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타국 하摩揭陁國(下)
1눈먼 어미를 봉양한 코끼리
菩提樹東渡尼連禪那河,大林中有窣堵波。其北有池,香象侍母處也。如來在昔修菩薩行,為香象子,居北山中,遊此池側。其母盲也,采藕根,汲清水,恭行孝養,與時推移。屬有一人,遊林迷路,仿徨往來,悲號慟哭。象子聞而湣焉,導之以示歸路。是人既還,遂白王曰:「我知香象遊舍林藪,此奇貨也,可往捕之。」王納其言,興兵往狩,是人前導,指象示王,即時兩臂墮落,若有斬截者。其王雖驚此異,仍縛象子以歸。象子既已維縶多時,而不食水草,典廄者以聞,王遂親問之。象子曰:「我母盲冥,累日饑餓,今見幽厄,詎能甘食?」王湣其情也,故遂放之。
보리수 동쪽에서 니련선나하를 건너 큰 숲 가운데 탑이 있다. 그 북쪽에 못이 있으니 향기로운 코끼리가 어미를 모시던 자리다. 여래가 옛날 보살행을 닦으실 때 향기로운 코끼리의 새끼가 되어 북쪽 산 가운데 살며 이 못가에 노니셨다. 그 어미가 눈이 멀었으므로 연뿌리를 캐고 맑은 물을 길어 공손히 효성으로 봉양하며 때를 따라 옮겨 갔다. 마침 어떤 사람이 숲에 노닐다가 길을 잃고 서성이며 오가다 슬피 울부짖었다. 코끼리 새끼가 듣고 가엾이 여겨 이끌어 돌아갈 길을 보여 주었다. 이 사람이 돌아가 마침내 왕에게 아뢰기를 「제가 향기로운 코끼리가 노닐며 사는 숲을 압니다. 이는 기이한 보배이니 가서 잡을 만합니다」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받아들여 군사를 일으켜 사냥하러 가는데 이 사람이 앞에서 이끌었다. 코끼리를 가리켜 왕에게 보이자 곧 그 사람의 두 팔이 떨어졌으니 마치 베어 끊은 것 같았다. 그 왕이 이 이적에 놀라면서도 그대로 코끼리 새끼를 묶어 돌아갔다. 코끼리 새끼가 이미 매인 지 오래되었는데도 물과 풀을 먹지 않으매, 마구간 맡은 이가 아뢰니 왕이 마침내 몸소 물었다. 코끼리 새끼가 이르기를 「내 어미가 눈이 멀어 여러 날 굶주리는데, 이제 갇혀 있으니 어찌 달게 먹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그 정을 가엾이 여겨 마침내 놓아주었다.
2가섭파 부처가 앉으신 자리
其側窣堵波前建石柱,是昔迦葉波佛於此宴坐。其側有過去四佛座及經行遺跡之所。
그 곁 탑 앞에 돌기둥을 세웠으니 이는 옛날 가섭파 부처가 여기서 고요히 앉으신 자리다. 그 곁에는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가 있다.
3울두람자가 악한 원을 낸 자리
四佛座東渡莫訶河,至大林中,有石柱,是外道入定及發惡願處。昔有外道郁頭藍子者,志逸煙霞,身遺草澤,於此法林棲神匿跡。既具五神通,得第一有定。摩揭陁王特深宗敬,每至中時,請就宮食。郁頭藍子淩虛履空,往來無替。摩揭陁王候時瞻望,亦既至已,捧接置座。王將出遊,欲委留事,簡擢中宮,無堪承命。有少息女,淑慎令儀,既親且賢,無出其右。摩揭陁王召而命曰:「吾方遠遊,將有所委,爾宜悉心,慎終其事。彼郁頭藍仙,宿所宗敬,時至來飯,如我所奉。」敕誡既已,便即巡覽。少女承旨,瞻候如儀,大仙至已,捧而置座。郁頭藍子既觸女人,起欲界染,退失神通,飯訖言歸,不得虛遊。心中愧恥,詭謂女曰:「我比修道業,入定怡神,淩虛往來,略無暇景,國人願睹,聞之久矣。然先達垂訓,利物為務,豈守獨善,忘其兼濟?今欲從門而出,履地而往,使夫睹見之徒,咸蒙福利。」王女聞已,宣告遠近,是時人以馳競,灑掃衢路,百千萬眾,佇望來儀。郁頭藍子步自王宮,至彼法林。宴坐入定,心馳外境,棲林則烏鳥嚶囀,臨池乃魚鱉喧聲,情散心亂,失神廢定。乃生忿恚,即發惡願:「願我當來為暴惡獸,貍身鳥翼,搏食生類,身廣三千里,兩翅各廣千五百里,投林啖諸羽屬,入流食彼水生。」發願既已,忿心漸息,勤求頃之,復得本定。不久命終,生第一有天,壽八萬劫。如來記之,天壽畢已,當果昔願,得此弊身,從是流轉惡道,未期出離。
네 부처가 앉으신 자리 동쪽에서 막하하를 건너 큰 숲에 이르면 돌기둥이 있으니, 이는 외도가 선정에 들었다가 악한 원을 낸 자리다. 옛날 외도 울두람자라는 이가 있어 뜻이 연기와 노을 밖으로 달아나고 몸을 풀과 늪에 맡겨, 이 법의 숲에서 정신을 깃들이고 자취를 감추었다. 이미 다섯 신통을 갖추고 첫째 있음의 선정을 얻었다. 마게타 왕이 유난히 깊이 높이 공경하여, 낮이 되면 궁에 청해 밥을 먹였다. 울두람자는 허공을 타고 하늘을 밟아 오가기를 그침이 없었다. 마게타 왕이 때를 기다려 바라보다가 이르면 받들어 자리에 앉혔다. 왕이 멀리 노닐러 나가려 하며 남은 일을 맡기고자 궁 안을 가려 뽑았으나 명을 받들 만한 이가 없었다. 어린 딸이 있어 맑고 삼가며 몸가짐이 아름답고, 친하면서도 어질어 그보다 나은 이가 없었다. 마게타 왕이 불러 명하여 이르기를 「내가 바야흐로 멀리 노닐며 맡길 일이 있으니, 너는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그 일을 끝까지 삼가라. 저 울두람 선인은 지난날 마루로 공경하던 이니, 때가 되어 와서 밥 먹거든 내가 받들던 대로 하라」 하였다. 경계하기를 마치고 곧 두루 돌아보러 갔다. 어린 딸이 뜻을 받들어 법도대로 바라보아 기다리다가, 큰 선인이 이르매 받들어 자리에 앉혔다. 울두람자가 이미 여자에게 닿아 욕계의 물듦이 일어나 신통을 잃고 물러나, 밥을 먹고 돌아가려는데 허공으로 노닐지 못하였다. 마음속으로 부끄러워 여자를 속여 이르기를 「내가 요즈음 도의 업을 닦아 선정에 들어 정신을 기쁘게 하며 허공을 타고 오가느라 잠깐의 겨를도 없었소. 나라 사람이 보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소. 그러나 앞서 통달한 이가 가르침을 드리우기를 만물을 이롭게 함을 힘쓰라 하였으니, 어찌 홀로 착함만 지키고 아울러 건짐을 잊겠소. 이제 문으로 나가 땅을 밟고 가서, 무릇 보는 무리로 하여금 다 복과 이로움을 입게 하려 하오」 하였다. 왕의 딸이 듣고 멀고 가까운 데 알리니, 이때 사람들이 다투어 달려와 거리를 물 뿌려 쓸고 백천만 무리가 오시기를 기다려 바라보았다. 울두람자가 왕궁에서 걸어 저 법의 숲에 이르렀다.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려 하였으나 마음이 바깥 경계로 달아나, 숲에 깃들면 까마귀와 새가 지저귀고 못에 임하면 물고기와 자라가 시끄러워, 정이 흩어지고 마음이 어지러워 정신을 잃고 선정을 그쳤다. 이에 성내는 마음이 나서 곧 악한 원을 내어 이르기를 「원컨대 내가 오는 세상에 사납고 악한 짐승이 되되, 살쾡이 몸에 새의 날개로 산 무리를 잡아먹고, 몸의 너비가 삼천 리요 두 날개가 각각 너비 천오백 리가 되어, 숲에 던져 여러 깃 있는 무리를 삼키고 흐름에 들어 저 물에 사는 것을 먹으리라」 하였다. 원을 내고 나서 성난 마음이 점점 자고, 부지런히 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본디 선정을 얻었다. 오래지 않아 목숨을 마치고 첫째 있음의 하늘에 나서 목숨이 팔만 겁이었다. 여래가 이를 미리 적어 두시기를 「하늘의 목숨이 다하면 마땅히 옛 원의 열매를 맺어 이 모진 몸을 얻고, 이로부터 나쁜 길에 굴러 흘러 벗어날 기약이 없으리라」 하셨다.
4계족산 — 대가섭파가 가사를 들고 든 자리
莫訶河東入大林野,行百餘里,至屈屈咤播陁山,亦謂窶盧播陀山。高巒峭無極,深壑洞無涯,山麓谿澗,喬林羅谷,崗岑嶺嶂,繁草被巖,峻起三峰,傍挺絕崿,氣將天接,形與雲同。其後尊者大迦葉波居中寂滅,不敢指言,故云尊足。摩訶迦葉波者,聲聞弟子也,得六神通,具八解脫。如來化緣斯畢,垂將涅槃,告迦葉波曰:「我於曠劫勤修苦行,為諸眾生求無上法,昔所願期,今已果滿。我今將欲入大涅槃,以諸法藏囑累於汝,住持宣布,勿有失墜。姨母所獻金鏤袈裟,慈氏成佛,留以傳付。我遺法中諸修行者,若比丘、比丘尼、鄔波索迦、鄔波斯迦,皆先濟渡,令離流轉。」迦葉承旨,住持正法。結集既已,至第二十年,厭世無常,將入寂滅,乃往雞足山。山陰而上,屈盤取路,至西南崗。山峰險阻,崖徑槃薄,乃以錫扣,剖之如割。山徑既開,逐路而進,槃紆曲折,回互斜通,至於山頂,東北面出。既入三峰之中,捧佛袈裟而立,以願力故,三峰斂覆,故今此山三脊隆起。當來慈氏世尊之興世也,三會說法之後,餘有無量憍慢眾生,將登此山,至迦葉所,慈氏彈指,山峰自開。彼諸眾生既見迦葉,更增憍慢。時大迦葉授衣致辭,禮敬已畢,身升虛空,示諸神變,化火焚身,遂入寂滅。時眾瞻仰,憍慢心除,因而感悟,皆證聖果。故今山上建窣堵波,靜夜遠望,或見明炬。及有登山,遂無所睹。
막하하 동쪽으로 큰 숲과 들에 들어 백여 리를 가면 굴굴타파타산에 이르니 또한 구로파타산이라 한다. 높은 멧부리가 가팔라 끝이 없고 깊은 골짜기가 뚫려 가없다. 산기슭 시내와 골짜기에 높은 숲이 골에 벌여 서고, 언덕과 봉우리와 재에 무성한 풀이 바위를 덮었다. 세 봉우리가 우뚝 일어서고 곁에 끊긴 벼랑이 솟았으니, 기운이 하늘에 닿고 모습이 구름과 같다. 그 뒤에 존자 대가섭파가 그 가운데서 고요히 사라졌으므로 감히 가리켜 말하지 못하고 그래서 존족이라 한 것이다. 마하가섭파는 성문 제자로 여섯 신통을 얻고 여덟 벗어남을 갖추었다. 여래가 교화의 인연을 다 마치시고 장차 열반하시려 하며 가섭파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아득한 겁에 부지런히 고행을 닦아 여러 뭇 목숨을 위해 위없는 법을 구하였으니, 옛날 원하고 기약한 바가 이제 이미 열매로 찼다. 내가 이제 큰 열반에 들려 하며 여러 법의 곳간을 너에게 맡기니, 지니어 펴 널리 알리고 잃어 떨어뜨림이 없게 하라. 이모가 바친 금실 가사는 자씨가 부처를 이루시거든 남겨 전하여 주어라. 내가 남긴 법 가운데 여러 행을 닦는 이들, 곧 비구와 비구니와 오파색가와 오파사가를 다 먼저 건네주어 굴러 흐름을 여의게 하라」 하셨다. 가섭이 뜻을 받아 바른 법을 지니었다. 결집을 마치고 스무 해째에 이르러 세상이 덧없음을 싫어하여 장차 고요히 사라지려고, 이에 계족산으로 갔다. 산 북쪽으로 올라 굽이돌아 길을 잡아 서남쪽 언덕에 이르렀다. 산봉우리가 험하고 막히며 벼랑길이 서리어 넓으매, 이에 지팡이로 두드리니 쪼개짐이 베는 듯하였다. 산길이 열리매 길을 좇아 나아가, 서리고 굽어 돌며 비스듬히 통하여 산꼭대기에 이르러 동북쪽으로 나왔다. 세 봉우리 가운데 들어가 부처의 가사를 받들고 서니, 원의 힘으로 세 봉우리가 오므라 덮였다. 그러므로 이제 이 산에 세 등마루가 솟아 있다. 오는 세상에 자씨 세존이 세상에 일어나시매, 세 번 모임에서 법을 말씀하신 뒤에도 아직 한없이 교만한 뭇 목숨이 남아 장차 이 산에 올라 가섭이 있는 데 이를 것이다. 자씨가 손가락을 튕기면 산봉우리가 절로 열린다. 저 여러 뭇 목숨이 가섭을 보고 나서 교만이 더욱 더한다. 그때 대가섭이 옷을 주고 말을 부치며 예를 올려 마치고, 몸을 허공에 올려 여러 신통한 변화를 보이고 불로 변해 몸을 사르고 마침내 고요히 사라진다. 그때 무리가 우러러보다가 교만한 마음이 없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느껴 깨달아 다 거룩한 열매를 증득한다. 그러므로 이제 산 위에 탑을 세웠으니, 고요한 밤에 멀리 바라보면 더러 밝은 횃불이 보인다. 산에 올라가면 마침내 보이는 바가 없다.
