외도에게 말이 굽혀 건추를 치지 못한 지 해와 달이 갑자기 옮겨 열두 해가 되었습니다. 감히 삿된 견해의 산을 꺾고 바른 법의 횃불을 사르고자 합니다」 하였다. 용맹이 이르기를 「파타리성의 외도는 배움이 넓다. 너는 그 짝이 아니니 내가 이제 가겠다」 하였다. 제바가 이르기를 「썩은 풀을 꺾는 데 어찌 반드시 산을 기울여야 하겠습니까. 감히 가리키신 가르침을 받아 여러 다른 배움을 물리치겠습니다. 큰 스승께서 외도의 뜻을 세우시면 제가 글을 따라 깨뜨려 쪼개어, 그 낫고 못함을 자세히 한 뒤에 갈 것을 꾀하겠습니다」 하였다. 용맹이 이에 외도의 뜻을 붙들어 세우고 제바가 따라 그 이치를 깨뜨리니, 이레 뒤에 용맹이 제 주장을 잃었다. 이윽고 탄식하여 이르기를 「그릇된 말은 잃기 쉽고 삿된 뜻은 붙들기 어렵다. 너는 가라. 저들을 꺾을 것이 틀림없다」 하였다. 제바보살이 일찍이 높은 이름을 떨쳤으므로 파타리성의 외도가 듣고, 곧 서로 불러 모아 왕에게 달려가 아뢰기를 「대왕께서 옛날 들어 살피시어 여러 사문에게 건추를 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원컨대 명을 내리시어 여러 문지기로 하여금 이웃 지경의 낯선 승려를 성에 들이지 못하게 하소서. 서로 무리 지어 도와 앞선 제도를 가벼이 고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들어주어 엄히 살피게 하였다. 제바가 이르렀으나 성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정한 명을 듣고 곧 옷을 바꾸어 승가지를 개어 풀 다발 속에 넣고, 옷자락을 걷고 빨리 달려 이고 들어갔다. 성 안에 이르러 풀을 버리고 옷을 입고 이 절에 이르러 쉬기를 구하였다. 아는 사람이 적어 재워 주는 이가 없으매 마침내 건추 대 위에서 잤다. 새벽에 이르러 곧 크게 떨쳐 쳤다. 무리가 듣고 살피니 어제 온 나그네 비구였다. 여러 절이 소리를 전하여 울려 응하니 왕이 듣고 끝까지 물었으나 그 처음을 알지 못하였다. 이 절에 이르러 다들 제바를 밀어 가리켰다. 제바가 이르기를 「무릇 건추란 쳐서 무리를 모으는 것이다. 있으면서 쓰지 않는다면 달아 둔들 무엇하겠는가」 하였다. 왕의 사람이 알려 이르기를 「앞선 때에 승려의 무리가 논의에 져서 치지 못하게 한 지 이미 열두 해다」 하니, 제바가 이르기를 「그런 일이 있었는가. 내가 오늘 법의 북을 다시 울리겠다」 하였다. 사자가 왕에게 알려 이르기를 「어떤 낯선 사문이 앞선 부끄러움을 씻고자 합니다」 하니, 왕이 이에 배우는 이들을 불러 모으고 정하여 이르기를 「논에서 제 주장을 잃으면 몸을 죽여 사죄하라」 하였다. 이에 외도가 다투어 기를 세우고 북을 쳐 시끄러이 다른 뜻을 이야기하며 저마다 말의 칼끝을 번쩍였다. 제바보살이 논하는 자리에 오르매 그 먼저 말함을 듣고 뜻을 따라 꺾어 깨뜨리니, 열흘도 되지 않아 여러 다른 도를 꺾었다. 나라의 왕과 대신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어 이 신령한 터를 세워 지극한 덕을 드러내었다.
협주 1
唐言龍猛,舊譯曰龍樹,非也。
당나라 말로는 용맹이다. 옛적에 옮기기를 용수라 하였으나 그르다.
17귀신의 말재주로 이름을 얻은 바라문
建擊犍椎窣堵波北有故基,昔鬼辯婆羅門所居處也。
건추를 친 탑 북쪽에 옛터가 있으니 옛날 귀신의 말재주를 쓰던 바라문이 살던 자리다.
18마명이 휘장을 걷다
初,此城中有婆羅門,葺宇荒藪,不交世路,祠鬼求福,魍魎相依,高論劇談,雅辭響應。人或激難,垂帷以對。舊學高才,無出其右,士庶翕然,仰之猶聖。有阿濕縛窶沙。菩薩者,智周萬物,道播三乘,每謂人曰:「此婆羅門學不師受,藝無稽古,屏居幽寂,獨擅高名,將非神鬼相依,妖魅所附,何能若是者乎?夫辯資鬼授,言不對人,辭說一聞,莫能再述,吾今往彼,觀其舉措。」遂即其廬,而謂之曰:「仰欽盛德,為日已久。幸願褰帷,敢伸宿志。」而婆羅門居然簡傲,垂帷以對,終不面談。馬鳴心知鬼魅,情甚自負,辭畢而退,謂諸人曰:「吾已知之,摧彼必矣。」尋往白王:「唯願垂許,與彼居士較論劇談。」王聞駭曰:「斯何人哉!若不證三明,具六通,何能與彼論乎?」命駕躬臨,詳鑒辯論。是時馬鳴論三藏微言,述五明大義,妙辯縱橫,高論清遠,而婆羅門既述辭已,馬鳴重曰:「失吾旨矣,宜重述之。」時婆羅門默然杜口,馬鳴叱曰:「何不釋難?所事鬼魅宜速授辭!」疾褰其帷,視占其怪。婆羅門惶遽而曰:「止!止!」馬鳴退而言曰:「此子今晨聲聞失墜。虛名非久,斯之謂也。」王曰:「非夫盛德,誰鑒左道?知人之哲,絕後光前。國有常典,宜旌茂實。」
처음에 이 성 안에 어떤 바라문이 있어 거친 늪에 집을 이고 세상길과 사귀지 않으며, 귀신에게 제사하여 복을 구하니 도깨비가 서로 의지하였다. 높이 논하고 세차게 이야기하는데 아정한 말이 울려 응하였다. 사람이 더러 몰아세워 힐난하면 휘장을 드리우고 대답하였다. 옛 배움과 높은 재주로 그 위에 나설 이가 없어, 선비와 백성이 한결같이 우러르기를 성인같이 하였다. 아습박구사보살이라는 이가 있어 지혜가 만물에 두루 하고 도가 삼승에 퍼졌는데, 늘 사람에게 이르기를 「이 바라문은 배움에 스승에게 받은 것이 없고 재주에 옛것을 상고함이 없다. 그윽하고 고요한 데 숨어 살면서 홀로 높은 이름을 떨치니, 귀신이 서로 의지하고 요망한 도깨비가 붙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무릇 말재주를 귀신에게 받으매 말이 사람을 마주하지 못하고, 말을 한 번 들으면 다시 펴지 못한다. 내가 이제 그리로 가서 그 하는 짓을 보겠다」 하였다. 마침내 그 집에 나아가 이르기를 「성한 덕을 우러러 흠모한 지 이미 오랩니다. 부디 휘장을 걷어 주시면 감히 지난날의 뜻을 펴겠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바라문은 태연히 거만하여 휘장을 드리우고 대답할 뿐 끝내 얼굴을 마주해 말하지 않았다. 마명이 마음으로 도깨비인 줄 알고 뜻이 매우 스스로 자부하여, 말을 마치고 물러나 여러 사람에게 이르기를 「내가 이미 알았다. 저를 꺾을 것이 틀림없다」 하였다. 이어 왕에게 가서 아뢰기를 「원컨대 허락하시어 저 거사와 견주어 논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듣고 놀라 이르기를 「이 어떤 사람인가. 만일 세 가지 밝음을 증득하고 여섯 신통을 갖추지 않았다면 어찌 저와 논할 수 있겠는가」 하고, 수레를 명하여 몸소 가서 논변을 자세히 살폈다. 이때 마명이 삼장의 은미한 말을 논하고 다섯 밝음의 큰 뜻을 펴니, 묘한 말재주가 가로세로 뻗고 높은 논이 맑고 멀었다. 바라문이 말을 마치매 마명이 거듭 이르기를 「내 뜻을 잃었다. 마땅히 다시 펴라」 하니, 그때 바라문이 잠잠히 입을 막았다. 마명이 꾸짖어 이르기를 「어찌 힐난을 풀지 않는가. 섬기는 도깨비는 마땅히 빨리 말을 주라」 하고, 급히 그 휘장을 걷어 그 괴이한 것을 살펴보았다. 바라문이 두려워 허둥대며 이르기를 「그치라, 그치라」 하였다. 마명이 물러나 이르기를 「이 사람이 오늘 아침 이름을 잃었다. 헛된 이름은 오래가지 못한다 함이 이를 이름이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성한 덕이 아니면 누가 삿된 도를 비추어 보겠는가. 사람을 아는 밝음이 뒤를 끊고 앞을 빛낸다. 나라에 늘 있는 법이 있으니 마땅히 그 무성한 실상을 드러내리라」 하였다.
협주 1
唐言馬鳴。
당나라 말로는 마명이다.
19지나간 네 부처의 자취
城西南隅二百餘里,有伽藍餘跡。其傍有窣堵波,神光時燭,靈瑞間發,近遠眾庶莫不祈請,是過去四佛坐及經行遺跡之所。
성 서남쪽 모퉁이 이백여 리에 절의 남은 자취가 있다. 그 곁에 탑이 있어 신묘한 빛이 때때로 비치고 신령한 상서가 이따금 일어나, 멀고 가까운 뭇 사람이 빌지 않는 이가 없다. 이는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다.
20제라택가 절
故伽藍西南行百餘里,至鞮羅擇迦伽藍。庭宇四院,觀閣三層,崇臺累仞,重門洞啟,頻毗娑羅王末孫之所建也。旌召高才,廣延俊德,異域學人,遠方髦彥,同類相趨,肩隨戾止。僧徒千數,並學大乘。中門當塗,有三精舍,上置輪相,鈴鐸虛懸,下建層基,軒檻周列,戶牖棟梁,壖垣階陛,金銅隱起,廁間莊嚴。中精舍佛立像高三丈,左多羅菩薩像,右觀自在菩薩像。凡斯三像,鍮石鑄成,威神肅然,冥鑒遠矣。精舍中各有舍利一升,靈光或照,奇瑞間起。
옛 절 서남쪽으로 백여 리를 가면 제라택가 절에 이른다. 뜰과 집이 네 채요 보는 다락이 세 층이며, 높은 대가 여러 길로 겹치고 겹문이 훤히 열렸으니 빈비사라왕의 끝 자손이 세운 것이다. 높은 재주를 기려 부르고 뛰어난 덕을 널리 맞아, 다른 지역의 배우는 이와 먼 지방의 빼어난 이들이 같은 무리끼리 서로 좇아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이르렀다. 승려가 천을 헤아리며 모두 대승을 배운다. 가운데 문 길목에 정사 셋이 있는데, 위에 바퀴 모양을 두고 방울을 허공에 달았으며, 아래에 층진 터를 세우고 난간을 두루 벌였다. 지게와 창과 마룻대와 들보와 담과 층계에 금과 구리가 도드라지고 사이사이 꾸며 엄정하다. 가운데 정사에는 부처의 선 상이 높이 세 길이요, 왼쪽에 다라보살 상, 오른쪽에 관자재보살 상이 있다. 무릇 이 세 상은 놋쇠로 부어 이룬 것으로 위엄과 신통이 엄숙하고 보이지 않는 비춤이 멀다. 정사마다 각각 사리 한 되가 있어 신령한 빛이 더러 비치고 기이한 상서가 이따금 일어난다.
