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랍바국摩臘婆國
摩臘婆國周六千餘里,國大都城周三十餘里,據莫訶河東南。土地膏腴,稼穡殷盛,草木榮茂,花果繁實,特宜宿麥,多食餅麨。人性善順,大抵聰敏,言辭雅亮,學藝優深。五印度境,兩國重學,西南摩臘婆國,東北摩揭陁國,貴德尚仁,明敏強學。而此國也,邪正雜信。伽藍數百所,僧徒二百餘人,習學小乘正量部法。天祠數百,異道寔眾,多是塗灰之侶也。
마랍바국은 둘레가 육천여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삼십여 리요 막하하 동남쪽에 자리하였다. 땅이 기름져 심고 거두는 것이 넉넉하고 성하며,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번성하게 열린다. 유난히 보리에 마땅하여 떡과 미숫가루를 많이 먹는다. 사람의 성품이 착하고 순하며 대체로 총명하고 민첩하다. 말이 아정하고 밝으며 배움과 재예가 넉넉하고 깊다. 다섯 인도의 지경에 두 나라가 배움을 무겁게 여기니, 서남쪽의 마랍바국과 동북쪽의 마게타국이다. 덕을 귀히 여기고 어짊을 숭상하며 밝고 민첩하고 힘써 배운다. 그런데 이 나라는 삿된 것과 바른 것을 섞어 믿는다. 절이 수백이요 승려가 이백여 명인데 소승 정량부의 법을 익혀 배운다. 하늘신 사당가 수백이요 외도가 참으로 많은데 흔히 재를 바르는 무리다.
2물을 걸러 먹인 왕
國誌曰:六十年前,王號屍羅阿叠多,機慧高明,才學贍敏,愛育四生,敬崇三寶。始自誕靈,洎乎沒齒,貌無瞋色,手不害生。象馬飲水,漉而後飼,恐傷水性也。其仁慈如此。在位五十餘年,野獸狎人,舉國黎庶咸不殺害。居宮之側建立精舍,窮諸工巧,備盡莊嚴,中作七佛世尊之像。每歲恒設無遮大會,招集四方僧徒,修施四事供養,或以三衣道具,或以七寶珍奇。奕世相承,美業無替。
나라의 기록에 이르기를, 예순 해 전에 왕의 이름이 시라아질다였다. 기틀과 지혜가 높고 밝으며 재주와 배움이 넉넉하고 민첩하였다. 온갖 목숨붙이를 사랑해 기르고 삼보를 공경히 높였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낯에 성낸 빛이 없고 손으로 산 것을 해치지 않았다. 코끼리와 말이 물을 마실 때도 걸러서 먹였으니 물의 성품을 다칠까 두려워한 것이다. 그 어짊과 자애가 이와 같았다. 자리에 있은 지 오십여 해에 들짐승이 사람과 익숙해지고 온 나라 백성이 다 죽여 해치지 않았다. 궁 곁에 정사를 세워 온갖 솜씨를 다하고 엄정한 꾸밈을 갖추었으며, 그 안에 일곱 부처 세존의 상을 만들었다. 해마다 늘 무차대회를 베풀어 사방의 승려를 불러 모으고 네 가지 공양을 닦아 베풀되, 더러는 세 가지 옷과 도구로 하고 더러는 일곱 보배와 진귀하고 기이한 것으로 하였다. 대를 이어 서로 받들어 아름다운 업이 바뀜이 없다.
협주 1
唐言戒日。
당나라 말로는 계일이다.
3거만한 바라문이 땅에 빠진 자리
大城西北二十餘里,至婆羅門邑,旁有陷坑,秋夏淫滯,彌淹旬日,雖納眾流,而無積水。其旁又建小窣堵波。聞諸先誌曰:昔者大慢婆羅門生身陷入地獄之處。昔此邑中,有婆羅門,生知博物,學冠時彥,內外典籍,究極幽微,歷數玄文,若視諸掌,風範清高,令聞遐被。王甚珍敬,國人宗重。門人千數,味道欽風。每自言曰:「吾為世出,述聖導凡,先賢後哲,無與我比。彼大自在天、婆藪天、那羅延天、佛世尊者,人皆風靡,祖述其道,莫不圖形,競修祗敬。我今德逾於彼,名擅於時,不有所異,其何以顯?」遂用赤旃檀刻作大自在天、婆藪天、那羅延天、佛世尊等像,為座四足,凡有所至,負以自隨。其慢傲也如此。時西印度有苾芻跋陁羅縷支。妙極因明,深窮異論,道風淳粹,戒香郁烈,少欲知足,無求於物,聞而嘆曰:「惜哉!時無人矣。令彼愚夫,敢行兇德。」於是荷錫遠遊,來至此國,以其宿心,具白於王。王見弊眼,心未之敬,然高其誌,強為之禮。遂設論座,告婆羅門。婆羅門聞而笑曰:「彼何人斯,敢懷此誌?」命其徒屬,來就論場,數百千眾,前後侍聽。賢愛服弊故衣,敷草而坐。彼婆羅門踞所持座,非斥正法,敷述邪宗。苾芻清辯若流,循環往復,婆羅門久而謝屈。王乃謂曰:「久濫虛名,罔上惑眾,先典有記,論負當戮。」欲以爐鐵,令其坐上。婆羅門窘迫,乃歸命求救。賢愛湣之,乃請王曰:「大王仁化遠洽,頌聲載途,當布慈育,勿行殘酷,恕其不逮,唯所去就。」王令乘驢,巡告城邑。婆羅門恥其戮辱,發憤歐血。苾芻聞已,往慰之曰:「爾學苞內外,聲聞遐邇,榮辱之事,進退當明。夫名者,何實乎?」婆羅門憤恚,深詈苾芻,謗毀大乘,輕蔑先聖。言聲未靜,地便拆裂,生身墜陷,遺跡斯在。