협주 5
居勿反。
거와 물의 반절로 읽는다.
唐言雞足。
당나라 말로는 계족이다.
唐言尊足山。
당나라 말로는 존족산이다.
唐言近事男。舊曰伊蒱塞,又曰優婆塞,皆訛化。
당나라 말로는 근사남이다. 옛적에는 이포색이라 하고 또 우파색이라 하였으나 다 잘못이다.
唐言近事女。舊曰優婆斯,又曰優婆夷,皆訛也。
당나라 말로는 근사녀다. 옛적에는 우파사라 하고 또 우파이라 하였으나 다 잘못이다.
5불타벌나산
雞足山東北行百餘里,至佛陀伐那山。峰崖崇峻,巘崿隱嶙。巖間石寶,佛嘗降止。傍有般石,帝釋、梵天摩牛頭栴檀塗飾如來,今其石上餘香郁烈。五百羅漢潛靈於此,諸有感遇,或得睹見,時作沙彌之形,入裏乞食。或隱或顯,靈奇之跡,差難以述。
계족산에서 동북쪽으로 백여 리를 가면 불타벌나산에 이른다. 봉우리와 벼랑이 높고 가파르며 산꼭대기가 겹겹이 이어졌다. 바위 사이 돌집에 부처가 일찍이 내려 머무셨다. 곁에 너럭바위가 있으니 제석과 범천이 우두전단을 갈아 여래께 발라 꾸민 곳이라, 이제 그 돌 위에 남은 향내가 짙게 풍긴다. 오백 아라한이 여기에 신령을 감추었는데, 여러 느껴 만나는 이가 더러 보게 되니 때로 사미의 모습을 하고 마을에 들어와 빌어먹는다. 더러 숨고 더러 나타나는 신령하고 기이한 자취를 다 적기 어렵다.
6장림 — 자를 던진 바라문
佛陀伐那山空谷中東行三十餘里,至泄瑟知林。林竹修勁,被山彌谷。其先有婆羅門,聞釋迦佛身長丈六,常懷疑惑,未之信也,乃以丈六竹杖,欲量佛身。恒於杖端出過丈六,如是增高,莫能窮實,遂投杖而去,因植根焉。中有大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如來在昔,於此七日為諸天人現大神通,說深妙法。
불타벌나산 빈 골짜기 가운데로 동쪽으로 삼십여 리를 가면 설슬지 숲에 이른다. 숲의 대나무가 길고 굳세어 산을 덮고 골짜기에 가득하다. 그에 앞서 어떤 바라문이 석가 부처의 몸 길이가 한 길 여섯 자라는 말을 듣고 늘 의심을 품어 믿지 않다가, 이에 한 길 여섯 자 되는 대나무 자로 부처의 몸을 재려 하였다. 늘 자 끝에서 한 길 여섯 자를 넘어 나오고 이같이 자꾸 높아져 그 실상을 다할 수 없으매, 마침내 자를 던지고 갔는데 그로 말미암아 뿌리가 내렸다. 그 가운데 큰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가 옛날 여기서 이레 동안 여러 하늘과 사람을 위해 큰 신통을 나타내고 깊고 묘한 법을 말씀하셨다.
협주 2
移結反。
이와 결의 반절로 읽는다.
唐言杖林。
당나라 말로는 장림이다.
7승군 거사 — 백 살까지 탑을 지은 사람
杖林中近有鄔波索迦阇耶犀那者,西印度剎帝利種也,志尚夷簡,情悅出林,跡居幻境,心遊真際,內外典籍,窮究幽微,辭論清高,儀範閑雅。諸沙門、婆羅門、外道異學、國王、大臣、長者、豪右,相趣通謁,伏膺請益。受業門人,十室而六。年漸七十,耽讀不倦,餘藝捐廢,惟習佛經,策勵身心,不舍晝夜。印度之法,香末為泥,作小窣堵波,高五六寸,書寫經文,以置其中,謂之法舍利也。數漸盈積,建大窣堵波,總聚於內,常修供養。故勝軍之為業也,口則宣說妙法,導誘學人,手乃作窣堵波,式崇勝福,夜又經行禮誦,宴坐思惟,寢食不遑,晝夜無怠。年百歲矣,志業不衰。三十年間,凡作七拘胝法舍利窣堵波。每滿一拘胝,建大窣堵波,而總置中,盛修供養,請諸僧眾,法會稱慶。其時神光燭曜,靈異昭彰。自茲厥後,時放光明。
장림 가운데 요즈음 오파색가 사야서나라는 이가 있으니 서인도 찰제리 겨레다. 뜻이 평이하고 간소함을 숭상하고 마음이 숲에 나가 있기를 기뻐하여, 자취는 헛된 경계에 살면서 마음은 참된 자리에 노닐었다. 안팎의 전적에 그윽하고 은미한 데까지 궁구하였으며, 말과 논이 맑고 높고 몸가짐과 법도가 한가하고 아정하였다. 여러 사문과 바라문과 외도의 다른 배움과 나라의 왕과 대신과 장자와 호족이 서로 나아가 뵙고, 마음으로 엎드려 가르침을 청하였다. 업을 받은 문인이 열 집에 여섯이었다. 나이가 점점 일흔이 되어도 읽기에 빠져 게으르지 않아, 다른 재주는 버리고 오직 불경만 익히며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여 밤낮을 놓지 않았다. 인도의 법에 향가루로 진흙을 삼아 작은 탑을 만들되 높이가 대여섯 치요, 경문을 베껴 그 안에 두니 이를 법의 사리라 한다. 수가 점점 차서 쌓이면 큰 탑을 세워 안에 다 모으고 늘 공양을 닦는다. 그러므로 승군의 하는 업이, 입으로는 묘한 법을 펴 말하여 배우는 이를 이끌어 꾀고 손으로는 탑을 만들어 법식대로 뛰어난 복을 높였다. 밤이면 또 거닐며 예배하고 외며 고요히 앉아 생각하여, 자고 먹을 겨를이 없이 밤낮으로 게으름이 없었다. 나이 백이 되었으나 뜻과 업이 쇠하지 않았다. 서른 해 동안 무릇 일곱 구지의 법 사리 탑을 지었다. 한 구지가 찰 때마다 큰 탑을 세워 그 안에 다 두고 공양을 성대히 닦으며, 여러 승려를 청하여 법회를 열고 하례하였다. 그때 신묘한 빛이 비쳐 빛나고 신령한 이적이 밝게 드러났다. 이때부터 뒤로 때때로 밝은 빛을 놓는다.
협주 2
唐言勝軍。
당나라 말로는 승군이다.
唐言億。
당나라 말로는 억이다.
8두 온천
杖林西南十餘里,大山陽有二溫泉,其水甚熱。在昔如來化出此水,於中浴焉。今者尚存,清流無減,遠近之人,皆來就浴,沈痾宿疹,多有除差。其傍則有窣堵波,如來經行之處也。
장림 서남쪽 십여 리, 큰 산 남쪽에 온천 둘이 있으니 그 물이 매우 뜨겁다. 옛날 여래가 이 물을 만들어 내어 그 안에서 목욕하셨다. 이제도 아직 남아 맑은 흐름이 줄지 않으니, 멀고 가까운 사람이 다 와서 목욕한다. 오래된 병과 묵은 종기가 나은 이가 많다. 그 곁에는 탑이 있으니 여래가 거니신 자리다.
9빈비사라왕이 쌓은 돌계단
杖林東南行六七里,至大山,橫嶺之前有石窣堵波。昔如來雨三月為諸人天於此說法,時頻毗娑羅王欲來聽法,乃疏山積石,壘階以進,廣二十餘步,長三四里。
장림 동남쪽으로 예닐곱 리를 가면 큰 산에 이르는데, 가로 뻗은 재 앞에 돌 탑이 있다. 옛날 여래가 비 오는 석 달 동안 여러 사람과 하늘을 위해 여기서 법을 말씀하셨는데, 그때 빈비사라왕이 와서 법을 들으려고 이에 산을 트고 돌을 쌓아 층계를 지어 나아갔으니, 너비가 이십여 걸음이요 길이가 서너 리다.
10광박 선인의 석실
大山北三四里,有孤山,昔廣博仙人棲隱於此,鑿崖為室,餘趾尚存。傳教門人,遺風猶扇。
큰 산 북쪽 서너 리에 외딴 산이 있으니 옛날 광박 선인이 여기 숨어 살며 벼랑을 뚫어 방을 삼았는데 남은 자취가 아직 있다. 가르침을 전한 문인의 남긴 기풍이 아직도 부친다.
11천 사람이 앉는 석실
孤山東北四五里,有小孤山,山壁石室廣袤可坐千餘人矣。如來在昔於此三月說法。石室上有大磐石,帝釋、梵天磨牛頭旃檀塗飾佛身,石上餘香,於今郁烈。
외딴 산 동북쪽 네댓 리에 작은 외딴 산이 있으니, 산 벼랑의 석실이 넓이와 길이가 천여 사람이 앉을 만하다. 여래가 옛날 여기서 석 달 동안 법을 말씀하셨다. 석실 위에 큰 너럭바위가 있으니 제석과 범천이 우두전단을 갈아 부처의 몸에 발라 꾸민 곳이라, 돌 위에 남은 향내가 이제도 짙게 풍긴다.
12아소락 궁에 들어간 열넷
石室西南隅有巖岫,印度謂之阿素洛宮也。往有好事者,深閑咒術,顧儔命侶,十有四人,約契同志,入此巖岫。行三四十里,廓然大明,乃見城邑臺觀,皆是金銀琉璃。是人至已,有諸少女佇立門側,歡喜迎接,甚加禮遇。於是漸進至內城門,有二婢使各捧金盤,盛滿花香,而來迎候。謂諸人曰:「宜就池浴,塗冠香花,已而後入,斯為美矣。唯彼術士,宜時速進。」餘十三人遂即沐浴,即入池已,恍若有忘,乃坐稻田中,去此之北平川中,已三四十里矣。
석실 서남쪽 모퉁이에 바위 굴이 있으니 인도에서 아소락 궁이라 한다. 지난날 일 좋아하는 이가 있어 주문의 술법에 깊이 익숙하였는데, 짝을 돌아보고 벗을 불러 열넷이 뜻을 같이하기로 약속하고 이 바위 굴에 들어갔다. 삼사십 리를 가니 확 트여 크게 밝고, 이에 성과 고을과 대와 다락이 보이는데 다 금과 은과 유리였다. 이 사람들이 이르매 여러 어린 여자가 문 곁에 서서 기쁘게 맞아들이며 몹시 예로 대접하였다. 이에 점점 나아가 안쪽 성문에 이르니, 두 계집종이 각각 금 쟁반을 받들고 꽃과 향을 가득 담아 맞으러 왔다. 여러 사람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못에 나아가 목욕하고 향과 꽃을 바르고 쓴 뒤에 들어가면 이것이 아름답습니다. 오직 저 술사만은 마땅히 때맞추어 빨리 나아가소서」 하였다. 나머지 열세 사람이 마침내 곧 목욕하였는데, 못에 들자마자 어렴풋이 잊은 듯하더니 이에 논 가운데 앉아 있었고, 여기서 북쪽 평평한 벌판으로 이미 삼사십 리 되는 데였다.
협주 1
舊曰阿修羅,又曰阿須倫,又曰阿蘇羅,皆訛也。
옛적에는 아수라라 하고 또 아수륜이라 하고 또 아소라라 하였으나 다 잘못이다.
13벼랑을 깎아 낸 잔도
石室側有棧道,廣十餘步,長四五里。昔頻毗婆羅王將往佛所,乃斬石通谷,疏崖導川,或壘石,或鑿巖,作為階級,以至佛所。
석실 곁에 잔도가 있으니 너비가 십여 걸음이요 길이가 네댓 리다. 옛날 빈비바라왕이 장차 부처 계신 데로 가려고, 이에 돌을 베어 골짜기를 통하고 벼랑을 터 내를 이끌며, 더러는 돌을 쌓고 더러는 바위를 뚫어 층계를 지어 부처 계신 데에 이르렀다.
14상모궁성
從此大山中東行六十餘里,至矩奢揭羅補羅城。上茅宮城,摩揭陁國之正中,古先君王之所都,多出勝上吉祥香茅,以故謂之上茅城也。崇山四周,以為外郭,西通峽徑,北辟山門,東西長,南北狹,周一百五十餘里。內城餘趾周三十餘里。羯尼迦樹遍諸蹊徑,花含殊馥,色爛黃金,暮春之月,林皆金色。
여기서 큰 산 가운데로 동쪽으로 육십여 리를 가면 구사게라보라성에 이른다. 상모궁성은 마게타국의 한가운데요 옛 앞선 임금이 도읍하던 데다. 뛰어나게 좋은 길상 향모가 많이 나므로 그래서 상모성이라 한다.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 바깥 성곽을 삼고, 서쪽으로 좁은 지름길이 통하며 북쪽으로 산문이 열렸다.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좁아 둘레가 백오십여 리다. 안쪽 성의 남은 터는 둘레가 삼십여 리다. 갈니가 나무가 여러 오솔길에 두루 하여 꽃이 남다른 향내를 머금고 빛이 황금처럼 빛나니, 늦봄 달에는 숲이 다 금빛이다.
협주 1
唐言上茅宮城。
당나라 말로는 상모궁성이다.
