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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

양서 제이전 梁書 諸夷傳 · 요사렴(姚思廉) · 636년 (당 정관 10) · 단락 3 · 한자 786자 · 낭독 3.1분

「양서 제이전」 한 권 「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조 양나라가 본 서른여섯 나라.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알린 표문, 신라가 처음 제 이름으로 등장하는 기록, 부처의 머리카락과 아육왕탑 이야기, 그리고 부상국·여인국 같은 바다 끝 전설까지 — 남해에서 서역까지 가장 폭넓은 제이전이다.

1야마대 가는 길

倭者,自云太白之後,俗皆文身。去帶方萬二千餘里,大抵在會稽之東,相去絶遠。從帶方至倭,循海水行,歴韓國,乍東乍南,七千餘里始度一海,海闊千餘里,名瀚海,至一支國。又度一海千餘里,名未盧國。又東南陸行五百里,至伊都國。又東南行百里,至奴國。又東行百里,至不彌國。又南水行二十日,至投馬國。又南水行十日,陸行一月日,至祁馬臺國,即倭王所居。其官有伊支馬,次曰彌馬獲支,次曰奴往鞮。民種禾稻紵麻,蠶桑織績,有薑、桂、橘、椒、蘇。出黑雉、真珠、靑玉。有獸如牛,名山鼠。又有大蛇吞此獸,蛇皮堅不可斫,其上有孔,乍開乍閉,時或有光,射之中蛇則死矣。物産略與儋耳、朱崖同。地温暖,風俗不淫。男女皆露紒。富貴者以錦繡雜采爲帽,似中國胡公頭。食飲用籩豆。其死有棺無槨,封土作冢。人性皆嗜酒。俗不知正歳,多壽考,多至八九十,或至百歳。其俗女多男少,貴者至四五妻,賤者猶兩三妻。

왜(倭)는 스스로 태백의 후손이라 하며 풍속이 다 문신한다. 대방에서 만 이천여 리니 대개 회계 동쪽에 있어 아득히 멀다. 대방에서 왜에 이르려면 바다를 따라 물길로 가서 한국(韓國)을 지나 동으로 갔다 남으로 갔다 칠천여 리에 비로소 한 바다를 건넌다. 바다 너비가 천여 리니 이름이 한해라, 일지국에 이른다. 또 한 바다 천여 리를 건너니 이름이 말로국이다. 또 동남으로 뭍길 오백 리에 이도국에 이르고, 또 동남 백 리에 노국에 이르고, 또 동으로 백 리에 불미국에 이르고, 또 남으로 물길 스무 날에 투마국에 이르고, 또 남으로 물길 열흘 뭍길 한 달에 기마대국(야마대국)에 이르니 곧 왜왕이 사는 곳이다. 그 벼슬에 이지마가 있고 다음은 미마획지, 다음은 노왕제라 한다. 백성은 벼와 모시와 삼을 심고 누에 치고 길쌈하며, 생강·계수·귤·산초·차조기가 있다. 검은 꿩과 진주와 푸른 옥이 난다. 소 같은 짐승이 있어 산서(山鼠)라 이름하고, 또 이 짐승을 삼키는 큰 뱀이 있으니, 뱀 가죽이 단단해 벨 수 없고 그 위에 구멍이 있어 열렸다 닫혔다 하며 때로 빛이 나는데, 쏘아 그곳을 맞히면 뱀이 곧 죽는다. 물산은 대략 담이·주애와 같다. 땅이 따뜻하고 풍속이 음란하지 않다. 남녀가 다 맨 상투를 드러내는데, 부귀한 자는 비단과 온갖 채색으로 모자를 하니 중국의 호공두와 비슷하다. 먹고 마심에 변두를 쓴다. 죽으면 관은 있고 곽은 없으며 흙을 봉해 무덤을 만든다. 사람들 성질이 다 술을 즐긴다. 풍속에 설을 몰라 다만 가을걷이 때를 헤아려 나이로 삼으니, 장수하는 이가 많아 팔구십 살 혹 백 살에 이른다. 그 풍속에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어, 귀한 자는 네댓 아내를 두고 천한 자도 두세 아내를 둔다.

