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라국案達羅國
案達羅國周三千餘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號瓶耆羅。土地良沃,稼穡豐盛。氣序溫暑,風俗猛暴。語言辭調異中印度,至於文字,軌則大同。伽藍二十餘所,僧徒三千餘人。天祠三十餘所,異道寔多。
안달라국은 둘레가 삼천여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이십여 리이니 병기라라 한다. 땅이 좋고 기름져 심고 거두는 것이 넉넉하고 성하다. 기후가 따뜻하고 덥고 풍속이 사납고 거칠다. 말과 가락이 중인도와 다르나 글자에 이르러서는 법도가 대체로 같다. 절이 이십여요 승려가 삼천여 명이다. 하늘신 사당가 삼십여요 외도가 참으로 많다.
2아절라 아라한의 절
瓶耆羅城側不遠有大伽藍,重閣層臺,制窮剞劂,佛像聖容,麗極工思。伽藍前有石窣堵波,高數百尺,並阿折羅阿羅漢之所建也。
병기라성 곁 멀지 않은 데 큰 절이 있으니 겹다락과 층대가 지음이 새김을 다하였고, 불상의 거룩한 얼굴이 곱기가 솜씨와 생각을 다하였다. 절 앞에 돌 탑이 있으니 높이가 수백 자다. 다 아절라 아라한이 세운 것이다.
협주 1
唐言所行。
당나라 말로는 소행이다.
3무우왕의 탑
所行羅漢伽藍西南不遠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如來在昔於此說法,現大神通,度無量眾。
소행 나한의 절 서남쪽 멀지 않은 데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가 옛날 여기서 법을 말씀하시고 큰 신통을 나타내어 한없는 무리를 건지셨다.
4진나가 인명론을 지은 자리
所行羅漢伽藍西南行二十餘里,至孤山。山嶺有石窣堵波,陳那菩薩於此作《因明論》。陳那菩薩者,佛去世後,承風染衣。智願廣大,慧力深固,湣世無依,思弘聖教。以為因明之論,言深理廣,學者虛功,難以成業,乃匿跡幽巖,棲神寂定,觀述作之利害,審文義之繁約。是時崖谷震響,煙雲變采,山神捧菩薩高數百尺,唱如是言:「昔佛世尊善權導物,以慈悲心,說《因明論》,綜括妙理,深究微言。如來寂滅,大義泯絕。今者,陳那菩薩福智悠遠,深達聖旨,因明之論,重弘茲日。」菩薩乃放大光明,照燭幽昧。時此國王深生尊敬,見此光明相,疑入金剛定,因請菩薩證無生果。陳那曰:「吾入定觀察,欲釋深經,心期正覺,非願無生果也。」王曰:「無生之果,眾聖欣仰,斷三界欲,洞三明智,斯盛事也,願疾證之。」陳那是時心悅王請,方欲證受無學聖果。時妙吉祥菩薩知而惜焉,欲相警誡,乃彈指悟之,而告曰:「惜哉!如何舍廣大心,為狹劣志,從獨善之懷,棄兼濟之願?欲為善利,當廣傳說慈氏菩薩所制《瑜伽師地論》,導誘後學,為利甚大。」陳那菩薩敬受指誨,奉以周旋。於是覃思沈研,廣因明論。猶恐學者懼其文微辭約也,乃舉其大義,綜其微言,作《因明論》,以導後進。自茲已後,宣暢瑜伽盛業,門人有知當世。
소행 나한의 절에서 서남쪽으로 이십여 리를 가면 외딴 산에 이른다. 산 재에 돌 탑이 있으니 진나보살이 여기서 『인명론』을 지었다. 진나보살은 부처가 세상을 떠나신 뒤 기풍을 이어 물들인 옷을 입은 이다. 지혜와 원이 넓고 크며 슬기의 힘이 깊고 굳어, 세상에 의지할 데 없음을 가엾이 여겨 거룩한 가르침을 넓힐 것을 생각하였다. 인명의 논은 말이 깊고 이치가 넓어 배우는 이가 헛되이 공을 들이고 업을 이루기 어렵다고 여겨, 이에 그윽한 바위에 자취를 감추고 고요한 선정에 정신을 깃들여, 짓는 것의 이롭고 해로움을 살피고 글과 뜻의 번다함과 간략함을 헤아렸다. 이때 벼랑과 골짜기가 울리고 연기와 구름이 빛을 바꾸며, 산신이 보살을 받들어 수백 자를 높이 들고 이렇게 외쳐 이르기를 「옛날 부처 세존이 방편을 잘 써서 사물을 이끄시고 자비의 마음으로 『인명론』을 말씀하시어, 묘한 이치를 싸안고 은미한 말을 깊이 궁구하셨다. 여래가 고요히 사라지시매 큰 뜻이 스러져 끊겼다. 이제 진나보살이 복과 지혜가 아득히 멀고 거룩한 뜻에 깊이 통달하였으니, 인명의 논이 오늘 다시 넓혀지리라」 하였다. 보살이 이에 큰 밝은 빛을 놓아 그윽하고 어두운 데를 비추었다. 그때 이 나라 왕이 깊이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이 빛의 모습을 보고 금강정에 들었는가 의심하여, 그로 말미암아 보살에게 남이 없는 열매를 증득하기를 청하였다. 진나가 이르기를 「내가 선정에 들어 살핀 것은 깊은 경을 풀려는 것이요 마음으로 바른 깨달음을 기약함이지 남이 없는 열매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남이 없는 열매는 뭇 성인이 기꺼이 우러르는 것이라, 삼계의 하고자 함을 끊고 세 가지 밝은 지혜를 꿰뚫으니 이는 성한 일입니다. 원컨대 빨리 증득하소서」 하였다. 진나가 이때 왕의 청에 마음이 기뻐 바야흐로 더 배울 것 없는 거룩한 열매를 증득해 받으려 하였다. 그때 묘길상보살이 알고 아까이 여겨 서로 경계하려고, 이에 손가락을 튕겨 깨우고 알려 이르기를 「아깝다. 어찌 넓고 큰 마음을 버리고 좁고 못한 뜻을 하며, 홀로 착한 품을 좇아 아울러 건지려는 원을 버리려 하는가. 착한 이로움을 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자씨보살이 지으신 『유가사지론』을 널리 전해 말하여 뒤에 배우는 이를 이끌어 꾀라. 이로움이 매우 크다」 하였다. 진나보살이 가리키신 가르침을 공경히 받아 받들어 두루 하였다. 이에 생각을 깊이 하고 잠겨 연구하여 인명의 논을 넓혔다. 그래도 배우는 이가 그 글이 은미하고 말이 간략함을 두려워할까 염려하여, 이에 그 큰 뜻을 들고 그 은미한 말을 싸안아 『인명론』을 지어 뒤에 나아가는 이를 이끌었다. 이때부터 뒤로 유가의 성한 업을 펴 드날리매 문인 가운데 그 세상에 알려진 이가 있었다.
협주 1
唐言童授。
당나라 말로는 동수다.
從此林野中南行千餘里,至馱那羯磔迦國。
여기서 숲과 들로 남쪽으로 천여 리를 가면 타나갈책가국에 이른다.
협주 1
亦謂大安達邏國,南印度境。
또한 대안달라국이라 이르니 남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