15술 취한 코끼리를 항복받으신 자리
宮城北門外有窣堵波,是提婆達多與未生怨王共為親友,乃放護財醉象,欲害如來。如來指端出五師子,醉象於此馴伏而前。
궁성 북문 밖에 탑이 있으니 이는 제바달다가 미생원왕과 함께 벗이 되어, 이에 호재라는 술 취한 코끼리를 놓아 여래를 해치려 한 자리다. 여래가 손가락 끝에서 다섯 사자를 내시매 술 취한 코끼리가 여기서 길들어 엎드리고 나아갔다.
16사리자가 마승에게 법을 듣다
伏醉象東北有窣堵波,是舍利子聞阿濕婆恃比丘說法證果之處。初,舍利子在家也,高才雅量,見重當時,門生學徒,傳以受業。此時將入王舍大城,馬勝比丘亦方乞食。時舍利子遙見馬勝,謂門生曰:「彼來者甚庠序,不證聖果。豈斯調寂?宜少佇待,觀其進趣。」馬勝比丘已證羅漢,心得自在,容止和雅,振錫來儀。舍利子曰:「長老善安樂耶?師何人,證何法,若此之悅豫乎?」馬勝謂曰:「爾不知耶,凈飯王太子舍轉輪王位,悲湣六趣,苦行六年,證三菩提,具一切智,是吾師也。夫法者,非有非空,難用詮敘,惟佛與佛乃能究述,豈伊愚昧所能詳議?」因為頌說,稱贊佛法,舍利子聞已,便獲果證。
술 취한 코끼리를 항복받은 자리 동북쪽에 탑이 있으니, 이는 사리자가 아습바시 비구의 설법을 듣고 열매를 증득한 자리다. 처음에 사리자가 집에 있을 때 재주가 높고 도량이 아정하여 그때에 무겁게 여겨졌고, 문하의 배우는 무리에게 이어 업을 전하였다. 이때 왕사 큰 성에 들어가려 하는데 마승 비구도 바야흐로 빌어먹고 있었다. 그때 사리자가 멀리 마승을 보고 문생에게 이르기를 「저 오는 이가 몹시 차분하니 거룩한 열매를 증득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고르고 고요하겠는가. 마땅히 잠깐 서서 기다려 그 나아가는 바를 보자」 하였다. 마승 비구는 이미 아라한을 증득하여 마음에 자재를 얻고 몸가짐이 화하고 아정하였는데, 지팡이를 떨치며 왔다. 사리자가 이르기를 「장로는 잘 편안하고 즐거우신가. 스승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법을 증득하였기에 이렇게 기쁘신가」 하니, 마승이 이르기를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정반왕의 태자가 전륜왕 자리를 버리고 여섯 갈래를 가엾이 여겨 여섯 해를 고행하여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온갖 지혜를 갖추셨으니 이가 내 스승이다. 무릇 법이란 있는 것도 아니요 빈 것도 아니어서 말로 펴기 어렵고, 오직 부처와 부처라야 궁구해 펼 수 있으니 어찌 저 어리석은 이가 자세히 의논할 바이겠는가」 하고, 그로 말미암아 게송으로 말하여 불법을 기려 일컬었다. 사리자가 듣고 나서 곧 열매를 얻어 증득하였다.
협주 1
唐言馬勝。
당나라 말로는 마승이다.
17승밀의 불구덩이와 독밥
舍利子證果北不遠,有大深坑,傍建窣堵波,是室利毱多以火坑、毒飯欲害佛處。勝密者,宗信外道,深著邪見。諸梵志曰:「喬答摩國人尊敬,遂令我徒無所恃賴,汝今可請至家飯會,門穿大坑,滿中縱火,棧以朽木,覆以燥土。凡諸飯食,皆雜毒藥,若免火坑,當遭毒食。」勝密承命,便設毒會。城中之人皆知勝密於世尊所起惡害心,咸皆勸請,願佛勿往。世尊告曰:「無得懷憂。如來之身,物莫能害。」於是受請而往。足履門閫,火坑成池,清瀾澄鑒,蓮花彌漫。勝密見已,憂惶無措,謂其徒曰:「以術免火,尚有毒食。」世尊飯食已訖,為說妙法,勝密聞已,謝咎歸依。
사리자가 열매를 증득한 자리 북쪽 멀지 않은 데 크고 깊은 구덩이가 있고 곁에 탑을 세웠으니, 이는 실리국다가 불구덩이와 독 든 밥으로 부처를 해치려 한 자리다. 승밀이라는 이는 외도를 받들어 믿어 삿된 견해에 깊이 붙어 있었다. 여러 범지가 이르기를 「교답마를 나라 사람이 높이 공경하여 마침내 우리 무리로 하여금 믿고 기댈 데가 없게 하였다. 너는 이제 집에 청하여 밥 모임을 열되, 문에 큰 구덩이를 뚫고 그 안에 불을 가득 놓으며 썩은 나무로 다리를 놓고 마른 흙으로 덮으라. 무릇 여러 음식에 다 독약을 섞으면, 만일 불구덩이를 면하더라도 마땅히 독 든 밥을 만날 것이다」 하였다. 승밀이 명을 받아 곧 독 있는 모임을 베풀었다. 성 안의 사람이 다 승밀이 세존께 악하게 해치려는 마음을 낸 줄 알고, 다들 권해 청하여 부처께서 가지 마시기를 원하였다. 세존이 이르시기를 「근심을 품지 말라. 여래의 몸은 무엇도 해칠 수 없다」 하시고, 이에 청을 받아 가셨다. 발이 문지방을 밟으매 불구덩이가 못이 되어 맑은 물결이 거울처럼 맑고 연꽃이 널리 퍼졌다. 승밀이 보고 나서 근심하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라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술법으로 불은 면하였으나 아직 독 든 밥이 있다」 하였다. 세존이 밥을 잡숫고 나서 묘한 법을 말씀하시니, 승밀이 듣고 허물을 사죄하고 돌아와 의지하였다.
협주 1
唐言勝密。
당나라 말로는 승밀이다.
18시박가가 세운 설법당
勝密火坑東北,山城之曲,有窣堵波,是時縛迦大醫於此為佛建說法堂,周其壖垣種植花果,餘址蘗株尚有遺跡。如來在世,多於中止。其傍復有時縛迦故宅,餘其舊井,墟坎猶存。
승밀의 불구덩이 동북쪽 산성이 굽은 데에 탑이 있으니, 이는 시박가 큰 의원이 여기서 부처를 위해 설법당을 세운 자리다. 그 담을 둘러 꽃과 열매를 심었는데, 남은 터와 그루터기에 아직 자취가 있다.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 그 안에 많이 머무셨다. 그 곁에 또 시박가의 옛집이 있고 그 옛 우물이 남았으며 터의 구덩이가 아직 있다.
협주 1
舊曰耆婆,訛也。
옛적에는 기바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19취봉산
宮城東北行十四五里,至姞栗陁羅矩咤山,接北山之陽,孤標特起,既棲鷲鳥,又類高臺,空翠相映,濃淡分色。如來禦世垂五十年,多居此山,廣說妙法。頻毗娑羅王為聞法故,興發人徒,自山麓至峰岑,跨谷淩巖,編石為階,廣十餘步,長五六里。中路有二小窣堵波,一謂下乘,即王至此徒行以進;一謂退凡,即簡凡夫不令同往。其山頂則東西長,南北狹。臨崖西埵有磚精舍,高廣奇制,東辟其戶,如來在昔多居說法。今作說法之像,量等如來之身。
궁성 동북쪽으로 열네댓 리를 가면 길률타라구타산에 이르니, 북쪽 산의 남쪽에 이어져 홀로 우뚝 솟았다. 이미 독수리가 깃들고 또 높은 대와 비슷하며, 하늘빛과 푸른빛이 서로 비쳐 짙고 옅음이 빛깔을 나눈다. 여래가 세상을 다스리시기 오십 해 가까이 이 산에 많이 계시며 묘한 법을 널리 말씀하셨다. 빈비사라왕이 법을 듣기 위하여 사람을 일으켜, 산기슭에서 봉우리까지 골짜기를 걸치고 바위를 넘어 돌을 엮어 층계를 지으니 너비가 십여 걸음이요 길이가 대여섯 리다. 가운뎃길에 작은 탑 둘이 있는데, 하나는 하승이라 하니 곧 왕이 여기 이르러 걸어서 나아간 자리요, 하나는 퇴범이라 하니 곧 범부를 가려 함께 가지 못하게 한 자리다. 그 산꼭대기는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좁다. 벼랑에 임한 서쪽 언덕에 벽돌 정사가 있으니 높고 넓으며 짜임이 기이하고 동쪽으로 문을 열었다. 여래가 옛날 여기 많이 계시며 법을 말씀하셨다. 이제 법을 말씀하시는 상을 만들었으니 크기가 여래의 몸과 같다.
협주 1
唐言鷲峰,亦謂鷲臺。舊曰耆阇崛山,訛也。
당나라 말로는 취봉이니 또한 취대라 이른다. 옛적에는 기사굴산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20제바달다가 돌을 던진 자리
精舍東有長石,如來經行所履也。傍有大石,高丈四五尺,周三十餘步,是提婆達多遙擲擊佛處也。其南崖下有窣堵波,在昔如來於此說《法華經》。
정사 동쪽에 긴 돌이 있으니 여래가 거니시며 밟으신 것이다. 곁에 큰 돌이 있어 높이가 한 길 너덧 자요 둘레가 삼십여 걸음이니, 이는 제바달다가 멀리서 던져 부처를 친 자리다. 그 남쪽 벼랑 아래 탑이 있으니 옛날 여래가 여기서 『법화경』을 말씀하셨다.
21부처가 선정에 드신 석굴
精舍南山崖側有大石寶,如來在昔於此入定。
정사 남쪽 산벼랑 곁에 큰 돌집이 있으니 여래가 옛날 여기서 선정에 드셨다.
22마귀가 아난을 두렵게 한 자리
佛石寶西北,石寶前有大磐石,阿難為魔怖處也。尊者阿難於此入定,魔王化作鷲鳥,於黑月夜分據其大石,備翼驚鳴,以怖尊者。尊者是時驚懼無措,如來鑒見,伸手安慰,通過石壁,摩阿難頂,以大慈言而告之曰:「魔所變化,宜無怖懼。」阿難蒙慰,身心安樂。石上鳥跡、崖中通穴,歲月雖久,於今尚存。
부처의 돌집 서북쪽, 돌집 앞에 큰 너럭바위가 있으니 아난이 마귀에게 두려움을 당한 자리다. 존자 아난이 여기서 선정에 들었는데, 마왕이 독수리로 변하여 그믐밤에 그 큰 돌에 웅크리고 날개를 떨치며 놀라 울어 존자를 두렵게 하였다. 존자가 이때 놀라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매, 여래가 살펴보시고 손을 뻗어 위로하시니 돌벽을 뚫고 지나 아난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며 크게 자애로운 말로 알려 이르시기를 「마귀가 변화한 것이니 마땅히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다. 아난이 위로를 입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돌 위의 새 자취와 벼랑 가운데 뚫린 구멍이 세월이 오래되었으나 이제도 아직 남아 있다.
23사리자 들의 석실
精舍側有數石室,舍利子等諸大羅漢於此入定。舍利子石室前有一大井,枯涸無水,墟坎猶存。
정사 곁에 석실 몇이 있으니 사리자 들 여러 큰 아라한이 여기서 선정에 들었다. 사리자의 석실 앞에 큰 우물 하나가 있으니 말라 물이 없고 터의 구덩이만 아직 남았다.
24가사를 볕에 말리신 바위
精舍東北石澗中有大磐石,是如來曬袈裟之處,衣文明徹,皎如雕刻。其傍石上有佛腳跡,輪文雖暗,規模可察。
정사 동북쪽 돌 시내 가운데 큰 너럭바위가 있으니 이는 여래가 가사를 볕에 말리신 자리다. 옷의 무늬가 환히 트여 새긴 듯이 밝다. 그 곁 돌 위에 부처의 발자국이 있으니 바퀴 무늬는 비록 어두우나 모양은 살필 만하다.
25마게타성을 바라보신 자리
北山頂有窣堵波,是如來望摩揭陁城,於此七日說法。
북쪽 산꼭대기에 탑이 있으니 이는 여래가 마게타성을 바라보시며 여기서 이레 동안 법을 말씀하신 자리다.
26비포라산의 온천
山城北門西,有毗布羅山。聞之土俗曰:「山西南崖陰,昔有五百溫泉,今者數十而已,然猶有冷有暖,未盡溫也。其泉源發雪山之南無熱惱池,潛流至此,水甚清美,味同本池。流經五百枝小熱地獄,火勢上炎,致斯溫熱。泉流之口,並皆雕石,或作師子、白象之首,或作石筒懸流之道,下乃編石為池。諸方異域咸來此浴,浴者宿疹多差。
산성 북문 서쪽에 비포라산이 있다. 그 고장 풍속에서 들으니 이르기를 「산 서남쪽 벼랑 그늘에 옛날 오백 온천이 있었는데 이제는 수십일 뿐이다. 그러나 아직 찬 것도 있고 따뜻한 것도 있어 다 뜨겁지는 않다. 그 샘의 근원은 설산 남쪽 무열뇌지에서 나서 몰래 흘러 여기에 이르니, 물이 매우 맑고 좋으며 맛이 본디 못과 같다. 흘러서 오백 갈래 작은 뜨거운 지옥을 지나매 불기운이 위로 타올라 이 따뜻함과 뜨거움에 이른 것이다」 하였다. 샘물이 흘러나오는 어귀에 다 돌을 새겨, 더러는 사자와 흰 코끼리의 머리를 짓고 더러는 돌 대롱으로 매달아 흐르는 길을 만들었으며, 아래에는 돌을 엮어 못을 만들었다. 여러 지방 다른 지역에서 다 여기 와 목욕하니, 목욕한 이는 묵은 병이 흔히 낫는다.