큰 성 서북쪽 이십여 리에 바라문 마을에 이른다. 곁에 꺼진 구덩이가 있어 가을과 여름에 장맛비가 오래 잠겨 열흘이 넘도록 가득하나, 비록 뭇 흐름을 받아들여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그 곁에 또 작은 탑을 세웠다. 앞선 기록에서 들으니 이르기를, 옛날 몹시 거만한 바라문이 산 몸으로 지옥에 빠져 든 자리라 하였다. 옛날 이 마을에 어떤 바라문이 있어 나면서부터 사물을 널리 알고 배움이 그때 뛰어난 이들에 으뜸이었다. 안팎의 전적에서 그윽하고 은미한 데를 끝까지 궁구하고, 역수와 현묘한 글을 손바닥 보듯 하였다. 기풍과 법도가 맑고 높으며 좋은 소문이 멀리 입혀졌다. 왕이 몹시 진귀히 공경하고 나라 사람이 높이 받들어 무겁게 여겼다. 문인이 천을 헤아려 도를 맛보고 기풍을 흠모하였다. 늘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세상을 위해 났으니 성인의 말을 펴 범부를 이끈다. 앞선 어진 이와 뒤에 밝은 이 가운데 나와 견줄 이가 없다. 저 대자재천과 바수천과 나라연천과 부처 세존은 사람이 다 바람에 쓰러지듯 좇아 그 도를 좇아 이야기하고, 모습을 그려 다투어 공경을 닦지 않는 이가 없다. 내가 이제 덕이 저들보다 넘고 이름이 그때에 뛰어난데, 남다른 바가 있지 않으면 무엇으로 드러내겠는가」 하였다. 마침내 붉은 전단으로 대자재천과 바수천과 나라연천과 부처 세존 들의 상을 새겨 만들어 자리의 네 다리로 삼고, 무릇 이르는 곳마다 지고 다녔다. 그 거만함이 이와 같았다. 그때 서인도에 발타라루지라는 비구가 있어 인명에 묘하게 지극하고 다른 논을 깊이 궁구하였으며, 도의 기풍이 순수하고 계의 향이 짙었다. 바라는 것이 적고 넉넉함을 알아 사물에 구하는 것이 없었는데, 듣고 탄식하여 이르기를 「아깝다. 때에 사람이 없어 저 어리석은 사내로 하여금 감히 흉악한 덕을 행하게 하는구나」 하였다. 이에 지팡이를 지고 멀리 노닐어 이 나라에 와서 지난날의 마음을 왕에게 갖추어 아뢰었다. 왕이 그 해진 모습을 보고 마음으로 아직 공경하지 않았으나, 그 뜻을 높이 여겨 억지로 예를 갖추었다. 마침내 논하는 자리를 베풀고 바라문에게 알렸다. 바라문이 듣고 웃으며 이르기를 「저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런 뜻을 품는가」 하고, 그 무리에게 명하여 논하는 마당에 나아가게 하니 수백천 무리가 앞뒤에서 모시고 들었다. 현애는 해지고 낡은 옷을 입고 풀을 깔고 앉았다. 저 바라문은 지니고 다니던 자리에 걸터앉아 바른 법을 그르다 물리치고 삿된 가르침을 펴 말하였다. 비구의 맑은 말재주가 흐르는 듯하여 돌고 돌아 오가매, 바라문이 오래 버티다 굽혀 사죄하였다. 왕이 이에 이르기를 「오래 헛된 이름을 함부로 하여 위를 속이고 무리를 홀렸다. 앞선 전적에 적혀 있으니 논에 지면 마땅히 죽여야 한다」 하고, 화로의 달군 쇠 위에 그를 앉히려 하였다. 바라문이 군색하고 다급하여 이에 목숨을 걸고 매달려 구원을 빌었다. 현애가 가엾이 여겨 이에 왕에게 청하여 이르기를 「대왕의 어진 교화가 멀리 흡족하여 기리는 소리가 길에 가득합니다. 마땅히 자애로 기름을 펴시고 모진 짓을 행하지 마시어, 그 미치지 못함을 용서하시고 오직 가고 머무름을 그에게 맡기소서」 하였다. 왕이 나귀를 타게 하여 성과 고을을 돌며 알리게 하였다. 바라문이 그 죽음 같은 욕됨을 부끄러워하여 분을 내어 피를 토하였다. 비구가 듣고 가서 위로하여 이르기를 「그대의 배움이 안팎을 싸안아 이름이 멀고 가까운 데까지 들렸으니, 영화와 욕됨의 일에 나아가고 물러남을 마땅히 밝혀야 한다. 무릇 이름이란 무엇이 실상인가」 하였다. 바라문이 분하고 성내어 비구를 깊이 꾸짖고 대승을 헐뜯으며 앞선 성인을 가벼이 업신여겼다. 말소리가 아직 자지 않았는데 땅이 곧 갈라져 산 몸으로 떨어져 빠졌으니 남은 자취가 여기 있다.
협주 1
唐言賢愛。
당나라 말로는 현애다.
自此西南入海交,西北行二千四五百里,至阿咤厘國。
여기서 서남쪽으로 바다가 만나는 데에 들고 서북쪽으로 이천사오백 리를 가면 아타리국에 이른다.
협주 1
南印度境。
남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