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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읍국林邑國

양서 제이전 梁書 諸夷傳 · 요사렴(姚思廉) · 636년 (당 정관 10) · 단락 7 · 한자 1,662자 · 낭독 6.6분

「양서 제이전」 한 권 「임읍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조 양나라가 본 서른여섯 나라.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알린 표문, 신라가 처음 제 이름으로 등장하는 기록, 부처의 머리카락과 아육왕탑 이야기, 그리고 부상국·여인국 같은 바다 끝 전설까지 — 남해에서 서역까지 가장 폭넓은 제이전이다.

1구리 기둥과 침향의 땅

林邑國者,本漢日南郡象林縣,古越裳之界也。伏波將軍馬援開漢南境,置此縣。其地縱廣可六百里,城去海百二十里,去日南界四百餘里,北接九德郡。其南界,水步道二百餘里,有西國夷亦稱王,馬援植兩銅柱表漢界處也。其國有金山,石皆赤色,其中生金。金夜則出飛,狀如螢火。又出玳瑁、貝齒、吉貝、沉木香。吉貝者,樹名也,其華成時如鵝毳,抽其緒紡之以作布,潔白與紵布不殊,亦染成五色,織爲斑布也。沉木者,土人斫斷之,積以歲年,朽爛而心節獨在,置水中則沉,故名曰沉香。次不沉不浮者,曰𥴈香也。

임읍국은 본디 한나라 일남군 상림현이니 옛 월상(越裳)의 지경이다. 복파장군 마원이 한나라 남쪽 지경을 열어 이 현을 두었다. 그 땅은 세로 너비가 육백 리쯤이요, 성은 바다에서 백이십 리, 일남 지경에서 사백여 리며 북으로 구덕군에 접한다. 그 남쪽 지경은 물길과 뭍길로 이백여 리에 서국(西國)의 이(夷)가 있어 역시 왕을 일컬으니, 마원이 구리 기둥 둘을 세워 한나라 경계를 표시한 곳이다. 그 나라에 금산이 있어 돌이 다 붉은빛인데 그 속에서 금이 난다. 금은 밤이면 나와 날아다니니 모양이 반딧불 같다. 또 대모·조개 이빨·길패·침목향이 난다. 길패(吉貝)란 나무 이름이니, 꽃이 필 때면 거위 솜털 같아 그 실마리를 뽑아 자아서 베를 만들면 희기가 모시베와 다름없고, 또한 다섯 빛깔로 물들여 반포(斑布)를 짠다. 침목(沉木)이란 땅 사람들이 베어 놓고 여러 해를 묵혀, 썩어 문드러지고 심과 마디만 남은 것이니, 물에 넣으면 가라앉으므로 침향이라 이름한다. 그다음 가라앉지도 뜨지도 않는 것은 잔향(𥴈香)이라 한다.

2종 문(文)의 찬탈

漢末大亂,功曹區達,殺縣令自立爲王。傳數世,其後王無嗣,立外甥范熊。熊死,子逸嗣。晉成帝咸康三年,逸死,奴文篡立。文本日南西卷縣夷帥范稚家奴,常牧牛於山澗,得鱧魚二頭,化而爲鐵,因以鑄刀。鑄成,文向石而咒曰:「若斫石破者,文當王此國。」因舉刀斫石,如斷芻藳,文心獨異之。范稚常使之商賈至林邑,因教林邑王作宮室及兵車器械,王寵任之。後乃讒王諸子,各奔餘國。及王死無嗣,文偽於鄰國迓王子,置毒於漿中而殺之,遂脅國人自立。舉兵攻旁小國,皆吞滅之,有衆四五萬人。時交州刺史姜莊使所親韓戢、謝稚,前後監日南郡,並貪殘,諸國患之。穆帝永和三年,臺遣夏侯覽爲太守,侵刻尤甚。林邑先無田土,貪日南地肥沃,常欲略有之,至是,因民之怨,遂舉兵襲日南,殺覽,以其屍祭天。留日南三年,乃還林邑。交州刺史朱籓後遣督護劉雄戍日南,文復屠滅之。