27온천 좌우의 자취
溫泉左右諸窣堵波及精舍,基址鱗次,並是過去四佛坐及經行遺跡之所。此處既山水相帶,仁智攸居,隱淪之士蓋亦多矣。
온천 좌우의 여러 탑과 정사는 터가 비늘처럼 늘어섰으니, 다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다. 이곳은 이미 산과 물이 서로 띠를 둘러 어진 이와 슬기로운 이가 사는 데라, 숨어 사는 선비가 아마 또한 많았을 것이다.
28비발라 석실 — 굴에서 나온 여자
溫泉西有卑缽羅石室,世尊在昔恒居其中。後壁洞穴是阿素洛宮也。習定比丘多居此室,時出怪異,龍、蛇、師子之形,見之者心發狂亂。然斯聖地,靈聖所止,躡跡欽風,忘其災禍。近有比丘,戒行貞潔,心樂幽寂,欲於此室匿跡習定。或有諫曰:「勿往彼也。彼多災異,為害不少,既難取定,亦恐喪身。宜鑒前事,勿貽後悔。」比丘曰:「不然。我方志求佛果,摧伏天魔,若此之害,夫何足言?」便即振錫而往室焉。於是設壇場,誦禁咒。旬日之後,穴出少女,謂比丘曰:「尊者染衣守戒,為含識歸依,修慧習定,作生靈善導。而今居此,驚駭我曹。如來之教,豈若是耶?」比丘曰:「我守凈戒,遵聖教也。匿跡山谷,遠喧雜也。忽此見譏,其咎安在?」對曰:「尊者誦咒聲發,火從外入,燒我居室,苦我枝屬。唯願悲湣,勿復誦咒。」比丘曰:「誦咒自護,非欲害物。往者,行人居此習定,期於聖果,以濟幽塗,睹怪驚駭,喪棄身命,汝之辜也。其何辭乎?」對曰:「罪障既重,智慧斯淺。自今已來,屏居守分,亦願尊者勿誦神咒。」比丘於是修定如初,安靜無害。
온천 서쪽에 비발라 석실이 있으니 세존이 옛날 늘 그 안에 계셨다. 뒷벽의 뚫린 구멍은 아소락의 궁이다. 선정을 익히는 비구가 이 방에 많이 사는데, 때때로 괴이한 일이 일어나 용과 뱀과 사자의 모양이 나타나매 보는 이가 마음이 미쳐 어지러워진다. 그러나 이 거룩한 땅은 신령한 성인이 머무신 데라, 자취를 밟고 기풍을 흠모하여 그 재앙과 화를 잊는다. 요즈음 어떤 비구가 있어 계행이 곧고 깨끗하며 마음이 그윽하고 고요함을 즐겨, 이 방에서 자취를 감추고 선정을 익히려 하였다. 어떤 이가 간하여 이르기를 「저기 가지 마시오. 저기는 재앙과 이변이 많아 해가 적지 않소. 이미 선정을 얻기 어렵고 또 몸을 잃을까 두렵소. 마땅히 앞선 일을 거울삼아 뒤에 뉘우침을 남기지 마시오」 하니, 비구가 이르기를 「그렇지 않소. 나는 바야흐로 부처의 열매를 구하고 하늘 마귀를 꺾어 엎드리게 하려 하는데, 이 같은 해를 무엇이 말할 거리가 되겠소」 하고, 곧 지팡이를 떨치며 그 방으로 갔다. 이에 단을 베풀고 금하는 주문을 외었다. 열흘 뒤에 굴에서 어린 여자가 나와 비구에게 이르기를 「존자는 물들인 옷을 입고 계를 지켜 뜻 있는 것들의 돌아가 의지할 데가 되고, 지혜를 닦고 선정을 익혀 산 것들의 착한 인도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 살며 우리를 놀라게 하니, 여래의 가르침이 어찌 이러합니까」 하였다. 비구가 이르기를 「내가 깨끗한 계를 지킴은 거룩한 가르침을 좇는 것이요, 산골짜기에 자취를 감춤은 시끄럽고 섞임을 멀리함이다. 홀연히 여기서 나무람을 받으니 그 허물이 어디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존자가 주문을 외는 소리가 나매 불이 밖에서 들어와 내 사는 방을 태우고 내 겨레붙이를 괴롭힙니다. 오직 가엾이 여기시어 다시는 주문을 외지 마소서」 하였다. 비구가 이르기를 「주문을 외는 것은 스스로 지키려 함이지 만물을 해치려 함이 아니다. 지난날 행하는 이가 여기 살며 선정을 익혀 거룩한 열매를 기약하고 그로써 저승길을 건지려 하였는데, 괴이한 것을 보고 놀라 두려워 몸과 목숨을 잃었으니 이는 너희 허물이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죄의 가림이 이미 무겁고 지혜가 이에 얕습니다. 이제부터 뒤로 숨어 살며 분수를 지키겠으니, 또한 원컨대 존자도 신묘한 주문을 외지 마소서」 하였다. 비구가 이에 처음처럼 선정을 닦으니 편안하고 고요하여 해가 없었다.
29비포라산 위의 탑
毗布羅山上有窣堵波,昔者如來說法之處,今有露形外道,多依此住,修習苦行,夙夜匪懈,自旦至昏,旋轉觀察。
비포라산 위에 탑이 있으니 옛날 여래가 법을 말씀하신 자리다. 이제는 옷을 벗는 외도가 흔히 여기 의지해 살며 고행을 닦아, 아침저녁으로 게으르지 않고 새벽부터 저물녘까지 돌며 살핀다.
30제바달다가 선정에 든 석실
山城北門左南崖陰,東行二三里,至大石室,昔提婆達多於此入定。
산성 북문 왼쪽 남쪽 벼랑 그늘로 동쪽으로 두세 리를 가면 큰 석실에 이르니, 옛날 제바달다가 여기서 선정에 들었다.
31스스로 목을 찔러 열매를 얻은 비구
石室東不遠,磐石上有斑采,狀血染,傍建窣堵波,是習定比丘自害證果之處。昔有比丘,勤勵心身,屏居修定,歲月逾遠,不證聖果。退而自咎,竊復嘆曰:「無學之果,終不時證;有累之身,徒生何益?」便就此石自刺其頸,是時即證阿羅漢果,上升虛空,示現神變,化火焚身,而入寂滅。美其雅操,建以記功。
석실 동쪽 멀지 않은 너럭바위 위에 얼룩진 빛깔이 있어 피로 물든 듯한데, 곁에 탑을 세웠으니 이는 선정을 익히던 비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열매를 증득한 자리다. 옛날 어떤 비구가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채찍질하며 숨어 살아 선정을 닦았는데, 세월이 더욱 멀어지도록 거룩한 열매를 증득하지 못하였다. 물러나 스스로 허물하고 남몰래 다시 탄식하여 이르기를 「더 배울 것 없는 열매를 끝내 때맞추어 증득하지 못하니, 얽매임 있는 몸으로 헛되이 살아 무슨 이로움이 있으랴」 하고, 곧 이 돌에 나아가 스스로 그 목을 찔렀다. 이때 곧 아라한의 열매를 증득하여 허공에 올라 신통한 변화를 보이고 불로 변해 몸을 사르고 고요히 사라졌다. 그 아정한 지조를 아름다이 여겨 세워서 공을 적었다.
32벼랑에서 몸을 던져 열매를 얻은 비구
比丘證果東石崖上,有石窣堵波,習定比丘投崖證果之處。昔在佛世,有一比丘,宴坐山林,修證果定,精勤已久,不得果證。晝夜繼念,無忘靜定。如來知其根機將發也,遂往彼而成之,自竹林園至山崖下,彈指而召,佇立以待。此比丘遙睹聖眾,身意勇悅,投崖而下,猶其凈心,敬信佛語,未至於地,已獲果證。世尊告曰:「宜知是時。」即升虛空,示現神變。用彰凈信,故斯封記。
비구가 열매를 증득한 자리 동쪽 돌벼랑 위에 돌 탑이 있으니, 선정을 익히던 비구가 벼랑에서 몸을 던져 열매를 증득한 자리다. 옛날 부처가 계시던 세상에 어떤 비구가 산과 숲에서 고요히 앉아 열매를 증득하는 선정을 닦았는데, 부지런히 힘쓴 지 이미 오래되어도 열매를 증득하지 못하였다. 밤낮으로 잇달아 생각하며 고요한 선정을 잊지 않았다. 여래가 그 근기가 장차 피어날 줄 아시고 마침내 저리 가서 이루어 주시려고, 죽림원에서 산벼랑 아래에 이르러 손가락을 튕겨 부르시고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셨다. 이 비구가 멀리 거룩한 무리를 보고 몸과 뜻이 날래고 기뻐 벼랑에서 몸을 던졌는데, 그 깨끗한 마음과 부처의 말씀을 공경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땅에 이르기 전에 이미 열매를 얻었다. 세존이 이르시기를 「마땅히 이때를 알라」 하시니, 곧 허공에 올라 신통한 변화를 나타내었다. 깨끗한 믿음을 드러내려고 그래서 이렇게 봉해 적었다.
33가란타 죽원
山城北門行一里餘,至迦蘭陀竹園。今有精舍,石基磚室,東辟其戶。如來在世,多居此中,說法開化,導凡拯俗。今作如來之像,量等如來之身。
산성 북문에서 한 리 남짓 가면 가란타 죽원에 이른다. 이제 정사가 있으니 돌 터에 벽돌 방이요 동쪽으로 문을 열었다.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 이 안에 많이 계시며 법을 말씀하여 열어 교화하고, 범부를 이끌고 세속을 건지셨다. 이제 여래의 상을 만들었으니 크기가 여래의 몸과 같다.
34가란타 장자가 죽원을 바친 내력
初,此城中有大長者迦蘭陁,時稱豪貴,以大竹園施諸外道。及見如來,聞法凈信,追惜竹園居彼異眾,今天人師無以館舍。時諸神鬼感其誠心,斥逐外道,而告之曰:「長者迦蘭陁當以竹園起佛精舍,汝宜速去,得免危厄。」外道憤恚,含怒而去。長者於此建立精舍,功成事畢,躬往請佛。如來是時遂受其施。
처음에 이 성 안에 큰 장자 가란타가 있어 그때 호걸스럽고 귀하다 일컬어졌는데, 큰 대나무 동산을 여러 외도에게 베풀었다. 여래를 뵙고 법을 들어 맑게 믿게 되매, 대나무 동산이 저 다른 무리에게 있어 이제 하늘과 사람의 스승께 드릴 집이 없음을 뒤늦게 아까워하였다. 그때 여러 신과 귀신이 그 정성스러운 마음에 감동하여 외도를 물리쳐 쫓고 알려 이르기를 「장자 가란타가 마땅히 대나무 동산으로 부처의 정사를 일으키려 하니 너희는 빨리 가라. 위태로운 액을 면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 외도가 분하고 성내어 노여움을 머금고 갔다. 장자가 여기에 정사를 세워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끝나매 몸소 가서 부처를 청하니, 여래가 이때 마침내 그 베풂을 받으셨다.
35미생원왕의 탑
迦蘭陁竹園東有窣堵波,阿阇多設咄路王之所建也。如來涅槃之後,諸王共分舍利,未生怨王得以持歸,式遵崇建,而修供養。無憂王之發信心也,開取舍利,建窣堵波,尚有遺餘,時燭光景。
가란타 죽원 동쪽에 탑이 있으니 아사다설돌로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가 열반하신 뒤 여러 왕이 사리를 함께 나눌 때 미생원왕이 얻어 가지고 돌아와 법식대로 좇아 높이 세우고 공양을 닦았다. 무우왕이 믿는 마음을 내매 열어 사리를 가져다 탑을 세웠는데, 아직 남은 것이 있어 때때로 빛과 그림자가 비친다.
협주 1
唐言未生怨,舊曰阿阇世,訛略也。
당나라 말로는 미생원이다. 옛적에는 아사세라 하였으나 잘못되고 줄인 것이다.
36아난의 반쪽 사리
未生怨王窣堵波側窣堵波,有尊者阿難半身舍利。昔尊者將寂滅也,去摩揭陁國,趣吠舍厘城,兩國交爭,欲興兵甲。尊者傷湣,遂分其身。摩揭陁王奉歸供養,即斯勝地,式修崇建。
미생원왕의 탑 곁 탑에는 존자 아난의 반쪽 몸 사리가 있다. 옛날 존자가 장차 고요히 사라지려 할 때 마게타국을 떠나 폐사리성으로 가는데, 두 나라가 서로 다투어 군사를 일으키려 하였다. 존자가 아파하고 가엾이 여겨 마침내 그 몸을 나누었다. 마게타 왕이 받들어 돌아와 공양하며 곧 이 뛰어난 땅에 법식대로 높이 세웠다.
37여래가 거니신 자리
其傍則有如來經行之處。次此不遠有窣堵波,是舍利子及沒特伽羅子等安居之所。
그 곁에는 여래가 거니신 자리가 있다. 이 다음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이는 사리자와 몰특가라자 들이 안거하던 자리다.
38첫 결집의 석실
竹林園西南行五六里,南山之陰大竹林中有大石室,是尊者摩訶迦葉波於此與九百九十九大阿羅漢以如來涅槃後結集三藏。前有故基,未生怨王為集法藏諸大羅漢建此堂宇。
죽림원에서 서남쪽으로 대여섯 리를 가면 남쪽 산 그늘 큰 대나무 숲에 큰 석실이 있으니, 이는 존자 마하가섭파가 여기서 구백아흔아홉 큰 아라한과 함께 여래가 열반하신 뒤 삼장을 모아 엮은 자리다. 앞에 옛터가 있으니 미생원왕이 법의 곳간을 모으는 여러 큰 아라한을 위해 이 집을 세운 것이다.
