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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나소벌랄나국羯羅拿蘇伐剌那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5 · 한자 581자 · 낭독 2.3분

「대당서역기」 제10권 「갈라나소벌랄나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羯羅拿蘇伐剌那國周四千四五百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居人殷盛,家室富饒。土地下濕,稼穡時播。眾花滋茂,珍果繁植。氣序調暢,風俗淳和。好尚學藝,邪正兼信。伽藍十餘所,僧徒二千餘人,習學小乘正量部法。天祠五十餘所,異道寔多。別有三伽藍,不食乳酪,遵提婆達多遺訓也。

갈라나소벌랄나국은 둘레가 사천사오백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이십여 리다. 사는 사람이 넉넉하고 성하며 집집이 부유하다. 땅이 낮고 축축하여 심고 거두기를 때맞추어 한다. 온갖 꽃이 무성하고 진귀한 열매가 많이 자란다. 기후가 고르고 화창하며 풍속이 순박하고 화하다. 배움과 재예를 좋아하고 숭상하며 삿된 것과 바른 것을 아울러 믿는다. 절이 십여요 승려가 이천여 명인데 소승 정량부의 법을 익혀 배운다. 하늘신 사당가 오십여요 외도가 참으로 많다. 따로 절 셋이 있어 젖과 타락을 먹지 않으니 제바달다가 남긴 가르침을 좇는 것이다.

2낙다말지 절

大城側有絡多末知僧伽藍,庭宇顯敞,臺閣崇峻。國中高才達學、聰明有聞者,咸集其中,警誡相成,琢磨道德。

큰 성 곁에 낙다말지 절이 있으니 뜰과 집이 드러나 넓고 대와 다락이 높고 가파르다. 나라 안의 높은 재주와 통달한 배움과 총명하여 이름 있는 이들이 다 그 안에 모여, 서로 경계하여 이루어 주고 도와 덕을 갈고 닦는다.

협주 1

唐言赤泥。

당나라 말로는 붉은 진흙이다.

3배가 터질까 구리를 두른 외도

初,此國未信佛法時,南印度有一外道,腹錮銅鍱,首戴明炬,杖策高步,來入此城,振擊論鼓,求欲論議。或人問曰:「首腹何異?」曰:「吾學藝多能,恐腹拆裂。悲諸愚暗,所以持照。」時經旬日,人無問者,詢訪髦彥,莫有其人。王曰:「合境之內,豈無明哲?客難不酬,為國深恥。宜更營求,訪諸幽隱。」或曰:「大林中有異人,其自稱曰沙門,強學是務,今屏居幽寂,久矣於茲。非夫體法合德,何能若此者乎?」王聞之,躬往請焉。沙門對曰:「我南印度人也,客遊止此,學業膚淺,恐黜所聞。敢承來旨,不復固辭,論議之負,請建伽藍,招集僧徒,光贊佛法。」王曰:「敬聞,不敢忘德。」沙門受請,往赴論場。外道於是誦其宗致,三萬餘言,其義遠,其文約,苞含名相,網羅視聽。沙門一聞究覽,詞義無謬,以數百言辯而釋之,因問宗致。外道辭窮理屈,杜口不酬。既折其名,負恥而退。王深敬德,建此伽藍,自時厥後,方弘法教。

처음에 이 나라가 아직 불법을 믿지 않을 때, 남인도에 한 외도가 있어 배에 구리쇠를 두르고 머리에 밝은 횃불을 이고, 지팡이를 짚고 높이 걸어 이 성에 들어와 논하는 북을 떨쳐 치며 논하기를 구하였다. 어떤 사람이 물어 이르기를 「머리와 배가 어찌 남다른가」 하니, 이르기를 「내가 배운 재주가 능한 것이 많아 배가 터질까 두렵고, 여러 어리석고 어두운 이를 가엾이 여기므로 비추는 것을 지녔다」 하였다. 그때 열흘이 지나도록 묻는 이가 없어, 뛰어난 이를 물어 찾았으나 그럴 사람이 없었다. 왕이 이르기를 「온 지경 안에 어찌 밝고 밝은 이가 없겠는가. 손의 힐난에 갚지 못하면 나라의 깊은 부끄러움이다. 마땅히 다시 찾아 구하되 그윽이 숨은 이들까지 물으라」 하였다. 어떤 이가 이르기를 「큰 숲에 남다른 이가 있어 스스로 사문이라 일컫고 힘써 배우기를 일삼는데, 이제 그윽하고 고요한 데 숨어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무릇 법을 몸받아 덕에 맞는 이가 아니라면 어찌 이럴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듣고 몸소 가서 청하였다. 사문이 대답하기를 「나는 남인도 사람으로 나그네로 노닐다 여기 머물렀습니다. 배운 업이 얕아 들은 것을 물리칠까 두렵습니다. 감히 오신 뜻을 받아 다시 굳이 사양하지 않겠으나, 논의에 지면 절을 세우고 승려를 불러 모아 불법을 빛내어 기려 주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삼가 듣겠으며 감히 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사문이 청을 받아 논하는 마당에 나아갔다. 외도가 이에 그 내세우는 뜻을 외니 삼만여 마디였다. 그 뜻이 멀고 그 글이 간략하며, 이름과 모습을 싸안고 보고 듣는 것을 그물처럼 얽었다. 사문이 한 번 듣고 다 살펴 말과 뜻에 그름이 없이 수백 마디로 가려 풀고, 그로 말미암아 마루 되는 뜻을 물었다. 외도가 말이 다하고 이치가 굽어 입을 막고 갚지 못하였다. 이미 그 이름이 꺾이매 부끄러움을 지고 물러갔다. 왕이 그 덕을 깊이 공경하여 이 절을 세웠고, 이때부터 뒤로 바야흐로 법의 가르침을 넓혔다.

4이레를 설법하신 자리

伽藍側不遠有窣堵波,無憂無所建也,在昔如來於此七日說法開導。其側精舍,過去四佛坐及經行遺跡之所。有數窣堵波,並是如來說經法之處,無憂王之所建也。

절 곁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여래가 여기서 이레 동안 법을 말씀하여 열어 이끄셨다. 그 곁 정사는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시고 거니신 자취가 있는 자리다. 탑 몇이 있으니 다 여래가 경과 법을 말씀하신 자리로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從此西南行七百餘里,至烏荼國。

여기서 서남쪽으로 칠백여 리를 가면 오다국에 이른다.

협주 1

東印度境。

동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