21부처가 선정에 드신 큰 바위
鞮羅擇迦伽藍西南九十餘里,至大山,雲石幽蔚,靈仙攸舍。毒蛇、暴龍窟穴其藪,猛獸、摯鳥棲伏其林。山頂有大盤石,上建窣堵波,其高十餘尺,是佛入定處也。昔者如來降神至此,坐斯磐石,入滅盡定,時經宿焉。諸天靈聖供養如來,鼓天樂,雨天花。如來出定,諸天感慕,以寶金銀起窣堵波。去聖逾邈,寶變為石。自古迄今,人未有至。遙望高山,乃見異類,長蛇、猛獸群從右旋,天仙靈聖肩隨贊禮。
제라택가 절에서 서남쪽으로 구십여 리를 가면 큰 산에 이르는데, 구름과 바위가 그윽하고 우거져 신령한 신선이 사는 데다. 독한 뱀과 사나운 용이 그 늪에 굴을 파고, 사나운 짐승과 사나운 새가 그 숲에 깃들어 엎드린다. 산꼭대기에 큰 너럭바위가 있고 위에 탑을 세웠으니 그 높이가 십여 자다. 이는 부처가 선정에 드신 자리다. 옛날 여래가 신을 내려 여기에 이르러 이 너럭바위에 앉아 멸진정에 드시어 때가 하룻밤을 지났다. 여러 하늘과 신령한 성인이 여래께 공양하여 하늘 풍류를 울리고 하늘 꽃을 비 내렸다. 여래가 선정에서 나오시매 여러 하늘이 느껴 사모하여 보배와 금은으로 탑을 세웠다. 거룩한 이가 가신 지 더욱 아득하여 보배가 돌로 바뀌었다. 예부터 이제까지 사람이 이른 적이 없다. 멀리 높은 산을 바라보면 이에 남다른 무리가 보이니, 긴 뱀과 사나운 짐승이 무리 지어 따라 오른쪽으로 돌고 하늘 신선과 신령한 성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기려 예를 올린다.
22마게타국을 바라보신 자리
山東崗有窣堵波,在昔如來佇觀摩揭陁國所履之處也。
산 동쪽 언덕에 탑이 있으니 옛날 여래가 우두커니 서서 마게타국을 보시며 밟으신 자리다.
23덕혜보살이 외도를 항복받은 절
山西北三十餘里,山阿有伽藍,負嶺崇基,疏崖峙閣。僧徒五十餘人,並習大乘法教。瞿那末底菩薩伏外道之處。
산 서북쪽 삼십여 리 산굽이에 절이 있으니, 재를 등지고 터를 높이며 벼랑을 트고 다락을 세웠다. 승려가 오십여 명인데 모두 대승의 법과 가르침을 익힌다. 구나말저보살이 외도를 항복받은 자리다.
협주 1
唐言德慧。
당나라 말로는 덕혜다.
24마답바와의 이레
初,此山中有外道摩沓婆者,祖僧佉之法而習道焉。學窮內外,言極空有,名高前列,德重當時,君王珍敬,謂之國寶,臣庶宗仰,咸曰家師。鄰國學人承風仰德,儔之先進,誠博達也。食邑二城,環居封建。時南印度德慧菩薩幼而敏達,早擅精徽,學通三藏,理窮四諦。聞摩沓婆論極幽微,有懷挫銳,命一門人裁書謂曰:「敬問摩沓婆善安樂也。宜忘勞弊,精習舊學,三年之後,摧汝嘉聲。」如是第二、第三年中,每發使報。及將發跡,重裁書曰:「年期已極,學業何如?吾今至矣,汝宜知之。」摩沓婆甚懷惶懼,誡諸門人及以邑戶:「自今之後,不得居止沙門異道。」遞相宣告,勿有犯違。時德慧菩薩杖錫而來,至摩沓婆邑,邑人守約,莫有相舍,諸婆羅門更詈之曰:「斷髮殊服,何異人乎?宜時速去,勿此止也!」德慧菩薩欲摧異道,冀宿其邑,因以慈心,卑辭謝曰:「爾曹世諦之凈行,我又勝義諦之爭行,凈行既同,何為見拒?」婆羅門因不與言,但事驅逐。逐出邑外,入大林中。林中猛獸,群行為暴,有凈信者恐為獸害,乃束蘊持杖,謂菩薩曰:「南印度有德慧菩薩者,遠傳聲問,欲來論議,故此邑主懼墜嘉聲,重垂嚴制,勿止沙門。恐為物害,故來相援。行矣自安,勿有他慮。」德慧曰:「良告凈信,德慧者,我是也。」凈信聞已,更深恭敬,謂德慧曰:「誠如所告,宜可速行。」即出深林,止息空澤。凈信縱火持弓,周旋左右,夜分已盡,謂德慧曰:「可以行矣,恐人知聞,來相圖害。」德慧謝曰:「不敢忘德。」於是遂行,至王宮,謂門者曰:「今有沙門,自遠而至,願王垂許,與摩沓婆論。」王聞驚曰:「此妄人耳。」即命使臣往摩沓婆所,宣王旨曰:「有異沙門來求談論,今已瑩灑論場,宣告遠近,佇望來儀,願垂降趾。」摩沓婆問王使曰:「豈非南印度德慧論師乎?」曰:「然。」摩沓婆聞,心甚不悅,事難辭免,遂至論場。國王、大臣、士庶、豪族,咸皆集會,欲聽高談。德慧先立宗義,洎乎景落,摩沓婆辭以年衰,智昏捷對,請歸靜思,方酬來難。每事言歸,及旦升座,竟無異論。至第六日,歐血而死。其將終也,顧命妻曰:「爾有高才,無忘所恥!」摩沓婆死,匿不發喪,更服鮮綺,來至論會。眾咸喧嘩,更相謂曰:「摩沓婆自負才高,恥對德慧,故遣婦來,優劣明矣。」德慧菩薩謂其妻曰:「能制汝者,我已制之。」摩沓婆妻知難而退。王曰:「何言之密,彼便默然?」德慧曰:「惜哉,摩沓婆死矣!其妻欲來與我論耳。」王曰:「何以知之?願垂指告。」德慧曰:「其妻之來也,面有死喪之色,言含哀怨之聲,以故知之,摩沓婆死矣。能制汝者,謂其夫也。」王命使往觀,果如所議。王乃謝曰:「佛法玄妙,英賢繼軌,無為守道,含識沾化,依先國典,褒德有常。」德慧曰:「茍以愚昧,體道居貞,存止足,論濟物,將弘汲引,先摧傲慢,方便攝化,今其時矣。唯願大王以摩沓婆邑戶子孫千代常充增伽藍人,則垂誡來葉,流美無窮。唯彼凈信見匡護者福延於世,食用同僧,以勸清信,以褒厚德。」於是建此伽藍,式旌勝跡。
처음에 이 산 가운데 외도 마답바라는 이가 있어 승가의 법을 마루로 삼아 도를 익혔다. 배움이 안팎을 궁구하고 말이 빔과 있음을 다하여, 이름이 앞선 무리보다 높고 덕이 그때에 무거웠다. 임금이 진귀히 공경하여 나라의 보배라 하고 신하와 백성이 마루로 우러러 다들 우리 집 스승이라 하였다. 이웃 나라의 배우는 이들이 기풍을 이어 덕을 우러르며 앞서 나아간 이에 견주었으니 참으로 널리 통달한 이였다. 두 성을 식읍으로 받아 둘러 살며 봉해졌다. 그때 남인도의 덕혜보살이 어려서 민첩하고 통달하여 일찍이 정밀하고 아름다움을 떨쳤는데, 배움이 삼장에 통하고 이치가 네 가지 진리를 궁구하였다. 마답바의 논이 그윽하고 은미함을 다한다는 말을 듣고 그 날카로움을 꺾을 뜻을 품어, 한 문인에게 글을 지어 이르게 하기를 「삼가 마답바가 잘 편안한지 묻는다. 마땅히 수고롭고 지침을 잊고 옛 배움을 정밀히 익히라. 세 해 뒤에 네 아름다운 이름을 꺾겠다」 하였다. 이렇게 둘째 해와 셋째 해에도 늘 사자를 보내 알렸다. 장차 길을 나서려 할 때 거듭 글을 지어 이르기를 「해의 기약이 이미 다하였다. 배운 업이 어떠한가. 내가 이제 이르리니 너는 마땅히 알라」 하였다. 마답바가 몹시 두려워하여 여러 문인과 고을 사람에게 경계하기를 「이제부터 뒤로 사문과 다른 도를 머물러 재우지 말라」 하고, 서로 갈마들어 알려 어기는 이가 없게 하였다. 그때 덕혜보살이 지팡이를 짚고 와서 마답바의 고을에 이르렀는데, 고을 사람이 약속을 지켜 아무도 재워 주지 않았다. 여러 바라문이 다시 꾸짖어 이르기를 「머리를 깎고 옷이 다르니 무슨 다른 사람인가. 마땅히 때맞추어 빨리 가고 여기 머물지 말라」 하였다. 덕혜보살이 다른 도를 꺾고자 그 고을에서 자기를 바라, 그로 말미암아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을 낮추어 사죄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속의 진리로 깨끗한 행을 하고 나는 또 뛰어난 뜻의 진리로 다투는 행을 한다. 깨끗한 행이 이미 같은데 어찌 물리치는가」 하였다. 바라문이 그로 말미암아 말을 나누지 않고 다만 쫓아내는 일만 하였다. 고을 밖으로 쫓아내니 큰 숲에 들어갔다. 숲 속의 사나운 짐승이 무리 지어 다니며 사나움을 부리매, 어떤 맑게 믿는 이가 짐승에게 해를 입을까 두려워 섶을 묶고 지팡이를 들고 와서 보살에게 이르기를 「남인도에 덕혜보살이라는 이가 있어 멀리 소문이 전하기를 와서 논하려 한다 하므로, 이 고을 주인이 아름다운 이름을 떨어뜨릴까 두려워 거듭 엄한 규정을 내려 사문을 머물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짐승에게 해를 입을까 두려워 그래서 도우러 왔습니다. 가서 스스로 편안하시고 다른 걱정을 두지 마소서」 하였다. 덕혜가 이르기를 「좋이 알려 주는 맑게 믿는 이여, 덕혜란 내가 그다」 하였다. 맑게 믿는 이가 듣고 더욱 깊이 공경하여 덕혜에게 이르기를 「참으로 알려 주신 대로라면 마땅히 빨리 가셔야 합니다」 하였다. 곧 깊은 숲을 나와 빈 늪에서 쉬었다. 맑게 믿는 이가 불을 놓고 활을 들고 좌우를 돌다가, 밤이 다 나뉜 뒤 덕혜에게 이르기를 「이제 가셔야 합니다. 사람이 알고 들어 해칠 꾀를 낼까 두렵습니다」 하니, 덕혜가 사례하여 이르기를 「감히 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마침내 가서 왕궁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이르기를 「이제 어떤 사문이 먼 데서 이르렀으니, 원컨대 왕께서 허락하시어 마답바와 논하게 하소서」 하였다. 왕이 듣고 놀라 이르기를 「이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다」 하고, 곧 사신에게 명하여 마답바에게 가서 왕의 뜻을 펴 이르기를 「낯선 사문이 와서 담론을 구하니, 이제 이미 논하는 마당을 씻어 닦고 멀고 가까운 데 알려 오시기를 기다리오. 부디 걸음을 내려 주시오」 하게 하였다. 마답바가 왕의 사신에게 물어 이르기를 「남인도의 덕혜 논사가 아닌가」 하니, 이르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마답바가 듣고 마음이 몹시 기쁘지 않았으나 일을 사양해 면하기 어려워 마침내 논하는 마당에 이르렀다. 나라의 왕과 대신과 선비와 백성과 호족이 다 모여 높은 이야기를 들으려 하였다. 덕혜가 먼저 마루의 뜻을 세우고 해가 질 무렵에 이르매, 마답바가 나이가 쇠하여 지혜가 어두워 빨리 대답하지 못한다고 사양하고, 돌아가 고요히 생각하여 바야흐로 오는 힐난에 갚기를 청하였다. 일마다 돌아간다 말하고 아침이 되어 자리에 올라도 마침내 다른 논이 없었다. 엿새째에 이르러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가 마치려 할 때 아내에게 돌아보며 명하기를 「너에게 높은 재주가 있으니 부끄러움을 잊지 말라」 하였다. 마답바가 죽으매 숨기고 초상을 내지 않고, 다시 곱고 산뜻한 옷을 입고 논하는 모임에 왔다. 무리가 다 떠들며 서로 이르기를 「마답바가 스스로 재주 높음을 믿었는데 덕혜와 마주하기를 부끄러워하여 아내를 보냈으니 낫고 못함이 분명하다」 하였다. 덕혜보살이 그 아내에게 이르기를 「너를 누를 수 있는 이를 내가 이미 눌렀다」 하니, 마답바의 아내가 어려운 줄 알고 물러갔다. 왕이 이르기를 「무슨 말이 그리 은밀하기에 저가 곧 잠잠한가」 하니, 덕혜가 이르기를 「아깝습니다, 마답바가 죽었습니다. 그 아내가 와서 저와 논하려 한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어찌 아는가. 부디 가리켜 말해 주오」 하니, 덕혜가 이르기를 「그 아내가 올 때 얼굴에 죽음과 초상의 빛이 있고 말에 슬프고 원망하는 소리를 머금었으므로, 그로써 마답바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너를 누를 수 있는 이란 그 남편을 이릅니다」 하였다. 왕이 사신에게 명하여 가서 보게 하니 과연 의논한 바와 같았다. 왕이 이에 사례하여 이르기를 「불법이 그윽하고 묘하여 뛰어난 어진 이가 자취를 잇습니다. 함이 없이 도를 지키매 뜻 있는 것들이 교화에 젖으니, 앞선 나라의 법에 따라 덕을 기림에 늘 있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였다. 덕혜가 이르기를 「제가 어리석음으로 도를 몸받아 곧게 살며, 그침과 넉넉함을 두고 만물을 건짐을 논합니다. 장차 널리 이끌어 들이려면 먼저 거만함을 꺾어야 하니, 방편으로 거두어 교화함이 이제 그때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마답바의 고을 사람 자손 천 대를 늘 절 사람으로 채우게 하소서. 그러면 오는 세대에 가르침을 드리워 아름다움이 끝없이 흐를 것입니다. 오직 저 맑게 믿는 이로서 바로잡아 지켜 준 이는 복이 세상에 뻗게 하시고, 먹고 쓰는 것을 승려와 같이하여 맑은 믿음을 권하고 두터운 덕을 기리소서」 하였다. 이에 이 절을 세워 법식대로 뛰어난 자취를 드러내었다.