39대가섭파가 삼장을 엮다
初,大迦葉宴坐山林,忽燭光明,又睹地震,曰:「是何祥變,若此之異?」以天眼觀,見佛世尊於雙樹林間入般涅槃。尋命徒屬趣拘屍城,路逢梵志,手執天花。迦葉問曰:「汝從何來?知我大師今在何處?」梵志對曰:「我適從彼拘屍城來,見汝大師已入涅槃。天人大眾咸興供養,我所持花,自彼得也。」迦葉聞已,謂其徒曰:「慧日淪照,世界暗冥,善導遐棄,眾生顛墜。」懈怠比丘更相賀曰:「如來寂滅,我曹安樂,若有所犯,誰能訶制?」迦葉聞已,深更感傷,思集法藏,據教治犯。遂至雙樹,觀佛禮敬。既而法王去世,人天無導,諸大羅漢亦取滅度,時大迦葉作是思惟:「承順佛教,宜集法藏。」於是登蘇迷盧山,擊大揵椎,唱如是言:「今王舍城將有法事,諸證果人宜時速集!」揵槌聲中傳迦葉教,遍至三千大千世界,得神通者聞皆集會。是時迦葉告諸眾曰:「如來寂滅,世界空虛,當集法藏,用報佛恩。今將集法,務從簡靜,豈恃群居,不成勝業?其有具三明,得六通,聞持不謬,辯才無礙,如斯上人,可應結集。自餘果學,各歸其居。」於是得九百九十九人。除阿難在學地,大迦葉召而謂曰:「汝未盡漏,宜出聖眾。」曰:「隨侍如來,多歷年所,每有法議,曾未棄遺。今將結集,而見擯斥。法王寂滅,失所依怙。」迦葉告曰:「勿懷憂惱。汝親侍佛,誠復多聞,然愛惑未盡,習結未斷。」阿難辭屈而出,至空寂處,欲取無學,勤求不證。既已疲怠,便欲假寐,未及伏枕,遂證羅漢。往結集所,叩門白至。迦葉問曰:「汝結盡耶?宜運神通,非門而入。」阿難承命,從鑰隙入,禮僧已畢,退而復坐。是時安居初十五日也。於是迦葉揚言曰:「念哉諦聽!阿難聞持,如來稱贊,集素呾纜藏。優波厘持律明究,眾所知識,集毗奈耶藏。我迦葉波集阿毗達磨藏。」雨三月盡,集三藏訖。以大迦葉僧中上座,因而謂之上座部焉。
처음에 대가섭이 산과 숲에서 고요히 앉았다가 홀연히 밝은 빛을 보고 또 땅이 흔들림을 보고 이르기를 「이 무슨 상서로운 변고이기에 이렇게 남다른가」 하고, 하늘눈으로 살피니 부처 세존이 두 나무 사이에서 반열반에 드시는 것이 보였다. 이내 무리에게 명하여 구시성으로 가는데, 길에서 범지를 만나니 손에 하늘 꽃을 들고 있었다. 가섭이 물어 이르기를 「너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 큰 스승이 이제 어디 계신지 아는가」 하니, 범지가 대답하기를 「내가 마침 저 구시성에서 왔는데, 그대의 큰 스승이 이미 열반에 드신 것을 보았소. 하늘과 사람의 큰 무리가 다 공양을 일으키기에 내가 가진 꽃도 거기서 얻은 것이오」 하였다. 가섭이 듣고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지혜의 해가 비춤을 잃어 세계가 어둡고, 착한 인도자가 멀리 버리시니 뭇 목숨이 넘어져 떨어지는구나」 하였다. 게으른 비구가 다시 서로 하례하여 이르기를 「여래가 고요히 사라지시매 우리가 편안하고 즐겁다. 범하는 바가 있은들 누가 꾸짖어 막겠는가」 하였다. 가섭이 듣고 더욱 깊이 마음 아파, 법의 곳간을 모아 가르침에 따라 범함을 다스릴 것을 생각하였다. 마침내 두 나무에 이르러 부처를 뵙고 예를 올렸다. 이윽고 법왕이 세상을 떠나시매 사람과 하늘에 인도자가 없고, 여러 큰 아라한도 사라져 건너가매, 그때 대가섭이 이렇게 생각하기를 「부처의 가르침을 이어 따라 마땅히 법의 곳간을 모으리라」 하였다. 이에 소미로산에 올라 큰 건추를 치며 이렇게 외쳐 이르기를 「이제 왕사성에 장차 법의 일이 있으리니, 여러 열매를 증득한 이는 마땅히 때맞추어 빨리 모이라」 하였다. 건추 소리 가운데 가섭의 가르침이 전해져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이르니, 신통을 얻은 이가 듣고 다 모여 왔다. 이때 가섭이 여러 무리에게 알려 이르기를 「여래가 고요히 사라지시매 세계가 비었으니, 마땅히 법의 곳간을 모아 부처의 은혜에 갚아야 한다. 이제 장차 법을 모으려 하매 간소하고 고요함을 좇기를 힘쓸 것이니, 어찌 무리로 모인 것만 믿고 뛰어난 업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세 가지 밝음을 갖추고 여섯 신통을 얻으며 들어 지님에 그름이 없고 말재주에 걸림이 없는 이, 이 같은 높은 이라야 결집에 응할 수 있다. 그 나머지 열매를 배우는 이는 저마다 제 사는 데로 돌아가라」 하였다. 이에 구백아흔아홉 사람을 얻었다. 다만 아난이 아직 배우는 자리에 있으매, 대가섭이 불러 이르기를 「너는 아직 새는 것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거룩한 무리에서 나가라」 하였다. 이르기를 「여래를 곁에서 모신 지 여러 해가 되었고, 법을 의논할 때마다 일찍이 버려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장차 결집하는데 물리침을 당합니다. 법왕이 고요히 사라지시매 의지할 데를 잃었습니다」 하였다. 가섭이 알려 이르기를 「근심하고 괴로워하지 말라. 너는 부처를 가까이 모셔 참으로 또한 들은 것이 많으나, 사랑의 미혹이 다하지 않았고 익힌 매듭이 끊어지지 않았다」 하였다. 아난이 말이 굽혀 나와 비고 고요한 데 이르러 더 배울 것 없는 자리를 얻으려 하였으나, 부지런히 구하여도 증득하지 못하였다. 이미 지치고 나른하여 잠깐 눈을 붙이려 하였는데, 미처 베개에 엎드리기 전에 마침내 아라한을 증득하였다. 결집하는 자리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이르렀음을 아뢰니, 가섭이 물어 이르기를 「너는 매듭이 다하였느냐. 마땅히 신통을 부려 문이 아닌 데로 들어오라」 하였다. 아난이 명을 받들어 열쇠 구멍으로 들어와 승가에 예를 올리기를 마치고 물러나 다시 앉았다. 이때가 안거 첫 보름날이었다. 이에 가섭이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새기고 자세히 들으라. 아난은 들어 지님을 여래가 기려 일컬으셨으니 소달람 곳간을 모으라. 우파리는 율을 지녀 밝게 궁구하고 뭇 사람이 아는 이니 비나야 곳간을 모으라. 나 가섭파는 아비달마 곳간을 모으겠다」 하였다. 비 오는 석 달이 다하매 삼장을 모으기를 마쳤다. 대가섭이 승가 가운데 상좌였으므로 그로 말미암아 이를 상좌부라 한다.
협주 2
舊曰修多羅,訛也。
옛적에는 수다라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舊曰毗那耶,訛也。
옛적에는 비나야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40아난이 열매를 얻은 자리
大迦葉結集西北,有窣堵波,是阿難受僧訶責,不預結集,至此宴坐,證羅漢果。證果之後,方乃預焉。
대가섭이 결집한 자리 서북쪽에 탑이 있으니, 이는 아난이 승가의 꾸짖음을 받아 결집에 끼지 못하고 여기 이르러 고요히 앉아 아라한의 열매를 증득한 자리다. 열매를 증득한 뒤에야 비로소 끼었다.
41대중부의 결집
阿難證果西行二十餘里,有窣堵波,無憂王之所的建也,大眾部結集之處。諸學無學數百千人,不預大迦葉結集之眾,而來至此,更相謂曰:「如來在世,同一師學,法王寂滅,簡異我曹。欲報佛恩,當集法藏。」於是凡聖咸會,賢智畢萃,復集素呾纜藏、毗奈耶藏、阿毗達磨藏、雜集藏、禁咒藏,別為五藏。而此結集,凡、聖同會,因而謂之大眾部。
아난이 열매를 증득한 자리에서 서쪽으로 이십여 리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대중부가 결집한 자리다. 여러 배울 것이 있는 이와 없는 이 수백천 사람이 대가섭의 결집하는 무리에 끼지 못하고 여기 와서 이르러, 다시 서로 이르기를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는 한 스승에게 같이 배웠는데, 법왕이 고요히 사라지시매 우리를 가려 다르게 대한다. 부처의 은혜에 갚고자 하면 마땅히 법의 곳간을 모아야 한다」 하였다. 이에 범부와 성인이 다 모이고 어진 이와 슬기로운 이가 다 모여, 다시 소달람 곳간과 비나야 곳간과 아비달마 곳간과 잡집 곳간과 금주 곳간을 모아 따로 다섯 곳간을 삼았다. 그리고 이 결집은 범부와 성인이 함께 모였으므로 그로 말미암아 이를 대중부라 한다.
42가란타 못
竹林精舍北行二百餘步,至迦蘭陁池,如來在昔多此說法。水既清澄,具八功德,佛涅槃後,枯涸無餘。
죽림정사에서 북쪽으로 이백여 걸음을 가면 가란타 못에 이르니, 여래가 옛날 여기서 법을 많이 말씀하셨다. 물이 이미 맑고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추었는데, 부처가 열반하신 뒤 말라 남은 것이 없다.
43무우왕의 탑과 돌기둥
迦蘭陁池西北行二三里,有窣堵波,無憂王所建也,高六十餘尺。傍有石柱,刻記立窣堵波事,高五十餘尺,上作象形。
가란타 못에서 서북쪽으로 두세 리를 가면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높이가 육십여 자다. 곁에 돌기둥이 있어 탑을 세운 일을 새겨 적었으니 높이가 오십여 자요 위에 코끼리 모양을 지었다.
44왕사성
石柱東北不遠,至曷羅阇姞利呬城。外郭已壞,無復遺堵。內城雖毀,基址猶峻,周二十餘里,面有一門。
돌기둥 동북쪽 멀지 않은 데 갈라사길리희성에 이른다. 바깥 성곽은 이미 무너져 다시 남은 담이 없다. 안쪽 성은 비록 헐렸으나 터가 아직 높으니 둘레가 이십여 리요 면마다 문 하나가 있다.
협주 1
唐言王舍。
당나라 말로는 왕사다.
45왕사성이라 이름한 내력
初,頻毗娑羅王都在上茆宮城也,編戶之家頻遭火害,一家縱逸,四鄰罹災,防火不暇,資產廢業,眾庶嗟怨,不安其居。王曰:「我以不德,下民罹患,修何福德可以禳之?」群臣曰:「大王德化邕穆,政教明察,今茲細民不謹,致此火災。宜制嚴科,以清後犯,若有火起,窮究先發,罰其首惡,遷之寒林。寒林者,棄屍之所,俗謂不詳之地,人絕遊往之跡。令遷於彼,同夫棄屍。既恥陋居,當自謹護。」王曰:「善,宜遍宣告居人。」頃之,王宮中先自失火。謂諸臣曰:「我其遷矣。」乃命太子監攝留事,欲清國憲,故遷居焉。時吠舍厘王聞頻毗娑羅王野處寒林,整集戎旅,欲襲不虞。邊候以聞,乃建城邑,以王先舍於此,故稱王舍城也。官屬士庶咸徙家焉。或云至未生怨王乃築此城,未生怨太子既嗣王位,因遂都之。逮無憂王遷都波咤厘城,以王舍城施婆羅門。故今城中無復凡民,惟婆羅門減千家耳。
처음에 빈비사라왕이 상모궁성에 도읍하였을 때 호적에 든 집들이 자주 불의 해를 입었다. 한 집이 함부로 하면 네 이웃이 재앙을 만나 불을 막을 겨를이 없고 재산과 생업을 잃으매, 뭇 사람이 탄식하고 원망하여 그 사는 데를 편안히 여기지 못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내가 덕이 없어 아래 백성이 근심을 만나니, 어떤 복덕을 닦아야 이를 물리칠 수 있겠는가」 하니, 여러 신하가 이르기를 「대왕의 덕과 교화가 화목하고 정사와 가르침이 밝게 살피는데, 이제 이 작은 백성이 삼가지 않아 이 불의 재앙에 이르렀습니다. 마땅히 엄한 법을 정하여 뒤에 범함을 맑게 하되, 만일 불이 나면 먼저 낸 이를 끝까지 캐어 그 우두머리 악한 이를 벌하여 한림으로 옮기소서. 한림이란 주검을 버리는 자리로 세속에서 상서롭지 못한 땅이라 하여 사람이 오가는 자취를 끊은 데입니다. 저리로 옮기게 하면 저 버려진 주검과 같아집니다. 이미 누추한 데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마땅히 스스로 삼가 지킬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좋다. 마땅히 사는 사람에게 두루 알리라」 하였다. 이윽고 왕궁에서 먼저 불이 났다.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옮기겠다」 하고, 이에 태자에게 명하여 남은 일을 맡아 다스리게 하며, 나라의 법을 맑게 하려고 그래서 옮겨 살았다. 그때 폐사리 왕이 빈비사라왕이 한림에 들에 산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가지런히 모아 뜻밖에 습격하려 하였다. 변방 파수꾼이 아뢰매 이에 성과 고을을 세웠는데, 왕이 먼저 여기 살았으므로 그래서 왕사성이라 일컫는다. 관속과 선비와 백성이 다 집을 옮겼다. 더러 이르기를 미생원왕에 이르러서야 이 성을 쌓았고, 미생원 태자가 왕위를 이은 뒤 그로 말미암아 마침내 여기 도읍하였다고 한다. 무우왕이 파타리성으로 도읍을 옮기매 왕사성을 바라문에게 베풀었다. 그러므로 이제 성 안에 다시 예사 백성이 없고 오직 바라문 천 집에 못 미치게 있을 뿐이다.