2히미코에서 왜왕 무까지

婦人無婬妬,無盜竊,少諍訟。若犯法,輕者没其妻子,重則滅其宗族。漢靈帝光和中,倭國亂,相攻伐歴年,乃共立一女子卑彌呼爲王。彌呼無夫壻,挾鬼道,能惑衆,故國人立之。有男弟佐治國,自爲王,少有見者。以婢千人自侍,唯使一男子出入傳教令。所處宫室,常有兵守衛。至魏景初三年,公孫淵誅後,卑彌呼始遣使朝貢,魏以爲親魏王,假金印紫綬。正始中,卑彌死,更立男王,國中不服,更相誅殺,復立卑彌呼宗女臺與爲王。其後復立男王,並受中國爵命。晉安帝時,有倭王賛。賛死,立弟彌。彌死,立子濟。濟死,立子興。興死,立弟武。齊建元中,除武持節、督倭新羅任郍伽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鎭東大將軍。高祖即位,進武號征東將軍。其南有朱儒國,人長三四尺。又南黑齒國、裸國,去倭四千餘里,船行可一年至。又西南萬里有海人,身黑眼白,裸而醜,其肉羙,行者或射而食之。

부인은 음란하지 않고 시새우지 않으며, 도둑질이 없고 다투는 송사가 적다. 법을 범하면 가벼운 자는 처자를 몰수하고 무거우면 종족을 멸한다. 한 영제 광화 연간에 왜국이 어지러워 여러 해 서로 치다가, 이에 함께 한 여자 히미코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히미코는 지아비가 없고 귀도를 끼어 무리를 홀릴 수 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남동생이 있어 나라 다스림을 도왔다. 왕이 된 뒤로 만나 본 이가 적고, 계집종 천 명으로 스스로 모시게 하며 오직 남자 하나가 드나들며 교령을 전했다. 거처하는 궁실에는 늘 군사가 지켰다. 위 경초 삼년에 공손연이 베인 뒤 히미코가 처음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위나라가 친위왜왕으로 삼고 금인과 자수를 주었다. 정시 연간에 히미코가 죽자 다시 남자 왕을 세웠는데 나라 안이 복종하지 않고 서로 죽이니, 다시 히미코의 종녀 대여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그 뒤 다시 남자 왕이 서니 다 중국의 작명을 받았다. 진 안제 때 왜왕 찬(讚)이 있었다. 찬이 죽고 아우 미(彌)를 세우고, 미가 죽고 아들 제(濟)를 세우고, 제가 죽고 아들 흥(興)을 세우고, 흥이 죽고 아우 무(武)를 세웠다. 제 건원 연간에 무를 지절·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육국제군사·진동대장군에 제수하였다. 고조가 즉위하여 무의 호를 정동장군으로 올렸다. 그 남쪽에 주유국(侏儒國)이 있으니 사람 키가 서너 자다. 또 남으로 흑치국·나국이 있으니 왜에서 사천여 리라 배로 한 해쯤 가야 이른다. 또 서남 만 리에 바다 사람이 있으니, 몸이 검고 눈이 희며 벌거벗고 못생겼는데 그 고기가 맛있어 길 가는 이들이 더러 쏘아서 먹는다 한다.

3문신국

文身國,在倭國東北七千餘里。人體有文如獸,其額上有三文,文直者貴,文小者賤。土俗歡樂,物豐而賤,行客不齎粮。有屋宇,無城郭。其王所居,飾以金銀珍麗。繞屋爲壍,廣一丈,實以水銀,雨則流于水銀之上。市用珍寶。犯輕罪者則鞭仗,犯死罪則置猛獸食之,有枉則猛獸避而不食,經宿則赦之。

문신국(文身國)은 왜국 동북 칠천여 리에 있다. 사람 몸에 짐승 같은 무늬가 있고 이마 위에 세 무늬가 있으니, 무늬가 곧으면 귀하고 무늬가 작으면 천하다. 풍속이 즐겁고 물자가 넉넉하고 싸서 길손이 양식을 지니지 않는다. 집은 있으나 성곽이 없다. 그 왕이 사는 곳은 금은과 진기한 것으로 꾸몄으며, 집을 둘러 해자를 파니 너비가 한 길이라 수은을 채워, 비가 오면 수은 위로 흘러내린다. 저자에서는 진보를 쓴다. 가벼운 죄를 범한 자는 채찍과 매를 치고, 죽을죄를 범하면 맹수를 두어 먹게 하는데, 억울함이 있으면 맹수가 피하고 먹지 않으니 하룻밤을 지나면 사면한다.