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반타국朅盤陁國
朅盤陁國周二千餘里,國大都城基大石嶺,背徒多河,周二十餘里。山嶺連屬,川原隘狹。穀稼儉少,菽麥豐多,林樹稀,花果少。原隰丘墟,城邑空曠。俗無禮義,人寡學藝,性既獷暴,力亦驍勇。容貌醜弊,衣服氈褐。文字語言,大同佉沙國。然知淳信,敬崇佛法。伽藍十餘所,僧徒五百餘人,習學小乘教說一切有部。
갈반타국은 둘레가 이천여 리다. 나라의 큰 도성은 큰 돌 재에 터를 두고 사다하를 등졌으며 둘레가 이십여 리다. 산과 재가 잇달아 붙고 내와 벌이 좁다. 곡식이 적고 콩과 보리가 넉넉하고 많으며, 나무숲이 드물고 꽃과 열매가 적다. 들과 진펄이 황폐하고 성과 고을이 비어 휑하다. 풍속에 예와 의리가 없고 사람이 배움과 재예가 적다. 성품이 이미 거칠고 사나우며 힘도 또한 날래고 용감하다. 얼굴이 추하고 볼품없으며 옷은 털옷과 거친 베옷을 입는다. 글자와 말이 거사국과 대체로 같다. 그러나 순수히 믿을 줄을 알아 불법을 공경히 높인다. 절이 십여요 승려가 오백여 명인데 소승의 가르침인 설일체유부를 익혀 배운다.
2한일천종 — 해에서 내려온 아버지
今王淳質,敬重三寶,儀容閑雅,篤志好學。建國以來,多歷年所。其自稱云是至那提婆瞿呾羅。此國之先,蔥嶺中荒川也。昔波利剌斯國王娶婦漢土,迎歸至此。時屬兵亂,東西路絕,遂以王女置於孤峰,極危峻,梯崖而上,下設周衛,警晝巡夜。時經三月,寇賊方靜,欲趨歸路,女已有娠。使臣惶懼,謂徒屬曰:「王命迎婦,屬斯寇亂,野次荒川,朝不謀夕。吾王德感,妖氣已靜。今將歸國,王婦有娠。顧此為憂,不知死地。宜推首惡,或以後誅。」訊問喧嘩,莫究其實。時彼待兒謂使臣曰:「勿相尤也,乃神會耳。每日正中,有一丈夫從日輪中乘馬會此。」使臣曰:「若然者,何以雪罪?歸必見誅,留亦來討,進退若是,何所宜行?」僉曰:「斯事不細,誰就深誅?待罪境外,且推旦夕。」於是即石峰上築宮起館,周三百餘步。環宮築城,立女為主,建官垂憲。至期產男,容貌妍麗。母攝政事,子稱尊號。飛行虛空,控馭風雲,威德遐被,聲教遠洽,鄰域異國,莫不稱臣。其王壽終,葬在此城東南百餘里大山巖石室中。其屍乾臘,今猶不壞,狀羸瘠人,儼然如睡,時易衣服,恒置香花。子孫奕世,以迄於今。以其先祖之世,母則漢土之人,父乃日天之種,故其自稱漢日天種。然其王族,貌同中國,首飾方冠,身衣胡服。後嗣陵夷,見迫強國。
지금 왕은 순박하고 질박하여 삼보를 공경히 무겁게 여기며, 몸가짐이 한가하고 아정하며 뜻이 도타워 배우기를 좋아한다. 나라를 세운 뒤로 여러 해가 지났다. 그 스스로 일컫기를 지나제바구달라라 한다. 이 나라는 앞서 총령 가운데 거친 내였다. 옛날 파리랄사국 왕이 한나라 땅에서 아내를 맞아 맞이해 돌아오다가 여기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군사가 어지러워 동서의 길이 끊기매, 마침내 왕의 딸을 외딴 봉우리에 두었다. 지극히 위태롭고 가팔라 벼랑에 사다리를 놓아 오르고 아래에 둘러 지키며 낮에 살피고 밤에 돌았다. 석 달이 지나 도적이 바야흐로 자매 돌아갈 길을 가려 하는데 딸이 이미 아이를 배었다. 사신이 두려워 무리에게 이르기를 「왕의 명으로 신부를 맞으러 왔다가 이 도적의 난을 만나, 거친 내에 들에서 묵으며 아침에 저녁을 꾀하지 못하였다. 우리 왕의 덕에 감응하여 요망한 기운이 이미 자고, 이제 나라로 돌아가려는데 왕의 부인이 아이를 배었다. 이를 돌아보아 근심하니 죽을 자리를 알지 못하겠다. 마땅히 우두머리 악한 자를 가려내야 뒤에 벌을 면할 것이다」 하였다. 캐물음이 시끄러웠으나 그 실상을 궁구하지 못하였다. 그때 저 모시는 아이가 사신에게 이르기를 「서로 허물하지 마시오. 이는 신이 만난 것일 뿐이오. 