46수저색가 장자의 옛 마을
宮城西南隅有二小伽藍,諸國客僧往來此止,是佛昔日說法之所。次此西北有窣堵波,殊底色迦長者本生故里。
궁성 서남쪽 모퉁이에 작은 절 둘이 있으니 여러 나라의 나그네 승려가 오가며 여기 머문다. 이는 부처가 옛날 법을 말씀하신 자리다. 이 다음 서북쪽에 탑이 있으니 수저색가 장자가 난 옛 마을이다.
협주 1
唐言星歷。舊曰樹提伽,訛也。
당나라 말로는 성력이다. 옛적에는 수제가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47라후라를 건지신 자리
城南門外,道左有窣堵波,如來於此說法及度羅怙羅。
성 남문 밖 길 왼편에 탑이 있으니 여래가 여기서 법을 말씀하시고 라후라를 건지셨다.
48나란타 절
從此北行三十餘里,至那爛陁僧伽藍。聞之耆舊曰:此伽藍南庵沒羅林中有池,其龍名那爛陁,傍建伽藍,因取為稱。從其實議,是如來在昔修菩薩行,為大國王,建都此地,悲湣眾生,好樂周給,時美其德,號施無厭,由是伽藍因以為稱。其地本庵沒羅園,五百商人以十億金錢買以施佛,佛於地處三月說法,諸商人等亦證聖果。佛涅槃後未久,此國先王鑠迦羅阿叠多敬重一乘,遵崇三寶,式占福地,建此伽藍。初興功也,穿傷龍身,時有善占尼乾外道,見而記曰:「斯勝地也,建立伽藍,當必昌盛,為五印度之軌則,逾千載而彌隆。後進學人易以成業,然多歐血,傷龍故也。」其子佛陀毱多王繼體承統,聿遵勝業,次此之南又建伽藍。呾他揭多毱多王篤修前緒,次此之東又建伽藍。婆羅阿叠多王之嗣位也,次此東北又建伽藍。功成事畢,福會稱慶,輸誠幽顯,延請凡聖。其會也,五印度僧萬里雲集,眾坐已定,二僧後至,引上第三重閣。或有問曰:「王將設會,先請凡聖,大德何方,最後而至?」曰:「我至那國也,和上嬰疹,飯已方行,受王遠請,故來赴會。」聞者驚駭,遽以白王。王心知聖也,躬往問焉。遲上重閣,莫知所去。王更深信,舍國出家。出家既已,位居僧末,心常怏怏,懷不自安:「我昔為王,尊居最上;今者出家,卑在眾末。」尋往白僧,自述情事。於是眾僧和合,令未受戒者以年齒為次,故此伽藍獨有斯制。其王之子伐阇羅嗣位之後,信心貞固,復於此西建立伽藍。其後中印度王於此北復建大伽藍。於是周垣峻峙,同為一門。既歷代君王繼世興建,窮諸剞劂,誠壯觀也。帝日王大伽藍者,今置佛像,眾中日差四十僧就此而食,以報施主之恩。
여기서 북쪽으로 삼십여 리를 가면 나란타 절에 이른다. 늙은이들에게 들으니 이르기를, 이 절 남쪽 암몰라 숲 가운데 못이 있어 그 용의 이름이 나란타인데 곁에 절을 세웠으므로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취하였다 한다. 그 실상에 따라 의논하면, 이는 여래가 옛날 보살행을 닦으실 때 큰 나라의 왕이 되어 이 땅에 도읍을 세우고 뭇 목숨을 가엾이 여겨 두루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고 즐기시매, 그때 사람들이 그 덕을 아름다이 여겨 「베풂에 싫증 없음」이라 불렀다. 그로 말미암아 절이 이 이름을 삼은 것이다. 그 땅은 본디 암몰라 동산인데 오백 장사꾼이 십억 금전으로 사서 부처께 베풀었고, 부처가 그 땅에서 석 달 동안 법을 말씀하시매 여러 장사꾼도 거룩한 열매를 증득하였다. 부처가 열반하신 뒤 오래지 않아 이 나라 앞선 왕 삭가라아질다가 일승을 공경히 무겁게 여기고 삼보를 좇아 높여, 법식대로 복된 땅을 골라 이 절을 세웠다. 처음 공을 일으킬 때 용의 몸을 뚫어 다치게 하였는데, 그때 점을 잘 치는 니건 외도가 보고 적어 이르기를 「이는 뛰어난 땅이다. 절을 세우면 마땅히 반드시 창성하여 다섯 인도의 본보기가 되고 천 해가 넘도록 더욱 융성하리라. 뒤에 나아가는 배우는 이가 쉽게 업을 이루겠으나, 다만 피를 토하는 이가 많을 것이니 용을 다치게 한 까닭이다」 하였다. 그 아들 불타국다왕이 몸을 이어 대통을 받아 뛰어난 업을 좇아, 이 남쪽에 또 절을 세웠다. 달타게다국다왕이 앞선 실마리를 도타이 닦아 이 동쪽에 또 절을 세웠다. 바라아질다왕이 자리를 이으매 이 동북쪽에 또 절을 세웠다.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끝나매 복된 모임을 열어 하례하고, 정성을 그윽한 데와 드러난 데 바쳐 범부와 성인을 맞아 청하였다. 그 모임에 다섯 인도의 승려가 만 리에서 구름처럼 모였다. 무리가 자리를 정한 뒤 두 승려가 뒤에 이르매 셋째 층 다락으로 이끌어 올렸다. 어떤 이가 물어 이르기를 「왕이 장차 모임을 베풀며 먼저 범부와 성인을 청하였는데, 큰 덕은 어느 곳에서 오시기에 가장 뒤에 이르셨습니까」 하니, 이르기를 「나는 지나국 사람이오. 스승이 병들어 밥을 먹고서야 바야흐로 길을 떠났는데, 왕의 먼 데서 온 청을 받았으므로 모임에 나오러 온 것이오」 하였다. 듣는 이가 놀라 급히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마음으로 거룩한 이인 줄 알고 몸소 가서 물었다. 늦게 다락에 오르니 간 데를 알 수 없었다. 왕이 더욱 깊이 믿어 나라를 버리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뒤 자리가 승가의 끝에 있게 되매 마음이 늘 언짢고 스스로 편치 못한 것을 품어 이르기를 「내가 옛날 왕이 되어 높기가 가장 위에 있었는데, 이제 집을 나오매 낮기가 무리의 끝에 있다」 하고, 이내 가서 승가에 아뢰어 스스로 그 사정을 말하였다. 이에 뭇 승려가 화합하여 아직 계를 받지 않은 이는 나이로 차례를 삼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 절에만 홀로 이런 제도가 있다. 그 왕의 아들 벌사라가 자리를 이은 뒤 믿는 마음이 곧고 굳어 다시 이 서쪽에 절을 세웠다. 그 뒤에 중인도 왕이 이 북쪽에 다시 큰 절을 세웠다. 이에 두른 담이 높이 솟고 함께 한 문을 삼았다. 이미 대대로 임금이 세대를 이어 일으켜 세우매 온갖 새김을 다하였으니 참으로 장한 볼거리다. 제일왕의 큰 절은 이제 부처의 상을 두고, 무리 가운데 날마다 승려 마흔을 갈라 여기 나아가 밥을 먹게 하여 시주의 은혜에 갚는다.
협주 6
唐言施無厭。
당나라 말로는 베풂에 싫증 없음이다.
唐言帝日。
당나라 말로는 제일이다.
唐言覺護。
당나라 말로는 각호다.
唐言如來。
당나라 말로는 여래다.
唐言幼日。
당나라 말로는 유일이다.
唐言金剛。
당나라 말로는 금강이다.
49나란타의 승려들
僧徒數千,並俊才高學也,德重當時,聲馳異域者,數百餘矣。戒行清白,律儀淳粹,僧有嚴制,眾咸貞素,印度諸國皆仰則焉。請益談玄,渴日不足,夙夜警誡,少長相成,其有不談三藏幽旨者,則形影自愧矣。故異域學人欲馳聲問,咸來稽疑,方流雅譽。是以竊名而遊,咸得禮重。殊方異域欲入談議,門者詰難,多屈而還,學深今古,乃得入焉。於是客遊後進,詳論藝能,其退飛者固十七八矣。二三博物,眾中次詰,莫不挫其銳,頹其名。若其高才博物,強識多能,明德哲人,聯暉繼軌。至如護法、護月,振芳塵於遺教;德慧、堅慧,流雅譽於當時。光友之清論,勝友之高談,智月則風鑒明敏,戒賢乃至德幽邃。若此上人,眾所知識,德隆先達,學貫舊章,述作論釋各十數部,並盛流通,見珍當時。
승려가 수천인데 다 뛰어난 재주와 높은 배움이다. 덕이 그때에 무겁고 소리가 다른 지역에 달린 이가 수백이 넘는다. 계행이 맑고 깨끗하며 계율과 몸가짐이 순수하고, 승가에 엄한 제도가 있어 무리가 다 곧고 희다. 인도의 여러 나라가 다 우러러 본보기로 삼는다. 가르침을 청하고 그윽한 것을 말하느라 날이 짧아 모자라고, 밤낮으로 경계하여 젊은이와 어른이 서로 이루어 준다. 삼장의 그윽한 뜻을 말하지 못하는 이는 제 그림자에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의 배우는 이가 이름과 소문을 달리고자 하면 다 와서 의심을 물으니, 그래야 아정한 기림이 흐른다. 이러므로 이름을 훔쳐 노니는 이도 다 예로 무겁게 대접받는다. 낯선 지방 다른 지역에서 담론에 들고자 하면 문지기가 힐난하여 흔히 굽혀 돌아가고, 배움이 예와 이제에 깊어야 들어갈 수 있다. 이에 나그네로 노니는 뒤에 나아가는 이들이 재주와 능함을 자세히 논하는데, 물러나 나는 이가 참으로 열에 일고여덟이다. 두셋 사물을 널리 아는 이가 무리 가운데서 차례로 힐난하면, 그 날카로움이 꺾이고 그 이름이 무너지지 않는 이가 없다. 그 재주가 높고 사물을 널리 알며 기억이 굳세고 능한 것이 많은 밝은 덕과 밝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빛을 잇대고 자취를 이었다. 호법과 호월 같은 이는 꽃다운 티끌을 남기신 가르침에 떨쳤고, 덕혜와 견혜는 아정한 기림을 그때에 흘렸으며, 광우의 맑은 논과 승우의 높은 이야기와 지월의 기풍과 살핌이 밝고 민첩함과 계현의 지극한 덕이 그윽하고 깊음이 그러하다. 이 같은 높은 이들은 뭇 사람이 아는 바로 덕이 앞서 통달한 이보다 높고 배움이 옛 글을 꿰뚫었으며, 지은 논과 풀이가 각각 십수 부인데 다 널리 흘러 그때에 진귀히 여겨진다.
50절 둘레의 성스러운 자취
伽藍四周,聖跡百數,舉其二三,可略言矣。
절 네 둘레에 거룩한 자취가 백을 헤아리니 그 두엇을 들어 대략 말할 만하다.
51전륜왕 자리를 구한 비구
伽藍西不遠有精舍,在昔如來三月止此,為諸天人廣說妙法。次南百餘步小窣堵波,遠方比丘見佛處。昔有比丘自遠方來,至此遇見如來聖眾,內發敬心,五體投地,便即發願求輪王位。如來見已,告諸眾曰:「彼比丘者甚可湣惜。福德深遠,信心堅固,若求佛果,不久當證。今其發願求轉輪王,於當來世必受此報。身體投地下至金輪,其中所有微塵之數,一一塵是一輪王報也。既耽世樂,聖果斯遠。」其南則有觀自在菩薩立像。或見執香爐往佛精舍,周旋右繞。
절 서쪽 멀지 않은 데 정사가 있으니 옛날 여래가 석 달 동안 여기 머무시며 여러 하늘과 사람을 위해 묘한 법을 널리 말씀하셨다. 이 다음 남쪽 백여 걸음에 작은 탑은 먼 지방 비구가 부처를 뵌 자리다. 옛날 어떤 비구가 먼 지방에서 와서 여기 이르러 여래와 거룩한 무리를 만나 뵙고, 안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온몸을 땅에 던지고 곧 원을 내어 전륜왕 자리를 구하였다. 여래가 보시고 여러 무리에게 이르시기를 「저 비구는 몹시 가엾고 아깝다. 복덕이 깊고 멀며 믿는 마음이 굳고 굳어 만일 부처의 열매를 구하였다면 오래지 않아 마땅히 증득하였으리라. 이제 그 원을 내어 전륜왕을 구하니 오는 세상에 반드시 이 갚음을 받으리라. 몸을 땅에 던져 아래로 금륜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있는 티끌의 수, 하나하나 티끌이 한 전륜왕의 갚음이다. 이미 세상의 즐거움에 빠졌으니 거룩한 열매가 이에 멀다」 하셨다. 그 남쪽에는 관자재보살의 선 상이 있다. 더러는 향로를 들고 부처의 정사로 가서 돌며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 보인다.