25자리를 든 종이 논한 자리
初,摩沓婆論敗之後,十數凈行逃難鄰國,告諸外道恥辱之事,招募英俊,來雪前恥。王既珍敬德慧,躬往請曰:「今諸外道不自量力,結黨連群,敢聲論鼓,惟願大師摧諸異道。」德慧曰:「宜集論者。」於是外道學人欣然相慰:「我曹今日,勝其必矣。」時諸外道闡揚義理,德慧菩薩曰:「今諸外道逃難遠遊,如王先制,皆是賤人,我今如何與彼對論?」德慧有負座豎,素聞餘論,頗閑微言,侍立於側,聽諸高談。德慧拊其座而言曰:「床,汝可論。」眾咸驚駭,異其所命。時負座豎便即發難,深義泉湧,清辯響應。三復之後,外道失宗,重挫其銳,再折其翮。自伏論已來,為伽藍邑戶。
처음에 마답바가 논에 진 뒤 십수의 깨끗한 행을 하는 이들이 이웃 나라로 난을 피해, 여러 외도에게 부끄럽고 욕된 일을 알리고 뛰어난 이를 불러 모아 앞선 부끄러움을 씻으러 왔다. 왕이 이미 덕혜를 진귀히 공경하여 몸소 가서 청하여 이르기를 「이제 여러 외도가 제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리를 맺고 떼를 이어 감히 논하는 북을 울립니다. 오직 큰 스승께서 여러 다른 도를 꺾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덕혜가 이르기를 「마땅히 논할 이를 모으소서」 하였다. 이에 외도의 배우는 이들이 기꺼이 서로 위로하기를 「우리가 오늘 이길 것이 틀림없다」 하였다. 그때 여러 외도가 뜻과 이치를 펴 드날리니, 덕혜보살이 이르기를 「이제 여러 외도가 난을 피해 멀리 노닌 이들이니, 왕의 앞선 규정과 같이 다 천한 사람이다. 내가 이제 어찌 저들과 마주해 논하겠는가」 하였다. 덕혜에게 자리를 지고 다니는 종이 있어, 본디 남은 논을 듣고 은미한 말에 자못 익숙하였는데 곁에 모시고 서서 여러 높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덕혜가 그 자리를 두드리며 이르기를 「평상아, 네가 논하라」 하니, 무리가 다 놀라 그 명을 이상히 여겼다. 그때 자리를 진 종이 곧 힐난을 내니 깊은 뜻이 샘솟고 맑은 말재주가 울려 응하였다. 세 번 거듭한 뒤에 외도가 마루를 잃으니, 그 날카로움을 거듭 꺾고 그 죽지를 다시 부러뜨린 것이다. 논에 항복한 뒤로 절의 고을 사람이 되었다.
26시라발타라 절
德慧伽藍西南二十餘里,至孤山,有伽藍,屍羅跋陁羅論師論義得勝,舍邑建焉。竦一危峰,如窣堵波,置佛舍利。
덕혜의 절 서남쪽으로 이십여 리를 가면 외딴 산에 이르는데 절이 있으니, 시라발타라 논사가 뜻을 논하여 이기고 고을을 내놓아 세운 것이다. 한 위태로운 봉우리가 솟아 탑 같으니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
협주 1
唐言戒賢。
당나라 말로는 계현이다.
27계현이 서른에 외도를 꺾다
論師,三摩呾咤國之王族,婆羅門之種也。少好學,有風操,遊諸印度,詢求明哲。至此國那爛陁僧伽藍,遇護法菩薩,聞法信悟,請服染衣,諮以究竟之致,問以解脫之路。既窮至理,亦究微言,名擅當時,聲高異域。南印度有外道,探賾素隱,窮幽洞微,聞護法高名,起我慢深嫉,不阻山川,擊鼓求論,曰:「我,南印度人也。承王國內有大論師,我雖不敏,願與詳議!」王曰:「有之,誠如議也。」乃命使臣請護法曰:「南印度有外道,不遠千里,來求較論。惟願降跡,赴集論場。」護法聞已,攝衣將往。門人戒賢者,後進之翹楚也,前進請曰:「何遽行乎?」護法曰:「自慧日潛暉,傳燈寂照,外道蟻聚,異學蜂飛,故我今者,將摧彼論。」戒賢曰:「恭聞餘論,敢摧異道。」護法知其俊也,因而允焉。是時戒賢年甫三十,眾輕其少,恐難獨任。護法知眾心之不平,乃解之曰:「有貴高明,無云齒歲,以今觀之,破彼必矣。」逮乎集論之日,遠近相趨,少長咸萃。外道弘聞大猷,盡其幽致;戒賢循理責實,深極幽玄。外道辭窮,蒙恥而退。王用酬德,封此邑城。論師辭曰:「染衣之士,事資知足,清凈自守,何以邑為?」王曰:「法王晦跡,智舟淪湑,不有旌別,無勵後學。為弘正法,願垂哀納。」論師辭不獲已,受此邑焉。便建伽藍,窮諸規矩,舍其邑戶,式修供養。
논사는 삼마달타국의 왕족이요 바라문의 겨레다. 어려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기풍과 지조가 있어 여러 인도를 노닐며 밝고 어진 이를 물어 찾았다. 이 나라 나란타 절에 이르러 호법보살을 만나 법을 듣고 믿어 깨달아, 물들인 옷 입기를 청하고 마침내 이르는 뜻을 여쭈며 벗어나는 길을 물었다. 이미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고 또 은미한 말을 다하매, 이름이 그때에 뛰어나고 소리가 다른 지역에 높았다. 남인도에 어떤 외도가 있어 깊은 것을 더듬고 숨은 것을 찾아 그윽함을 궁구하고 은미함을 꿰뚫었는데, 호법의 높은 이름을 듣고 나를 내세우는 마음과 깊은 시기가 일어 산과 내를 막히다 여기지 않고 북을 쳐 논하기를 구하며 이르기를 「나는 남인도 사람이오. 왕의 나라 안에 큰 논사가 있다 들었소.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자세히 의논하기를 원하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있다. 참으로 의논한 대로다」 하고, 이에 사신에게 명하여 호법에게 청하기를 「남인도에 어떤 외도가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견주어 논하기를 구하러 왔소. 오직 걸음을 내리시어 논하는 마당에 나와 모이기를 바라오」 하였다. 호법이 듣고 옷을 여미고 가려 하매, 문인 계현이라는 이가 뒤에 나아가는 이 가운데 빼어난 이였는데 앞으로 나아가 청하여 이르기를 「어찌 급히 가십니까」 하니, 호법이 이르기를 「지혜의 해가 빛을 감춘 뒤로 등불을 전하여 고요히 비추는데, 외도가 개미처럼 모이고 다른 배움이 벌처럼 나는구나. 그러므로 내가 이제 저 논을 꺾으려 한다」 하였다. 계현이 이르기를 「남은 논을 삼가 들었으니 감히 다른 도를 꺾겠습니다」 하니, 호법이 그가 뛰어남을 알고 그로 말미암아 허락하였다. 이때 계현의 나이 겨우 서른이라 무리가 그 젊음을 가벼이 여겨 홀로 맡기 어려울까 두려워하였다. 호법이 무리의 마음이 편치 않음을 알고 이에 풀어 이르기를 「높고 밝음을 귀히 여길 뿐 나이를 말하지 말라. 이제 보건대 저를 깨뜨릴 것이 틀림없다」 하였다. 논을 모으는 날에 이르러 멀고 가까운 데서 서로 달려와 젊은이와 어른이 다 모였다. 외도가 큰 도리를 널리 듣고 그 그윽한 뜻을 다하였으나, 계현이 이치를 좇아 실상을 따져 그윽하고 아득한 데를 깊이 다하니 외도가 말이 다하여 부끄러움을 입고 물러갔다. 왕이 덕에 갚으려고 이 고을 성을 봉하니, 논사가 사양하여 이르기를 「물들인 옷을 입은 선비는 일에 넉넉함을 아는 것을 밑천으로 삼고 맑고 깨끗함을 스스로 지키니 고을을 무엇하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법왕이 자취를 감추고 지혜의 배가 잠기니, 드러내어 가르지 않으면 뒷배움을 힘쓰게 할 수 없습니다. 바른 법을 넓히기 위하여 부디 가엾이 여겨 받아 주소서」 하였다. 논사가 사양하다 못하여 이 고을을 받았다. 곧 절을 세워 여러 법도를 다하고 그 고을 사람을 내놓아 법식대로 공양을 닦았다.
28가야성
戒賢伽藍西南行四五十里,渡尼連禪河,至伽耶城。甚險固,少居人,唯婆羅門有千餘家,大仙人之祚胤也,王所不臣,眾咸宗敬。
계현의 절에서 서남쪽으로 사오십 리를 가서 니련선하를 건너면 가야성에 이른다. 몹시 험하고 굳으며 사는 사람이 적은데, 오직 바라문이 천여 집이 있으니 큰 선인의 자손이다. 왕이 신하로 삼지 않고 뭇 사람이 다 마루로 공경한다.
29죄를 씻는다는 샘
城北三十餘里,有清泉,印度相傳謂之聖水,凡有飲濯,罪垢消除。
성 북쪽 삼십여 리에 맑은 샘이 있으니 인도에서 서로 전하여 성스러운 물이라 한다. 무릇 마시거나 씻으면 죄와 때가 사라져 없어진다고 한다.
30가야산
城西南五六里至伽耶山。溪谷沓冥,峰巖危險,印度國俗稱曰靈山。自昔君王馭宇承統,化洽遠人,德隆前代,莫不登封而告成功。山頂上有石窣堵波,高百餘尺,無憂王之所建也,靈鑒潛被,神光時燭,昔如來於此演說《寶雲》等經。
성 서남쪽 대여섯 리에 가야산에 이른다. 시내와 골짜기가 겹쳐 어둡고 봉우리와 바위가 위태로우니, 인도의 나라 풍속에 영산이라 일컫는다. 예부터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고 대통을 이어 교화가 먼 사람에게 흡족하고 덕이 앞선 시대보다 높으면, 봉해 올라 공을 이루었음을 고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산꼭대기에 돌 탑이 있으니 높이가 백여 자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신령한 비춤이 남몰래 미치고 신묘한 빛이 때때로 비친다. 옛날 여래가 여기서 『보운』 들의 경을 펴 말씀하셨다.