날마다 한낮이면 한 사내가 해 바퀴 가운데서 말을 타고 여기에 왔소」 하였다. 사신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무엇으로 죄를 씻겠는가. 돌아가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고 머물러도 또한 와서 칠 것이니, 나아가고 물러남이 이러하니 무엇을 행함이 마땅한가」 하니, 다들 이르기를 「이 일이 작지 않으니 누가 깊은 벌에 나아가겠는가. 지경 밖에서 죄를 기다리며 우선 아침저녁을 미루자」 하였다. 이에 곧 돌 봉우리 위에 궁을 짓고 관을 일으키니 둘레가 삼백여 걸음이었다. 궁을 둘러 성을 쌓고 딸을 세워 주인으로 삼으며 벼슬을 세우고 법을 드리웠다. 때가 되어 사내를 낳으니 얼굴이 곱고 아름다웠다. 어머니가 정사를 잡고 아들이 높은 이름을 일컬었다. 허공을 날아다니고 바람과 구름을 부리며, 위엄과 덕이 멀리 입혀지고 소리와 가르침이 멀리 흡족하매 이웃 지역 다른 나라가 신하를 일컫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왕이 수를 마치매 이 성 동남쪽 백여 리 큰 산 바위 석실 안에 장사 지냈다. 그 주검이 말라 이제도 오히려 썩지 않았으니, 모습이 파리하고 여윈 사람 같아 엄연히 잠든 듯하다. 때때로 옷을 갈아입히고 늘 향과 꽃을 둔다. 자손이 대를 이어 이제에 이르렀다. 그 선조의 대에 어머니는 곧 한나라 땅 사람이요 아버지는 곧 해 신의 씨이므로, 그래서 스스로 한일천종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그 왕족은 얼굴이 중국과 같고 머리에는 모난 관을 쓰며 몸에는 오랑캐 옷을 입는다. 뒷자손이 쇠하여 강한 나라에 몰린다.
협주 1
唐言漢日天種。
당나라 말로는 한나라 해 신의 씨다.
3동수 논사와 네 해
無憂王命世,即其宮中建窣堵波。其王於後遷居宮東北隅,以其故宮為尊者童受論師建僧伽藍。臺閣高廣,佛像威嚴。尊者,呾叉始羅國人也,幼而穎悟,早離俗塵,遊心典籍,棲神玄旨,日誦三萬二千言,兼書三萬二千字。故能學寇時彥,名高當世,立正法,摧邪見,高論清舉,無難不酬,五印度國咸見推高。其所制論凡數十部,並盛宣行,莫不玩習,即經部本師也。當此之時,東有馬鳴,南有提婆,西有龍猛,北有童受,號為四日照世。故此國王聞尊者盛德,興兵動眾,伐呾叉始羅國,脅而得之,建此伽藍,式昭瞻仰。
무우왕이 세상에 명을 받으매 곧 그 궁 안에 탑을 세웠다. 그 왕이 뒤에 궁 동북쪽 모퉁이로 옮겨 살고, 그 옛 궁으로 존자 동수 논사를 위해 절을 세웠다. 대와 다락이 높고 넓으며 불상이 위엄이 있다. 존자는 달차시라국 사람이다. 어려서 뛰어나게 슬기로워 일찍이 세속의 티끌을 떠났고, 마음을 전적에 노닐고 정신을 그윽한 뜻에 깃들여 날마다 삼만 이천 마디를 외고 아울러 삼만 이천 자를 썼다. 그러므로 배움이 그때 뛰어난 이들을 누르고 이름이 그 세상에 높아, 바른 법을 세우고 삿된 견해를 꺾으매 높은 논이 맑게 들려 갚지 못할 힐난이 없으므로 다섯 인도 나라가 다 높이 밀어 주었다. 그가 지은 논이 무릇 수십 부인데 다 널리 펴져 행하매 즐겨 익히지 않는 이가 없으니, 곧 경부의 본디 스승이다. 이때에 동쪽에 마명이 있고 남쪽에 제바가 있고 서쪽에 용맹이 있고 북쪽에 동수가 있어, 네 해가 세상을 비춘다고 일컬어졌다. 그러므로 이 나라 왕이 존자의 성한 덕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무리를 움직여 달차시라국을 쳐서 위협하여 얻고, 이 절을 세워 법식대로 우러름을 밝혔다.
