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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

양서 제이전 梁書 諸夷傳 · 요사렴(姚思廉) · 636년 (당 정관 10) · 단락 2 · 한자 353자 · 낭독 1.4분

「양서 제이전」 한 권 「신라」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조 양나라가 본 서른여섯 나라.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알린 표문, 신라가 처음 제 이름으로 등장하는 기록, 부처의 머리카락과 아육왕탑 이야기, 그리고 부상국·여인국 같은 바다 끝 전설까지 — 남해에서 서역까지 가장 폭넓은 제이전이다.

1신라의 유래

新羅者,其先本辰韓種也。辰韓亦曰秦韓,相去萬里,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馬韓,馬韓亦割其東界居之,以秦人,故名之曰秦韓。其言語名物有似中國人,名國爲邦,弓爲弧,賊爲寇,行酒爲行觴。相呼皆爲徒,不與馬韓同。又辰韓王常用馬韓人作之,世相係,辰韓不得自立爲王,明其流移之人故也;恒爲馬韓所制。辰韓始有六國,稍分爲十二,新羅則其一也。其國在百濟東南五千餘里。其地東濱大海,南北與句驪、百濟接。魏時曰新盧,宋時曰新羅,或曰斯羅。其國小,不能自通使聘。普通二年,王募名秦,始使使隨百濟奉獻方物。

신라는 그 선조가 본디 진한의 갈래다. 진한은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니 만 리 밖에 있다. 전하는 말로는 진(秦)나라 때 망명한 사람들이 부역을 피해 마한으로 오니, 마한이 그 동쪽 지경을 떼어 살게 했으며, 진나라 사람이므로 진한이라 이름했다 한다. 그 말과 물건 이름이 중국 사람과 비슷하여, 나라를 방이라 하고 활을 호라 하고 도적을 구라 하고 술 돌리기를 행상이라 하며, 서로 부르기를 다 도(徒)라 하니 마한과 같지 않다. 또 진한 왕은 늘 마한 사람으로 세워 대대로 이었으니, 진한이 스스로 서서 왕이 되지 못한 것은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임이 분명하며 늘 마한의 절제를 받았다. 진한은 처음 여섯 나라였다가 차츰 나뉘어 열둘이 되니 신라가 그 하나다. 그 나라는 백제 동남 오천여 리에 있다. 그 땅은 동으로 큰 바다에 닿고 남과 북은 구려·백제와 접한다. 위나라 때는 신로(新盧)라 하고 송나라 때는 신라라 하며 혹 사라(斯羅)라고도 한다. 그 나라는 작아서 스스로 사신을 통하지 못하더니, 보통 이년에 왕 모진(募秦·법흥왕)이 처음 사신을 보내 백제를 따라 방물을 바쳤다.

2신라의 말과 벼슬

其俗呼城曰健牟羅,其邑在內曰啄評,在外曰邑勒,亦中國之言郡縣也。國有六啄評,五十二邑勒。土地肥美,宜植五穀。多桑麻,作縑布。服牛乘馬,男女有別。其官名,有子賁旱支、齊旱支、謁旱支、壹告支、奇貝旱支。其冠曰遺子禮,襦曰尉解,洿曰柯半,靴曰洗。其拜及行與高驪相類。無文字,刻木爲信。語言待百濟而後通焉。

그 풍속에 성을 건모라라 부르고, 안에 있는 읍은 탁평,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하니 역시 중국말의 군현이다. 나라에 여섯 탁평과 쉰두 읍륵이 있다. 토지가 기름져 오곡 심기에 알맞다. 뽕과 삼이 많아 겸포를 짓는다. 소를 부리고 말을 타며 남녀에 분별이 있다. 벼슬 이름에 자분한지·제한지·알한지·일고지·기패한지가 있다. 관은 유자례라 하고 저고리는 위해, 바지는 가반, 신은 세라 한다. 절하는 법과 걸음걸이는 고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어 나무에 새겨 신표로 삼는다. 말은 백제를 기다린 뒤에야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