31가섭파가 난 마을
伽耶山東南有窣堵波,迦葉波本生邑也。其南有二窣堵波,則迦耶迦葉波、捺地迦葉波事火之處。
가야산 동남쪽에 탑이 있으니 가섭파가 난 마을이다. 그 남쪽에 탑 둘이 있으니 곧 가야가섭파와 날지가섭파가 불을 섬기던 자리다.
협주 1
舊曰那提迦葉,訛也。洎諸迦葉,例無波字,略也。
옛적에는 나제가섭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여러 가섭에 이르러서는 다 파 자가 없으니 줄인 것이다.
32전정각산 — 산이 흔들린 자리
伽耶迦葉波事火東,渡大河,至缽羅笈菩提出。如來勤求六歲,未成正覺,後舍苦行,示受乳糜,行自東北,遊目此山,有懷幽寂,欲證正覺。自東北岡登以至頂,地既震動,山又傾搖。山神惶懼,告菩薩曰:「此山者,非成正覺之福地也。若止於此,入金剛定,地當震陷,山亦傾覆。」菩薩下自西南,止半崖中,背巖面澗,有大石室,菩薩即之,加跌坐焉,地又震動,山復傾搖。時凈居天空中唱曰:「此非如來成正覺處。自此西南十四五里,去苦行處不遠,有卑缽羅樹,下有金剛座,去來諸佛咸於此座而成正覺,願當就彼。」菩薩方起,室中龍曰:「斯室清勝,可以證聖,唯願慈悲,勿有遺棄。」菩薩既知非取證所,為遂龍意,留影而去。諸天前導,往菩提樹。逮乎無憂王之興也,菩薩登山上下之跡,皆樹旌表,建窣堵波,度量雖殊,靈應莫異,或花雨空中,或光照幽谷。每歲罷安居日,異方法俗,登彼供養,信宿乃還。
가야가섭파가 불을 섬기던 자리 동쪽에서 큰 강을 건너면 발라급보리에 이른다. 여래가 여섯 해를 부지런히 구하고도 바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시고, 뒤에 고행을 버려 젖죽 받으심을 보이시고 동북쪽으로 가시다가 이 산에 눈을 두어 그윽하고 고요함을 마음에 품고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려 하셨다. 동북쪽 언덕에서 올라 꼭대기에 이르매 땅이 이미 흔들리고 산이 또 기울어 흔들렸다. 산신이 두려워 보살에게 아뢰기를 「이 산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실 복된 땅이 아닙니다. 만일 여기 머물러 금강정에 드시면 땅이 마땅히 흔들려 꺼지고 산도 기울어 엎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보살이 서남쪽으로 내려와 벼랑 가운데 머무시니, 바위를 등지고 시내를 보며 큰 석실이 있었다. 보살이 거기 나아가 가부좌를 하시매 땅이 또 흔들리고 산이 다시 기울어 흔들렸다. 그때 정거천이 허공에서 외쳐 이르기를 「이는 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이루실 자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열네댓 리, 고행하시던 자리에서 멀지 않은 데 비발라 나무가 있고 그 아래 금강좌가 있어, 오고 가는 여러 부처가 다 이 자리에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원컨대 마땅히 저리로 나아가소서」 하였다. 보살이 바야흐로 일어나시매 석실 안의 용이 이르기를 「이 방은 맑고 뛰어나 거룩함을 증득하실 만합니다. 오직 자비를 베푸시어 버리지 마소서」 하였다. 보살이 이미 증득할 자리가 아닌 줄 아셨으나 용의 뜻을 이루어 주려고 그림자를 남기고 가셨다. 여러 하늘이 앞에서 이끌어 보리수로 가셨다. 무우왕이 일어나매 보살이 산을 오르내리신 자취마다 다 표를 세우고 탑을 세우니, 크기는 비록 다르나 신령한 응함은 다르지 않아 더러 꽃이 공중에서 비 오고 더러 빛이 그윽한 골짜기를 비춘다. 해마다 안거를 파하는 날이면 다른 지방의 중과 속인이 저기 올라 공양하고 이틀 밤을 묵고서야 돌아온다.
협주 2
唐言前正覺山,如來將證正覺,先登此山,故云前正覺也。
당나라 말로는 전정각산이다. 여래가 장차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시려 할 때 먼저 이 산에 오르셨으므로 전정각이라 한 것이다.
影在昔日,賢愚咸睹,洎於今時,或有得見。
그림자가 옛날에는 어진 이나 어리석은 이나 다 보았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더러 보는 이가 있다.
33보리수 담
前正覺山西南行十四五里,至菩提樹。周垣磚壘,崇峻險固,東西長,南北狹,周五百餘步。奇樹名花,連陰接影;細莎異草,彌漫緣被。正門東辟,對尼連禪河,南門接大花池,西厄險固,北門通大伽藍。壖垣內地,聖跡相鄰,或窣堵波,或復精舍,並贍部洲諸國君王、大臣、豪族欽承遺教,建以記焉。
전정각산에서 서남쪽으로 열네댓 리를 가면 보리수에 이른다. 둘레 담은 벽돌을 쌓아 높고 험하고 굳으며,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좁아 둘레가 오백여 걸음이다. 기이한 나무와 이름난 꽃이 그늘을 이어 그림자를 잇대고, 가는 사초와 남다른 풀이 널리 퍼져 덮였다. 바른 문은 동쪽으로 열려 니련선하를 마주하고, 남문은 큰 꽃 못에 닿으며, 서쪽은 험하고 굳은 데로 막히고 북문은 큰 절로 통한다. 담 안 땅에는 거룩한 자취가 서로 잇달아 더러 탑이요 더러 정사인데, 다 섬부주 여러 나라의 임금과 대신과 호족이 남기신 가르침을 공손히 이어 세워 적어 둔 것이다.
34금강좌
菩提樹垣正中,有金剛座。昔賢劫初成,與大地俱起,據三千大千世界之中,下極金輪,上侵地際,金剛所成,周百餘步,賢劫千佛坐之而入金剛定,故曰金剛座焉。證聖道所,亦曰道場,大地震動,獨無傾搖。是故如來將證正覺也,歷此四隅,地皆傾動,後至此處,安靜不傾。自入末劫,正法浸微,沙土彌覆,無復得見。佛涅槃後,諸國君王傳聞佛說金剛座量,遂以兩軀觀自在菩薩像南北標界,東面而坐。聞諸耆舊曰:「此菩薩像身沒不見,佛法當盡。」今南隅菩薩沒過胸臆矣。
보리수 담 한가운데에 금강좌가 있다. 옛날 현겁이 처음 이루어질 때 큰 땅과 함께 일어나 삼천대천세계의 한가운데 자리하니, 아래로는 금륜에 닿고 위로는 땅 끝에 미치며 금강으로 이루어져 둘레가 백여 걸음이다. 현겁의 천 부처가 여기 앉아 금강정에 드시므로 금강좌라 한다. 거룩한 도를 증득하신 자리이므로 또한 도량이라 한다. 큰 땅이 흔들려도 홀로 기울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래가 장차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시려 할 때 이 네 모퉁이를 지나시매 땅이 다 기울어 움직였으나, 뒤에 이 자리에 이르시매 편안하고 고요하여 기울지 않았다. 끝 겁에 든 뒤로 바른 법이 점점 스러지고 모래와 흙이 두루 덮여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부처가 열반하신 뒤 여러 나라 임금이 부처가 말씀하신 금강좌의 크기를 전해 듣고, 마침내 관자재보살 상 두 몸으로 남북에 경계를 표하되 동쪽을 보고 앉게 하였다. 늙은이들에게 들으니 이르기를 「이 보살 상이 몸이 잠겨 보이지 않게 되면 불법이 마땅히 다한다」 하는데, 이제 남쪽 모퉁이 보살은 잠긴 것이 가슴을 지났다.
35보리수 — 세 번 베이고 세 번 살아나다
金剛座上菩提樹者,即畢缽羅之樹也。昔佛在世,高數百尺,屢經殘伐,猶高四五丈。佛坐其下成等正覺,因而謂之菩提樹焉。莖幹黃白,樹葉青翠,冬夏不雕,光鮮無變。每至如來涅槃之日,葉皆雕落,頃之復故。是日也,諸國君王,異方法俗,數千萬眾,不召而集,香水香乳,以溉以洗,於是奏音樂,列香花,燈炬繼日,競修供養。如來寂滅之後,無憂王之初嗣位也,信受邪道,毀佛遺跡,興發兵徒,躬臨剪伐。根莖枝葉,分寸斬截,次西數十步而積聚焉,令事火婆羅門燒以祠天。煙焰未靜,忽生兩樹,猛火之中,茂葉含翠,因而謂之灰菩提樹。無憂王睹異悔過,以香乳溉餘根,洎乎將旦,樹生如本。王見靈怪,重深欣慶,躬修供養,樂以忘歸。王妃素信外道,密遣使人,夜分之後,重伐其樹。無憂王旦將禮敬,惟見蘗株,深增悲慨,至誠祈請,香乳溉灌,不日還生。王深敬異,疊石周垣,其高十餘尺,今猶見在。近設賞迦王者,信受外道,毀嫉佛法,壞僧伽藍,伐菩提樹,掘至泉水,不盡根柢,乃縱火焚燒,以甘蔗汁沃之,欲其焦爛,絕滅遺萌。數月後,摩揭陁國補剌拿伐摩王,無憂王之末孫也,聞而嘆曰:「慧日已隱,惟餘佛樹,今復摧殘,生靈何睹?」舉身投地,哀感動物。以數千牛構乳而溉,經夜樹生,其高丈餘。恐後剪伐,周峙石垣,高二丈四尺。故今菩提樹隱於石壁,上出二丈餘。
금강좌 위의 보리수는 곧 필발라 나무다. 옛날 부처가 세상에 계실 때 높이가 수백 자였는데, 여러 번 베임을 겪고도 아직 높이가 네댓 길이다. 부처가 그 아래 앉아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으므로 그로 말미암아 보리수라 한다. 줄기는 누렇고 희며 잎은 푸르고 짙어 겨울과 여름에 시들지 않고 빛과 산뜻함이 변하지 않는다. 여래가 열반하신 날마다 잎이 다 시들어 떨어졌다가 이윽고 다시 전과 같아진다. 이날에는 여러 나라 임금과 다른 지방의 중과 속인 수천만 무리가 부르지 않아도 모여, 향물과 향유로 물 대고 씻으며, 이에 음악을 아뢰고 향과 꽃을 벌이며 등불과 횃불이 날을 이어 다투어 공양을 닦는다. 여래가 고요히 사라지신 뒤 무우왕이 처음 자리를 이었을 때 삿된 도를 믿고 받아 부처의 남기신 자취를 헐며, 군사를 일으켜 몸소 가서 베고 잘랐다.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을 마디마디 베어 서쪽 수십 걸음에 쌓아 두고, 불을 섬기는 바라문에게 사르게 하여 하늘에 제사하게 하였다. 연기와 불꽃이 아직 자지 않았는데 홀연히 두 나무가 나서 사나운 불 가운데 무성한 잎이 푸름을 머금었다. 그로 말미암아 이를 재 보리수라 한다. 무우왕이 이적을 보고 허물을 뉘우쳐 향유로 남은 뿌리에 물을 대니, 날이 밝을 무렵에 나무가 본디대로 살아났다. 왕이 신령한 괴이함을 보고 거듭 깊이 기뻐하여 몸소 공양을 닦고 즐거워 돌아가기를 잊었다. 왕비가 본디 외도를 믿어 남몰래 사람을 보내 밤이 나뉜 뒤에 그 나무를 거듭 베게 하였다. 무우왕이 아침에 예를 올리려다가 오직 그루터기만 보고 슬픔과 개탄이 깊이 더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빌며 향유로 물을 대니 며칠 안 되어 다시 살아났다. 왕이 깊이 공경하고 이상히 여겨 돌을 포개어 둘레에 담을 쌓으니 그 높이가 십여 자다. 이제도 아직 보인다. 요즈음 설상가왕이라는 이가 외도를 믿고 받아 불법을 헐고 시기하여, 절을 무너뜨리고 보리수를 베며 샘물이 나도록 파고도 뿌리를 다하지 못하매, 이에 불을 놓아 태우고 사탕수수 즙을 부어 타 문드러지게 하여 남은 싹을 끊어 없애려 하였다. 몇 달 뒤에 마게타국의 보랄나벌마왕은 무우왕의 끝 자손인데, 듣고 탄식하여 이르기를 「지혜의 해가 이미 숨고 오직 부처의 나무만 남았는데 이제 다시 꺾이니, 산 것들이 무엇을 보겠는가」 하고, 온몸을 땅에 던지니 슬픔이 만물을 움직였다. 수천 소의 젖을 짜서 물을 대니 밤을 지나 나무가 나서 그 높이가 한 길 남짓이었다. 뒤에 다시 벨까 두려워 둘레에 돌담을 높이 세우니 높이가 두 길 넉 자다. 그러므로 이제 보리수가 돌벽에 가려 위로 두 길 남짓 솟아 있다.