한나라 말 큰 난리에 공조 구달(區達)이 현령을 죽이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몇 대를 전하다가 뒤에 왕이 후사가 없어 생질 범웅을 세웠다. 웅이 죽고 아들 일(逸)이 이었다. 진 성제 함강 삼년에 일이 죽자 종 문(文)이 찬탈해 섰다. 문은 본디 일남 서권현 이(夷) 우두머리 범치 집의 종이니, 늘 산골 시내에서 소를 치다가 가물치 두 마리를 얻으니 변하여 쇠가 되므로 그것으로 칼을 부었다. 칼이 이루어지자 문이 바위를 향해 빌기를 「바위를 찍어 깨어지면 문이 이 나라에 왕 노릇 하리라」 하고 칼을 들어 바위를 찍으니 꼴단 베듯 하니, 문이 속으로 홀로 기이하게 여겼다. 범치가 늘 장사를 시켜 임읍에 보내니, 그 김에 임읍왕에게 궁실과 병거와 기계 만드는 법을 가르치매 왕이 총애해 맡겼다. 뒤에 왕의 여러 아들을 참소하니 저마다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 왕이 죽고 후사가 없자, 문이 이웃 나라에서 왕자를 맞는 체하고 마실 것에 독을 타서 죽인 뒤 드디어 나라 사람들을 위협해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군사를 들어 곁의 작은 나라들을 쳐서 다 삼키니 무리가 사오만이었다. 그때 교주자사 강장이 친한 한집·사치를 앞뒤로 일남군 감독으로 삼았는데 다 탐욕스럽고 잔학하여 여러 나라가 괴로워하였다. 목제 영화 삼년에 조정이 하후람을 태수로 보냈는데 침탈이 더욱 심했다. 임읍은 본디 밭이 없어 일남 땅의 기름짐을 탐내 늘 차지하려 했는데, 이에 이르러 백성의 원망을 타고 드디어 군사를 들어 일남을 습격해 람을 죽이고 그 주검으로 하늘에 제사하였다. 일남에 세 해를 머물다 임읍으로 돌아갔다. 교주자사 주번이 뒤에 독호 유웅을 보내 일남에 수자리 세우니 문이 다시 도륙하였다.

3잇단 침노

進寇九德郡,殘害吏民。遣使告籓,願以日南北境橫山爲界,籓不許,又遣督護陶緩、李衢討之。文歸林邑,尋復屯日南。五年,文死,子佛立,猶屯日南。征西將軍桓溫遣督護滕畯、九真太守灌邃帥交、廣州兵討之,佛嬰城固守。邃令峻盛兵於前,邃帥勁卒七百人,自後逾壘而入,佛衆驚潰奔走,邃追至林邑,佛乃請降。哀帝昇平初,復爲寇暴,刺史溫放之討破之。安帝隆安三年,佛孫須達復寇日南,執太守炅源,又進寇九德,執太守曹炳。交趾太守杜瑗遣都護鄧逸等擊破之,卽以瑗爲刺史。義熙三年,須達復寇日南,殺長史,瑗遣海邏督護阮斐討破之,斬獲甚衆。九年,須達復寇九真,行郡事杜慧期與戰,斬其息交龍王甄知及其將范健等,生俘須達息𨚗能,及虜獲百餘人。自瑗卒後,林邑無歲不寇日南、九德諸郡,殺蕩甚多,交州遂致虛弱。

나아가 구덕군을 노략해 아전과 백성을 해쳤다. 사신을 보내 번에게 알려 일남 북쪽 지경 횡산으로 경계 삼기를 원했으나 번이 허락하지 않고, 또 독호 도완과 이구를 보내 쳤다. 문이 임읍으로 돌아갔다가 이윽고 다시 일남에 진 쳤다. 5년에 문이 죽고 아들 불(佛)이 서서 여전히 일남에 진 쳤다. 정서장군 환온이 독호 등준과 구진태수 관수를 보내 교주·광주 군사를 거느리고 치니 불이 성을 닫고 굳게 지켰다. 수가 준에게 앞에서 군사를 성대히 벌이게 하고, 수는 굳센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뒤로 보루를 넘어 들어가니, 불의 무리가 놀라 무너져 달아나매 수가 임읍까지 쫓아가니 불이 이에 항복을 청하였다. 애제 승평 초에 다시 도적질하니 자사 온방지가 쳐서 깨뜨렸다. 안제 융안 삼년에 불의 손자 수달이 다시 일남을 노략해 태수 경원을 사로잡고, 또 나아가 구덕을 노략해 태수 조병을 사로잡았다. 교지태수 두원이 도호 등일 등을 보내 쳐서 깨뜨리니 곧 원을 자사로 삼았다. 의희 삼년에 수달이 다시 일남을 노략해 장사를 죽이니, 원이 해라독호 완비를 보내 쳐서 깨뜨리고 베고 사로잡음이 몹시 많았다. 9년에 수달이 다시 구진을 노략하니 군 일을 행하던 두혜기가 싸워, 그 아들 교룡왕 진지와 장수 범건 등을 베고 수달의 아들 나눙을 사로잡고 백여 명을 사로잡았다. 원이 죽은 뒤로 임읍이 일남·구덕 여러 군을 노략하지 않는 해가 없어 죽이고 쓸어 감이 몹시 많으니, 교주가 드디어 허약해졌다.