52관자재보살 상과 버들가지 나무
觀自在菩薩像南窣堵波中,有如來三月之間剃剪發、爪,有嬰疾病,旋繞多愈。其西垣外池側窣堵波,是外道執雀於此問佛死生之事。次東南垣內五十餘步,有奇樹,高八九尺,其幹兩披,在昔如來嚼楊枝棄地,因植根柢,歲月雖久,初無增減。次東大精舍,高二百餘尺,如來在昔於此四月說諸妙法。次北百餘步精舍中,有觀自在菩薩像,凈信之徒興供養者所見不同,莫定其所,或立門側,或出檐前。諸國法俗咸來供養。
관자재보살 상 남쪽 탑 안에는 여래가 석 달 동안 자르신 머리카락과 손톱이 있으니, 병에 걸린 이가 돌면 흔히 낫는다. 그 서쪽 담 밖 못가의 탑은 외도가 참새를 잡아 들고 여기서 부처께 죽고 사는 일을 물은 자리다. 이 다음 동남쪽 담 안 오십여 걸음에 기이한 나무가 있으니 높이가 여덟아홉 자요 그 줄기가 둘로 갈라졌다. 옛날 여래가 버들가지를 씹고 땅에 버리셨는데 그로 말미암아 뿌리가 내렸으니, 세월이 오래되었으나 처음부터 늘고 줆이 없다. 이 다음 동쪽 큰 정사는 높이가 이백여 자니, 여래가 옛날 여기서 넉 달 동안 여러 묘한 법을 말씀하셨다. 이 다음 북쪽 백여 걸음 정사 안에 관자재보살 상이 있으니, 맑게 믿는 무리로서 공양을 일으키는 이가 보는 바가 같지 않아 그 자리를 정할 수 없다. 더러는 문 곁에 서고 더러는 처마 앞에 나온다. 여러 나라의 중과 속인이 다 와서 공양한다.
53바라아질다왕의 큰 정사
觀自在菩薩精舍北有大精舍,高三百餘尺,婆羅阿叠多王之所建也。莊嚴度量及中佛像,同菩提樹下大精舍。其東北窣堵波,在昔如來於此七日演說妙法。西北則有過去四佛坐處。其南鍮石精舍,戒日王之所建立,功雖未畢,然其圖量一十丈而後成之。次東二百餘步垣外,有銅立佛像,高八十餘尺,重閣六層,乃得彌覆,昔滿胄王之所作也。
관자재보살 정사 북쪽에 큰 정사가 있으니 높이가 삼백여 자요 바라아질다왕이 세운 것이다. 엄정한 꾸밈과 크기와 그 안의 부처의 상이 보리수 아래 큰 정사와 같다. 그 동북쪽 탑은 옛날 여래가 여기서 이레 동안 묘한 법을 펴 말씀하신 자리다. 서북쪽에는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신 자리가 있다. 그 남쪽 놋쇠 정사는 계일왕이 세운 것이니, 공이 비록 끝나지 않았으나 그 헤아린 규모가 열 길이 되어야 이루어진다. 이 다음 동쪽 이백여 걸음 담 밖에 구리로 만든 선 부처의 상이 있으니 높이가 팔십여 자요, 겹다락 여섯 층이라야 이에 덮을 수 있다. 옛날 만주왕이 만든 것이다.
54다라보살 상과 수레굴대로 판 우물
滿胄王銅佛像北二三里,磚精舍中有多羅菩薩像。其量既高,其靈甚察。每歲元日,盛興供養。鄰境國王、大臣、豪族,賫妙香花,持寶幡蓋,金石遞奏,絲竹相和,七日之中,建斯法會。其垣南門內有大井。昔佛在世,有大商侶熱渴逼迫,來至佛所,世尊指其地以可得水。商主乃以車軸築地,地既為陷,水遂泉湧,飲已聞法,皆悟聖果。
만주왕의 구리 부처 상 북쪽 두세 리 벽돌 정사 안에 다라보살 상이 있다. 그 크기가 이미 높고 그 신령함이 매우 밝게 살핀다. 해마다 설날에 공양을 성대히 일으킨다. 이웃 지경의 나라 왕과 대신과 호족이 묘한 향과 꽃을 가지고 보배 기와 일산을 들며, 금석의 악기를 번갈아 아뢰고 실과 대의 악기를 서로 어울려, 이레 동안 이 법회를 연다. 그 담 남문 안에 큰 우물이 있다. 옛날 부처가 세상에 계실 때 큰 장삿길 무리가 더위와 목마름에 몰려 부처 계신 데 이르매, 세존이 그 땅을 가리켜 물을 얻을 수 있다 하셨다. 장삿길의 주인이 이에 수레 굴대로 땅을 찧으니 땅이 꺼지고 물이 마침내 샘솟았다. 마시고 나서 법을 들어 다 거룩한 열매를 깨달았다.
55구리가 마을 — 몰특가라자의 옛 고향
伽藍西南行八九里,至拘理迦邑,中有窣堵波,無憂之所建也,是尊者沒特伽羅子本生故里。傍有窣堵波,尊者於此入無餘涅槃,其中則有遺身舍利。尊者,大婆羅門種,與舍利子少為親友。舍利子以才明見貴,尊者以精鑒延譽,才智相比,動止必俱,結要終始,契同去就,相與厭俗,共求舍家,遂師珊阇耶焉。舍利子遇馬勝阿羅漢,聞法悟聖,還為尊者重述,聞而悟法,遂證初果。與其徒二百五十人俱到佛所,世尊遙見,指告眾曰:「彼來者,我弟子中神足第一。」既至佛所,請入法中。世尊告曰:「善來,比丘!凈修梵行,得離苦際。」聞是語時,須發落,俗裳變,戒品凈,威儀調順。經七日,結漏盡,證羅漢果,得神通力。
절에서 서남쪽으로 팔구 리를 가면 구리가 마을에 이르는데, 그 안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이는 존자 몰특가라자가 난 옛 고향이다. 곁에 탑이 있으니 존자가 여기서 남음 없는 열반에 들었고 그 안에는 남기신 몸의 사리가 있다. 존자는 큰 바라문 겨레로 사리자와 젊어서 친한 벗이었다. 사리자는 재주와 밝음으로 귀히 여겨졌고 존자는 정밀한 살핌으로 기림을 얻어, 재주와 지혜가 서로 견주고 움직이고 그침을 반드시 함께하며, 처음과 끝을 요약해 맺고 가고 옴을 같이하기로 언약하였다. 서로 함께 세속을 싫어하여 함께 집을 버리기를 구하여, 마침내 산사야를 스승으로 삼았다. 사리자가 마승 아라한을 만나 법을 듣고 거룩함을 깨달아, 돌아와 존자에게 거듭 펴 말하니 듣고 법을 깨달아 마침내 첫 열매를 증득하였다. 그 무리 이백오십 사람과 함께 부처 계신 데 이르매, 세존이 멀리서 보시고 무리에게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 오는 이는 내 제자 가운데 신통이 으뜸이다」 하셨다. 부처 계신 데 이르러 법 안에 들기를 청하니, 세존이 이르시기를 「잘 왔다, 비구여. 범행을 깨끗이 닦아 괴로움의 끝을 여의라」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수염과 머리가 떨어지고 세속의 옷이 바뀌었으며 계품이 깨끗해지고 몸가짐이 고르고 순해졌다. 이레를 지나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의 열매를 증득하고 신통의 힘을 얻었다.
56빈비사라왕이 부처를 맞이한 자리
沒特伽羅子故里東行三四里,有窣堵波,頻毗娑羅王迎見佛處。如來初證佛果,知摩揭陁國人心渴仰,受頻毗娑羅王請。於朝晨時,著衣持缽,與千比丘左右圍繞,皆是耆舊螺髻梵志,慕法染衣,前後羽從,入王舍城。時帝釋天王變身為摩那婆,首冠螺髻,左手執金瓶,右手執寶杖,足蹈虛空,離地四指,在大眾中前導佛路。時摩揭陁國頻毗娑羅王與其國內諸婆羅門、長者、居士百千萬眾,前後導從,出王舍城奉迎聖眾。
몰특가라자의 옛 고향에서 동쪽으로 서너 리를 가면 탑이 있으니 빈비사라왕이 부처를 맞아 뵌 자리다. 여래가 처음 부처의 열매를 증득하시고 마게타국 사람의 마음이 목말라 우러르는 줄 아시어 빈비사라왕의 청을 받으셨다.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바리를 들고 천 비구와 함께 좌우로 둘러싸이셨는데, 다 오래된 소라 상투를 튼 범지로서 법을 사모하여 물들인 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앞뒤로 깃털처럼 따라 왕사성에 드셨다. 그때 제석 천왕이 몸을 바꾸어 마나바가 되어 머리에 소라 상투를 쓰고 왼손에 금 병을 들고 오른손에 보배 지팡이를 들고, 발이 허공을 밟아 땅에서 네 손가락을 떠서 큰 무리 가운데서 앞에서 부처의 길을 이끌었다. 그때 마게타국 빈비사라왕이 그 나라 안의 여러 바라문과 장자와 거사 백천만 무리와 함께 앞뒤로 이끌고 따라 왕사성을 나와 거룩한 무리를 받들어 맞이하였다.
57가라비나가 마을 — 사리자의 옛 고향
頻毗娑羅王迎佛東南行二十餘里,至迦羅臂拿迦邑,中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是尊者舍利子本生故里,井今尚在。傍有窣堵波,尊者於此寂滅,其中則有遺身舍利。
빈비사라왕이 부처를 맞은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이십여 리를 가면 가라비나가 마을에 이르는데, 그 안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이는 존자 사리자가 난 옛 고향이다. 우물이 이제도 아직 있다. 곁에 탑이 있으니 존자가 여기서 고요히 사라졌고 그 안에는 남기신 몸의 사리가 있다.
58사리자의 한평생
尊者,大婆羅門種,其父高才博識,深鑒精微,凡諸曲籍莫不究習。其妻感夢,具告夫曰:「吾昨宵寐,夢感異人,身披鎧甲,手執金剛,摧破諸山,退立一山之下。」夫曰:「夢甚善。汝當生男,達學貫世,摧諸論師,破其宗致,唯不如一人,為作弟子。」果而有娠,母忽聰明,高談劇論,言無屈滯。尊者年始八歲,名擅四方,其性淳質,其心慈悲,朽壞結縛,成就智慧。與沒特伽羅子少而相友,深厭塵俗,未有所歸,於是與沒特伽羅子於珊阇耶外道所而修習焉。乃相謂曰:「斯非究竟之理,未能窮苦際也。各求明導,先嘗甘露,必同其味。」時大阿羅漢馬勝執持應器,入城乞食。舍利子見其威儀閑雅,即而問曰:「汝師是誰?」曰:「釋種太子厭世出家,成等正覺,是我師也。」舍利子曰:「所說何法,可得聞乎?」曰:「我初受教,未達深義。」舍利子曰:「願說所聞。」馬勝乃隨宜演說,舍利子聞已,即證初果。遂與其徒二百五十人往詣佛所,世尊遙見,指告眾曰:「我弟子中智慧第一。」至已頂禮,願從佛法。世尊告曰:「善來,比丘!」聞是語時,戒品具足。過半月後,聞佛為長爪梵志說法,聞餘論而感悟,遂證羅漢之果。其後阿難承佛告寂滅期,展轉相語,各懷悲感,舍利子深增戀仰,不忍見佛入般涅槃,遂請世尊,先入寂滅。世尊告曰:「宜知是時。」告謝門人,至本生里,侍者沙彌遍告城邑。未生怨王及其國人莫不風馳,皆悉雲會。舍利子廣為說法,聞已而去。於後夜分,正意系心,入滅盡定,從定起已而寂焉。
존자는 큰 바라문 겨레다. 그 아버지가 재주가 높고 아는 것이 넓어 정밀하고 은미한 데를 깊이 살펴, 무릇 여러 굽은 전적을 궁구하여 익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아내가 꿈에 감응하여 남편에게 갖추어 알려 이르기를 「제가 어젯밤 잠결에 꿈에 남다른 사람을 느꼈는데, 몸에 갑옷을 입고 손에 금강을 들고 여러 산을 꺾어 깨뜨리다가 한 산 아래 물러나 섰습니다」 하니, 남편이 이르기를 「꿈이 매우 좋다. 너는 마땅히 아들을 낳을 것이니, 배움에 통달하여 세상을 꿰뚫고 여러 논사를 꺾어 그 내세우는 뜻을 깨뜨리되, 오직 한 사람만은 못하여 그의 제자가 되리라」 하였다. 과연 아이를 배매 어머니가 홀연히 총명해져 높이 이야기하고 세차게 논하여 말에 굽히고 막힘이 없었다. 존자가 나이 겨우 여덟에 이름이 사방에 떨쳤고, 그 성품이 순박하고 질박하며 그 마음이 자애롭고 가엾이 여겨, 얽매고 묶는 것을 썩혀 없애고 지혜를 이루었다. 몰특가라자와 젊어서 서로 벗이 되어 티끌 같은 세속을 깊이 싫어하였으나 돌아갈 데가 없었다. 이에 몰특가라자와 함께 산사야 외도가 있는 데서 닦아 익혔다. 이에 서로 이르기를 「이는 끝까지 이르는 이치가 아니니 괴로움의 끝을 궁구할 수 없다. 저마다 밝은 인도자를 구하되 먼저 단 이슬을 맛보거든 반드시 그 맛을 같이하자」 하였다. 그때 큰 아라한 마승이 응기를 들고 성에 들어 빌어먹었다. 사리자가 그 몸가짐이 한가하고 아정함을 보고 곧 나아가 물어 이르기를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하니, 이르기를 「석가 겨레의 태자가 세상을 싫어하여 집을 나와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으니 이가 내 스승이다」 하였다. 사리자가 이르기를 「말씀하시는 것이 어떤 법인가. 들을 수 있겠는가」 하니, 이르기를 「나는 처음 가르침을 받아 아직 깊은 뜻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였다. 사리자가 이르기를 「들은 바를 말해 주기를 바란다」 하니, 마승이 이에 마땅함에 따라 펴 말하였다. 사리자가 듣고 나서 곧 첫 열매를 증득하였다. 마침내 그 무리 이백오십 사람과 함께 부처 계신 데 나아가니, 세존이 멀리서 보시고 무리에게 가리켜 이르시기를 「내 제자 가운데 지혜가 으뜸이다」 하셨다. 이르러 이마를 조아려 절하고 부처의 법을 좇기를 원하니, 세존이 이르시기를 「잘 왔다, 비구여」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계품이 갖추어졌다. 보름이 지난 뒤 부처가 장조 범지를 위해 법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남에게 하신 논을 듣고 느껴 깨달아 마침내 아라한의 열매를 증득하였다. 그 뒤에 아난이 부처께서 고요히 사라지실 기약을 알리심을 받아 이리저리 서로 말하매 저마다 슬픈 느낌을 품었는데, 사리자가 그리워 우러름이 깊이 더하여 차마 부처가 반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지 못하겠으므로 세존께 먼저 고요히 사라지기를 청하였다. 세존이 이르시기를 「마땅히 이때를 알라」 하셨다. 문인에게 알려 하직하고 난 고향에 이르러 모시는 사미가 성과 고을에 두루 알렸다. 미생원왕과 그 나라 사람이 바람처럼 달리지 않는 이가 없어 다 구름처럼 모였다. 사리자가 널리 법을 말하니 듣고 나서 갔다. 그 뒤 밤이 나뉜 무렵에 뜻을 바로 하고 마음을 매어 멸진정에 들었다가, 선정에서 일어난 뒤 고요히 사라졌다.