협주 1
唐言滿胄。
당나라 말로는 만주다.
36보리수 동쪽 정사
菩提樹東有精舍,高百六七十尺,下基面廣二十餘步,壘以青磚,塗以石灰。層龕皆有金像,四壁鏤作奇制,或連珠形,或天仙像,上置金銅阿摩落迦果。東面接為重閣,檐宇特起三層,榱柱棟梁,戶扉寮牖,金銀雕鏤以飾之,珠玉廁錯以填之。奧室邃宇,洞戶三重。外門左右各有龕室,右則觀自在菩薩像,左則慈氏菩薩像,白銀鑄成,高十餘尺。
보리수 동쪽에 정사가 있으니 높이가 백예순일흔 자요, 아래 터의 한 면 너비가 이십여 걸음이다. 푸른 벽돌을 쌓고 석회를 발랐다. 층진 감실마다 다 금 상이 있고 네 벽에 새겨 기이한 짜임을 지었으니, 더러는 구슬을 이은 모양이요 더러는 하늘 신선의 상이며, 위에는 금과 구리로 만든 아마락가 열매를 두었다. 동쪽으로 이어 겹다락을 지었는데 처마가 유난히 세 층으로 일어섰고, 서까래와 기둥과 마룻대와 들보와 지게문과 창을 금과 은으로 새겨 꾸미고 구슬과 옥을 사이사이 끼워 메웠다. 그윽한 방과 깊은 집에 통한 문이 세 겹이다. 바깥문 좌우에 각각 감실이 있어 오른쪽은 관자재보살 상이요 왼쪽은 자씨보살 상인데, 백은으로 부어 이루었고 높이가 십여 자다.
협주 1
亦謂寶瓶,又稱寶壺。
또한 보배 병이라 이르고 또 보배 항아리라 일컫는다.
37두 형제 바라문이 세우다
精舍故地,無憂王先建小精舍,後有婆羅門更廣建焉。初,有婆羅門不信佛法,事大自在天,傳聞天神在雪山中,遂與其弟往求願焉。天曰:「凡諸願求,有福方果。非汝所求,非我能遂。」婆羅門曰:「修何福可以遂心?」天曰:「欲植善種,求勝福田,菩提樹者,證佛果處也。宜時速返,往菩提樹,建大精舍,穿大水池,興諸供養,所願當遂。」婆羅門受天命,發大信心,相率而返,兄建精舍,弟鑿水池,於是廣修供養,勤求心願,後皆果遂,為王大臣,凡得祿賞,皆入檀舍。
정사의 옛터에는 무우왕이 먼저 작은 정사를 세웠는데, 뒤에 어떤 바라문이 다시 넓혀 세웠다. 처음에 어떤 바라문이 불법을 믿지 않고 대자재천을 섬겼는데, 천신이 설산 가운데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마침내 그 아우와 함께 가서 원을 구하였다. 하늘이 이르기를 「무릇 여러 원하고 구하는 것은 복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네가 구할 바가 아니요 내가 이룰 수 있는 바도 아니다」 하니, 바라문이 이르기를 「어떤 복을 닦아야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까」 하였다. 하늘이 이르기를 「착한 씨를 심고자 하여 뛰어난 복밭을 구한다면, 보리수는 부처의 열매를 증득하신 자리다. 마땅히 때맞추어 빨리 돌아가 보리수로 가서 큰 정사를 세우고 큰 물 못을 파며 여러 공양을 일으키면 원하는 바가 마땅히 이루어지리라」 하였다. 바라문이 하늘의 명을 받고 큰 믿는 마음을 내어 서로 이끌고 돌아와, 형은 정사를 세우고 아우는 물 못을 팠다. 이에 공양을 널리 닦고 마음의 원을 부지런히 구하니 뒤에 다 이루어져 왕의 큰 신하가 되었고, 무릇 녹과 상을 얻으면 다 보시에 들였다.
38자씨보살이 새긴 불상
精舍既成,招募工人,欲圖如來初成佛像。曠以歲月,無人應召。久之,有婆羅門來告眾曰:「我善圖寫如來妙相。」眾曰:「今將造像,夫何所須?」曰:「香泥耳。宜置精舍之中,並一燈照我,入已,堅閉其戶,六月後乃可開門。」時諸僧眾皆如其命。尚餘四日,未滿六日,眾咸駭異,開以觀之。見精舍內佛像儼然,結加跌坐,右足居上,左手斂,右手垂,東面而坐,肅然如在。座高四尺二寸,廣丈二尺五寸,像高丈一尺五寸,兩膝相去八尺八寸,兩肩六尺二寸,相好具足,慈顏若真,惟右乳上塗瑩未周。既不見人,方驗神鑒,眾咸悲嘆,殷勤請知。有一沙門,宿心淳質,乃感夢見往婆羅門而告曰:「我是慈氏菩薩,恐工人之思不測聖容,故我躬來圖寫佛像。垂右手者,昔如來之將證佛果,天魔來嬈,地神告至,其一先出,助佛降魔,如來告曰:『汝勿憂怖,吾以忍力,降彼必矣。』魔王曰:『誰為明證?』如來乃垂手指地,言:『此有證。』是時第二地神踴出作證,故今像手仿昔下垂。」眾知靈鑒,莫不悲感。於是乳上未周,填廁眾寶,珠瓔寶冠,奇珍交飾。設賞迦王伐菩提樹已,欲毀此像,既睹慈顏,心不安忍,回駕將返,命宰臣曰:「宜除此佛像,置大自在天形。」宰臣受旨,懼而嘆曰:「毀佛像則歷劫招殃,違王命乃喪身滅族,進退若此,何所宜行?」乃召信心以為役使,遂於像前橫壘磚壁,心慚冥暗,又置明燈,磚壁之前畫自在天。功成報命,王聞心懼,舉身生皰,肌膚攫裂,居未久之,便喪沒矣。宰臣馳返,毀除障壁,時經多日,燈猶不滅。像今尚在,神工不虧。既處奧室,燈炬相繼,欲睹慈顏,莫由審察,必於晨朝持大明鏡,引光內照,乃睹靈相。夫有見者,自增悲感。
정사가 이미 이루어지매 장인을 불러 모아 여래가 처음 부처를 이루신 상을 그려 만들려 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도 부름에 응하는 이가 없었다. 오래되어 어떤 바라문이 와서 무리에게 알려 이르기를 「내가 여래의 묘한 모습을 잘 그려 낼 수 있소」 하니, 무리가 이르기를 「이제 장차 상을 만들려 하는데 무엇이 필요하오」 하였다. 이르기를 「향기로운 진흙뿐이오. 마땅히 정사 안에 두고 등불 하나로 나를 비추게 하되, 내가 든 뒤에는 그 문을 굳게 닫고 여섯 달 뒤에야 문을 열 수 있소」 하였다. 그때 여러 승려가 다 그 명대로 하였다. 아직 나흘이 남아 여섯 달이 차지 않았는데, 무리가 다 놀라고 이상히 여겨 열고 보았다. 정사 안에 부처의 상이 엄연히 가부좌를 하고 오른발을 위에 두며 왼손을 거두고 오른손을 드리워 동쪽을 보고 앉아 엄숙하기가 계신 듯한 것을 보았다. 자리 높이가 넉 자 두 치요 너비가 한 길 두 자 다섯 치며, 상의 높이가 한 길 한 자 다섯 치요 두 무릎 사이가 여덟 자 여덟 치며 두 어깨가 여섯 자 두 치인데, 거룩한 몸매가 다 갖추어지고 자애로운 얼굴이 참된 듯하였다. 오직 오른쪽 젖 위에만 바르고 다듬은 것이 두루 하지 않았다. 이미 사람이 보이지 않으매 바야흐로 신령한 비춤을 증험하여, 무리가 다 슬피 탄식하며 은근히 알기를 청하였다. 어떤 사문이 있어 지난날의 마음이 순박하고 질박하였는데, 이에 꿈에 지난날의 바라문이 와서 알려 이르기를 「나는 자씨보살이다. 장인의 생각이 거룩한 얼굴을 헤아리지 못할까 두려워, 그래서 내가 몸소 와서 부처의 상을 그린 것이다. 오른손을 드리운 것은, 옛날 여래가 장차 부처의 열매를 증득하시려 할 때 하늘 마귀가 와서 흔들매 땅 귀신이 알리러 이르렀는데, 그 하나가 먼저 나와 부처를 도와 마귀를 항복받으려 하니 여래가 이르시기를 『너는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참는 힘으로 저를 항복받을 것이 틀림없다』 하셨다. 마왕이 이르기를 『누가 밝은 증인이 되겠는가』 하니, 여래가 이에 손을 드리워 땅을 가리키며 『여기 증인이 있다』 하셨다. 이때 둘째 땅 귀신이 솟아 나와 증인이 되었으므로, 이제 상의 손이 옛날을 본떠 아래로 드리운 것이다」 하였다. 무리가 신령한 비춤인 줄 알고 슬퍼 느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젖 위에 두루 하지 않은 데를 뭇 보배로 메우고 구슬 영락과 보배 관과 기이한 보배를 섞어 꾸몄다. 설상가왕이 보리수를 벤 뒤에 이 상을 헐려 하다가, 자애로운 얼굴을 보고 마음이 차마 편안하지 못하여 수레를 돌려 돌아가려 하며 재상에게 명하기를 「마땅히 이 부처의 상을 없애고 대자재천의 형상을 두라」 하였다. 재상이 뜻을 받고 두려워 탄식하여 이르기를 「부처의 상을 헐면 겁을 지나며 재앙을 부르고, 왕의 명을 어기면 몸을 잃고 겨레를 없앤다. 나아가고 물러남이 이러하니 무엇을 행함이 마땅한가」 하고, 이에 믿는 마음 있는 이를 불러 일을 시켜, 마침내 상 앞에 벽돌 벽을 가로 쌓았다. 마음에 어둡게 함이 부끄러워 또 밝은 등불을 두고, 벽돌 벽 앞에 자재천을 그렸다. 공을 이루고 명을 갚으니 왕이 듣고 마음이 두려워, 온몸에 부스럼이 나고 살가죽이 찢어져 오래지 않아 곧 죽었다. 재상이 달려 돌아와 가린 벽을 헐어 없애니,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상은 이제도 남아 있어 신묘한 솜씨가 이지러지지 않았다. 이미 그윽한 방에 있어 등불과 횃불이 서로 이어지매, 자애로운 얼굴을 보려 하여도 자세히 살필 길이 없다. 반드시 새벽에 큰 거울을 들고 빛을 끌어 안으로 비추어야 신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릇 보는 이는 스스로 슬픈 느낌이 더한다.
39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날
如來以印度吠舍佉月後半八日成等正覺,當此三月八日也。上座部則吠舍佉月後半十五日成等正覺,當此三月十五日也。是時如來年三十矣。或曰年三十五矣。
여래는 인도의 폐사거월 후반 팔일에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으니 이곳의 삼월 팔일에 해당한다. 상좌부는 폐사거월 후반 십오일에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하니 이곳의 삼월 십오일에 해당한다. 이때 여래의 나이 서른이었다. 더러는 나이 서른다섯이라 한다.
40거니신 자리
菩提樹北,有佛經行之處。如來成等正覺已,不起於座,七日寂定。其起也,至菩提樹北,七日經行,東西往來,行十餘步,異花隨跡,十有八文。後人於此壘磚為基,高餘三尺。聞諸先志曰:此聖跡基,表人命之修短也。先發誠願,後乃度量,隨壽修短,數有增減。
보리수 북쪽에 부처가 거니신 자리가 있다. 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이레를 고요히 선정에 드셨다. 그 일어나시매 보리수 북쪽에 이르러 이레를 거니시며 동서로 오가시니 걸음이 십여 걸음이요, 남다른 꽃이 자취를 따라 열여덟 무늬가 있었다. 뒷사람이 여기에 벽돌을 쌓아 터를 삼으니 높이가 석 자 남짓이다. 앞선 기록에서 들으니 이르기를 「이 거룩한 자취의 터는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을 나타낸다. 먼저 정성스러운 원을 낸 뒤에 재면, 목숨의 길고 짧음에 따라 수에 늘고 줆이 있다」 하였다.