4문적의 출분과 왕통

須達死,子敵真立,其弟敵鎧擕母出奔。敵真追恨不能容其母弟,捨國而之天竺,禪位於其甥,國相藏膋固諫不從。其甥旣立而殺藏膋,藏膋子又攻殺之,而立敵鎧同母異父之弟曰文敵。文敵後爲扶南王子當根純所殺,大臣范諸農平其亂,而自立爲王。諸農死,子陽邁立。宋永初二年,遣使貢獻,以陽邁爲林邑王。陽邁死,子咄立,慕其父,復曰陽邁。

수달이 죽고 아들 적진이 섰는데, 아우 적개가 어머니를 데리고 달아났다. 적진은 어머니와 아우를 포용하지 못한 것을 뉘우쳐 나라를 버리고 천축으로 가며 생질에게 자리를 물려주니, 국상 장료가 굳이 간했으나 따르지 않았다. 생질이 서자 장료를 죽이고, 장료의 아들이 또 쳐 죽이고서 적개의 어미 같고 아비 다른 아우 문적(文敵)을 세웠다. 문적은 뒤에 부남 왕자 당근순에게 살해되니, 대신 범제농이 그 난을 평정하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제농이 죽고 아들 양매(陽邁)가 즉위하였다. 송 영초 이년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양매를 임읍왕으로 삼았다. 양매가 죽고 아들 돌(咄)이 서니, 아버지를 사모하여 다시 양매라 하였다.

5임읍의 풍속

其國俗:居處爲閣,名曰于蘭,門戶皆北向;書樹葉爲紙;男女皆以橫幅吉貝繞腰以下,謂之干漫,亦曰都縵;穿耳貫小鐶;貴者著革屣,賤者跣行。自林邑、扶南以南諸國皆然也。其王著法服,加瓔珞,如佛像之飾。出則乘象,吹螺擊鼓,罩吉貝傘,以吉貝爲幡旗。國不設刑法,有罪者使象踏殺之。其大姓號婆羅門。嫁娶必用八月,女先求男,由賤男而貴女也。同姓還相婚姻,使婆羅門引婿見婦,握手相付,呪曰「吉利吉利」,以爲成禮。死者焚之中野,謂之火葬。其寡婦孤居,散髮至老。國王事尼乾道,鑄金銀人像,大十圍。

그 나라 풍속은, 사는 곳을 다락으로 짓고 우란(于蘭)이라 이름하며 문은 다 북쪽으로 낸다. 나뭇잎에 글을 써서 종이로 삼는다. 남녀가 다 가로폭 길패를 허리 아래에 두르니 간만(干漫)이라 이르고 도만(都縵)이라고도 한다. 귀를 뚫어 작은 고리를 꿰며, 귀한 자는 가죽신을 신고 천한 자는 맨발로 다닌다. 임읍·부남부터 남쪽 여러 나라가 다 그러하다. 그 왕은 법복을 입고 영락을 더하니 불상의 꾸밈 같다. 나들이에는 코끼리를 타고 소라를 불고 북을 치며, 길패 일산을 받고 길패로 깃발을 삼는다. 나라에 형법을 두지 않고 죄 있는 자는 코끼리에게 밟혀 죽게 한다. 큰 성씨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혼인은 반드시 팔월에 하되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청혼하니, 남자를 천히 여기고 여자를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 같은 성끼리도 서로 혼인한다. 바라문을 시켜 사위를 이끌어 신부를 만나 손을 잡아 서로 맡기며 「길리길리(吉利吉利)」라 비는 것으로 예를 이룬다. 죽은 이는 들 가운데서 태우니 화장이라 이른다. 과부는 홀로 살며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늙는다. 국왕은 니건도(尼乾道)를 섬겨 금은으로 사람 형상을 부으니 크기가 열 아름이다.