59사리자 문인들이 열반한 자리
迦羅臂拿迦邑東南四五里,有窣堵波,是尊者舍利子門人入涅槃處。或曰:「迦葉波佛在世時,有三拘胝大阿羅漢同於此地無餘寂滅。
가라비나가 마을 동남쪽 네댓 리에 탑이 있으니 이는 존자 사리자의 문인이 열반에 든 자리다. 더러 이르기를 「가섭파 부처가 세상에 계실 때 세 구지의 큰 아라한이 함께 이 땅에서 남음 없이 고요히 사라졌다」 한다.
협주 1
拘胝者,唐言億。
구지란 당나라 말로 억이다.
60제석의 굴
舍利子門人窣堵波東行三十餘里,至因陁羅勢羅窶訶山。其山巖谷杳冥,花林蓊郁,嶺有兩峰,岌然特起。西峰南巖間有大石室,廣而不高,昔如來嘗於中止。時天帝釋以四十二疑事畫石請問,佛為演釋,其跡猶在。今作此像,擬昔聖儀,入中禮敬者,莫不肅然敬懼。山嶺上有過去四佛坐及經行遺跡之所。東峰上有伽藍,聞諸土俗曰:其中僧眾,或於夜分,望見西峰石室佛像前每有燈炬。常為照燭。
사리자 문인의 탑에서 동쪽으로 삼십여 리를 가면 인타라세라구하산에 이른다. 그 산의 바위와 골짜기가 아득히 어둡고 꽃과 숲이 우거졌다. 재에 두 봉우리가 있어 우뚝 유난히 솟았다. 서쪽 봉우리 남쪽 바위 사이에 큰 석실이 있으니 넓으나 높지 않은데, 옛날 여래가 일찍이 그 안에 머무셨다. 그때 천제석이 마흔두 가지 의심스러운 일을 돌에 그려 여쭈니 부처가 위하여 펴 풀어 주셨는데, 그 자취가 아직 있다. 이제 이 상을 만들어 옛 거룩한 거동을 본떴으니, 그 안에 들어 예를 올리는 이가 엄숙히 공경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산꼭대기에는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가 있다. 동쪽 봉우리 위에 절이 있으니, 그 고장 풍속에 들으니 이르기를 「그 안의 승려가 더러 밤이 나뉜 무렵에 서쪽 봉우리 석실의 부처 상 앞에 늘 등불과 횃불이 있어 늘 비추어 밝히는 것을 바라본다」 한다.
협주 1
唐言帝釋窟也。
당나라 말로는 제석의 굴이다.
61기러기 탑
因陁羅勢羅窶訶山東峰伽藍前有窣堵波,謂亙娑。昔此伽藍習玩小乘,小乘漸教也,故開三凈之食,而此伽藍遵而不墜。其後三凈求不時獲。有比丘經行,忽見群雁飛翔,戲言曰:「今日眾僧中食不充,摩訶薩埵宜知是時。」言聲未絕,一雁退飛,當其僧前,投身自殞。比丘見已,具白眾僧,聞者悲感,咸相謂曰:「如來設法,導誘隨機。我等守愚,遵行漸教。大乘者。正理也,宜改先執,務從聖旨。此雁垂誡,誠為明導,宜旌厚德,傳記終古。」於是建窣堵波,式昭遺烈,以彼死雁瘞其下焉。
인타라세라구하산 동쪽 봉우리 절 앞에 탑이 있으니 긍사라 한다. 옛날 이 절은 소승을 익혀 완상하였는데, 소승은 점차의 가르침이라 그러므로 세 가지 깨끗한 고기를 열어 두었고 이 절이 좇아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 뒤에 세 가지 깨끗한 것을 구하여도 때맞추어 얻지 못하였다. 어떤 비구가 거닐다가 홀연히 기러기 떼가 날아 도는 것을 보고 장난으로 이르기를 「오늘 뭇 승려의 낮 밥이 넉넉하지 못하니 마하살타는 마땅히 이때를 알라」 하였다. 말소리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기러기 하나가 물러 날아 그 승려 앞에 이르러 몸을 던져 스스로 죽었다. 비구가 보고 뭇 승려에게 갖추어 아뢰니, 듣는 이가 슬퍼 느껴 다들 서로 이르기를 「여래가 법을 베푸심은 기미에 따라 이끌어 꾀신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음을 지켜 점차의 가르침을 좇아 행하였다. 대승이 바른 이치이니 마땅히 먼저 잡은 것을 고치고 거룩한 뜻을 좇기를 힘써야 한다. 이 기러기가 경계를 드리웠으니 참으로 밝은 인도자다. 마땅히 두터운 덕을 드러내어 오랜 뒤까지 전해 적어야 한다」 하였다. 이에 탑을 세워 그 남긴 갸륵한 자취를 밝히고, 저 죽은 기러기를 그 아래 묻었다.
협주 2
許贈反。
허와 증의 반절로 읽는다.
唐言雁。
당나라 말로는 기러기다.
62가포덕가 절 — 비둘기가 되신 여래
因陁羅勢羅窶訶山東北行百五六十里,至迦布德迦伽藍。僧徒二百餘人,學說一切有部。伽藍東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昔佛於此為諸大眾一宿說法。時有羅者於此林中網捕羽族,經日不獲,遂作是言:「我惟薄福,恒為弊事。」來至佛所,揚言唱曰:「今日如來於此說法,令我網捕都無所得,妻孥饑餓,其計安出?」如來告曰:「汝應蕰火,當與汝食。」如來是時化作大鴿,投火而死,羅者持歸,妻孥共食。其後重往佛所,如來方便攝化,羅者聞法,悔過自新,舍家修學,便證聖果。因名所建為鴿伽藍。
인타라세라구하산에서 동북쪽으로 백오륙십 리를 가면 가포덕가 절에 이른다. 승려가 이백여 명인데 설일체유부를 배워 말한다. 절 동쪽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부처가 여기서 여러 큰 무리를 위해 하룻밤 법을 말씀하셨다. 그때 그물 치는 이가 이 숲 속에서 그물로 날짐승을 잡았는데, 날이 다 가도록 얻지 못하매 마침내 이렇게 말하기를 「나는 오직 복이 엷어 늘 궂은 일만 겪는다」 하고, 부처 계신 데 와서 소리를 높여 외쳐 이르기를 「오늘 여래가 여기서 법을 말씀하시어 내 그물질로 도무지 얻은 것이 없게 하시니, 처자가 굶주리는데 그 꾀를 어디서 내겠습니까」 하였다. 여래가 이르시기를 「너는 마땅히 불을 쌓으라. 마땅히 너에게 먹을 것을 주리라」 하시고, 여래가 이때 큰 비둘기로 변하여 불에 뛰어들어 죽으셨다. 그물 치는 이가 가지고 돌아가 처자와 함께 먹었다. 그 뒤에 거듭 부처 계신 데 가매 여래가 방편으로 거두어 교화하시니, 그물 치는 이가 법을 듣고 허물을 뉘우쳐 스스로 새로워지고 집을 버려 배움을 닦아 곧 거룩한 열매를 증득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세운 것을 비둘기 절이라 이름하였다.
협주 1
唐言鴿。
당나라 말로는 비둘기다.
63외딴 산의 관자재보살 상
迦布德迦伽藍南二三里,至孤山。其山崇峻,樹林郁茂,名花清流,被崖緣壑。上多精舍靈廟,頗極剞劂之工。正中精舍有觀自在菩薩像,軀量雖小,威神感肅,手執蓮華,頂戴佛像。常有數人,斷食要心,求見菩薩,七日、二七日、乃至一月,其有感者,見觀自在菩薩妙相莊嚴,威光赫奕,從像中出,慰諭其人。昔南海僧伽羅國王清旦以鏡照面,不見其身,乃睹贍部洲摩揭陁國多羅林中小山上有此菩薩像。王深感慶,圖以營求。既至此山,寔唯肖似,因建精舍,興諸供養。自後諸王尚想遺風,遂於其側建立精舍靈廟,香花伎樂供養不絕。
가포덕가 절 남쪽 두세 리에 외딴 산에 이른다. 그 산이 높고 가파르며 나무와 숲이 우거졌고, 이름난 꽃과 맑은 흐름이 벼랑을 덮고 골짜기를 둘렀다. 위에 정사와 신령한 사당이 많아 자못 새기는 솜씨를 다하였다. 한가운데 정사에 관자재보살 상이 있으니 몸과 크기는 비록 작으나 위엄과 신통이 감동시켜 엄숙하다. 손에 연꽃을 들고 머리에 부처의 상을 이었다. 늘 몇 사람이 밥을 끊고 마음을 다잡아 보살 뵙기를 구하는데, 이레나 두 이레나 한 달에 이르러, 그 감응이 있는 이는 관자재보살의 묘한 모습이 엄정하고 위엄의 빛이 빛나며 상 가운데서 나와 그 사람을 위로해 타이르는 것을 본다. 옛날 남해 승가라국 왕이 맑은 아침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다가 제 몸이 보이지 않고, 이에 섬부주 마게타국 다라 숲 가운데 작은 산 위에 이 보살의 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이 깊이 감동하고 기뻐하여 그려서 찾기를 꾀하였다. 이 산에 이르매 참으로 오직 그와 닮았으므로, 그로 말미암아 정사를 세우고 여러 공양을 일으켰다. 그 뒤로 여러 왕이 남긴 기풍을 우러러 생각하여, 마침내 그 곁에 정사와 신령한 사당을 세우니 향과 꽃과 풍류의 공양이 끊이지 않는다.
64작은 절과 큰 탑
孤山觀自在菩薩像東南行四十餘里,至一伽藍,僧徒五十餘人,並學小乘法教。伽藍前有大窣堵波,多有靈異,佛昔於此為梵天王等七日說法。其側則有過去三佛坐及經行遺跡之所。
외딴 산의 관자재보살 상에서 동남쪽으로 사십여 리를 가면 절 하나에 이르는데, 승려가 오십여 명이요 모두 소승의 법과 가르침을 배운다. 절 앞에 큰 탑이 있어 신령한 이적이 많으니, 부처가 옛날 여기서 범천왕 들을 위해 이레 동안 법을 말씀하셨다. 그 곁에는 지나간 세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가 있다.
65긍가하 남쪽 큰 마을
伽藍東北行七十餘里,殑伽河南,至大聚落,人民殷盛,有數天祠,並窮雕飾。東南不遠有大窣堵波,佛昔於此一宿說法。
절에서 동북쪽으로 칠십여 리를 가면 긍가하 남쪽 큰 마을에 이르니, 사람과 백성이 넉넉하고 성하며 하늘신 사당 몇이 있어 다 새겨 꾸밈을 다하였다. 동남쪽 멀지 않은 데 큰 탑이 있으니 부처가 옛날 여기서 하룻밤 법을 말씀하셨다.
66낙반니라 마을
從此東入山林中,行百餘里,至落般膩羅聚落。伽藍前有大窣堵波,無憂王之所建,佛昔於此三月說法。此北二三里有大池,周三十餘里,四色蓮花四時開發。
여기서 동쪽으로 산과 숲에 들어 백여 리를 가면 낙반니라 마을에 이른다. 절 앞에 큰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부처가 옛날 여기서 석 달 동안 법을 말씀하셨다. 이 북쪽 두세 리에 큰 못이 있으니 둘레가 삼십여 리요 네 빛깔 연꽃이 네 철에 피어난다.
從此東入大山林中,行二百餘里,至伊爛拿缽伐多國。
여기서 동쪽으로 큰 산과 숲에 들어 이백여 리를 가면 이란나발벌다국에 이른다.
협주 1
中印度境。
중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