41보리수를 바라보신 자리
經行基北道左盤石上,大精舍中有佛像,舉目上望。昔者如來於此七日觀菩提樹,目不暫舍。為報樹恩,故此瞻望。
거니신 터 북쪽 길 왼편 너럭바위 위 큰 정사 안에 부처의 상이 있어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본다. 옛날 여래가 여기서 이레 동안 보리수를 보시며 눈을 잠시도 떼지 않으셨다. 나무의 은혜에 갚으려고 이렇게 우러러보신 것이다.
42일곱 보배 자리가 돌이 되다
菩提樹西不遠,大精舍中有鍮石佛像,飾以奇珍,東面而立。前有青石,奇文異彩。是昔如來初成正覺,梵王起七寶堂,帝釋建七寶座,佛於其上七日思惟,放異光明,照菩提樹。去聖悠遠,寶變為石。
보리수 서쪽 멀지 않은 큰 정사 안에 놋쇠 부처의 상이 있어 기이한 보배로 꾸미고 동쪽을 보고 섰다. 앞에 푸른 돌이 있으니 기이한 무늬와 남다른 빛깔이다. 이는 옛날 여래가 처음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매 범왕이 일곱 보배의 집을 일으키고 제석이 일곱 보배의 자리를 세워, 부처가 그 위에서 이레를 생각하시며 남다른 밝은 빛을 놓아 보리수를 비추신 자리다. 거룩한 이가 가신 지 아득히 멀어 보배가 돌로 바뀌었다.
43길상초를 받으신 자리
菩提樹南不遠,有窣堵波,高百餘尺,無憂王之所建也。菩薩既濯尼連河,將趣菩提樹,竊自惟念何以為座,尋自發明當須凈草。天帝釋化其身為刈草人,荷而逐路。菩薩謂曰:「所荷之草頗能惠耶?」化人聞命,恭以草奉,菩薩受已,執而前進。
보리수 남쪽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높이가 백여 자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보살이 니련하에서 씻고 장차 보리수로 나아가려 하시며, 남몰래 스스로 무엇으로 자리를 삼을까 생각하시다가 이내 스스로 밝히기를 마땅히 깨끗한 풀이라야 한다 하셨다. 천제석이 그 몸을 풀 베는 사람으로 변하여 지고 길을 좇았다. 보살이 이르시기를 「진 풀을 자못 은혜로이 줄 수 있느냐」 하시니, 변한 사람이 명을 듣고 공손히 풀을 바쳤다. 보살이 받고 나서 잡고 앞으로 나아가셨다.
44푸른 참새와 사슴이 상서를 보이다
受草東北不遠,有窣堵波,是菩薩將證佛果,青雀、群鹿呈祥之處。印度休徵,斯為嘉應,故凈居天隨順世間,群從飛繞,效靈顯聖。
풀을 받으신 자리 동북쪽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이는 보살이 장차 부처의 열매를 증득하시려 할 때 푸른 참새와 사슴 무리가 상서를 나타낸 자리다. 인도의 좋은 조짐에 이것을 아름다운 응함으로 삼으므로, 정거천이 세간을 따라 무리 지어 날아 돌며 신령함을 나타내고 거룩함을 드러낸 것이다.
45마왕의 딸이 늙어 물러가다
菩提樹東大路左右,各一窣堵波,是魔王嬈菩薩處也。菩薩將證佛果,魔王勸受輪王,策說不行,殷憂而返。魔王之女請往誘焉,菩薩威神,衰變冶容,扶羸策杖,相攜而退。
보리수 동쪽 큰길 좌우에 각각 탑 하나가 있으니 이는 마왕이 보살을 흔든 자리다. 보살이 장차 부처의 열매를 증득하시려 하매 마왕이 전륜왕 자리를 받으라 권하였으나 채찍질하듯 달래어도 되지 않아, 근심에 잠겨 돌아갔다. 마왕의 딸이 가서 꾀기를 청하였으나 보살의 위엄과 신통에 고운 얼굴이 쇠하여 변하니, 파리한 몸을 부축해 지팡이를 짚고 서로 이끌고 물러갔다.
46가섭파 부처의 상
菩薩樹西北精舍中,有迦葉波佛像,既稱靈聖,時燭光明。聞諸先記曰:若人至誠,旋繞七周,在所生處,得宿命智。
보리수 서북쪽 정사 안에 가섭파 부처의 상이 있으니, 이미 신령하고 거룩하다 일컬어져 때때로 밝은 빛이 비친다. 앞선 기록에서 들으니 이르기를 「만일 사람이 지극한 정성으로 일곱 바퀴를 돌면, 나는 자리마다 지난 목숨을 아는 지혜를 얻는다」 하였다.
47두 땅 귀신의 상
迦葉波佛精舍西北二磚室,各有地神之像。昔者如來將成正覺,一報魔至,一為佛證。後人念功,圖形旌德。
가섭파 부처의 정사 서북쪽 벽돌 방 둘에 각각 땅 귀신의 상이 있다. 옛날 여래가 장차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려 할 때 하나는 마귀가 온 것을 알렸고 하나는 부처를 위해 증인이 되었다. 뒷사람이 그 공을 생각하여 모습을 그려 덕을 드러내었다.
48울금향 탑 — 바다에서 건진 목숨
菩提樹垣西北不遠,有窣堵波,謂郁金香,高四十餘尺,漕矩咤國商主之所建也。昔漕矩咤國有大商主,宗事天神,祠求福利,輕蔑佛法,不信因果。其後將諸商侶,貿遷有無,泛舟南海,遭風失路,波濤飄浪,時經三歲,資糧罄竭,糊口不充。同舟之人,朝不謀夕,戮力同志,念所事天,心慮已勞,冥功不濟。俄見大山,崇崖峻嶺,兩日聯暉,重明照朗。時諸商侶更相慰曰:「我曹有福,遇此大山,宜於中止,得自安樂。」商主曰:「非山也,乃摩竭魚耳。崇崖峻嶺,須鬛也;兩日聯暉,眼光也。」言聲未靜,舟帆飄湊。於是商主告諸侶曰:「我聞觀自在菩薩於諸危厄能旋安樂,宜各至誠,稱其名字。」遂即同聲,歸命稱念。崇山既隱,兩日亦沒。俄見沙門,威儀庠序,杖錫淩虛,而來拯溺,不逾時而至本國矣。因即信心貞固,求福不回,建窣堵波,式修供養,以郁金香泥而周塗上下。既發信心,率其同志,躬禮聖跡,觀菩提樹。未暇言歸,已淹晦朔。商侶同遊,更相謂曰:「山川悠間,鄉國遼遠,昔所建立窣堵波者,我曹在此,誰其灑掃?」言訖,旋繞至此,忽見有窣堵波,駭其由致,即前瞻察,乃本國所建窣堵波也。故今印度因以郁金為名。
보리수 담 서북쪽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울금향이라 하며 높이가 사십여 자다. 조구타국 장삿길의 주인이 세운 것이다. 옛날 조구타국에 큰 장삿길의 주인이 있어 천신을 받들어 섬기고 제사하여 복과 이로움을 구하며, 불법을 가벼이 업신여기고 인과를 믿지 않았다. 그 뒤에 여러 장사꾼 무리를 데리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바꾸어 팔려고 남해에 배를 띄웠다가, 바람을 만나 길을 잃고 물결에 떠돌기를 세 해가 지나 양식이 다하여 입에 풀칠할 것이 넉넉지 못하였다. 한배에 탄 사람들이 아침에 저녁을 꾀하지 못하매, 힘을 모으고 뜻을 같이하여 섬기는 하늘을 생각하였으나 마음의 근심만 이미 지쳤을 뿐 보이지 않는 공이 건지지 못하였다. 이윽고 큰 산이 보이니 높은 벼랑과 험한 재요 두 해가 잇달아 빛나 거듭 밝게 비추었다. 그때 여러 장사꾼이 서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우리에게 복이 있어 이 큰 산을 만났으니 마땅히 그 안에 머물면 스스로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하였다. 길의 주인이 이르기를 「산이 아니다. 곧 마갈 물고기다. 높은 벼랑과 험한 재는 수염과 갈기요, 두 해가 잇달아 빛남은 눈빛이다」 하였다. 말소리가 아직 자지 않았는데 배의 돛이 나부껴 다가갔다. 이에 길의 주인이 여러 짝에게 알려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관자재보살이 여러 위태로움과 액에서 편안하고 즐거움으로 돌이킬 수 있다 하니, 마땅히 저마다 지극한 정성으로 그 이름을 일컬으라」 하였다. 마침내 곧 한소리로 그 이름을 부르며 귀의하였다. 높은 산이 이미 숨고 두 해도 사라졌다. 이윽고 사문이 보이니 몸가짐이 차례가 있고 지팡이를 짚고 허공을 타고 와서 빠진 이를 건지매, 때를 넘기지 않아 제 나라에 이르렀다. 그로 말미암아 곧 믿는 마음이 곧고 굳어 복을 구하되 돌이키지 않고, 탑을 세워 법식대로 공양을 닦으며 울금향 진흙으로 위아래를 두루 발랐다. 이미 믿는 마음을 내고 그 뜻이 같은 이들을 거느려 몸소 거룩한 자취에 예를 올리고 보리수를 보았다. 미처 돌아갈 말을 할 겨를 없이 이미 한 달이 지났다. 장사꾼 짝들이 함께 노닐며 다시 서로 이르기를 「산과 내가 아득히 사이하고 고향 나라가 멀고 머니, 옛날 세운 탑을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누가 물 뿌려 쓸겠는가」 하였다. 말을 마치고 돌아 여기에 이르매 홀연히 탑이 있는 것을 보고 그 까닭에 놀라, 곧 앞에 나아가 살펴보니 곧 제 나라에 세운 탑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인도에서 울금으로 이름한 것이다.
49범왕이 법륜을 굴리기를 청한 자리
菩提樹垣東南隅尼拘律樹側窣堵波,傍有精舍,中作佛坐像。昔如來初證佛果,大梵天王於此勸請轉妙法輪。
보리수 담 동남쪽 모퉁이 니구율 나무 곁 탑, 그 곁에 정사가 있어 그 안에 부처의 앉으신 상을 만들었다. 옛날 여래가 처음 부처의 열매를 증득하시매 대범천왕이 여기서 묘한 법륜 굴리기를 권해 청하였다.
50네 모퉁이의 큰 탑
菩提樹垣內,四隅皆有大窣堵波。在昔如來受吉祥草已,趣菩提樹,先歷四隅,大地震動,至金剛座,方得安靜。
보리수 담 안 네 모퉁이에 다 큰 탑이 있다. 옛날 여래가 길상초를 받고 나서 보리수로 나아가시며 먼저 네 모퉁이를 지나시매 큰 땅이 흔들렸고, 금강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편안하고 고요하였다.
51담 안의 성스러운 자취
樹垣之內,聖跡鱗次,羌難遍舉。
나무 담 안에는 거룩한 자취가 비늘처럼 늘어서 두루 들기 어렵다.
52젖죽을 바친 두 목녀
菩提樹垣外,西南窣堵波,奉乳糜二牧女故宅。其側窣堵波,牧女於此煮糜。次此窣堵波,如來受糜處也。
보리수 담 밖 서남쪽 탑은 젖죽을 바친 두 목녀의 옛집이다. 그 곁 탑은 목녀가 여기서 죽을 끓인 자리다. 이 다음 탑은 여래가 죽을 받으신 자리다.
