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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분다국阿軬荼國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 현장(玄奘) 지음 · 변기(辯機) 엮음 · 646년 (당 정관 20) · 단락 3 · 한자 292자 · 낭독 1.2분

「대당서역기」 제11권 「아분다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장이 열일곱 해 동안 서역과 인도 백서른여덟 나라를 밟고 돌아와 당 태종에게 올린 기록. 서유기의 밑감이 된 책이되, 여기에는 요괴가 아니라 나라마다의 둘레와 기후와 말과 믿음이 적혀 있다. 법현보다 이백 년 뒤, 혜초보다 팔십 년 앞선 길이다.

阿軬荼國周二千四五百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無大君長,役屬信度國。土宜稼穡,宿麥特豐,花果少,草木疏。氣序風寒,人性獷烈。言辭樸質,不尚學業,然於三寶,守心淳信。伽藍二十餘所,僧徒二千餘人,多學小乘正量部法。天祠五所,並塗灰外道地。

아분다국은 둘레가 이천사오백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이십여 리다. 큰 임금이 없이 신도국에 매여 딸렸다. 땅이 심고 거두기에 마땅하고 보리가 유난히 넉넉하며 꽃과 열매가 적고 풀과 나무가 성기다. 기후가 바람이 차고 사람의 성품이 거칠고 매섭다. 말이 투박하고 질박하며 배우는 업을 숭상하지 않으나, 삼보에 대해서는 마음을 지켜 순수히 믿는다. 절이 이십여요 승려가 이천여 명인데 소승 정량부의 법을 많이 배운다. 하늘신 사당가 다섯인데 다 재를 바르는 외도의 자리다.

2신을 신게 하시고 겹옷을 입게 하신 자리

城東北不遠,大竹林中伽藍餘趾,是如來昔於此處聽諸苾芻著亟縛屣。傍有窣堵波,無憂王所建也,基雖傾陷,尚高百餘尺。其旁精舍,有青石立佛像,每至齋日,或放神光。次南八百餘步。林中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如來昔日止此,夜寒,乃以三衣重覆,至明旦,開諸苾芻著復納衣。此林之中,有佛經行之處,又有諸窣堵波,鱗次相望,並過去四佛坐處也。其窣堵波中有如來髮爪,每至齋日,多放光明。

성 동북쪽 멀지 않은 큰 대나무 숲 가운데 절의 남은 자취가 있으니, 이는 여래가 옛날 이곳에서 여러 비구에게 극박사를 신도록 허락하신 자리다. 곁에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요, 터가 비록 기울고 꺼졌으나 아직 높이가 백여 자다. 그 곁 정사에 푸른 돌로 만든 부처의 선 상이 있어 재일에 이를 때마다 더러 신묘한 빛을 놓는다. 그 남쪽 팔백여 걸음 숲 가운데 탑이 있으니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가 옛날 여기 머무실 때 밤이 추워 이에 세 가지 옷을 거듭 덮으시고, 이튿날 아침에 이르러 여러 비구에게 겹으로 기운 옷 입기를 허락하셨다. 이 숲 가운데 부처가 거니신 자리가 있고, 또 여러 탑이 비늘처럼 늘어서 서로 바라보니 다 지나간 네 부처가 앉으신 자리다. 그 탑 안에 여래의 머리카락과 손톱이 있어 재일에 이를 때마다 흔히 밝은 빛을 놓는다.

협주 1

唐言靴。

당나라 말로는 신이다.

從此東北行九百餘里,至伐剌拿國。

여기서 동북쪽으로 구백여 리를 가면 벌랄나국에 이른다.

협주 1

西印度境。

서인도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