6금인을 녹여 얻은 금

元嘉初,陽邁侵暴日南、九德諸郡,交州刺史杜弘文建牙欲討之,聞有代乃止。八年,又寇九德郡,入四會浦口,交州刺史阮彌之遣隊主相道生帥兵赴討,攻區栗城不剋,乃引還。爾後頻年遣使貢獻,而寇盜不已。二十三年,使交州刺史檀和之、振武將軍宗愨伐之。和之遣司馬蕭景憲爲前鋒,陽邁聞之懼,欲輸金一萬斤,銀十萬斤,還所略日南民戶,其大臣䓯僧達諫止之,乃遣大帥范扶龍戍其北界區栗城。景憲攻城,剋之,斬扶龍首,獲金銀雜物,不可勝計。乘勝徑進,卽剋林邑。陽邁父子並挺身逃奔。獲其珍異,皆是未名之寶。又銷其金人,得黃金數十萬斤。和之後病死,見胡神爲祟。

원가 초에 양매가 일남·구덕 여러 군을 침노하니, 교주자사 두홍문이 아기를 세우고 치려다가 교대할 이가 온다는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 8년에 또 구덕군을 노략하고 사회 포구에 들어오니, 교주자사 완미지가 대주 상도생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가 쳤으나 구률성을 치다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뒤 해마다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면서도 도적질이 그치지 않았다. 23년에 교주자사 단화지와 진무장군 종각을 시켜 치게 하였다. 화지가 사마 소경헌을 선봉으로 삼으니, 양매가 듣고 두려워 금 일만 근과 은 십만 근을 바치고 노략한 일남 민호를 돌려보내려 했는데, 대신 독승달이 간하여 말리므로 이에 대수 범부룡을 보내 북쪽 지경 구률성에 수자리 세웠다. 경헌이 성을 쳐서 이기고 부룡의 목을 베니 금은과 온갖 물건을 얻음이 이루 셀 수 없었다. 이긴 김에 곧장 나아가 곧 임읍을 이기니 양매 부자가 다 몸만 빼어 달아났다. 얻은 진기한 것들이 다 이름 모를 보물이요, 또 그 금인을 녹여 황금 수십만 근을 얻었다. 화지는 뒤에 병들어 죽었는데 호신(胡神)이 빌미가 되었다 한다.

7양나라 때의 책봉

孝武建元、大明中,林邑王范神成累遣長史奉表貢獻。明帝泰豫元年,又遣使獻方物。齊永明中,範文贊累遣使貢獻。天監九年,文贊子天凱奉獻白猴,詔曰:「林邑王范天凱介在海表,乃心款至,遠修職貢,良有可嘉。宜班爵號,被以榮澤。可持節、督緣海諸軍事、威南將軍、林邑王。」十年,十三年,天凱累遣使獻方物。俄而病死,子弼毳跋摩立,奉表貢獻。普通七年,王高式勝鎧遣使獻方物,詔以爲持節、督緣海諸軍事、綏南將軍、林邑王。大通元年,又遣使貢獻。中大通二年,行林邑王高式律陁羅跋摩遣使貢獻,詔以爲持節、督緣海諸軍事、綏南將軍、林邑王。六年,又遣使獻方物。

효무제 건원·대명 연간에 임읍왕 범신성이 여러 번 장사를 보내 표를 받들고 공물을 바쳤다. 명제 태예 원년에 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제 영명 연간에 범문찬이 여러 번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천감 구년에 문찬의 아들 천개가 흰 원숭이를 바치니 조서하였다. 「임읍왕 범천개는 바다 밖에 끼어 있으면서 마음의 정성이 지극하여 멀리서 직공을 닦으니 참으로 가상하다. 마땅히 작호를 반포하여 영광된 은택을 입힐지니, 지절·독연해제군사·위남장군·임읍왕으로 삼는다.」 10년과 13년에 천개가 여러 번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이윽고 병들어 죽고 아들 필취발마가 서서 표를 받들고 공물을 바쳤다. 보통 칠년에 왕 고식승개가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니, 조서로 지절·독연해제군사·수남장군·임읍왕으로 삼았다. 대통 원년에 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중대통 이년에 행임읍왕 고식률타라발마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조서로 지절·독연해제군사·수남장군·임읍왕으로 삼았다. 6년에 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