53남문 밖의 못
菩提樹垣南門外有大池,周七百餘步,清瀾澄鏡,龍魚潛宅,婆羅門兄弟承大自在天命之所鑿也。次南一池,在昔如來初成正覺,方欲浣濯,天帝釋為佛化成。池西有大石,佛浣衣已,方欲曝曬,天帝釋自大雪山持來也。其側窣堵波,如來於此納故衣。次南林中窣堵波,如來受貧老母施故衣處。
보리수 담 남문 밖에 큰 못이 있으니 둘레가 칠백여 걸음이요, 맑은 물결이 거울처럼 맑고 용과 물고기가 숨어 사는데, 바라문 형제가 대자재천의 명을 받아 판 것이다. 그 남쪽 못 하나는 옛날 여래가 처음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고 바야흐로 빨래하려 하시매 천제석이 부처를 위해 만든 것이다. 못 서쪽에 큰 돌이 있으니 부처가 옷을 빠시고 바야흐로 볕에 말리려 하시매 천제석이 큰 설산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곁 탑은 여래가 여기서 헌 옷을 거두신 자리다. 그 남쪽 숲 속 탑은 여래가 가난한 늙은 어미가 베푼 헌 옷을 받으신 자리다.
54목지린타 용이 몸으로 덮은 자리
帝釋化池東林中,有目支鄰陁龍王池,其水清黑,其味甘美。西岸有小精舍,中作佛像。昔如來初成正覺,於此宴坐,七日入定。時此龍王警衛如來,即以其身繞佛七匝,化出多頭,俯垂為蓋,故池東岸有其室焉。
제석이 만든 못 동쪽 숲 속에 목지린타 용왕의 못이 있으니 그 물이 맑고 검으며 그 맛이 달고 좋다. 서쪽 기슭에 작은 정사가 있어 그 안에 부처의 상을 만들었다. 옛날 여래가 처음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고 여기서 고요히 앉아 이레 동안 선정에 드셨다. 그때 이 용왕이 여래를 깨어 지키느라 곧 그 몸으로 부처를 일곱 바퀴 감고 여러 머리를 만들어 내어 굽어 드리워 일산을 삼았다. 그러므로 못 동쪽 기슭에 그 방이 있다.
55여윈 모습의 상 — 여섯 해 고행
目支鄰陁龍池東,林中精舍有佛羸瘦之像。其側有經行之所,長七十餘步,南北各有卑缽羅樹。故今土俗,諸有嬰疾,香油塗像,多蒙除差。是菩薩修苦行處。如來為伏外道,又受魔請,於是苦行六年,日食一麻一麥,形容憔悴,膚體羸瘠,經行往來,攀樹後起。
목지린타 용의 못 동쪽 숲 속 정사에 부처의 파리하고 여윈 상이 있다. 그 곁에 거니신 자리가 있어 길이가 칠십여 걸음이요 남북에 각각 비발라 나무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 고장 풍속에 여러 병에 걸린 이가 향유를 상에 바르면 흔히 나음을 입는다. 이는 보살이 고행을 닦으신 자리다. 여래가 외도를 항복받으려 하시고 또 마귀의 청을 받으시어, 이에 여섯 해를 고행하며 날마다 삼씨 하나와 보리 한 알을 잡수시니 모습이 초췌하고 살갗과 몸이 파리하여, 거닐며 오갈 때 나무를 붙들고서야 일어나셨다.
56교진여 다섯 사람이 머문 자리
菩薩苦行卑缽羅樹側,有窣堵波,是阿若憍陳如等五人住處。初,太子之舍家也,仿徨山澤,棲息林泉,時凈飯王乃命五人隨瞻侍焉。太子既修苦行,憍陳如等亦即勤求。
보살이 고행하신 비발라 나무 곁에 탑이 있으니 이는 아약교진여 등 다섯 사람이 머문 자리다. 처음에 태자가 집을 버리시매 산과 늪을 헤매고 숲과 샘에 깃들어 쉬시니, 그때 정반왕이 이에 다섯 사람에게 명하여 따라 보살펴 모시게 하였다. 태자가 고행을 닦으시매 교진여 들도 곧 부지런히 구하였다.
57두 장자가 미숫가루와 꿀을 바친 자리
憍陳如等住處東南,有窣堵波,菩薩入尼連禪那河沐浴之處。河側不遠,菩薩於此受食乳糜。其側窣堵波,二長者獻麨蜜處。佛在樹下結加跌坐,寂然宴默,受解脫樂,過七日後,方從定起。時二商主行次林外,而彼林中神告商主曰:「釋種太子今在此中,初證佛果,心凝寂定,四十九日未有所食,隨有奉上,獲大善利。」時二商主各持行資麨蜜奉上,世尊納受。
교진여 들이 머문 자리 동남쪽에 탑이 있으니 보살이 니련선나하에 들어 목욕하신 자리다. 강가에서 멀지 않은 데서 보살이 여기서 젖죽을 받으셨다. 그 곁 탑은 두 장자가 미숫가루와 꿀을 바친 자리다. 부처가 나무 아래 가부좌를 하고 고요히 잠잠히 앉아 벗어남의 즐거움을 누리시다가, 이레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선정에서 일어나셨다. 그때 두 장삿길의 주인이 숲 밖을 지나가는데, 저 숲 속의 신이 장삿길 주인에게 알려 이르기를 「석가 겨레의 태자가 지금 이 안에 계시어 처음 부처의 열매를 증득하시고 마음이 고요한 선정에 엉기어, 마흔아홉 날을 잡수신 것이 없다. 있는 대로 받들어 올리면 큰 착한 이로움을 얻으리라」 하였다. 그때 두 장삿길의 주인이 저마다 길양식인 미숫가루와 꿀을 가지고 받들어 올리니 세존이 받아들이셨다.
58사천왕이 바리를 바친 자리
長者獻麨側,有窣堵波,四天王奉缽處。商主既獻麨蜜,世尊思以何器受之。時四天王從四方來,各持金缽,而以奉上。世尊默然,而不納受,以為出家不宜此器。四天王舍金缽,奉銀缽,乃至頗胝、琉璃、馬腦、車渠、真珠等缽,世尊如是皆不為受。四天王各還宮,奉持石缽,紺青映徹,重以進獻。世尊斷彼此故,而總受之,次第重壘,按為一缽,故其外側有四際焉。
장자가 미숫가루를 바친 자리 곁에 탑이 있으니 사천왕이 바리를 바친 자리다. 장삿길의 주인이 미숫가루와 꿀을 바치매 세존이 무슨 그릇으로 받을까 생각하셨다. 그때 사천왕이 네 방위에서 와서 저마다 금 바리를 가지고 받들어 올렸다. 세존이 잠잠히 계시고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니 집을 나온 이에게 이 그릇이 마땅하지 않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사천왕이 금 바리를 버리고 은 바리를 바쳤으며, 나아가 파지가와 유리와 마노와 차거와 진주 들의 바리를 바쳤으나 세존이 이같이 다 받지 않으셨다. 사천왕이 저마다 궁으로 돌아가 돌 바리를 받들어 가지고 오니, 검푸른 빛이 비쳐 트인 것이었다. 거듭 나아가 바치매 세존이 이쪽저쪽을 가르는 마음을 끊으시고 다 받아, 차례로 거듭 포개어 눌러 한 바리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그 바깥쪽에 네 겹의 테가 있다.
59어머니를 위해 법을 말씀하신 자리
四天王獻缽側不遠,有窣堵波,如來為母說法處也。如來既成正覺,稱天人師,其母摩耶自天宮降於此處,世尊隨機示教利喜。其側涸池岸有窣堵波,在昔如來現諸神變化有緣處。
사천왕이 바리를 바친 자리 곁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여래가 어머니를 위해 법을 말씀하신 자리다. 여래가 이미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어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매, 그 어머니 마야가 하늘 궁에서 이곳에 내려오시니 세존이 기미에 따라 가르쳐 보이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 곁 마른 못 기슭에 탑이 있으니 옛날 여래가 여러 신통한 변화를 나타내어 인연 있는 이를 교화하신 자리다.
60가섭 삼형제와 천 문인을 건지신 자리
現神變側有窣堵波,如來度優樓頻螺迦葉波三兄弟及千門人處。如來方垂善導,隨應降伏,時優樓頻螺迦葉波五百門人請佛教,迦葉波曰:「吾亦與爾俱返迷途。」於是相從來至佛所。如來告曰:「棄鹿皮衣,捨祭火具。」時諸梵志恭承聖教,以其服用投尼連河。捺地迦葉波見諸祭器隨流漂泛,與其門人候兄動靜,既見改轍,亦隨染衣。伽耶迦葉波與二百門人聞其兄之舍法也,亦至佛所,願修梵行。
신통한 변화를 나타내신 자리 곁에 탑이 있으니 여래가 우루빈라 가섭파 삼형제와 천 문인을 건지신 자리다. 여래가 바야흐로 착하게 이끄심을 드리워 마땅함에 따라 항복받으시매, 그때 우루빈라 가섭파의 오백 문인이 부처께 가르침 받기를 청하니 가섭파가 이르기를 「나도 너희와 함께 헤매던 길에서 돌아서겠다」 하였다. 이에 서로 좇아 부처 계신 데 이르렀다. 여래가 이르시기를 「사슴 가죽 옷을 버리고 불에 제사하는 기구를 놓으라」 하시니, 그때 여러 범지가 거룩한 가르침을 공손히 받들어 그 옷과 쓰던 것을 니련하에 던졌다. 날지가섭파가 여러 제사 그릇이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 문인과 함께 형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이미 길을 고친 것을 보고 또한 따라 물들인 옷을 입었다. 가야가섭파가 이백 문인과 함께 그 형이 법을 버렸다는 말을 듣고 또한 부처 계신 데 이르러 범행 닦기를 원하였다.
61불을 뿜는 용을 바리에 담으신 자리
度迦葉波兄弟西北窣堵波,是如來伏迦葉波所事火龍處。如來將化其人,先伏所宗,乃至梵志火龍之室。夜分已後,龍吐煙焰,佛既入定,亦起火光,其室洞然,猛焰炎熾。諸梵志師恐火害佛,莫不奔赴,悲號湣惜。優樓頻螺迦葉波謂其徒曰:「以今觀之,未必火也,當是沙門伏火龍耳。」如來乃以火龍盛置缽中,清旦持示外道門人。其側窣堵波,五百獨覺同入涅槃處也。
가섭파 형제를 건지신 자리 서북쪽 탑은 이는 여래가 가섭파가 섬기던 불의 용을 항복받으신 자리다. 여래가 장차 그 사람을 교화하려 하시매 먼저 그가 마루로 삼는 것을 항복받으려고, 이에 범지의 불의 용이 있는 방에 이르셨다. 밤이 나뉜 뒤에 용이 연기와 불꽃을 뿜으매, 부처가 이미 선정에 드시어 또한 불빛을 일으키시니 그 방이 훤히 트이고 사나운 불꽃이 세차게 타올랐다. 여러 범지의 스승이 불이 부처를 해칠까 두려워 달려가지 않는 이가 없어 슬피 부르며 안타까워하였다. 우루빈라 가섭파가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제 보건대 반드시 불은 아니다. 마땅히 사문이 불의 용을 항복받는 것이다」 하였다. 여래가 이에 불의 용을 담아 바리 안에 두시고, 맑은 아침에 가지고 외도의 문인에게 보이셨다. 그 곁 탑은 오백 독각이 함께 열반에 든 자리다.
62가섭이 물에 빠지신 줄 알고 배로 온 자리
目支鄰陁龍池南窣堵波,迦葉波救如來溺水處也。迦葉兄弟時推神通,遠近仰德,黎庶歸心。世尊方導迷徒,大權攝化,興布密雲,降澍暴雨,周佛所居,令獨無水。迦葉是時見此雲雨,謂門人曰:「沙門住處將不漂溺?」泛舟來救,乃見世尊履水如地,蹈河中流,水分沙現。迦葉見已,心伏而退。
목지린타 용의 못 남쪽 탑은 가섭파가 여래가 물에 빠지신 줄 알고 건지려 한 자리다. 가섭 형제가 그때 신통을 밀어 세워 멀고 가까운 데서 덕을 우러르고 백성이 마음을 돌렸다. 세존이 바야흐로 헤매는 무리를 이끄시며 큰 방편으로 거두어 교화하시려고, 짙은 구름을 일으켜 퍼뜨리고 사나운 비를 쏟아 내리되 부처가 계신 곳 둘레만 홀로 물이 없게 하셨다. 가섭이 이때 이 구름과 비를 보고 문인에게 이르기를 「사문이 머무는 자리가 떠내려가 잠기지 않았겠는가」 하고, 배를 띄워 구하러 왔다가 이에 세존이 물 밟기를 땅같이 하시고 강 가운데를 밟으시매 물이 갈라져 모래가 드러난 것을 보았다. 가섭이 보고 나서 마음으로 항복하고 물러갔다.