4멸진정에 든 두 나한
城東南行三百餘里,至大石崖,有二石室,各一羅漢於中入滅盡定。端然而坐,難以動搖,形若羸人,膚骸不朽,已經七百餘歲。其鬚髮恒長,故眾僧年別為剃髮易衣。
성 동남쪽으로 삼백여 리를 가면 큰 돌벼랑에 이르는데 석실 둘이 있어 각각 나한 하나가 그 안에서 멸진정에 들었다. 단정히 앉아 흔들기 어려우며 모습이 파리한 사람 같으나 살갗과 뼈가 썩지 않았으니 이미 칠백여 해가 지났다. 그 수염과 머리가 늘 자라므로 뭇 승려가 해마다 따로 머리를 깎고 옷을 갈아 준다.
5분양사라 — 복 짓는 집
大崖東北,逾嶺履險,行二百餘里,至奔穰舍羅。蔥嶺東岡,四山之中,地方百餘頃,正中墊下。冬夏積雪,風寒飄勁。疇壟舄鹵,稼穡不滋,既無林樹,唯有細草。時雖暑熱,而多風雪,人徒才入,雲霧已興。商旅往來,苦斯艱險。聞諸耆舊曰:「昔有賈客,其徒萬餘,橐駝數千,賫貨逐利,遭風遇雪,人畜俱喪。時朅盤陁國有大羅漢,遙觀見之,湣其危厄,欲運神通,拯斯淪溺。適來至此,商人已喪。於是收諸珍寶,集其所有,構立館舍,儲積資財,買地鄰國,鬻戶邊城,以賑往來。故今行人商旅,咸蒙周給。
큰 벼랑 동북쪽으로 재를 넘고 험한 데를 밟아 이백여 리를 가면 분양사라에 이른다. 총령 동쪽 언덕 네 산 가운데 땅이 백여 이랑인데 한가운데가 꺼져 낮다. 겨울과 여름에 눈이 쌓이고 바람이 차고 나부껴 굳세다. 이랑과 두둑이 짜고 소금기가 있어 심고 거두는 것이 자라지 않으며, 이미 나무숲이 없고 오직 가는 풀만 있다. 때가 비록 덥고 뜨거워도 바람과 눈이 많아, 사람이 겨우 들어서면 구름과 안개가 이미 인다. 장사꾼과 나그네가 오가며 이 어렵고 험함에 괴로워한다. 늙은이들에게 들으니 이르기를 「옛날 장사꾼이 있어 그 무리가 만여요 낙타가 수천이었는데, 재화를 지고 이익을 좇다가 바람을 만나고 눈을 만나 사람과 짐승이 다 죽었다. 그때 갈반타국에 큰 나한이 있어 멀리서 보고 그 위태로운 액을 가엾이 여겨, 신통을 부려 이 빠진 이들을 건지려 하였다. 마침 여기 이르니 장사꾼이 이미 죽었다. 이에 여러 진귀한 보배를 거두고 그 있는 것을 모아 집을 세워 재물을 쌓아 두고, 이웃 나라에 땅을 사고 변방 성에 집을 사서 오가는 이를 도왔다. 그러므로 이제 길 가는 이와 장사꾼이 다 두루 대어 줌을 입는다」 하였다.
협주 2
逋論反。
보와 론의 반절로 읽는다.
唐言福舍。
당나라 말로는 복 짓는 집이다.
從此東下蔥嶺東岡,登危嶺,越洞谷,溪徑險阻,風雪相繼,行八百餘里,出蔥嶺,至烏鎩國。
여기서 동쪽으로 총령 동쪽 언덕을 내려 위태로운 재에 오르고 뚫린 골짜기를 넘는데, 시내와 좁은 길이 험하고 막히며 바람과 눈이 서로 잇는다. 팔백여 리를 가서 총령을 나오면 오쇄국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