63눈먼 용의 방
菩提樹垣東門外二三里,有盲龍室。此龍者,殃累宿積,報受生盲。如來自前正覺山欲趣菩提樹,途次室側,龍眼忽明,乃見菩薩將趣佛樹,謂菩薩曰:「仁今不久當成正覺。我眼盲冥,於茲已久,有佛興世,我眼輒明,賢劫之中,過去三佛出興世時,已得明視。仁今至此,我眼忽開,以故知之,當成佛矣。」
보리수 담 동문 밖 두세 리에 눈먼 용의 방이 있다. 이 용은 재앙과 허물이 지난 세상에 쌓여, 갚음으로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 여래가 전정각산에서 보리수로 나아가려 하시며 길이 방 곁을 지나매, 용의 눈이 홀연히 밝아져 이에 보살이 장차 부처의 나무로 나아가시는 것을 보고 보살에게 이르기를 「어지신 이는 이제 오래지 않아 마땅히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리라. 내 눈이 멀어 어두운 지 이미 오래인데, 부처가 세상에 일어나시면 내 눈이 문득 밝아졌습니다. 현겁 가운데 지나간 세 부처가 세상에 나오실 때에도 이미 밝게 볼 수 있었습니다. 어지신 이가 이제 여기 이르시매 내 눈이 홀연히 열렸으니, 그로써 아옵니다, 마땅히 부처를 이루시리라」 하였다.
64마왕이 군사를 몰아온 자리
菩提樹垣東門側,有窣堵波,魔王怖菩薩之處。初,魔王知菩薩將成正覺也,誘亂不遂,憂惶無賴,集諸神眾,齊整魔軍,治兵振旅,將脅菩薩。於是風雨飄註,雷電晦冥,縱火飛煙,揚沙激石,備矛盾之具,極弦矢之用。菩薩於是入大慈定,凡厥兵杖變為蓮華。魔軍駭怖,奔馳退散。其側不遠有二窣堵波,帝釋、梵王之所建也。
보리수 담 동문 곁에 탑이 있으니 마왕이 보살을 두렵게 한 자리다. 처음에 마왕이 보살이 장차 바른 깨달음을 이루실 줄 알고 꾀어 어지럽히기를 이루지 못하매, 근심하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라 여러 신의 무리를 모으고 마귀의 군사를 가지런히 하며, 병기를 다스리고 군대를 떨쳐 장차 보살을 위협하려 하였다. 이에 바람과 비가 나부껴 쏟아지고 우레와 번개가 어둡고 캄캄하며, 불을 놓아 연기를 날리고 모래를 날리며 돌을 몰아, 창과 방패의 기구를 갖추고 시위와 화살의 쓰임을 다하였다. 보살이 이에 큰 자애의 선정에 드시니, 무릇 그 병장기가 다 연꽃으로 바뀌었다. 마귀의 군사가 놀라고 두려워 달아나 흩어졌다. 그 곁 멀지 않은 데 탑 둘이 있으니 제석과 범왕이 세운 것이다.
65마하보리 절
菩提樹北門外摩訶菩提僧伽藍,其先僧伽羅國王之所建也。庭宇六院,觀閣三層,周堵垣墻高三四丈,極工人之妙,窮丹青之飾。至於佛像,鑄以金銀,凡厥莊嚴,廁以珍寶。諸窣堵波高廣妙飾,中有如來舍利,其骨舍利大如手指節,光潤鮮白,皎徹中外。其肉舍利如大真珠,色帶紅縹。每歲至如來大神變月滿之日,出示眾人。此時也,或放光,或雨花。僧徒減千人,習學大乘上座部法,律儀清肅,戒行貞明。
보리수 북문 밖 마하보리 절은 그 앞선 승가라국 왕이 세운 것이다. 뜰과 집이 여섯 채요 보는 다락이 세 층이며, 두른 담이 높이가 서너 길이다. 장인의 묘함을 다하고 붉고 푸른 꾸밈을 다하였다. 부처의 상에 이르러서는 금과 은으로 부었고, 무릇 그 엄정한 꾸밈에 진귀한 보배를 사이사이 끼웠다. 여러 탑이 높고 넓으며 묘하게 꾸몄는데, 그 안에 여래의 사리가 있다. 그 뼈 사리는 크기가 손가락 마디만 하고 빛나고 윤나며 산뜻하고 희어 안팎이 밝게 트였다. 그 살 사리는 큰 진주 같고 빛깔이 붉고 옅푸름을 띠었다. 해마다 여래의 큰 신통 변화의 달 보름날에 이르면 여러 사람에게 내어 보인다. 이때에 더러는 빛을 놓고 더러는 꽃이 비 온다. 승려가 천 명에 못 미치는데 대승 상좌부의 법을 익혀 배우며 계율과 몸가짐이 맑고 엄숙하고 계행이 곧고 밝다.
협주 1
即印度十二月三十日,當此正月十五日也。
곧 인도의 십이월 삼십일이니 이곳의 정월 십오일에 해당한다.
66승가라국 왕이 절을 세운 내력
昔者,南海僧伽羅國,其王淳信佛法,發自天然。有族弟出家,想佛聖跡,遠遊印度,寓諸伽藍,咸輕邊鄙。於是返跡本國,王躬遠迎,沙門悲耿,似若不能言。王曰:「將何所負,若此殷憂?」沙門曰:「憑恃國威,遊方問道,羈旅異域,載罹寒暑,動遭淩辱,語見譏誚。負斯憂恥,詎得歡心?」王曰:「若是者何謂也?」曰:「誠願大王福田為意,於諸印度建立伽藍,既旌聖跡,又擅高名,福資先王,恩及後嗣。」曰:「斯事甚美,聞之何晚?」於是以國中重寶獻印度王。王既納貢,義存懷遠,謂使臣曰:「我今將何持報來命?」使臣曰:「僧伽羅王稽首印度大吉祥王!大王威德遠振,惠澤遐被。下土沙門,欽風慕化,敢遊上國,展敬聖跡,寓諸伽藍,莫之見館,艱辛已極,蒙恥而歸。竊圖遠謀,貽範來葉,於諸印度建一伽藍,使客遊乞士,息肩有所,兩國交歡,行人無替。」王曰:「如來潛化,遺風斯在,聖跡之所,任取一焉。」使者奉辭報命,群臣拜賀,遂乃集諸沙門,評議建立。沙門曰:「菩提樹者,去來諸佛咸此證聖,考之異議,無出此謀。」於是舍國珍寶,建此伽藍,以其國僧而修供養,乃刻銅為記曰:「夫周給無私,諸佛至教;惠濟有緣,先聖明訓。今我小子,丕承王業,式建伽藍,用旌聖跡,福資祖考,惠被黎元。唯我國僧而得自在,及有國人亦同僧例。傳之後嗣,永永無窮。」故此伽藍多執師子國僧也。
옛날 남해 승가라국의 그 왕이 불법을 순수히 믿으니 타고난 데서 나온 것이었다. 겨레 아우가 집을 나와 부처의 거룩한 자취를 그리워하여 멀리 인도에 노닐며 여러 절에 붙었는데, 다들 변두리 사람이라 가벼이 여겼다. 이에 제 나라로 자취를 돌리니 왕이 몸소 멀리 맞이하였다. 사문이 슬퍼 목이 메어 말을 못 하는 듯하매 왕이 이르기를 「무엇을 짊어졌기에 이렇게 근심이 깊은가」 하니, 사문이 이르기를 「나라의 위엄을 믿고 지방을 노닐며 도를 물었으나, 다른 지역에 나그네로 떠돌며 추위와 더위를 거듭 만나고 툭하면 능멸을 당하고 말끝마다 비웃음을 보았습니다. 이 근심과 부끄러움을 지고 어찌 기쁜 마음을 얻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그러면 어찌하란 말인가」 하니, 이르기를 「참으로 원컨대 대왕께서 복밭을 뜻에 두시어 여러 인도에 절을 세우소서. 이미 거룩한 자취를 드러내고 또 높은 이름을 떨치며, 복이 앞선 왕에게 밑천이 되고 은혜가 뒷자손에게 미칠 것입니다」 하였다. 이르기를 「이 일이 매우 아름다운데 어찌 늦게 들었는가」 하였다. 이에 나라 안의 무거운 보배를 인도 왕에게 바쳤다. 왕이 조공을 받고 나서 먼 데를 품는 뜻이 있어 사신에게 이르기를 「내가 이제 무엇으로 오신 명에 갚겠는가」 하니, 사신이 이르기를 「승가라 왕이 인도의 큰 길상왕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대왕의 위엄과 덕이 멀리 떨치고 은혜와 은택이 멀리 미칩니다. 아래 땅의 사문이 기풍을 흠모하고 교화를 사모하여 감히 윗나라에 노닐며 거룩한 자취에 공경을 펴려 하였으나, 여러 절에 붙어도 재워 주는 데가 없어 어렵고 쓰라림이 이미 지극하매 부끄러움을 입고 돌아왔습니다. 남몰래 먼 꾀를 도모하여 오는 세대에 본을 남기고자, 여러 인도에 절 하나를 세워 나그네로 노니는 빌어먹는 이들이 어깨를 쉴 데가 있게 하고, 두 나라가 서로 기뻐하여 길 가는 이가 갈릴 데 없게 하려 합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여래가 자취를 감추셨으나 남기신 기풍이 여기 있소. 거룩한 자취의 자리에서 마음대로 하나를 고르시오」 하였다. 사자가 말을 받들어 명을 갚으니 여러 신하가 절하고 하례하였다. 마침내 여러 사문을 모아 세울 것을 헤아려 의논하니, 사문이 이르기를 「보리수는 오고 가는 여러 부처가 다 여기서 거룩함을 증득하신 자리이니, 다른 의논을 상고하여도 이 꾀에 나을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나라의 진귀한 보배를 내어 이 절을 세우고 그 나라 승려로 공양을 닦게 하였다. 이에 구리를 새겨 적어 이르기를 「무릇 두루 주되 사사로움이 없음은 여러 부처의 지극한 가르침이요, 인연 있는 이를 은혜로이 건짐은 앞선 성인의 밝은 가르침이다. 이제 나 작은 사람이 크게 왕업을 이어 법식대로 절을 세워 거룩한 자취를 드러내니, 복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밑천이 되고 은혜가 백성에게 입혀지기를 바란다. 오직 우리나라 승려만이 자재를 얻고, 나라 사람이 있으면 또한 승려와 같은 예로 한다. 뒷자손에게 전하여 길이길이 끝이 없게 하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 절에는 집사자국 승려가 많다.
67안거를 풀고 이레를 도는 일
菩提樹南十餘里,聖跡相鄰,難以備舉。每歲比丘解安居,四方法俗百千萬眾,七日七夜,持香花,鼓音樂,遍遊林中,禮拜供養。印度僧徒依佛聖教,皆以室羅伐拿月前半一日入雨安居,當此五月十六日;以頞濕縛庾阇月後半十五日解雨安居,當此八月十五日。印度月名,依星而建,古今不易,諸部無差。良以方言未融,傳譯有謬,分時計月,致斯乖異,故以四月十六日入安居,七月十五日解安居也。
보리수 남쪽 십여 리에 거룩한 자취가 서로 잇달아 다 들기 어렵다. 해마다 비구가 안거를 풀면 사방의 중과 속인 백천만 무리가 이레 낮과 이레 밤을 향과 꽃을 들고 음악을 울리며 숲 속을 두루 노닐고 절하며 공양한다. 인도의 승려는 부처의 거룩한 가르침에 따라 다 실라벌나월 전반 첫날에 비 오는 철 안거에 드니 이곳의 오월 십육일에 해당하고, 알습박유사월 후반 십오일에 비 오는 철 안거를 푸니 이곳의 팔월 십오일에 해당한다. 인도의 달 이름은 별에 의지하여 세우므로 예와 이제에 바뀌지 않고 여러 부에 어긋남이 없다. 참으로 지방의 말이 녹아들지 않고 옮겨 전함에 그름이 있어, 때를 나누고 달을 세는 데 이런 어긋남이 생겼다. 그러므로 사월 십육일에 안거에 들고 칠월 십오일에 안거를 푼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